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베이비샤워 @ 베스터브로

38주차에 접어들었다. 예정일까지 3주도 채 남지않은 셈. 하루하루 컨디션이 다르다. 어떤 날은 앉았다 일어나거나 돌아누울 때 억소리나게 많이 아프기도 하다가, 어떤 날은 또 너무 멀쩡하기도 하고. 하나의 머리가 골반으로 내려와 고정되면서부터는 간혹 한쪽 다리 신경이 눌리는지, 걷거나 서 있다가 전기가 통하듯 찌릿하거나 저리기도 한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서 이를 보상하기 위해 허리를 뒤로 젖히려 하게 되는데, 이게 허리 통증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주의하라고 한다. 의식적으로 배에 힘을 주고 바로 서면 뭔가 앞으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듯 해 꼭 앞으로 기울어진 느낌이다. 그래도 학교 잘 다니고 있고,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잘 돌아다닌다. 오늘은 출산 전 할 거리 중 하나였던 머리자르기도 해결했다. 출산 후 3개월부터면 앞머리가 많이 빠진다고 해서 미용사가 긴 앞머리를 내줬다. 앞머리 안좋아하지만 나중에 생길 무수한 잔머리를 숨기려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많이 짧아져서 한동안 머리를 틀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엔 친구들이 베이비샤워 파티를 열어주었다. 이는 덴마크가 아니라 영미권문화지만, 이 친구들은 덴마크 친구들이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핀란드, 미국, 한국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친구들이라 베이비샤워를 하게 되었다. 영국으로 귀국한 친구의 생일파티에 모였을 때, 1월 중 베이비샤워를 열어주고 싶다며 괜찮겠냐고 물어보길래, 물론 좋다고 했다. 우리 문화의 파티는 아니라 영화로 본 게 다이고 다소 생소하긴 했지만, 친구들과 만나는 데에 새로운 핑계는 언제나 좋고 하나를 위해 파티를 열어준다는 게 참 고마웠다.

호주에서 온 에밀리네 집에서 하기로 했는데, 이사한 지 일주일도 안된 집을 정리하고 수선하느라 엄청 바빴다고 한다. 유명한 건축사무소에서 건축가로 일하는 친구인데 주로 특급호텔과 레스토랑 건축+인테리어 디자인을 한다. 평소에도 미적 센스가 탁월한데, 감각도 감각이고 여기저기 이쁘고 세련된 것을 많이 보는 경험이 더해져 그녀가 지내는 집마다 참 디자이너답게 센스있게 꾸민다. 주중엔 일하느라 정신없었는데, 가구 조립에 짐 풀고, 여기저기 수선하느라 얼마나 바빴을 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저것 먹을거리며 케이크와 쿠키, 음료 등 어찌나 다양하게 준비했던지 깜짝 놀랐다. 그냥 차에 케이크나 쿠키 같은 거 먹을 거라는 기대에 갔는데 너무 융숭한 준비에 정말 놀랐다. 주말 오전 11시 반까지 준비하느라 얼마나 정신없었을런지… 집안 장식까지 말이다. 모든 게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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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완전 감격! ㅠㅠ

호스트인 에밀리가 따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초대하라고 해서 미국에서 온 친구와 한국에서 온 친구는 내가 따로 초대했다. 우리 문화가 아닌 영미권 문화 파티라 다른 한국 친구들을 초대하기엔 약간 애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한 한국 친구는 고등학교부터 오랜기간을 미국에서 지내서 베이비샤워라는 컨셉에 익숙할 것 같았고, 다른 친구들과도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아서 초대했다. 약혼자네 가족 방문차 영국에 갔을 때 영국 근위병이 그려진 옷을 샀다며 손수 뜬 아기 양말과 함께 선물해주었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그 작은 양말 두개에 들어간 마음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다.

베이비샤워를 열어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뭔가 선물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적여봤다. 역시나 Thank you gift 같은 걸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되어, 뭐가 좋을 지 고민을 했다. 베이비 샤워라는게 아기에게 선물로 샤워를 시켜준다는 의미이니 뭔가 샤워와 연관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들의 스윗한 마음을 고맙게 여기며 친구들의 샤워를 스윗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의미로 달콤한 향이 나는 샤워오일을 준비했는데, 내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남아공에서 온 폴로소는 감정이 풍부한 예술적인 친구인데, 그 이야기에 괜히 눈물이 난다며 눈가를 훔쳤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다보니, 거의 다섯시간을 앉아서 있었던 것 같다. 임신전보다 7킬로나 불어 제법 동글동글해진 얼굴에 웃음이 떠날 새가 없었다. 선물을 열 때는 얼마나 두근두근대던지. 🙂

이렇게 행복하고 기억에 남을 시간을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모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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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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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온 마리아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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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푸드와 음료, 케이크와 빵 등 다양한 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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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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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고 쓰기엔 작지만, 하나에게는 완벽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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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정말 고마워!!!

식생활의 간소화

임신하고 체중이 총 7킬로 쪘다. 물론 아직 마지막 4주가 남았으니 좀 더 늘겠지만 평균보다는 덜 찐 편이다. 운동을 엄청나게 한 것도 아니고 군것질 같은 간식을 안한 것도 아닌데 크게 체중이 늘지 않은 것은 한식을 줄인데 있지 않나 싶다. 해외에서 한식 꼬박꼬박 챙겨먹는다는 것은 엥겔계수를 팍팍 늘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외식이 비싼 나라다보니 학교에서 사먹는 구내식당 점심 외에는 최대한 집에서 먹고자 하는데, 해둔 음식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는 거 안좋아하는데다가 음식조리에 시간을 너무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만나다보니, 여기 사람들처럼 먹기 시작하게 되었다.

여기에도 건강하지 않고 살이 많이 찌기 좋은 메뉴도 많지만, 대체로 보면 건강하게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학교에 도시락 싸오는 학생도 많은데 그들의 도시락은 정말 간소한 경우가 많다. 통곡물이 낱알로 들어있는 호밀빵과 얇게 슬라이스된 햄과 치즈, 잎채소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거나 호밀빵과 아보카도 한개를 갖고 와 아보카도를 빵에 발라먹기도 하고, 쿠스쿠스나 키노아, 렌틸콩 등을 삶아서 피망, 브로콜리, 루꼴라, 페스토 등을 섞어 오기도 한다. 간식으로는 당근, 오이, 토마토, 사과, 바나나 등을 주로 싸와서 수업 중간중간 집어먹는다.

