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신년맞이 (Godt Nytår!)

빨래가 너무 많다. 겨울이라 빨래가 잘 마르지도 않는데, 우리와 하나의 침구류와 옷, 소재별, 색깔별로 빨려니 정신이 없다. 높은 온도에 빠는 것들은 세탁기에서만도 3시간이나 걸리는 데다가, 손빨래한 모직 소재 옷들은 좀 평평하게 펴야해서 빨래대에서 차지하는 공간도 많은지라 침구류를 다 다림질해서 말렸더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어버렸네.

그래도 이제 빨 것도 거의 다 빨았고 해서 일주일간의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 출산 준비를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주부터는 기말고사 준비와 그룹 프로젝트를 위해 데이터 수집과 R 프로그래밍, 보고서 작성 등으로 정신이 없을 터인지라 출산준비는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그 와중에 옌스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마사지 상품권을 이용해보려 한다. 시험 끝나고 하면 너무 막바지라 예약해놨다가 취소 불가기간에 취소하면서 돈을 날릴 가능성도 있어서 다음주에 수업 없는 날 가보는 것으로 예약했다. 패키지 중 임산부 마사지 프로그램도 있는데, 옌스가 직장 동료 및 베프의 공통된 추천을 받은 코펜하겐에서 제일 좋다는 마사지샵이란다. 70분 정도야 시간을 못빼랴. 학교 후배가 출장와서 딱 한번 로비만 들어가본 호텔에 위치해 있다. 이번엔 그냥 기웃거리는 게 아니라 이용을 해보겠다 싶어서 기대를 살짝 해본다. 스파라고는 동남아 여행가서나 해본 터라. (솔직히 동남아 리조트 스파가 더 내 취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첫 세달 정도만 쓸 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새해가 시작되면 새해 목표와 함께 다이어리를 사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사왔다. 옌스가 읽을까봐 한국어로 쓰는데, 뭐하냐고 물어봐서 신년 목표 새운다 하니까, 목표가 뭐냐고 물어본다. 못지킬까봐 이야기해주지 못하겠다 하니까 그게 무슨 목표냐며 이야기하란다. 흑… 틀린 바가 없어서 이야기해줬다. 그래… 역시 목표는 공유해야 그나마 강제력이 생기지…

이번 연말 연시는 육체노동으로 점철된 시간이다. 옌스네 카약클럽 섬머하우스에서 하는 신년파티는 안가기로 해서 그나마 여유가 있긴 하지만, 우리끼리 만찬을 하기로 해서 고기 굽고 샐러드 만드는 거는 해야 할 것 같다. 거기 갈려면 음식도 해야지, 짐도 싸야지, 차도 빌려야지, 밤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하고, 다음 날 정리 및 청소까지 하고 돌아와서 차 반납하고 짐도 풀 생각하면… 안그래도 짧은 겨울방학에 출산준비까지 겹쳐 쓰러질 것 같았다. 옌스가 회사에서 샴페인 한 병 받아왔는데, 신년 만찬 하면서 그거 한 잔 마실 기회는 주시겠다고 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굽신거리며 받아야 할 것 같다. 한 잔을 모두 허할 거 같지도 않고, 나도 뭐 한 잔을 다 마실 마음까지는 없다. 출산하고 나면 꼭 한잔 마실 거라고, 좋은 것으로 한 병 준비해오라 했으니 병원에서 한 잔 쭉 들이키겠다는 마음으로 그 전까지는 그냥 맛 보는 것으로 감사해하리라.

덴마크 신년맞이는 아주 정형화되어있다. 6시에 (불필요하게 긴장한) 여왕의 송구영신 메세지를 들으며 샴페인을 마시고 (거의 전 국민이 이 송구영신 메세지를 듣는다. 공화주의자들의 군주 메세지에 대한 신봉이라니, 놀랍다.), 저녁 식사를 준비해 11시 정도까지 먹고 마시고, 신년맞이때 하는 게임 등으로 하며 놀다가, 식탁을 대충 정리하고서 TV를 튼다. 국영방송에서 중계하는 클래식 합창 공연 등을 보다가 12시가 몇 초 안남으면 테이블이나 의자 등 높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코펜하겐 시청의 시계의 초침이 12시를 가로 지르는 순간 바닥으로 뛰어내린다. 그러면 크란서케이어(Kransekage) 라는 마지판이 듬뿍 들어간 과자 같은 케이크를 먹고, 폭죽을 터뜨리러 밖으로 나선다. 폭죽놀이가 끝나면 들어와서 커피를 마시거나 와인을 더 마시면서 최소 2시까지는 놀다가 자러 들어간다. 사실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 젊은 사람들은 집에 음악도 틀어놓고 춤도 추고 하면서 새벽 다섯시까지도 논다. 물론 정말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처럼 별장이나 집에서 파티를 하는게 아니라 밖으로 나서서 클럽 등에서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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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진지하게 여왕의 2015년 맞이 송구영신 메세지를 듣고 있는 와중, 우리는 사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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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맞이 만찬 준비중. 우리는 준비가 끝났다. 집에서 만두피까지 손수 빚어 만든 군만두를 곁들인 매콤 새콤 간장소스 샐러드. 이거 빚느라 여기 가기 전에 막노동으로 고생했다. 가서는 편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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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맞이한 2016년은 내일 하루가 남았다. 이 날은 실컷 마셨더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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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코스 식사가 끝나고 담소를 나누는 중. 2015년 부활절 한국 방문시 사간 셀피스틱으로 모두를 담을 수 있었다. 다들 셀피스틱을 부담스러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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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중에도 중간중간 폭죽에 불을 붙이고 게임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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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란서케이어 준비가 끝났다. 12시 타종 전에 폭죽에 불을 붙이면 all set!  케이크 옆에 놓인 은박캔디모양은 포장지를 양쪽에서 당기면 그 안에 왕관종이가 나온 사람이 왕이 되는 왕게임 도구다. 왕이라고 특별히 대접하는 건 없던데, 아마 원래는 뭔가 하는 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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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렇게 왕은 왕관을 쓴다. 2015년 맞이 파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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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이 시작돼서 바닐려크란서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다들 의자위로 올라섰다. 2016년이 오기 몇 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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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이 밝았다. 모두 2015년(의자 위)에서 뛰어내려 2016년(바닥)에 안착. 덴마크 국가를 부르고 있다. 물론 우린 안부르고 사진 찍고 있지만… 자막이 나와서 외국인도 따라 부를 수는 있다. 멜로디를 모르는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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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일엔 안개가 자욱했다. 춥기도 추웠는데, 아무튼 우리는 큰 폭죽은 없어서 작은 폭죽으로 소소히 즐겼다.

아무튼 이 날은 정말 외식업계에는 대목인게, 밖에서 먹는 것 뿐 아니라 반 조리 된 레스토랑 음식을 1인당 7~8만원 선으로 맞춰 포장 판매를 하는데 이 시장이 엄청 크단다. 카약클럽에서도 한번 그렇게 했었는데, 조금만 더 조리하고 나면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처럼 프레젠테이션까지 그럴 듯하게 해서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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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맞이 Cofoco에서 주문한 세트의 디저트. 우리 커플이 디저트를 담당했었다.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비쥬얼이다.

한국에 비하면 정말 소비주의가 팽배해있지 않은 나라라 해도, 크리스마스나 신년 같은 같은 명절이 갈수록 상업화되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늘자 일간지 베얼링스커엔 이런 소비주의와 상업화 세태를 따르기 싫은 한 기자가 자기의 이러한 태도를 변비에 비유하고, 상업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뱃가죽이 늘어나는 지, 자기가 구토직전 한계에 도달하는 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먹어 뱃속에서 꾸룩꾸룩 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비유하며 재미있게 비꼰 컬럼이 실렸다.

