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

내 오래된 DSLR 카메라는 배터리의 수명으로 인해 오랫동안 장롱안에 쳐박혀 있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오래된 모델의 배터리를 취급하지 않는 탓에 어떻게 해야하나 하다가 삼성 미러리스 카메라로 갈아탔다. 그렇지만 캐논 카메라의 색감 그리고 뷰파인더로 바라보는 촬영시 감각이 그리워 아마존을 뒤져본 결과 독일 아마존에서 원하는 배터리를 받아볼 수 있었다.

사월 마지막 주 막판 사흘은 춥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으며 눈까지 내리는 최악의 날씨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오월로 넘어오면서 날씨는 급격히 변해서 오늘은 20도에 육박하는 최고의 봄날을 선사하였다.

매일 사진은 엄청 찍으면서도 정리를 하지 않는게 아쉬웠는 바, 그냥 그 날 그 날의 기록으로 공유해보려 한다.

IMG_0204IMG_0206IMG_0207IMG_0208IMG_0217IMG_0218IMG_0219IMG_0226IMG_0228IMG_0230

번아웃 탈출 단상

시험이 끝났다. 이번은 그 어느 때보다 적정 페이스를 잘 유지하면서 공부했던 시험기간이었다. 집안을 딱히 어지르는 것도 아니고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하되 엉덩이 붙잡아 앉혀두고 꾸준히 공부했던 시기. 이번 블록이 시작되고 5주간은 쉬는 시간도 별로 없이 무지막지한 리딩리스트를 클리어해가며 수업을 들었는데, 그게 역화가 되어 돌아와 부활절 휴가를 한주 앞두고 번아웃상태에 돌입했다. 집안일도 대충대충…의욕 저하 상태에 시험은 서서히 다가오고 부활절 휴가는 잘 즐길 수 있으려나 걱정하며 짐에 무거운 책들만 괜히 바리바리 싸들고 떠났었다. 비행기 회항으로 휴가 일정이 다 흐트러지니 더더욱 의욕상실…

한국에서 짧은 72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남은 2주간의 수업은 그냥 수업에 빠지지 않고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리딩은 거의 갖다 버리다시피했다. 수업은 열심히 들었지만, 그게 다.  번아웃이라는 건 모르는 듯한 옌스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고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에만 주력했다. 그런 때일수록 너무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더 바닥으로 상태가 떨어지니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상황을 인정하고 대신 뭘 하든간에 최소한만이라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은 얼마나 서핑을 해대는지. 뭔가를 하지 않는 시간이면 핸드폰에서 이것저것 읽어대곤 했다. 깊은 사고를 요하지 않는 많은 소비형 컨텐츠들을 중심으로. 내 페이스북 뉴스피드는 말그래도 뉴스 피드에 가까워서 시간 보내며 읽기가 참 좋다. 문제는 이런 컨텐츠 소비가 너무 많아진 나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혐오감을 감내하면서도 내가 당장 해야 하는 것 (리딩 등)을 미루고 더이상 읽을 것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계속 뉴스거리를 찾아 읽고있는 내가 더 어이가 없었다. 인터넷 중독을 해결하는 방법을 읽을만큼 내가 살짝 걱정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겨울의 끝자락 봄이 오기 직전 해를 갈구하는 몸이 기력을 다해 그런거였나 싶기도 하다.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감기까지 걸리고 나니 정말 몸과 마음이 다 바닥을 치더라. 날이 밝아지고, 나무에 순이 오르고, 잔디밭에는 봄꽃이 피고, 새들이 울고, 어느새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날이 밝아져 눈이 뜨이는 시기가 되자 마치 마술처럼 그간 중독자처럼 관심이 가던 뉴스거리들도 더이상 흥미롭지 않아졌으며 공부에 흥미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 꼭 이렇게 시험이 코앞에 다가와서야…

다행히 초반에 엄청 열심히 해둔 가락과 함께 수업은 빼먹지 않고 (주당 22시간) 가서 열심히 듣고 참여해둔 덕에 시험 공부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늦게 다시 시작한 공부라 더 잘해야 한다는 욕심에 남들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라 그런지, 내가 공부한 것이 충분하긴 한건지, 좋은 성적이 나올지, 그런 생각이 자꾸 머리를 채우니 괜한 조급한 마음과 스트레스가 함께 찾아오더라. 그 마음 다잡아 내려, 늦게라도 공부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고 내가 잘해야 한다는 자만심 내려놓고 한자라도 더 읽자하는 마음으로 애써 공부를 했다.

