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생활

파트너때문에 해외로 이주를 하는 사람들은 파트너에게 행정 등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의지할 수 있다. 그걸 누군가가 외국인 카드를 쓴다고 표현하던데 재미있는 표현이다.

나는 외국인 카드를 써본적이 없다. 집안의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행정 부분은 업무를 협의해서 분담하고 나 행정 관련은 내가, 남편 건 남편이, 아이 것은 주로 내가 하니까.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도움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의존이라 생각해 내가 꼭 처리하리라 마음먹을 것 때문이겠지. 인도와 덴마크 주재 정착 초기에도 동료의 도움을 최대한 받지 않고 처리하려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는지 내가 직접 아는게 힘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 사용하는 힘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내가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말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힘.

어쩌면 내가 불안이 높은 사람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서류나 이런 것 처리에 있어서 다소간의 강박이 있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서류를 낼 땐, 이게 처리가 안되면 그 다음이 여러가지로 꼬이는 일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정과 절차를 세세히 이해해야 하고 그와 관련된 서류를 완벽히 준비해야 하며, 후속조치 등에 대해서도 미리 숙지해둬야 불안함이 없어진다.

누구한테 물어봤자 대부분 자기한테 해당되는 내용만 자세하게 읽어보고 나머지는 기억하지 못하기에 그 사람과 다른 사항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고, 담당자에게 물어봤다한들 같은 이유로 뭔가를 빠뜨리고 이야기해주거나 할 수도 있다.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기에 법령과 시행령 등을 세세하게 읽어보고 정확히 확인해야 할 경우 서면으로 질의한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물어봐도 자세히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달라서 나와 준비해야 하는게 다는 사람에게 괜히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줄 가능성도 있으니까.

누군가가 자연분만을 선불, 제왕절개를 후불이라 하더라. 고통이 다 따르기는 하는데, 그게 앞에 오느냐 뒤에 오느냐 하는 걸로 말이다. 외국인카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선불하는 거 같다. 모든 걸 스스로 해둔다는 것은 앞으로 새로운 걸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뭘 어떻게 봐야 하는지, 뭘 처리해야하는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수월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옳고 그른 건 없다. 그냥 나는 선불 생활이 좋고 편하다.

영주권 신청

드디어 영주권을 신청했다. 덴마크에 산지도 어느덧 11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신청할 수 있었다니. 최근 3년 반을 연속으로 풀타임으로 근무했어야 하며, 지난 4년간 근무 기간이 3년 반을 넘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최근 두 직장 사이에 10개월 정도 쉬고 잠시 샛길로 다른 것을 시도해봤던 나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었다. 이제 지금 직장에서 근로한 기간이 곧 조건을 만족하면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영주권 심사에 2~3개월 걸린다니까 2개월 조금 넘긴 지금 신청하면 얼추 심사 시점에 근로 기간 조건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이민을 해서 일정 거주 기간만 만족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나라도 있으니 그에 비해서는 기존 비자 타입에 상관없이 만족해야 하는 조건이 모두 동일한 덴마크의 영주권 요건은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편이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영주권 없어도 비자를 연장하며 지낼 수 있으니 큰 상관은 없기는 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다. 처음엔 2년, 그 다음엔 4년, 지금 것은 6년짜리 비자를 받았는데, 이 비자 기한이 일정 수준 이상에서 제한될 것인지라 잊지 않고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그런 불편함과, 혹여나 조건이 바뀌어서 연장에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등 거주의 안정에 있어서 심리적 불안함을 주는 요소가 있다.

결혼을 통해 이민온 경우 이혼을 하면 비자가 취소될 수 있다. 물론 덴마크 배우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기반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아이가 없다가 이혼하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조금 불안할 수 있다. 실제 그렇게 해서 나라를 뜨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딱히 거주의 불안정성이 없는 지금, 나는 왜 영주권을 원할까? 그냥 비자를 받고 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서류작업이 영 불편하고 돈도 제법 많이 들기 때문일거다. 백만원이 넘는 돈을 서류 접수하는데 써야 하고, 아직도 남편 계좌의 일정 돈이 내 비자의 보증금으로 묶여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보증금은 혹시나 내가 사회보장제도의 수급을 받을까봐, 그럴 경우 거기서 돈을 빼가기 위함이다.

