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단둘이 데이트

아이와 단둘이서 하는 데이트들이 즐겁다. 아무래도 아빠도 같이 있으면 어른의 대화에 아이가 중간중간 엉뚱한 주제로 뛰어드는 것이 흔한 패턴인데, 둘만이 있으면 우리 둘만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어서 아이의 만족도가 높아져서 그렇다. 그래서 아이는 간간히 엄마랑 단둘이, 또는 아빠랑 단둘이 하는 데이트가 제일이라고 말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2킬로미터짜리 달리기를 하고 왔다. 아이들은 완주시 메달을 준다고 하니 아이는 기뻐서 참여한다고 했다. 평소 달리기를 따로 하지는 않지만 놀이와 운동으로 체력이 다져진 아이라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참여했는데, 너무나 즐겁게 달리고 왔다.

Nordhavn은 새롭게 개발된 지역인데, 이제 상당부분 완료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지역에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사생활 관점에서는 좋지는 않겠지만 그것 빼고는 살기 좋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다가 너무 가깝다는 점은 여름의 소음문제와 해수면 상승과 태풍시 침수 피해 등을 고려하면 항상 좋기만 한 건 아니겠지만.

줄이 길까 싶어 아침 일찍 들러 참가자 등번호를 받아서 산책을 했는데, 도착할때까지만 해도 추적추적 제법 많이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정말 아름다운 아침 산책길을 즐길 수 있었다. 항구의 자락에서 볼 수 있던 풍력발전단지의 평화로운 모습, 정갈하게 정돈된 길 구석구석들, 바다에 설치된 수영시설, 간간히 들리는 이들의 첨벙하는 입수소리,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작은 웅성임, 혹시나 콩고물이 떨어질게 없나 해서 가까이서 걸어다니는 참새들, 해수면에 반사되어 흩어지는 금모래 같은 물결의 반짝임, 선선한 바람이 머리를 날리는 감각, 그전에 본 적 없었던 각도의 코펜하겐과 하이라인. 그 모든게 너무나 아름다웠고, 온 몸으로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뒤이어 달리기 전 행사장에 설치된 놀이시설을 조금 즐기고 나서 사람들과 같이 몸을 푸는데 그 흥겨움. 거기서 오른 텐션으로 2킬로미터를 가볍게 뛰었다. 처음부터 로케트처럼 튀어나가고 싶은 아이를 진정시키며 페이스 조절을 했는데, 중간중간 그렇게 튀어나가버린 아이들이 힘들어서 못뛰고 속상해서 울고 그런게 보였다. 즐겁게 마무리하고 돌아와 조앤더 주스 한잔으로 마무리.

전날 클라이밍 힘들게 하고 나서인지라 몸이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는 늘어져 한시간 낮잠을 잤지만, 아이에게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남은 달리기였다. 매년 계속 가자고 하는 거 봐서 이제 여러 달리기에 같이 참여해야겠다 싶었던 하루.

영주권 신청

드디어 영주권을 신청했다. 덴마크에 산지도 어느덧 11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신청할 수 있었다니. 최근 3년 반을 연속으로 풀타임으로 근무했어야 하며, 지난 4년간 근무 기간이 3년 반을 넘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최근 두 직장 사이에 10개월 정도 쉬고 잠시 샛길로 다른 것을 시도해봤던 나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었다. 이제 지금 직장에서 근로한 기간이 곧 조건을 만족하면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영주권 심사에 2~3개월 걸린다니까 2개월 조금 넘긴 지금 신청하면 얼추 심사 시점에 근로 기간 조건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이민을 해서 일정 거주 기간만 만족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나라도 있으니 그에 비해서는 기존 비자 타입에 상관없이 만족해야 하는 조건이 모두 동일한 덴마크의 영주권 요건은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편이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영주권 없어도 비자를 연장하며 지낼 수 있으니 큰 상관은 없기는 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다. 처음엔 2년, 그 다음엔 4년, 지금 것은 6년짜리 비자를 받았는데, 이 비자 기한이 일정 수준 이상에서 제한될 것인지라 잊지 않고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그런 불편함과, 혹여나 조건이 바뀌어서 연장에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등 거주의 안정에 있어서 심리적 불안함을 주는 요소가 있다.

