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 돌아온 가을

가을이 돌아왔다. 흐린 하늘과 함께.

덴마크의 가을날씨 흐린 하늘, 비가 오지 않아도 항상 젖어있는 땅 (특히 42번째 주 이후), 잦은 비, 간혹 오는 폭풍 등으로 요약된다. 기온은 10~15도 사이를 오가는 것으로 여름대비 평균 5도~10도 가량 낮아진다. 한국에 비해 선명하지 않은 단풍. 딱히 매력적인 계절은 아니다. 그래도 여름내내 줄어들었던 바람이 다시금 세차게 불기 시작해 바람의 나라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해줘 싫지만은 않다.

덴마크에서는 여닫이 창문이 보통이라 이런 계절 창문을 잘 고정해두지 않으면 꽝하고 귀를 때리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아파트엔 우리집 창문처럼 이렇게 열리는 창문이 흔한데 (거의 360도 가량 회전이 가능해서 집 안에서 창을 안밖으로 닦기 편하다. 사실 애 있는 집에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창문은 중간에 고정할 수 있는 걸쇠가 아주 조금 열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것밖에 없어서 이렇게 확 180도 열어놓지 않으면 바람 많은 시기엔 열어둘 수가 없다. 가을엔 바람이 잘 안부는 날이 별로 없기에 거의 항상 이렇게 열어둬야 한다. 덕분에 창문을 활짝 열고 싶은 날은 제대로 열어둘 수 있지만, 또 활짝 열고 싶지 않은 날도 열어두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활짝 열어놔야 한다는 면에서 장단점이 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런 창이 찔끔 열 수 있는 창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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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 보이는 하늘이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다. 아이 심심해.

그런데 날이 이렇니까 실내가 좋아진다. 이곳의 실내 조명은 노랗고 우리보다 훨씬 조도가 낮아, 어렸을 때 좋아하던 스탠드만 켜놓던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래서 덴마크 사람들이 hygge를 중시하고, 불 밝게 켜는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내가 뭘 찾는 것도 아니면서 천장등이라도 켜놓고 있으면, 옌스는 아직도 덴마크의 hygge를 못배웠냐며 스탠드를 켜주고 천장등을 끈다.

집에서 마시는 커피가 맛있어지는 것도 이맘때쯤. 밖이 조금 쌀쌀해지니까 창문 열어두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 얼마나 맛있게 느껴지는 지. 야외커피 느낌이랄까?

주말, 한인회에서 여는 추석모임에 다녀왔다. 서울 뿐 아니라 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에 가도 도회지에 나온 느낌이 든다며 기분이 전환된다고 하는데, 이리 심심한 덴마크 삶이 좋은 나는 촌이 좋은 모양이다. 매일 빠르게 바뀌는 일출, 일몰시간, 시기별로 차이나게 꽃을 피우는 다른 종류의 식물, 헐벗음에서 연한 초록과 또 짙은 녹음으로, 녹음에서 스리슬쩍 노란색으로 조금씩 옷을 갈아입는 나무, 새끼 오리와 백조가 성장하는 모습, 계절별 구름과 하늘 색깔의 변화, 시기별로 바뀌는 새소리 등 그런 변화를 느끼고 살 수 있게 된 것이 나는 마냥 신기하고 좋아서 그렇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문화생활은 충분히 즐기면서 말이다.

한국에 비해서는 다소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나무들이 노랗게 옷을 갈아입는 것을 관찰하는 건 좋다. 변화는 사람을 자극하니까. 이렇게 올 한해도 후반기로 들어서는구나.

 

 

덴마크 근현대 변화상을 보여주는 Matador

덴마크가 지금처럼 평등한 사회를 이룬 건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남녀간, 사회계층간 차이가 명확했던 사회가 지금의 모습으로 어떻게 탈바꿈 했는지 쉽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 ‘마타도어 (Matador)’는 보드게임 ‘모노폴리(우리나라의 부루마블)’게임 또는 ‘실업계의 거물’, 두가지를 모두 의미한다. 실제 드라마에서 모노폴리 게임이 자주 등장하는데, 진정 의미하는 바는 Mads Skjern이라는 주인공의 사업이 성장해 해당 지역의 거물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덴마크가 어떻게 현대의 모습으로 바뀌어가는지를 그려낸다.

