윗세대의 이야기를 찾아서

아이의 일상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던 출산 후 1년을 빼고는 아이의 일상에서 내가 없는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아이는 열시간 이상 잠을 자니까 14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에서 8시간은 유치원에 있고, 나머지 시간도 집안일이다 내 취미 활동이다 하면 남는 시간이 별로 없다. 아이에게 일상을 물어보고 요약해서 듣는 것이 대부분인 셈이다.

아이는 아직 나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비밀이라는 것을 갖기에 아직 입이 너무 근지러운 나이라 더 털어놓지만, 부끄러움/수치라는 감정을 서서히 배워가고 있는 것도 같고, 방에서 문닫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기 시작하는 걸 볼 때 나에게 많은 비밀을 갖는 시기가 곧 다가올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아이의 이런 저런 일상을 이야기하다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나눠보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 나아가서 나의 부모님 세대와 그 윗세대의 이야기는 참 들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형제 자매들과는 어떤 감정을 갖고 컸는지, 무슨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어떤 강렬한 감정을 느낀 일이 있었다면 그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등… 항상 내가 관심을 받는게 커서, 내가 중심이었어서,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컸는지 등 과거에 대한 궁금함을 마치 거세라도한냥 여쭤보지 않고 지냈다. 같이 하는 일상 만으로 부모님을 다 안다고 생각하며 넘겼지만, 그게 또 그렇지도 않은건데. 엄마 아빠도 어린 시절 보듬어주지 못한 내 속의 나를 품고 사셨을텐데 그건 친구들과 나누셨을까 하는 마음에 이제라도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간 누구에게도 일절 안하셨던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위암 수술후 간으로 전이되기 전 기간이었는데, 태극기함 만드는 숙제를 도와주신다고 오신 할아버지께서 톱질과 망치질을 하시면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참전 이야기를 해주신거다. 강제 동원이 된 배경, 어떻게 포로로 잡혀 러시아군인에게 끌려갔는지, 하마터면 사할린 동포가 되실 뻔했던 상황에서 어떻게 도망쳐나왔는지, 이남으로 돌아와는 과정 종전이 되면서 어떻게 38선을 넘었는지, 38선을 넘어 레이밴 선글라스를 쓴 미군장교를 본 순간 드디어 무사히 돌아왔다고 느낀 순간의 감정 등 정말이지 생생한 이야기였다. 폭탄을 안고 러시아 탱크 아래로 뛰어 들어가 탱크를 제거하는 임무를 받았는데, 안들어가면 일제 장교에게 죽고, 들어가면 터져 죽을 거 같아서 이도저도 못하다가 오줌을 싸고 기절하신 이야기, 이가 들끓는 옷을 벗어서 탈탈 털어 최대한 이를 제거하고 다시 입은 이야기, 포로들에게 밭에서 볼일을 볼 수 있게 해줄 때, 다시 이동하기 전 포로 수를 다 셀 수 없어 기관총으로 밭을 주욱 갈겨 쏘고 이동하는 걸 피하고자 인근 똥통에 숨었다가 온 몸에 똥독이 올라서 고생했던 이야기 등 정말 어디 소설에서나 볼법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살면서 할아버지가 한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들은적이 없다 하셨고, 이후 해병대에 들어가셨고, 그 끈끈한 전우애와 해병대의 강인함 이런 이야기만 듣고 보고 자라셨다 했다. 그런 이야기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건 본인이 곧 돌아가실 걸 아신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만 해보신다며..

엄마, 아빠, 그리고 이제 내년이면 백세가 되실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이번에 방문하면 꼭 들어보고자 한다. 이런 드라마틱한 일은 아니더라도,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궁금하다. 그때의 일상과 생각, 기억에 남는 것들 말이다. 그를 듣고 나면 엄마와 아빠를 조금 더 다른 형태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글로 남기고자 한다.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때 기록으로 남겼다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아서 기억이 드문드문 지워지고 오염되었다.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배우는 게 별로 없는 덴마크 유치원?

