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월의 하나

하나는 이제 만 21개월이 조금 넘었다. 두돌까지 세달도 채 남지 않았다니, 세월이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가는구나. 보육원에서 부모와의 첫 면담이 좀 늦어졌지만 곧 시간을 잡는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요즘 부쩍 사회성이 늘어가는 것 같아서 그걸 지켜보는 게 즐거운데 내가 보는 일과 시간 밖의 하나에 대해 차분히 앉아 이야기할 시간을 갖는 게 참 기대된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라고 한다. 이중 언어인 아이는 말이 늦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걸 예전 친구의 아이에게 본 것처럼 하나에게서도 확인한다. 보육원을 처음 시작했을 때 선생님이 이야기하기를, 물론 개인차이는 있지만 아이에게 언어 인풋을 많이 늘리면 이중 언어라도 늦게 말을 시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충분한 언어 인풋을 주었는지는 내 주관적인 경험이니 알 수 없지만, 유아 언어 없이 애가 알아듣든 말든 어려서부터 많이 말을 해주려고 노력했고 아이의 옹알이때부터 섀도잉을 포함해 아이의 말에 피드백을 열심히 해주었다. 그리고 하나는 말을 어찌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저렇게 끊임없이 연습하니 말이 늘지 싶을만큼 집요하다.

신체적으로는 키는 표준인 거 같다.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몸도 딱 표준. 몸을 쓰는 건 참 열심히인데, 선생님들 표현으로는 작은 스파이더맨이란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까지 몸을 제법 사리는 편이면서도 자기 딴에 검증이 된 것에 대해서는 겁이 없다. 어디 부딪히거나 넘어져서도 피곤한 시간이 아니면 아주 아프기 전엔 아프다고 징징거리거나 울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난다. 막 기고 어디 잡고 일어서고 할 때부터 덴마크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하려던 건, 아주 위험한 게 아니면 넘어지고 부딪힐 기회를 주고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엔 상황을 차분한 얼굴로 얼른 판단한 후 필요 이상으로 과잉 반응하지 않고 괜찮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털고 일어나게 해줬다. 애들은 어떤 수준의 통증에 대해 얼마만큼 울어야 하는지를 엄마의 표정을 통해서 배우고 거기에 기준점을 잡는다고 들었는데, 하나의 기질 탓이 크겠지만 하여간 하나는 그런 면에서 참 강한 아이로 큰 것 같다.

내가 데릴러 가면 절대 그냥 옷을 입는 법이 없어서 보육원에 앉아 같이 거의 20분씩 놀다 오다보니 그 떄 남아있는 애들과 같이 노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게 되는데 아이들과는 제법 같이 놀이를 즐긴다. 우리가 집에서 하나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악수를 자주 시키는데, 요즘 간혹 우리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손을 잡아 흔들고 하더니, 보육원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그렇는 걸 봤다. Norma라고 하나보다 생일이 며칠 늦은 여자애가 있는데, 걔한테 그러고 Dagmar라는 다른 큰 여자애에게도 가서 또 그러더라. 그러니 Norma도 Dagmar에게 가서 똑같이 하고, 나에게 와서도 그러는 거였다. 공도 같이 던지고, 춤도 같이 추고. 어느 날은 Norma에게 가서 자기 모자와 자켓을 가리키며, “모자”, “자켓” 이러는 거다. 한국말로. Norma가 그런 하나를 보다가 나를 보더니 뭔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짓는다. 또 여기저기 애들한테 뛰어다니며 한명한명 짚어가며 이름을 불른다. 나에게 가르쳐주듯. 선생님 왈, 하나는 보육원 애들 모두의 이름을 다 알고 이름 외우는 거 좋아해서 새 아이가 들어오면 그 날부로 바로 이름을 외운다고 한다. 집에서 하도 연습을 해 나도 애들 이름 상당수를 알 정도니 말 다했다.

하나는 새로운 일에 너무나 즐거워하는 즐거운 아이란다. 별거 아닌 거에도 엄청 크게 웃고 즐거워하고 노래에 즐겁게 춤을 추는 흥이 많은 아이. 호기심도 엄청 많고 보육원 생활 태도도 좋다고 한다. 여태까지는 참 잘 커준 것 같다.