시민권…은 아직 모르겠다. 예전에는 필요없다는 주의였다면 지금은 50:50 이니 마음이 많이 시민권 방향으로 기울긴 했는데, 왜인지 하나는 내가 한국 국적을 계속 갖고 있었으면 한다고 한다. 국적이 나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아닐텐데, 하나에겐 국적이 어떤 정체성의 의미를 지니는 것 때문일까? 뭐가 되었든 얼른 영주권이 나오면 좋겠다. 난 여기 계속 살건데, 그 자격을 주시오! 하는 느낌…

늙어가는 몸 바로 쓰기

미레나를 쓰고 있어서 생리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는 관계로 이제 거의 유명무실한 생리이긴 하지만 그간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생리가 유지되어 와서 아직까지는 완경기에 들어서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서서히 희끗하게 세고 있는 것이나, 생리 직전 쯤 되면 관절이 좀 더 뻑뻑한 것 같은 점 등을 보면 호르몬이 최적의 상태로 유지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의 컨디션은 사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상태이다. 우선 젊어서 지금처럼 운동을 많이 하지 않은 탓에 그 당시 체력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던 이유도 있을 거고, 나이 들은 몸에서 여러 삐걱대는 신호를 보내와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덕도 있는 것 같다. 젊었을 때와 다른 것은, 조금만 잘못 써서 운동하면 바로 그날 몸이 신호를 보낸다는 점이다. 그게 좋은 게 몸의 피드백을 토대로 몸의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골반의 좌우 불균형,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발레를 하면서부터 그 불균형이 여기저기 통증을 불러왔고, 하나를 어드레스하면 다른 곳에서 또 신호가 오고 또 그게 무한 반복 같은… 하지만 그를 통해 서서히 몸이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한번에 모든 것을 고칠 수는 없던 게, 몸이 그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보상작용을 해왔고, 그걸 한번에 고치는 건 당시 내 몸에 대한 인지수준이 낮은 내게 불가능했다.

이 모든 것은 평소의 습관과도 연결되어 있어 한번 고친다고 끝나는게 아니라 항상 관리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해결되고나니 발레에서 느는게 느껴지는 것이다. 통증 관리와 실력 향상이 동시에 되다니.

골반이 먼저였는지, 발이 먼저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게 해결되고 나니 오랜 기간 나를 괴롭히던 발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고, 예전에 삐었던 발목에서 안에 충돌이 있던 부분이 없어져 볼더링 하면서 뛰어내릴 때 발목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줄어들었다. 로프 클라이밍에서 떨어질 때 벽에 발로 랜딩하는데서 오는 충격 흡수도 마찬가지고.

나이들어간다고 다 나쁜게 아니더라. 젊어서 몸이 그냥 다 견뎌줄 땐 몸을 잘못되게 써도 아프질 않아 잘못된 습관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빨리 반응이 오니까 잘못된 것을 교정할 수 있으니까.

우리 귀한 몸 오래오래 잘 쓰자!

할머니의 죽음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이상하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을까? 하지만 내게 떠오르는 단어라곤 저것밖에 없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고 나니 갑자기 그게 뭘 뜻하는지 가슴에 확 다가와 꽂힌다. 그리고 참으로 복잡한 감정을 남긴다.

내년이면 백세를 맞이하셨을 할머니니 하늘이 내린 시간을 다 채우신 것은 분명할 거다. 그러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당신의 정신은 참으로 맑아서 갈수록 말을 듣지 않는 몸 속에 갇히신 것 같아 힘드셨던 할머니. 정신이 또렷해도 나이가 들면 사람은 어려진다 하지 않던가. 그래서 엄마외 자식들의 마음을 괴롭게도 하셨던 당신. 그러한 엄마의 복잡한 마음을 옆에서 보며나도 복잡한 감정을 가졌더랬다.