마타도어는 다음과 같은 2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 Episode 1.     Den Rejsende / 1929
  • Episode 2.     Genboen / 1929
  • Episode 3.     Skiftedag / 1930
  • Episode 4.     Skyggetanten / 1931
  • Episode 5.     Den Enes Død / 1932
  • Episode 6.     Opmarch / 1932
  • Episode 7.     Fødselsdagen / 1933
  • Episode 8.     Komme Fremmede / 1934
  • Episode 9.     Hen til Kommoden / 1935
  • Episode 10.   I Disse Tider / 1935
  • Episode 11.    I Klemme / 1936
  • Episode 12.   I Lyst og Nød / 1936-1937
  • Episode 13.   Et Nyt Liv / 1937-1938
  • Episode 14.   Brikkerne / 1938-1939
  • Episode 15.    At Tænke og Tro / 1939
  • Episode 16.   Lauras Store Dag / 1940
  • Episode 17.   De Voksnes Rækker / 1941-1942
  • Episode 18.   Hr. Stein / 1943
  • Episode 19.   Handel og Vandel / 1944
  • Episode 20.  Den 11. Time / 1945
  • Episode 21.   Vi Vil Fred Her til Lands / 1945
  • Episode 22.   Det Går Jo Godt / 1945-1946
  • Episode 23.   Mellem Brødre / 1946
  • Episode 24.   New Look / 1947

허구의 도시인 Korsbæk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가 꽤나 빠르게 진행되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다.

예전에 어떤 친구로부터 덴마크의 과거 남녀관계가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기 할머니가 젊은 시절, 몸이 안좋아 남편에게 물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물을 들고 온 할아버지가 할머니 바로 앞에서 물잔을 뒤집어 물을 뒤엎으며, 본인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노발대발 했단다. 나보다 10살 어린 친구이니 대충 할머니, 할아버지 연배가 지금 80대쯤 되었을 거다. 보수적인 율란 출신이니 아마 코펜하겐보다는 더했겠지만, 놀랍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도 경제성장과 함께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증가하면서 남녀관계의 볂화가 갈등의 형태로도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유교의 남존여비적 사상이 향후 20년 뒤에는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소비가 적은 삶을 지향하며

우리집의 가사분담은 대충 정해져있다. 옌스는 청소기를 돌리고, 다림질을 하고, 나는 부엌살림 및 나머지다. 노동 총량으로 놓고 보면 대충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옌스의 다림질은 99%가 자기 옷이니까 당연히 자기가 할 일이긴 하지만, 내 것이 껴 있을 경우 내 것도 해준다. (난 다림질 하는 옷은 거의 안산다.)

월요일 오전 7시 비행기로 떠나 일요일인 오늘 10시 15분에 랜딩하는 출장을 떠난 옌스는 이번 주 집에 없었으므로 내가 다림질을 제외한 모든 일을 해야한다. 그가 청소기를 돌리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꼼꼼하지는 않기에 간혹 내가 청소기를 돌리고 옌스가 다른 일을 할 때가 있다. 이번처럼 이러나 저러나 내가 다 해야하는 경우를 포함해, 내가 청소기를 돌릴 때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힘도 더 들지만, 그래도 다 하고서 집이 깨끗해 진 것을 보면 속이 어찌나 후련한지.

치우고 사는 걸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워낙 깔끔하게 하고 사신 엄마 덕분에 청결에 대한 기준은 높다. 따라서 내가 어지르고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이렇게 모든 것이 한번에 깔끔하게 정리되고 나면 속에 쌓인 묵은 짐을 다 비워낸 느낌이다.

이런 때면 소소하게 찬장 안도 정리하고 버릴 것들을 버리는데, 살면서 쓸 데 없는 것들을 왜이리 많이 사 모으는지. 예전보다 물건을 잘 사지 않고, 최대한 써서 없애는 편이라 정리할 게 없을 거 같은데도 막상 치우다보면 버릴 것들이 많이 나온다.

덴마크에 살면서 크게 변한 것 중 하나가 있다면 쇼핑이다. 지름신과의 작별. 물건을 사모으는 일을 크게 지양하고 있고, 세일이나 1+1에 현혹되지 않도록 필요할 때 물건을 사는 것으로 정했다. 과일이나 채소 등 기타 먹는 것도 다 하나씩 사고, 이미 산 것을 다 먹을 때까진 유사 품목은 사지 않는다. 1+1이나 세일 등으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샀을 때, 결국 버리는 일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 괜히 묵혀두다 버리게 되기도 해서 그렇다. 어느게 결과적으로 경제적인 삶인가를 장기간에 걸쳐 관찰해보니, 이게 더 남는 장사인 것 같다.