둘째는 없다라고 할 만큼 충분히 힘들었던 시간이지만, 둘째가 하나같이만 건강하고 씩씩하고 이쁘게 커준다면 둘도 낳고 싶을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보장은 전혀 없고 애들은 형제라도 너무나 다른 인격체일 것임을 알기에 둘째는 갖지 않을 거다. 그런 만큼 지나가는 이 시기가 돌아오지 않음을 알고, 매 순간이 소중하다. 하나를 키우면서 나도 엄청 큰다.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에 맞춰 대응하려고 하고 인내심을 키우게 되는 등 말이다. 아이라면 참 싫어했던 내가 언제 이렇게 변했나 싶을만큼. 내 아이가 이쁜 만큼 다른 집 아이도 이뻐지고.

아기였던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아기라는 말은 붙일 수가 없을만큼 큰 하나. 어느새 이렇게 컸누. 지금은 내가 안아주겠냐고 물어보면 멀리 있다가도 확 뛰어와서 안아주고 내가 볼이 떨어져나갈 듯이 뽀뽀를 해주면 까르르 뒤집어지며 웃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허벅지와 종아리를 마사지해주면 간지러워 몸을 이리 굼실 저리 굼실 하며 배를 잡으며 웃고, 내가 하는 이런 저런 유치한 장난들 좋다며 또 해달라며 수십번이고 조르지만 이게 언제까지일까. 그런 생각이 들면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 같다는 표현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야 와닿는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렴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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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마음을 추스르고 힘을 내야겠다.

면접 본 곳들에서 연락이 왔다. 한군데는 이미 1차에서 나와 안맞는 거 같아 나 스스로도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었고, 다른 한 군데는 조금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던 곳에서는 일찌감치 메일로 불합격 연락이 왔고, 다른 곳에서는 오늘 전화로 연락이 왔다. 가장 이력이 잘 부합하는 사람과 계약이 오래 걸려서 혹시나 그게 성사되지 않을 경우 나에게 연락하려고 하다보니 연락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것이었다. 원하던 바가 명확하던 곳이었는데, 해당 분야와 프로그래밍 쪽으로 1년여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전화로 연락을 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했고, 몸이 안좋아 낮잠을 자다 일어나서 받았던 전화라 정신이 다소 없어서 면접 내용에 대한 피드백은 요청할 생각도 못했다. 그 점이 참 아쉽다.

6개 지원한 결과 면접 2회로 모두 쓴 물을 마셨다. 졸업하자마자 금방 취직을 할 거란 생각은 안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유쾌하진 않다. 해도 짧아지는 계절적 변화로도 몸이 가라앉는데 주변 네트워크도 좁아지니 기분이 더 가라앉는다. 그러다보니 다음 주에 있을 스투디프뢰운 시험은 준비를 하나도 못했다. 덴-덴 사전만 된다고 하는데 그거 사는 것도 너무 늦어서 원하는 시기 안에 배송이 올 지 모르겠다. 내일 서점에 전화해보고 안되면 취소하고 서점에 직접 가서 사는 걸로 생각해봐야겠다.

요즘 좀 우울했다. 사실 지금도 우울한데, 텔레비전 방송 하나를 보고나서 정신을 좀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ALS)를 앓으면서 2년의 병색 끝에 세상을 뜨는 남편과 그의 부인, 네 아이, 그리고 그 주변의 가족과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 2부작 다큐멘터리였는데, 참 잘 그렸고 마음에 와닿았다. 마음이 아팠다. 그 남자, 아내, 남자의 아버지, 여동생, 아이들의 마음이 하나하나 다 와닿고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마음이 이기적이긴 하지만… 살다보면 내 삶에 매몰되어 주변을 돌아보기도 어렵고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게도 된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도 그냥 그렇게 되기도 한다.

내가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해하고,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덜 중요한 것에는 집착하고 불평하고 불만을 갖지 않는 것, 그리고 지금 삶을 열심히 꾸려가는 것. 거기에 집중해야겠다. 이런 우울한 마음을 보듬어 주려고 친구가 사다준 CD를 들으며, 내 마음 위로해주는 따사로운 그니의 마음에 감사하고 그래서 더 힘을 내야겠다.

