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

오늘 친구와 잠깐 메신저로 짧은 대화를 하다가 자기연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연민이 많은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나도 자기연민이 참 많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걸 언제부터 떨궈냈었더라?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30대에 들어서 정신적으로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동시 다발적, 유기적, 총체적인 변화라 어떤 계기로 언제 변했는지를 꼽기는 참 어렵다. 그렇지만 과거의 내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난다.

지금도 머리에 남아있는 자기연민에 대한 민망한 기억 한조각. 버스에서 찔찔 짜며 나는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고 앉아있었다. 마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인냥. 이유는 잘 풀리지 않는 연애였다.

나에게 있어 성공한 연애는 옌스와의 연애 뿐이다. 결과만 두고서가 아니라 그냥 과정 자체가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했을 땐 나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전전긍긍하며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관계까 만족스럽지 않은 점 등 말이다. 그 균형이 맞는 관계가 있었다면 지금 이곳에 옌스와 부부가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 날, 자기연민의 주제는 외로움이었다.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거냐며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었는데, 핸드폰을 열어 주소록을 훑어보니 마땅히 전화할 사람이 없던 거였다. 그때만 해도 화면이 두개라 듀얼이라고 한 애니콜 듀얼폴더 폰을 썼었던 것 같다. 나의 외로움을 마음편히 토로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해져 어찌나 내가 불쌍하던지.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서울역 연세빌딩앞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콧물을 훌쩍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요즘 소위말하는 중2병같은 감성이었던 것 같다. 물론 힘들었던 것은 맞지만 자기연민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오히려 더 부풀려서 극적으로 만들어 필요 이상으로 나를 불쌍하게 여겼다. 참 민망한 기억이다.

자기연민이란게 완전히 지울 수 없는 감정이라 그 감정 완전히 지우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각자가 갖고 있는 그 감정의 크기는 많이 차이 날 수 있다. 이는 꼭 사람사이의 차이만이 아니라 개인의 과거와 현재사이에도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내가 그렇듯이 말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 좋지만 자기연민은 좋은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완전히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라도 잘 다스려서 불필요하게 취하지 않는게 좋은 그런 감정. 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걸어온 게 나중에 다시금 늘리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4년만에 덴마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덴마크에 살기 시작한 지 거의 4년이 되었다. 만약 계속 코트라에 계속 다녔더라면 돌아가야 할 시점이었겠지.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지면서도 그것밖에 안되었나 싶은 모순된 감정이 가로지른다. 인생에 전혀 계획하지 못했던 일들이 무수하게 벌어졌으니 역시 살아봐야 아는 게 인생이구나.

 

앞으로 어떤 생각이 들런지는 또 지내봐야만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난 덴마크의 삶이 참 잘 맞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인도로 첫 발령받기 전까지 한번도 해외 거주 경험이 없었으니 참으로 토종 한국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이방인 같은 느낌으로 살았었다. 여기와서 옌스를 만나고 결혼을 해 하나를 낳고 친구들도 생기고 하니, 나답게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그냥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덴마크 사람들과 케미가 잘 맞는다고 해야할런지. 덕분에 뿌리를 내리기에 참 좋은 토양이다 싶다. 물론 옌스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덴마크 사회로 진입하기에 이런 가족과 같은 연결고리는 정말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경험해보니 정말 그렇다.)

 
출산하고 애를 키우며 지난 오개월 사이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학교 다니면 영어 쓰는 시간이 지배적이고 저녁에도 공부하느라 덴마크어가 소홀해진다. 그런데 애 보면서 토막나는 시간에 공부하기가 잘 안되니(조금 핑계같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방송 간간히 보고, 신문 읽고, 엄마그룹 모임 하고 했더니 몰입환경이 조성된 걸까? 듣기가 확 트이고, 어휘도 늘고 하다보니, 말문이 눈에 띄게 트였다. 물론 듣고, 읽고 이해하는 폭이 말하거나 쓰는 폭보다 넒기에 덴마크어로 보고서를 유창하게 써야 하는 일을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덴마크어 사용이 자유로워졌다. 방송시청과 신문 읽기가 어렵지 않아왔으니 말이다. 출산 시점을 돌이켜보면 그땐 영어로 하겠다고 했었는데 요즘은 밖에서 영어를 쓰는 일이 없다.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든, 엄마그룹을 만나든, 뭔가 상담을 받든 말이다. 옌스와의 대화도 95% 정도는 덴마크어를 쓰니.

 
작은 나라라서 그런가? 말이 되면 엄청 좋아하고 환대해 주며 사회의 성원으로 빠르게 받아들여주는 점은 한국과 덴마크가 같다. 요즘 덴마크 사회에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부쩍 받는다.