한국을 다녀오면 유치원에서 하나에게 남은 시간은 보름도 채 남지 않는다. 방과후 학교로 넘어가 학교 입학까지 3개월의 시간을 보내는데, 여름 휴가 기간 3주를 제외하고 나면 2개월 정도 시간을 보낸 후 8월 초부터 0학년을 시작하게 된다. 왜 서구는 주로 가을에 학기를 시작할까 생각을 했는데, 아마 여름방학이 길고 연말연시 연휴기간방학, 겨울방학, 부활절 휴가기간, 가을방학 기간 등은 1~2주 정도로 짧게 쉬다 오는 것들이라 한 학년을 끊기에 애매한 기간이라 그런게 아닌가 싶다.

2023년 중에 만 6세가 되는 아이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해에 0학년을 시작한다. 이보다 1년 먼저 일찍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고 늦춰서 만 7세가 되어 시작하는 애들도 있다. 덴마크는 의무교육이 10년으로 정해져있는데, 이를 꼭 학교에서 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가정에서 해도 무방하다. 즉 어디서 하든간에 0학년에 되는 시점부터 의무교육이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글을 배우고 기초적인 산수와 과학, 예술, 체육활동 등을 하는데, 기존에 유치원에서 놀이처럼 배우던 것이 책상에 앉아서 좀 더 학습처럼 배우는 형태를 띄게 된다.

아직까지 학교에 애를 보내지 않아서 학교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덴마크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뭘 하는지는 좀 빠삭해졌다. 한국인 부모 중에는 덴마크 어린이집/유치원보다 한국 어린이집/유치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개인의 교육관과 취향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덴마크 기관이 내 교육관과 취향에 맞는다.

덴마크 기관에서는 0학년에 가기까지 앉아서 뭘 가르치지 않는다. 앉아서 뭘 하는 건 레고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오리고 붙이고 만들고, 밥 먹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안과 밖에서 몸을 써 놀고, 운동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특별한 스포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이라고 하면 요가정도? 이 또한 아이들에게 체육 활동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시에 따라 조용히 움직이면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 신체에 일어나는 일에 집중을 하면서 조절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시키는 거다. Mindfulness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데, 그 시간에 뭐하냐고 물어보면 요가 매트 깔고 눕거나 앉아서 눈을 감고 호흡에 초점을 맞추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거라고 한다. 그러다가 간혹 10-15분씩 파워냅을 하기도 하고.

그밖에 노는 건 정말 뛰어 노는 거다. 지금 유치원에는 실내 암벽이 없는데, 예전 유치원에는 앞에 두툼한 매트리스를 깐 실내 암벽이 있어서 이미 두돌 반 때부터 이 벽을 원숭이처러럼 타고 놀았다. 비가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루에 한번은 꼭 밖에서 놀고, 비가 오는 날도 비가 그치면 나가서 논다. 그러면 옷이나 장화는 정말 진흙과 모래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어서 애를 데리고 올 때가 되면 그게 다 말라 붙어서 옷을 접으면 흙덩이가 부러져서 떨어져내린다. 그나마 말라있으면 다행이고, 그 진창 옷을 집으로 가져갈 때면 들고 가기도 정말이지 번거롭다. 자주 빨 수 있는 옷이 아니니까 집에 가서 말려 털어보내야 한다. 특별히 다칠만한 위험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은 대부분의 활동에 대해서 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다쳐오는 일도 종종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몸을 쓰는 법을 배우고, 건강하게 큰다.

운동이 아닌 활동은 소근육 발달을 위한 그림그리기, perler (한국에서는 펄러비즈라고 하던데, 판에다가 플라스틱 비즈를 끼워서 모양을 만들고 다림질을 해 이것저것 만드는 것으로 덴마크 기업이 만든 것) 판에 끼워 만들기, 부활절, 할로윈, 크리스마스 등 시즌에 맞춰 실내 장식할 때 뭔가 오리고 붙이고 만드는 공작 같은 창의력 향상 활동이 한 축을 이룬다. 또 다른 축으로는 아침에 모여서 조회시간에 노래 부르는 시간. 운율과 음율을 맞춘 동요가 많고, 학교에 가서도 운율과 음율에 많은 비중을 둬서 교육이 이뤄지는데, 같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게 조직내 소속감 등을 고양시켜준다고 해서 덴마크인들은 이를 교육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산수를 따로 배우지는 않는데, 뭔가 생활속에서 이런 저런 것을 배우는지, 2+2는 4, 4+4는 8, 8+8은 16, … 이런걸 나에게 와서 말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일상 속에 엮어 산수도 배우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도 물론 빼 놓을 수 없다.