너무 읽기 싫은 마지막 순간엔 머리에 안들어와도 소리내서 조금 읽다보면 한 한페이지 읽어내려갈 때쯤 되면 긴장감이 조금 안정되면서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일상엔 가족, 학교, 덴마크어, 몇안되는 여기 친구 이게 다가 되어버렸다. 생각도 단순해졌고, 어느정도 여기 생활에 적응이 되어버려 차이점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내가 여기에 맞춰 변해버렸다는 것이겠지. 오히려 한국가면 놀라게되니, 반대로 사람들이 나를 보면 다르게 느낄 것 같다. 소비지향적 삶을 벗어던진 것도 그렇고.

쓸 거리의 빈곤이 느껴진다는 데에서 뭔가 마음이 묵직했었는데, 이젠 블로그는 좀 쉴까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덜 한다고 부담감 느낄 이유는 없지. 마지막 블록에 집중하고 여름 휴가를 기쁘게 맞이해볼까 한다. 화이팅!

해가 뜨면 밖으로 밖으로

오늘 뜬 태양이 내일에도 뜬다는 보장이 없기에 해가 뜨는 날이면 사람들은 밖으로 나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했던 오늘, 점심시간 동기들과 함께 밖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바람도 약간 불고 온도는 6도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예전에 사람들이 추운데도 불구하고 굳이 밖에 나와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을 볼 때면 참 대단하다고 평했던 나인데, 이젠 해가 뜨면 밖으로 나선다. 추위에 약간 떨면서도 밖에 앉아서 밥을 먹고야 만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여름에 건조한 30도가 덥게 느껴질때면 인도의 습한 50도를 어떻게 견뎠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음주에 느낄 한국은 이보다 따뜻할테니 몸과 마음이 모두 훈훈해질 것 같다.

 

배움에 대한 두려움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진리와 지식 중 티끌만큼도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는 바를 삶의 매 순간에 지속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마치 모르는 것처럼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배움에 있어서 두려움을 느낀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원래 어려울 수 있고 따라서 배우는 것을 한번에 다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머리로는 알지만, 술술 읽히지 않는 책을 접할 땐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유독 크게 느끼고 그 부족하다는 감정을 느끼기 싫어 아예 읽는 것을 피하기조차 한다.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집중해 대여섯시간을 내리 읽어야 다음날 수업 준비가 될만큼 많은 읽을 거리가 주어지니 여유를 갖고 읽을 새가 없다. 수업시간이 주당 24시간의 수업과 덴마크어 수업 7시간을 제하고 나면 휴식을 취할 시간따위는 없다.