나에겐 초등학교 이후로 유일하게 남아있던 조부모님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던 할머니. 그간의 복잡한 감정을 뒤로 하고 이 일을 계기로 나는 할머니와의 시간을 되새기는 추억여행을 하며 내면의 복잡한 소리를 들어본다.

곧 돌아가실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은 탓에 감정적으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막상 그 일이 실제로 닥친다면 엄마의 감정이 어떨까를 생각했다. 내가 어떨지는 생각도 못했다. 밤늦은 시간의 전화. 엄마가 간혹 한국 밤시간에 전화하시면 마음이 떨린건 이 소식이 올까봐였는데, 그게 이번엔 정말로 왔다. 전화를 끊고 할머니를 잘 보내주시라 엄마께 메세지를 남겼는데, 멍했다. 잘 와닿지를 않았다. 갑자기 모든게 똑같은데 세상에서 할머니만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모든게 똑같다는게 이상했다. 엄마를 위로하는게 아니라 내가 할머니에게 작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당장 비행기표를 끊었다. 코로나 이후로 전화 몇통화 외에는 얼굴도 못뵈었던 할머니는 이미 내가 가서 작별하는지 아닌지도 모르시겠지만, 나는 가서 할머니가 존재했던 시간과 작별하고 그 챕터를 닫는 의식이 필요했다. 그간 무심했던 나의 죄책감에 슬퍼하는 것도 잘 못한다면 그것또한 슬플 것이기 때문이다.

헬싱키공항의 스타벅스에 앉아 죽음이라는 단어를 쓴 순간부터 눈물이 주체하기 어렵게 흘러내린다. 누가 위로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위로할 일도 아니다. 난 그냥 할머니를 추억하고, 감사하고, 슬퍼하는 기회를 갖는 거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것만큼 적절한 순간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아끼지 말라는 말이 그렇게 진부하다 느꼈건만, 그렇지 않았다. 그걸 마지막으로 전하지 못했던게 이렇게 아플줄이야.

할머니. 사랑했어요. 추억 잘 간직할게요. 감사해요. 안녕…

운동부상과 체형교정

마흔 네살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요즘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부쩍 느낀다. 몸의 근육과 관절을 조금만 잘못 쓰면 금방 신호가 온다. 예전엔 운동을 통한 부상을 느끼려면 잘못된 동작을 꽤 장시간 반복해야 했다면 이제는 몇시간만 연속으로 잘못 썼다 하면 바로 알 수 있다. 뜨개질을 하면서 약간 틀어진 각도로 움직임을 반복하면 손목에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것이 그 일례다. 물론 뜨개질은 짧은 시간안에 특정 동작을 매우 많이 반복하니 그 총량이 적지는 않지만. 회사에서 일할 때 한쪽 모니터를 많이 쳐다보면 목에도 신호가 오는 것도 그렇다.

어떤 동작이고 간에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있어 온몸의 곳곳에 퍼진 근육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부상이 오는 것은 전혀 반갑지 않다. 각종 운동을 즐겨하는 나로서는 이런 운동과 관련된 자세에서 오는 부상이 가장 무섭다. 발레와 실내벽등반 이 두가지 모두 평소에 하지 않을 동작들을 많이 하기도 하고, 항상 자신의 한계를 밀어내며 그 한계를 더 늘려가는 운동이라 부상의 확률이 높다. 운동이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심혈관계에는 좋을지언정 운동이라는 게 부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다.

한동안 골반과 척추를 연결하는 부분의 천장관절 부분의 문제가 지속되어왔다. 임신기간 중에도 간간히 아프긴 했었지만 이번에는 햄스트링 통증을 동반한 것이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처음엔 다리를 뒤로 드는 동작을 중심으로 천장관절 통증이 있고, 다리를 높이 드는 동작에서 같은 쪽 햄스트링이 아파왔다. 오래지 않아 견갑과 척추사이 근육이 결리듯이 아프면서 담이와 목 인근 근육이 다 뭉치고 두통까지도 오는 것을 경험했다. 뭔가 해결을 해야만 했다. 담은 이주 정도 지나니 서서히 증상이 좋아졌지만 천장관절과 햄스트링은 통증이 줄어들었다 늘어들었다는 것을 반복하며 완전히 좋아지질 않았다.

