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 산지 5년, 한국과 다른 점 1

덴마크에 산 지도 어느새 거의 5년. 한달만 있으면 만으로 5년이 된다.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싶게 길지 않은 시간 같다. 하긴 대학원도 거의 끝나가고 애도 낳아서 17개월이 되어가니 이상할 것도 없네. 이제 이곳에서의 삶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여기가 이래서 더 좋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냥 당연하게 느끼게 되어서. 이제 그냥 여기 사회에 동화된 느낌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 한번 쯤 과거를 돌이켜보며 내가 현재 서 있는 곳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한국과 다른 점, 또는 이 곳의 다른 문화와 시스템 여건으로 인해 내가 한국에서와 달라진 점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자전거

유모차를 갖고 나가거나 비가 오는 날, 동결 방지를 위해 길에 소금이 뿌려져있는 시기(11월-3월)를 제외하면 가급적 자전거를 타고 나선다. 대학원까지 처음으로 자전거로 가던 날, 집에서 8km인 거리를 40분동안 힘들게 페달밟아 갔다. 구글엔 25분이라고 써있는데, 가는 길은 평균적으로는 약간 내리막이지만 제법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해서 있는 탓에 너무 헉헉대서 그랬다. 요즘은 학교까지는 25분 이내에 크게 힘들지 않게 간다.

대중교통이 비싼 편이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7000원 정도 한다. 오래 살다보니 그냥 여기 가격을 받아들이게 되어 이제는 별 다른 감흥이 없다. 그래도 통근을 자전거로 주로 하는 시기엔 지출 절감에 알게모르게 도움이 된다.

최근 헬스장에서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더니 오늘 시내 가는 길 10km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대학원 처음 다니던 시절이 2015년이니까 한국나이로 36살때였는데… 그때보다는 애를 낳은 지금이 체력적으로 더 좋아졌다. 아마 자전거도 타고다니고 틈틈히 운동도 해서 그렇겠지. 마른 몸보다 근육이 있는 탄탄한 몸을 선호하는 문화 탓에 열심히들 운동하는게 눈에 보여서 나도 조금이라도 더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달리기도 더 하게되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체력을 보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잘 걸어다니지 않을 거리가 여기에선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로 다닐 거리가 되고, 그 덕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더 생기게 되는 거 같다.


날씨, 적정온도

비오고 바람부는 날씨가 익숙해졌다. 인도에서 살다가 한국가서 여름에 견디기 쉬웠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내 몸은 어느새 적응을 해가고 있다. 실내에서 적정한 온도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고, 같은 온도와 바람에 입는 옷이 바뀌었다. 여기 사람들은 왜 그리 춥고 비오는 날 얇게 입고 다니나 했는데, 그 날씨에 아직 적응이 안되었을 때 그랬다. 요즘 기후 이변으로 더운 날이 생겨서 그렇지 여기 여름 날씨라고 해봐야 20도 언저리가 흔하다. 거기에 비도 오고 흐리고 바람 불면 한국사람들은 엄청 춥다고 한다. 나도 예전엔 그랬으니까. 요즘은 25도면 더워서 힘들다. 같은 날씨면 예전보다 옷을 한겹 또는 두겹 덜 입는다. 겨울에도.

여기 날씨에 대해 처음에 많이 불평했는데, 겨울에 낮이 좀 짧은 거 빼고는 여기 날씨가 마음에 든다. 물론 겨울이 긴 건 좀 아쉽긴 한데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으니… 이제 한국은 여름과 겨울에는 가급적 방문하지 않는 걸로…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더 이어 쓰는 것으로 해야겠다…

앞으로의 진로 고민

성적증명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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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이쪼가리를 시청에다가 보내면 자기네가 외국인/사회통합청에 사실여부를 확인한 후 가족비자에 딸린 보증금 일부를 돌려준다. 지난번 시부모님 오셨을 떄 이 증서 받으면 그 보증금 돌려받는 일 처리해야겠다고 했더니 옌스왈 그 보증금이라고 해봐야 자기 계좌 안에 못쓰게 묶어논 돈이고, 보증금에서 풀어서 다른 계좌로 옮겨놔도 이자 안나오는 거 마찬가지니 그런 일 번거롭게 할 필요 없단다. 시부모님도 나보고 이자 나오는 걸로 잘못 알고 있었냐면서 농을 던지시는데 머쓱. 아니 아주 조금은 나오지 않았나? 허허허. 뭐 안나오면 괜히 그런 일 할 필요 없는 걸로…

 

박사과정 지원 마감일이 이틀 남았지만, 지원은 안하기로 했다. 나를 아껴주시는 자원경제학 교수님이 자기가 추천이랑 그런 주변 서포트는 열심히 해주겠으니 지원하기로 약속하라고 하셨을 때, 그냥 나는 너무 쉽게 그러마고 답을 했는데… 박사는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문제였다. 진짜 하고 싶은 건지를 모르겠다. 석사를 시작할 때만한 동인이 마음에 없다. 나는 뭔가 주제가 주어졌을 때 그걸 파고 이해하고 하는 걸 좋아하는 거지, 내가 파고 싶은 주제가 없었다. 석사과정을 하면서도 그게 가장 두려웠다.