문제는 빨리 읽어내려가야 할 교과서나 논문이 술술 읽히지 않는다는데 있다. 물론 수업이 끝나고 나면 그 전날 가졌던 의문의 대부분이 해소가 됨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로운 읽을 거리를 마주함에 있어서는 두려움이 있다. 최대한 의문거리를 줄이도록 깊은 사고를 하며 읽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질문 거리를 빠르게 체크하면서 읽어나가야 한다. 많은 질문거리를 쌓아내고 나면, 과연 내가 이것들을 충분히 이해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더 많이 이해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 마음속에 휘몰아친다.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매일 피부로 느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된다. 그래서 미룰 수 있는 순간까지 최대한 읽는 행위를 미룬다. 주중엔 미룰 수 없으니 그렇다지만, 주말엔 일요일 오후가 되기까지 미루고 또 미룬다. 참 어리석다. 왜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살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이게 나인가 싶다. 배움이 즐겁기도 하지만, 과연 내가 이 교육이 끝난 후 내가 원하는 바를 할 수 있을 만큼 다 흡수해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아예 중도에 안하면, “안해서 그랬어. 하면 다 할 수 있는데.”라는 변명을 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유치한 생각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전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매일, 매순간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을 하기에 뒤로 미루기를 하는 것 같다. 회피의 순간을 지속적으로 찾는 나를 알기에 나 스스로를 설득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미룬다고 달라지지 않거나 혹은 더 악화된다는 것, 조금이라도 더 하고 가는 것이 좋다는 것 등을 스스로에게 자꾸 이야기해 준다던가, 아니면 주중에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이 50시간 이상 되니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읽을려는 노력이 실패해도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이 모든 생각의 저변에는 난 사실은 이만큼을 해내야 해, 하는 자만심이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생각을 하면서 또 인간성이 덜 된 나를 질책하게 되지만, 그보다는 이 부족한 모습의 내가 나 스스로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받아들여야 할 지도 모른다. 앞으로 조금은 더 나아진 내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아날로그적 그리움

나는 메신저가 싫다. 직접 사람을 만나서 대화할 수 없다면, 아직도 난 전화나 편지, 그게 안된다면 최소한 이메일이 좋다. 편지를 쓰는 일은 아주 드물어졌지만 그 아날로그적 경험이 주는 감성을 사랑한다. 연락이 뜸해졌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싶으면서도 하기 싫어지는 이유는 바로 변한 채널 때문이다. 게으름 또는 마음의 거리를 감추기 위한 변명일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나는 정말 메신저가 싫다.

어제는 날씨가 참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 15분의 시간을 생산적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 난 밖을 내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읽기도, 라디오를 듣기도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이다. 매일 관찰하면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것들이, 그 관찰을 한달, 두달, 한철, 두철 이렇게 꾸준히 관찰하다보면 변화하는 것이 조금씩 느껴진다.

마침 열차가 Nordhavn (북항) 역으로 들어서는데 하늘과 바다가 얼마나 아름답게 만나고 있던지. Nordhavn 지역은 재개발이 한창이라 전혀 그 자체가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은색으로 시작해서 수평선으로 갈 수록 검푸른 색으로 변하는 바다의 색깔과 핑크색으로 시작해서 노란색, 하늘색, 푸른색으로 변해가는 하늘, 하늘이 어두운 건 아니지만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길거리 등이 어우러져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의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어쩌면 내 완벽주의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느낌을 정말 온전히 전하고 싶은 마음때문에. 그냥 한 줄 메세지로 “이 순간을 너와 공유하고 싶었어.”라고 전해도 되는데, 그간 자주하지 못했던 연락에 미안한 마음이 커져서 그 마음의 크기만큼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 탓에 메세지는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내 글들이 대체로 일방적인 것처럼 나는 그 마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도 있었다. 교류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 생기는 응답에 나도 재응신을 해야 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나누고 싶음과 혼자있고 싶음이 교차하는 순간, 난 다시금 연락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곤 한다.

메신저의 그 즉흥성 또는 가벼움이 싫다.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관심을 약간만 할당하는 게 싫다. 난 온전히 전하고 온전히 받고 싶은데…

내가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은 항상 그녀에게 닿아있다고 했던 것을 그녀가 언제고 알아주면 좋겠다. 세상이 아직도 충분히 느려서 사람들이 이와 같이 느린 교류를 마음의 거리와 동선에 두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시간을 내서 편지를 써야지 한 것이 어느새 달을 넘기고 있다. 펜을 들어야지. 간혹 주고받았던 메세지 만으로는 전달되지 못한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적도의 땅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을 그녀가 춥지만 맑고 아름다운 오늘 더욱 그립다.