뭐 이 날을 어떻게 보내든 간에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새해는 친구들과 보내는 덴마크의 연말연시는 조용하지는 않다. 많이 먹고 마시고 가장 춥고 어두운 시기를 hyggeligt하게 보내는 것, 어떤 시대가 되든 이런 모습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매년 비는 뻔한 소원이긴 하지만, 새해엔 모든 이에게 더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길!!! 2017년, 곧 만나자!

 

2016년 크리스마스 가족모임 후기

일년에 한 번, 두 분의 시고모님 중 한 분의 댁에서 돌아가면서 두번째 크리스마스 오찬이 열린다. 덴마크에서는 25일과 26일을 각각 첫번째 크리스마스와 두번째 크리스마스라고 부르고, 첫번째 크리스마스 오찬과 만찬은 24일 이브에 하고, 두번째 크리스마스 오찬은 26일에 한다. 올 해는 Faxe Ladeplads의 첫째 고모님 댁에서 하는 거였는데, 막판에 고모님 손목이 부러지면서 작년과 마찬가지로 Roskilde에서 하게 되었다.

26일 저녁에 태풍이 예보되어, 페리를 타고 돌아가셔야 하는 시부모님은 참석을 못하시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도 열차를 타고 움직여야 되었다. 이번 오찬을 호스트였던 도리스 고모님과 크눌 고모부님은 칠십년대 히피의 삶을 사셨다는데 사실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냥 봐서는 점잖은 보통의 어른들인데 히피셨다니. 옌스 왈 고모님네 서가에 히피의 삶에 대한 책도 꽂혀있다고 했다. 언젠가 두분의 소시적 사진을 보고싶다.

두분은 초반에 나와 별로 말을 섞지 않으셨다. 내가 마음에 안드시거나 영어가 편치 않으시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란 생각을 했으나, 그게 후자의 이유였음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내가 덴마크어를 더듬거리며 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하셨고, 어느 타이밍부터는 내가 영어로 말하더라도 덴마크어로 답을 하셨다. 그리고 크눌고모부님은 특히나 내 덴마크어의 변천사에 유독 관심을 많이 보이고 표현하셨다.

이 날도 나를 보자마자 몇마디 섞으시더니, 이제 정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거의 없다하시며 놀라움을 표하셨다. 더이상 다른 가족들도 나를 위해 말을 천천히하거나 영어로 말하는 수고로움을 피해도 되게되니, 나 또한 부담스러움이 사라졌다. 다른 것보다도 이제 대그룹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포함될 수 있고, 대부분의 주제를 자연스럽게 다루고 이해하게 되어서, 소외감이나 지루함이 없어졌다. 꼬맹이들의 말도 알아듣고 그들과의 친밀도도 높아져서 그들이 나와도 놀기시작하고, 내가 준비한 명절 음식들도 항상 완판되니 소속감이 더 커진다고 할까?

올해는 새우를 다져 약간의 당근과 양파를 넣어 뭉쳐만든 새우전을 준비해갔는데, 여기 음식 중 피스크프리카델라라는 생전요리와 유사한점이 많아서 그런지 생소함 없이 사람들이 smørrebrød의 토핑으로 얹어먹더라. 한국에서도 애들이 새우전 좋아하는 것처럼 여기 애들도 좋아하더라.

각자 음식 한가지씩 또는 디저트나 음료 등을 분담해서 준비하고 나눠먹는 명절은 꽤나 유쾌하다. 집에 오면 하루가 다 가 피곤하기도 하지만, 자주 돌아오는 명절도 아니고 일년에 한 번 뿐이니 즐겁게 준비할 수 있다. 내년엔 하나가 나오니 또 느낌이 완전히 다르겠지. 돌 가까이 되는 타이밍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신없게 하겠지.

덴마크에서 네번째 연말을 맞이하며

12월 22일. 동지가 지났다. 이제 해는 다시 길어질 것이고, 추위는 조금 더 절정을 향해 달리다 눈치채지 못하는 새 봄을 향해 달리겠지. 하나는 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1월 말 경에 태어날테니 이번 겨울은 뭔가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새에 지나가지 않을까 한다.

올 겨울 100년 이래 가장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하더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예보를 벗어나 유래없이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바람도 그다지 세차지 않고. 이러면 내년엔 병충해가 많이 돌텐데…

친구들을 불러 한국 음식을 차려 송년회를 했는데, 한 친구가 포인세티아를 사왔다. 살까말까하다 사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나는 포인세티아. 들어갈만한 적당한 화분이 없어서 검정플라스틱 화분을 감싸고 있던 녹색 포장지를 적당히 구겨 집에 있던 검정 리본으로 둘렀다. 밑에 접시를 받혀 창가에 두니 완연한 크리스마스 느낌이다. 선인장류가 아니면 1년 내에 식물이 죽어나가는 우리집에서 얼마나 오래 살 지 한번 두고 볼 일이다. 죽어나가는 식물의 수가 늘어가는 만큼 경험의 축적과 함께 평균 생존기간도 늘어나니, 혹시 또 아나? 이 포인세티아가 우리와 한참을 함께할런지.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도 끝났고, 26일에 있을 2차 크리스마스 오찬에 선보일 한식 메뉴도 결정했다. 시아버지의 자매들과 그 아래 직계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큰 모임이라 포트럭 스타일로 각자 메뉴를 하나씩 준비해오는데, 덴마크 전통 크리스마스 오찬 메뉴가 있어서 거기에 적당히 어울리는 음식으로 가져가야 한다.

작년엔 김밥을 해갖는데 인기가 매우 좋았다. 애들도 좋아했고. 그러나 시간상 점심이고, 차로 한시간 반 정도 가야 하는 길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 계란지단 부치고 오이를 소금에 절이고, 당근과 시금치, 고기 볶아 갓지은 밥에 마는 게 너무 힘들었다. 시간에 쫓겨 막판엔 집을 폭탄맞은 듯한 상태로 놔두고 갔는데, 집에 돌아와서 집안 가득한 참기름 냄새를 맡으니 피로가 어찌나 몰려오던지. 올해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새우전을 부치려고 한다. 전날 부쳐서 당일에 현장에서 데워 내면 되니까.

옌스네 가족 및 옌스 시누이네 가족과 함께 할 24일 메인 크리스마스 만찬은 옌스 시누이네서 하는데, 내가 합류한 이후에도 우리 집은 초콜릿과 디저트와인 등 돈으로 떼울 수 있는 쉬운 것을 맡고 있다. 명절에 돈으로 떼우는 게 쉽다는 건 해보니 알겠다. (머리로도 알긴 했지만, 해보니 정말 실감난다.) 그래도 한국식 생각해보면 정말 간단한 명절 준비다. 각각 집에서 큰 준비는 다 해와서 현장에서 데우는 식으로 해서 음식을 내니까. 올해는 원래 더 먼 Faxe Ladeplads로 가야했는데, 시고모님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작년과 같이 로스킬레로 간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중 침대 조립하고, 유모차 조립/해체법에 익숙해지도록 연습 몇 번 해보고, 하나 양말 몇 개 사고, 아기 용품 빨래만 하면 하나를 맞이할 준비는 거의 다 끝난 것 같다. 어제 친구와 함께 아이들 옷과 용품을 중고로 내놓는 중고 상점에 다녀왔다. 장소를 대여하는 업체가 운영을 담당하고, 팔 물건이 있는 사람들은 매대를 대여해 제품에 태그를 붙여 비치하는 영구적인 벼룩시장이다. 여기서 옷가지 몇 개와 모유수유 책 한권을 사왔는데 참 저렴하더라. 첫 한 해에 입을 옷은 사이즈가 다양하게 있는 편이어서 앞으로 1년은 여기에 많이 의존할 예정이다. 굳이 하나에게 새 옷을 입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애들은 워낙 빨리 자라니 새 것을 필요한 양만큼 사기엔 낭비가 크니까.

