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 1 수업을 모두 끝내고 시험을 준비하며 쓰는 잡설

8주간의 수업을 끝으로 블록 1이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시험 뿐. 한 수업이 15ECTS의 큰 과목이라 이 과목은 다음 블록까지 진행되며, 시험은 맨 마지막에 한번만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 공부를 중간중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모두 통과해야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과제가 학기 중 쉴 새 없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첫 3~4주를 보내고 나서 적당히 딴짓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 것은 첫째로 덴마크어 수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한 결정과 요령이 늘었기 때문이리라.

다음주 목요일에 있을 계량경제학 시험은 총 4시간에 걸쳐서 치르게 되는데, 인터넷만 사용할 수 없을 뿐 책과 노트, USB에 담은 파일 등 모든 자료를 다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 컴퓨터로 진행되는 시험이지만, 수식, 그래프 등 손으로 그리는 게 더 편한 것은 디지털 펜을 이용해서 쓸 수 있다. 시험 프로그램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 열린 오픈하우스때 테스트해봤는데, 정말 훌륭한 펜이었다. 디지털 펜용 종이에 쓰고싶은 만큼 쓰고 나서 펜을 거치대에 꼽으면 바로 데이터가 컴퓨터로 전송되는 방식인데, 쉽게 캡처해서 워드파일에 옮길 수 있다.

학사때 시절이야 현대의 IT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물던 시절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오래된 일이니 비교해서도 안되겠지만, 불과 몇년전 석사때를 생각해봐도, 한국에서 시험이라 하면 극히 제한된 몇 개의 오픈북 시험과정 – 난 겪어본 적이 없지만, 그렇게 치른 친구들이 있었음을 기억할 뿐이다. – 을 제외하고는 펜만 달랑 들고가서, 정해진 1시간의 시간동안 문제를 읽고, 종이에 손가락과 팔뚝이 아플만큼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을 쏟아내고 오는 것이었다. 중간에 손이 너무 아파서 탁탁 털어가며 시험을 치른 것이 추억이라면 추억일까.

오픈북 시험이라 함은, 컨닝할 수 없는 시험이라는 것이고, 지식의 중요성은 암기가 아니라 논리적 추론능력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의 제한이 있기에 뭐가 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책을 찾아가면서 풀 수는 없다.

덴마크에서 시험이 갖는 의미는 우리나라나 미국에서 갖는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학생들이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아는지, 어떻게 추론해 낼 수 있는지, 어디서 추론을 못하는지, 전반적으로 학생들이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음번 강의에서 어떤 점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지를 파악해 내고, 그런 결과로 실제 작년 학생들과 우리는 약간 다른 커리큘럼으로 배울 수 있었다. 계량경제학 1을 배운지 오래된 학생들이 기본 가정에 약해 허덕이는 것을 보고, 첫 주는 전 과정의 복습으로 시작한 것인데, 엄청 빠른 속도에 다들 힘들어했지만, 중요한 기초가 되었고 대부분 이점에 동의했다.

물론 여기도 학점이 나오고, 이로써 학생들을 나래비 세운다. 다만, C에 해당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은 경우는 총 2번의 재시험의 기회가 주어진다. 바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고, 다음 블록이 끝나고 주어지기에 추가로 공부할 수 있는 두달의 시간이 생기는 셈이다. 이런 학점은 PhD 등 후속 학업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학점이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고, 영 준비가 안되었다 싶으면 포기하고 다음 시험을 치를 수 있기에 학생들이 성적을 낼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과목 공부하기도 바쁜 데 추가시험까지 치르긴 싫기에 죽이되든 밥이되든 그 학기에 끝을 보는게 더 좋다는 생각이지만, 개인적 사유로 그리 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이 제도가 숨통을 틔워줄 것이다.)