 
논문이 끝나면 직장을 구해야 할텐데 이제 걱정은 한켠으로 접어두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환경경제쪽으로 직장을 꼭 잡고 싶은데 안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접었다. 내가 공부를 다시 한 목적은 직장을 잡는 자체에 있었고, 내가 덴마크에서도 경쟁력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물론 좋은 성과를 내고 졸업한다는 전제하에 그 기간동안 덴마크어도 가다듬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깨에 든 힘도 좀 빠졌나? 내가 앞으로 뭘 하든 밥값만 하면 되지, 꼭 좋은 직장 잡아서 잘 다녀야 하는 거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드니, 설마 직장 하나 못잡겠나 싶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밸류 프로포지션만 명확하면 직장은 잡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마음에 드는 직장을, 아니면 그냥 밥벌이라도 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아마 이 모든 느낌은 더이상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드는 것 같다. 옌스 가족과 친구, 내 생활 반경 속 사람들에게 그냥 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나니 그냥 이대로 살면 되겠다는 생각이랄까? 한국에서 갖고 있었던 뿌리깊은 자기증명 강박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내 부모와 가족, 친구가 멀리 있는 건 아쉽지만, 난 내가 뿌리내릴 토양을 지구 반비퀴를 돌아 찾아온 느낌이다. 나에겐 이제 고향이 두 곳이다. 둘이 같을 수는 없지만 다른 의미로 아주 중요한…

이유식과 미니멀리즘

글 쓴지가 벌써 두달이 다 되었구나. 어느새 한달반여면 시작할 이유식을 고민하고 있으니 하나도 참 많이 자랐다. 요즘 조금 소원해진 친구에 대해 다른 친구에게 생각을 물어보니 내가 참 바쁘지 않은 모양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해보았다. 내가 몸이 바빠서 그렇지 머리가 참 바쁘지 않았던 게 맞더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왜이리 쓸 데 없는데 신경을 쓰고 있었나? 부정적인데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사람과 문제에 집중할 일이다. 허구한날 시간이 없어서 뭔가 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엉뚱한 데 쏟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게 해준 친구에게 감사를 표하며…

요즘에 신경쓰는 것은 두가지다. 첫째는 하나의 이유식이고 둘째는 단촐한 삶이다. 이유식에 대한 책을 샀는데, 7월 말이면 시작될 하나의 이유식과 관련해 미리 공부해두려 한다. 사개월여에 불과한 육아기간 중 느낀 것은 미리 알아두고 준비해두는 만큼 불안함 없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남의 나라에서 애를 홀로 키우다보니 양쪽의 문화를 조율하는 것과 더불어 초보 엄마로서 이론을 실제에서 경험하고 적용하는 데 미리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어려움이 따른다는 생각이다.

두번째 단촐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이미 조금씩 지향하기 시작했던 바인데, 그 전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것이다. 매번 물건을 정리하려다 보면, ‘아, 이것 그래도 쓰려면 쓸 수 있는데…’, ‘이것 이제라도 써봐야지.’ 등의 이유로 반도 채 못정리하고 끝나곤 했다. 이번엔 정말 최근 1-2년간 쓰지 않은 물건은 과감히 정리하기로 했다.

이런 결심을 한 것은 둘째 계획과도 연관되어 있다. 특별한 이유로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둘째는 낳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커리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가 (난 엄마지만 나 자체도 중요하다.) 지금도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는데, 커리어를 이유로 둘째를 40이 넘어서 갖는다고 하면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건강상담사에게 “애를 더 낳는다면 하나를 위해서가 될 것 같다. 애가 외롭다고 할까봐…”라고 이야기하니, “애는 당신과 남편이 원하면 낳아야지, 애 때문에 낳지는 말아라. 어차피 형제를 갖는게 항상 좋기만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 형제가 있어서 좋기만 했는가?”라고 답을 하더라.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결국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을 지고 양육하는 내가 원해서 애를 낳아야 할 일인 것 같다. 한국이었으면 달랐을까? 잘 모르겠다. 우선 남편을 늦게 만난 것도, 내 커리어의 방향을 이민와서 튼 것도 이유다. 물론 애를 낳고 나면 나라에서 양육의 많은 부분을 지원해줘서 한국에서보다 수월하게 애를 키울 수도 있겠지만, 결국 엄마가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것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라 애가 둘이 되면 내가 추가적으로 많은 희생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애가 생기고 나서 정말 매우 기쁜 것도 있지만 옌스와 거의 처음으로 감정 상할 일도 생기기도 하고, 애가 둘이 되면 더 힘든 순간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보다 젊었다면 모르겠지만, 육체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나중에 거의 할머니 같은 엄마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애에게도 어떨지 모르겠고.

아무튼 애를 하나만으로 마무리짓는다고 생각하면 지금 집에서 오랫동안 이사를 할 이유가 없다. 보육원도 코앞에 있고, 교통도 편하고. 수납이 조금 부족한 집이라는 게 딱 하나 불편하다. 벽에 수납 대신 그림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나마 있는 수납 공간에 쓰지 않는 물건이 너무 많이 있는 것도 이유가 된다. 그래서 우선 내 물건부터 시작해서 과감하게 정리하려 한다. 그리고 나서 옌스 물건에도 정리할 게 있으면 정리해달라고 이야기하려 한다. 마음대로만 버리지 말아달라고 옌스가 한마디 하더라. 이 집으로 이사온 이후부터 물건을 별로 사들이지 않았는데, 그러니 돈도 아끼게 되고 참 좋다. 단촐한 삶의 덤은 경제적 여유라고 해야할려나? 좋은 덤이다.

물건을 떠나서 내 인생의 여러가지를 좀 정리해보려고 한다. 인간관계 및 내가 집중하는 일들까지, 좀 단촐하게, 단순하게 살아봐야겠다. 물론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그걸 줄이려는 건 아니지만, 뭔가 테마가 있는 것에 집중한다던지 말이다. 오늘 큰 봉투로 옷을 두봉투 덜어낸 것이 좋은 출발이려거니 생각한다. 육아휴직 기간 중 정리할 게 참 많네.