이런 부상은 원인이 있다. 뭔가 잘못 쓴다는 것이다. 그게 희망을 주는 신호이긴 하다.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통증을 유발하는 동작을 반대쪽 몸으로 거울로 비추듯이 수행했을 때 문제가 없다면 뭔가 그 동작들 사이에 있는 차이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거울로 비춘 나의 모습에서 양쪽에 차이가 나거나 양쪽 동작의 수행에 있어서 똑같이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동작 간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나의 대부분의 부상은 몸 양쪽의 차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속에 나타났다. 십년전 나의 몸과 지금의 나의 몸은 큰 차이가 있다. 상체와 하체 사이의 사이즈 차이가 한때 44, 66과 같은 차이였다면, 지금은 55로 균일해졌고, 옷의 패턴과 내 몸의 형태가 비슷해져서 바지를 샀는데 엉덩이와 허벅지가 꽉 끼고 허리가 남는 것 같은 문제가 더이상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바뀌는 데에는 발레를 통해 그간 쓰지 않았음을 알게 된 근육을 쓰게 된 것에 있고, 그를 통해 생긴 신체의 불균형을 고쳐온 덕이다. 그중 골반과 척추의 틀어짐, 발 아치의 무너짐 등을 많이 교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다. 이 불균형은 도대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그런 것들이었다. 골반과 척추, 어깨 등의 것은 그냥 왼쪽과 오른쪽의 높낮이가 높고 낮고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척추를 중심으로 한 회전의 치우침 등과 삼분면으로 일어나기에 더욱 고치기 어려웠다.

천천히 해결하자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통증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게 계속되어 밤에 숙면을 취하는 것마저 어려워지니 발레를 쉬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한번 쉬면 복귀하기까지 힘든데 하는 생각에 두려움도 생기고 복잡한 마음이 드는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인스타와 유튜브 등에 많은 체형교정 관련 다양한 자료가 있다는 거였다. 완전하진 않지만 방법을 찾았고 쉽진 않지만 교정을 진행하고 있다. 양쪽 불균형의 원인을 해결하고 나니 발레의 피루엣에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것도 양쪽 모두. 원래의 악습이 자꾸만 돌아오려해서 일상의 모든 동작 뿐 아니라 운동 시 동작에 있어서 이들까지 신경쓰려니 발레와 클라이밍 중에 머리가 훨씬 복잡하지만, 한동안 행동을 제약하던 통증들을 잡고 나니 너무나 다행이다.

이 모든 것이 무료로 공개되는 자료들을 활용하면서 가능하다는 것에 우리 새로운 정보 과잉의 시대에 감사함이 얼마나 큰 지 모르겠다. 내 인스타 대부분이 발레, 클라이밍, 체형교정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걸 만드느라 고생한 사람들의 노력 덕에 오늘도 나의 늙어가는 몸을 끌고 가는 취미생활은 맥을 유지할 수 있구나.

덴마크 직장 점심식사

내가 있었던 곳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전체 공공부문에 해당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중앙정부는 점심시간 30분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구내식당은 회사의 지원이 어느정도 있어서 1인당 대충 6천원 언저리를 내면 나머지는 회사가 부담하는 형식이고,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도 꽤 된다. 여기서 도시락이라 함은 꼭 다 완성된 음식을 싸오는 것 뿐 아니라 오이, 당근, 토마토, 햄, 치즈, 아보카도, 후무스, 버터 등을 회사 냉장고에 두고 자리에 둔 호밀빵을 가져다가 필요한 것을 얹어 먹는 식의 것도 포함한다.