내가 이 곳에 산지도 어느새 3년 반이 다 되어간다. 정말 별로 오래 안된 것 같은데 벌써 3년 반이라니… 다행인 건 이 나라와 나의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않았으니 완전한 정착을 한 건 아니지만, 그냥 일상생활 속에서는 이방인 스트레스를 거의 졸업한 것 같다. 여기 신문을 읽으면서 한국 신문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고 여기 물정에 더 밝아지게 된다. 물론 한국의 정치기사는 워낙 요즘 정치가 신묘하고 황당하게 돌아가다보니 관심을 끌 수가 없지만… 그 밖에 일에서는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식사하는 방식이나 소소한 일상의 행동도 여기식으로 많이 바뀌었다. 임신이라는 경험과 출산 모두 이 곳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교육받고, 몸조리도 여기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게 될테니.

한국에서 살면서 항상 튀어서 지적받고 했던 내가 여기에선 크게 유별나지 않은 사람이 되서 그런가. 이국의 땅에 있지만 이곳에 살면서 내가 이방인이라고 느껴지던 순간들은 한국에서 비슷하게 느끼던 순간들보다 적으면 적었지 더 많지 않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성인이 20대 후반까지 자란 사람이라 절대 이들과 동질성을 느끼는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야 하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 사회를 더 이해하게 되고 녹아 들어가면서 한국인과 덴마크인의 모습이 뒤섞인 사람이 되겠지.

옌스가 스케이트를 타러 아이스링크에 간 사이 크리스마스 캐롤 피아노곡을 들으며 혼자 글을 쓰고 있으니 왠지 감수성이 넘쳐흘른다. 열흘에 불과한 짧은 연말연시 연휴, 프로젝트도 하고 출산준비도 하며 바쁘게 달려갈 생각을 하니 오늘의 평화를 더욱 잘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이 깊어가니 쿠키를 곁들여 디카페인 커피 한 잔 하며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 요즘 간혹 덴마크의 hygge가 소개되곤 하는데, 정말 별 것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없어도 되고, 꼭 촛불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 혼자 온기가 느껴지는 포근한 시간을 보내면 그걸로 충분하다. Jeg skal hygge mig herhjemme alene lige nu!

임신 후기, 병원 방문 단상

임신 중기 이후, 굳이 심박이 느껴지는 곳에 손가락을 올리지 않아도 심박수를 셀 수 있게 되었다. 심박의 강도가 세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간혹 그 심장의 박동이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호흡이 불편해지고 오심이 날 때가 있다. 심박수는 대충 80과 90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으니 특별히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난번 방문 이후로 의사가 좀 이상하다 싶은 건 오라고 했기에 예약을 잡고 병원을 방문했다.

심박이 불규칙한 건 아니고 규칙적인데 불편한 정도로, 어렸을 때 별다른 심장 질환이 없었다면, 지금 검사한 정도로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잠시 누워보라고 할 때 한 다리를 먼저 얹고 다른 다리를 끓어올리는데, 사흘 전부터 다시 시작된 치골통에 약간 신음을 하며 미간을 찌푸리니까 의사가 그렇게 움직이면 안된다고 한다. 양 다리를 벌렸다가 오므리는 활동은 치골통이 있는 경우 이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니 반드시 두 다리를 모아서 동시에 움직이라고 한다. 또한 잘 때 다리 사이에 베게를 끼우고 자라길래, 그건 이미 하고 있다고 답했다.

출산 후 몇 주 안에 없어지는 통증인데, 지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정 힘들면 파노딜같은 진통제를 먹으란다. 다 그렇게 한다고. 그런데 이런 치골통이 임신후기에 느껴지는 건 서서히 아이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골반뼈가 양쪽으로 벌어지는 때문이라며 몸이 출산에 준비하는 신호이니 좋은 거라며 위로해준다. 오늘 치골과 그 반대편 허리아래편이 아프던데, 이제 서서히 준비하는 거로구나 싶으니 빨리 이런저런 출산 준비를 마무리해야겠다 싶었다.

다음 주말 크리스마스엔 시부모님이 오셔서 우리 가구 움직이고 하는 거 도와주시겠단다. 난 이제 무거운 거 들면 조산할 수 있어서 안된다며. 칠순이 넘으신 시아버지가 괜히 힘쓰시다가 아파지시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더라. 차라리 옌스 친구를 부르는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한데, 도와주신다니까 우선 알겠다고 말씀은 드렸다.

배가 급격히 나오고 있다. 물론 이틀간 연이은 크리스마스 디너에 변비가 겹쳐 배가 더 나온 것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도 이미 배가 좀 급격히 나왔었다. 11월 하순 이후로 체중은 더이상 안늘고 있는 것 같다. 거의 한달 정도 되었는데. 아무래도 조금만 많이 먹어도 배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냥 임신 전과 다를 것 없이 먹게되는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그 기간중 애는 1킬로는 늘었을텐데, 내 몸에서 1킬로 정도가 빠진 모양이다.

나와 예정일이 같나, 하루차이인가 하는 지인은 양수가 부족해서 37주에 유도분만이든 뭐든 해서 애를 낳을 거 같다고 한다. 여기에선 딱히 양수를 검사하는 건 아닌데, 촉진을 통해서 자궁 크기와 아기 크기를 판단하니까, 그 두 개가 정상이면 양수도 정상이라고 판단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이제 이번주 수요일이면 모유수유 교육이 있다. 그게 끝나면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3주의 부모준비교실이 끝나는데, 사실 안가도 출산하고 수유하면서 배우게 되겠지만, 미리 알아두면 우리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를 알 수 있게 되서 조금 더 준비하기 수월해지는 것 같다. 또 책에 써있지 않지만 우리가 궁금해하는 병원의 프랙티스에 대해서는 따로 질문을 통해 배울 수 있고, 다른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질의응답을 통해 들으면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고민해 볼 수 있어서도 좋다.

이제 6주도 채 안남았는데, 크리스마스 명절에, 프로젝트 제출 및 시험도 있고 하니 정신없이 지내다가 덜렁 애를 낳을 것 같다. 시간이 어찌나 쏜살같이 흘러가는지. 오늘 병원에서 내 진료차례를 기다리며 여러 꼬마 아기들을 많이 봤는데, 저게 내 미래구나 싶어 새삼 두근거렸다. 흠흠…

이웃집과의 소소한 기싸움

우리 아랫집의 맞은편에는 어린 아이가 둘인 싱글맘이 산다. 삶에 항상 찌든 듯한 표정을 보면 다소 안타깝기도 해서 가만히 있었지만, 거의 이사온 지 1년이 다되가는 지금까지 여러모로 참은 것들이 쌓여서 작은 대응을 시작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애를 자꾸만 공용 복도로 내보내고 자기네 집 문은 닫아 잠근다. (여기는 닫으면 잠기는 구조) 둘째 애가 이제 만 세살 조금 안된 것 같은데 복도에서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곤 한다. 한두살 차이나 보이는 오빠가 조용히 하라고 하는데, 그냥 애가 소리 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처음엔 우는 소리인가 했더니 신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우리 라인에 이 집만 이런 애가 있었던 게 아닌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째야 할 지 잘 모르겠더라. 영국 친구들은 애랑 엄마를 같이 마주치면 “네가 그 목소리가 큰 애구나!” 또는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인 줄 몰랐구나!”라고 살짝 비꽈주라는데, 애만 밖에 내어두니 그럴 기회가 잘 없었다.