결혼을 통해 이민온 경우 이혼을 하면 비자가 취소될 수 있다. 물론 덴마크 배우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기반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아이가 없다가 이혼하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조금 불안할 수 있다. 실제 그렇게 해서 나라를 뜨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딱히 거주의 불안정성이 없는 지금, 나는 왜 영주권을 원할까? 그냥 비자를 받고 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서류작업이 영 불편하고 돈도 제법 많이 들기 때문일거다. 백만원이 넘는 돈을 서류 접수하는데 써야 하고, 아직도 남편 계좌의 일정 돈이 내 비자의 보증금으로 묶여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보증금은 혹시나 내가 사회보장제도의 수급을 받을까봐, 그럴 경우 거기서 돈을 빼가기 위함이다.

시민권…은 아직 모르겠다. 예전에는 필요없다는 주의였다면 지금은 50:50 이니 마음이 많이 시민권 방향으로 기울긴 했는데, 왜인지 하나는 내가 한국 국적을 계속 갖고 있었으면 한다고 한다. 국적이 나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아닐텐데, 하나에겐 국적이 어떤 정체성의 의미를 지니는 것 때문일까? 뭐가 되었든 얼른 영주권이 나오면 좋겠다. 난 여기 계속 살건데, 그 자격을 주시오! 하는 느낌…

자유낙하에 대한 공포

그냥 자유낙하네 대한 공포라는 말을 쓰는 자체로 바로 손바닥에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해 순식간에 흥건해진다. 리드 자격증을 딸 때 첫 추락 연습에서 내 빌레이 버디가 나보다 체중이 많이 무겁고, 줄에 슬랙을 거의주지 않은 탓에 벽에 강하게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클립한 곳으로부터 추락한 높이가 워낙 짧았기에 내 몸이 벽으로 너무 강한 힘으로 끌려갔고, 발목이 그 힘을 흡수하는 과정에 발목 인대에 충격이 가해졌다. 사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발목 가동성이 떨어져서 발레하며 플리에를 하는 게 조심스러워졌었다. 그 이후 내가 마지막으로 클립한 위치보다 위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커졌다.

클라이밍은 신체 능력도 중요하지만 멘탈관리가 정말 중요한 운동이다. 무서우면 아무래도 내 발과 내 다음 동작을 신뢰하기 어렵고 그러면 늘기가 어렵다. 안전하게 추락하는 방법에 대해 잘 이해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 뭐가 있는지를 생각하며 그 공포를 이겨내는 게 필요하다.

리드 클라이밍을 할 때 톱로프로 올라갈 때보다 그레이딩을 낮출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줄을 클리핑 할 때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물론 클리핑을 하는 동안 한 손은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실제 같은 등반 난이도의 루트를 탄다 할지라도 톱로프보다는 어려울 수 밖에 어렵다. 대회에서 같은 높이를 올라갔다 하더라도, 클립을 하고 떨어지느냐, 클립을 하지 못하고 떨어지느냐에 따라 점수를 달리 주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팀 트레이닝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덕에 빌레잉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추락에 대한 공포와 싸워보고자 한다. 예전에 빌레이 버디를 해주던 친구가 같은 팀에서 트레이닝을 하기도 하고, 다들 나보다 오랜 기간 클라이밍을 한 사람들이라 빌레잉에 대한 신뢰도가 충분해 추락 훈련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듯 하다.