우선 점심시간이 30분에 불과하기도 하고, 이 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기도 하니 대부분 구내식당에 내려가서 같이 먹는게 일상이다.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나누는데 각자 일상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된다. 배우자와 파트너 이름과 직업, 아이들 이름, 나이, 취미는 뭐고, 주말엔 뭐 했고, 뭐 할 거고, 휴가엔 뭐할 건지 등등 서로 시시콜콜 다 안다. 한국같았으면 ‘어떻게 이런걸 물어보지?’ 싶은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too much information이라고 할법한 것도 이야기해준다. 아마 이런 시간이 “회식”이라는 것 없이도 직장생활의 단합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전직장에서는 간혹 이 점심시간이 부담스러웠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다양하게 다뤄지는 주제들이 난무하는 점심시간은 당시 큰 구내식당의 엄청 울리는 어쿠스틱과 함께 덴마크어 리스닝 시험과 같은 스트레스를 줬기 때문이다. 내 왼쪽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던 왼쪽 사람이 갑자기 오른쪽에 앉은 나를 보며,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음… 나 소리가 잘 안들려서 뭔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네?”라고 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왼쪽 오른쪽, 맞은편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공을 튀기듯이 무질서한 탁구같은 대화를 하는 상황에 나는 뭐를 받아쳐야할 지 몰랐다.

일이 바쁘던 때면 간혹 점심을 책상에 갖고 와서 식사하던 센터장을 보면서 나도 간간히 그랬고, 그게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번은 그렇게 식사를 갖고 와서 책상에서 먹곤 했다. 그당시에만 해도 뭘 물어봐도 되는지, 뭘 물어보면 안되는지를 몰랐기 떄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뭘 물어보면 안될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다 물어보면 되는 거였다는 생각이다.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이 다 알고 있는 그들에게 그게 사석에서 친해서 그런건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나는 안물어봤는데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었던 거다. 간혹 내가 생각하기에 안물어보는게 맞을 것을 물어보는 그들을 보며 취조당하는 기분도 가졌는데, 같은 질문을 지금 들었으면 아마 그런 생각 안하고 흔쾌히 다 답을 해줬을 것 같다.

즐거운 점심 식사/수다시간. 특별히 회의가 겹치거나 하지 않는다면 함께할 것을 기대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처음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익숙해진다면 사실 동료들과 정말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뿌리내리는 민들레 홀씨

지금의 직장에 출근을 시작한지 거의 만 삼년이 되어간다. 이달 말이면 삼년. 잠깐 십개월 다른 길을 걸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지금 직장을 포함해 중앙정부에서 일한지 벌써 만 사년반이 넘었다.

2019년 초의 나는 지금의 모습과 참 많이 달랐다. 덴마크 중앙정부의 수평적인 듯 미묘하게 숨겨진 위계질서와 같은 문화와 맥락을 잘 읽기 힘들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직장내 행동양식은 이곳에선 당연하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행동양식은 나에게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랐고 타인의 입장에서 나를 찾았다. 나에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어학원을 졸업했고, 일상에서 영어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해서 법령을 읽고 문서와 보고서를 척척 쓸 수도 없었다. 정말 배울 게 많았고 위축되는 순간도 그래서 많았다.

다행히도 이제 나는 더이상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나를 찾지 않는다. 덴마크에서의 직장생활은 어학원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달까? 일을 하기는 하지만 언어도 실습하며 다니는 기분. 정말 이 직장이 나를 많이 키워줬구나 싶다. 월급 줘가며 말과 문화도 가르치고 일도 가르치고.

새로운 제도 도입이 되는 것과 관련해 그 근간이 되는 모델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관련 자료를 읽고 검토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이런건 술술 읽히는구나 싶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보고서를 써도 더이상 큰 난도질을 겪지 않기 시작했고, 어디서 뭔가 이야기를 하는게 긴장되지 않으며, 어떤 자리가 어떤 순서로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이 가고, 거기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눈치보지 않게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난 한국인이지만 이제는 덴마크 시민으로의 정체성도 커지고 있다. 덴마크인의 배우자이자 어머니로, 이 사회의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데에 참여하고 있다. 더이상 외국인으로서의 내가 어떤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더이상 객관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어렵게 덴마크 사회와 문화에 통합리 되었다. 아무래도 자격이 되는 타이밍에는 덴마크 국적을 취극한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진짜 내가 뿌리를 내리는 곳은 여기가 되었으니까.

정작 내 나라에서 뭔가 소속감을 못느껴 뿌리를 못내리고 바람에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가 덴마크에 와서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는 모양이다.