석사 논문 주제 잡는 것도 다른 친구들처럼 오랫동안 써보고 싶다고 생각해온 게 없었다. 애가 있는 나로서는 서베이 같은 필드조사가 필요한 건 너무 변수가 심해서 안될 거 같았기에 데이터로 모델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중 수업을 들어보면서 해보고 싶었던 헤도닉 가격 모형을 선택을 했고, 주제에 대해서는 조금 막연하게 사람들이 해수면 상승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비하는 준비가 부족한 것 같아서 이에 대한 걸 써보고 싶다고 했더니 교수가 이런 저런 건 어떠냐 하고 제안을 해왔다. 거기에서 답을 찾아서 주제를 잡아서 다행히 쓰고 있는 중이다.

박사는 3년이란 프로젝트에 어느정도 지도교수의 조언을 받기는 해도 주제 부분이라던가 연구에 있어서는 석사 이상으로 자기 오너십을 갖고 접근해야 하는데, 영 그런 각이 안나온다. 논문 지도교수님은 예전에 박사과정에 합격한 사람들의 지원서를 보내니 참고해보라고 하시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해수면 상승분야에 펀딩 프로세스가 많이 진행되고 있어서 박사 자리가 날 것 같다고 하셨다. 나를 도와주신다는 교수님은 원래 다들 막연한 아이디어로 시작한다고 하면서 지도교수님에게 도움을 좀 더 받아보라 하시는데, 이건 영 아닌 거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나를 도와주시는 교수님은 뭔가 약간 한국사람 같은 정이 넘치는 분이라 사람은 돕고 사는 거다는 정신이 강하신데, 내 지도교수님은 (나이가 나와 같은…) 나는 약간의 가이드를 해주는 거지 연구는 자기가 하는 거다 하는 쿨한 정신의 소유자이시다. (사실 이 말씀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두면서 내 이 의존적이고 비자발적인 연구태도로 3년동안 내 프로젝트 4개를 끌고 나간다? 나의 부족한 self-discipline으로는 괴로운 3년이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석사 논문 6개월도 이렇게 간신히 끌고왔는데, 이의 6배가 되는 시간을 이보다 더 큰 프로젝트들로 채워야 한다고? 아… No way…. 주변에 물어봤을 때, 박사는 네가 하고싶어서 해야해. 라는 말들을 들어왔다. 이게 거의 유일한 답이었다. 하고는 싶은데 뭘 하고 싶은 지 모르겠어라는 말에 그거 말고 하고 싶은게 뭐가 구체적으로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받고 할 말이 참 없었다. 그래… 내 마음 깊은 곳에 답이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박사라는 타이틀에 관심이 갔던 것 같다. 취업시장은 어떨 지 영 아이디어가 없는데, 박사과정은 지원을 한다면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이고… 괜히 솔깃했던거다. 지금 내 마음가짐과 태도로 시작했다가는 금방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포기할 게 불보듯 훤하다.

지도교수님에게 몇 주 연락없이 조용히 집에서 일을 했더니 메일로 안부와 프로젝트 진행여부를 물어오셨다. 이래저래 진행하고 있고 박사는 지원 안하기로 했다했더니, 이해한다며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니 자신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하시더라.

 

이제 남은 일은 열심히 논문을 써서 빨리 실업시장으로 나가는 것… 아… 컨퍼런스 발표도 남아있다. 프로그램이 나와서 이젠 정말 빼도박도 할 수 없다. 학계로 가는 게 아니라도 이런 경험이 나쁠 건 없고 또 이렇게 누구와 네트워크를 쌓을 지 알 수도 없는 일이니 성실하게 하도록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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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일주일전 근황 – 뒤죽박죽

다음주 금요일이면 생일이다. 시부모님이 하루 전에 오셔서 생일을 같이 보내시고 토요일에 가신다고 하신다. 손녀 보러도 오시는 거겠지만 내 생일 축하해주시려고 보언홀름에서 먼 길 와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 금요일에는 시어머니랑 밖에 나가서 근사한 외식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옌스가 이번에 45번째 생일이라고 친구들 몇명 초대해서 남자들끼리만 외식을 한 것을 보고 시어머니가 그러면 내 생일에는 옌스 집에 있으라그러고 나가서 식사하라고 하시길래 그럼 같이 하시겠냐고 여쭤봤던 거였는데 그러시겠다고 했었다. 농담이려거니 했는데 일부러 오신다는 걸로 보아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 태어나고 나서 애 없는 오붓한 저녁식사는 처음이 되지 않을까?