[육아일기] 늦은 저녁, 혼자 보내는 시간의 여유

오늘은 마지막 수유를 마치고 깨어있는 상태로 침대에 누였는데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어제는 재우는 건 조금 시간이 걸렸어도 아홉시반부터 일곱시간을 쭉 이어 자더니 오늘은 정말 쉽게 자주는구나. 매주 화요일마다 저글링클럽에 가는 옌스는 열한시쯤이 되어야 돌아올테니 그때까지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나와 나는 좋은 친구가 된 것 같다. 이제 다양한 울음도 제법 구분할 줄 알게 되었고, 옹알이일 뿐이지만 하나와 나는 많은 대화를 한다. 보리와 대화를 하던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하나와 혼자 대화를 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처음 몇 주는 부족한 잠과 그녀의 울음의 원인을 빠르게 판단하지 못한 때문에 힘든 날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하나의 체중이 많이 늘어 산책나갈때마다 무거운 리프트를 들고 내려가야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하나가 목을 확실히 가누고 좀 더 커지면 리프트는 쓰지 않고 그냥 바로 안고 내려가서 유모차를 태우면 될테니 그 또한 힘든 게 줄어들 것 같다.

딱 하나 힘든 게 있다면 거의 하루에 한번 젖을 왈칵 토한다는 건데, 이제 그것도 거의 익숙해져서 덜 힘들다. 그건 거의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하던 일인데, 놀랍게도 하나는 우리의 반응을 보고 울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같다. 초반에 놀라서 애를 살피려니 울었는데, 우리가 침착하게 괜찮다고 하면 애가 우리 표정을 보고 울음을 멈추더라.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토하는 일에 마음속으로는 놀라도 최대한 침착하게 아무일도 아닌 척 행동도 천천히, 표정도 평정을 유지했더니, 놀랍게도 매우 많은 양을 토하고도 아무렇지도 않더라. 그 어린 갓난쟁이가 상황 판단을 다 하는 건데, 생각해보면 놀라울 것도 없는 것이, 어린 강아지들 조차도 사람의 표정을 보고 상황 판단을 다 하는데 사람 갓난쟁이가 그렇게 못할소냐.

 

젖 토하고 똥 묻히고 해서 오늘은 옷을 세번이나 갈아입었다. 여기에 없는 한 벌이 더 있었으니. 

며칠 전에 주문한  Secrets of the baby whisperer 책이 오늘 도착해서 서론과 첫번째 챕터를 읽고 있는데, 저자인 Tracy Hogg도 아기와 대화를 하라고 하던데, 다 읽고 나면 육아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늘 남은 저녁시간은 그걸 읽으며 보내야지. 켜둔 음악의 피아노 선율과 칸투치니를 곁들인 디카페인 커피 한잔.  백일도 안된 첫 아이를 둔 엄마로서 사치도 이런 사치가 없구나.

[육아일기] 만70일 하나 따로 재우기

하나의 출산 직후 몇일 빼고는 다른 방에서 각자 자고있다. 하나의 돌연사 방지를 위해 작은 매트리스를 추가로 우리 사이에 깔다보니 너무 자리가 없어서 잘 자기 어러웠던 탓이다. 오늘 6시부로, 하나의 출생 이후 만 70일이 되는데 어젯밤부터 따로 재우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침대에 자긴 해도 나와 충분한 거리를 두고 옌스 자리에서 자기 이불 덮고 따로 자게 했는데 뒤집기를 시작하기 전 자기 침대에서 자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자칫 우리 침대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날 수 있어 담장이 있는 자기 침대를 써야하기도 하고, 우리도 우리 수면의 질을 보장받으면서도 같은 침대에서 눈을 드는 부부의 일상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육개월전에 따로 자지 않으면 떼어놓기 힘들다고 대충 3-4개월부터 자기방으로 보낸다는데, 우린 4개월 즈음에 침대를 하나방으로 옮길거라 그 전에 훈련을 시키려고 했다.

공갈젖꼭지 쓰기를 거부하는 아이라 자기 전까지 젖을 오래 빨고 내 품에서 완전히 잠이 들어야 애를 자리에 놔도 재울 수 있었다. 완전히 잠이 들기.전에 내려놓으면 두팔을 허공에 휘적휘적 저으며 놀라 깨곤해서 다시 젖을 물려 재워야했는데 간혹 그러다보면 나도 지치기도 히더라. 지난 화요일에 온 건강상담사가 아직 애착인형이나 수건은 없겠지만 재울때마다 그런 게 될만한 것 하나를 꾸준히 쥐어주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 침대에서 낮잠을 재워보고 밤잠도 시도해보라고.

