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입덧, 덴마크 생활

요며칠 입덧이 심해서 하루에 1~200 그램씩 빠지는 것 같다. 최소한의 먹거리만을 먹고 버티고 있는데, 먹고 토하는 일이 잦아지니까 먹기도 살짝 겁나고 안먹자니 애한테도 좋지는 않을 거 같아서 최소한 먹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시험은 코앞으로 다가와있는데, 공부도 요며칠 하나도 안하고 놀고 있다. 다행인건 스트레스도 별로 받는게, ‘아, 임신해서 몸이 안좋아서 시험 못치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근거없는 생각 때문이랄까. 그나마 그간 성적을 잘 받아두어서 한두개 좀 못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도 없거니와 하나는 내가 쓴 페이퍼를 근거로 시험보는 것이라 이미 고생해서 낸 것에 대한 평가가 시험의 큰 몫을 좌우하기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다.

어느덧 임신 7주. 시어머니와 함께 임신 후 처음으로 병원을 다녀왔다. 멀리 Bornholm에 살고 계시지만 내일 새벽같이 시누이와 첫손녀와 함께 셋이서 떠날 2박 3일의 짧은 런던여행을 위해 Holte에 잠깐 와계셨다. 그 전에 병원 갈 때 혼자 가기 그러면 언제고 이야기해달라고 하셨는데, 비행기로 오셔야 하는 시어머니 일부러 오시라 하기 뭣해서 그냥 혼자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혹시 말씀은 드려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드렸는데 잘 한 일이었다. 마침 와계시기도 했고 기뻐하시며 같이 가주신다 하셨다.

시어머니와 함께 간 것은 잘한 일이다. 남편 CPR번호도 기억이 안났는데, 시어머니가 기억하고 계셨고 (그런게 필요할 줄이야), 남편 가족 병력 등에 대해서도 문진을 했는데 그 또한 시어머니가 답변해주실 수 있었다. 쌍둥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우리 가족에는 그런 이력이 전혀 없다 했더니, 시어머니가 자기네에는 이력이 있다 하신다.

앞으로의 병원 일정은 12~13주 중 다운증후군 검사 1차, 25, 32주에 있을 초음파 검사 및 기타 아이에 대한 상세 검진이 거의 다 인것 같다. 나머지는 나의 출산을 담당할 산파와 만나서 할 일들이 있고, 출산 교육 등이 있는 모양인데, 그건 산파가 나에게 연락을 준다고 하니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다. 아, 의사가 덴마크의 모든 병원 기록이 다 전산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임신과 관련된 것만큼은 문자 그대로 Paperwork이 아직도 살아있다면서 노란 봉투에 관련 내 임신 정보를 기록해서 넣어주었다. 앞으로 모든 진료시 항상 지참하라며. 이 아날로그식이라니. 모든 정보가 다 전산으로 날아오다가 갑자기 이런 노란봉투를 받아드니 월급봉투라도 받은 듯한 느낌이다.

다음 병원 일정에도 시어머니가 가주신다고 하니 이번엔 그냥 마음의 부담 없이 부탁하련다. 같이 가주시면 기쁘겠다고 말씀드리니 Bornholm에서 날아오신다고. 아. 이 감사함. 이 먼 덴마크에 내 부모와 떨어져살며 한켠으로나마 기댈 시댁이라는 구석이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시누이가 시어머니께 엽산 꼭 챙겨먹으라고 알려주라 했다는데, 시누이도 뭔가 참견하는 듯하게 보일까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나보다. 🙂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보라는데 사실 뭘 물어봐야할지 잘 모르겠고, 책이나 각국 정부 보건당국에서 제공하는 홈페이지도 워낙 자세하게 정보를 담고 있으니 아무래도 먼저 연락하게는 잘 안된다. 참 좋은 시누이인데도 괜히 폐끼칠까봐 어려운 건 한국인이라 그런걸까?

병원을 나와 같이 커피한잔 (나는 초코우유 한잔)을 함께 하고 장을 본 뒤 각자 방향으로 향했다. 옌스랑 대화해도 쓰는 어휘가 한정되어 있는데, 병원에서 의사를 보거나 시어머니와 대화를 한다거나 할 땐 평소엔 잘 안쓰던 어휘도 쓰게 되서 좋다. 요즘 학원도 쉬다보니 듣기는 되도 뭔가 말은 퇴화하는 느낌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역시 집중력의 문제인 것 같다. 꼭 써야된다는 생각이 없으니 요즘 다시 덴마크어 비중이 줄어 반반 정도 쓰는 거 같다. 복잡한 건 대충 영어로 이야기하고 일상 대화만 덴마크어로 하는? 집에서도 다시금 덴마크어 비중을 늘려봐야할 것 같다. 곧 방학도 하니 더욱…

뭔가 약간 퇴보하나 하는 불안이 드는 와중 하나 위안이 되는 건, 대학원 덴마크 친구가 자기는 지방 방언도 좀 심하면 못알아 듣는데 내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겠다면서 나에게 억양이 별로 없다고 해준 것이다. 옌스가 너 발음 좋다 이렇게 이야기해줘도 뭔가 그냥 자기 아내니까 격려해주려 하는 이야기로 들리고 덜 객관적으로 들렸는데,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나의 덴마크어 미래가 전도유망하다는 착각을 더 하게 해줬다고나 할까? 흠흠.

시간이 지나면서 덴마크에 친구도 서서히 늘고, 이제 내 피를 나누는 가족도 곧 생기고 할테니 뭔가 정말 조금씩 뿌리를 내리는 기분이다. 아직도 나에게 내 나라는 한국이지만 이곳도 이제 내 나라가 될 것이니까.

입덧에 제대로 식사 못하는 아내를 위해 생일 아침상으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차려주는 남편도 있고, 병원간다고 멀리서 와주시는 시어머니도 있고, 다 감사하다. 인생의 많은 일들은 그간 걸어온 일과 우연이 만나 얽히면서 생기는 놀라운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을 떠나 일을 해보고 싶다 했던 아주 초등학교 3학년짜리의 꿈은 내 직장 선택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를 통해 이곳에 와있었고, 그간 잡다하게 해왔던 취미와 한국에선 드세다고 들어왔던 나의 적극적 성격은 옌스가 나에게 관심을 갖게한 동력이 되었다. 많은 연애 실패담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를 깨닫게 해주었고, 결혼생활은 어때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난 그는 나와 결혼과 인생관이 놀랍도록 흡사하게 닮아있었으며, 또한 다른 부분이 있어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있다. 우린 스스로의 자유를 갈망하면서 같이 함께 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갖고 있기에 서로 잘 이해해줄 수 있고 지지해줄 수 있다. 애가 생겨서 인생의 많은 변화가 생기고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잘 헤쳐갈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다. 일부러 상처를 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성격덕분에 문제를 차분히 잘 해결해나갈 수 있으니까.