만난지 2년째

2년전 발렌타인데인 하루 전날, 옌스와 처음 만났다. 미리 사둔 하트모양 핑크색 화이트 초콜렛을 발렌타인데이 하루 전날 반으로 두동강내어 먹고 만난 것은 그 유혹 탓도 있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때문이기도 했다. 콩엔스 뉘토어 정류장 밖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추운 날씨를 피하려고 백화점으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추운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이중 문으로 되어 있는 구조인데, 나는 문과 문 사이에서 곧 올 것으로 예상되는 옌스를 기다리며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뒤에서 “혹시… 당신이 해인…?”이라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사진으로만 봤던 옌스가 눈에 들어왔다. 만나서 반갑다는 말과 함께 허그를 하는데, 같이 허그를 하면서 느낀 그 어색함이란… 아직 덴마크식 허그 인사에 익숙해있지 않았는데다가 초면에 허그를 예상하지 못한 탓에 너무나도 어색했다.

만난지 세번째에 키스를 하며 사귀기로 이야기를 나눴던 이유로 그 날을 우리의 기념일로 정했지만, 올해는 첫 만남을 기념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의 예약이 기념일에 다 차있었기에 이날로 바꾸기로 했지만, 더 큰 의미도 있다면서 말이다.

“그 날, 우리의 첫만남을 재현해볼까?”

그렇게 해서 이날, 우리는 첫만남의 어색함을 재현해보았다. 같이 역에 도착해서 나는 역 바깥으로 해서 백화점으로 들어가고, 옌스는 역안에서 백화점으로 연결되는 통로로 들어갔다. 혹시 엉뚱하게 기억해서 다른 문으로 갔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 첫 만남과 비슷한 초조함도 들었다.

“혹시… 당신이 해인…?”

“당신이 옌스…?”

만나서 반갑다는 말과 함께 한 포옹은 더이상 어색할 수 없었지만 그날의 기억을 새롭게 되살려주기엔 충분했다. 지난 2년간의 일들을 되새기며 많은 이야기를 하고 배가 터지도록 먹은 이날의 따스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덴마크 명절 단상

덴마크에 와서 보니 가족 모임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잦다. 그리고 모였다 하면 밖에서 외식하는 거 없이 대부분 집에서 모여 식사를 하고, 점심, 저녁까지 두끼는 기본이다. 모이는 장소는 자녀의 집에 처가, 시가 식구가 함께 모이는 경우부터 처가나 시가로 때에 따라 바꿔가며 방문한다. 딱히 정해져있는 건 없다. 음식도 나눠서 해가고 뒷정리도 다 같이 한다. 중요한 차이점은 남녀 모두 일을 한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남자가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최소한 우리 시댁은 그렇다.
 
손님을 집에서 치르는 일이 잦은데, 서로 오고가며 그리 하다보니 조금씩 손님맞이가 익숙해지고 좋아진다. 뒤늦게 치우는 일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부부가 같이 정리하면서 그날의 저녁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일도 즐거움의 일부다.
 
불만은 한쪽이 일을 부담할 때 생긴다. 덴마크의 이런 남녀 평등이 찾아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의 참정권 확보가 불과 100년전이고, 1950년대를 전후로 해서야 여성의 경제참여 비중이 늘어나고 여성의 역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을 시점으로 한 변화가 지금의 사회 모습의 초석이 되었으니 꽤나 최근의 일이다.
 