젖을 빨기가 끝나자마자 내 품에서 깊게 잠들게 하지 않고 자기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그마한 수건이 달린 작은 토끼인형을 안겨주었다. 애착인형으로 만들어주려 했던 인형이다. 역시나 곧 깨서 울더라. 토닥토닥 해주고 잘 자라고 하고 조금 떨어져 안보이는 곳으로 갔다. 다시 울자 엄마 여기 있다고 목소리만 들려주고 그래도 계속 울자 가서 안아주었다. 조금 안아 달래주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내 침대로 다시 돌아오니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입으로 쪽쪽 빠는 소리를 내더니 거세게 운다. 다시 내 침대로 데려와 아주 잠깐 수유했다. 조금 빨더니 존다. 깨우며 수유하다가 더이상 어떻게 해도 빨지않는 상태가 되자 자기 침대에 내려놓았다. 다시금 위의 과정을 반복하자 이번엔 정말로 자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첫 잠을 재우는 게 참 힘둘었는데 오늘은 그에 비하면 정말 짧고 쉬웠다. 사실 첫잠이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자면 밤중수유 후 수면은 어렵지 않고 큰 문제가 없기에 이건 장족의 발전이다.

낮에 항상 거실에 두고 별도로 조용함 없이 우리의 일상을 유지해서 그런지 애가 낮잠을 길게 자지 못했고 대신 밤에 첫 잠에 잘 들기만 하면 7주부터는 첫잠을 네시갼 정도 길게 자기 시작해서 요즘은 여섯시간까지 자기 시작하는 등 낮밤 구별이 확실했다. 이제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할 때니 자기 침대에서 낮잠을 재워보라고 건강상담사가 조언을 해서 재우기 시작한 어제부터 낮잠도 잘 자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밤잠에도 영향은 없다. 다행이다. 요즘 유모차도 그렇게 싫어하지 않고 깨어도 가만히 있다가 다시 잠에 들더니, 흔들거림 없이도 잠에 들 수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첫 수유 후엔 두세시간 정도 더 자고 한번 더 수유하면 내가 거의 일어나야할 시간까지는 자니 이정도면 나의 수면의 질도 괜찮다.

이렇게 지내다보면 백일때는 정말 더 길게 자려나? 백일의 기적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백일엔 어떻게 되려는지 궁금하다. 그때 즈움엔 자기 방으로 보낼 수 있겠지? 나도 이제 다시 자야겠다.

[육아일기] 만 8주 + 하루의 하나에게

하나야. 엄마는 아기를 낳고나면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단다. 그래. 너를 낳고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더라. 엄마는 너를 낳기 전까지 36년이 넘는 시간을 엄마가 아닌 사람으로 살았는데 그게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뀌겠니. 그래도 네가 태어나고 나니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뀌더구나. 아마 그게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런 것 같다. 딱 하나 확 바뀐 게 있다면 내가 네 아빠와의 관계랄까? 결혼을 하고난 뒤 우리는 가족이라 이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가족과는 다르다고 생각을 했는데, 너의 출산을 기점으로 놀랍게도 네 아빠가 내 마음속으로 더욱 더 확 다가왔단다.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말야.

엄마는 네가 처음에는 하나의 과업처럼 느껴졌단다. 잘 수행해 내야 하는 과업 말이야. 처음부터 정말 열심히 했어. 모든 일은 효율적, 효과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인지라 육아마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단다. 네가 울면 빨리 왜 우는지 파악해서 해결해주고 싶었고, 기저귀 갈고, 목욕하고, 산책시키고, 토하면 치우고 등등 이런 일들을 최대한 잘 해결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하더라. 네 아빠가 너를 다루는 모습에서는 효율성은 부족하지만 나와 다른 여유가 있어보였어. 그리고 어떤 날은 젖토한 것으로 엉망이 된 너를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서두른다는 것이 오히려 토한 뒤의 불쾌감으로 우는 너를 보듬어주기보다 치우는 데 급급하고 있었어. 소리만으로도 똥이 기저귀 밖으로 곧 샐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다른 날엔 똥 빨래를 최대한 피하고자 마음만 급해서 너를 눕히지 않고 한손으로 안아 바지와 바디수트를 벗기려고 하며 너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단다. 그럴 때마다 아차 싶었어. 어느 날 이런 저런 육아 글을 읽다가 갓 태어난 아기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말에 그거구나 싶었어. 엄마가 너를 인격체보다는 엄마가 수행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었구나 하고 말야. 이젠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너를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러면서 너와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엄마도 처음으로 엄마가 되다보니 하루하루 깨닫는 것이 많단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어. 물론 그 말이 정말 말그대로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만큼 사람을 새롭게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말이겠지.

엄마가 너를 낳기 전에 보리를 입양해 키운 것은 참 잘한 일이었구나 생각해. 지금은 살고 있는 집의 조건상 보리와 함께할 수 없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주고 계시지만, 그 경험이 없었으면 너를 키우는 게 한층 더 힘겨웠을 것 같아.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는 존재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를 한층 낮은 수준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거든. 엄마는 한국에 가서 지내는 동안 네가 보리와 지내며 동물과 가까이 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알려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어.

세월호가 인양되서 항구로 옮기는 중이란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만 해도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어. 그건 너를 임신하고 있는 기간중에도 마찬가지였단다. 지금도 여전히 완전히는 알 수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하루하루 너와 가까워지고 있는데, 이렇게 사랑과 공을 들여 키우는 자식과 20년이 가깝도록 매순간 조금씩 더 가까워졌는데 하루 아침에 차가운 물속에 잃어버리고 찾지 못하는 심정이 어떨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로구나.