첫 트레이닝에선 한 네번 쯤 떨어졌나? 워낙 루트가 가파랐던 곳에서는 중간에 힘들때 버디에게 잡아달라 그렇지 않고 손을 딱 놓고 추락을 했고, 나머진 톱을 잡고 나서 떨어졌다. 혹여나 주변에 부딪힐까 싶어 제일 안전할만한 곳에서 연습하려다보니 톱에서 하게 되었는데, 정말 매번 홀에 다들릴 거 같은 샤프한 비명을 지르면서 떨어지곤 했다. 제일 마지막 추락은 톱을 잡고 마지막 클립을 안하고 떨어지다 보니 꽤나 낙하 거리가 길었는데, 얼마나 심장이 벌렁거리던지. 아드레날린이 전신을 빠르게 돌며 온 몸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기분이었다.

다음번 트레이닝은 다양한 추락 훈련을 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어떤 훈련을 할지 궁금하다. 이렇게 주 1회 팀 트레이닝하고, 따로 한번 정도 하면 체력이 좀 많이 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지구력 측면에서. 12월까지 얼마나 늘지 궁금하네. ❤

늙어가는 몸 바로 쓰기

미레나를 쓰고 있어서 생리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는 관계로 이제 거의 유명무실한 생리이긴 하지만 그간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생리가 유지되어 와서 아직까지는 완경기에 들어서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서서히 희끗하게 세고 있는 것이나, 생리 직전 쯤 되면 관절이 좀 더 뻑뻑한 것 같은 점 등을 보면 호르몬이 최적의 상태로 유지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의 컨디션은 사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상태이다. 우선 젊어서 지금처럼 운동을 많이 하지 않은 탓에 그 당시 체력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던 이유도 있을 거고, 나이 들은 몸에서 여러 삐걱대는 신호를 보내와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덕도 있는 것 같다. 젊었을 때와 다른 것은, 조금만 잘못 써서 운동하면 바로 그날 몸이 신호를 보낸다는 점이다. 그게 좋은 게 몸의 피드백을 토대로 몸의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골반의 좌우 불균형,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발레를 하면서부터 그 불균형이 여기저기 통증을 불러왔고, 하나를 어드레스하면 다른 곳에서 또 신호가 오고 또 그게 무한 반복 같은… 하지만 그를 통해 서서히 몸이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한번에 모든 것을 고칠 수는 없던 게, 몸이 그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보상작용을 해왔고, 그걸 한번에 고치는 건 당시 내 몸에 대한 인지수준이 낮은 내게 불가능했다.

이 모든 것은 평소의 습관과도 연결되어 있어 한번 고친다고 끝나는게 아니라 항상 관리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해결되고나니 발레에서 느는게 느껴지는 것이다. 통증 관리와 실력 향상이 동시에 되다니.

골반이 먼저였는지, 발이 먼저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게 해결되고 나니 오랜 기간 나를 괴롭히던 발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고, 예전에 삐었던 발목에서 안에 충돌이 있던 부분이 없어져 볼더링 하면서 뛰어내릴 때 발목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줄어들었다. 로프 클라이밍에서 떨어질 때 벽에 발로 랜딩하는데서 오는 충격 흡수도 마찬가지고.

나이들어간다고 다 나쁜게 아니더라. 젊어서 몸이 그냥 다 견뎌줄 땐 몸을 잘못되게 써도 아프질 않아 잘못된 습관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빨리 반응이 오니까 잘못된 것을 교정할 수 있으니까.

우리 귀한 몸 오래오래 잘 쓰자!

할머니의 죽음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이상하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을까? 하지만 내게 떠오르는 단어라곤 저것밖에 없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고 나니 갑자기 그게 뭘 뜻하는지 가슴에 확 다가와 꽂힌다. 그리고 참으로 복잡한 감정을 남긴다.

내년이면 백세를 맞이하셨을 할머니니 하늘이 내린 시간을 다 채우신 것은 분명할 거다. 그러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당신의 정신은 참으로 맑아서 갈수록 말을 듣지 않는 몸 속에 갇히신 것 같아 힘드셨던 할머니. 정신이 또렷해도 나이가 들면 사람은 어려진다 하지 않던가. 그래서 엄마외 자식들의 마음을 괴롭게도 하셨던 당신. 그러한 엄마의 복잡한 마음을 옆에서 보며나도 복잡한 감정을 가졌더랬다.