기타 공동체 생활을 위해 유치원에서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 옷입고 벗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상황에 돕게 한다거나, 식사 당번을 정해서 배식을 돕게 한다. 또 일주일에 한번 씩 왕따 방지 교육을 해, 뭐가 괴롭히는 것인지, 그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해당 당사자와 주변인의 역할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배운다.

유치원에서 뭔가 다양한 수업을 하지는 않지만, 어른들이 만드는 놀이나 학습에 애들이 참가하는 형태가 아니라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놀이를 만들고 노는데 익숙하다.

다만 애들은 좀 꾀죄죄하다. 옷이 더러워지고 헤지고 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애를 데릴러 갈 때 보면 애들이 죄다 꾀죄죄하다. 머리도 엉망진창, 얼굴과 옷도 여기저기 더러워져있고. 좋은 옷은 살 필요가 없고, 유치뽕짝이든 뭐든 애들 취향에 맞춰 대충 저렴하고 튼튼한 옷을 사주면 된다. 괜히 좋은 옷 입고 가서 더러워지고 찢어지면 아깝기나 하지.

아침이면 15분 정도 침대에서 뒹굴며 잠을 깰 시간을 주고, 일어나서 옷 갈아입고, 머리도 자기가 빗고, 부엌에 내려가서 자기 먹을 아침식사 직접 챙겨다가 아빠랑 아침 식사 하고, 겉옷 챙겨입고, 도시락이랑 물통 가방에 챙겨 넣어 집을 나서고, 혼자 놀 땐 놀고, 도움을 필요할 땐 도움을 요청하고 등등 하나의 인간으로서 역할을 다 한다. 도시락이야 내가 싸주지만, 그나마도 내 옆에서 간혹 거들때도 있고, 빨래랑 밥해주고, 책읽어주고 조금 놀아주고 여기저기 데려다주는 역할 때면 내가 하는 게 진짜 별로 없어졌다. 자기 주도성, 스스로를 돕는 자조능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능력, 자기가 필요한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 못하는 것도 연습하면 늘게 되어 있음을 알고 꾸준히 하는 것 등 물론 가정교육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것들이 유치원에서의 교육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시간이 흐르고 보면 한국에 있는 아이들이 여기에 있는 아이들보다 더 많이 배워 좋은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애들이 즐겁게 놀고 어른의 과도한 통제 없이 적당한 상처도 입어가면서 보다 창의적으로 자신을 배우고 성장하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면서 사회성 기르는 이곳이 나는 마음에 든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규칙을 잘 지키고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 더 초점을 두는 것도 마음에 들고. 결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줘야 하는 것인데, 그 근간을 유치원에서 닦을 수 있는 것이 좋다. 내가 선행학습과 안맞았던 사람이라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적당한 시기의 적당한 자극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야 학교 가서 하면 된다 싶다.

주변의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하여 개개인이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야 말로 정말 가르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유형의 것으로 보여주기 어렵지만 아이의 매일을 통해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덴마크 공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안개낀 출근길. 그 아름다움