이 뿐만 아니라 집에 여백이 남는 것을 좋아하는데, 짐이 늘어나면 다 채워넣어야 하고, 그 부족한 공간을 마련해내느라 스트레스도 받는다. 크지도 않은 집, 그리고 벽에 그림이 많아 수납 공간이 가뜩이나 부족한데 물건을 새로 장만하면 자리 마련하는게 참 힘들다. 그리고 새 물건이 주는 정서적 만족감은 그 유효기간이 극히 짧아 줄어든 잔고가 주는 스트레스에 비해 너무 적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미니멀리스틱한 삶을 사는 것까진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이 많아 시간이 걸리겠지만, 소유가 적은 삶을 살고 싶다. 소유한게 적으면 관리할 것도 적으니까. 그리고 소유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자연을 가까이 하면 그게 행복임을 알았으니까.

루이지애나 미술관과 가을날씨

 

어제 저녁, 간만에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다녀왔다. Daniel Richter라는 독일 작가의 회화전이 열리는데, 전시 안내 우편에 실린 작품의 색에 매료되어 날 좋을 때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평일엔 저녁 10시까지 열기에 마침 외곽으로 이사를 갈 친구와 시간이 맞아 수업 끝나고 다녀왔다.

형광색과 비형광색을 절묘하게 섞은 강렬한 이미지의 그림이 많았다. 아노미적인 상황을 포착한 그림이 많았는데, 끔찍할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색과 사람들의 기묘한 표정 등으로 인해 보고 피식 웃게되는 경우가 있었다. 난민 보트가 밤바다위에서 표류하는 장면이나 폭동이 난 도시가 불타고 있는 장면 등을 담은 작품이 바로 그랬다.

덴마크는 미술관 뿐 아니라 많은 문화시설이 연간회원제를 운영하는데, 루이지애나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1+1 멤버십을 가입할 경우 혼자 세번 가는 것에 못미치는 가격에 나 이외에 한 명을 동반해 연간 언제든지 갈 수 있고, 추가 2명까지는 50% 할인된 가격으로 동반할 수 있어서 손님 모시고 갈 때 참 좋다. 또한  안에서 먹고, 마시고, 쓰는 모든 것을 10% 할인된 회원가격에 살 수 있다. 뮤지엄 샵에서 살 수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백화점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이기에, 같은 것을 산다면 미술관에서 사는 게 이득이다. 일년에 대여섯번은 가는 나에게는 이 멤버십이 최고이다.

어제는 덕분에 겨울에 쓸 베레모와 화려한 반지도 샀다. (사실 마음에 들어도 비쌌으면 안샀는데, 정말 놀랍게도 다 싸서 사버렸다.) 같이 간 친구 왈,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하얀 베레모를 쓰고 나타나서 놀랐다고 하는데, 난 다른 모자모다 베레보가 제일 잘 어울려서 이것만 쓰고 다닌다 하니 잘 어울린단다.

스웨덴이 바로 바다 건너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보인다. 해질녘 은빛으로 변한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명확히 나눠주는 건 스웨덴 땅이다. 산이 없어 얇은 띠처럼 보이는 땅이 하늘과 바다를 둘로 나눠주는데 그 풍경이 참 아름답다. 임신만 안했어도 와인 한 잔 사들고 그 바다를 보며 마시는 건데, 아쉽게도 임신을 한 탓에 그럴 수가 없다. 그런 여유는 내년 이후로 기약하며…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나에겐 휴식과 같은 공간이다. 혼자 가도, 여럿이 가도 좋고, 가면 마음이 차분하고 풍요로워진다. 특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둑어둑한 플랫폼에서 기차를 잡아 타고 돌아오는 길은 어쩐지 여행을 다니는 기분마저 자아낸다.

배가 눈에 띄게 커지고 있고, 그 무게도 이제 조금씩 느껴지지만, 임신 기간 중 몸이 제일 가벼울 기간이라고 하니 이 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며 혼자의 여유를 즐기련다. 내년 1월만 지나면 이런 자유와도 작별이니까.

오늘은 아침 잠시 시내에 다녀오는 길에 Østerbro 길을 자전거로 달렸다. 깔끔하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라 좋아하는 곳. 해는 여전히 쨍하지만 간만에 바람이 많이 부는 오늘, 옷을 노랗게 갈아입기 시작한 나무들이 솨아…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게 어찌나 상쾌하던지. Hyggeligt한 그 길의 정취와 가을 나무가 어우러져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덴마크의 가을은 좀 우울하고 축축하지만, 오늘은 손에 꼽는 아름다운 가을날씨를 보인 것 같다.