너를 키우다보면 아찔한 순간들을 상상하게 되는 찰나들이 있어. 너를 안고 걸어가다가 발에 뭔가 채여서 살짝 흔들린다거나 하는 찰나. 그에 걸려 넘어졌으면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이 드는 거지. 집안일을 하는 도중 혼자서 목이 터져라 우는 너를 내버려 둘 수 없어서 바운서에 앉혀 부엌에 두고 부엌일을 하다보면 혹시 뭐가 떨어져서 너를 다치게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과민하다싶을 정도로 조심하게 되곤 해. 그러다가 아주 일순간 습관처럼 일을 하다 손이 기름병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아차 하는 생각에 다시금 정신을 차리곤 하지. 그러다 보면 네 아빠도 괜히 걱정이 된단다. 세상일이란건 정말 모르는 일이니까. 예전에 엄마, 아빠가 나보고 길조심 하라고 매일 이런저런 걱정어린 말씀들을 하실 때면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냐고 핀잔을 드리곤 했는데,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이제는 이해가 되는구나. 왜 어제 한 이야기인 것을 알면서도 또 이야기 하셨는지.

이번에 덴마크에 방문을 하고 가신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비행기 안에서 난기류에 기체가 흔들리는 순간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셨대. 할머니가 “여보, 혹시 이 비행기가 추락이라도 하면 걱정되는 일이 있수?” 하고 물어보시자 할아버지는 “아니, 이제 해인이도 결혼생활 어떻게 하는지 잘 보고, 하나도 낳아 잘 기르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아들, 딸 자식 모두 잘 살고 있어 걱정하는 거 하나 없소.” 라고 하셨대. 그리고 할머니도 그 생각이셨다고. 그 마음이 어떻셨을런지는 난 아직 잘 모르겠어. 언젠가 나도 너를 보고 그런 마음이 들런지. 그게 진짜 너를 독립시키는 순간일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8주밖에 되지 않은 네가 벌써부터 엄마와 힘겨루기를 시작하는 것을 보며 앞으로도 참으로 많은 밀고 당기기가 기다리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 어느새 부모와 너만의 방식으로 대화를 하며 요구사항을 밝히는 너. 이제 우리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을 땐 너는 바운서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으로 룰이 정해졌고, 너는 칭얼거리거나 울음으로 젖을 빨아보겠다고 한 두번 시도를 해보지만 기다리라며 손을 뻗어주지 않는 단호함에 참고 기다리게도 되었구나. 방금 젖을 먹고도 저녁에 엄마를 찾는 너를 보며, 벌써 떼를 쓰기 시작하는 네가 정말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알게 된단다.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밀당을 하겠지만 너의 마음은 보듬어주면서도 네가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훈육은 놓지 않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 거란다. 서운한 순간도 많겠지만, 엄했던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잘 이해하는 나이기에 너도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힘든 밀당을 할 거란다. 그 시기가 이렇게 일찍 온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란다.

오늘부터 썸머타임이 시작되었어. 컴퓨터 시계엔 8시로 되어있지만, 사실 어제까지 7시였던 시간이지. 내 앞에선 네가 자다가 지금 막 용을 쓰며 기지개를 키는구나. 매일 밤 수유하느라 세번은 깨지만 이젠 그게 크게 힘들지 않단다. 사람의 몸이 다 적응하게 설계가 되어있구나 싶어. 솔직히 일년이라는 육아휴직기간이 두려워. 공부로부터 손을 확 뗀 상태로 두 달이 벌써 지나가버렸는데, 앞으로 8개월 후 논문으로 잘 복귀할 수 있을런지 걱정도 되고. 그렇지만, 조금 더 네가 크고 나면 아주 조금이나마 여유가 더 생기고, 진득하게 앉아서 아티클이라도 읽을 시간을 확보하게 되면 그때 공부는 걱정하기로 하고 지금은 너에게 집중하기로 했단다. 수유하고 기저귀 갈고 하는 토막난 시간에 긴 호흡으로 집중하며 읽고 생각해야 하는 아티클은 정말 읽기가 어렵더구나. 그걸 다 잘 하는 엄마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대신에 엄마는 신문과 텔레비전을 마음 놓고 보기로 했단다. 너 수유하는 시간과 다 먹고 젖토하는 지 지켜보는 시간 동안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지난 두달 간 엄마의 덴마크어가 한층 더 늘었음을 느껴. 그러다 보면 더 단어도 열심히 외우고 작문도 해보며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늘지만, 채우기 힘든 욕구를 쌓아두면 스트레스가 되니 우선은 그 마음은 한켠으로 미뤄두고 말이야.

이제 너도 곧 일어날 시간이 되었구나. 엄마도 배가 참 고프다. 너에게 젖을 먹이려면 엄마가 먼저 잘 먹어야 한단다. 오늘 하루도 같이 잘 해보자꾸나, 하나야.

 

부모님이 덴마크를 방문하시고 나서

시간이 정신없이 간다. 어느새 하나가 태어난 지도 50일이 지났다. 왠지 모르게 더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애가 50일이나 되었다는게 놀랍기도 하다. 부모님이 주말에 떠나셨다. 지난 여름, 입덧이 가장 심한 시기를 넘기고 한국을 방문했는데, 내내 불볕더위를 겪으며 에어콘 없는 방에서 밤잠을 설치느라 2주가 마치 두 달 같았다. 부모님이 계셨던 이번 2주는 마치 이틀밖에 안되었던 마냥 꿈같이 느껴진다. 애가 있으니 어디 나갔다오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가버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틈틈히 젖 먹이고 기저귀 갈다보면 뭘 했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후딱 가버리니까.