나에겐 초등학교 이후로 유일하게 남아있던 조부모님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던 할머니. 그간의 복잡한 감정을 뒤로 하고 이 일을 계기로 나는 할머니와의 시간을 되새기는 추억여행을 하며 내면의 복잡한 소리를 들어본다.

곧 돌아가실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은 탓에 감정적으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막상 그 일이 실제로 닥친다면 엄마의 감정이 어떨까를 생각했다. 내가 어떨지는 생각도 못했다. 밤늦은 시간의 전화. 엄마가 간혹 한국 밤시간에 전화하시면 마음이 떨린건 이 소식이 올까봐였는데, 그게 이번엔 정말로 왔다. 전화를 끊고 할머니를 잘 보내주시라 엄마께 메세지를 남겼는데, 멍했다. 잘 와닿지를 않았다. 갑자기 모든게 똑같은데 세상에서 할머니만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모든게 똑같다는게 이상했다. 엄마를 위로하는게 아니라 내가 할머니에게 작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당장 비행기표를 끊었다. 코로나 이후로 전화 몇통화 외에는 얼굴도 못뵈었던 할머니는 이미 내가 가서 작별하는지 아닌지도 모르시겠지만, 나는 가서 할머니가 존재했던 시간과 작별하고 그 챕터를 닫는 의식이 필요했다. 그간 무심했던 나의 죄책감에 슬퍼하는 것도 잘 못한다면 그것또한 슬플 것이기 때문이다.

헬싱키공항의 스타벅스에 앉아 죽음이라는 단어를 쓴 순간부터 눈물이 주체하기 어렵게 흘러내린다. 누가 위로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위로할 일도 아니다. 난 그냥 할머니를 추억하고, 감사하고, 슬퍼하는 기회를 갖는 거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것만큼 적절한 순간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아끼지 말라는 말이 그렇게 진부하다 느꼈건만, 그렇지 않았다. 그걸 마지막으로 전하지 못했던게 이렇게 아플줄이야.

할머니. 사랑했어요. 추억 잘 간직할게요. 감사해요. 안녕…

발레

지난 일년 발레가 꽤 많이 늘었다. 그 중에서도 최근 두어달새 가장 많이 늘었는데 내 몸의 균형을 느끼라는 말이 뭔지 알게 되었고, 몸을 길게 늘이면서 사용하라는 것, 언제 몸의 어떤 근육을 사용하고 릴렉스 시켜야 할 지 등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발전의 원동력은 새로운 댄스 스튜디오인 댄스메이즈가 열고, 최근에 경험한 여러 선생님에게서 다양한, 그리고 중요한 코멘트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 정말 잘 추는 사람들이 클래스에 많아서 그들의 춤을 보면서 내 순서 전에 복기하며 미리 준비할 시간을 얻고, 나와의 차이를 보면서 교정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고정으로 다니는 다른 학원의 클래스 선생님이 출산휴가를 들어감에 따라 전직 프린시펄인 남자 선생님이 대강을 해주셨는데 댄스메이즈에서도 몇번 수업을 들었던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다. 이 클래스에서 많이 늘었는데 오늘 이 선생님의 대상이 끝나면서 나에게 한마디 해주신게, 너 진짜 열심히 하는구나, 삼주 사이에 많이 늘었다, 코멘트를 잘 듣고 반영하네 라는 것이었다. 와…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하는 발레가 아니지만, 내가 느끼는 발전이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님을 확인받는건 매우 유쾌한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지. 부상 없이 오래오래!