오전수업만 있고 집에 오는 길, 귀찮아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을까 하다가 마음을 바로잡고 수퍼마켓에 들러 장을 봐왔다. 얼린 자연산 연어와 방울토마토, 오이, 곡물빵을 사왔는데, 연어를 물에 넣어 삶고 방울토마토, 오이는 그냥 내고, 빵을 곁들였다. 소스로는 집에 있던 디죵머스터드 소스와 그린 페스토를 곁들이고, 호두 몇 알과 사과를 먹었다. 우선 조리 자체가 많이 되지 않고 간이 세지 않아 입맛이 막 더 당겨서 과식하게 되는 일이 없다. 그렇다고 맛이 없는게 아니다. 신선한 재료를 그때그때 준비해서 먹으니까 맛도 좋다. 예전엔 여기 직원들이나 학생들 먹는 거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비슷비슷한 것만 맨날 먹지?’ 라면서 궁금해했는데, 여기 물가나 여러가지를 보다보니 왜 그렇게 먹는지도 알게되고 그렇게 먹다보니 한국식을 간혹 먹으면서 느끼게 되는 과도한 포만감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할 정도가 되었다.

한식 정말 좋아하는데, 우리가 지금 먹듯이 전통적으로 그렇게 간소하게 먹지 않고 간이 세고 양이 많은 외식을 많이 하게 되다보니 자꾸 입맛이 돌아 더 먹고 싶어지고, 먹다보니 위도 늘어나 더 먹게 되고 했던 악순환을 자주 반복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한국에선 다이어트가 엄청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옌스의 말마따나 매일 자주 먹고 기름지게 먹으면 속도 편하지 않고, 재료의 원 맛도 느끼기 힘들며,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감사함도 줄어든다. 실제 이렇게 먹다가 이런 저런 요리를 해서 먹으면 훨씬 더 기쁘게 먹을 수 있다. (간식으로 바나나 한개와 호두 몇알을 집어먹었는데, 두가지의 조합은 정말 환상적이다. 둘을 섞어 얼렸다가 먹으면 호두바나나 아이스크림이 되려나? 예전엔 간식으로 먹으면 과자나 뭐 그런거 먹었었는데… 참 많이 바뀌었다.)

아무튼 이렇게 간소하게 재료 원래맛 중심으로 많이 먹다보니 크게 다이어트 안해도 살 찌거나 그런 문제로 고민하게 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산파나 임산부를 위한 정부 발간 가이드라인에도 하루 권장 추가 섭취량이 초기 100킬로칼로리, 중기 이후 300킬로칼로리에 불과하고, 그 이상 입맛 당긴다고 먹는 건 아이나 산모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누누히 강조한다. 그러면서 먹으라고 되어 있는게, 당근, 오이, 토마토, 견과류 등인데, 아마 입맛이 어느정도 바뀌지 않았던 상태로 임신했으면 당기는 한식에 체중 조절하기도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배가 터질 것 같아서 많이 못먹을 거 같긴 하지만,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넣어서 배에 살이 틀때까지 먹지 않았을까?)

잘 차려 먹는 건 손님 왔을 때나 아주 간만에 당길 때나 해먹으면 충분한 거 같다. 식탐이나 식도락에 대한 상시적 욕구가 없는 남편과 사니 이런 식생활이 더욱 빨리 정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래서 부부가 닮는다고 하는가보다.

 

2016년 결산

2016년이 하루밤 사이에 작년으로 바뀌어버렸다. 인간이 임의로 나눈 시간의 단위일 뿐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매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이다. 작년을 결산해보자면 임신이라는 이벤트 외엔 큰 일이 없었던 한 해였다. 2015년엔 결혼, 2017년엔 출산이란 정말 큰 이벤트들이 있지만, 2016년은 2017년의 출산으로 향하는 중간과정 같은 기분이라 내 몸의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을지언정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올해 한해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좋고 안좋았던 일을 결산해 새로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간 그렇게 새해를 맞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가족은 모르겠지만, 우리집에서는 새해는 지나가는 해를 정리하고 오는 해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았었기 때문이다.

  • 학업
    • 대학원
      • 상반기 정말 열심히 하고 하반기 설렁설렁하게 했다. 아무래도 어려운 과목일 수록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거 같다. 이해가 안되면 더 파고 들게 되고, 좀 이해가 되면 설렁설렁하게 되는 것은 내 전형적 행동양태이다. 장점을 개발하고 단점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는 말도 있는데, 그러면 어려운 것만 하면서 골머리를 섞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편한 길을 택하려 할 수록 삶에 대한 회의가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꾸준한 지적 도전이 필요하다.
      •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논문 쓰기 시작할건데, 그 전까지 데이터수집 및 관련 이론 공부를 육아와 병행해야 한다. 확 나태해짐 없이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도 필요하다. 계량경제학 리프레시가 필요한데, 애가 태어나서 초반에 모유 수유 등으로 꼼짝없이 묶여있을 때 유튜브 강의 등을 보면서 수동적인 방식으로나마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림질 같은 큰 두뇌회전이 필요없는 노동을 할 때 주로 쓰는 방식인데, 모유 수유 및 애 재우는 타이밍에 유용할 것 같다.
    • 덴마크어
      • 학원을 그만두면서부터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을 늘리게 되었다. 듣기와 말하기가 비약적으로 많이 늘기는 했지만, 내가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실수를 체계적으로 고치는 일은 하지 않아서 이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 시간을 정해서 문법 공부를 다시 하고, 작문을 하고 옌스에게 교정을 받으면서 정교함을 다져야겠다. 신문, 텔레비전 등의 노출은 꾸준히 늘리고, 어휘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외우도록 해야겠다.
    • 한국어
      • 옌스의 한국어 학습을 돕는 일이 포함된다. 하나에게 말할 때 찬찬히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어휘를 자주 적어줘야겠다. 옌스의 첫번째 책과 리스트 등을 조합해 이야기를 써주기로 했는데, 이 또한 꾸준히 해줘야겠다. 내 일에 우선순위로 밀려 해준다고 하고 올 해는 아직 이 태스크를 완수하지 못했다. 아이, 미안해라.
  • 가정
    • 청소
      • 집안 관리를 좀 더 잘 해야겠다. 하나가 이것 저것 물고 빨 거라 어른들 살던 정도로 청소해갖고는 충분하지가 않을 것 같다. 청소의 빈도를 늘려야겠다. 애 빨레에 애보기까지 정신이 없긴 하겠지만, 좀 정신이 나게 해놓고 살아야지, 안그렇고서는 진짜 삶이 혼미해질 것 같다.
    • 파트너십
      • 옌스와 지금까지 정말 잘 해왔지만, 앞으로 육아와 집안살림, 공부, 회사일, 취미생활, 체력단련 등 두 명의 개인 생활을 잘 섞어서 하려다보면 여러가지 이해가 충돌되는 일도 생길 것이고, 조율할 일도 많을 것이다. 서로 어떻게 해야할 지 미리 상의도 해보긴 했지만, 애가 생기고 맞닥뜨리고 보면 이상과 현실이 괴리되어 다시 플랜을 짜야한다 싶은 때도 많을텐데, 이런 어려움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은 표현하는 만큼 는다는데 (연구결과로도 그렇단다.) 그런 어려운 순간에도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면서 앞으로 보낼 시간들을 더 행복하게 채워갈 수 있길 바란다.