정말 애를 가져도 좋겠다고 확신이 선 순간 이렇게 아이가 찾아와준 점 정말 고맙다. 앞으로 남은 기간 별 문제없이 건강하게 커주고 태어나주기만을 바랄뿐이다.

SU 받기

올 1월부로 소급해서 월 100만원 조금 넘는 돈을 덴마크 정부로부터 받게되었다. 고등교육을 받는 덴마크인 또는 일정 조건에 부합하는 EU시민권자, 덴마크인과 결혼을 통해 덴마크시민권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은 SU를 받을 수 있다.

교육보조금(uddannelsesstøtte)라고 불리는 이 월급같은 돈은 인적자원이 중요한 개방형 소형경제 국가로서 고등교육을 받는 인력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돈이다. 이것 때문에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뭐라도 다른 일을 하면 이 이상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돈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 뿐이고, 실제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파트타임 직장을 갖는게 일반적이다.

나야 옌스 살던 곳에 숟가락 얹고 사는 상황이고 모아둔 돈이 있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쩌면 그래서 이 추가적인 백만원의 돈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래저래 좀 꼬인 문제로 행정절차를 제 때 밟지 못해 초반 4개월은 돈을 날리나 했는데, 그런 것 없이 다 챙겨주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 이야기하자마자 옌스는 그나마 내가 이돈을 받으니 조금 덜 속이 쓰리긴 하지만,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지 아느냐면서 나중에 세금 내봐야 그 마음 이해할거라 한다.

그 마음 이해도 가고, 앞으로는 더 이해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 사회가 이렇게 전반적인 행복수준이 유지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안정된 치안이 이런 시스템과 신뢰 아래서 생긴 것이라는 걸 생각할 땐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말 별것 없는 한국 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자소득(정말 달에 몇백원 할 것 같은…)을 세무신고때 해야하는 번거로움은 불평하고 싶지만 말이다. 아마 여기서 추가로 월에 몇 크로나 내야 할 것 같다. 이거 불평하니까, 옌스가 여기서 받는 정부지원을 생각하면 그거 불평하면 안된다고 한다. 께겡…

내 나라에서도 못받던 국가보조금을 여기서 받다니. 참 오래살고 볼 일이다.

인생의 여러가지 변화

아침 해가 6시면 중천에 뜬 것 마냥 쨍한 요즘 6시 이전에 이미 눈이 떠지곤 한다. 그래서 이번주 화요일, 자명종이 울려서야 눈이 떠지고, 침대에서 비비적거리며 잘 못일어나겠던 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야에 가까워지면서 잠을 설치지 않고 7시간을 내리 잔게 오랫만이었기 때문이다.

뭘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공공메일 온 것을 확인하려고 로그인을 하니 시스템에 내 이름이 바뀌어있었다. 처음에 외교단 비자로 와서 다른 비자로 바꾸니, 비자 바꾸는 문제부터, 결혼식, 이름 바꾸는 것까지 여러모로 예외적인 케이스에 해당되어 속을 많이 썩었는데 그래도 이름 바꾸는 문제는 크게 오래걸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큰 일이다. 아무리 한국에 등록된 내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나의 정체성에 큰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면서의 편의(구직 활동 중의 편의 등)를 위해 성을 추가하고 내 본래성을 미들네임으로 돌렸다. 그래도 미들네임으로 내 성을 유지했으니까 큰 변화는 아니야 라고 스스로에게 항변을 했지만, 간혹 미들네임을 기재할 공간이 없는 서류 제출시나 신청서 작성시 내 본래 성이 자리를 잃어버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니 당혹스러운 느낌도 갖게 되었다.

이런 느낌은 남편 성을 따라가지 않는 우리네 문화 때문일 것이다. 여기선 성을 바꾸는 거나 한 가족의 형제 자매가 아버지나 어머니, 조부모 등의 성을 따로 갖는 경우가 흔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에게 성은 한번 정해지면 그대로 평생동안 간직하는 것이기에 그 무게와 의미가 남다른 모양이다. 그래서 왠지 부모님이 서운해하실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죄송함도 버무려져서 내가 왜 이 성을 택하는지를 애써 변명하게된다. 묻는 사람이 없어도.

이런 복잡한 기분은 둘째로 치고, 계획하던 행정적 절차가 처리되어 홀가분해진 마음에 옌스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나니 어찌나 기뻐하던지. 이 곳에서도 역시 성이 갖는 의미가 있음을, 그리고 자기의 성을 따르기로 결정한 그 무게가 느껴짐을 알고 묘한 안도감도 들었다. 배우자가 내 결정의 무게를 알아준다는 사실은 나에겐 중요한 문제니까.

무척이나 덥던 날이었다. 친구와 헤어지고나서 안되겠다 싶어 반바지를 두개 사들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많은 사이트에서 말하던 소위 “착상혈”이라는 것을 보고 나서 아침에 느꼈던 그 이상함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인생에 있어 나중에 “그게 그래서였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작은 순간들이 있지만 그 당시에 모르는 것처럼, 그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테스터기를 두세트 사들고 와서 바로 확인해보았다. 희미한 줄이 보였다. 역시…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설마 한번에 이렇게 아기가 찾아와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놀라움이 컸다. 물론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 막 엄청 기쁘다기 보다는 얼떨떨하고 정말 이게 확실한가 싶은 마음에 놀라움이 가장 지배적인 기분이었다. 예정일이 논문 학기 전 마지막 시험의 바로 다음주라 한달 미룰까 했었는데 그냥 뭐 설마 한번에 되겠느냐 싶어 시작한 임신계획이 예상을 뒤엎고 임신으로 결론이 나서 깜짝 놀랐다. 대부분 6개월 정도 계획하고 애를 갖는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학기 중에 애를 나면 골치가 아파진다는 생각에 그 전엔 임신을 일찍 하나 싶어 걱정을 했는데, 바로 이달부터는 고령임신이라 안생기면 어쩌나 하고 바로 한달을 간격으로 고민의 주제가 180도 뒤바뀐 것이 우습다. 아무튼 그 많은 걱정과 달리 계획대로 움직여준 아기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오늘부로 두달째에 들어선 거라 아직은 불안정한 시기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를 잃는 일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면 그건 우리가 감당할 일이니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불운을 대비해 기쁨을 기념하고 즐기지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에게도 알리고…

옌스가 꽃을 한다발 사들고 집에 왔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내가 임신한 걸 알았나? 이 꽃은 뭐지? 그냥 사온건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빨간 장미. 매번 이러저러한 꽃다발을 사오다가 한번 친구가 거의 빨간색에 가까운 진한 분홍의 장미를 내게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가 빨간 장미 꽃다발을 먼저 선물할 기회를 빼앗겼다며 서운해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건 아주 진한 분홍장미야~ 빨갛지는 않네.”라고 귀띔해줬더니 그 기회가 남았을 때 빨간 장미를 사온 것이었다.