매 주 우리가 배울 내용이 무엇인지, 읽어와야 할 범위와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 수업 전에 알아두고 와야할 내용 등이 수업 전에 게시되고, 모듈이 바뀔때마다 배운 내용을 30분 정도를 할애해 복습하는 점, 학생들에게 “멍청한” 질문이 없음을 꾸준히 설파하고 질문을 장려하는 점,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변 중 부족한 부분은 추가 자료로 배포하는 등의 모습은 한국에서 공부한 16년 반 동안 한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시스템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유럽 학교들도 우리처럼 교수의 지식 전달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이다. 그런 익숙함에서 벗어나, 교육 목표에 맞는 스스로 학습과 참여가 중요한 체제에 들어오는 것이 불편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학제는 안맞는 옷과 같다. 수업시간은 길지만 그 수업시간 중 연습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되기에, 배운 것을 실생활에 접목하는 실습을 어떻게 진행해야하는지 몰라 헤메는 사람들은 멍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또한 순수 강의 시간에 수업이 진행되는 속도는 빠르기에, 한번 놓치면 허덕이게 마련이고, 아예 포기하고 프로그램을 떠나는 사람도 적지만 있다.  모든 사람을 안고 갈수는 없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을 안고가려는 덴마크 교육시스템은 본인이 노력하고, 참여하면, 그만큼 얻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떠먹여주는 것이 별로 없기에 떠다가 입에 넣어주는 학습방식에 익숙해져 있으면 초반 적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 나라의 교육도 요즘 많은 진통을 겪고 있다. 덴마크 정부가 교육예산을 대폭적으로 삭감하고, 교육개혁을 실시하면서, 학생들의 교육 선택의 자유도 예전보다 줄어들고 있으며, 인문학 등 투자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전공은 폐지의 길을 걷게 된다. 어제만 해도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미래의 대학교육 수혜자가 될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참여했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정학 등 여러가지 조치가 취해졌을 것이고, 교직원이 참여했으면 징계 처분 등이 있었을 것임을 생각해보면서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시험기간이 되니 또 이렇게 잠깐 딴짓을 하게 된다. 해야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오히려 책상정리하고 방정리하는 것과 같은 일이랄까?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시험도 끝나있을 것이고, 부모님도 오실 거고, 또 한주가 지나면 내 웨딩디너파티가 열리겠지. 시간 참 잘 간다. 스피치 써야하는데, 반도 못썼다. 옌스는 뭘 썼을까? 부모님들은 어떤 것을 쓰셨을까? 그리고 앞으로 내 앞날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긴장도 되지만 설렌다. 스트레스를 받는 날도 있겠지만, 성취의 날도 있을 것이고. 공부를 하다보니 박사과정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졸업하고 취업의 길을 택할지 공부를 더하는 길을 택할지는 지금 생각하기엔 너무 이른 일이지만,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옌스는 내 결정을 지지하겠다고 했으니 오롯이 앞으로 남은 기간 공부하면서 잘 생각해봐야겠다.

35년 수영불능자의 수영 강습기

옌스가 카약을 타기 시작한 것은 이제 거의 만 3년전 일이다. 클럽에서 카약 지도자 과정도 들으면서 주니어 강사로 봉사도 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덴마크어로만 진행되던 옌스네 클럽 과정이 올해부터는 영어로도 진행하기로 하면서 원하기만 한다면 들을 수 있는 여건은 형성되어 있다. 바다에 나가서 육지를 바라보는 일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임은 배를 타고 나가서 봤기에 잘 알고있고, 파도가 거칠 때는 파도와 싸워 노를 져 가는 일이 긴장되지만 두근거리는 멋진 경험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진작에 올해부터 카약클럽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수영. 나는 수영을 못한다. 바다의 수온이 한여름에도 20도를 넘지 않고, 봄이나 가을에는 5도 내외로 내려가기에 수영을 하기 위한 여건이 수영장보다 열악하기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잘해도 추운 바다에서는 더 어렵게 마련이다. 따라서 카약을 홀로 타기 위해서는 600미터를 쉼 없이 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지역 수영장의 초보자를 위한 코스는 항상 초과등록되어 있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연락이 잘 오지 않고, 오더라도 주중 대낮 한가운데 시간이 잡혀있어 등록하지 못하곤 했었다. 알고 보니 대학내 스포츠 시설이 참 저렴하고 좋더라. 수영 초보자 코스도 충분한 인원을 수용할 수 있게 개설되어 있었고. 물공포증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코스를 들어야 하는지, 그냥 초보자 코스를 들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다가, 초보자 코스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물이 무서워서 수영을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기에.