다른 것들도 있지만 이것들이 가장 메인이다. 가족과 친지, 친구들과의 관계 등도 있고 하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면 될 일인 듯 하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새로운 가족이 태어날 격변의 2017년을 맞이하여 좀 더 체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덴마크 신년맞이 (Godt Nytår!)

빨래가 너무 많다. 겨울이라 빨래가 잘 마르지도 않는데, 우리와 하나의 침구류와 옷, 소재별, 색깔별로 빨려니 정신이 없다. 높은 온도에 빠는 것들은 세탁기에서만도 3시간이나 걸리는 데다가, 손빨래한 모직 소재 옷들은 좀 평평하게 펴야해서 빨래대에서 차지하는 공간도 많은지라 침구류를 다 다림질해서 말렸더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어버렸네.

그래도 이제 빨 것도 거의 다 빨았고 해서 일주일간의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 출산 준비를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주부터는 기말고사 준비와 그룹 프로젝트를 위해 데이터 수집과 R 프로그래밍, 보고서 작성 등으로 정신이 없을 터인지라 출산준비는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그 와중에 옌스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마사지 상품권을 이용해보려 한다. 시험 끝나고 하면 너무 막바지라 예약해놨다가 취소 불가기간에 취소하면서 돈을 날릴 가능성도 있어서 다음주에 수업 없는 날 가보는 것으로 예약했다. 패키지 중 임산부 마사지 프로그램도 있는데, 옌스가 직장 동료 및 베프의 공통된 추천을 받은 코펜하겐에서 제일 좋다는 마사지샵이란다. 70분 정도야 시간을 못빼랴. 학교 후배가 출장와서 딱 한번 로비만 들어가본 호텔에 위치해 있다. 이번엔 그냥 기웃거리는 게 아니라 이용을 해보겠다 싶어서 기대를 살짝 해본다. 스파라고는 동남아 여행가서나 해본 터라. (솔직히 동남아 리조트 스파가 더 내 취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첫 세달 정도만 쓸 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새해가 시작되면 새해 목표와 함께 다이어리를 사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사왔다. 옌스가 읽을까봐 한국어로 쓰는데, 뭐하냐고 물어봐서 신년 목표 새운다 하니까, 목표가 뭐냐고 물어본다. 못지킬까봐 이야기해주지 못하겠다 하니까 그게 무슨 목표냐며 이야기하란다. 흑… 틀린 바가 없어서 이야기해줬다. 그래… 역시 목표는 공유해야 그나마 강제력이 생기지…

이번 연말 연시는 육체노동으로 점철된 시간이다. 옌스네 카약클럽 섬머하우스에서 하는 신년파티는 안가기로 해서 그나마 여유가 있긴 하지만, 우리끼리 만찬을 하기로 해서 고기 굽고 샐러드 만드는 거는 해야 할 것 같다. 거기 갈려면 음식도 해야지, 짐도 싸야지, 차도 빌려야지, 밤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하고, 다음 날 정리 및 청소까지 하고 돌아와서 차 반납하고 짐도 풀 생각하면… 안그래도 짧은 겨울방학에 출산준비까지 겹쳐 쓰러질 것 같았다. 옌스가 회사에서 샴페인 한 병 받아왔는데, 신년 만찬 하면서 그거 한 잔 마실 기회는 주시겠다고 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굽신거리며 받아야 할 것 같다. 한 잔을 모두 허할 거 같지도 않고, 나도 뭐 한 잔을 다 마실 마음까지는 없다. 출산하고 나면 꼭 한잔 마실 거라고, 좋은 것으로 한 병 준비해오라 했으니 병원에서 한 잔 쭉 들이키겠다는 마음으로 그 전까지는 그냥 맛 보는 것으로 감사해하리라.