한달 정도 전부터는 더이상 놔둘 수가 없었다. 출근하고 나가버리는 다른 집 사람들은 괜찮다쳐도 학교 안가고 집에서 공부하는 날들이 있는 나에겐 오전 9시~10시 경에 신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아이를 더이상 참기에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는 아이네 집 앞으로 내려가 여기는 너네 집이 아니라 공용공간이고 소리를 질러서는 안된다고 차분히 타일렀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왜?”를 반복하는 아이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집 안에서 애 엄마가 불쑥 나오면서 애를 집 안으로 들이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애를 집안에서 소리지르게 놔둘 인내심은 부족했던 엄마지만, 남에게 애가 잔소리 듣는 일은 싫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애를 복도에 풀어두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고, 어디 나가기 전에 잠깐 애 먼저 나가게 해서 소리지르는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옌스에게 하니, 사람들이 애들을 갈 수록 버릇없게 키우면서도 남들이 자기 애에게 한소리 하는 건 다들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한다. 하나가 나중에 어디 가서 버릇없이 행동해서 남에게 피해를 준 경우, 상식적인 선에서 남이 타이르는 것에 대해선 받아들일 거라면서 이 부분을 잘 못하는 부모가 늘어나는 게 아쉽다고.

두번째는 우리 아파트 라인의 출입구앞에 자전거와 유모차를 항상 두는 것이었다. 아파트 복도가 넓지 않고 소방안전 등의 문제가 있어서 복도와 출입구 앞에 물건을 적재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처음엔 한두 번이었는데, 누가 딱히 제제를 하지 않으니 6~7개월 정도 전부터는 항상 그곳에 두기 시작했다. 가을이 지나서는 쓰지도 않으면서 거기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전거와 유모차를 주차해 두었다. 먼지도 쌓이고 그 안에 빈 병 같은 것도 놓이기 시작했다. 공간이 작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서 유모차를 집으로 올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자전거와 유모차를 위한 지하 주차공간에 두는데, 우리처럼 새걸 사는 경우는 집에 올리거나 자기 창고 안에 넣어둔다. 거기가 조금 좁아서 주차하고 빼오기가 불편한 경우가 있는데, 자리가 없는 건 또 아니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디 나갈 때 일찌감치 여유있게 내려가서 챙겨야 한다는 것만 생각해두면 큰 불편은 아니다.

좁은 창고에 불뚝나온 배를 안고 들어가 유모차 주차 공간을 만드려고 먼지 들이키며 정리 및 청소를 하고, 자전거 빼올 때마다 많은 자전거 해치며 씨름을 하더라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아파트의 규칙을 지키려는데, 갈수록 더 규칙을 안지키고 주변을 어지럽히는 이웃이 참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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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후 창고. 유모차는 이곳에 주차할 수 있겠지.

결국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메일로 불평을 여러차례 했다. 담당자가 이웃에게 경고서한만 발송하며 6주가 넘도록 해결을 잘 안해주길래, 그녀의 보스를 참조로 넣어, “이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문제를 해결 안해주면 이게 새로운 규칙인 줄로 이해하고 앞으로 자전거니 뭐니 우리도 다 출입구에 주차하겠다”라고 메일을 넣었다. 다음날 새벽 6시 반에 답장이 와서, 바로 주민과 전화해보겠다며 절대 주차하면 안된다고 보스에게서 답장이 왔다. 복도 규정공고문에 붙어 있듯이 이런 건 주차하면 안된다고.

이런 공식적인 불평에 더불어 비공식적이나 적극적인 대처를 추가하기로 했다. 공식적 항의서한을 보낸지 한달이 조금 넘은 시점부터는 이게 과연 이렇게 해결될지 확실하지 않아 뭔가 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녀의 유모차와 자전거를 사진으로 찍어 우리 라인 전체사람에게 쓰는 공고문처럼, “자전거, 장난감, 유모차는 공용공간인 출입구 앞에 비치해서는 안되고, 지하실 전용공간에 두어야 한다. 이 사진은 하면 안되는 행동의 대표적 예시다. 모두가 규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덴마크어로 써붙였다. 규정 공고문 바로 아래에. 안그래도 그걸 붙이겠다고 했던 이야기를 들었던 옌스가 집에 와서 웃더니, 몇 개 문법을 수정해야지 아니면 네가 붙인 거 알겠다고 한다. 그리고 문법은 틀리지 않았어도 너무 딱딱하고 공식적인 것 같은 표현은 수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빨간펜으로 수정을 해주었다.

다음 날, 학교가는 길에 보니 그 공고문은 사라져있었다. 옌스가 퇴근한 이후에 사라진 것이니 청소부가 뗀 것은 아니고. 수정한 문서를 붙이고 떼는 숨바꼭질 같은 일이 일주일여간 지속되더니 유모차가 사라졌다. 그리고 공고문이 남아있었다. ‘아하… 유모차 치운 것으로 떳떳해졌군! 그런데 자전거는 안치워도 떳떳한 건가?’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고문에 자전거 부분을 강조해서 “자전거는? (Hvad med cyklen?)” 이라고 손으로 쓴 뒤 다시금 붙였더니 이틀 만에 자전거도 사라졌다. 열흘 정도 씨름을 하고 나니 해결이 되었구나.

진작 얼굴보고 불평했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안되었을 수도 있는데, 뭔가 이사온 초반부터 안맞는 이웃이었다. 인사를 여러 번 해도 씹고 (지금은 그 집이 먼저 인사하기 전엔 나도 인사 안한다.), 애가 뭘 복도에 엎으면 남들같으면 치우는데 치우지도 않아서 다음주 청소부가 걸레질을 할 때까지 복도를 엄청 끈끈해진 채로 놔두고, 뭐 빌린다고 불쑥불쑥 와서 강한 율란 억양으로 빠르게 이야기하고, 내가 외국인이라 그러니 천천히 이야기해달라고 해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두르륵 이야기 하고 가는 등… 발코니에 남이 보이도록 뭘 적재하면 안되도록 되어있는데 (이건 참 신기한 규정이다. 밖에서 보이는 아파트가 지저분해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이니.) 이사온 지 일년이 지나도록 그 집 발코니는 안이 거의 안보일 정도로 뭔가 쌓여있다.) 그거 안지킨다고 옌스가 여러번 지적하더라. 아무튼 뭔가 상식이 통하는 집은 아닌 거 같아서 얼굴 보고 불평하며 얼굴 붉히기 싫었다. 그래서 이런 치사한 방식으로 해결을 한 거다.

공고문을 붙이는 순간부터는 더이상 이 일이 짜증나기보다는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 숨바꼭질 같아서 재미있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오기를 부렸다. 해결되고 나니 십년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다시금 아파트 주변 환경도 깨끗해지고. 애들도 소리를 안지르고. 옌스가 나중에 하나 태어나면 그 집 앞에 가서 소리를 지르게 해봐야 하는게 아니냐 할 정도였는데. 🙂

논문 프로젝트 시작

출산 및 육아휴직때문에 논문의 공식적 시작은 2018년 2월부터지만 교수의 너그러운 배려 덕분으로 Contract sign 없이 미리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첫 미팅은 잘 끝났다. 이렇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논문을 쓸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의외로 주제 뽑는 문제가 스르륵 풀려버려서 이제는 데이터 수집하고 준비해서 쓰기 시작하면 된다. 덴마크어로 된 자료 수집도 필수불가결한 거라, 교수가 덴마크어 어느 정도 하는지 물어봤는데, 사전 써가며 신문 읽을 정도 된다고 하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정부 보고서가 덴마크어로만 된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논문 키워드는 헤도닉 모델, 홍수이다. 계량경제학, GIS, 헤도닉 모델을 열심히 파게 될 것 같은데, 하나가 얌전한 아기로 잠을 많이 자주면 조금 더 미리 많은 것을 할 수 있어 홍수피해방지책에 대한 CBA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 그 건 번외로 하고 논문은 범위를 조금 더 줄여서 컴팩트하게 가려고 한다.