마침 금요일이라 마음도 가벼운데 기분이 참 좋구나. 추석은 멀리 있지만, 그래도 외롭지 않은 그런 좋은 날씨다.

홀로 보내는 저녁의 적막함

옌스가 출장을 간 날이면 그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진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일까? 내가 한국으로 여행을 간 때면 그 빈자리가 이렇게 느껴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번 달엔 이번 주 한 주, 다음 주 한 주 건너 그 다음 또 한 주 이렇게 2주를 꽉 채워 집을 비우니 그 빈자리를 느낄 기간도 길다.

회식이나 친구들과의 모임이 별로 없다보니 카약이나 기타 취미활동 등으로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대충 10시 전엔 집에 들어오는 터라 이렇게 10시 반을 넘어가는 시간에 혼자 집을 지키는 일은 어색하다. 내 옆자리를 파고드는 보리도 없고.

이 기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늦은 시간 내가 원하는 음악을 켜고 공부를 하든, 글을 쓰든 일련의 활동에서 그 나름의 묘미를 찾는 것이지, 그게 아니면 이 저녁시간을 그렇게 즐기진 못할 거다. 해외에서 홀로 맞이하는 저녁의 적막함이 주재원 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이었으니까. 사실 보리를 한 가족으로 맞이한 것도 그런 적막함을 견디기 힘들어서였고. (물론 반대로 낮에 나를 기다리는 보리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와 달리 옌스는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참 잘한다. 하루를 어떻게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꽉 채우고자 노력하는, 24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되려 저녁에 졸음이 오더라도, 그 시간에 졸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될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니까. (그게 자기 단점이라고 한다. 뭘 스트레스를 받기까지… 뼛속까지 경제학자다.) 그래서 내가 열흘간 한국 가 있으면 그게 꼭 나쁘진 않단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거 좋다고. 그래도 그게 긴시간이 아닌 거 아니까 좋은 것이지, 내가 집을 비울 때 내 존재의 크기를 새삼 크게 느낀다고 하는 것을 보면 나나 그나 별반 다르지 않다.

애가 태어나고 나면 옌스가 출장을 간다고 해서 혼자만의 시간 따위는 없을 거니까 사실 감사한 마음으로 즐겨야 한다. 석사과정의 무거운 리딩리스트의 압박에 짓눌려 이렇게 딴 짓 하면서도 스트레스 받지만, 이렇게 틈새를 노리는 딴 짓도 사치가 될 시간이 올 테니까.

왠지 센치해지네. 음악도 한 몫하고 있다. Spotify의 Reading soundtrack, 처음 들어본 플레이리스트인데, 아주 마음에 든다. 바로 저장. 가을의 감성을 한껏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추천한다. 읽던 건 대충 마무리 짓고 설겆이하고 자야지. 벌써 옌스가 보고싶다.

 

이제 절반이다.

어제부로 만 20주였으니, 이제 절반이다. 오늘 아침 잰 체중으로 보면 임신시점보다는 여전히 1kg이 빠진 상태지만, 임신 아주 초기에 입덧으로 몸무게가 준 경우는 그냥 그걸 임신 시점 몸무게로 봐도 무방하다고 하니, 3kg 찐 걸로 보면 되겠다.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고 있다. 헐렁한 옷을 입는 경우가 아니면 임산부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불러오는 배와 함께 뭘 먹어도 쉬이 포만감이 느껴져서 충분히 먹기가 힘들다. 입덧만 끝나면 식욕이 돌아올 거라 하더니만, 입덧이 끝난지 한달 반이 지났지만 폭풍식욕 같은 건 경험하기 어렵다.

그나마 이 체중을 늘린 것도 어거지로 열심히 먹어대서인 것을 생각하면 체중이 많이 늘어 고민하는 임산부는 어떻게 이 배부른 느낌을 견뎌내고 먹었을까가 난 되려 궁금하다. 아니면 이런 배부른 느낌도 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며 체중을 늘리는 법을 고민하자 식단에 관심이 많은 여자 친구들로부터 이러저러한 조언을 얻었다. 아보카도, 렌틸콩, 견과류, 크림치즈 등을 많이 먹으라는 것. 안그래도 아침으로 자주 토스트에 아몬드 크림치즈를 듬뿍 얹어 먹으며 우유를 큰 걸로 한 잔 가득, 사과와 자두 등을 2~3개 먹고 있다. 뭔가 부엌에서 열심히 조리해야 하는 게 한껏 귀찮아진 요즘, 학교 구내식당에서 콩류 등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아보카도는 추가할 좋은 아이디어이다.