 

보육기관 부모회의 참석후기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 보육원이 있는 관계로 하나는 큰 고민없이 이 보육원에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6개월 영아부터 학교 입학 직전 유아까지 받는 큰 보육원이라 더 좋다고 생각했다. 어디고 좋은 점만 있는 보육시설이 있겠냐마는 이정도면 만족하고 다닐만한 보육원이라 생각하고 보내고 있다.

보육원에 애를 보낸지 거진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대충 이맘때쯤 연간 부모회의 총회가 열리는 것 같았다. 이때쯤 해서 총회를 열고 부모회의 이사진을 선출해야 그 이듬해 이사회에서 매월 모여가며 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전달하고 보육기관의 입장도 듣고 조율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보육기관장이 무슨 이유인지 해고되고 그 이유는 공유가 되지 않았다. 신규 기관장을 채용, 선임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보육원과 학부형 간의 공식적 의사소통이 좀 원활하지 않았다. 개별 선생님과 부모 사이의 의사소통이야 항상 문제 없긴 했지만. 알고보니 선생님들이 마음 고생도 심하셨고 했던 모양이다. 기관장의 빈자리를 보육교사들이 채워가면서 보육업무도 봐야하다보니. 해당 기간 중 육아휴직, 병가 등 선생님들의 빈자리도 중간중간 생겨서 더욱 그랬던 거 같다. 그 와중에 자리를 잘 지켜주고 애들 잘 돌봐주신 선생님들이 참 고맙더라.

신임보육기관장의 인사 및 비전 등을 듣는 자리가 있었는데, 참 연륜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보임 후 보육원이 조금씩 다시 제자리를 찾는 거 같다는 느낌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한시간동안 아이들의 놀이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보육교사 및 학교 선생님 자격이 다 있고, 교육쪽 박사학위에, 오랜 기간 교육 프로그램 컨설팅에 종사한 이력이 화려한 분이었다. 이력이 화려해도 강의가 꼭 재미있다는 보장은 없을텐데, 어찌나 이분 강의가 재미있던지 간간히 눈물이 날만큼 웃어가면서 강의를 들었다. 나도 하나 궁금했던 것에 대해 질문도 해보고 알찬 시간을 보냈다.

끝나고는 각자 앉았던 의자를 정리하고 돌아가는 거였는데, 한 엄마랑 엄마그룹 모임에서부터 알고 있어서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도 하고 헤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다다음 주말에 가족 플레이데이트도 드디어 해보기로 했다.

옌스말로는 덴마크의 전형적인 부모모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그런데 그래서 그런가, 외국인 부모들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덴마크인을 한쪽 부모로 둔 가정 말고도 완전 외국인 부모들도 소수 있는데, 아무도 오질 않았다. 나야 거울이 있는게 아니면 내가 보이질 않으니 다 비슷한 덴마크인들 속에서 딱히 느낄 이질감도 없지만 간혹 그런 걸 인지하는 순간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가만 보면 상당수의 외국인 부모들도 덴마크어로 다 이야기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하던데. 애들 보육기관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어라기 보다는 가서 다 알아듣지는 못할런지 어색하지는 않을지 등등 여러 이유로 안오는 것 같았다. 막상 와서 보면 정히 다른 부모와 어울리지 않아도 그냥 앉아서 듣다가만 가도 이상할 것도 없고 괜찮다는 걸 알 수 있을텐데. 반대로 이런 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부모들을 두고 사회통합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옌스가 바빠서 내가 갔던 거지만 재미있었고, 조금 애가 더 크고 나면 이사회에도 참석해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한달에 한번 만나고 조금 일 더 하는 거라면 봉사활동으로도 나쁘지 않을 거 같고.

썸머타임이 끝나서 일찍 피곤해진다. 이제 가서 자야지. 하나도 얼른 시차적응이 끝났으면 좋겠다. 좀 적응되나 싶었더니 썸머타임 끝으로 추가 한시간 적응이 더 필요해졌다….