제2외국어 삶의 피곤한 순간

모국어도, 제1외국어도 아니라 성인이 되어 배운 제2외국어로 일해야 하는 외노자라면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언어에서 오는 피곤함이 있을 것이다. 덴마크어로 일한지 5년정도 되지만 지금도 갈 길이 멀다. 제2외국어로 일하는 외노자는 언제 어떻게 피곤함을 느끼는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모국어로는 그냥 들어도 귀에 쏙쏙 박혀서 거의 토씨까지 틀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제2외국어로 들으면 듣는 순간은 다 알아들었는 것 같은데 뭘 들었는지 기억이 안난다던가, 전체적인 맥락은 이해가 가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거나, 새로이 접하는 단어지만 그 상황에서는 알아들었는데, 그걸 다시 말하려면 새로운 단어가 기억이 안나서 돌아돌아 설명을 해야한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즉 일을 하는 맥락에서 컨텐츠와 관련된 뇌의 활동 외에 언어와 관련된 뇌의 활동이 동시에 활성화가 되어야 하는데서 오는 피곤함이 있다. 퍼포먼스도 컨텐츠만 갖고 뇌가 프로세싱을 해야할 때보다 떨어질 것이고. 어떤 자료를 읽고 숙지해야 하는 상황, 회의에서 듣고 토론해야 하는 상황 등에서 상황별로 다른 로드가 걸리고, 언어적 로드가 없는 사람에 비해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모국어로 대화를 할 때면 경험할 일이 없으나 제2외국어로 생활하면 경험할 만한 것으로 또하나는 어느 날은 듣기도 더 잘되고, 말도 잘 나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날은 재차 물어야 하거나 점심시간의 대화중 놓치는 게 많고 단어도 딱딱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다는 것이다. 모국어로 느낀 적이 없는 부분이다. 피로도가 원인일까? 뭔지 모르겠다. 그냥 내 덴마크어가 퇴보했나 싶은데, 또 막상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 모습이 느껴지기에 그건 아니고. 실력을 그래프로 그리자면 우상향으로 진보하는 트렌드를 보이지만 일정한 상승이 아니라 그 트렌드 안에서 세부적 그래프는 상승장과 하락장을 경험하는 모양이다.

여전히 토론은 상당한 집중을 요한다. 사실 우리말로도 토론은 집중을 요하는데, 제2외국어 두뇌까지 가동을 해야하니까. 그나마 발전된 것이라면 이제는 생각 안나는 단어는 영어로 생각이 난다는 데 있다. 따라서 혹여나 단어 하나에 딱 막혔을 때 얼어붙지 않게 된다. 과거엔 “영어로 말해도 돼”라는 말이 제일 부담스러웠던 것이, 하도 두뇌가 덴마크어를 돌리느라 풀가동이 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어 외에는, 또는 한국어 단어로도 기억이 안나고 그냥 백지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의 중구난방 정말 다양한 주제의 대화는 가장 난이도가 높다. 농기구, 건자재, 기계, 사냥, 펜싱, 승마, 집 레노베이션과 관련된 프로세스, 여행, 각 나라와 도시의 덴마크어식 지명, 요리, 문화, 역사, 철학, 각종 인물의 이름, 정치. 두서없이 늘어놓은 이상으로 정말 다양하고 예측불가하다. 그리고 테이블이 양쪽으로 나뉘어 대화가 두갈래로 진행되면… 이제 헛소리 안하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자체로 다행이다. 간혹은 주제가 바뀌고 바로 캐치업이 안되서 1분정도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파악을 해야할 때가 있다.

대화중 숙어 사용도 이해도를 떨어뜨리는데 기여한다. 어제 유난히 숙어가 많이 인용되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정말 추론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회의가 어땠냐는 물음에 완전 모자와 안경이었다는 것이었다. “모자와 안경?” 그게 뭔 뜻이야 하고 물어볼 수밖에. 엉망진창이었다는 뜻이었다.

간혹 딴소리를 하게 된다. 우리 뇌는 아주 놀랍게도 필터링을 잘한다. 대충 한두단어 안들린 것이 있다 했을 때, 그게 대세에 지장이 클 것인지 아닌지를 자체적으로 신속 판단해낸다. 그런데 이 자체신속판단이 항상 정확한가 하면 아니다. 따라서 간혹 그게 의미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단어인 경우 딴소리를 하게 된다는 것. 귀가 안좋은가 하면 한국말은 잘 들리는 거 보면 그것은 또 아니다. 귀를 탓하고 싶지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안되네.