16개월이 조금 넘어선 하나는 요즘 빠르게 말이 늘고 있다. 단어가 느니 우리와 커뮤니케이션이 쉬워졌다. 단점으로는 말이 느는 것과 함께 독립심이 늘고 자기 의사가 생기기 시작해 원하는 게 안되면 성깔을 엄청 낸다는 거다. 그 자체가 단점은 아닌데, 어디 데리고 가서 그러면 난처함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도 그에 맞춰서 대응 요령이 생기고 있어서 이런 핑퐁게임은 앞으로 끊임없이 생기겠구나 싶다. 아이는 그냥 사랑스럽다. 힘은 들어도 화는 안나는 거 보면 내 아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늦은 나이에 애를 낳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는가 싶기도 하고.

덴마크어 시험은 구술만 남았다. 쓰기와 읽기는 모두 12점이 나왔다. 읽기야 이미 정답을 맞춰보고 틀린게 없음을 확인했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쓰기가 어땠을런지 엄청 긴장했다. 수업의 후반으로 가면서 쓰기가 많이 늘기도 했고, 시험 때 정성들여 쓰고 검토도 차분히 한 만큼 12점 나올 것 같긴 했는데, 사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 지야 나와 봐야 아는 거였으니까. 시험 점수 나오던 날엔 꿈에서 4점을 받고 “이건 꿈일거야! 꿈이어야만 해!” 외쳤던 악몽도 꾸었다. 구술은 선생님 왈 읽기와 쓰기보다 훨씬 낫기 때문에 12점 받을 거라 확신한다고 하셨으니 기출문제 받아온 것만 주르륵 훑어보고 가보려 한다. 이 시험을 보고 나면 중상급을 통과한 거고, 이 뒤로 대학교 진학을 위한 과정을 들어보려고 한다. 대학교를 다시 갈 일이야 없지만, 고등교육을 위한 언어교육은 앞으로 직장생활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니까. 아니 그런 걸 떠나서 앞으로 여기서 계속 살꺼니까 언어는 필요하고, 공부 없이 신문보고 영화보고 뉴스보고 하는 정도의 그냥으로는 느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아니까 지금 박차를 가할 때 가하련다.

논문은 슬럼프다. 쓰긴 써야하는데 쓰기가 싫다. 그냥 꾸역꾸역 쓰고있다. 논문의 주요 결과는 나온 상태라 초록을 컨퍼런스에 보내봤는데 (교수가 보내보래서) 아주 포멀한 컨퍼런스가 아니라 그런지 억셉트도 되었고, 발표를 하려면 어찌 되었든 미룰 수 없이 끝내야 한다. 끝낼 수 있을지 하는 두려움이 계속 스물스물 피어오르지만…

박사과정 지원은 데드라인이 다가오는데 제안서 아이디어도 아주 뜬구름 잡고 있다. 최소 이틀은 할애해서 써야한다는데, 애가 있는 나는 사흘은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지원하지도 않고 나중에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방지하기 위해 지원은 하지만, 내가 박사과정을 할만한 지구력이 있는 깜냥인지에 대한 의문때문에 자꾸 망설여지는 부분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아주 훌륭한 박사과정생만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기도 하고, 뭐 떨어지더라도 해보지도 않고 신포도 타령하는 건 후회할 일임일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 지원은 해봐야한다.

이번 생일이면 만으로 38. 곧 40이 다가온다. 사실 운동 체력으로만 따지면 20대때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운동 없이 사는 한국의 고등학교 시스템과 그 라이프 스타일대로 그냥 살았던 내 대학교와 직장생활 시절 덕에 기저효과가 물론 엄청 큰 탓이다. 한국에서 막판에 시작했던 발레와 (지금은 잠시 육아로 중단했지만) 기타 웨이트 덕에 지금 체력이 더 좋은데, 이제는 운동을 안하면 근손실도 눈에 띄게 느껴진다. 앞으로 애 키우면서 힘 쓸 일도 많고 할 수도 있는데 체력을 좀 더 다져야겠다. 익숙해졌던 웨이트들의 무게도 조금 늘려야지 이제는 같은 무게로는 근육이 다져지지 않는 것 같다.

지금 필요한 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뭐든 꾸역꾸역 하는 거 같다. 다른 나라에 와서 새로이 뭔가를 계속 개척해야 한다는 건 힘들기도 하지만, 사실 어디에 살아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것을 계속 해야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지금의 현실은 어찌보면 특별한 것도 아니다.

아… 생각은 많고 뭔가 하는 건 적다. 제일 열심히 하는 건 드라마 빈지워칭이다. Rejseholdet라고 범죄수사 드라마인데… 재미있다. 느는 건 범죄 수사 어휘…

생각은 많고 행동은 적고 정신상태는 뒤죽박죽… 글도 갈수록 정리되지 않는다. 그냥 기록하려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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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0분의 하늘. 일조시간은 이미 거의 최고로 긴 상태에 다다른 것 같다. 하지를 거치고 나면 이제 다시 짧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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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받고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뭔가가 엄청 재미있으니까 반복하는 거겠지. 중간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되면 짜증을 팍 낸다. 감정 통제가 불가능한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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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역 접종은 쉬웠다. 이때만 해도 접종할 지 모르고 자다 깨서 마냥 좋아하던 하나. 그래도 끝나자마자 건포도 한 팩에 즐거워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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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센터에 있던 아이 놀이터에 작은 집 모형이 있는데, 내가 그 안에 들어갔더니 하나가 좋아하며 들락날락하더라.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하나. 옷은 다 젖고…

Hvor er det svært at stille spørgsmål!