한국이 낯설게 느껴질 때

  • 설겆이를 하려는데 싱크대가 너무 낮을 때. 덴마크 싱크대가 내 허리에 딱 맞아서 한국 싱크대가 새삼 낮게 느껴질 때
  • 우회전을 할 때 신호 없이 우회전을 해도 된다는 게 영 불안하고 있지도 않은 자전거주행자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며 회전할 때
  • 매장에 들어설 때 아무런 다른 역할없이 인사만 하는 점원이 영혼없는 모습으로 공허한 인사를 하고 아무도 그 인사에 대답을 안하는 모습을 볼 때
  • 그래서 그 인사에 내가 답을 하면 낯섬에 당황함이 느껴지는 점원의 얼굴을 볼 때
  • 나와 옌스가 하나와 걸어다닐 때, 하나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옌스의 얼굴을 쳐다본 후 끄덕거리는 모습을 볼 때
  • 하나와 쉽게 놀 수 있는 야외놀이터를 찾기가 어려울 때
  • 서울이 너무 크다고 생각될 때
  •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 한명 뿐 아니라 어시스턴트 두명이 붙어서 커트를 도와줄 때
  • 그리고 그 가격이 너무 쌀 때
  • 홈쇼핑과 드라마 채널이 낯설게 느껴질 때
  • 한결같이 젊은 사람 일색인 뉴스 아나운서의 로보트같은 화장과 정장차림이 이상할 때
  • 단지 내가 자기보다 어리다고 반말하고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둥글려 답하는데도 굳이 집요하게 같은 질문으로 파고들 때
  • 엄청 많은 식당과 술집 간판을 볼 때
  • 이쁘고 아기자기한 디저트류를 여기저기서 흔히 볼 수 있을 때

 

 

처음에 덴마크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던 나는 어느새 덴마크의 삶에 익숙해졌다. 그때의 불편함과 낯섦은 당연함이 되었고, 한국의 익숙함은 낯섦으로 바뀌었다. 너무 차이가 극명해서 그 대조가 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옌스와 결혼하며 한국에서의 삶은 고려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의 국제커플의 삶은 피곤한 면이 꽤 있는 것 같다. 끊임없는 질문과 시선 때문에. 사실 애 없을 땐 이 정도는 아닌 거 같았는데 웃으며 넘기긴 해도 조금 불편함이 있다. 또 키즈까페에서 하나와 놀면서 ‘쟤는 외국인인가봐, 머리가 노래, 머리가 노란데 왜 이름은 한국어로 써있지?’ 와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고, 엄마가 한국인이니 아이는 한국인이기도 하다고 해줘도 아니라는 부정의 말을 들을 때 덴마크를 터전으로 잡은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한국인이지만 여기서 더 이방인같은 느낌이 든다는 게 참 이상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배타적이어야 할까?

파즈즈즈즈…. 정전기로 충전된 하나

플라스틱 재질로 된 터널 타입 미끄럼틀을 탄 하나 머리가 정전기로 한올한올 곤두섰다. 이런 재질 미끄럼틀만 타면 이렇게 되는데 얼마나 웃긴지. 인생사진들 건진 것 같다. 🙂 땅에 내리는 순간 차르륵 내려앉는 머리가 정말 신기했다!

혼자만의 저녁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혼자만의 저녁이다. 금요일 저녁에 떠나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출장을 떠난 옌스 덕에 맞이하게 된 시간이다. 어제는 시부모님이 계셔서 수다도 떨고 하느라 아늑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어제 저녁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는데 기분이 영 묘하더라. 옌스가 설거지를 하던 내가 하던간에 누군가가 부엌을 방문해서 한마디 두마디 나누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게 없다보니 엄청 적막함이 느껴지더라. 그 작은 일상의 부재가 옌스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혼자인 건 참 이상했다. 저녁 약속으로 늦게 들어오더라도 옆에 들어와 눕는 걸 항상 봤었기에.

그런데 이렇게 떨어져지내는 시간이 나쁜 것 같지는 않다. 길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빈자리가 서로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동료들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있겠지. 나는 대신에 딸기에 설탕과 생크림을 얹어 먹어야겠다. 이젠 물론 이미 하우스 딸기이지만 여름이 가도록 중독된 딸기를 차마 쉽게 놓을 수 없다.  그리고 설겆이를 하고 집을 치우고 청소를 해야지. 티비도 보고…

한국방문 직전 급히 바쁜 근황

일주일동안 한국에 다녀올 예정이다. 가을방학 기간에는 휴가를 내는 부모들이 많아 이때는 휴가를 내는 게 옌스에게 그닥 어렵지 않기도 하고 한국에 날씨가 좋은 이유도 있고 등등해서 이때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때엔 직장을 구했을 확률도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이유였다. 너무 짧은데다가 병원 검진, 작은 지방종 절제 (여기서는 미용시술이라 안해줄 그런 작은 거지만, 이마에 있는데다가 조금 커지는 거 같아서 괜히 늦어지기 전에…), 가족 행사 등이 많아서 전적으로 가족방문의 기간으로 삼게 될 것 같다.