여러모로 피곤하게 하는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길을 희미하게나 밝혀주는 희망의 빛줄기라 하면, 내가 회의에서 이야기를 할 때 긴장하지 않게 된 것, 타인의 얼굴 속에 스치는 “음?”하는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 피곤하지만 덴마크어 사용이 내게 열어준 새로운 기회와 이해의 폭을 생각하면 어찌 불평할소냐.

국민연금도 덴마크 국세청에 신고해야…

영주권을 따면 영주권을 딴지 5년안에 국민연금을 일시반환금의 형태로 찾을 수 있다. 십년이 넘게 부었지만 채 4천만원이 안되게 부었던 국민연금은 굳이 만기까지 묵혀둔다 해서 덴마크에서 국민연금을 받을 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가입기간 합산이니 뭐니 해도 차라리 내가 그돈을 가져와서 주식투자를 하지 싶은거다.

지금 직장에서 근무한지 3년이 되서 앞으로 4개월 정도 있다가 영주권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국세청에 관련해서 미리 질문을 던져보려고 그전에 관련 규정을 대충이라도 찾아보려고 검색을 하다보니 이런 걸 찾게 되었다. Har du husket at fortælle SKAT om din pension i udlandet? 음? 국외 연금을 덴마크 국세청 SKAT에 신고했냐고? 거의 십년전에 유선으로 질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금 타는 게 없는 연금이면 그냥 둬도 된다고 해서 그냥 묵혀두고 있었는데 올해 새로운 법이 올해 발효되어서 2024년 7월 1일까지 별지의 양식에 따라 신고를 해야한다 . 어머나. 별지양식인 Erklæring L (blanket 49.020) 을 읽어봤는데, 이게 국민연금도 해당되는지가 애매해서 국세청에 질의했다. 모르는 건 담당관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니까. 국민연금의 납부 방식, 나중에 지급되는 연금의 형태 등과 내 납세의무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장황히 곁들인 메일을 보냈더니 신고를 하란다. 일시반환금으로 받는 걸 여기 연금으로 묶어서 지금 찾지 않는 것으로 해 납세 시점을 은퇴시점으로 돌릴 수 있는지도 물었더니, 그건 신고서 제출하면서 추가질의하란다.

신고서를 다운받아 찬찬히 읽어보며 작성을 해보니, 이런 국민연금의 경우 매년 신고할 필요는 없고 한번 신고했다가 나중에 지급사유 발생 등으로 변동이 생기면 그때 신고하면 되는 거였다.

원래 법이 있으면 그게 내 나라든 아니든 꼼수를 부리면 안되겠지만, 타국에 있으면 더욱 더 신경쓰이는 게 거주의 권리와 관련해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내 신고의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신고의무를 게을리하는 경우 벌금형 또는 1년 6개월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고, 공무원은 특히 불법행위를 하지 않아도 윤리강령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면 직위해제될 수 있어 더 유의해야 한다. 나는 공무원이니까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최악의 경우 일시반환금을 그해 소득으로 모두 인정받아 다 과세하고, 이걸 내가 원하는 때 언제고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최선의 경우는 이를 모두 연금으로 묶어서 투자는 내가 원하는대로 하되 이를 연금에서 빼는 타이밍에 그 빼는 금액만큼을 그해 소득으로 보아 소득세 산청에 반영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최고 높은 소득세인 topskat를 내지 않고 있는데, 저걸 한번에 소득으로 산입하면 그해에는 topskat을 내야 해서 이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결론은 신고 자체는 까다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한번 하면 일시반환금 찾는 거 아니면 나중에 연금탈때까지 신경쓸 필요 없다는 점. 그리고 이제 7월 1일부로 신고 안했으면 불법이라는 것.