Det at prøve noget nyt er altid svært, selv om den nye ting i sig selv er sjov at prøve. Hvis den er nogen vigtig i ens eget liv, bliver den endnu svær.

Nu skriver jeg mit speciale, og det er ret stressende. Jeg ved ikke om, jeg gør det rigtigt eller ej. Lige nu er det tidspunkt, hvor jeg snakker med min vejleder om, hvad, jeg har skrevet, er ok nok, eller jeg skal gøre det anderledes.

Jeg er altid bange for at stille spørgsmål, måske er det, fordi jeg er fra Sydkorea, hvor det underforstået ikke er acceptabelt at stille dumme spørgsmål. Nu ved jeg godt i mit hoved, at der ikke er noget dumt spørgsmål, men stadigvæk bliver jeg lidt tøvende over for at stille spørgsmål. Inden jeg spørger, tænker jeg over om spørgsmålet på en måde som, ‘Skulle jeg ikke allerede vide det, jeg skal spørge nu, og således skal jeg læse først istedetfor bare at spørge?’ Efter nogen stykke tid opdager jeg næsten altid, at det var dumt ikke at spørge nogen, feks. min vejleder, lige med det samme, da jeg ikke forstod det, jeg var nødt til at forstå.

Det at øve mig at stille spørgsmål er en konstant og måske evig proces for mig. Hvor er det svært!

16개월이 다 되어가는 하나와 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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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만 있으면 하나는 16개월이 된다. 키는 대충 재도 80센치니 그보다 큰 것 같고 (어느새 갑자기 훌쩍 컸다.) 몸무게도 10킬로가 거의 다 되는 것 같다. 키에 비해 몸무게가 천천히 느는 거 보니 이제 아기가 아니라 유아기로 들어서는 것이 이에서도 느껴진다. 어금니도 왼쪽 두개는 확실히 나고 오른쪽도 윗니는 터지기 시작해서 하얀 게 보이니 그 아랫니도 금방 열릴 거 같다.

긴 음절의 말은 톤과 소리만이긴 하지만 대충 흉내도 내고, 두음절 단어는 처음 듣는 단어도 곧잘 따라 하곤 한다. 처음 강아지 소리를 듣고는 자기만의 소리로 “앞앞!” 이렇게 표현하더니 모르는 동물은 무조건 앞앞으로 표현한다. 강아지는 멍멍이라고 알려줬더니 멍멍이라고 하고, 고양이는 먀옹이라고 하고, 새는 처음에 집에서 닭 사진을 보면서 가르쳐걸 기억해서인지 무조건 꼬꼬 라고 하더니 각각의 새를 보고 가르쳐 준대로 까마귀를 보면 까까라고 하고 비둘기는 꾸꾸라고 한다. 덴마크어로 아니오의 뜻을 가진 Nej는 아주 여유있고 시크한 톤으로 말해서 나와 옌스를 웃게 하고, 예는 아직 말하지 못하지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서 표현하는 덕에 의사소통이 아주 수월해졌다.

자기 이름을 엄청 좋아하고, 엄마와 아빠는 한국어로만 말하는 하나지만, 그 외에 말은 고맙다는 tak, 만날 때, 헤어질때 하는 인사 모두 Hej, Hej hej, Bye bye 모두 덴마크어와 영어이다. 소방차 소리를 바부바부 내는 걸로 봐서도 역시 덴마크어가 우월한 입지를 차지한게 느껴진다. 보육원을 다니면서 덴마크어 노출이 압도적이 되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하나에겐 항상 한국어만 쓰고, 옌스가 꾸준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식사시간에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 등이 앞으로 하나의 한국어 학습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논문은 꾸역꾸역 쓰고 있다. 우선 긍정적인 것은 가장 중요한 모델링의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론도 더 쓸 게 있고 몇가지 테스트할 것들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델링의 결과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게으름이 뚫고나와서 나를 갑자기 퍼지게 하는 사태를 만들지 않는 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조심하는 부분이다. 교수가 덴마크 환경경제 컨퍼런스에 내 논문 요약문을 제출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왔다. 요약문 쓰는 거는 조언을 해줄 수 있으니 한번 제출해보라길래, 우선 알겠다고 했다. 받아들여져서 발표를 하게될지까지야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기회를 갖는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옌스 말로는 논문 주제가 재미있기도 하고, 우선 모델링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으니 내보란 것 아니겠냐면서,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한다. 박사과정 지원도 한달밖에 안남았으니 이 또한 해야하는데… 뭔가 할 일은 많고 정신은 없다. 지난주까지 2주동안 하나가 아파서 모든게 또 정지해있는 상태였는데, 여름 동안 큰 탈 없이 지내서 논문을 잘 진행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 와중에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는 게 하나 있다면 덴마크어다. 우선 덴마크어 시험 중 읽기는 만점이 나왔다. 쓰기 결과는 나와봐야 알지만, 쓰기 점수는 모의고사를 통해서 꾸준히 올려오기도 했고, 배운 걸 잘 소화해서 시험을 본 만큼 큰 변동 없이 10점이나 12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말하기는 그 어느 것보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연습하고 있는 것이고, 이제 일상생활에서 영어 없이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만큼 upper-intermediate에 해당하는 B2 레벨을 인증하는 PD3 시험은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물론 영어만큼 덴마크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젠 덴마크어가 더 자연스럽고, 사고의 언어 1순위가 덴마크어가 된 만큼 갑자기 덴마크어에서 영어로 전환하려면 자꾸 덴마크어가 튀어나오려 하는 정도이니 말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생각하는 것만큼 낭비야 없지만, 그냥 조금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물론 그랬다면 지금의 가족은 내 인생에 없었겠으니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기도 하네.