“왠 꽃이야?” 하며 기뻐하는 나에게 “여러모로 군거가족의 일원이 된 것을 다시한번 축하해!”라며 꽃을 내밀었다. 임신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지. 나도 몰랐는데.

“또 소식이 하나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니 “뭔데?”하며 평이하게 물어본다. 불쑥 테스터기를 내밀었더니 이게 무슨 뜻이냔다. “글쎄?”라는 답에 “임신????!!!”하면서 어찌나 놀래던지. 애가 떨어지겠다는 표현은 바로 이 순간에 쓸 것이다.

이 날 저녁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이미 우리는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지만, 이 아이가 생김으로써 우리는 다른 의미로 평생에 끊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는거야.”라는 말을 불쑥 했다. 항상 장난스럽고 로맨틱하지 않은 나에게 그가 있기에 로맨틱한 감성이 사라질 수가 없는 모양이다.

바로 몸조리 잘하고 몸조심하라는 우리 가족과 하던 운동들 그대로 계속 하고 지내던 대로 계속 지내고 술담배만 안하면 된다(술도 간혹 작은 글라스 한잔은 되는 것으로 덴마크 보건당국이 권고사항을 바꿨다며..)는 시댁 가족들. (하루 한잔 커피는 당연히 오케이!) 의사인 시누이는 애들이나 짐을 싣고 다닐 수 있는 아주 무거운 크리스챠니아 자전거에 애들 둘을 태우고 셋째 임신기간 중 내내 데리고 다니고, 출산 때 조차도 자전거 타고 갔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활동이 건강한 임신과 출산에 도움이 된다면서. 승마 등 몇가지 운동만 안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만 아니면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중에 생기는 유산은 그냥 배아의 유전적 결함에 따른 것이지 그 생활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면서 전혀 생활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강조를 한다.

물론 이 나라에도 다양한 가족들이 있기에 순수 유기농 제품만 쓰고 입고 먹는다든지 하며 여러모로 조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운동에 대해선 다 비슷하게 강조하는 것 같다.

굳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겠다고 생각해도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나는 그냥 학교 공부하던대로, 운동 하던대로 하면서 살기로 했다.

이제 이번 여름이 애가 없는 마지막 여름이라며, 이 여름을 불사르겠다는 남편과 벌써 이름을 지어보겠다고 이름 책을 사들고 우리 둘은 이 변화의 시기를 벌써부터 즐기고 있다. 입덧만 너무 심하지 않기를 빌며 이 변화의 순간을 아주 잘 즐겨야겠다.

En gåtur ind i byen

Når vejret er godt, nej, fantastisk som i dag, skal man ud og gå en tur! Det gjorde vi også. Solen skinner og temperaturen er høj nok til rigtigt at nyde det. Gaderne var fulde med mennesker, der også ville nyde det og hygge sig.

Det er næsten sommer nu, for temperaturen er omkring 20 grader og vil blive lidt varmer midt på dagen. Nu er jeg lidt “danskificieret”, og tænker jeg, at det er lidt for varmt. Men man skal ikke klage over vejret, når det er varmt og dejli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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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면 밖으로 밖으로

오늘 뜬 태양이 내일에도 뜬다는 보장이 없기에 해가 뜨는 날이면 사람들은 밖으로 나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했던 오늘, 점심시간 동기들과 함께 밖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바람도 약간 불고 온도는 6도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예전에 사람들이 추운데도 불구하고 굳이 밖에 나와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을 볼 때면 참 대단하다고 평했던 나인데, 이젠 해가 뜨면 밖으로 나선다. 추위에 약간 떨면서도 밖에 앉아서 밥을 먹고야 만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여름에 건조한 30도가 덥게 느껴질때면 인도의 습한 50도를 어떻게 견뎠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음주에 느낄 한국은 이보다 따뜻할테니 몸과 마음이 모두 훈훈해질 것 같다.

 

덴마크 명절 단상

덴마크에 와서 보니 가족 모임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잦다. 그리고 모였다 하면 밖에서 외식하는 거 없이 대부분 집에서 모여 식사를 하고, 점심, 저녁까지 두끼는 기본이다. 모이는 장소는 자녀의 집에 처가, 시가 식구가 함께 모이는 경우부터 처가나 시가로 때에 따라 바꿔가며 방문한다. 딱히 정해져있는 건 없다. 음식도 나눠서 해가고 뒷정리도 다 같이 한다. 중요한 차이점은 남녀 모두 일을 한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남자가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최소한 우리 시댁은 그렇다.
 
손님을 집에서 치르는 일이 잦은데, 서로 오고가며 그리 하다보니 조금씩 손님맞이가 익숙해지고 좋아진다. 뒤늦게 치우는 일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부부가 같이 정리하면서 그날의 저녁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일도 즐거움의 일부다.
 
불만은 한쪽이 일을 부담할 때 생긴다. 덴마크의 이런 남녀 평등이 찾아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의 참정권 확보가 불과 100년전이고, 1950년대를 전후로 해서야 여성의 경제참여 비중이 늘어나고 여성의 역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을 시점으로 한 변화가 지금의 사회 모습의 초석이 되었으니 꽤나 최근의 일이다.
 
우리가 덴마크에 비해 민주화나 근대에 들어선 발전의 시작이 늦기는 했으나, 그 시간의 격차가 아주 큰 것은 아니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양성간의 차별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전통의 이름으로 이러한 차별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도 한다. 
대가족간의 모임이 예전같지 않고 갈수록 핵가족 되어가는 현상이 아쉽다. 현대화가 교류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텐데. 우리 명절 문화가 변화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아주 많이 부족하다.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떼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남자들이 조금 돕는 정도가 아니라 획기적으로 모두가 함께 일하고 먹고 즐기는 기회가 될 때가 충분히 되었다. 불만이 사라지면 교류에서 찾을 수 있는 과실이 눈에 보인다.
집안일을 추가로 더 하더라도 이곳의 명절은 즐거운 날이 되었다. 서로 위해주는 가족들을 만나게 되고, 나 또한 그 일원이 된다는 것, 그리고 미래에 내 아이들에게도 더 큰 가족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피로 섞인 내 가족이 아니기에 그와 같을 수 없다하더라도 그건 당연하다. 내가 그들에게 가족과 똑같은 애정을 부어주기엔 우리가 아는 시간이 아직 짧고 아직 더 가까워질 거리가 많이 남았기에 말이다.
물리적인 거리와 언어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의 내 가족과 옌스가 내가 이곳에서 동화되는 만큼 가까워지지 못함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문제일 뿐, 양쪽의 문화를 모두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더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멀지 않은 시기에 나도 우리의 2세를 가질 수 있고, 그 2세에게 두개의 다른 문화와 가족속에서 자랄 수 있게 해주길 바래본다.

My wedding speech :)

I would do my speech both in English and Korean as I have guests from different backgrounds. So it will be exceptionally long for a bride’s speech. It is okay to fall asleep.