사다두고 잘 먹지 않고 있는 김치를 빨리 먹어 없애고자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정말 간만에 대 성공. 제일 쉬울 것 같은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만드는 게 어렵다니. 이상하게 고슬고슬한 볶음밥은 어떤 것이든 종류를 막론하고 참 어렵더라. 아무튼, 그걸 먹어서 그런가. 벌써 6시가 다 되어가고 있는데, 배가 아직도 빵빵하다. 저녁 식욕은 제로. 내 현재의 배 크기와는 상관없이, 그냥 느껴지는 기분으로는 배가 앞으로 터져버릴 것 같다. 내일부터 다음주 일요일 저녁까지 꽉 채워 1주일을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옌스는 집에서 밥하기 싫으면 나가서 한식당에 가더라도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하는데… 이 꽉 찬 배로…

아무래도 오늘 운동을 너무 안해서 그런 모양이다. 통학을 위해 매일 20km정도 자전거를 타는데 주말엔 아무래도 운동량이 줄어드니까. 출산 직전까지 다닐 학교가 일종의 내 임신 기간 중 트레이너인 셈이다.

오랫동안 쉬었던 발레는 지난 주부터 다시 시작했다. 오랫동안 안한 것도 있고, 너무 뛰는 센터워크는 좀 무리일 것도 같아 초급반으로 신청을 했다. 발레 선생님께 임신 사실을 알리고 났더니, 발레는 출산 전날까지도 해도 되는 운동인 거 아냐며, 오히려 골반을 열어줘서 아이를 쉽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운동이니 끝까지 열심히 나오라고 한다. 나도 그 사실을 듣고 간거지만, 그렇게까지 이야기 하니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 이렇게 움직여줘야 소화가 되어 먹을 생각도 들고 몸무게도 조금이나마 더 늘릴 수 있겠지. 아흐레 있으면 볼 2차 초음파가 엄청 기다려진다. 애는 잘 자라고 있는건지…

“한국이 그리운가?”

몇 일 전, 여름과정 기말 프로젝트를 함께 하던 덴마크 친구가 물었다. “한국이 그립지는 않아?” 한 5초정도 고민을 하다가 (사실 대화 중 5초의 적막은 짧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답을 해주었다. 사실 내가 그리운 건 한국이 아니라 한국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 등이지 한국이 그리운 건 아니라고 덧붙이며.

뭘 먹을 수 있을지조차 잘 모르겠어 한국 음식이 막연히 그립던 입덧 시기를 지나간 후에는 한국 음식 자체가 생각이 나지 않고 있다. 강한 냄새나 양념, 고기 등이 싫어지고 나니 그런 것 같고, 그나마 심각한 갈증을 느끼던 음식은 한국가서 몇 번 먹고나니 해갈이 되었던 모양이다. 또 엄청나게 그리워하던 음식들은 내 머릿속으로 그리던 음식 맛과 실제 맛 간의 괴리만 오히려 느끼고 나서 그 갈증이 싹 없어지기도 했고.

한국의 자연이 그리울 때는 있다. 자주 가지는 않았어도 간혹 가고 싶을 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었던 것이 가장 그립다. 지평선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여기저기 솟아있는 산은 한국에 사는 이상 그리워할 이유가 없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는데, 덴마크는 다 평지니까.

20대까지만 해도 서울이 정말 좋았다. 모든 것이 집적되어 있기에 음식, 공연, 전시, 쇼핑 등 내가 먹고, 보고, 하고 싶은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평균 한시간이 넘는 도시내 이동시간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낄 일도 없었고, 사람이 많은 거리는 도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피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런 인파를 뚫고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그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동을 느꼈고, 미여터질듯한 유명 작가의 전시를 줄서서 볼 때면, 그 인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감사했다. 교보문고와 같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큰 서점에 앉아서 사고 싶은 책을 천천히 읽어가며 고를 때면 도심 한복판의 여유가 더욱이나 소중하게 느껴졌고, 또 대형 오페라나 클래식 콘서트에 가면 그런 공연 저변이 별로 없는 지방에 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다 싶었는지.

인도에서 2년 반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던 2011년 그 해, 나는 역문화충격을 받았다. 길에는 차와 사람, 동물로 그 복잡함에 정신이 혼미해질 듯한 현기증을 자주 느끼곤 했지만, 쇼핑센터를 가던 식당을 가던 내가 돈을 내고 소비를 하는 공간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미 길에서 느낀 피곤함으로 인해 한국과 다르다고 느끼지 못했고, 한국에 돌아가면 항상 지금의 이 생활보다 좋을 것이라고만 상상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막상 돌아온 후에 느낀 건 인도보다 질서정연한 도로와 정리된 도심 이외에는 더 복잡하고, 더 피곤한 일상이었다. 어딜 가도 줄을 서야 하고, 물건을 사려고 해도 사고 싶은 건 사이즈가 없고, 뭘 보려해도 미여터지는 사람 구경을 해야 하는 것 등. 물론 인도에 없던 문화 저변에 대한 접근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던 것과 달리 서울이 정말 붐비고 지치는 도시라는 것을 인식하게된 큰 계기가 되었다.