이제 딴 짓 그만하고 다시 논문을 써야겠다.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이런 길로 걸어왔을까? 참 인생은 살고 볼 일이다. 끊임 없는 놀라움의 연속…

15개월의 하나 in Dubai

시어머니의 생신을 두바이 시누네에서 하신다 하여 우리도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두바이에 갈 지 몰라 같이 방문했다. 6시간의 비행동안 하나는 한숨도 자지 않았는데 안그래도 오전 45분 낮잠외엔 자지 않았던 터라 긴장이 엄청 되었다. 다행히 덴마크 시각으로 1시 정도에 큰 무리없이 잠이 들었다. 그렇게 맞이한 15개월의 날. 비행기에서 Hvad er det? (이건 뭐예요?)를 상황에 맞게 두번이나 해서 우리를 놀래켰던 날이다.

두바이는 많이 덥지만 대충 40도 이내라 못견딜 정도는 아니다. 조금 더 지나면 라마단인데다가 더 더워지면 정말 다닐 수도 없다해서 그나마 괜찮을 때 온 건데 잘 온 것 같다. 도시도 깔끔하고 좋더라. 물론 더워서 난 여기서 살라면 그닥 살 고 싶지 않겠지만애가 있어서 어차피 여기저기 많이 다니기도 어려워서 하루 한군데 정도 소화하는 게 전부인데 집에 풀장이 있어 오전 오후엔 여기서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하나도 덕분에 수영하는 것에 익숙해질 듯.

시어머니 생일 점심으로 아랍의 탑 (burj al arab) 에 있는 캐주얼한 식당에 갔는데 사람이 아주 많지 않아 하나도 사촌들과 많이 돌아다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사촌 세명이 모두 하나를 이뻐하고 잘 놀아줘서 참 좋았다. 금방 사촌들을 좋아해서 가서 안기기도 하던 하나. 이집에 있는 고양이 엘비스를 통해 고양이를 처음 본 하나는 만져 보고 싶은 마음 반, 무서운 마음 반에 가까이 다가가다가 울곤 했다.

시누이네는 시누이 남편이 주재원으로 나와있어서 여기 최소 3년을 살 계획으로 나온 건데, 기름 1리터에 500원 정도밖에 안하고 차값도 다른 나라에 비해 싼 이곳에서 아니면 이렇게 좋은 차를 못탄다고 해서 시누이 남편은 마세라티를, 시누이는 랜드로버를 샀단다. 일생에 나도 이때 아니면 마세라티를 타볼 일 있겠나 싶어서 타봤는데, 엄청난 출력을 가졌긴 한 모양이다. 안에 소재도 엄청 좋고. 아랍의 탑 호텔에서 나올 때 앞에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유명한 사람이겠거니 했나보다.

집에 오는 길에 시누이 남편의 직원이 우리 바로 뒤에 멈춰섰다며 신호 정차시에 잠시 나갔다왔다.  그가 차로 돌아온 후 그 직원이 인사한다며 정차중 엔진소리를 세게 내었는데, 돌아보니 페라리였다. 두바이엔 진짜 비싼 차들이 널려있더라. 나름 덴마크 회사 다닌다고 조심스러웠는지 차를 사기 전에 시누이 남편에게 자기 아무 차나 사도 되냐고 묻더란다. 아마 사장이 마세라티를 몰고 있으니 덜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만…

이제 이틀 남았다. 4박 5일이지만 밤에 와서 오전 일찍 가는 여정이라 사실상 4박 3일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나가 사촌들과 유대관계도 조금 다지고 즐겁게 놀다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남은 날들도 기대가 된다. 비행은 은근 스트레스였지만, 잘 온 듯.