Undskyld mig for ikke at tale også på dansk. Det er min brudens tale og jeg vil gerne udtrykke mine tanker og følelse fuldtud. Men mit dansk er ikke så godt nok til at gøre det. Så jeg vil bare tale på engelsk og koreansk. Måske allerede er der nogle gramatiske fejl.

First of all, thank you so much for everyone once again who came all the way from different parts of Denmark and the world. I am very grateful that I could share this precious moment in life with people that I care about.

우선 먼 곳에서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 인생의 소중한 이 순간을 제가 아끼는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I met Jens at an online dating site. As an economist, I wanted to be most efficient and effective even in terms of dating someone. Jens was my first date at the site, and he became my husband. It cost only 100 kroner to find my husband and he has been the most amazing and the best man that I have ever known! So, that 100 kroner was very cheap but the most efficient and the most valuable investment in my life.  

저는 옌스를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에서 만났어요. 경제학자로서 저는 누군가를 데이트하는 순간마저도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고 싶어했지요. 옌스는 거기에서 만난 첫번째 데이트였고, 제 남편이 되었어요. 제 남편을 찾기까진 단돈 100 크로나가 들었을 뿐인데, 그는 제가 여태껏 알아온 중 가장 훌륭하고 놀라운 남자였답니다. 그러니 이 100 크로나는 아주 쌌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가치있는 투자였어요.

Since there are some of guests, who didn’t have enough time to get to know him well, I would like to introduce him a little bit. Maybe this proud introduction would be against Janteloven in Denmark, unwritten rule telling people not to be proud, but I would do it anyway as it is my wedding dinner. 🙂 Jens is an incredibly sweet, caring, loving, artistic, hard-working, good-looking, keeping house clean, intelligent, humorous, calm, relaxed, down-to-earth, humble, tall, lean, no-smoking, not-drinking-heavily man. I should cut it here, because it will take nearly this whole night to descibe good things about him.

He didn’t make me nervous by playing games, and has made me smile or laugh by sending me some witty SMS’es from the beginning. One day after our first date, he sent an SMS starting like this, “The rules said that guys should wait 2-3 days before contacting a girl for the next date, otherwise the guy would look too desperate. And I was desperate.”

옌스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간단히 소개해드릴께요. 이런 자랑스러운 소개를 하는 것이 자만하는 것을 금하는 덴마크의 얀테법에는 다소 어긋나겠지만, 오늘은 제 결혼파티날이니까요. 옌스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다정하고, 잘 챙기고, 사랑하며, 예술적이고, 근면하고, 잘생겼고, 집을 깨끗이 관리하고, 명석하고, 유머러스하고, 침착하고, 여유가 있으며, 현실적이고, 겸손하고, 키크고, 잘생겼으며, 담배도 안피우고 술도 과하게 마시지 않는 남자에요. 여기까지만 할께요. 옌스의 좋은 면을 다 설명하려다가는 오늘 밤이 다 가 버릴테니까요.

그는 한번도 밀당 게임을 하는 식으로 저를 불안하게 한 적이 없었고, 처음부터 아주 위트있는 메세지를 보내며 저를 미소짓거나 웃게 만들었죠. 첫 데이트 이후 바로 다음날, 그는 이렇게 시작하는 문자메세지를 보낸 적이 있어요. “데이팅 법칙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랑 다음 데이트를 정하기까지 2~3일은 기다려야 절박하게 보이지 않는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저는 절박했어요.”

Jens. Thank you for being you and being with me, accepting me as your life partner to spend the rest of our life together. Thank you for being patient. I still remember our first walk around our neighborhood, trying to talk only in Danish, though it was even before for me to have a proper Danish education. That one hour was incredibly long, mostly filled with Umm… Jeg… umm… You have been patient always to listen to what I was trying to say. It was not just my Danish. But my feelings, my ideas, how my life is in Denmark, how my study is. You have not just been my partner, but have also taken over the roles that my parents had taken for me, and have been so much more than I could have imagined what a partner could be like.

I love our childish moments and jokes, and our economists’ dance turning into judo or wrestling. I love our small rituals such as three kisses or kyskyskys. I will love you until we cannot properly walk, and until the only sports we could play together is balloon tennis at a nursing home. You will always have your husband’s rights to have massages every four hours as you demand. I will complain just a little bit like, saying okay, okay, okay. I love you. Jeg elsker dig.

옌스. 당신이어서, 나와 함께 해줘서, 나를 여생을 함께 보낼 인생의 반려자로 맞이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항상 인내심을 가져줘서 고마워요. 나는 아직도 덴마크어로만 말하며 걸었던, 우리 동네에서의 첫 산책을 기억해요. 그땐 아직 제대로된 덴마크어 수업을 받기도 전이었죠. 그 한 시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길었고, 대부분이 음. 나는. 음으로 채워졌었죠. 당신은 항상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듣기위해 인내심을 가져줬어요. 그건 단순히 덴마크어뿐 아니라, 내 감정, 생각, 덴마크에서 내 삶이 어떤지, 내 공부는 어떤지 말이죠. 당신은 단순히 내 파트너일 뿐 아니라, 내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셨던 역할도 이어받았으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파트너란 어때야 하는 것인가 이상의 사람이 되어주었어요. 나는 우리의 유치한 순간과 농담들, 유도와 레슬링으로 바뀌곤 하는 우리 경제학자간의 춤을 사랑해요. 그리고 우리만의 삼세번의 키스와 같은 의식들도 사랑하죠. 나는 우리가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스포츠라곤 양로원에서 하는 풍선 테니스가 될 때까지 당신을 사랑할께요. 당신은 당신이 요구하는대로 매 네시간에 한번씩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남편의 권리를 항상 가질 수 있으며, 나는 알았어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하는 작은 불평을 할 거에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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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my king! 😀

Thank you so much mor og far for bringing up your son to this fantastic man and letting me be his life partner. And thank you also for being my another parents in Denmark. New family is a beautiful by-product of the marriage. I now have amazing family members on top of my loving family in Korea. Mor, far, Gry, Frederik and all the other family members, thank you for welcoming me to your family. I would be your another loving daughter and sister. Tusind tak!

어머님, 아버님, 당신의 아들을 지금의 아주 훌륭한 남자로 키워주셔서, 그리고 덴마크에서 제 또다른 부모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가족은 결혼의 아름다운 부산물이에요. 저는 한국의 제 사랑하는 가족에 더해 어머님, 아버님, 아가씨와 아주버님, 그리고 다른 친척까지 좋은 가족을 얻게 되었어요.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환영해주셔서 감사하고, 저 또한 사랑하는 딸과 여동생이 될께요.

I am happy to have my parents and aunt all the way from Korea, and Sunse and Dennis from Switzerland. Thank you for flying over to Denmark only to celebrate our wedding in this dready time of the year. This long distance sucks, but that does not mean that our distance in mind is also long. Even though I am away from you, and may not be in touch with you as frequent as before, I am caring and loving you my family and friends, missing you even more.