아침 출근길, 이제는 집에서 나오는 길이 어둡지 않다. 항상 그렇듯 변화는 순식간에 온다. 출근길이 밝아지기 시작하면 여름에 대한 기대감이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2월인데 무슨 여름이냐고? 일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겨울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여름에 대한 사랑. 어두워지는 계절부터는 초를 그렇게 켜대고 1월말부터 2월초에 순이 돋아올라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하는 겨울꽃부터 시작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사소한 것을 발견하고 기념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 기나긴 겨울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가을부터 봄까지는 습하기 때문에 일교차가 커지는 시기에는 안개가 자주 낀다.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있지만 시야는 어느정도 확보되어 위험하지 않게 운전할 수 있는 날의 출퇴근길은 특별하다. 뭔가 그 사이로 들어가면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랄까.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한 탓에 평원을 가로지르는 긴 지방도로를 따라 운전을 하는데 밭과 숲이 어러진 길을 따라 가며 자세히 보이지 않는 건물과 지형지물의 실루엣과 색을 보니 갑자기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름답다는 생각은 항상 했지만, 문득 그게 특별히 아름다웠음을 인식하는 순간이랄까?

우리의 뇌가 익숙한 건 너무 당연하게 느끼게 만들어서 항상 보고 다니는 길을 아름답다고 느끼기 어려운데, 오랫만에 보는 밝지만 안개가 낀 길을 보자니 문득 그 익숙함 속의 낯섦을 일깨웠던 것 같다. 지방이전한 기관에 다니다보니 출퇴근길 사람과 부대끼지 않고 다닐 수 있는게 새삼 감사해진다. 애가 없이 도시생활 열심히 하고 싶었을 젊은 시절에 여기를 다녔으면 다른 생각을 했겠지. 적당한 때에 적당한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좋구나.

여섯살의 아이는 여섯살의 아이다.

하나가 커가며 조금씩 내 손을 덜 탄다. 요즘은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것 등을 직접하도록 가르치는 중인데 몇달전만해도 꽤나 쑥쓰러워했는데 요즘은 그런게 하나도 없이 잘 한다. 미리 할 말과 상황을 가르쳐주고 가서 직접 해봐 하면 변하는 상황에도 잘 대응해서 하고 온다.

자꾸 애가 할 줄 아는게 느니까 이정도는 혼자 할 수 있겠지 싶어 믿고 하게 뒀다가 낭패를 보는 일도 생기곤 한다. 주차장의 인도옆에 주차한 차 안에서 옌스가 기다리고 있고, 나는 계산만 하고 나서면 되는 길이었기에 아빠한테 먼저 가도 되냐는 하나에게 그러라고 했다. 어려운 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고 잠깐 사이였으니까. 차에 갔는데 아이가 없다. 수퍼에서 몰 출구까지는 십미터에 거기서 십오미터면 되는 차까지 가는 길인데 어디서 사라졌지? 이 출구를 놓치고 다음 출구로 갔나 싶어서 얼른 뛰어 들어갔더니 다른 어른의 도움을 찾아 수퍼로 돌아오는 아이를 만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아이를 안아주었다. 차분하게 오긴 했지만 놀랬을 터였다. 내가 좀 더 통제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이에게 시도해볼 기회를 여러번 주고 연습이 충분히 된 뒤에 할 일이었던 거 같다.

수퍼마켓에서 수차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기에 혼자 탈 수 있을 줄 알았다. 혼자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오겠다고 했다. 워낙 한국에서처럼 엘리베이터가 많으면 잘 타겠지만 엘리베이터 탈 일이 별로 없는 이곳에선 흔히 타진 않으니 경험이 현저히 부족했다. 아마 버튼을 충분히 꾹 누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두층간을 오고가는 엘리베이터라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움직이는 중인지 등을 알 수 없는 엘리베이터인데 애가 안내려온다. 내가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여기 있다고 외치고 내려오는 버튼을 눌렀다. 그럼 두대 중 하나가 먼저 내려오겠고 하나가 탄 게 아니면 한번 더 누르려고. 다행히 하나가 타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왔고 아이는 놀라서 눈물을 왈칵 터뜨렸다. 고장났는줄 알고 너무 무서웠단다. 무서웠구나. 한참 안아주고 진정을 시켰다. 아마 버튼이 다 안눌린 거 같다며 고장난 건 아니었으니 다음에 엄마랑 다시 해보자고 했다. 그땐 내가 버튼 제대로 누르는 것까지 밖에서 보고 내려가서 기다리겠다고. 그러면 무서울 거 없이 내려올 수 있을 거라고. 해보겠냐니 그러자고 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있는데 고장나면 어쩌냐한다. 엘리베이터에서 혼자타는 연습을 할 땐 고장 버튼부터 가르쳐야겠다.