대학 수영장에는 다이빙 시설이 되어있는데, 그러다보니 물의 깊이가 일반 수영장보다 훨씬 깊다. 그쪽으로 수영을 하면서 깎아지르듯이 깊어지는 바닥을 보니,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듯 답답해지면서, 그 정도는 크지 않아도 나에게 물공포증이 약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영을 잘 못하니 물이 무서운 것인지, 물이 무서워서 수영을 잘 못하는 것인지는 잘 몰라도 말이다.

어려서부터 그간 수영에 꾸준히 돈을 투자했지만, 자유형으로 10미터 이상을 제대로 가본 적이 없고, 수영 교육의 기초가 자유형에 있다보니 그를 통과하지 못한 나는 어떤 영법도 터득하지 못했다. 그냥 어쩌다보니 등으로 뜨는 것만 터득했을 뿐… 한두달 다니다 관두기를 여러차례, 항상 똑같은 자유형만 반복했는데, 강습의 순서는 어딜 가나 판에 박힌 듯 짜여져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달랐다. 우선 한명이 가르치는 수업과 달리,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시간씩 배우는 수영코스는 한 명의 전문 코치와, 또 다른 한 명의 아마추어 코치가 짝을 이뤄 가르치고 있다. 덴마크어로 가르치면 나는 세세한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기에, 외국인은 나 혼자 뿐이지만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제일 처음 한 것은 입을 벌리고 물에 입의 반 정도가 잠기게끔 한다음 숨을 쉬는 것. 입에 물이 있어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항상 자유형 하면서 고개는 돌려도 숨을 쉬지 못한 이유는 입에 물이 있어서였는데, 입에 물이 있어도 숨을 쉴 수 있다니! 양치질을 하면서도 숨을 쉴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간 내가 얼마나 물을 무서워하면서 비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는지를 알아채며 깜짝 놀랐다.

수영에서 중요한 것은 물 속에서 몸의 균형을 잘 잡는 것이란다.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꽤 되자, 우선 배영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균형도 잡아야 하고, 두려움을 뚫고 숨도 쉬어야 한다면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니 방법을 바꾼 것 같다. 중간중간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서 유연하게 과정의 구성을 바꿔주니 내가 이번에는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하는 자기 불신을 뚫고 매주 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호흡의 리듬을 찾지 못해 중간에 차오르는 숨을 참지 못하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자, 그 리듬을 찾게 하고자 물속에서 점프하면서 전진하는 식으로 수영은 하지 않고 숨의 리듬을 찾는 것만 집중하게 하였고, 기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여러 항목에 조금씩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지난 시간까지만 해도 배영을 하면서도 코를 통해 마시게 되는 물이 두려웠는데, 오늘부터 갑자기 배영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지난시간까지도 자유형은 여전히 그놈의 숨을 쉴 때마다 물을 들이키게 되고, 그러다보면 두려움에 빠져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곤 했었다.

결국 초급반에서 물을 두려워하고 숨을 잘 못쉬는 4명을 분리해서 얕은 풀에서 가르쳤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물속에서 점프해 돌고래처럼 잠수해 바닥을 짚는 식의 트레이닝을 포함해 한국에서는 해본 적 없는 이러저러한 트레이닝을 시키는 대로 따라하다보니 얕은 풀에서 12미터 수영이 가능해진게 아닌가! 막판 5분을 남기고 다시 깊은 풀로 돌아가 25미터를 한번에 가는 연습을 했는데, 마지막 5미터 정도를 남기고 한번 일어났다. 20미터 가까이를 한번에 간 것이다. 내 개인 기록이고, 조금 자신이 붙기 시작한다.