덴마크 신년맞이는 아주 정형화되어있다. 6시에 (불필요하게 긴장한) 여왕의 송구영신 메세지를 들으며 샴페인을 마시고 (거의 전 국민이 이 송구영신 메세지를 듣는다. 공화주의자들의 군주 메세지에 대한 신봉이라니, 놀랍다.), 저녁 식사를 준비해 11시 정도까지 먹고 마시고, 신년맞이때 하는 게임 등으로 하며 놀다가, 식탁을 대충 정리하고서 TV를 튼다. 국영방송에서 중계하는 클래식 합창 공연 등을 보다가 12시가 몇 초 안남으면 테이블이나 의자 등 높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코펜하겐 시청의 시계의 초침이 12시를 가로 지르는 순간 바닥으로 뛰어내린다. 그러면 크란서케이어(Kransekage) 라는 마지판이 듬뿍 들어간 과자 같은 케이크를 먹고, 폭죽을 터뜨리러 밖으로 나선다. 폭죽놀이가 끝나면 들어와서 커피를 마시거나 와인을 더 마시면서 최소 2시까지는 놀다가 자러 들어간다. 사실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 젊은 사람들은 집에 음악도 틀어놓고 춤도 추고 하면서 새벽 다섯시까지도 논다. 물론 정말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처럼 별장이나 집에서 파티를 하는게 아니라 밖으로 나서서 클럽 등에서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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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진지하게 여왕의 2015년 맞이 송구영신 메세지를 듣고 있는 와중, 우리는 사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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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맞이 만찬 준비중. 우리는 준비가 끝났다. 집에서 만두피까지 손수 빚어 만든 군만두를 곁들인 매콤 새콤 간장소스 샐러드. 이거 빚느라 여기 가기 전에 막노동으로 고생했다. 가서는 편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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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맞이한 2016년은 내일 하루가 남았다. 이 날은 실컷 마셨더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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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코스 식사가 끝나고 담소를 나누는 중. 2015년 부활절 한국 방문시 사간 셀피스틱으로 모두를 담을 수 있었다. 다들 셀피스틱을 부담스러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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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중에도 중간중간 폭죽에 불을 붙이고 게임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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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란서케이어 준비가 끝났다. 12시 타종 전에 폭죽에 불을 붙이면 all set!  케이크 옆에 놓인 은박캔디모양은 포장지를 양쪽에서 당기면 그 안에 왕관종이가 나온 사람이 왕이 되는 왕게임 도구다. 왕이라고 특별히 대접하는 건 없던데, 아마 원래는 뭔가 하는 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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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렇게 왕은 왕관을 쓴다. 2015년 맞이 파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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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이 시작돼서 바닐려크란서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다들 의자위로 올라섰다. 2016년이 오기 몇 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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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이 밝았다. 모두 2015년(의자 위)에서 뛰어내려 2016년(바닥)에 안착. 덴마크 국가를 부르고 있다. 물론 우린 안부르고 사진 찍고 있지만… 자막이 나와서 외국인도 따라 부를 수는 있다. 멜로디를 모르는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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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일엔 안개가 자욱했다. 춥기도 추웠는데, 아무튼 우리는 큰 폭죽은 없어서 작은 폭죽으로 소소히 즐겼다.

아무튼 이 날은 정말 외식업계에는 대목인게, 밖에서 먹는 것 뿐 아니라 반 조리 된 레스토랑 음식을 1인당 7~8만원 선으로 맞춰 포장 판매를 하는데 이 시장이 엄청 크단다. 카약클럽에서도 한번 그렇게 했었는데, 조금만 더 조리하고 나면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처럼 프레젠테이션까지 그럴 듯하게 해서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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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맞이 Cofoco에서 주문한 세트의 디저트. 우리 커플이 디저트를 담당했었다.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비쥬얼이다.

한국에 비하면 정말 소비주의가 팽배해있지 않은 나라라 해도, 크리스마스나 신년 같은 같은 명절이 갈수록 상업화되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늘자 일간지 베얼링스커엔 이런 소비주의와 상업화 세태를 따르기 싫은 한 기자가 자기의 이러한 태도를 변비에 비유하고, 상업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뱃가죽이 늘어나는 지, 자기가 구토직전 한계에 도달하는 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먹어 뱃속에서 꾸룩꾸룩 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비유하며 재미있게 비꼰 컬럼이 실렸다.

뭐 이 날을 어떻게 보내든 간에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새해는 친구들과 보내는 덴마크의 연말연시는 조용하지는 않다. 많이 먹고 마시고 가장 춥고 어두운 시기를 hyggeligt하게 보내는 것, 어떤 시대가 되든 이런 모습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매년 비는 뻔한 소원이긴 하지만, 새해엔 모든 이에게 더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길!!! 2017년, 곧 만나자!

 

덴마크에서 네번째 연말을 맞이하며

12월 22일. 동지가 지났다. 이제 해는 다시 길어질 것이고, 추위는 조금 더 절정을 향해 달리다 눈치채지 못하는 새 봄을 향해 달리겠지. 하나는 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1월 말 경에 태어날테니 이번 겨울은 뭔가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새에 지나가지 않을까 한다.

올 겨울 100년 이래 가장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하더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예보를 벗어나 유래없이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바람도 그다지 세차지 않고. 이러면 내년엔 병충해가 많이 돌텐데…

친구들을 불러 한국 음식을 차려 송년회를 했는데, 한 친구가 포인세티아를 사왔다. 살까말까하다 사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나는 포인세티아. 들어갈만한 적당한 화분이 없어서 검정플라스틱 화분을 감싸고 있던 녹색 포장지를 적당히 구겨 집에 있던 검정 리본으로 둘렀다. 밑에 접시를 받혀 창가에 두니 완연한 크리스마스 느낌이다. 선인장류가 아니면 1년 내에 식물이 죽어나가는 우리집에서 얼마나 오래 살 지 한번 두고 볼 일이다. 죽어나가는 식물의 수가 늘어가는 만큼 경험의 축적과 함께 평균 생존기간도 늘어나니, 혹시 또 아나? 이 포인세티아가 우리와 한참을 함께할런지.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도 끝났고, 26일에 있을 2차 크리스마스 오찬에 선보일 한식 메뉴도 결정했다. 시아버지의 자매들과 그 아래 직계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큰 모임이라 포트럭 스타일로 각자 메뉴를 하나씩 준비해오는데, 덴마크 전통 크리스마스 오찬 메뉴가 있어서 거기에 적당히 어울리는 음식으로 가져가야 한다.

작년엔 김밥을 해갖는데 인기가 매우 좋았다. 애들도 좋아했고. 그러나 시간상 점심이고, 차로 한시간 반 정도 가야 하는 길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 계란지단 부치고 오이를 소금에 절이고, 당근과 시금치, 고기 볶아 갓지은 밥에 마는 게 너무 힘들었다. 시간에 쫓겨 막판엔 집을 폭탄맞은 듯한 상태로 놔두고 갔는데, 집에 돌아와서 집안 가득한 참기름 냄새를 맡으니 피로가 어찌나 몰려오던지. 올해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새우전을 부치려고 한다. 전날 부쳐서 당일에 현장에서 데워 내면 되니까.