애가 할 줄 아는게 너무 많아지니까 너무 당연히 할 거 같이 느껴지는 것 같아 안가르치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거 같다. 이제 학교에 가면 더욱 혼자할 게 많아질테니 조금 더 신경써서 일상의 것들을 가르쳐야겠다.

곧 동지다.

우리가 동지를 팥죽 먹으면서 기념하는 것처럼 서양에는 크리스마스가 있다. 원래 예수의 탄신일과 무관했던 페간 전통인 동지기념일을 해당 지역 기독교 전파를 위해 예수의 탄신일처럼 이용했다는 가설이 있듯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전통은 사실 예수 탄신일 보다는 엘프, 요정 등으로 번역되는 nisse (니써/니쎄)로 가득하다. 애초에 크리스마스의 명칭은 예수의 탄신일과 상관없는 단어인 Jul (율)이다. “Det nordiske ord jul kendes også som urgamle låneord i finsk juhla ‘fest’ og det lidt senere lån joulu ‘jul’. Ligesom det vestnordiske flertalsord jól er de dermed vidnesbyrd om, at man i Norden i førkristen tid havde en festperiode, som blev kaldt jul.” – lex.dk 말그대로 축제라는 뜻의 단어이다.

엊그제부터 출근하면서 정말 어둡구나 생각했다. 날이 흐린 관계로 오전 아홉시가 되어서야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덟시 반에 일출이 있긴 한데 정말이지 지평선 끝자락에서 떴다가 끝자락에서 지는 해는 그 밝기가 미미해서 조금이라도 흐리면 해가 어느정도 올라오기 전까지는 해가 뜬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을정도로 어둡다. 그리고 일몰도 세시 반이라 세시면 거의 깜깜해진다. 12월 들어서면서 이미 충분히 어둡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어두워지니 어두워도 너무 어둡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때 쯤이면 동지가 된다. 와우!!!! 너무 신난다!!!

내가 원할때 불을 켜고 끌 수 있는 시대에 사는 나도 동지를 이렇게 반기는데 옛사람들은 어땠을까? 동지는 정말 기쁜 날이었을거다. 가장 어두운 날, 앞으로 있을 하루하루 밝아질 날들을 기대할 수 있는 그런 날 말이다.

안그래도 어두운 겨울날을 코로나로 더욱 어둡게 보냈던 지난 2년을 마무리하고 올해는 좀 밝게 보내나 했더니 유럽에 찾아온 전쟁과 에너지위기로 그 분위기가 이전같지 않다. 에너지위기를 두차례 겪었던 세대는 그 때의 에너지 절약 습관이 몸에 배었다고 하던데, 아마 우리 세대도 이런 습관이 깊숙하게 자리잡지 않을까 싶다. (덴마크어로는 “척추에 내려앉을” 것 같다고 하는데, 뭔가 더욱 깊게 그 흔적을 남길 것 같은 표현이다.)

아무튼 곧 동지다. 연말 휴가가 다가오니 조금 더 일하고 휴가 기간을 즐겁게 보내자!

낯선이들 속에서 오롯이 나로 자유로이 서기

처음이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네트워킹을 하고 코스를 듣고 내 의견을 말하고 질문을 하고 내 소개를 하고 하는 과정 속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한 것 말이다. 나에게 향했던 내 내부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타인의 발언을 들을 때 그에 100% 집중해 경청하니 상대방이 더 잘보이기 시작했다. 내 결점에 집중하고 그걸 타인이 어떻게 볼까 걱정하느라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모습이.