쿨한 교수와 함께 하게 된 것도 좋은데, 교수가 이 주제대로 나오면 정말 cool할 것 같다고, 덴마크에 없는 자료를 만드는 것이니 여러 지방정부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더 좋았다.

논문이란게 이렇고 시작하다가도 여러가지 장벽을 만나 꼬여 방향을 틀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지만, 사람들이 한결같이 우선 쓰기 시작해야 한단다. 그래야 고칠 게 있지, 쓴 게 없으면 고칠 수도 없단다. 맞는 말이다. 지난 번 소논문 쓸 때도 쓴 게 없으면 지도교수도 도와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고, 실제 그를 피부로 느꼈다.

아직 하나가 나올 때까진 시간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겠다. 읽을 거리들도 읽어두고, 뇌도 계속 깨워두고.

교수가 카페에 데려가 옆에 재워두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라떼 아기”이면 미리 일하기 수월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 끊임없이 소리지르고 우는 아이면 애를 보육원에 보낼 때까지 일하는 건 거의 포기해야 할 것이란다. 그래서 한국 갔다와서 한 9~10월때쯤 애를 보육원에 보내려한다 했더니, 자기네도 9개월 때 보냈다며 그때 보내기 괜찮은 때 같단다. 애가 스스로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하는 타이밍이라 그런대로 보낼만 하다고. 그전에 보내면 그런 소통 자체가 어려우니 혼자 거의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좀 많이 안쓰럽다고. 그렇게 애를 보내기 시작하면 좀 본격적으로 일 할 수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도 해준다. 중간에 언제고 연락하고 찾아오란 말을 더하며.

마음이 편해졌다. 집에 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 연하장도 부치고 나니 뭔가 한 해를 거의 마무리한 느낌도 들고. 하나가 좋은 타이밍에 와줘서 삶이 조금 더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는구나 싶어 고맙기도 하고 좋다. 비가 와 날은 참 우중충하지만, 바나나와 아몬드, 고지베리를 넣고 따끈하게 오트밀을 끓여먹었더니 마음도 푸근하다. 조금 있다가 오후에 옌스와 함께 산모교실도 다녀오고 하루를 잘 마무리해야겠다.

연극 Svantes Lykkelige Dag (스반테의 행복한 날)

모듈 2였나. Svantes Lykkelige Dag라는 시를 수업 중에 접한 것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운율에 대해 배우며 어떤 상황을 묘사한 것인지 해석하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만 기억난다. 많은 덴마크인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 시에 대해 그 때 가졌던 인상은, 인생의 소소한 기쁨에 즐거워하는 덴마크인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Nørreport역에서 환승을 하다가 바로 아래의 사진과 함께 적힌 이 시의 제목과 마주쳤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Anders W. Berthelsen이 주연을 맡는 것을 봐서 더 눈에 띄었다. (이 배우는 덴마크에서 시작된 dogma 95 – 교리에 가까운 원칙과 순결선언문을 기반으로 한 특별한 영화제작방식 – 영화 (Festen, Mifunes Sidste Sang, Itanliensk for Begyndere 등) 에 많이 출연했고, Krønikken을 포함해 다수의 TV 시리즈에도 출연했다.)  연극!

덴마크에서 본 첫번째 연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다. 덴마크어로 된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읽지않고 발레 공연을 예매한 줄 알았던 것이 하필이면 연극이었다니. 덴마크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고, 덴마크어라고는 인사 외에는 아는 게 없던 시기였다. 발레를 먼저 고르고 2013-2014 시즌을 선택한 줄 알았더니, 그 시즌이 발레의 하위카테고리가 아니었다. 그냥 별개의 카테고리였는데, 내 멋대로 한국 웹사이트 방식에 익숙한 사고방식을 여기서 그대로 적용해 그렇게 이해한 것 뿐이었다. ‘악령을 발레로 해석하다니! 정말 흥미진진하겠는걸?’ 이라는 생각으로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예매한 것이 실수였다.

그걸 뒤늦게 알고나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갔는데, 그건 내 말도 안되는 착각이었음이 극 시작 후 10분만에 드러났다. 우선 원작을 그대로 상영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적 배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70년대를 풍미하던 히피즘을 배경으로 다 바뀌었는데, 음악도 파격적이고, 덴마크 극 문화를 전혀 모르던 내게는 무대 장치부터 너무 생경했다. 스토리를 모르는 것도 그렇지만, 극의 진행으로 미루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는 것 조차 힘들만큼 어려웠다. 등장인물은 또 어찌나 많은지. 러시아문학의 특성을 고려해봐도 그렇긴 하지만, 난 그 난해함에 압도되어버렸다.

결국 1시간 30분동안 앉아있다가 인터미션 때 도망을 치고 말았다. 더이상 남은 한시간 반을 그런 멍한 정신상태로 앉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랬던 나의 덴마크 첫 연극 감상은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겼더랬는데, 또 연극이라니! 그런데 자막이 나온단다. 영어, 덴마크어 그리고 아랍어로. 남편은 연극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혹시 가겠냐고 물어보니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가주겠다고 했다. 기대한 바 그대로여서, 우선은 다른 사람을 먼저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한번 가보자고 했는데, 그녀가 흔쾌히 승낙을 했다.

La Petanque에 들러 간단히 걀레뜨로 식사를 하고 호수를 건너 Nørrebro로 향했다. Nørrebro의 메인 거리인  Nørrebrogade만 보고 이 지역을 힙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약간 지저분한 지역으로 알고 있던 그녀는 이 메인거리를 중심으로 양쪽에 퍼진 작은 길들에 Hyggelig한 가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어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나와 옌스의 생활반경에서 약간 벗어나있어 친구들 만나는 거 아니면 안가게 되는 이 곳. 오래간만에 목요일 (작은 금요일이라고도 불리는…) 에 나가보니 그 릴렉스한 분위기에 나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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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외관

8시에 시작하는 연극에 맞춰 극장에 들어서니 안이 정말 아늑했다. 연령대가 높은 관객이 주를 이루고 있는 듯했으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아마 이 시를 발간되고, 사랑을 받았던 시기가 70년대라 주 관객층도 이 시를 즐겼던 당시의 젊은 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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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내부 휴게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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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연극이 시작되었다. 어라? 그런데 자막은? 자막이 나올만한 구석도 없는데다가 어디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자막을 볼 수 있는 앱이 따로 있단다. 그냥 자막이 나온다는 한 줄을 보고 그 아래 부연 설명을 잘 안읽은게 함정이었다.)

아뿔사. 나는 그렇다쳐도 내 친구는 어떻게 하나. 살면서 연극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이게 3번째 정도 되는 거라고 했는데, 나의 덴마크 첫 연극과 같은 경험을 안겨주게 되나? 그녀도 덴마크어를 배우고 있으니 이해할 수 있을까? 연극이 시작되며 내가 이해되는 양을 보아하니 그녀에겐 조금 더 어려울 텐데 과연 괜찮을까? 등등…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이 빠르게 교차했다.