운동부상과 체형교정

마흔 네살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요즘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부쩍 느낀다. 몸의 근육과 관절을 조금만 잘못 쓰면 금방 신호가 온다. 예전엔 운동을 통한 부상을 느끼려면 잘못된 동작을 꽤 장시간 반복해야 했다면 이제는 몇시간만 연속으로 잘못 썼다 하면 바로 알 수 있다. 뜨개질을 하면서 약간 틀어진 각도로 움직임을 반복하면 손목에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것이 그 일례다. 물론 뜨개질은 짧은 시간안에 특정 동작을 매우 많이 반복하니 그 총량이 적지는 않지만. 회사에서 일할 때 한쪽 모니터를 많이 쳐다보면 목에도 신호가 오는 것도 그렇다.

어떤 동작이고 간에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있어 온몸의 곳곳에 퍼진 근육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부상이 오는 것은 전혀 반갑지 않다. 각종 운동을 즐겨하는 나로서는 이런 운동과 관련된 자세에서 오는 부상이 가장 무섭다. 발레와 실내벽등반 이 두가지 모두 평소에 하지 않을 동작들을 많이 하기도 하고, 항상 자신의 한계를 밀어내며 그 한계를 더 늘려가는 운동이라 부상의 확률이 높다. 운동이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심혈관계에는 좋을지언정 운동이라는 게 부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다.

한동안 골반과 척추를 연결하는 부분의 천장관절 부분의 문제가 지속되어왔다. 임신기간 중에도 간간히 아프긴 했었지만 이번에는 햄스트링 통증을 동반한 것이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처음엔 다리를 뒤로 드는 동작을 중심으로 천장관절 통증이 있고, 다리를 높이 드는 동작에서 같은 쪽 햄스트링이 아파왔다. 오래지 않아 견갑과 척추사이 근육이 결리듯이 아프면서 담이와 목 인근 근육이 다 뭉치고 두통까지도 오는 것을 경험했다. 뭔가 해결을 해야만 했다. 담은 이주 정도 지나니 서서히 증상이 좋아졌지만 천장관절과 햄스트링은 통증이 줄어들었다 늘어들었다는 것을 반복하며 완전히 좋아지질 않았다.

이런 부상은 원인이 있다. 뭔가 잘못 쓴다는 것이다. 그게 희망을 주는 신호이긴 하다.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통증을 유발하는 동작을 반대쪽 몸으로 거울로 비추듯이 수행했을 때 문제가 없다면 뭔가 그 동작들 사이에 있는 차이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거울로 비춘 나의 모습에서 양쪽에 차이가 나거나 양쪽 동작의 수행에 있어서 똑같이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동작 간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나의 대부분의 부상은 몸 양쪽의 차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속에 나타났다. 십년전 나의 몸과 지금의 나의 몸은 큰 차이가 있다. 상체와 하체 사이의 사이즈 차이가 한때 44, 66과 같은 차이였다면, 지금은 55로 균일해졌고, 옷의 패턴과 내 몸의 형태가 비슷해져서 바지를 샀는데 엉덩이와 허벅지가 꽉 끼고 허리가 남는 것 같은 문제가 더이상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바뀌는 데에는 발레를 통해 그간 쓰지 않았음을 알게 된 근육을 쓰게 된 것에 있고, 그를 통해 생긴 신체의 불균형을 고쳐온 덕이다. 그중 골반과 척추의 틀어짐, 발 아치의 무너짐 등을 많이 교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다. 이 불균형은 도대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그런 것들이었다. 골반과 척추, 어깨 등의 것은 그냥 왼쪽과 오른쪽의 높낮이가 높고 낮고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척추를 중심으로 한 회전의 치우침 등과 삼분면으로 일어나기에 더욱 고치기 어려웠다.