옌스네 가족 및 옌스 시누이네 가족과 함께 할 24일 메인 크리스마스 만찬은 옌스 시누이네서 하는데, 내가 합류한 이후에도 우리 집은 초콜릿과 디저트와인 등 돈으로 떼울 수 있는 쉬운 것을 맡고 있다. 명절에 돈으로 떼우는 게 쉽다는 건 해보니 알겠다. (머리로도 알긴 했지만, 해보니 정말 실감난다.) 그래도 한국식 생각해보면 정말 간단한 명절 준비다. 각각 집에서 큰 준비는 다 해와서 현장에서 데우는 식으로 해서 음식을 내니까. 올해는 원래 더 먼 Faxe Ladeplads로 가야했는데, 시고모님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작년과 같이 로스킬레로 간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중 침대 조립하고, 유모차 조립/해체법에 익숙해지도록 연습 몇 번 해보고, 하나 양말 몇 개 사고, 아기 용품 빨래만 하면 하나를 맞이할 준비는 거의 다 끝난 것 같다. 어제 친구와 함께 아이들 옷과 용품을 중고로 내놓는 중고 상점에 다녀왔다. 장소를 대여하는 업체가 운영을 담당하고, 팔 물건이 있는 사람들은 매대를 대여해 제품에 태그를 붙여 비치하는 영구적인 벼룩시장이다. 여기서 옷가지 몇 개와 모유수유 책 한권을 사왔는데 참 저렴하더라. 첫 한 해에 입을 옷은 사이즈가 다양하게 있는 편이어서 앞으로 1년은 여기에 많이 의존할 예정이다. 굳이 하나에게 새 옷을 입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애들은 워낙 빨리 자라니 새 것을 필요한 양만큼 사기엔 낭비가 크니까.

내가 이 곳에 산지도 어느새 3년 반이 다 되어간다. 정말 별로 오래 안된 것 같은데 벌써 3년 반이라니… 다행인 건 이 나라와 나의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않았으니 완전한 정착을 한 건 아니지만, 그냥 일상생활 속에서는 이방인 스트레스를 거의 졸업한 것 같다. 여기 신문을 읽으면서 한국 신문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고 여기 물정에 더 밝아지게 된다. 물론 한국의 정치기사는 워낙 요즘 정치가 신묘하고 황당하게 돌아가다보니 관심을 끌 수가 없지만… 그 밖에 일에서는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식사하는 방식이나 소소한 일상의 행동도 여기식으로 많이 바뀌었다. 임신이라는 경험과 출산 모두 이 곳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교육받고, 몸조리도 여기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게 될테니.

한국에서 살면서 항상 튀어서 지적받고 했던 내가 여기에선 크게 유별나지 않은 사람이 되서 그런가. 이국의 땅에 있지만 이곳에 살면서 내가 이방인이라고 느껴지던 순간들은 한국에서 비슷하게 느끼던 순간들보다 적으면 적었지 더 많지 않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성인이 20대 후반까지 자란 사람이라 절대 이들과 동질성을 느끼는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야 하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 사회를 더 이해하게 되고 녹아 들어가면서 한국인과 덴마크인의 모습이 뒤섞인 사람이 되겠지.

옌스가 스케이트를 타러 아이스링크에 간 사이 크리스마스 캐롤 피아노곡을 들으며 혼자 글을 쓰고 있으니 왠지 감수성이 넘쳐흘른다. 열흘에 불과한 짧은 연말연시 연휴, 프로젝트도 하고 출산준비도 하며 바쁘게 달려갈 생각을 하니 오늘의 평화를 더욱 잘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이 깊어가니 쿠키를 곁들여 디카페인 커피 한 잔 하며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 요즘 간혹 덴마크의 hygge가 소개되곤 하는데, 정말 별 것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없어도 되고, 꼭 촛불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 혼자 온기가 느껴지는 포근한 시간을 보내면 그걸로 충분하다. Jeg skal hygge mig herhjemme alene lige nu!

임신 후기, 병원 방문 단상

임신 중기 이후, 굳이 심박이 느껴지는 곳에 손가락을 올리지 않아도 심박수를 셀 수 있게 되었다. 심박의 강도가 세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간혹 그 심장의 박동이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호흡이 불편해지고 오심이 날 때가 있다. 심박수는 대충 80과 90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으니 특별히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난번 방문 이후로 의사가 좀 이상하다 싶은 건 오라고 했기에 예약을 잡고 병원을 방문했다.

심박이 불규칙한 건 아니고 규칙적인데 불편한 정도로, 어렸을 때 별다른 심장 질환이 없었다면, 지금 검사한 정도로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잠시 누워보라고 할 때 한 다리를 먼저 얹고 다른 다리를 끓어올리는데, 사흘 전부터 다시 시작된 치골통에 약간 신음을 하며 미간을 찌푸리니까 의사가 그렇게 움직이면 안된다고 한다. 양 다리를 벌렸다가 오므리는 활동은 치골통이 있는 경우 이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니 반드시 두 다리를 모아서 동시에 움직이라고 한다. 또한 잘 때 다리 사이에 베게를 끼우고 자라길래, 그건 이미 하고 있다고 답했다.

출산 후 몇 주 안에 없어지는 통증인데, 지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정 힘들면 파노딜같은 진통제를 먹으란다. 다 그렇게 한다고. 그런데 이런 치골통이 임신후기에 느껴지는 건 서서히 아이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골반뼈가 양쪽으로 벌어지는 때문이라며 몸이 출산에 준비하는 신호이니 좋은 거라며 위로해준다. 오늘 치골과 그 반대편 허리아래편이 아프던데, 이제 서서히 준비하는 거로구나 싶으니 빨리 이런저런 출산 준비를 마무리해야겠다 싶었다.

다음 주말 크리스마스엔 시부모님이 오셔서 우리 가구 움직이고 하는 거 도와주시겠단다. 난 이제 무거운 거 들면 조산할 수 있어서 안된다며. 칠순이 넘으신 시아버지가 괜히 힘쓰시다가 아파지시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더라. 차라리 옌스 친구를 부르는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한데, 도와주신다니까 우선 알겠다고 말씀은 드렸다.