한국에서 여기까지 먼 길 와주신 부모님과 이모, 스위스에서 온 순재언니와 데니스 형부, 이 음울한 계절에 단지 제 결혼을 축하해주러 덴마크까지 먼길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 장거리는 참 몹쓸 것이지만, 그 거리가 마음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멀리 떨어져있고, 그 전처럼 연락을 자주 하지는 못하더라도, 제가 여전히 제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하답니다.

Sometimes, it feels like I am an undutiful daughter leaving my own country flying half way around the world in distance, not being able to be next to you mom and dad, but I know that you are happy for me that I met my Mr. Right, the perfect match and that you bless me and this marriage. Thank you for being my parents. You brought me up to have my life full of happiness, enlightened my life with your loving care, lessons of life and the education. You have been my mentors and you will always be. I will always dream, pursue, learn, love and be considerate or at least try to do or be so as you have taught me to. And I will be happy, I promise.

때로는 지구의 반바퀴를 날아와야 하는 곳에 떨어져있다는 사실이 제가 불효녀인 것처럼 느껴지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운명의 짝을 만나게 된 것을 엄마 아빠가 누구보다 행복해하고 계심을, 저와 이 결혼을 축복해주심을 잘 알아요. 저의 부모님이어 주셔서 감사해요. 제 삶을 행복으로 가득하도록 저를 키워주셨고, 사랑과 삶의 교훈과 교육으로 제 삶을 밝혀주셨죠. 제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셨고, 앞으로도 계속 그리해주시겠죠. 저는 항상 꿈꾸고 그를 추구하며, 배우고,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께요. 그렇게 못되더라도 최소한 그리 노력하고 살께요. 그리고 항상 행복할께요. 약속해요.

제 긴 스피치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all for being patient to listen to my long speech.
Jeg elsker dig, skat.

옌스의 총각파티 준비 에피소드

결혼은 했지만 가족, 친척, 친구를 대상으로 결혼을 알리는 정식 파티는 나의 대학원 일정 등의 문제로 1주간의 방학기간 중 하려고, 아직 하지 않았다. 파티를 2주도 채 남기지 않은 오늘, 남편의 친구들과 사촌이 총각파티를 해주기 위해 찾아왔다. 미리 신랑의 일정을 빈 일정을 확인하고 참석대상자의 연락처를 파악하는데 협조를 이미 요청해왔기에 총각파티를 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뭘 어떻게 할 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었다. 연락처 파악하느라, 한번도 한 적 없는 옌스의 핸드폰을 해킹할 수밖에 없었는데, 핸드폰 비밀번호는 서로 모르기에, 옌스가 청소기를 돌리던 중 핸드폰에서 문자를 확인하고 충전기에 꼽아둔 것을 화면이 잠기기 전에 얼른 빼내어 방에 들어가 전화번호부를 신속하게 뒤졌다. 원래는 하객 리스트의 이름을 갖고 덴마크 인터넷 전화번호부를 검색해 찾아보려 했는데, 다들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이름을 지워둔 탓에 실패했고, 항상 이메일을 로그아웃하는 치밀함 덕에 컴퓨터를 뒤지는 것도 소득없이 끝이 나버렸다. 옌스가 방문을 열고 청소하러 들어올까봐, 혹여나 중간에 핸드폰을 찾아헤맬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못 알아챈 듯 했다.

원래는 친구들이 토요일로 계획을 해두었기에 그 날 일정이 없도록 해두었으나, 가장 많은 사람이 되는 날에 잡으려다보니 갑자기 금요일로 일정을 바꾸면서 일이 살짝 꼬였다. 옌스는 금요일 수영을 가려고 했었고, 다음주말에 출장을 가야하는 일정상 이번 주말이 아니면 안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블록도 끝나고 시험까지 시간 조금 있으니, 수영 가지 말고 나랑 밖에 저녁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나 때문에 일정을 바꾸라고 한 적이 없어서 혹시나 눈치챌까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도 아무런 의심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던 옌스는 오늘 오후 회사에서 퇴근하기 얼마 전, 빨리 퇴근하고 저녁 같이 먹고 주말을 즐기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아이고 미안해라.

샴페인 한병과 맥주 몇병, 과자 두봉지를 사갖고 온 옌스의 친구(또는 동료)들과 옌스와 참 닮은 옌스의 사촌 세명과 함께 옌스가 올 것을 기다리면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남자들이 생각하는 숨막히는 여자상에 대해서도 듣고 (결혼을 앞둔 옌스를 위해 나에게 숨막히는 아내가 되지 말라는 조언. 동감하고, 또 그렇게 쓸데없는데 뺄 힘과 열정도 없다.) 나를 만난지 얼마 안되서 한 친구(이자 직장동료)에게 다가가, 이번엔 뭔가 다르다면서 옌스답지 않게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관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옌스의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듣게 되었다. 옌스가 나를 만나기 전보다 편안해지고, 안정되어 보인다고, 가족들도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쉽게 가족처럼 녹아들어 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그래도 가깝게 느껴지던 시가족들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 얘기를 듣고, 옌스의 다른 친구(이자 또 동료)가 “옌스가 당신을 만나고서는 예전보다 일찍 퇴근해요. 제일 늦게가던 옌스가 남들과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기도 하고, 주말 출근이 눈에 띄게 줄었어요. 가정적으로 변하는거죠.”라고 이야기해줬다. 정말 옌스의 주말 출근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옌스 없이 옌스의 동료와 사촌과 대화를 한시간 반 가까이 하게되니, 그들이 보는, 내가 보지 못한, 회사에서의, 어린시절의 옌스에 대해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더라. 항상 나에게 그는 “나는 똑똑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내가 아는 그는 노력할 뿐 아니라 많이 알고 쌓아가는 사람이다. 회사 동료들은 그가 많은 것을 알고 경험도 풍부하지만 결코 그를 드러내지 않으며, 남이 조언을 구해서 이야기해줄 때,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상대가 잘못하고 있는 것 아는 순간 조차도, “제가 이런이런 것을 해본 결과로는 이렇기에 당신이 한 것과는 다르네요. 이렇게 해보면서 어떤게 더 좋은 결과를 내는지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물어보는 식으로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옌스와 같지만, 실례로서 일터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듣는 것은 또 다른 기분이었다.