언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내 머리속에 자리한 번잡한 생각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한 것이었다. 테크니컬한 내용의 강의와 토의를 따라가고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내 덴마크어가 부족할까봐 미리 변호하거나 하는 일이 필요없었다. 조금씩 실수하거나 그러면 또 어떠한가. 우리말하면서도 실수 할 수 있는 건데. 저녁 식사하다가 문화간 차이 이야기가 나와서 덴마크 이주시 경험을 이야기하니 언제 왔냐고, 이민온 지 몰랐다고 하는 거보면 작은 실수는 그냥 나만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던 거였던 거 같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틀려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는 거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다른 동료가 있고, 나는 그 자리를 메울 다른 것을 갖고 있으며, 나는 계속 배워가고 계속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저런 사람인데… 이런 생각으로 걱정하거나 나를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고 그래서 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나다. 이 말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새롭게 와닿은 순간 이게 정말 나를 자유롭게 하는 말임을 알았다.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수가 없고 나는 그냥 내 생각과 행위, 선호, 가치관 등으로 구성된 사람이고 이는 내가 내리는 일련의 결정과 행위로 끊임없이 변하는 동태적인 유기체이기에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나는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가치관과 선호, 정보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거다. 정보가 추가되거나 가치관이나 선호가 바뀌면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고. 타인이 나를 좋아하건 안하건 나는 나이고 타인의 평가는 나의 어느 일면만을 갖고 평가하는 것이기에 필요한 오해가 있으면 풀고, 그게 아니면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 하고 넘어가는 거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오늘은 스스로에게 정말 칭찬해줄 날이다. 내가 낯선이들 사이에서 나로서 자유롭게 오롯이 선 날이기 때문이다. 잘 했어!

나이들어간다는 것

내 대학교 3,4학년 시절의 큰 비중을 채웠던 경영학회 GMT. 지도교수이셨던 박영렬 교수님이 퇴임을 하신다고 홈커밍데이 겸 퇴임 축하를 한다고 참석여부를 확인하는 메일을 받았다. 어느새 박교수님이 퇴임을 하실때가 되었구나. 아… 내 흰머리가 늘고 내 남편, 부모님, 시부모님의 나이듦을 보고 느낀 것과 또다른 형태로 세월의 흐름을 체감했다.

근 1~2년 새 유독 내 신체나이가 들어감을 느끼고 있다. 피부의 탄력이 예전같지 않고 머리카락을 좀 들춰 뒤적거려야 몇 개 찾을 수 있던 흰머리가 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미 라인에도 몇가닥 새싹처럼 올라와서 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피부에 상채기라도 나면 예전엔 그냥 둬도 낫던 것이 이제는 소독약 없이는 덧나서 낫는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안경 없으면 피곤했지만 그래도 벗고 생활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안경 안쓰면 안그래도 짧은 팔을 길게 뻗어 미간을 찌푸려봐야나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다. 저녁 약속에 좀 이쁘게 한다고 안경 벗고 나가면 메뉴를 보느라 고생을 하니 오래지 않아 안경은 두고 다닐 수 있는 물품에서 제외될 모양이다. 몸의 근력이나 그런 걸로만 보면 내 인생에 유래없이 강한 시기이지만, 조금만 잘못 쓰면 인대나 관절 등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물론 덕분에 관절을 정확한 방향으로 쓰는 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게 되었으니 꼭 나쁜것만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을 보면 각각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영 동떨어진 비영어권 환경에서 살며 대학원 공부를 다시해 새로운 커리어로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일을 시작했으니 정말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나이가 아주 많았다면 상관없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해 젊은 동료들과 같이 일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뭐 아주 젊은 동료들도 아니기도 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를 놀라게 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바다에서 지적 호기심을 갖고 뭔가를 파는 일이 적어졌는데, 일이 나를 새로운 분야로 던지곤 하면 그제서 또 이를 배우느라 헤메기도 하고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되려 젊어짐을 느끼곤 한다. 그런 면에서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거의 이십년이 흘러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파고 있는 지금, 감사함을 느낀다. 다시금 삼각함수를 파고, 전기공학과 관련된 이론을 보고, 이제사 왜 수학과 물리 등이 중요한지 또한번 느끼는데 옛날 이걸 왜 배우는지 알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배웠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감과 내 익숙한 영역에서의 활동기간이 함께 길어지면 두려움이 늘어나는데, 이를 깨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다보면 그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시선 속 나,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관계를 보느라 끊임없이 나를 중심으로 보던 시선을 밖으로 돌릴 수 있게 되고 나니 새로움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를 내던질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변화는 분명히 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구분할 것 없이 말이다. 하지만 두가지 모두 그 변화 속에서 젊음을 챙길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수평적인 사회에서 살며 더욱 자유롭게 새로움을 탐색할 수 있다는 건 그런 점에서 축복임에 틀림없다.