흑. 이번 과정이 끝나고 나면 수영을 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나면 꾸준히 수영하러 다녀야지… 조금 자신이 붙고 나니 수영이 재미있어진다.

코펜하겐 대학교 환경자원경제학 수학 중간소감 정리

블로그에 글을 쓴 지도 어느새 한달이 넘어간다. 주당 22시간의 학교수업과 7시간의 덴마크어 수업, 이에 따르는 숙제와 읽을거리, 프로젝트 등으로 인해 잠을 줄여도 모든 것을 할 수가 없는지라, 흐르는 것을 찬찬히 보고 정리할 시간이 없어졌다. 그저 흐르는 물결속에 방향을 잃지 않도록 균형만 잡고 가는 형국이다.

코펜하겐 대학교의 SCIENCE Faculty는 1년 2학기제가 아닌 4블록제를 택하고 있다. 겨울방학은 단 2주에 불과하고, 여름방학은 한국과 동일하다. 물론 지금과 같이 가을에 1주의 방학이 있고, 블록 사이 한주간의 방학이 있지만 그걸 다 합쳐도 한국의 방학엔 비할 수가 없고, 휴일도 부활절 주간 외엔 학기중 휴일도 없으니 학업 강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프로그램엔 2명의 덴마크인 외에는 나머지 18명이 외국인인데, 다들 덴마크 수업 방식에 상당히 놀랄 정도로 학업 강도가 세다.

학교마다, 단대마다, 프로그램마다 커리큘럼이 매우 다양하고 수업의 강도가 매우 다양하기에 이를 일반화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SCIENCE Faculty에 있는 다른 프로그램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강도높은 수업과 읽을 거리, 프로젝트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다. 실례로 내가 아는 사람만 두 명,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중도 하차했다. 이는 SCIENCE 단대에 많은 자원이 분배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인문쪽 단대는 자원 부족으로 수업시수가 너무 부족해서 불만인 경우도 있다기에 불평은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인으로서 다른 나의 관점이 2년의 학업을 통해 덴마크화되어 이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게 되기 전에, 첫번째 블록의 2/3가 끝난 이 시점에서 우리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히 느낀 바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 주도적인 학습이 없으면 배울 수 없다.

첫 수업일로부터 한달 이전에 이미 읽을 거리와 교재목록, 수업일정이 배포되며, 읽을 거리를 다 읽어왔다는 가정 하에 수업이 진행된다. 한 블록에 한국 기준으로 6학점에 해당하는 과목 2개를 배우게 되기에 한 과목 당 한주에 배우는 양이 한국에서의 배가 된다. 논문을 포함해 읽을 거리를 인터넷으로 사전에 제공하기에 못찾아서 못읽어왔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또한 읽어왔다는 가정하에 수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토론과 수업 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에 준비가 부족해지면 긴 수업시간이 다 낭비가 된다. 석사과정에 진학한 사람들은 학업에 뜻이 있어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전반적으로 남달라, 다들 열심히 해온다.

  • 학업의 목표가 뚜렷하다.

전공 프로그램 및 각 과목별 학업 목표가 뚜렷하다. 따라서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자기가 얻어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전체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가 어떤 길을 갈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수업 이외의 세미나 등을 통해, 아카데믹 라이팅, 프레젠테이션, 데이터베이스 서치 방법 등 학업을 위해 필요한 툴을 사용할 방법을 함께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이 학업 프로그램 중 길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꾸준한 정보와 교육이 주어진다. 한국에서 학사와 석사를 했었을 때 내가 다른 학생 또는 선배와의 교류를 통해 스스로 찾아서 나아가야 했던 길을, 이곳에서는 시스템을 통해 꾸준히 제공해주니, 이 툴을 사용해 보다 체계적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있다.

  • 교수과 학생간의 거리가 가깝고 교수의 수업 준비가 철저하다.