마지막 이틀을 남기고 약한 감기에 걸리고 애한테 감기가 옮은 건 아닌가 불안한 상황에 애 데리고 공항에 나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아 집에서 작별을 했다. 옌스가 부모님을 무사히 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안에 들어가시는 것까지 배웅하고 왔다하니 마음이 놓였다. 지난 부활절 때 한참 날다가 헬싱키로 회항한 것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랬는데 짐 하나가 도착하지 않은 것만 빼고는 무사히 도착하셨단다. 몰랐는데 듣고 보니 요즘 핀에어가 파업이 잦단다. 잘 도착하신 게 참 다행이다.

집에 하나와 혼자 있으니 이렇게 앉아서 글을 쓸 짬이 생겼다. 부모님이 계신 기간에도 물론 시간은 있었지만 그 짧은 기간 뭔가 진득히 앉아서 다른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계신 2주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진짜 웃음을 보여주었고, 손발을 가누는 모양새도 많이 바뀌었다. 무게도 많이 늘고 키도 커졌으며, 옷과 기저귀 사이즈도 바뀌었다. 용쓰기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성대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이상한 소리만 내더니 이제는 자기의 목소리를 내며 옹알이를 한다. 눈을 잘 맞추고 움직이는 사물과 얼굴에 반응하며 마치 대화라도 하는 양 눈을 보고 하는 말에 뭐라뭐라 옹알이를 한다.

옌스는 부모님과 매일 저녁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공부를 했다. 아빠는 나보다도 인내심이 뛰어나 참으로 장시간 옌스의 한국어 동사변형 연습 상대가 되어주셨다. 2년동안 혼자 공부를 하며 느릿느릿 진도가 나가는 듯 하더니 그동안 차근차근 쌓아온 문법에 최근 늘려가는 어휘가 결합하니 말이 트이는 듯 하다. 아직까지 복잡한 문형은 구사하지 못하지만 모든 문장을 단문으로 끊어 이야기해주면 자기가 아는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를 결합해 깜짝 놀랄 만큼 많은 문장을 구사한다. 또한 천천히 이야기하면 많은 것을 이해하고. 국제결혼을 하면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가족, 친척, 친구와의 의사소통에서 불편함이 생겨 아쉬운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극복하려는 옌스가 정말 대견하다. 한국어 공부를 취미라고 여기는 그가 어찌나 훌륭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이번 가을 두달간 한국가서 생활을 할텐데 그 때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언어공부는 본인의 열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방문기간 중 시부모님과 부모님이 만나신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웨딩 디너때 처음 만나서 긴 이야기 나누지 못하셨던 양가 부모님이 어제 오덴세 가시는 길에 들르셔서 커피를 한 잔 하고 가셨다. 뭘 이야기하셨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셔서 그런가 보다. 옌스 한국어 이야기, 시누이네가 두바이로 발령나 이주한 이야기 등만이 기억난다. 한국어와 덴마크어와 영어가 버무러진 복잡한 시간이었지만 참 자연스럽고 좋았다.

한동안 엄마가 살림을 도맡아 해주셔서 내가 한 것이라곤 두끼 저녁 차려드린 것, 화장실 청소 한 번이 전부이다. 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그런 것만 하니 정말 편하더라. 그런 편안함에 길들여지는 것이 두려울만큼. 그러나 또 다시 하면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니. 그리고 엄마표 식사를 매일 했더니 살도 살짝 붙어서 이제는 다시 자제하며 먹어야 할 형편이다. 흠흠.

한동안 부모님을 못보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육개월 후엔 두달이나 같이 지낼테니 너무 상심하지 말아야지. 그때면 하나도 엄청 커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교류도 가능할테지. 그때까지 시간이 후딱 갈 거라는 생각이다. 가기 전 보른홀름에도 한 번 다녀오고, 여름 휴가도 보내고 하면 정말 눈깜짝할 새에 가버리겠지. 하나의 성장모습을 잘 새겨두어야겠다. 다들 하는 이야기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일테니

5주 육아 단상 

하나는 정말 먹성이 대단하다. 간혹은 자기의 위의 용량을 넘어서게 먹는데다가 성격이 급하다보니 사래가 걸려 기침하다가 젖을 토하는 일이 잦다. 살짝 걱정마저 될 정도다. 특별히 아픈게 아니고 여전히 잘 먹으면 괜찮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바탕 토를 하고나면 빈 배가 허기져 또 먹겠다고하며 이미 다 비운 젖을 오래 빨아댄다. 

하나의 토사물 범벅을 대충 닦아낸 내 몸에선 젖토한 냄새가 나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다보면 제대로 다 입지도 못하고 수유 나시티셔츠나 간신히 걸쳐입고 허겁지겁 수유를 다시하게 되는데 그러면 싸늘한 공기에 목과 어깨가 살짝 시리다. 또 이렇게 젖을 왈칵 토하면 하나도 온몸이 젖은 탓에 옷도 갈아입히고 기저귀도 갈고 해야하는데 이를 치울 새 없이 배고프다고 목청 높여 우는 하나에게 수유를 한다. 몇분안에 난장판이 된 거실을 보며 수유를 하며 드는 생각이 육아란 참 티 안나는 노동집약적 행위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 결과물인 애는 쑥쑥 크고 있지만 말이다. 