진짜 오랫만에 한국이 아닌 곳으로 여행 온 것 같다. 3년 조금 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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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일기.

논문이 바빠지니 다른 것에 소홀해진다. 논문은 대충 첫번째 포스트에 도착한 것 같다. 원시적 모델링은 우선 되었으니 이제 이론 연구와 모델링을 병행하고, 그 다음엔 분석하고 논문을 써야한다. 그간 진행이 참 지지부진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1차 모델링을 하고나서 보니 어찌어찌해 절반은 왔구나. 약간이지만 안도가 된다.  물론 아직도 반 이상이 남았는데 시간은 반이 흘렀으니 긴장이 되는 게 더 큰다. 내 논문 생활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게 하나 있다면 항상 크리티컬한 관점으로 내 논문을 비판해 줄 남편이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모델을 보여줬더니 이건 고려해봤느냐, 저건 고려해봤느냐, 이 건 왜 이런 함수형태를 취했느냐, 독립변수 선택의 전략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며 꼬치꼬치 묻는다. 아직 그 단계까지 안갔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무방비로 폭격을 당한 기분이었으나 나혼자 하는 씨름에 타인의 신선한 인풋이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역시 연구는 남과 공유해야하는 법이다.

우리 학과가 속한 인스티튜트에서 박사과정 공고가 났다. 자금사정이 트인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인스티튜트 아침식사시간에 같이 참여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도교수에게 박사과정에도 관심있다고 했더니 지원서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 교수님이 있는데, 그분께도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것도 보장되는 건 없지만 추천서만큼은 꼭 써주시겠다면서, 오히려 박사과정에 꼭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논문을 제외하고 학점이 10.9니까… 논문을 잘 쓰면 11점 정도로 학점은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완벽한 점수를 들이밀 걸 생각하면 아주 빼어난 점수는 아니라도 점수가 흠이 될 건 아닌 정도니 논문이 많이 중요하다. 사실 큰 기대는 못한다. 요즘 박사과정은 세계 각지에서 지원을 하니 경쟁률도 높고, 내가 원하는 연구방향과 인스티튜트에 가장 어필하는 방향이 매칭이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든 해보지 않으면 될지 안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배웠으니까 우선은 지원을 해봐야겠다. 뭐 되든 안되든 간에 내가 박사과정까지 생각하리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해봤고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역시 절대 안한다 못한다 이런 이야기는 함부로 하면 안된다.

덴마크어 필기 시험도 한달이 채 안남았고, 구술은 그 뒤 한달뒤로 다가왔는데, 시험은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을 잘 만난 덕에 쓰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느는 게 느껴졌다. 알듯말듯한 몇가지 문법이 자꾸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는데, 내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딱 꼬집어 지적을 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이 좋아졌다. 작년 말 시험으로 모의시험을 쳐보니 읽기는 12, 쓰기는 약한 12 또는 강한 10이라한다. 말하기는 한달 시간이 있기도 하고, 읽기와 쓰기의 중간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부문이라 대충 10~12 사이로 모든 부문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보고 있다. 모듈 6를 하게 될지 아닐지는 지금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항상 옵션을 갖고 있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우선은 그대로 해보련다. 덴마크어 교육도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있고 그러다보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더 미루지 않고 올해 초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이다.

하나는 쑥쑥 자라고 있다. 이제는 제법 아가씨 태가 난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면서 겁이 없어져서 그런지 위험한 일들을 서슴없이 해서 조금 걱정이다. 집에서 놀다가 살짝 휘청한 것 같았는데, 금속 바구니 테두리에 부딪혀서 앞니가, 그것도 윗니가 살짝 깨졌다. 다행히 신경은 안건드린 거 같긴 한데, 우선은 지켜봐야한다. 옌스도 같은 이가 부러진 적이 있다하니 젖니 깨먹는 건 이 집안 내력인가 한다. 이일로 나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픈 하나를 보기위해 마침 휴가를 내고 있었던 옌스에게 애를 맡기고 나가면서 그 스트레스로 인해 구역질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구역질이 계속 나는데, 그걸 멈추기 위해서 산책을 해야했다. 원래 스트레스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적으로 반응이 올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내가 아닌 아이 일이라서 그렇다. 누가 있었어도 생겼을 일이었기에 나를 자책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애가 더 크게 잘못되었으면 어쨌나 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구역질. 더 큰 사고가 나도 차분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말로 단단히 먹어야한다.