그나마 그녀는 연극에 대해 읽어보고 왔고, 나는 아무런 배경지식을 쌓고 오지 않아서 비슷하게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연극은 Benny Andersen이 이 시집을 쓰며 마주한 자기 자신과는 다른, 자기가 닮고 싶고, 지향하고 싶은 인격, 마음 속의 갈등, 이런 것들을 가상의 친구인 Svante로 만들어냈던 것, 그리고 이 Svante와 자기의 진정한 모습이 만나 화해를 하며 온전한 자신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그린 것이었다. 결국 Svantes Lykkelige Dag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그렸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1막이 끝날 때까지 Svante가 본인이 아니야? 그럼 누구지? 하면서 많은 혼란속에 보다가 인터미션에서 프로그램을 조금 읽어보고나니 대충 그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고, 머리속의 많은 혼란이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았다. 2막이 시작되며 주인공이 Svante가 자기 속의 다른, 자기가 되고 싶어하는 지향속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게 융해되어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는게 보다 명확해졌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한 Svantes Lykkelige Dag 노래가 얼마나 좋던지. 여주인공인 Lise Baastrup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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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장면

우리 말이었으면 보다 쉬웠겠지만, 한 사람의 내면 속 분화된 인격을 여러 인물로 상징적으로 분화시켜 극화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도 조금 난해했었을 지도 모른다. 연극의 묘미란 극으로 풀어낸 상징을 찾아내는 데 있으니, 그 소기의 목적을 잘 달성한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2막부터 뇌에 과부하가 걸려 집중력을 상실했다는 그녀에게 힘든 경험을 안겨준 것 뿐이려나 하고 마음이 다소 무거웠으나, 집에 돌아와 즐거웠다는 메세지를 보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좋은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다가, 앞으로 여러가지 문화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를 찾은 것도 기뻤다.

Svantes Lykkelige Dag의 작가와 가수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라이브로 공연했던 영상, 그리고 그 시를 아래에 공유한다.

 

 

Svantes Lykkelige Dag

Se, hvilken morgenstund!
Solen er rød og rund.
Nina er gået i bad.
Jeg’ spiser ostemad.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lomsterne blomstrer op.
Der går en edderkop.
Fuglene flyver i flok
når de er mange nok.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Græsset er grønt og vådt,
Bierne har det godt.
Lungerne frådser i luft.
Åh, hvilken snerleduft!
Glæd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Sang under brusebad.
Hun må vist være glad.
Himlen er temmelig blå.
Det ka jeg godt forstå.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Nu kommer Nina ud,
nøgen, med fugtig hud,
kysser mig kærligt og går
ind for at re’ sit hår.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enny Andersen 이 쓴 시는 1972년에 출간된 ‘스반테의 노래’ 시집에 실렸으며, 가수 Povl Dissing이 노래를 부르고 Benny Andersen이 반주자가 되어 1973년 LP판으로 발매되었다.

Source: http://www.festabc.dk/1/svantes-lykkelige-dag

 

사족. Povl Dissing이라는 가수는 노래를 잘 부른다기 보다는 그만의 매력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은데, 사형수의 형집행 전 25분을 그린 아래의 노래를 보면 그가 얼마나 독특한 가수인 지 알 수 있다. 상황 묘사 후 아직 25분이 남았다, 아직 24분이 남았다, …, 아직 1분이 남았다, 하고 25번을 반복하다가, 마지막 상황 묘사를 마치고 음악이 멈추며 형이 집행되었음을 암시한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며 갈 수록 절박해져가는 그의 목소리에서 정말 형 집행을 앞두고 노래부르는 사형수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덴마크스러움이란?

11월 말이 되니 Spotify에 캐롤 믹스가 넘쳐난다. Julesange du kender (Christmas songs you know)라는 믹스가 추천으로 떠서 틀어보니, 덴마크 크리스마스 노래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Jul-Det’Cool이라는 노래가 첫곡으로 나온다. 이젠 나이가 꽤나 든 덴마크 래퍼인 Mc Einar의 노래인데, 소비지향적인 크리스마스를 덴마크인 특유의 아이러니한 유머로 비꼰 노래다.

Jul-Det’Cool by Mc Ei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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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MC Einar. (Source: BT)

Det skete i de dage i november engang
at de første kataloger satte hyggen i gang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ebal i Nisseland, familiernes fest
med fornøjet glimt i øjet, trækker folk i vintertøjet
til den årlige folkevandring op og ned ad Strøget
der bli’r handlet, pakket ind, og der bli’r købt og solgt
tøsne, snot i næsen, det’ pisse koldt
det er vinter, man forventer vel lidt kulde og sne
men det’ da klart at en såd’n sag må komme heuj bag på DSB
intet vrøvl har de forsvoret, det de helt sikre på,
men ved den første rim på sporet, går møllen i stå
folk de tripper, skælder ud, og ser på deres ure
og sparker efter invalide, ynkelige duer
der er intet, man kan gøre, de sure buschauffører
gør det svært at praktisere lidt julehumør
“Gå så tilbage for helvede” råber stodderen hæst
men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r er mænd, der sælger juletræer på alle åbne pladser
12 bevægelige nisser og en sort mekanisk kat
i et vindue ud mod Strøget trækker flere tusind watt
kulørte gavepakker i kulørte juleposer
selv i Bilka og i Irma og i alle landets brugser
er der ægte julestemning og gratis brune kager
der er hylder fyldt med hygge, der er hygge på lager
og hos damerne i Illum kan man få det som man vil
“Kontant eller på konto, hr.? Ska’ prisen dækkes til?”
de smiler og er flinke, mest for fruerne i minke
og gi’r gode råd om alt fra sexet undertøj til sminke
og vi andre fattigrøve, vi ka’ gå i Dalle-Valle
der er damerne så flinke, at de smiler pænt til alle
der er masser tøj i kasser, der helt sikkert passer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15.000 mennesker i Magasin
de har våde lædersko, de har halstørklæder på
de har overfrakker, gavepakker, masser de ska’ nå
men de hygger sig, sel’fø’lig gør de det
plasikstjerner, plasikgran og plastiksne
sætter stemning i systemer, det’ så nemt og nul problemer
køb blot julestuens julesæt med fire fine cremer
eller sukkerkrukker, pyntedukker, pænt, mondænt og ganske smukt
søde sæt med proptrækker, glas og øloplukker
fra en skjult højtalerinstallation,
“Et barn er født i Bethlehem” i Hammondorgelversion
vi’ traditionsbundne folk, i traditionernes land,
så vi hygger os, li’så fint vi kan
og særlig uundværlig, det er Magasin,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Højt fra træets grønne top”
“Mød julemanden klokken 13, 15, og 17 på julestuen på 3. sal”
“Vores velassorterede vinafdeling kan tilbyde et komplet gløgg-sæt for kun 39.95”
“Lille Øjvind på fem år er blevet væk fra sin mor, han kan afhentes i kundeservice”

“Jamen du godeste er det allerede…”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der er intet lavet om siden sidste år
det’ de samme ting vi spiser, det’ de samme ting vi laver
de samme ting i TV, de samme julegaver
samme pengeproblemer, det’ dyrt og hårdt
udelukkende overtrukne kontokort
overflod og fråds med familie og med venner
samvittigheden klares med en ulandskalender
det’ julefrokosttid, traditionspilleri, spritkørsel, utroskab, og madsvineri
vi har prøvet det før, vi ved præcis hvad der sker
slankekur i januar og alt det der
det’ et slid, men der er lang tid til næste år
det’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Jeg drømmer om en hvid sandstrand,
med palmetræer og sommervejr
der vil jeg fejre julen
i swimmingpoolen
langt væk fra sne og juletræer”

옌스는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걸 매우 웃기게 생각한다. 가사도 모르던 이 노래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접하게 되면서부터다. 출근 길에 화장하면서,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항상 들었는데, 거기서 이 노래를 정말 자주 틀어줬다.