한국에 다녀오기로 해서 그런가. 2주짜리 프로젝트가 딱 한국가기 2주 반전에 잡혔는데, 나를 단기로 고용하기로 한 컨설팅펌에서 발주처와의 계약 문제로 계약이 1주일이 밀렸다. 2주짜리 프로젝트를 1주일 반 안에 해야 하는 상황. 오늘은 더이상 일 할 수 없을만큼 오래 일했으니 이제 접어뒀지만 중간에 하나가 아픈 일이 있으면 절대 안되게 타이트해졌다. 짐은 주말 저녁에 싸야한다. 옌스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밤 늦게까지 출장을 가는터라 주말 낮엔 싸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하나 거 중심으로만 싸야지. 시부모님이 금-토 이렇게 오신다니까 그때 좀 봐달라고 하고 짐을 싸던가 해봐야겠다.

면접이 하나 잡혔다. 졸업하기 직전부터해서 이력서를 몇개 썼더라.  5개를 썼구나. 2개는 거절당했고, 세번째로 쓴 곳에서 면접이 잡혔다. 나머지 2개는 아직 서류전형 중이다. 2개 거절당하고 나서 (사실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음에도) 그 충격이 생각보다 컸나보다. 마치 10번은 거절당한 듯한 기억이었던 것을 보면. 하필이면 일분일초가 귀한 타이밍에 면접을 보러 가야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물론 당연히 면접을 보러가야지.

잘되면 좋은 거고, 안되도 면접 연습을 한 셈이니 좋은 거다. 안그래도 제일 가고 싶은 회사 (지금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에 오프닝이 하나 났는데, 여기 면접 기회가 올 지야 모르지만 온다고 하면 이곳을 위한 면접 연습도 되는 셈이니…

프로젝트는 정말 재미있다. 진작에 데이터 프로그래밍 쪽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을텐데 싶을 정도로. 배우는 것도 많은데 돈도 주고!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싸게 나의 고급노동력을 이용하는 거다. ) 논문을 GIS와 R을 많이 써야 하는 주제로 정한 덕에 나도 모르게 이 두 프로그램과 많이 친해져있었다. 2주동안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 같다. 직장이 빨리 안잡히면 Datacamp 등을 통해 프로그래밍 공부도 좀 하고, 부동산 시장도 들여다볼겸 (집산다는 친구도 있고 등등) 데이터 놀이도 해볼까한다.

내일 또 일하러 나갈 생각에 기분이 들뜬다. 물론 일과 육아 및 가정생활을 병행하려다 생기는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지만, 그거야 내가 가정주부로 내 재량이 아주 많아지는 경우를 제외하고서야 어떤 경우에도 있을 거 아닌가.

이제는 자러가야지. 내일은 내일의 코딩이 기다리니까. 🙂

좋은 부부관계를 위한 우리의 원칙

결혼한지 3년이 조금 넘었으니까 신혼은 아니렸다. 남편이 이젠 정말 뼛속까지 가족같은 느낌. 아마 하나를 낳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나가 우리와 함께한 지 출생후 이제 20개월 되었는데 마치 우리와 평생을 한 느낌이 드니까 그 전에 결혼한 우리의 삶이 항상 그래왔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거다.

우리 딴에야 조금 다툰 일은 있지만 어디 명함을 내밀기에도 민망한 작은 다툼이 전부인 것 같다. 결혼 전 둘이 다짐한 몇가지가 있는데, 서로 사랑하더라도 짜증나는 일들은 있게 마련이니 1) 절대 서운한 감정을 쌓아두고 냉전하지 않기, 2) 서로에게 항상 좋은 의도로 대하기와 상대가 그러하리라고 믿기, 3) 서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기, 등이 있다. 아마 이를 지켜오기 위해 노력하고 지켜온 덕에 작은 다툼이 큰 다툼으로 번지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출산 후 1년 동안은 나의 여유가 없어지면서 내가 짜증내는 일이 제법 있었지만, 육아 및 가사일에 옌스가 익숙해지고, 하나가 커가면서 일들이 조금씩 줄어들자 과거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미움의 감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흘릴 수 있었다.