하나는 참 씩씩한 아이다. 웬만해서는 넘어진 거나 부딪힌 걸로 울지 않는다. 시부모님도 그렇고 보육원 선생님들도 인정하는 씩씩한 아이인데, 그렇다고 튼튼한 건 아닌 것 같다. 감기나 설사 같은 걸로 자주 아픈편이고, 폐렴 입원도 그렇고 천식성 기관지염을 앓는 일이 꽤 잦은 것 같다. 오늘도 그로 인해 응급실을 다녀왔으니… 물론 이번엔 응급했다기 보다는, 일반 GP, 스페셜리스트로 올라가는 시스템을 이용하기에는 응급했다고 봐야하는 거니까, 그냥 적기의 진료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겨울 아기로 겨울 초입부터 보육원을 시작해서 그런 것도 있다지만. 다행인 건 씩씩한 아이라 잘 견뎌준다는 것. 나도 생각해보면 어려서 자주 아팠던 것 같다. 항상 건강체질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자주 배가 아파서 학교를 많이 쉬었던 기억이다. 엄마도 내가 씩씩했었다는데, 지금도 꽤 씩씩한 거 생각하면 하나도 그런 면에서는 강한 아이일 것 같다.

요즘 얼마나 놀이터 생활을 즐기는지. 날이 좋아지면서 아파트 앞 잔디밭에서 놀리게 되니 동네 아이들과도 교류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 때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던 아래층 이웃 아이는 아직도 간혹 그렇긴 하지만 그런 게 줄었고, 그 아이의 오빠와 둘다 다정한 애들로 컸더라. 이제 곧 7살이 된다는 베어트람은 하나를 유독 이뻐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아마 여동생을 데리고 지낸 경험에서 우러나는 듯) 4살 여동생인 딕터도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었고, 둘다 하나와 함께 놀아주더라. 하나가 갖고 나온 공을 갖고 잔디밭에 삼각형으로 둘러 앉아 셋이서 공을 미는 놀이를 하는데 (그나마 하나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놀이로 배려해 준 베어트람이 놀랍다.) 곧잘 노는 게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놀라고 나는 빠져있는 건데 내가 중간에 괜히 옆에서 개입했나 싶었다. 말못하는 하나를 대변해준답시고, 아직 애가 이해를 못해서 그래, 하나야 앞으로 밀어봐, 이러면서 옆에서 참견을 했다. 그냥도 잘 했을 거 같고, 아니어도 오빠와 언니가 적당히 반응해가며 놀았을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다른 아이가 충분히 큰 경우 내가 조금은 더 뒤로 빠져서 지켜보는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해봐야겠다.

다음주에는 두바이에 주재중인 시누이네를 시부모님과 함께 방문하는데, 출산 후 거의 바로 이주한 시누이가족과는 하나가 처음으로 제대로 교류하게 될 거라 기대가 많이 된다. 조카들이 동생 만나서 놀아줄 기대로 부풀어있어서 더욱 기대된다. 수영복도 사고 이래저래 준비를 했는데 아픈게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오늘 해가 엄청 쨍하고 더웠는데, 하나 데리고 오전에 응급실에서 3시간 씨름하고, 가장 해가 쩅한 시간에 나와 낮잠에 든 애를 두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밀고 싸돌아다녔더니 몸에 화기가 든 기분이다. 아마 피부가 많이 탄 모양이다. 밤에 잠이 잘 안올 것 같다. 나는 못자도 애가 좀 잘 자줬으면 좋겠다. 기침을 덜하는 걸 보니 오늘은 잘 자려나? 역시 병원에서 천식약 흡입한 게 도움이 많이 된 모양이다. 딱 쓰고나니 기침하네. 흠… 역시 입초사인가…

임신 때보단 육아가 훨씬 힘들긴 한데, 출산 후 100일이 제일 힘들었던 거 같다. 지금은 다른 차원의 힘듦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애가 어릴 때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얼마전 출산한 사람, 앞으로 출산할 사람 등 주변에 애 참 많이 낳는데, 신생아 냄새가 생각날 듯 하면서 그립기도 하지만 또 낳을 생각은 안난다. 다 잊혀져서 애를 또 낳는다는데, 힘든 기억은 잊혀졌지만 힘들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내 애는 그만 낳고 남들 애기 보면서 신생아 이뻐하는 건 그걸로 끝내야겠다. 아… 신생아 볼 생각에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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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천천히 가기로 했다.