하루종일 장보고 집 치우고 빨래하고 애 먹이고 놀아주고 나도 먹고 하다보면 정말 정신없는데, 애 크는 거 외엔 사실 집안일이란 게 현상유지 아닌가. 애가 낮에는 잘 안자서 간단한 집안일을 하려고 해도 애를 안고 어르고 달래고하다보면 간단한 일이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 되어버리니 꽤나 챌린징하다. 한국기준으로는 일찍 퇴근하는 옌스지만 간혹 저녁에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보면 하나와 잠에 들때까지 혼자 다 해아하는데 힘이 든다. 회사에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옌스지만 내 이런 힘든 상황을 공유했다. 역시나 힘든 건 나누면 반이 된다고, 우선 말한 것 만으로도 힘든 게 줄어들고 또 개선 방안을 의논했으니 앞으로 좀 더 나아지겠다는 생각에 힘도 난다. 

역시나 육아는 힘든 것. 앞으로도 더 힘든 일이 많이 있겠지만 아직은 초보라 더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천사같은 아이 얼굴을 보니 힘 내서 할 수 있는 것이지. 

한바탕 토하고 젖을 또 먹고 자는 하나

신생아 육아 단상

애와 함꼐 집에만 있으니까 불과 한달전 대학원 생활도 생경하게만 느껴진다. 마치 시간이 여기에서 멈춰있었던 것처럼. 별로 하는 건 없는데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고 애의 미세한 성장이 매일 느껴지면서 애가 어느새 많이 큰 것 같다가도 밖에 나가서 보면 아직도 정말 핏덩이 같이 작은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되며 아직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은 것을 알게도 된다. 주중이면 신문 배달부의 스쿠터 소리와 동네 대형 수퍼에 대형 트럭이 물건을 내리는 소리가 이른 새벽녘의 조용함을 깨고, 사람들은 분주히 출근한다. 그냥 이 시간의 흐름속에 나만 멈춰있는 기분이다. 살짝 불안하면서도 이렇게 아이와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게 감사하기도 하고 상반된 기분이 교차된다.

애는 정말 잘 먹어서 쑥쑥 큰다. 처음엔 하위 20%에 드는 작은 아기었는데 이제는 평균사이즈의 아기가 되었다. 사실 아이가 빨리 커야 한다거나 그런 스트레스는 없다. 그냥 애가 특별한 문제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하면 된다 싶으니까. 살아있는 생명체를 낳아서 먹이고 그 생명체가 큰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애 젖을 먹여야지 하는 생각만으로 가슴에서 젖이 방울방울 떨어진다는 것을 친구들로부터 듣기는 했지만 실제 경험하며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진정 신기하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게 느껴진다. 첫 산책에서는 10분만에 밑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골반저 근육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좋아져서 이제는 오래 걸어도 괜찮아졌고, 자고 나면 온 몸이 꺼질 것 같았던 느낌도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졌다. 우리 침대가 단단한 편이라고 느꼈었는데, 출산 후 2주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관절이 유연해진다는 게 좋은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아지를 키운 경험이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더라. 대화가 되지 않는, 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대를 똥오줌 가리기 전부터 키우는 경험이라는 건 공통되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더라. 우선 똥오줌 치우는 게 힘들지 않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미 손에 똥오줌 묻혀가며 치우던 경험이 있으니 아이 기저귀 가는게 힘들지 않다. 옌스도 이제는 좀 더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손에 묻을까 조심조심하며 애써 더럽지 않다고 최면을 거는 듯 숨을 다소 참아가며 기저귀를 가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이었다. 아직 애가 우는 원인 파악도 느리던 때, 밤에 애가 자지는 않고 계속 먹겠다고 몇시간씩 젖을 빨고 울고 짜증내고, 나는 젖몸살에 몸은 힘들고 스트레스가 순간 너무 쌓였다. 말도 안통하는 애한테 뭐가 필요한 거냐고 보채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를 내 속도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애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 병원에서 간호사가 애가 우는 건 그게 유일한 의사 표시 방법이라서 그런거라는 게 기억나며, 정말 이 작은 생명이 유일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며 보채선 안된다 싶었다. 또 내가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힘든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못자는 게 당연하고 잠을 잘 수 있으면 좋은 거다라고 마음을 먹고 나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었고, 그러니 갑자기 마음이 확 가벼워졌다. 엄마가 이해 못해줘서 미안하고, 초보 엄마 잘 부탁한다는 혼잣말을 아이에게 하고 나니 너털웃음이 나왔다.

이 경험 이후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잠이 부족한 건 여전하지만 낮잠으로 부족한 건 틈틈히 벌충하며 잘 지내고 있다. 젖 몸살도 정말 출산 후 2주안에 사라져서 적당한 패턴으로 수유할 수 있게 되었고, 모유수유를 하니 젖병 관리하고 분유타고 할 일이 없으니 그 또한 편하고 말이다. 수유도 금방 익숙해져서 수유 시간은 책을 읽거나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인터넷을 한다든지 여러가지 딴짓을 할 수 있다. 외출도 몇번 하고나니 다소 챌린징 하긴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붙었다. 해도 조금씩 길어지고 있고, 날씨도 3월부터 서서히 좋아질테니 하나와 야외활동도 늘릴 수 있을 것이고 기대가 된다.