사실 가까운 사람에게 가깝다는 이유로 내 힘든 순간 날을 새우고 의도치 않게 또는 죄책감을 심어준다던지 하는 식으로 의도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고 또 주는 일이 흔하다. 가족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지만 관계는 정태적인 게 아니라 가까운 관계도 언제고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소중하고 가까운 관계는 그 모습이 헤어져 변해버리기 전에 항상 잘 가꿔야 한다. 그리고 양쪽이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살면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서로 타협하고 조율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타협하고 조율한다 함은 매우 실용적인 관점에서 출발한다. 누가 옳고 그르냐, 어떤 것이 공평하냐와 같은 원칙이나 정의 중심의 접근이 아니다. 한 쪽의 상황이 어렵고 다른 한 쪽의 상황이 여유있으면 여유있는 쪽이 맞춰주고, 도움 받는 쪽은 고마워하고 도움을 잘 받아들이고 나중에 내가 여유있는 상황에 있을 때 또 도와주고 그런 거다. 어쩌다보면 항상 여유있는 쪽 또는 도움 받는 쪽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삶은 원래 그런 거 같다. 꼭 공평하지 않은 것. 서로 양보하려고 노력하고 그걸 각자가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할 때 관계가 부드럽게 흐른다. 그러니 남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상관없이 두 사람만의 원칙을 갖고 문제를 풀어간다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생각한다.

물론 문제가 없는 관계라고 해서 좋은 관계라는 건 아니다. 평생을 같이 하려고 만난 사이이니 만큼 남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런게 있어서 결혼을 한 것일테니 그걸 가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다. 옌스는 로맨틱함이라고는 찾아보기도 어려운 나와 달리 조금의 로맨틱함을 갖고 있다. 물론 이는 상대적인 거고 우리 둘다 별로 로맨틱한 유형은 아니다. 그래도 서로에 대한 로맨스는 아직까지 잘 갖고 있는데 그건 어쩌면 매일 사랑을 표현해서가 아닐까 싶다. 사랑을 표현하려다보면 칭찬도 해야하고 칭찬이 칭찬다우려면 구체적이어야 하다보니 서로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잊고 있던 장점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또 모르던 부분도 보이기도 하고 괜히 가슴 설레는 순간도 다시금 생긴다. 그리고 상대의 그런 칭찬을 듣다보면 내가 아직 상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에 나를 다시금 가꾸고 싶게되고 내 마음에도 달짝지근한 사랑의 기운이 번진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옌스하고의 관계에서는 그냥 그렇게 되었다. 그게 바로 인연이라서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유지하고 가꾸는 건 노력없이는 안된다는 측면에서 그냥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닐게다.

사랑한다는 건 사랑에 빠진다는 것처럼 감정의 회오리에 휩쓸리는 피동적인 게 아니다. 능동적인 행동이다. 어려울 때건, 내가 지치고 힘들때 건, 아끼고 가꿔나가는 게 관계이고 그 행동이 사랑한다는 행위이다. 결혼을 하고 같이 살다보면 처음과 같은 두근거림이나 열정은 서서히 사그라들지언정 내 마음에 큰 자리를 내어 같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른 종류의 감정이 싹트고 서로를 위해 나를 내어줄 수 있게 되는데 나는 그게 사랑이라 생각한다. 먼저 결혼한 친구가 오래전에 나에게 결혼에 대한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해인아. 조급해 하지마. 대충 거슬리는 게 없다고 결혼하는 게 아니라 꼭 네가 존경할 만한 점이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해. 그래야 나중에 힘든 일이 있고 서로에게 지치는 순간이 와도 그 존경하는 점 때문에 그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어.” 라고 말이다. 그게 참 와닿았고, 그 말에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나니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이제 만난지 거의 5년이 다 되어가는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남편이나 시댁이나 좋은 사람을 만나서 잘 지내오고 있는 건 행운일 지 모르겠지만, 과거의 나였다면 이 관계를 현재와 같이 가꿔오지 못하고 아마 진작에 망쳐버렸을 거다. 결혼하기 전에 서로 합의한 이 원칙을 앞으로도 잘 지키고 서로를 귀하게 여긴다면 계속 행복한 가족을 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구직기간의 스트레스 관리