천천히 해결하자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통증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게 계속되어 밤에 숙면을 취하는 것마저 어려워지니 발레를 쉬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한번 쉬면 복귀하기까지 힘든데 하는 생각에 두려움도 생기고 복잡한 마음이 드는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인스타와 유튜브 등에 많은 체형교정 관련 다양한 자료가 있다는 거였다. 완전하진 않지만 방법을 찾았고 쉽진 않지만 교정을 진행하고 있다. 양쪽 불균형의 원인을 해결하고 나니 발레의 피루엣에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것도 양쪽 모두. 원래의 악습이 자꾸만 돌아오려해서 일상의 모든 동작 뿐 아니라 운동 시 동작에 있어서 이들까지 신경쓰려니 발레와 클라이밍 중에 머리가 훨씬 복잡하지만, 한동안 행동을 제약하던 통증들을 잡고 나니 너무나 다행이다.

이 모든 것이 무료로 공개되는 자료들을 활용하면서 가능하다는 것에 우리 새로운 정보 과잉의 시대에 감사함이 얼마나 큰 지 모르겠다. 내 인스타 대부분이 발레, 클라이밍, 체형교정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걸 만드느라 고생한 사람들의 노력 덕에 오늘도 나의 늙어가는 몸을 끌고 가는 취미생활은 맥을 유지할 수 있구나.

덴마크 직장 점심식사

내가 있었던 곳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전체 공공부문에 해당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중앙정부는 점심시간 30분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구내식당은 회사의 지원이 어느정도 있어서 1인당 대충 6천원 언저리를 내면 나머지는 회사가 부담하는 형식이고,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도 꽤 된다. 여기서 도시락이라 함은 꼭 다 완성된 음식을 싸오는 것 뿐 아니라 오이, 당근, 토마토, 햄, 치즈, 아보카도, 후무스, 버터 등을 회사 냉장고에 두고 자리에 둔 호밀빵을 가져다가 필요한 것을 얹어 먹는 식의 것도 포함한다.

우선 점심시간이 30분에 불과하기도 하고, 이 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기도 하니 대부분 구내식당에 내려가서 같이 먹는게 일상이다.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나누는데 각자 일상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된다. 배우자와 파트너 이름과 직업, 아이들 이름, 나이, 취미는 뭐고, 주말엔 뭐 했고, 뭐 할 거고, 휴가엔 뭐할 건지 등등 서로 시시콜콜 다 안다. 한국같았으면 ‘어떻게 이런걸 물어보지?’ 싶은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too much information이라고 할법한 것도 이야기해준다. 아마 이런 시간이 “회식”이라는 것 없이도 직장생활의 단합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전직장에서는 간혹 이 점심시간이 부담스러웠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다양하게 다뤄지는 주제들이 난무하는 점심시간은 당시 큰 구내식당의 엄청 울리는 어쿠스틱과 함께 덴마크어 리스닝 시험과 같은 스트레스를 줬기 때문이다. 내 왼쪽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던 왼쪽 사람이 갑자기 오른쪽에 앉은 나를 보며,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음… 나 소리가 잘 안들려서 뭔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네?”라고 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왼쪽 오른쪽, 맞은편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공을 튀기듯이 무질서한 탁구같은 대화를 하는 상황에 나는 뭐를 받아쳐야할 지 몰랐다.

일이 바쁘던 때면 간혹 점심을 책상에 갖고 와서 식사하던 센터장을 보면서 나도 간간히 그랬고, 그게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번은 그렇게 식사를 갖고 와서 책상에서 먹곤 했다. 그당시에만 해도 뭘 물어봐도 되는지, 뭘 물어보면 안되는지를 몰랐기 떄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뭘 물어보면 안될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다 물어보면 되는 거였다는 생각이다.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이 다 알고 있는 그들에게 그게 사석에서 친해서 그런건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나는 안물어봤는데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었던 거다. 간혹 내가 생각하기에 안물어보는게 맞을 것을 물어보는 그들을 보며 취조당하는 기분도 가졌는데, 같은 질문을 지금 들었으면 아마 그런 생각 안하고 흔쾌히 다 답을 해줬을 것 같다.

즐거운 점심 식사/수다시간. 특별히 회의가 겹치거나 하지 않는다면 함께할 것을 기대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처음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익숙해진다면 사실 동료들과 정말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