덴마크에 오고 나니 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더이상 내가 서울과 같은 대도시생활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난 아주 간혹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기회와 자연만 있으면 크게 여행을 다녀야 되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것을 찾아 먹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것 저것 쇼핑을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모르던 나를 알게 된 것이다.

이민이라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이 직장을 구해야 하고, 언어도 배워야 한다. 이제 사전을 옆에 두면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일간신문을 읽을 수 있고, 왠만한 대화는 다 덴마크어로 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덴마크어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 뿐이지. 대학원을 원하는 대로 배우고 싶은 것들을 잘 흡수해 배우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목표를 향해감과 동시에, 내 가정도 잘 꾸려가고, 운동도 해가며 덴마크어를 배우는 등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저글링하듯 해야 한다. 마침 운동선수가 잘 맞는 매니저를 만난 듯이 나를 잘 이해하고 나와 비슷한 남편을 만나 여러모로 배우며 나 스스로를 잘 채찍질 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 조절 잘하며 장거리 레이스를 잘 할 수 있게끔 말이다.

이민자로서 느끼는 피로감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시기가 다시금 닥쳐올 순간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있다. 그래도 난 이제 덴마크의 삶에 충분히 적응을 했고, 이 곳의 삶이 내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기에 오히려 더 내 집같은 생각이 든다. 언어가 편안해지면서 사회로부터 더욱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물질적이든 자연 환경이든 소비를 하고 싶은 것들은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저변이 되면서도 물질적 소비가 중심을 이루지 않는 사회문화, 가족 중심의 생활 패턴,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사회의 룰을 지키는 범위안에서라면 서로 터치하지 않는 점 등이 좋다. 내가 가정을 꾸리며 처음으로 제대로 된 뿌리를 내리게 된 곳이 여기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막상 질문을 던진 덴마크 친구는, 자기는 덴마크를 뜨면 정말 덴마크가 그리울 것 같다며, 인도네시아에 정착해 현지인과 결혼해 10년 이상 살고 있는 자기 형처럼 나 같이 이민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을 크게 그리워하지 않으며 살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고. 3년을 살고 이런 일을 논하기엔 내 이곳 생활이 너무 짧은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7년을 더 살고 나면 난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의 차가운 단면

간혹 내가 참 차가운 사람이다 싶은 때가 있다. 감정이 완전 메마른 건 아니지만 머리가 감정에 앞서기도 하고. 사실 그 덕에 크게 누구와 다투거나 하지 않는 것 같다. 옌스를 만나고 사랑하고 또 잘 다툴 일이 없는 건 둘이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만약 옌스가 나와 반대의 사람이었으면 나는 정말 힘들었을 거고, 내가 현재의 나와 반대의 사람이었으면 옌스가 나를 견디지 못했을 거다. 감정이 상한 일이 있었으면 곰곰히 앉아 생각을 해보고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이성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내 감정을 전달하고 내가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범위 안에서 상황을 바꿀 만한 방법을 제시하고 해결하니 소리 높여 다툴 일이 없다.

그런데 삶은 나와 닮은 사람과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저런 인생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 이야기에 서운해할만한 사람들이 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줬으면 하는 바램에서 하는 푸념을 들을 때라던가, 내가 생각하기엔 합당하지 않은 일인데 동의를 구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라던가. 원하는 답을 해주기가 너무 어렵다.

사실 내가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닌데, 10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참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나이가 들며 외양도 달라지지만, 그보다는 내 알맹이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 문득 드는 생각은, 해외생활이 나를 바꾼 것 같다. 혹시 내 깊숙한 속에 내밀하게 힘들어하는 나를 내가 숨겨두고 있는건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지만,  적응의 시기도 많이 지나고 더이상 그렇게 힘든 것 같지는 않다.