교수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처음엔 그리도 낯설더니만, 이제는 편하게 이름으로만 부를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이 이 부분을 놀라워한다. 수업에 질문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꾸준히 유도하며, 질문에 명확한 답이 다 제공되지 않는 경우 별도로 연구해 답변을 제공한다. 또한 오래된 노트를 들고와서 수업을 하는 경우는 없다. 학생의 질문과 그 전 시간 진도, 학생들의 이해 수준 등에 따라 수업 슬라이드 변경, 추가자료 제공 등 피드백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제공된다. 너무 많은게 제공되서 다 읽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교수의 학업준비가 소홀하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다. 과제를 제출하고 나면 오래지 않아 교수가 항목 하나하나 검토해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한다. 그리고 교수 연구실로의 방문을 매우 장려한다.

  • 연습시간이 있어서 배운 내용을 수업 내 프로젝트를 통해 실생활에 적용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수업 시간 중 1/3은 연습에 할애된다. 교수는 학생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각 그룹의 수업내 프로젝트 수행을 돕는다.

  • 과제를 다 내고 통과해야만 시험을 치룰 수 있고, 과제를 다 통과한 사람은 대부분 시험에 합격한다.

대부분 한 과목당 과제가 2~3개 정도가 주어진다. 이 과제를 모두 제출해서 통과를 해야만 최종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시험은 구두시험이 되는 경우도 있고, 필기시험이 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시험은 모든 가용 자원을 활용해 풀 수 있게 되어있으나, 내용을 모르면 어차피 풀 수 없게 되어 있기에 컨닝은 있을 수가 없다. 과제를 통해 수업을 충분히 이해하고 가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 6주 동안 2~3개의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서는 항상 한국에서의 중간/기말고사와 같은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기에 시험기간이라 특별히 난리칠 이유가 없다. 과제는 대부분 팀 과제 형태로 제출이 되기에 동료들끼리 돕는 문화가 형성된다. 혹여나 시험에 불합격할 경우, 한 학기 후와 또 한학기 후로 해서 2번 재시험 기회가 있다. 어떻게 해서든 학생들이 이해하고 통과를 하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주도적 학습이 없이는 통과하기 어렵기에 중도 탈락이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외부 시험 감독관이 동석해 평가하기에 교수가 학점 부여에 독점적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이 줄어든다.

교수의 전권이라는 것은 없다. 외부 시험 감독관이 동석해 시험 채점을 함께 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와서 채점을 하는 것이고, 시험의 장소도 학교가 아니라 외부의 장소가 되기도 하는 등 상당히 공정한 성과 평가가 이뤄진다.

대충 정리해보니 이정도인 것 같다. 전체적인 소감을 평가해보자면, 정말 만족스럽다. 예전에는 내가 이것을 배우면 과연 앞으로 이를 써먹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면, 지금 생각으로는 이렇게 2년을 채우고 졸업하면 충분히 이 분야의 전문가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회사 생활을 12년 넘게 하다가 학교로 돌아와, 따끈따끈한 지식으로 무장한 파릇파릇한 젊은 이들과 경쟁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엄청 긴장하고 왔는데, 공부에 꼭 때가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간만에 공부를 하는 나는 그들과 달리 학업에 대한 갈망이 있기에, 그리고 또 다른 경험을 토대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있기에 오히려 유리한 점도 있다. 그리고 몇년전 파트타임으로 야간에 다시 했던 석사과정 중 존경하는 이학배 교수님께 통계학에 대해 꽤나 탄탄한 기반을 쌓았고, 다시한번 경제수학과 미시경제를 공부하면서 오래되었던 지식에 기름칠을 조금이나마 했기에 이 모든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모로 그간 이래저래 쌓아온 일들이 헛된 것은 없다는 생각에 지금 주어진 것도 열심히 하면 다 피가되고 살이될 것이라 생각한다. 늦깎이 공부가 부끄러울 것도 없으며, 늦은 것도 없다. 오히려 이 늦은 시기에 의식주 걱정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특권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감사하고 축제처럼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항상 전문가가 되지 못한 것, 뭔가 내가 이 땅에 본질적인 측면에서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많은 갈등을 해가며 지난 12년 직장생활을 해왔는데, 환경경제학자가 됨으로써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에 남은 2년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한다. 이 초심을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