배가 급격히 나오고 있다. 물론 이틀간 연이은 크리스마스 디너에 변비가 겹쳐 배가 더 나온 것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도 이미 배가 좀 급격히 나왔었다. 11월 하순 이후로 체중은 더이상 안늘고 있는 것 같다. 거의 한달 정도 되었는데. 아무래도 조금만 많이 먹어도 배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냥 임신 전과 다를 것 없이 먹게되는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그 기간중 애는 1킬로는 늘었을텐데, 내 몸에서 1킬로 정도가 빠진 모양이다.

나와 예정일이 같나, 하루차이인가 하는 지인은 양수가 부족해서 37주에 유도분만이든 뭐든 해서 애를 낳을 거 같다고 한다. 여기에선 딱히 양수를 검사하는 건 아닌데, 촉진을 통해서 자궁 크기와 아기 크기를 판단하니까, 그 두 개가 정상이면 양수도 정상이라고 판단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이제 이번주 수요일이면 모유수유 교육이 있다. 그게 끝나면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3주의 부모준비교실이 끝나는데, 사실 안가도 출산하고 수유하면서 배우게 되겠지만, 미리 알아두면 우리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를 알 수 있게 되서 조금 더 준비하기 수월해지는 것 같다. 또 책에 써있지 않지만 우리가 궁금해하는 병원의 프랙티스에 대해서는 따로 질문을 통해 배울 수 있고, 다른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질의응답을 통해 들으면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고민해 볼 수 있어서도 좋다.

이제 6주도 채 안남았는데, 크리스마스 명절에, 프로젝트 제출 및 시험도 있고 하니 정신없이 지내다가 덜렁 애를 낳을 것 같다. 시간이 어찌나 쏜살같이 흘러가는지. 오늘 병원에서 내 진료차례를 기다리며 여러 꼬마 아기들을 많이 봤는데, 저게 내 미래구나 싶어 새삼 두근거렸다. 흠흠…

부도 난 와인바

결혼식 선물로 받은 상품권 중 와인바 상품권이 있었다. 상품권은 빨리빨리 써야된다는 것을 알게된 오늘. 몇 달 전만 해도 잘 운영하고 있는, 품평이 좋은 와인바였는데. 이 상품권을 선물로 준 친구를 초대해 와인바에 가려고 주소와 상호 확인하려고 방금 인터넷을 뒤지니 부도가 났단다. 뭔지는 몰라도 수지타산이 안맞게 했던 모양이다. 좋은 와인을 과하게 저렴한 가격에 냈든 어떻게 했든간에 부도가 났다니 안타깝다. 미슐랭 별점을 받은 식당 상품권이 있는데, 이건 하나 태어나기전에 얼른 가야겠다. 무슨 이유든 문 닫으면 못쓰니까. 흠흠흠…

다음주엔 그냥 좋은 와인바 가서 마시는 것으로… Ved Stranden 10으로 결정. 임신한 내가 술을 마시면 한국에선 난리가 나겠으나, 일주일에 와인 한잔은 괜찮다는 덴마크 보건당국의 임산부 건강수칙에 따라 옌스의 보수주의를 더해 나는 샴페인 한 잔 시켜 옌스가 반을 마시는 것으로 했다. Ved Stranden 10는 웬만해서는 실패하지 않는 셀렉션과 좋은 분위기, 유쾌한 서비스 등으로 좋아하는 곳이다. 위치도 Holmens Kanal 옆으로 Nørreport 역에서 걸어가면 되서 편하다. Nørrebro에 있는 Vinhanen이라는 곳을 더 좋아하지만 거긴 우리가 만나기로 한 월요일에 문을 안연다. 늦게까지 여는 곳이라 주 2회 휴무를 하는 듯. Ved Stranden 10는 일요일 빼고는 다 여는데, 10시까지만 문을 연다. 바가 주 목적이라기보다는 바와 와인샵 기능이 동시에 중요해서 그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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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hanen에서. 부활절 직전에 친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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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d Stranden에서 친구들과의 모임. 이때는 입덧으로 주스만 들이켰는데… 사실 입덧이라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약하던 것이 이 뒤로 며칠 지나 심각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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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로 Ved Stranden 10. 무슨 패션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와인바와 바는 거의 다 이 친구들이랑만 갔었구나.

옌스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인 밥 딜런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또 오는 모양이다. 어제 자기전 침대에 누워 신문을 보다가 광고를 발견했다. 문화면을 꼼꼼히 챙겨보는 건 그래서이려나.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들 안놓치려고. 4월 초에 오는 일정이다. 내일 회사에 가 있는 중 예매가 시작된다며 좋은 자리를 예매하고 싶은 그가 시무룩해졌다. 그러다가, “너 내일 학교 안가지?” 라며 반색을 한다. 두 장 예매할 거 맞냐고 물어봤는데, 물어보나마나다. 당연히 혼자 가는 건 싫으니 친구를 데리고 가겠지. 시부모님을 불러 애를 맡기고 가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가서 조느니 (꼭 공연 전 마시는 와인 한잔 때문에 난 어떤 공연을 가도 존다. 지난번엔 엄청 시끄러운 락 공연 가서도 졸았다.) 옌스가 함께 열광할 친구와 가서 신나게 즐기고 오는게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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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바비! 웰컴 투 덴마크!