물난리. 하지만 따뜻한 위로. 뭐든 아주 나쁘기만 한 건 없다.

집에 물난리가 났다. 물난리라고 표현하기엔 끊임없이 물이 방울방울 여러군데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너무 과장되긴 한데, 뭐가 되었든 주택을 소유한 입장에서 어딘가에서 물이 새는 것은 정말 난리가 난 일이다. 의심이 가는 것이라곤 부엌의 환풍기가 연결된 외부 환풍구를 통한 것이 가장 유력해보였지만, 사실 집에서 물이 새려면 샐 수 있는 원천은 여기저기 있다. 화장실 바닥난방, 상수도파이프, 라디애이터 배관 등 말이다. 뭐가 뭔지 모른다는 것이 사람을 두렵게 한다.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상상을 하게 되고, 각각의 시나리오별로 생길 수 있는 결과에 따라 각개의 고통을 미리 느낀다. 일어나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니 정말 많은 고통을 끊임없이 느끼게 된다. 그 스트레스라니…

오늘 아침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 받은 심리상담에서 생각했던 스트레스 메커니즘과 사실은 똑같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 즉 내가 지금 답을 알 수 없는 것에 괜한 에너지를 들이고 있구나. 내가 당장 뭔가를 열어보고 고칠 게 아니라면 스트레스 받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냥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생각해봤을 때 그 결과는 어떤 것이며, 그 결과를 두고 생각하면 내가 감내할 수 있는지. 최악이라면 부엌과 욕실을 모두 레노베이션 해야 하는 일이고, 그러면 돈이 꽤나 많이 들 것이다. 그 과정도 꽤나 지저분할 것이고. 그럼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냥 그것만 생각하자 싶었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지 말고, 이미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나면 나머지 그보다 나은 상태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테니. 뜨신 물에서 목욕이 필요하면 수영장을 가면 될것이고, 음식은 전자레인지와 오븐으로 해먹을 수 있는 거 해먹고, 샐러드는 만들어진 거 사다가 먹어도 될 거다. 그게 다 비용이다 생각하면 괜찮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도 “엄마, 한국에 저랑 같이 갔던 때를 생각해보세요. 엄마가 저를 눈에다 파뭍고 같이 눈에서 뒹굴면서 엄청 많이 웃었던 기억을 생각해보세요. 진짜진짜 많이 웃었잖아요. 그걸 생각해보면 그 물난리를 조금 잊을 수 있지 않아요?” 라며 해맑게 웃고 안아주는 아이를 보니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아… 우리가 애를 위로해주는 방식을 애가 그대로 배웠구나. 그리고 거기에 우리 스스로가 잊는 지혜가 있었구나. 어쩔 수 없는 거 알면서도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을 지우고 싶을 때, 좋은 것을 떠올려보라던 그 말에 아이가 우리를 이렇게 위로해주는구나…

웬간해서는 잘 스트레스를 표현하지 않는 옌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이다. 저녁에 갑자기 한번 안아달라고 한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 이런 때일수록 사랑, 위로와 유머가 필요하다. 날카로워지지 않도록 서로 따뜻함을 유지해야지.

소통, 솔직함, 신뢰는 자유를 준다.

작년 심리상담을 마친지 어느 덧 일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마음 깊숙히 간직하고 있는 가르침/깨달음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 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괜히 짐작하지 말라.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믿되, 혹여나 그게 전혀 상황과 맞지 않아 믿기 어렵다면 직접 물어보라. 그리고 그걸 믿어라. 각자가 말하는 내용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라. 그걸 말하는게 두렵다면, 그 조차도 표현하라.
  • 타인은 내 행위를 평가할 수는 있지만 나를 평가할 수는 없다. 나는 그 상황에서 그 타이밍에 판단한 바에 따라 행동한 것이고, 그게 나를 온전히 정의할 수 없다.