옌스가 간혹 나보고 자기보다 더 덴마크인스럽다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다. 덴마크 캐롤을 좋아하는 것,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Ris a la mande (프랑스 메뉴인 척 하는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디저트)나 Æbleskiver를 먹고 싶어하는 것, 덴마크식의 self-irony 유머를 즐기는 것 등 말이다. 사실 self-irony 유머는 그냥 여기에 와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덴마크 문화와 맞아떨어진 개인적 특성일 뿐이지만…

그런데 막상 옌스는 덴마크인스럽지만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사람이기도 해서 진짜 덴마크인스러운 게 뭔지는 집 안팎을 두루 관찰하고 이야기를 골고루 듣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실제 옌스는 전형적 덴마크인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한다. 남들끼리는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는 공감하기 어렵고, 반대로 내 경험을 남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을 꼽아보자면… Rugbrød(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에서 주로 먹는 호밀빵으로 점심때 먹는다.)은 가족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행사같은 날 빼고는 안먹는 것 (자기는 어려서 평생 먹을 Rugbrød을 다 먹었다며…), 있으면 먹지만 Lakrids (감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각종 종교적 전통을 좋아하지 않는 점 (크리스마스때 선물 교환은 딱 조카들과 나에게만 하고, 가족들에겐 선물 안주고 안받는다고 못을 박아두었다.), 새로운 음식이나 새로운 문화, 언어를 배우는 것 등을 좋아하는 점, 덴마크를 좋아하지만 굳이 덴마크를 자랑스러워하거나 덴마크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거나 그런 게 없다는 점, 그래서 내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점, 덴마크 국기인 Dannebrog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맥주를 안좋아하는 점 등이다.

덴마크인스러운 점도 물론 많다. 운동을 정말 좋아해서 하루라도 운동을 빼놓는 날이 없다는 점, 매사 성실한 점, 개인생활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시하고 가사분담 참여비율이 높다는 점, 직업 윤리가 투철하다는 점,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점, 집에서 밤에 불 밝게 켜는 것 싫어한다는 점 (현광등은 정말 질색팔색한다. 한국가서 한두달 지내려면 적응하느라 고생 좀 할 듯), 겨울에도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자야하는 점, TPO에 맞는 옷을 잘 차려입는 것 좋아하고 패션에 대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점 (자기 것 쇼핑은 반드시 자기가 한다. 의견은 수렴하지만, 결정은 자기의 몫. ) 등

물론 이러저러한 특성을 굳이 덴마크인스러운 점과 그렇지 않은 점으로 나눴지만, 사실 외국인 남편과 그의 모국에서 살다보니 국민적 특성이란 것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개별특성의 스펙트럼이 평균으로부터 워낙 넓게 펼쳐져 있어 저 구분이 틀리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이 또한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 자기가 교제하는 사람과 준거집단을 중심으로만 살펴보게 되서 덴마크인스럽다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겐 전혀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도 많고, 내가 덴마크인스럽지 않다고 하는 것도 덴마크인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친구를 초대해서 음식을 넉넉히 하다보니, 다음날 저녁에 데워서 먹을 만큼 넉넉히 남았었는데, 난 그에 곁들일 탄수화물로 빵을 굽고 있는데, 옌스는 밥을 달라고 했다. 서양음식인데 밥을? 이라는 나의 반응과 달리 옌스는 내가 해준 쌀밥이 덴마크 어느 식당에서 먹는 쌀밥보다도 맛있다면서 그걸 달라하고, 간장에 참기름을 달라해서 그 쌀밥위에 끼얹어 먹는걸 보면서 기함했다. Rugbrød위에 남들과 다른 컴비네이션을 얹어먹는 걸 봐도 크게 놀라지 않는 옌스인 걸 생각해보면 그만의 기이한 조합도 딱히 놀랄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방송에서 “진정한 덴마크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걸로 이것 저것 다양하게 다룬다. 토론, 뉴스, 다큐멘터리 등등… 옌스는 그런 토론 자체가 정말 피곤하고 언론에서 덴마크인이라는게 뭐 대단한 거고 그게 얼마나 통일성이 있는 것이고 독창성이 있는 거라고 그걸 그렇게 따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공동체 의식, 개인주의 등 가장 핵심적인 가치만이 지켜진다면 사회는 항상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고, 개인마다 덴마크인다움에 대한 정의가 다 다른데 그걸 dansk함과 udansk함을 나누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 나에게도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인 다움이 있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이곳의 가치에 영향을 받으며 한국에서 갖고 있던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너도 덴마크인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내가 한국인인 것만큼 덴마크인도 되어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 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함께 덴마크인의 행복함의 원천에 대해서 휘게와 기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찾고 이를 홍보하고 수출하는 것도 피곤하다고 한다. 그냥 타인과 비교 별로 안하고, 현실감있는 목표를 정하고,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서열의식이 적고 자연환경이 좋은 편이어서 다른 나라사람들이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덜 받고, 그래서 행복한 거 아니냐고. 그게 우리에게 특별한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란다.

이럴 때 난 덴마크인이지만 덴마크인이기만 하지 않은 옌스와 결혼을 한게 참 안도가 된다고 할까? 안그래도 타국에서 살면서 적응할 게 많은데 그걸 강요당한다거나 기대를 받는다면 어땠을라나? 여기의 룰에 맞춰가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다름을 같음으로 맞춰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과, 내가 다른 건 옌스가 다른 덴마크인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다르다고 전제를 깔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리 없이 편입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고 적응을 도와주는 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이번에 새로 주문한 한국어 책에서 (한권을 드디어 끝냈다. ㅠㅠ) “하다”동사를 활용한 한국어 동사변형의 여러가지 유형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걸 패턴드릴로 연습한다고, 몇가지 동사를 주면서 이걸 같은 형식의 테이블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들어줬더니, 다음날 회사에서 출력을 해갖고 온 것을 보여주며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사실 옌스랑 나는 주중엔 퇴근 후 30분정도 그날 있었던 이야기 좀 하고, 같이 뉴스 보고, 각자 할 일 하다가 소파에서 30분 정도 같이 앉아 쉬고, 또 각자 할 일 하다가 잠자리 들어서 조금 이야기 나누는 것 정도가 일상이다. 각자 할 일 하다가 시덥잖은 말 한 두마디 던지면서 낄낄대는 것 외엔 자기 할 일 할 때는 자기 것만 따로 하기에 각자의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크다. 평일엔 저녁도 둘다 뉴스 보면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 간단히 먹으니까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게 둘이 필요로하는 공통사항이라 서로 이를 존중해주는 것이 참 좋고 고마운 거다. 우리는 서로 뭐 배우고 하는 거 좋아해서, 같이 있지만 또 각자 저녁에 배움의 시간을 가진다는 점에서 닮아서 정말 좋다고 하니까, 인생의 목적은 배우는 데 있는게 아니냐고 한다. 항상 옌스가 강조하는게 general education의 중요성인데, 이걸 덴마크인스러운 것이라고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옌스스러운 것이지.

이런 옌스와 살아서 딱히 문화충격을 받을 일이 없는 것도 있겠지만, 인도에서 겪은 문화충격이 워낙 커서 웬만한 다름에 충격을 크게 받지 않는 것도 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어떻게 적응하고 사느냐의 문제로 인식하면 되는가 싶기도 하고. 또 곰곰히 뒤를 돌아봐 생각해보면 나름 여기서도 큰 문화충격을 받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 힘든 시간들이 대부분 잊혀지고 그냥 그 틀에 내가 녹아들어가 바뀌어 더이상 놀라울 게 크게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다시 들춰보며 과거의 추억에도 잠겨보고, 스스로의 과오나 성과에서 배워도 보려고 별거 아닌 이런 생각의 조각들을 그래서 그때그때 남겨두는 거니까… 몇 년이 지나서 지금을 반추해보면 그땐 또 무슨 생각이 들런지…