그들이 한 말 중 내가 가장 동의하는 건, 그들이 본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옌스는 내가 본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흘러 옌스가 도착할 쯤, 우리는 복도를 통해 공동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만 들리면 그게 옌스인지 아닌지 숨을 죽여 소리를 들었다. 퇴직 후 집에서 혼자 공부하던 6개월동안 옌스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거실 책상에 앉아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옌스가 열쇠를 따기 전 문을 열며 “Velkommen til!(환영합니다!)”를 외쳐온 나는 이제 소리만으로 그게 옌스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다. 조금만 소리를 듣고도, “아, 저건 옌스가 아니에요”라고 판단하는 나를 보고,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침내 옌스가 집에 도착했을 땐, 평소와 다름없이 “Velkommen til!”로 맞이하며 3번의 키스(이건 한국식 삼세번을 가미한 우리만의 인사 의례이다. 한번은 섭섭하고, 두번은 정이 없으니…)로 그를 맞이했고,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그는 긴 한주가 마침내 끝났다며, 레드와인 한잔 마시면서 나랑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서 거실에 들어섰다.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하는 황망한 표정의 그를 보며 그의 친구들이 그를 환영해주었고, 샴페인과 맥주를 들며 오늘 뭐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옌스에게 괜한 공포심을 조성했다. 와인 테이스팅 하면서 이런저런 것을 할 것이라는데, 한명이 미리 레스토랑에 가서 준비를 하고 있단다. 어디로 갈 지, 뭘 할 지 전혀 모르는 옌스는 눈을 안대로 가리고 택시를 타고 떠났다. 옌스가 그렇게 긴장한 모습은 처음봤다. 지난번 다른 사촌 결혼식때나, 오늘 같이 온 친구 결혼식에 맞춰 했던 총각파티에서 부어라 마셔라 및 무지막지한 야외활동 등을 기억하니 긴장 되는가보다.

옌스가 새벽 언제 올지 모르니 나는 들어가서 자야겠다. 샴페인 두잔 마시고 약간 헤롱거려 공부하기 어려우니 저녁내내 딴짓만 많이 했다. 내일은 시험공부를 본격적으로 해야지.

덴마크식 불혹의 생일파티와 초대받은 이방인

어제는 동갑내기 커플의 40번째 생일파티날이었다. 그들은 옌스의 여동생인 그뤼와 그의 남편 프레데릭. 사실 이미 지난 생일이었지만, 그들은 날 좋은 여름에 손님을 집 정원으로 초대해 파티를 하려고 오래전부터 이날을 정해 알려왔다. 덴마크에서 0으로 끝나는 생일은 크게 하지만, 40은 특별히 더 크게 한다. Fyrre(40), fed(fat) og færdig(done). 중년으로 들어서는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선물 사야하는데…’를 한달쯤 되뇌이다가 파티 당일이 되어서야나 샀다. 좋은 와인 두병. 그 집에 가면 항상 좋은 와인을 마시곤 했기에, 이런 와인은 소스용으로 쓰이는 거 아니냐면서 농을 주고 받았는데, 실제 소스용으로 쓰기에 좋은 것으로 준비했다고 축하카드에 남겼다는 그. 카드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항상 자신만의 스타일로 위트있는 멘트가 곁들여진 카드를 멋들어지게 만드는 그이기에, 그 집으로 가는 열차안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웃음이 피식 나왔다.

홀터(Holte)는 올때마다 느끼지만 좋은 동네다. 한적한 느낌과 함께 아름다운 호수를 중심으로 집들이 늘어서있다. 이런 동네에서는 어느 당이 뽑혔을 지 궁금하다. 집들 사이로 경탄할만한 호수의 풍경이 보이곤 한다. 위치가 아주 좋다. 이런 좋은 동네 살려면 둘다 좋은 직장에서 일해야나 한다기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했다가, 지금 당장 계량경제부터 열심히 공부하라는 이야기에 괜히 본전도 못찾았다. 나름 하고 있다고, 진도가 안나가고 있어서 그렇지 라면서 괜히 항변했지만, 나도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수능 공부도 80일전부터 한 나였는데, 합격도 다 한 학교에 한참 전부터 여유있게 미리 리뷰를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라고 외치고 싶지만, 세상은 열심히 하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또 반성을 할 뿐이다.

열차에서 내려 20분을 걸어 장소에 도착했다. 하이힐로 갈아신고 정원으로 들어가니, 아이들의 장난감이 흩어져있던 놀이터같던 정원이 훌륭한 가든파티 장소로 변신해 있었다. 야외결혼식을 해도 되겠다 하는 생각도 들 정도 였는데, 반대로 이걸 준비하려면 얼마나 고생했어야 했을지 짐작이 갔다.

넓은 장소가 금방 가득찬다. 사람들과 소개를 하고 악수를 나눈다. 이미 여러차례 만난 사람과는 반가움을 포옹으로 나눈다. 이젠 이 인사가 어색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과 인사를 하다보면 얼굴 근육에 경련이 날 것 같다. 서양 영화배우 중에 인터뷰하는 도중 시종일관 환한 미소를 띄는 사람들이 있는데,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역시나 외국인은 나 한사람이다. 일부러 생각하려 한 건 아닌데, 바에서 칵테일을 주문하는 데 바텐더가 외국인이냐고 물어보며 대화를 잠깐 하다보니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내가 인사한 사람 모두가 덴마크인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차별하는 것도 아니지만,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때로는 피로감이 몰려오곤한다. 이런 쓸데 없는 생각하지 말자고 고개를 잠시 흔들고는 다시 원자리로 돌아온다.

음식을 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름 따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대도 마찬가지에다가, 이름을 기억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야기하다가 자리를 뜰 때 실례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다. 나라마다 상황별 에티켓이 다른데, 이것을 책으로 배울 수는 없다. 우리가 매너라고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관습이니, 나는 걸음마를 처음 떼는 아이처럼 하나 하나씩 눈치로 배워가야 한다. 그리고 그게 맞는지는 주변에 나중에 물어봐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을 힘들다고 징징대봐야 소용이 없기에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지만 익혀나간다. 10년정도 지나면 반대로 한국으로 여행갈 때 큰 문화적 충격을 느낄 것 같다. 매년 한번씩 간다해도 그 충격은 피할 수 없을 것임을 이미 안다.

덴마크인들은 직설적이다. 직설적임의 차이야 사람마다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사회의 직설적임을 측정할 수 있어서 평균값을 낼 수 있다면, 덴마크인의 직설적임은 전세계적으로도 상위에 놓일 것이라 자신한다. 인도에서도 사람들이 직설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법적으로는 폐지된 카스트제도가 현실적으로 아직도 남아있는 그들에게는 카스트라던가 사회속에 내재된 차별에 대해서는 터부가 존재했다. 그렇지만 덴마크에서는 과연 성역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다.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게 그들이다. 한국이었으면, 본인이 뭐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어서, 계면쩍은 표정과 함께 화제를 얼른 돌리겠지만, 이들에겐 그런 것이 없다.