우리가 덴마크에 비해 민주화나 근대에 들어선 발전의 시작이 늦기는 했으나, 그 시간의 격차가 아주 큰 것은 아니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양성간의 차별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전통의 이름으로 이러한 차별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도 한다. 
대가족간의 모임이 예전같지 않고 갈수록 핵가족 되어가는 현상이 아쉽다. 현대화가 교류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텐데. 우리 명절 문화가 변화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아주 많이 부족하다.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떼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남자들이 조금 돕는 정도가 아니라 획기적으로 모두가 함께 일하고 먹고 즐기는 기회가 될 때가 충분히 되었다. 불만이 사라지면 교류에서 찾을 수 있는 과실이 눈에 보인다.
집안일을 추가로 더 하더라도 이곳의 명절은 즐거운 날이 되었다. 서로 위해주는 가족들을 만나게 되고, 나 또한 그 일원이 된다는 것, 그리고 미래에 내 아이들에게도 더 큰 가족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피로 섞인 내 가족이 아니기에 그와 같을 수 없다하더라도 그건 당연하다. 내가 그들에게 가족과 똑같은 애정을 부어주기엔 우리가 아는 시간이 아직 짧고 아직 더 가까워질 거리가 많이 남았기에 말이다.
물리적인 거리와 언어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의 내 가족과 옌스가 내가 이곳에서 동화되는 만큼 가까워지지 못함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문제일 뿐, 양쪽의 문화를 모두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더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멀지 않은 시기에 나도 우리의 2세를 가질 수 있고, 그 2세에게 두개의 다른 문화와 가족속에서 자랄 수 있게 해주길 바래본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주말에는 항상 나와 커피데이트를 하고 싶어하는 당신. 그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몇 안되는 날, 내 빈자리가 느껴졌다고 이야기해주는 당신. 자주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를 만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고 말해주는 당신. 내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주는 당신. 어딜 가나 내 손을 꼬옥 잡고 다니는 당신. 손님이 오는 날이면 디저트를 만들어주는 당신. 나의 어린 감성을 채워주기 위해 유치한 행동을 해주는 당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음으로 상황을 보려고 최면을 걸 때면, 항상 좋은 일만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낙망하지 말라고 현실감을 일깨워주는 당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만히 안아주며 좋은 점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당신. 내가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마음안의 어려움을 눈치채 보듬어주는 당신. 나를 항상 지켜보고 있고 나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당신. 항상 겸손하고 변함이 없는 당신. 배움이 가장 재미있다며 그를 옆에서 바라보며 나도 자극받게 해주는 당신. 삶에 대한 올바르고 균형잡힌 태도를 갖고 있는 당신.

이제 당신을 만난지 몇일이면 2년이 되는구나. 내 삶은 당신을 만나서 정말 행복해. 그래서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자. 🙂

첫 학기를 무사히 잘 마치고

마지막 남은 과목의 성적도 확인했다. 12점. A를 받았다고 이렇게 기뻐한 적은 학부때에도 없었는데. 학점 인플레가 없는 곳이라 A의 의미가 달라서 그런 것인가? 그런 게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공부에 대한 절박함이 그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라 그런 것 같다.

학부때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고등학교 때 있었던 외환위기와 그에 따른 IMF 구제금융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외환위기를 야기한 최전방에 있었던 종금업계에서 근무하셨기에 많은 일들이 불거지기 전 미리부터 불길함의 전조를 건너 들을 수 있었고, 왜 그런 일이 생긴 것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공부에는 별로 필요도 없었던 매일경제신문을 매일 읽었고, 경제기사 읽는법이라는 책도 사서 읽었다.

재미있긴 했는데, 막상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함에 있어서는 절박함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 가면 뭔가 삶도 더 많이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공부할 게 생각보다 많았고, 앞으로의 취직도 걱정해야 했기에 뭐하나 게을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해야되서 했고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에 대한 갈증 자체는 없었다.

학부초반때 경제학 공부가 재미있긴 했는데, 그 재미가 학년이 올라갈 수록 덜해졌다. 공부의 방향성 설정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남들 듣는 수업 찾아 듣다보니 왜 그 공부를 하는지 잘 모르는 채로 부유했다. 이것을 갖고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경영학 이중전공을 했고, 실생활에 보다 적용하기 쉬운 경영학에 보다 큰 관심을 쏟으며 공부하고, 졸업했다.