이 공연은 와인바처럼 부도가 안나겠지. 아니, 혹여나 공연 기획에 뭔가 차질이 생겨도 돈은 돌려줄테니. 쩝. 와인바 부도는 매우매우 아쉽지만 (따라서 선물이 공중분해…) 친구를 만난다는 것과 맛난 샴페인 반 잔 마실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밤이나 삶아먹어야겠다. 금요일엔 대학원 친구들 두커플 불러서 한국메뉴로 크리스마스 디너를 하기로 했는데 그걸 생각하며 남은 며칠 잘 보내봐야겠다. 흠흠… 뭘 먹여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나려나…

이웃집과의 소소한 기싸움

우리 아랫집의 맞은편에는 어린 아이가 둘인 싱글맘이 산다. 삶에 항상 찌든 듯한 표정을 보면 다소 안타깝기도 해서 가만히 있었지만, 거의 이사온 지 1년이 다되가는 지금까지 여러모로 참은 것들이 쌓여서 작은 대응을 시작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애를 자꾸만 공용 복도로 내보내고 자기네 집 문은 닫아 잠근다. (여기는 닫으면 잠기는 구조) 둘째 애가 이제 만 세살 조금 안된 것 같은데 복도에서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곤 한다. 한두살 차이나 보이는 오빠가 조용히 하라고 하는데, 그냥 애가 소리 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처음엔 우는 소리인가 했더니 신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우리 라인에 이 집만 이런 애가 있었던 게 아닌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째야 할 지 잘 모르겠더라. 영국 친구들은 애랑 엄마를 같이 마주치면 “네가 그 목소리가 큰 애구나!” 또는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인 줄 몰랐구나!”라고 살짝 비꽈주라는데, 애만 밖에 내어두니 그럴 기회가 잘 없었다.

한달 정도 전부터는 더이상 놔둘 수가 없었다. 출근하고 나가버리는 다른 집 사람들은 괜찮다쳐도 학교 안가고 집에서 공부하는 날들이 있는 나에겐 오전 9시~10시 경에 신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아이를 더이상 참기에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는 아이네 집 앞으로 내려가 여기는 너네 집이 아니라 공용공간이고 소리를 질러서는 안된다고 차분히 타일렀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왜?”를 반복하는 아이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집 안에서 애 엄마가 불쑥 나오면서 애를 집 안으로 들이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애를 집안에서 소리지르게 놔둘 인내심은 부족했던 엄마지만, 남에게 애가 잔소리 듣는 일은 싫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애를 복도에 풀어두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고, 어디 나가기 전에 잠깐 애 먼저 나가게 해서 소리지르는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옌스에게 하니, 사람들이 애들을 갈 수록 버릇없게 키우면서도 남들이 자기 애에게 한소리 하는 건 다들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한다. 하나가 나중에 어디 가서 버릇없이 행동해서 남에게 피해를 준 경우, 상식적인 선에서 남이 타이르는 것에 대해선 받아들일 거라면서 이 부분을 잘 못하는 부모가 늘어나는 게 아쉽다고.

두번째는 우리 아파트 라인의 출입구앞에 자전거와 유모차를 항상 두는 것이었다. 아파트 복도가 넓지 않고 소방안전 등의 문제가 있어서 복도와 출입구 앞에 물건을 적재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처음엔 한두 번이었는데, 누가 딱히 제제를 하지 않으니 6~7개월 정도 전부터는 항상 그곳에 두기 시작했다. 가을이 지나서는 쓰지도 않으면서 거기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전거와 유모차를 주차해 두었다. 먼지도 쌓이고 그 안에 빈 병 같은 것도 놓이기 시작했다. 공간이 작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서 유모차를 집으로 올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자전거와 유모차를 위한 지하 주차공간에 두는데, 우리처럼 새걸 사는 경우는 집에 올리거나 자기 창고 안에 넣어둔다. 거기가 조금 좁아서 주차하고 빼오기가 불편한 경우가 있는데, 자리가 없는 건 또 아니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디 나갈 때 일찌감치 여유있게 내려가서 챙겨야 한다는 것만 생각해두면 큰 불편은 아니다.

좁은 창고에 불뚝나온 배를 안고 들어가 유모차 주차 공간을 만드려고 먼지 들이키며 정리 및 청소를 하고, 자전거 빼올 때마다 많은 자전거 해치며 씨름을 하더라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아파트의 규칙을 지키려는데, 갈수록 더 규칙을 안지키고 주변을 어지럽히는 이웃이 참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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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후 창고. 유모차는 이곳에 주차할 수 있겠지.

결국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메일로 불평을 여러차례 했다. 담당자가 이웃에게 경고서한만 발송하며 6주가 넘도록 해결을 잘 안해주길래, 그녀의 보스를 참조로 넣어, “이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문제를 해결 안해주면 이게 새로운 규칙인 줄로 이해하고 앞으로 자전거니 뭐니 우리도 다 출입구에 주차하겠다”라고 메일을 넣었다. 다음날 새벽 6시 반에 답장이 와서, 바로 주민과 전화해보겠다며 절대 주차하면 안된다고 보스에게서 답장이 왔다. 복도 규정공고문에 붙어 있듯이 이런 건 주차하면 안된다고.

이런 공식적인 불평에 더불어 비공식적이나 적극적인 대처를 추가하기로 했다. 공식적 항의서한을 보낸지 한달이 조금 넘은 시점부터는 이게 과연 이렇게 해결될지 확실하지 않아 뭔가 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녀의 유모차와 자전거를 사진으로 찍어 우리 라인 전체사람에게 쓰는 공고문처럼, “자전거, 장난감, 유모차는 공용공간인 출입구 앞에 비치해서는 안되고, 지하실 전용공간에 두어야 한다. 이 사진은 하면 안되는 행동의 대표적 예시다. 모두가 규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덴마크어로 써붙였다. 규정 공고문 바로 아래에. 안그래도 그걸 붙이겠다고 했던 이야기를 들었던 옌스가 집에 와서 웃더니, 몇 개 문법을 수정해야지 아니면 네가 붙인 거 알겠다고 한다. 그리고 문법은 틀리지 않았어도 너무 딱딱하고 공식적인 것 같은 표현은 수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빨간펜으로 수정을 해주었다.

다음 날, 학교가는 길에 보니 그 공고문은 사라져있었다. 옌스가 퇴근한 이후에 사라진 것이니 청소부가 뗀 것은 아니고. 수정한 문서를 붙이고 떼는 숨바꼭질 같은 일이 일주일여간 지속되더니 유모차가 사라졌다. 그리고 공고문이 남아있었다. ‘아하… 유모차 치운 것으로 떳떳해졌군! 그런데 자전거는 안치워도 떳떳한 건가?’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고문에 자전거 부분을 강조해서 “자전거는? (Hvad med cyklen?)” 이라고 손으로 쓴 뒤 다시금 붙였더니 이틀 만에 자전거도 사라졌다. 열흘 정도 씨름을 하고 나니 해결이 되었구나.