공부를 안하니 머리가 쉬어서 좋은 점과 이래도 되나 하는 두려움이 교차하지만 조금은 아무 생각없이 쉰다는 생각으로 육아에만 집중하련다. 대신 덴마크 라디오 방송국 중 하나가 진행하는 덴마크 포드캐스트를 들으며 덴마크어 공부나 설렁설렁 하면서. (요즘 리스닝이 확실히 늘어서 듣고 이해하는 것과 내가 말하는 것 사이에 격차가 부쩍 늘었다. 어느 날엔가 내 말하는 것이 리스닝만큼 늘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옌스는 동네 학교에 저글링 연습하러 나갔는데 어두워지도록 집중하고 있는지 아직 돌아오지를 않는다. 저녁도 해 먹어야 하는데. 곧 들어올테니 애 깨워서 수유나 해야겠다. 직전 수유를 마치고 아직도 배 위에서 자고 있는 하나 덕에 약간 갈비뼈가 힘들어지려 한다. 이 사랑스러운 녀석 같으니라고.

출산 후 첫 공식 외출

동네 산책이나 병원 방문 등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외출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목적이 있는 외출 말이다. 남편과 매주 하던 주말 커피데이트가 그리웠다. 수퍼에 장보러가거나 산책을 겸해 남편 안경 맞추는 거 디자인 같이 보러 나가고,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해 돌아온 것 외엔 제대로 나가서 일반적인 활동을 해본지가 보름이 되었더니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병원 외출과 동네 산책으로 외출 준비는 해본 적이 있기에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이런 외출은 몰링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고 몇 개 없는 몰 중 어디로 갈 지 선택을 했다. Fisketorvet는 S tog로 한번에 가지만 내려서 플랫폼이 지상에 있는데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위로 올라가 좁고 긴 인도를 유모차를 밀며 걸어야 한다는 게 영 불편하게 느껴져서 제외. Field’s는 메트로가 붐비는 쪽 방면으로 오래 가야돼서 제외. S tog에서 메트로로 한번 갈아타야 하지만 붐비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메트로인데다가 환승시 지상으로 나올 일 없이 쉽게 갈 수 있는 Frederiksberg Centret로 가기로 했다. 항상 상대적으로 덜 붐비고 괜찮은 샵들이 적당히 분포되어 있는 이 곳이 그나마 애 데리고 가기에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가서 한 것이라고는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 한잔 하고 하나 먹을 비타민 D과 손톱깎이, 기타 옌스가 필요한 것을 산 것 뿐이다. 약간의 윈도우쇼핑과 함께. 그렇지만 그냥 그런 게 필요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시도는 옌스가 있을 때 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미 2주간의 출산휴가를 썼기에 옌스는 2주 후면 회사로 돌아가야 하고 말이다.

수유 한 번 하고 기저귀 한 번 갈아주는 정도였으니 크게 어렵진 않았지만, 커피마시는 때와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길을 제외하곤 내내 안아주어야 해서 (우는 탓에) 팔이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성공적인 외출이었어서 주말 커피데이트는 우리와 하나의 컨디션이 허락하는 한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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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출 인증샷. 아직 화장까지 할 여유는 없었다. 목에는 수유용 커버를 두르고… 

3주~한달 된 아기들의 외출은 봤으나 우리도 2주 갓넘은 아기의 외출은 본 바가 없으니 여기에서도 아주 흔한 건 아닌 모양이다. 몰에 애를 데리고 이 시기에 나오는 것이. 물론 여기 아기들은 1주일만 넘어도 다 밖에서 낮잠을 재우니 외출 자체가 드문 건 아니지만, 이런 몰 산책 말이다. 좀 오래 집에 박혀있었더니 생각보다 답답했던 모양이다. 다녀오고 나니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은 걸 보니.

하나가 태어나고 나서 삶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내 성격의 단점도 나오고 반성하게도 되고. 옌스가 집안일에 있어 나보다 서툰데, 좀 더 꼼꼼하거나 빠릿하게 일을 해주지 못하는 것으로 조금 더 못해주나 하는 마음에 짜증이 났다. 생각해보니 사실 일을 그렇게 꼭 잘 해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집을 내내 깔끔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내 페이스대로 해주지 않는 옌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은 진짜 중요한 것, 즉 우리 관계와 우리 삶을 간과하고 별 것 아닌 것에 집중하는 격이 아니던가. 갑자기 옌스가 내 로맨틱한 대상인 남편에서 내 아이의 아빠로 변하면서 관계의 축과 동력이 다 바뀌고 옌스에 대한 마음도 많이 바뀌었다. 진짜 가족이라는 강력한 유대감 같은 것이랄까? 그 전에도 이미 그렇다고 느끼고 있었다 생각했지만, 완전히 다른 새로운 차원의 그것이다.

외출을 하고 보니 그전보다 아기와 함께 있는 가족이 그렇게 눈에 많이 들어오더라. 또한 커플이 단 둘이 온 경우를 보니 우리가 그랬듯이 눈과 몸짓에서 로맨틱한 사랑이 묻어나오는 게 눈에 띄던데, 우리도 그런 로맨틱함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