스트레스

지난 한주는 너무 많은 행사가 있었다. 평소에 누구를 잘 만날 일도 없고 회사, 집, 하나 방과후 활동 따라가니기, 운동, 우리 세식구와의 시간 등 뻔하디 뻔한 루틴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자체로도 바빠 다른 일을 끼워넣을 여유가 별로 없다. 그런 타이트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테마데이, 친구와의 저녁 약속, 런치 약속, 조카 생일, 옌스 출장 공항 드롭에 평소 옌스가 했을 소소한 집안일도 내가 넘겨받아야 했으니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사무실로 출근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두른 후 아침 커피 한잔을 마시며 산업뉴스를 읽으면 그제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주당 1회 재택근무가 가능하지만, 의사를 만나거나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는 한 가급적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유는 집으로부터 물리적으로 공간을 불리해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함이다.

이렇게 평화스러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스트레스로 가득찼던 것이 바로 내 머리속 내 목소리와 생각 때문이었다는 게 참 놀랍다. 내가 겪은 생각과 스트레스는 다수의 현대인이 겪는 일이기에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민 생활에 이정도 힘든 거야 당연하잖아?’하면서 이를 진작에 다루지 않은 게 문제를 키운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이를 적극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도. 물론 문제가 이정도 커졌으니 이게 상담을 요하는 일이란 것도 알게 되었지만.

내가 나에게 엄격했던 것 만큼 남의 아픔에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힘듦을 토로했을 때 그 힘듦이란 게 누구나 겪기도 하고 다 이겨내야 하는 것이니까, 어느정도는 공감하면서도 이겨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대화를 했다.

해외에서 산다는 게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힘들어 상담이 필요한 순간에 상담의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데 있다. 아마 영어로 상담을 해야 했다면 내게 맞는 상담자를 고를 수 있는 풀이 크게 줄어들었을 거다. 현지어나 영어 모두 상담하기에 불편하다면 한국에서 온라인 상담을 해야할텐데 온라인이라는 환경이 오프라인의 환경을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그 또한 아쉬웠을 거다.

내가 문제에서 헤어나온 이후 주변에 같은 고민으로 고통받거나 받았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문제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고민을 하거나 했던 사람들. 내 주변의 동료들에게서도 여럿 같은 종류의 고민으로 상담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도 참 많이 받았는데, 그런 모든 사람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해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테마데이 고카트!

난생처음 고카트를 타봤다. 센터장이 이번 테마데이의 활동은 업무와 무관한 것으로 선택했다고만 들었는데 그게 고카트일 줄이야! 처음 타보는 거라 얼마만큼 가속을 해도 좋을지, 언제 브레이크를 얼마만큼 밟아야할지 등 잘 모르겠어서 조금씩 테스트를 해보면서 속도를 늘려봤다. 나중엔 요령이 조금 생겨서 속도를 꽤 올릴 수 있었고 여러가지 경험을 해보았다. 다른 카트를 추월하거나, 추월하다가 실패하고 접촉사고를 내거나, 추월하려는 동료를 성공적으로 막거나 커브를 너무 격하게 돌아서 자동차가 반바퀴쯤 돌거나, 또 어제 하루 고카트를 운전한 사람들 중에 네번째로 빠른 랩기록을 낸다거나 말이다.