회사생활을 한지 12년만에 모든 것을 관두고 다시 공부의 삶으로 돌아왔는데,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회사다니는 중간에 한국에서 석사를 한번 했지만, 졸업시험과 경제학에세이라는 것으로 논문을 대체한 나는 뭔가 가라로 석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학부 생활을 다시 한번 한 것 같은 느낌. 회사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한 것이라 한학기 한학기 떼우기 바빴던 시기였다. 다만 그 때 차이가 있다면 그간 나를 괴롭혔던 경제수학과 통계학과 한층 가까워졌던 시기였다는 것과, 내가 모르는 것을 이해하고 그 모르는 것을 질문으로 푸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만은 않다는 걸 회사생활을 통해 배우기도 했고, 내가 모르면 남들도 모를 수 있지 라는 생각으로 질문할 수 있는 배짱도 생겼다. 그때의 그 경험이 이번 석사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유학경험이 없었고, 영어로 하는 세미나에 앉아있으면 장시간 앉아서 집중해 듣는다는게 피곤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수업을 영어로 하고, 읽고, 시험을 보는 것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꽤나 했다. 실제로 계량경제학은 그 컨셉 자체가 어려웠고, 내가 약했던 과목이었기에 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몇주가 지나면서 조금씩 수월해졌고, 자신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출문제를 입수해서 같이 모여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제한된 시간 자원속에 나는 혼자 개념 공부에 집중하기로 했다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C. 예상치 못했던 황망한 결과였기에 받고 우울해했다. 여기는 성적 분포표가 인터넷으로 공개되는데, 그게 평균 이상임에 놀랐으며, 그걸 알고도 C라는 글자에 우울해하는 나에게도 놀랐다. 옌스는 평균 이상을 받고 우울해하는 것은 자만이라고 이야기하기에 마음을 애써 추스르긴 했지만 말이다.

이미 지난번 블록때도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에 딱히 이번 블록이라고 더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두과목 모두 A를 받았다. 계량경제학에서 받은 C에 대한 설움에 보상이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다.

오래간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새로운 지식이 머리로 들어오는 과정이 놀랍게도 재미있다. 물론 딴짓을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날도 있지만, 내가 워낙에 한결같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간의 삶의 시간에서(고등학교 이후…) 지금이 가장 자발적이면서도 꾸준히 공부의 길을 걷고 있는 때라는 것을 자신한다.

학부를 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어린 학생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같이 자원경제학 시험을 준비하는 도중 자신들과 나는 공부의 동기부여가 다르다면서, 자기들은 그냥 계속 하던 것을 하는 거라 지겨울 때도 있다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첫학기는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그 과정도 즐겼고, 좋은 동기들도 얻었으며, 결과도 좋았다. 전체 석사과정 중 다음 학기에 가장 중요한 수업들이 진행된다. 1학기에 배운 내용을 갖고 실제 학계를 나가면 쓰게 될 내용들을 공부하게 되기에 가장 큰 도전이 될 과목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다 보니 삶에서 공부 또는 배움이라는 것에서 멀어지지 않는 길을 계속 걷게 되었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석사는 안할거라고, 경제학은 더이상 안할거라고 했던 내가 석사를 두번이나 하게 될 줄은, 또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박사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그래서 절대…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하는가 보다.

한주간의 방학이 이제 거의 끝나간다. 다음주면 새학기가 또 시작이 되는구나. 긴장의 끈을 놓칠 새 없이 다시 달려야 한다는게 부담이 되긴 하지만, 설렘 또한 나를 반긴다. 다시 한번 잘 달려봐야지.

정신연령이 어려지는 것 같다.

경제학, 생태학, 덴마크어. 요즘 하는 거라곤 딱 이 세가지. 그 밖의 시간에 하는 건 옌스와 보내는 주말과 저녁, 이따금씩 있는 극히 제한된 풀에서의 사회생활.

해당 분야에 대한 사고 이외엔 별로 하지 않으니 생각이 단순해진다.

옌스와 나는 둘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라, 아니 그래서 짝이 맞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간혹 치는 장난들이 남들이 보면 황당해할 어린애들의 것이다. 그래서 그 이전의 어떤 연애때와도 달리 내 안의 어린 나를 많이 보여주게 되고, 그의 그런 모습도 보면서 지내게 된다. 우리 둘다 하는 행동이 굳이 우리 나이에 걸맞는 행동만 하는게 아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젊어서 그런지 여러모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소비의 스케일도 그들의 것을 보며 나도 괜히 검약하게 된다든지, 그들의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에 놀라면서도 영감도 받게된다.

덕분에 정신연령이 어려지는 것 같다. 좋은 의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