테이블에 앉아 타코를 먹으며 옆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테이블 반대 끝편에서 나를 부른다. 옌스와 그뤼와 함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학교를 다녔다는 여자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엉뚱함이 느껴졌는데, 시끄러운 음악을 뚫고 큰 목소리로, 내가 뭘 하는지 묻는다. 테이블을 가로질러 묻는 질문에 모두 나를 쳐다본다. 현재 일을 하지 않고 있고, 9월부터 공부를 할 것이라고, 무슨 공부를 할 것인지 답을 해 주었다. 왜 관뒀는지를 묻는다. 언젠가 관두고 여기서 정착할 것이라면 한살이라도 어릴 때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현지에 정착할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답을 하니, 더이상 묻지는 않는다. 나에게 악의를 품고 한 질문이 아니기에 그냥 사실을 이야기 해주지만, 이곳의 문화적 맥락을 모르면 약간은 취조당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한달에 한번이면 충분히 많은 파티를 이주 연속으로 가게 되어 이미 피로도가 높았지만, 파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건 옌스도 마찬가지고, 어딜 가든 대부분이 가족 동반인 이 곳에선 일종의 책무이기도 하니, 간 김에 즐기는게 최상이다. 최소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사람 구경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 했던가.

그뤼 프레데릭 생일

시침이 10을 넘기면서 그뤼가 다가와, 이제 춤을 즐기라고 권유한다. 모두가 자리를 일어나 텐트 안으로 자리를 옮긴다. 안쪽 소파에 담요하나가 보인다. 냉큼 무릎에 덮고 자리를 챙겨 앉으니, 인사만 한번 나눴던 한 여자가 나와서 춤을 추라고 이끈다. 한번 사양했는데도 나오라 하니 거절하기가 어렵다. 기럭지가 긴 옌스가 몸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면 즐거움에 웃음이 나와 은근 춤출 맛이 난다. 고관절만 괜찮으면 몇곡도 추겠는데, 하이힐을 신고 한곡을 추지 벌써 관절에 신호가 온다. 인근 인대에 생긴 염증이 낫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나 때문에 옆에서 앉아있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가서 이야기하고 오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친한 사람과의 유쾌한 대화의 만찬파티나 좋아하는 게으른 우리 둘은 다행히도 죽이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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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갑자기 바뀐다. 그래도 슬로우 댄스 한곡은 춰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손을 이끄는데, 그 말이 맞다 싶어 춤을 춘다. 집 밖에서 제대로 춘 내 생애 첫 슬로우 댄스. 집에서 옌스 발을 많이 밟으면서 춰본 경력으로 발 안밟고, 휘청거리지도 않고 잘 췄다. 우린 집에서 그렇게 춤을 추다가 옌스가 유도 실력을 발휘해 나를 간혹 들쳐업곤 하는데,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노래가 끝나자 나를 등에 들쳐업는다. 그런 유치함이 좋은 것은 내가 유치해서인지, 아니면 사랑의 힘인지 나도 모르겠다. 이런 유치함이 60이 되어도 남아있었으면 하는 것은 소녀의 감수성은 아닌 것 같고, 내 안에 남아있는 어린이의 동심인 것 같다.

모든 칵테일도 마셔보고, 저녁도 먹고, 떠들고, 춤도 췄으니 집에 갈 시간이 된 것 같다. 아마 사람들은 새벽 4시까지도 놀았겠지만, 12시를 넘기면 우리는 서서히 갈 준비를 한다. 이런 때에는 한국어로 대화한다. “우리 언제 가요?” 항상 물어보는 것은 나… 답은 셋중의 하나다. “나중에, 곧, 지금” 곧 가자는 말에 이제 집에 가겠구나 싶어 신이난다. 택시를 부르고 호스트에게 인사를 한다. 뻑적지근한 생일파티 초대에 감사를 표하며, 휴가 갔다와서 보기로 한다.

차로 10분이면 가는 집이지만, 요금은 300 크로나. 6만원 한다. 이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시를 타면서 새삼스레 놀라지 않는 것을 보면 많이 익숙해졌음을 느낀다. 다음에 한국가서 택시 요금을 보면 반대로 놀라겠지. 이렇게 싸다니 하면서…

빨아놓고 널지 않은 수건이 있음이 기억나 피곤에 쩔어 수건을 널더라도, 곧 잘 수 있는 침대가 놓여 있고, 나의 흐트러진 모습을 편히 내 보일 수 있는 이 곳이 바로 내 집이다. 밖에 나가 내가 이방인임을 느끼게 되더라도 저녁에 돌아오면 이방인이 아닌 이 곳이 내 집이다. 간혹 내가 뭐라 해도 다 받아 줄 부모님이 바로 내 곁에 안계시긴 하지만, 그 역할을 앞으로 대신 해 줄 옌스가 있는 이 곳이 내 집이다. 그걸 이제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내 집이 속한 이 땅이 앞으로 또 하나의 내 나라가 될 것이고 내 아이의 나라가 될 것이기에 혹은 힘들더라도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다. 그렇게 사는 게 이민자의 마음이다.

덴마크에서 가족의 의미와 결혼 그리고 결혼식

덴마크에 온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좋은 시간은 항상 그 순간에 묶어두고 싶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런지 덴마크에서의 2년이라는 시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인도에서 근무했던 2년반의 시간을 기억하면, 항상 귀임 희망일을 D-day 삼아 매일 손가락으로 꼽았음에도 그리 지나지 않는 길기 긴 시간이었는데, 덴마크에서의 시간은 나를 스쳐지나간 것만 같다.

새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항상 꿈꿔오던 유럽에서의 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옌스를 만나기 전 덴마크의 삶은 사실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겉껍질을 뚫고 들어가 친해지기 정말 어렵고, 한번 친해지면 깊은 속을 내어준다는 덴마크인은 때로는 코코넛으로 비유되는데, 나처럼 뜨내기로 지내다가 돌아가는 외국인은 그들만의 리그를 살아가야 하기에 항상 겉도는 느낌을 갖게 된다. 간신히 한두명 사귀면 친교의 기쁨을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여러가지 이유로 덴마크를 떠나버리곤 해 허탈함만 남기곤 했다. 이런 공허한 인간관계만으로 4년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두려웠고, 덴마크의 어둡고 음산한 겨울은 유독 마음을 외롭게 했다. 부모님과 보리가 옆에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시간이었다.

크리스마스, 새해맞이가 다 끝나고 더이상 기념할 것도, 즐길 것도 없어 덴마크인들이 제일 우울해한다는 2월, 옌스와 만났다. 그 이후의 시간은 소소하면서 즐거운 촘촘한 추억으로 채워졌고, 새로운 것들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다. 덴마크인과 연인이 되고 가족이 되는 것이 그들의 사회로 깊숙히 들어가는 지름길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설명으로 듣고 머리로 이해했던 그들의 삶을 체험하며 배울 수 있었다. 전통과 현재, 삶을 대하는 태도, 일과 가정의 양립, 가족관, 지역간 감정, 정치, 사회문제, 외국인에 대해 느끼는 감정 등 많은 것을 말이다. 특히 결혼한 커플들과 만나 교류하거나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만나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를 가진 두 번의 경험을 통해 덴마크인이 생각하는 가족과 결혼에 대한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덴마크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도 많은 사회문제를 안고 있는 여느 나라와 같은 한 나라일 뿐이니까. 옌스와 그의 가족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대부분 나와 정치나 여러면에서 비슷한 견해를 가진 보수적인 사람들로, 사회에서 안정된 위치에 가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그들을 통해 듣는 덴마크는 편향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세상을 중립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고 내가 속한 곳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며, 실제 내가 느끼고 배우는 것은 지금 내가 서있는 곳과 그 주변인으로 부터이니, 내가 하는 이야기는 바로 내가 느끼는 덴마크일 뿐이다. 이점은 우선 짚고 넘어가자.