시속 65킬로미터로 속도 제한을 걸어놨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전구간에서 목과 온 몸에 느껴지는 원심력이란… 언젠가 포뮬러원 선수들이 목 근육을 그렇게 트레이닝한다는 것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왜 그렇게 훈련해야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았으니 시속 65킬로미터가 안되는 상황에서 내 목이 받은 원심력이 그렇게 컸는데, 코너에서 최저 시속 80킬로미터를 낸다는 포뮬러원 선수들이 목에 받는 힘이 얼마나 대단할런지.. 아무리 차량의 접지력이 크고 회전 반경이 고카트보다 크다 하더라도 무게가 더 나가는 차량에 속도가 두배 이상이면 그게 원심력에 미치는 영향이 네배가 넘을텐데… 하여간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 고작 10분씩 16랩 경기를 3번 했을 뿐인데 지금 몸에 근육통이 가볍게 느껴진다. 온 몸에 들었던 긴장감이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다. 우리랑 같이 돌던 팀은 2번 돌고나서 두명이 속이 안좋다해서 관두고 나갔다.

파워핸들이 아닌지라 회전 구간에서 핸들링을 하면서 온 몸애 힘을 썼는데, 그 덕에 다 끝나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면서 내 차의 핸들이 얼마나 가볍고 부드럽게 느껴지던지. 안그래도 전기자동차라 주행이 가벼운 편인데 고카트 하고 운전하니까 몸이 날아갈 거 같더라. 자동차를 시 외곽에 둔다고 해서 내 차에 중간부터 태워 동행하고 갔던 동료도 자기가 운전하지 않는 차지만 고카트 운전 이후엔 모든 승차감이 다 좋게 느껴지는 거 같다며 공감해마지 않았다.

이런 테마 데이가 아니었으면 굳이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고카트. 처음엔 30분에 불과하다 생각했는데, 끝나고 몸이 땀에 흠뻑 젖고 나니, 30분을 넘겼으면 너무 힘들었겠다 싶었다. 주변에 딱히 이런 격한 것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누군가가 한다고 하면 다시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은 이래서 어떤 활동을 할지에 대한 결정이 전적으로 남에게 달린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음엔 방탈출도 해보고 싶네!

소셜스포츠 클라이밍

상체 근력이 약한 관계로 오버행 벽에서는 수직벽에 비해 난이도를 한단계 내려 타도 고생을 한다. 클린하게 한번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지난번엔 아무리 시도해도 못해 포기했던 벽을 오늘은 두번의 휴식을 포함해 완등했다. 다음의 목표는 휴식을 한번으로 줄이는 거다. 아예 쉬지 않는 목표는 너무 거창한 거 같고.

벽을 타다보면 여러가지 이유로 파트너가 바뀌게 되는데 – 파트너가 멀리 이사를 간다거나,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등반 시간대를 옮긴가거나 – 그런 때를 대비해 새로운 인물과 기분을 열심히 쌓아두어야 한다. 왠지 혼자인 듯 한데 실력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 같은 사람에 있다? 혼자 왔냐 묻고 파트너가 있는지 물은다음 없다, 상대도 누군가를 찾는다 이러면 바로 작업들어간다. 같이 타보겠냐고.

그렇게 만난 체코인 파트너와 클라이밍을 하고 탈의실에서 짐 챙기는 중 홍콩인을 만났다. 왠지 나를 흘끗흘끗 보는데, 말 거려나? 생각하며 손을 씻는데 입술에 묻은 초크가 너무 무서워서 실소가 터진다. 입술에 하얗게 자주 초크 바르고 다니게 되서 거울 보다가 깜짝 놀래곤 한다고 말의 물꼬를 텄다. 그러자 자기도 종종 그런다면서 나 리드 벽타는 거 구경했다는거다. 쉬다가 리드 타는 거 봤는데 잘 하더라, 하면서.

덴마크 온 지 두달 된 학생인데 파트너가 없어 혼자 클라이밍을 한다고 하길래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친구랑은 또 다르지만 클라이밍이 은근히 소셜한 스포츠라서 이렇게 사람 만나는 재미가 또 있다. 벽 위에서는 혼자의 싸움같지만, 또 그 안전을 도모해주고 내려와서 담소를 나누고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서 꽤나 소셜한 취미이다.

오늘 힘든 루트 두개 했더니 팔이 후들후들…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