별거 아닌 것 같은 거지만 이걸 믿고 행동하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걸 믿고 행동함에 따라 나를 좀먹던 불필요한 에너지가 사라졌다. 이곳에서 이렇게 행동해도 되나? 이런 불확실성이 사람의 에너지를 빨아먹는데, 그럴 것 없이 이렇게 해도 되냐고 주변에 물어보면 된다. 물어볼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내가 판단한 최적의 행동을 하면 된다. 뭔가 진짜 문제가 된다면 누군가가 저지하거나 언질을 줄 것이다. 또 언질을 받는다면 부끄러워 할 것 없이 행동을 수정하면 된다. 나는 그 상황에 최적의 행동을 하고자 노력한 것이니까. 이런 말을 해도 되는가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대처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가지 전제가 있다. 우선 내가 상황과 상대방에 대해서 선한 의도로 내 가치에 비춰 부끄럽지 않게 행동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전제가 되면 나는 떳떳하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해야 하기 때문에 솔직함이 요구된다. 이에 더불어 상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상대도 선한 의도로 접근한다고 우선적으로 믿는 것이다. 대화의 과정에서 선한 의도가 아님이 드러나면 그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거나 그에 맞춰 행동한다. 사실 이는 익숙해지기 전까지 꽤 많은 연습을 요구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대화에서 상처를 받거나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는 – 물론 상대가 일부러 상처를 주려는 경우도 있겠지만 – 나 스스로 내 안에 해소되지 않는 갈등이 있어서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되지 않고 싶은 것,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내가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괴리가 있어 내적 갈등이 있는데, 이를 누군가 어떤 형태로든 건드린 것 같다고 판단되는 순간 상처를 받거나 기분이 상한다. 사실 상대는 그걸 일부러 건드린 것도 아니고, 내가 마음에 갈등만 없었다면 크게 문제없이 넘길 수 있는 사안이었을수도 있는데 말이다.

해소되지 않는 갈등은 해결하던 상황을 받이들이던 하면 된다. 타인의 의도가 나쁜 것 같으면 속으로 기분나빠하지 말고 그런 의도냐고 물어보면 되고, 의도가 나쁜 게 아니었다면 그냥 내 생각을 답하면 된다. 답하기 싫은 거면 답하지 않으면 된다. 상대의 속을 읽으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눈치”게임이 우리를 평생 힘들게 해왔다. 눈치를 버리니까 마음의 평화와 자유가 찾아오더라. 타인의 눈치를 안보고, 타인이 좋게 이야기하면 좋은게 좋은 거지가 아니라, 정말 좋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남과 다르고 나라면 그렇지 않을텐데 하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소통하자.

내 사랑 옌스

발레수업이 갑자기 취소되었다. 선생님이 아프시다고 한다. 발레학교가 방학을 했을 타이밍에 보강을 하신다고 메세지가 왔길래 이 저녁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클라이밍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발레 수업을 찾아볼지 등등. 결국은 집에서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온라인 바수업을 유튜브로 보면서 조금 움직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스트레칭이나 좀 하려고.

홀로 삼십분 정도 바워크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하나를 재우고 내려온 옌스가 소파에 앉아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왜그러냐고 물어보니, 아름다운 아내가 앉아서 스트레칭 하는 모습이 보기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발레용 워머인 onesie 입고서 머리 질끈 묶어 똥머리를 하고 큰 헤드폰 끼고 있는 와이프가 뭐 그리 이쁠까 싶지만, 그렇게 봐주는 남편이 있어서 행복하다. 그러면 스르르 웃음이 흘러나오며 사랑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연애와 관련해서 자존감이 낮아서 항상 연애가 힘들었던 나에게 온전히 사랑받는게 어떻다는 것인지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었던 옌스. 우리가 함께한지 3개월이면 십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항상 일상 속에서 그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충만해진 감정을 나도 돌려주고 또 받고… 처음과 같은 설렘은 흐려졌지만 지금도 간혹 차려입은 옌스를 보면 마음이 떨리기도 하고, 옌스도 그렇다고 한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옌스를 만나 가정을 꾸린 것이다. 살면서 어떤 풍파가 있을지야 지금으로선 모르겠지만, 이 타국땅을 내땅으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가족의 뿌리를 여기에 잘 내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준 옌스 덕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