애가 아픈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가 아플때마다 시부모님께 도움을 부탁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애의 병치레에 따라 나의 논문 스케줄은 심하게 흔들린다. 덴마크도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는 공채 비슷한게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엄청 적은 수고, 1년에 한번 있어서 여름에 졸업하는 학생이 중심 대상이긴 하지만 없는 것보단 있는게 나으니까. 마침 마음에 드는 회사도 있고 해서 지원하려고 이력서도 준비하고 취업박람회 가서 면담도 하고 했는데, 막상 논문이 너무 흔들려서 제 때 여름에 졸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덴마크어 어학원이 코펜하겐시(단지 코펜하겐시만은 아닐거다. 곧 다른 시 어학원들도 영향을 받을 듯하다.) 덴마크어 교육 예산 절감 계획에 따라 교육 기관 선정이 입찰제로 바뀌었다. 유명한 어학원들은 학생 1인당 교육비용을 11000크로나 정도로 잡았는데 (지금보다 낮은 수준) 8000크로나 정도로 잡아 제출한 악명 높은 교육기관 2개가 낙찰을 받고 나머지는 다 떨어졌단다. 따라서 8월부터 이 학원들은 무료 덴마크어 교육을 다 문닫는다. 원래 8월부터는 무료 교육도 시스템이 바뀌면서 모듈당 2000크로나를 내는 것으로 바뀐다고 해서, 모듈 6은 돈 내고 들어야겠구나 했었다. (모듈 3까지 돈내고 다녀봐서 아는데, 진짜 유료는 모듈당 하부 모듈이 2개가 있어서 10000크로나가 넘는다.  모듈 5는 하부 모듈이 4개라 20000크로나가 넘는다.) 그런데 이 또한 이상한 학원으로 다녀야하는 거라면 굳이 모듈 6을 듣고 싶지 않다. 모듈 5 시험은 이미 모의고사를 토대로 본 결과 지금 쳐도 10점 정도 받는 거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모듈 6을 수강할 자격 획득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이 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덴마크어 수업을 조금은 설렁설렁 들어도 될것이고 숙제도 조금은 느슨하게 해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회사 지원은 졸업 뒤로 미루기로 했다. 논문은 우선은 8월까지 쓰는 걸로 목표를 하되, 미루는 것도 염두에 두고 쓰기로 했다. 교수님과 어떤 consequence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한번 상의해보고, 현실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8월까지 중간에 애 아플 것도 감안해서 다 쓸 수 있을 것 같은지 교수님의 생각도 들어봐야겠다.

덴마크어도 조금 루스하게 하고, 취업은 손에서 놓고, 논문에 최우선을 다해 하되, 졸업을 미룰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둔다면 지금의 높아진 스트레스 레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뭐든 낭비는 없는거니까, 지금까지 다른 것에 투자한 시간자원은 어떤 형태로든 나중에 도움을 줄 거다. 나중에 다시 해야하는 일이기도 하고.

남편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남편이 8월에 내가 빨리 졸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고 믿었고, 남편은 그걸 미루면 나에게 부담이 되는 consequence가 학제상으로 있을까봐 그랬던거지, 빨리 졸업해서 빨리 취업하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그걸로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한다. 내가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하니, 나보고 더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남편이 말하더라. 당신 잘못이 아니라 내가 주어진 데드라인 안에 이를 달성을 못할 것 같은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당신은 내가 8월에 끝내기를 기대하니까 힘든 거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전혀 그런 기대는 안하고 있다면서, 서로 오해하고 있었단다.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애가 아플 때 애 아픈 거 걱정보다도 내 일이 밀리는 걸 걱정하게 되는 게 참 엄마로서 죄책감이 들곤 했는데, 이런 걱정은 내려두고 조금 더 흐름에 몸을 내맡겨보려한다. 왜 갑자기 조급해졌었는지…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조급증이 나도 모르는 새 싹을 다시 틔우고 있었는가보다. 좀 내려놓고 천천히 차근차근 밟아가야지. 이 프로세스를 즐기면서…

겁은 겁을 먹고 자란다.

겁은 겁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겁을 내면 낼 수록 겁은 더 커진다. 따라서 겁이 날 땐 이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혀야한다. 그러면 겁으로 부풀려 포장된 것이 아닌 현실의 파편들을 마주하게된다. 파편들을 하나하나 집어들고 맞춰보면 그것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차근히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기싫은데 하면서 끌려가다보면 시간도 오래걸리고 그 일자체도 엄청 큰 일처럼 느껴진다. 기왕 해야하는 일이면 내가 해야되서 하는 일이라고 마음 먹고 하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아침에 너무 일어나기 힘든 순간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빨리 옆으로 치우고 벌떡 일어나 일상을 마주한다면 의외로 그렇게 힘들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럴 땐 빨리 일어나서 세수부터 하자.


이상이 오늘의 경험에서 배운 레슨이다. 보언홀름에서 돌아갈 때까지 지도교수님을 만날 수 없는데, 그 전까지 geocalculation을 우선 해보라는 큰 틀의 가이드라인 아래에서 도대체 뭘 해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차분히 앉아 노트를 펴고 생각의 지도를 작성해보고 이를 통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는 이론과 스크립트를 들여다보고 나니 조금씩 윤곽이 보이고 있다. 두려움으로 포장된 괴물은 매우 커보이지만, 이를 마주하고 토막을 내보면 나의 겁이란 허상이 만들어낸 것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가 밤새 코막힘으로 잠을 설치며 나를 힘들게 하더니 다른 날보다도 더 일찍 일어나서 흥겹게 놀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갈아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기저귀를 가는데, 짜증내려는 하나를 달래느라 흥겹게 노래를 불러주다 보니 나도 정신이 맑아졌다. 세수를 하면서 상쾌한 마음이 되었는데 앞으로도 밤잠 설칠날은 여전히 많은지라 이 느낌을 기억해야겠다 싶었다. 잠부족한 워킹맘들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