진작 얼굴보고 불평했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안되었을 수도 있는데, 뭔가 이사온 초반부터 안맞는 이웃이었다. 인사를 여러 번 해도 씹고 (지금은 그 집이 먼저 인사하기 전엔 나도 인사 안한다.), 애가 뭘 복도에 엎으면 남들같으면 치우는데 치우지도 않아서 다음주 청소부가 걸레질을 할 때까지 복도를 엄청 끈끈해진 채로 놔두고, 뭐 빌린다고 불쑥불쑥 와서 강한 율란 억양으로 빠르게 이야기하고, 내가 외국인이라 그러니 천천히 이야기해달라고 해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두르륵 이야기 하고 가는 등… 발코니에 남이 보이도록 뭘 적재하면 안되도록 되어있는데 (이건 참 신기한 규정이다. 밖에서 보이는 아파트가 지저분해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이니.) 이사온 지 일년이 지나도록 그 집 발코니는 안이 거의 안보일 정도로 뭔가 쌓여있다.) 그거 안지킨다고 옌스가 여러번 지적하더라. 아무튼 뭔가 상식이 통하는 집은 아닌 거 같아서 얼굴 보고 불평하며 얼굴 붉히기 싫었다. 그래서 이런 치사한 방식으로 해결을 한 거다.

공고문을 붙이는 순간부터는 더이상 이 일이 짜증나기보다는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 숨바꼭질 같아서 재미있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오기를 부렸다. 해결되고 나니 십년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다시금 아파트 주변 환경도 깨끗해지고. 애들도 소리를 안지르고. 옌스가 나중에 하나 태어나면 그 집 앞에 가서 소리를 지르게 해봐야 하는게 아니냐 할 정도였는데. 🙂

논문 프로젝트 시작

출산 및 육아휴직때문에 논문의 공식적 시작은 2018년 2월부터지만 교수의 너그러운 배려 덕분으로 Contract sign 없이 미리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첫 미팅은 잘 끝났다. 이렇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논문을 쓸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의외로 주제 뽑는 문제가 스르륵 풀려버려서 이제는 데이터 수집하고 준비해서 쓰기 시작하면 된다. 덴마크어로 된 자료 수집도 필수불가결한 거라, 교수가 덴마크어 어느 정도 하는지 물어봤는데, 사전 써가며 신문 읽을 정도 된다고 하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정부 보고서가 덴마크어로만 된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논문 키워드는 헤도닉 모델, 홍수이다. 계량경제학, GIS, 헤도닉 모델을 열심히 파게 될 것 같은데, 하나가 얌전한 아기로 잠을 많이 자주면 조금 더 미리 많은 것을 할 수 있어 홍수피해방지책에 대한 CBA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 그 건 번외로 하고 논문은 범위를 조금 더 줄여서 컴팩트하게 가려고 한다.

쿨한 교수와 함께 하게 된 것도 좋은데, 교수가 이 주제대로 나오면 정말 cool할 것 같다고, 덴마크에 없는 자료를 만드는 것이니 여러 지방정부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더 좋았다.

논문이란게 이렇고 시작하다가도 여러가지 장벽을 만나 꼬여 방향을 틀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지만, 사람들이 한결같이 우선 쓰기 시작해야 한단다. 그래야 고칠 게 있지, 쓴 게 없으면 고칠 수도 없단다. 맞는 말이다. 지난 번 소논문 쓸 때도 쓴 게 없으면 지도교수도 도와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고, 실제 그를 피부로 느꼈다.

아직 하나가 나올 때까진 시간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겠다. 읽을 거리들도 읽어두고, 뇌도 계속 깨워두고.

교수가 카페에 데려가 옆에 재워두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라떼 아기”이면 미리 일하기 수월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 끊임없이 소리지르고 우는 아이면 애를 보육원에 보낼 때까지 일하는 건 거의 포기해야 할 것이란다. 그래서 한국 갔다와서 한 9~10월때쯤 애를 보육원에 보내려한다 했더니, 자기네도 9개월 때 보냈다며 그때 보내기 괜찮은 때 같단다. 애가 스스로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하는 타이밍이라 그런대로 보낼만 하다고. 그전에 보내면 그런 소통 자체가 어려우니 혼자 거의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좀 많이 안쓰럽다고. 그렇게 애를 보내기 시작하면 좀 본격적으로 일 할 수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도 해준다. 중간에 언제고 연락하고 찾아오란 말을 더하며.

마음이 편해졌다. 집에 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 연하장도 부치고 나니 뭔가 한 해를 거의 마무리한 느낌도 들고. 하나가 좋은 타이밍에 와줘서 삶이 조금 더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는구나 싶어 고맙기도 하고 좋다. 비가 와 날은 참 우중충하지만, 바나나와 아몬드, 고지베리를 넣고 따끈하게 오트밀을 끓여먹었더니 마음도 푸근하다. 조금 있다가 오후에 옌스와 함께 산모교실도 다녀오고 하루를 잘 마무리해야겠다.

나는 출산이 두렵지 않다.

어제 사람들과 만나서 점심을 했다. 중간에 출산이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 답은 아니라고 했는데, 아직 출산이 임박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아니면 잘 몰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출산이 무섭지 않은 이유는 그런 게 아니다. 사실 그 순간엔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냥 출산이 임박한 순간에도 그 고통이 무섭지 않을 거란 것은 안다. 물론 긴장은 되겠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왜 그런걸까?

고통은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물리적 고통 자체를 두려워한 적은 없었다. 어떤 기약없는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두려워할 것 같다. 그러나 누구나 감내할 통과의례적 고통으로 어떤 특정 기간만 견뎌내면 되는 고통은 괜찮다.

내가 무서워하는 건 고통이 아니라 어떤 결과다. 내가 정신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어떤 결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거나 하는 종류의 결과 말이다.

물론 출산과정 중 애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마음 한 켠에조차 없진 않다. 그러나 난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고, 사람들의 직업윤리를 믿고, 어떤 실수가 있더라도 그걸 만회할 정도의 상황이 되리라 믿기에 그 두려움이나 불안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럴 확률 또한 낮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삶이 한결 쉬워진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그게 나이브한 생각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믿음은 그런 거 아니던가? 타인이 생각하는게 중요하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