누가 잘해야만 한다고 한 건 아니지만 그간 시키지 않아도 한국에서 살아온 방식은 여기에 산다고 변하지 않기에 뭘 해도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래서 잘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내가 정말 독립된 존재로 강인하게 살지 않으면 내 삶이 힘들어지니 최대한 빨리 홀로 서기할 수 있게 언어도 배우고, 학업도 열심히 하고, 체력도 기르려 한다. 뭘 하더라도 남편도움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떤 문제에 대한 상의는 해도 실제 서류작업을 하거나 행정처리나 금융거래를 하든 사전을 찾든, 구글 번역기를 돌리든, 법전을 읽고 공문서를 읽어내서라도 다 직접 했다. 간혹은 남편에게 이민자로서 이렇게 뭘 하나 하려해도 다 어려운게 너무 힘들다고 푸념하기도 했지만 결국 언젠가는 내가 다 배워야 할 일이니 하겠다고 나서서 다 했다. 그러니 누가 나에게 그런 걸 다 빨리 잘해내는게 부럽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면 부럽거나 할 일이 전혀 아니고 그냥 열심히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열심히 하지 않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그건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해줄 수 밖에. 결국은 공감이 참 결여된 응답이다.

내가 이렇게 했다고 남들도 이렇게 해야하는 게 아닌데, 타인의 힘듦에 대한 하소연이나 고민을 들을 때면 내가 너무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답을 한 것 같다. 나도 십년전의 나였으면 지금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했을텐데. 좀 더 공감하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내가 아쉽다. 물론 공감 잘 못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건 아니라 그건 내 본성이려니 싶지만… 내가 딱히 차가운 사람이 되려고 해서는 아닌데 조금 그런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해서 아쉬운 거다. 아기가 태어나고 내 모성애를 자극해주면 바뀔까? 아기가 태어난다고 내가 엄청 바뀔 것 같지는 않은데.

인생사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는 거니까, 한켠으로 차가운 면을 가진 나를 받아주는 사람들하고 만이라도 잘 살아봐야지. 모두에게 사랑을 받으려하는게 아니라 미움받지 않으려는 것도 다 욕심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가까워지는 R

젖듯 이라는 단어가 막상 쓰고보니 매우 어색하다. 맞춤법이 틀린 건 아닐터인데 왜 이리 어색한지. 이 단어를 지면에서 막상 볼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보다.

대학원 시작부터 함께한 R. 그래도 정말 가까워지긴 어려웠다. 계량경제를 공부할 땐 개념에 익숙해지기도 정신없었기에 매뉴얼에 크게 의존해서 코딩을 하느라 크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실제 결과를 해석하는 일이 더 중요했기에.

Economic Valuation & Cost Benefit Analysis 코스를 들을 때도 사실 이론이 더 중요했기에 R을 돌리는 건 주어진 코딩을 사용하고, 안되는 건 조교님이나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 수업에서 Hedonic Model을 가르쳤던 교수님이 여름학기에 개설되는 Big and Spatial Data Management 코스를 가르친다면서, 나중에 논문 쓸 때나 사회 나가서 도움 많이 될거라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3주 여정으로 끊은 한국행 비행기 티켓(끊은지 이틀되었던 따끈따끈한 티켓)을 거의 20만원 줘가며 열흘로 단축해 변경하고, 냉큼 해당 과정을 신청했었다.

여름 3주간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4시까지 진행되는 타이트한 과정. 엄청 긴장했고 실제 demanding하기는 하지만 거의 2주가 끝나가는 지금 신청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다. Econometrics와 Research strategy/question/hypothesis building 등에 대한 이론적 논의 및 토론을 포함해 extensive한 R 코딩 실습을 하고 있다. Quantum GIS에 대해서도 맛을 보고, 해당 spatial data를 R로 불러들여 이를 어떻게 econometric analysis에 활용하게 되는지도 배우는데 어찌나 세상에 nerdy하며 대단한 사람이 많은지도 새삼 느낄 뿐 아니라 참 재미가 있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모여 코딩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서로 도와주며 성장하는 경험도 역시나 즐겁고. 다음주엔 교수님들의 supervision을 받으며 그룹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텐데 그를 통해 코딩실습만으로는 깊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보강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실습하는 것만이 많이 배울 수 있는 지름길이니까.

새학기 시작하기 전에 썸머로 7.5 ECTS를 이렇게 따두는 건 뭐랄까… 방학동안 늘어져 자고 있던 뇌를 깨우기에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같이 수업을 듣고 있는 동료들도 정말 잘 들었다며, 이걸 논문 쓰면서 익숙해지려하면 이거 하다 시간 다 가겠다고 했다. 물론 Econometrician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고 교수님의 도움도 받을 수 있겠지만, 도움은 도움일 뿐. 결국 내가 해야하는 일 아닌가.