실업기간이 6개월에서 길게는 1년도 될 수 있음을 마음에 두고 조급함을 버리라는 옌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불안함과 조급함이 끊임없이 마음에 찾아온다. 이 녀석들… 불안함과 조급함은 내가 부족하다 느끼기에 생긴다. 결국 내 욕심에 비해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겠지. 욕심을 버리거나 노력을 늘리거나, 아니면 둘다 조금씩 조정하거나 해야지 그냥 앉아서 불안함과 조급함에 내 정신을 맡겨두는 건 건강하지 못하다.

항상 하려는 건 많고 그 중 건지는 건 몇 개에 불과한 나이기에 이런 노력이 얼마나 갈 지야 모르겠다. 하지만 항상 이것 저것 해보기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건지는 게 늘어남 또한 알고 있다. 꾸준함이 덜하다면 시도라도 해서 맞는 걸 건져야 할 것.

한국 다녀와서 5주동안 데이터 사이언스 온라인 과정을 들으면서 R에 대한 숙련도도 늘리고, 기타 다른 프로그래밍 스킬을 계발하려고 한다.

그간 풀어진 정신상태도 조금씩 조여서 쓸데없는 넷서핑도 줄이고.

unsolicited 이력서도 조금씩 내보고… 원하는 일자리 자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옌스가 이 전공이 특화된 전공이기 때문에 구직 기간을 비전문 전공보다 더 길게 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별로 나지 않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다.

그래도 천천히 해보자.

대신 일주일에 한번 정도  평일에 친구를 만나거나 문화생활을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구직기간을 조금이나마 즐길 수 있도록…

일상의 기록

나이 마흔이 다 되어가는 즈음에서야 내 부모의 훌륭함을 느낀다. 게을러지고 싶은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조차 꾸준함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 내 그리 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끈의 끝자락을 놓지는 않고 있다고는 하겠다.

바쁘다는 이유로 기록을 게을리했는데, 작은 하나하나 게을리하는 게 모여서 큰 게으름이 되는 것 같아 짧게라도 흔적을 남겨야겠다 마음 먹었다.

오늘 날이 좋다. 어제는 우박도 떨어지고 비도 엄청 왔다가 잠깐 해도 떴다하며 오락가락하더니 오늘은 차가운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이 어우러지는 전형적인 가을날씨다. 어제는 추석이었는데 여기서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가족이 그립다고 이야기하기에 내 주변에 떠들썩함이 없으니 딱히 그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일주일이나마 잠깐 방문을 할 계획이 있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부모님이 오고 가신지 오래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너무 적어진 것 같다. 내 발등에 떨어진 일들 때문인 것 같다. 해야할 일이 많을 때 사람들과의 교류를 줄이는 건 오래된 습관이다. 좋은 습관은 아닌 것 같다. 줄이다 못해 거의 끊어지게 관리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보다 사람 관리를 못하게 된 것 같다. 내 인생의 중심이 사람에서 내 현재 생활에 뿌리를 내리는 것으로 옮겨진 것일테지. 그렇다고 뿌리를 내리는 일에 아주 몰입한 것만도 아니다. 요즘처럼 게으름이 다시금 움트고 있을 땐 죄책감 반 의무감 반으로 마음이 버무려져 다른 일에 손을 데기가 참 힘들다. 정신차려야지.

오늘 할 일이 있는데 이를 미루고 늦잠을 자다가 쨍하게 파란 하늘을 보면서 이를 못누린다 불평하며 이도저도 못하고 있구나 싶었다. 지금의 내 삶을 놓고 보면 부족함이 하나 없는데 뭐에 이렇게 움츠러 들었는지. 한동안 실천하던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조차 전에 실행하기” 원칙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운동을 줄여서 그런가? 덴마크어 학원을 다니면서 운동에 할당하던 시간이 애매해졌다.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을 조율해나갈 지 생각해봐야겠다.

이제 해야 할 일들을 조금 처리하고 난 후 하나를 데리러 가야겠다. 애를 보는 게 힘든 면이 있기야 하지만, 내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있다면 하나를 낳은 것이다. 이제 이틀이면 20개월이 된다.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지. 나의 보석 하나. 정말 눈에 넣어서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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