덴마크에선 이혼이 흔하다. 주변에 이혼한 사람들도 많이 있고, 그것이 흠이 될 일도 아니다. 애가 있는 커플들도 마찬가지로 많이 이혼한다. 오래 살다가 애를 하나 둘 낳다가 결혼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면을 보면 결혼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고, 우리나라에선 이들을 가리켜 근본없는 사람들이라 부를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 많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곳 부부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나 가족을 대하는 방식을 옆에서 지켜본다면 결코 그렇게 폄하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새 느끼게 될 것이다. 맞지 않는 부부는 인내하며 사는 방식을 택하는 대신에 갈라서는 것이고, 직장내에서나 친구사이에서 혼외 여자친구가 있는 것을 자랑한다면 매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될 만큼 커플간의 신뢰와 헌신을 중요시한다. 물론 누군가와 연인관계를 맺기 전까지 다른 국가에 비해 열린 성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맞는 이야기지만, 그건 딱 그때까지이다. 가족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크리스마스를 중심으로 한 연말이나, 소소한 일에 자주 모이고 서로 초대하기 때문에 가족들과 보고 함께 보낼 시간이 많다. 손주들이나 자식, 며느리, 사위 생일 등에 사돈이 함께 모일 일도 많이 있다. 때로는 그로 인해 여기도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그래서 부모자식지간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부부는 내가 함께하기로 선택한 반려의 입장을 이해하고, 내 부모라고 꼭 좋은 관계를 맺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같이 잘 지내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라도 그것이 부부간의 갈등을 일으키도록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은 진정한 축하의 장이다. 프로포즈를 받고 우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결혼식은 모두가 행복하게 웃는 곳이다. 자식이 결혼하면 짠하고, 친한 친구가 결혼을 할 때 괜시리 뭉클해지는 마음에 눈을 적시는 것은 우리네 정서이다.  결혼 만찬은 통상 6~7시에 시작해서 신혼부부가 추는 웨딩댄스가 자정 직전에 있기까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는데, 중간중간 부모와 형제, 친한 친구들이 각각 5분에 가까운 결혼 축사를 한다. 부모의 경우, 어린 자녀가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작은 에피소드들과 함께 소개하기도 하고,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지 이 또한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또는 시와 함께 소개하기도 한다. 그들의 만남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 인생에 대한 덕담 등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덴마크인 특유의 유머감각과 더불어진 축사를 듣자면 참으로 놀랍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옌스가 아버지 칠순잔치에 말할 내용을 미리 써서 연습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보다 훨씬 길게 하는 결혼 축사는 얼마나 정성을 들여 준비하고 연습했을 지 상상이 된다. 우리네 일상이 바쁘고, 뭐든지 효율적으로 빨리빨리 처리하려다 보니 삶이 건조해지고, 표현을 하지 않다보니 마음도 때로는 건조해지는 경우가 많다. 대충 이해해주겠지 하다보면 소홀해지기도 하고. 이 곳의 여러 축하문화는, 선물의 내용이나 가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돈으로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가급적 고민을 해서 준비하고 카드를 쓴다. 마음이 동하면 표현하게 될 수도 있지만, 표현하다보면 마음이 동하고 행동이 마음을 낳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런 하나하나의 작은 행사가 추억을 만들고 관계를 돈독히 하게 하는 윤활유가 된다.

결혼식엔 많은 전통적 요소가 아직도 남아있다. 결혼식을 마치고 난 신혼부부에게 쌀을 던져주며 축복하는 의례나 하객들이 결혼만찬 중 바닥을 발로 구르면 신혼부부가 테이블 아래로 들어가 키스를 해야 하는 것, 반대로 하객들이 접시를 포크나 칼로 두드려대면 신혼부부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키스를 해야 하는 것들이다. 신부나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우면 하객 중 여자들은 모두 일어나 신랑 볼에 키스를 해야 하는 것이나 반대로 신랑이 가면 남자들이 똑같이 하는 것 등도 재미있는 전통이다. 웨딩 댄스가 끝나고 나면 남자들은 신랑을 헹가래 치듯이 들고 신발을 벗겨 양말 끝을 가위로 잘라낸다. 이 밖에도 많은 것들이 있다.

만찬 도중 같은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결혼을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는데, 대부분이 하는 현대적 결혼식을 이야기해줘야 하는지, 전통 결혼을 이야기 해야하는지 갈등이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전 3일 가량 동네에서 잔치하듯 했던 결혼 전통이 현대에 들어 가정의례준칙의 도입과 함께 어떻게 서구화되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는지, 또 그래서 요즘 왜 사람들이 작은 결혼에 관심을 갖는지 설명해주었다. (결혼 만찬장으로 가는 차안에서 한국 음식의 매운 맛은 고추가 소개된 나름 최근에 있었던 (Modern introduction) 일임을 이야기했다가, 500년이 최근이라는 이야기에 다들 배를 잡고 웃었는데, 결혼식의 변화도 500년전 있었던 일이냐고 농담을 해서 멋적게 웃었다. 이는 Modern이 아닌 Contemporary 현상이라고 덧붙이면서.) 우리 결혼에 전통 요소가 많이 사라진 것은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세상은 변해가는 것이고 전통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만들어지는 것이니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고, 전통을 재해석해서 더 좋은 것을 만들어가면 될 것이다. 특히 나처럼 이문화에서 온 두명이 한가족을 이루게 되는 경우 문화접변이 일어나고, 세계가 더 긴밀하게 연결되며 나같은 사례가 워낙 많기에, 뭐가 전통이라고 해야 할지 흐려지는 경향도 생길 수 있다.

이미 둘이 같이 산지 2년이 된 커플로 8월이면 태어날 아이도 있는 그들의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을 기다리는 신랑의 바짝 긴장한 모습과 마른 입술과 함께 초조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며, 결혼은 누구에게나 떨리고 긴장되는, 인생의 반려를 맞이하는 소중한 것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올 연내 결혼을 할 나에게도 간혹, ‘아, 정말 나도 결혼을 곧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그 무게가 불현듯 실감이 나며 설레면서 긴장이 되는 순간이 있다. 재단에 서서 신부를 기다리는 신랑의 마음이야 오죽 더 긴장될까.

이러저러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Regitse(레깃써)와 Michael(미케엘) 커플의 앞날에 좋은 날만 가득하길 빌어본다.

<  Regitse & Michaels Bryll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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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ren & Sunes Bryll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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