새 블록의 시작 – 이 산뜻한 기분

항상 이렇게 시험이든 뭐든 한 템포 끊어주고 새로 시작하는 이벤트가 있는 것이 정신건강에 참 유익하다. 시험이 다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기분은 어찌나 산뜻한지. 아침에 일어나는 마음도 가볍고, 학교 가는 발걸음도 날아가는 듯 하다. 땅에 구르는 낙엽조차도 이쁘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절로 웃음으로 인사를 하게 된다. 내가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엄청 뚱한 표정을 멈추고 밝은 웃음으로 답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그 기분은 더욱이 좋다. 힘찬 발걸음으로 이번 학기 첫 수업을 들어갔는데, 수업 전 리딩을 마치고 가는 여유에 더욱 힘이 났었다. 과목이 하나 뿐이라 마음에 부담도 적고, 농업경제학의 Head of studies인 교수가 가르치는 Economic Efficiency and Benchmarking 과목은 교수의 오랜 경력과 민간과의 많은 공동프로젝트 경험 덕분인지 설명이 아주 명쾌, 명료했다. 생산 단위의 성과 측정은 과거 근무했던 은행에서나 KOTRA에서나 모두 KPI로 대변되는 단순한 성과측정방식에 기대고 있었기에 이보다 더 advanced한 성과평가 방식인 Data Envelopment Analysis와 Stochastic Frontier Analysis가 어떤 식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할지 궁금하고, 따라서 수업도 매우 기대가 된다.

행정적인 업무들도 미루지 않고 제때 처리하고자 국가에서 지급되는 학업지원금 SU를 육아휴직 기간에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학교 SU 담당 사무실과 우리 SCIENCE faculty 학생서비스 사무실 모두에 질의해두었다. 정부에 육아휴직 기간 중 추가 SU를 수급받는 건 온라인으로 쉽게 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답변을 받았는데,  이 기간 중 학적 처리 방식에 대해 학교 규정이 매우 애매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자세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달라고 보내두었다.

논문 주제도 결정하고 수퍼바이저도 대충 정해둬야 출산 및 육아휴직 기간에 천천히 시작할 수 있어서 희망 교수에게 여름에 미리 운을 띄워두었는데, 이 또한 구체화를 시켜야겠다 싶었다. 지난 주 세미나가 있어서 겁먹지 말고 빨리 착수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해두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만 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나같이 쉬는 기간이 없으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 나도 자극이 되어 오늘 도서관에 앉아 이것저것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싶은지만 정해져 있었는데, 바로 Environmental amenity/characteristics에 대한 economic valuation을 Revealed preference method를 통해 하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환경의 어떤 요소를 평가하고 싶은건지가 모호했고, 뭘 하고 싶은지가 애매했다.

그러다가 지난 학기에 코펜하겐 시와 컨설팅 코스에서 협업을 했던 프로젝트가 기억이 났다.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해서 했던 프로젝트로, 해수면 상승과 발틱해 상류에 폭우가 쏟아져 북해로의 유량 공급이 증가할 경우 발생할 Storm surge에 코펜하겐 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한 것이었다. 홍수 피해에 대한 Economic valuation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Revealed preference method과 GIS를 결합해 많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내 희망지도교수의 이메일을 찾으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기후변화적응 스페셜리스트라는 타이틀도 있는게 아닌가. 뭔가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예감이 좋았다. 내 관심 방법론과 분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고 뭔가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느냐고, 주제 분야 토론을 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더니, 아주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논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다고.

뭔가 움직이기 전엔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크고 뭐부터 해야할 지 잘 모르겠는데, 막상 손과 발을 움직여 구체화하려면 의외로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의 느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6개월동안 하나만을 파야 하는 논문은 자기가 관심있는 주제가 아니면 중간에 막혀서 허우적 거리고 지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들어왔다. 또한 교육을 마치고 처음으로 구하는 직장은 논문과 연계되서 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정도 전략적인 요소를 고려해 어떤 방법론을 택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 또한 들어왔다. 그래서 중요하다는 생각에 부담감만 백배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시작은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좋은 석사 논문들 보면 정말 큰 연구를 수행한 것들을 보았기에 그 과정 자체는 절대 쉬울리가 없다는 건 안다. 그러나 긴 시간 꾸준히 시간과 과정을 관리해가며 차근차근 나아가야 하는 길을 생각하면 좋은 시작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번 여름학기 수업을 들으며 여름방학이 짧아진 것과, 여름학기/가을학기 간 한주간의 방학도 없다는 것에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내 희망 지도교수와 연결의 끈을 갖게 된 것과, 그 때 고생한 덕에 지금 한과목만 들으며 논문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시간 여유가 조금 더 있기에 신문과 방송도 봐가며 덴마크어 학습도 병행할 수 있기도 하고, 출산 준비도 조금씩이나마 할 수 있을 테니 그 또한 좋은 일이고.

대학원 수업으로는 마지막이 될 블록을 맞아 시작부터 예감이 좋다. 나머지 기간동안도 잘 해서 논문 전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고, 논문 시작의 초석을 잘 닦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고 행복하겠다. 오늘 아침, 3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만 볼 수 있다는 불타는 아침 일출 하늘을 보았는데, 이 또한 좋은 시작을 알리는 그런 징조인 것만 같아 (뭐 그런거 안믿지만…) 더 기분이 좋다.

Master thesis seminar at IFRO, KU SCIENCE

There was a master thesis seminar for IFRO students at KU SCIENCE today. Heads of studies, who organized the seminar, said it was the first time they tried this type of introductory seminar for master’s programme students.

It was a very productive seminar to understand what we should expect and know in the process of thesis writing in the following semester. I will take my maternity leave for most likely a year starting from next semester, therefore, the process will start a year after. But no matter when I start writing my thesis, it was very good to know answers for following questions: how I should approach potential supervisors; how I should formulate idea and research questions when not knowing too well what to write about; how I should deal with problems such as poor research results turning out to be crappy due to low quality data or insufficient data; whether I can have a head start during the maternity leave without signing on a formal contract with my future supervisor.

The most relieving fact was that it is okay to come up with bad research results. Bad research results can produce a good master thesis depending on how to communicate the results in the paper, e.g. why the expected outcome based on theory is not observed in our empirical model; what it would have looked like if we had different datasets; what are the limitations of models that we used. If that is the case, we would not be able to publish our thesis in a journal, but what can we do if we encounter this situation? There are always risks of ending up in this situation. But this is not a professional researcher’s article that has to be published, but an outcome of a learning process to present what we have studied and found, and what we have learned from this.

Students who just finished their theses and defenses came to share their experience throughout the whole process of writing: how they started from the scratch; how they found their supervisors and group members in case of writing in groups;  how they dealt with situations like being stuck in the middle of different types of problems; importance of time management. It was good to know that not knowing where to start was not rare and a lot of other fellow students shared the same fears that I had.

It will be a challenging journey to conduct an independent project for six months. It is a long enough period of time to feel loneliness while tackling this big vague monster that we have to deliver at the end somehow. Hence, it is good to know what to expect, how to do, and so forth.

After the seminar, a small discussion and networking session with researchers at IFRO, who can provide us some guidance and offer potential project ideas. As I only had a vague idea about what kind of scientific methodology that I wanted to master with this thesis project, I stayed with our head of study, Søren, asking him some extra questions together with my fellow students. Discussion shed more lights on what I should do later on, e.g. where to browse relevant studies to inspire my own project, how to contact researchers before writing a formal contract with them.

The discussion was continued by some chats about the university reforms, PhD positions and fundings for PhD, and job prospects as an environmental economist. Well, the university reforms and budget cuts affecting PhD funding from research foundations are not favoring us at the moment. What Søren said is that PhD funding is very cyclical and now it is in its downward cycle. Arghh… Anyway, I could ask him many questions that I was curious about but did not ask before, as I did not pursue to find the time to have a meeting with him.

The seminar and following discussions lasted about two hours and a half and, in the end, it was very satisfying. I hope more could have come and joined us today, as some could not mak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