첫째주는 정말 힘들어 머리에 쥐가날 것 같고, 이렇게 힘들어하며 삼 주를 보내면 과연 머리에 남는게 있을까 했는데, 둘째주가 되고 나니 코딩도 조금씩 늘고 재미가 느껴진 거다. 프로그래밍 언어도 사람의 언어와 비슷해 처음이 참 어려운 모양이다. 익숙해지고 나면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이해도 조금이나마 더 쉽게 되고.

학부땐 통계와 계량경제학이 얼마나 어렵던지. 난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었는데, 그냥 난 좀 이런 쪽으로 남들보다 늦었던 거 같다. R도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 같이 다른 지식과 학업도 그런거겠지 하며 힘들어도 조금씩 조금씩 더 다가가련다. R. 우리 좀 더 가까워지자. 🙂

마지막 나 홀로 한국여행

한국은 정말 가마솥 더위가 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서히 올라가는 기온에 적응했다면 모르겠지만 조석으로 15~20도 사이의 기온과 함께 부슬비, 바람이 결합된 날씨에 적응되어 있던 나에겐 견디기 힘든 날씨였다. 도착하는 날은 오후 3시에 랜딩하고, 출발하는 날은 오후 1시 반에 이륙하기에 공항에서 집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여드레 반도 안되는 기간동안 머물러있었는데, 그게 짧으면서도 참 길게 느껴진 것 또한 이 날씨 때문이었다.

속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건 아니라 하루 한끼 이상은 제대로 먹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계획했건 음식들의 상당 부분을 먹을 수 있던 것은 참 다행이었다. 먹고 싶었던 갖가지 나물과 낚지 볶음, 칼국수, 만두, 각종 해물찜 등. 깻잎 씨앗과 콩나물 콩을 사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다 만나지 못했던 것도 아쉽지만, 이 또한 시간이 너무 없었다. 날이 너무 덥고, 배가 조금씩 나오면서부터 중간중간 쉬고도 싶어지는 탓에, 점심, 저녁 약속 모두 잡고 비는 시간을 떠도는 일정을 소화할 수가 없는 것, 주말이 한 번 밖에 없는 것도 모두 제약요소가 되었다.

한국에서 떨어져있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한국이 낯설어지는 면도 늘어난다. 새로이 봐서 낯 선 모습도 있지만, 그간 보지 않아서 낯설어진, 원래는 익숙했던 모습도 있다. 주변에서 한국말만 들려오는 것, 시내 도심에서 다른 도심으로 가는데까지 한시간씩 걸리는 것, 더 거칠어진 듯한 사람들의 운전 습관 (도로 한복판을 가로막는 꼬리 물기는 정말 인상깊었다.), 지난번과 또 달라진 사람들의 메이크업 유행, 길이든 상점이든 식당이든 어딜가나 사람으로 붐비는 모습, 맛집 앞 길게 늘어선 줄 (특히 종로의 모밀집이나 강남역의 셰이크셱 버거), 줄 서서 걸어가는 듯한 강남대로의 인파,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왕복 8~10차선 도로, 줄어든 성형외과 광고 (전에 한동안 어딜가나 성형외과 광고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식당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번호벨, 소리 높여 사람을 부르는 식당 문화, 거리에 거의 보이지 않는 자전거, 교차로와 횡단보도의 긴 신호등, 낮은 세면대, 줄어든 길거리 흡연자 수 (거의 못 본 것 같다. 덴마크에서 훨씬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듯.), 임산부에게 몸 조심하라고 나보다 더 걱정해주는 사람들, 서로 계산하려고 경쟁하는 사람들, 점심시간에 쏟아져나오는 직장인 인파, 없던 사이 새로 생긴 많은 건물 등등.

낯설다는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내 삶의 기본 환경이 달라졌다고 눈에 새롭게 띈다는 사실이 재미도 있고 사람이 얼마나 쉽게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지 간사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제 짐을 싸야겠다. 아침 8시 반엔 출발해야 하는데, 어느새 오후 6시가 넘었다. 내년의 한국방문은 이번과는 완전 양상이 다를 것이다. 나 하나 바라보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들어올 것이고, 남편도 한달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머물며 한국 생활을 간접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을 것이고, 시부모님도 한국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특별했다. 내 홀몸 (뱃속의 태아는 아직 내 일부인 것으로 치고)으로 하는 마지막 여행. 이 여행을 끝내는 의식으로 짐을 싸고, 돌아가자마자 바쁜 리듬으로 시작될 덴마크의 생활을 미리 계획해보며 오늘을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