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할 집 찾기 시작

지금 사는 집이 사실 여러모로 괜찮긴하다. 거리도 도심과 매우 가깝고 아파트지만 동간 거리가 충분하고 고속도로, 기차역 모두 가깝지만 소음은 없다. 주변에 좋은 공원과 자연이 많고 놀이터도 자그맣게 여럿이라 애가 놀기도 좋다. 보육원은 바로 내려다보면 애가 노는 것도 보이는 바로 코앞이고 애도 아주 만족하고 아주 가까운 친구들도 여럿이다. 학교는 학군이 좋아서 전국 학교에 50위권에 드는 학교도 지근거리다. 아파트에 있는 잔디밭은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애들이나 조금 이용해서 우리 것 마냥 즐기기도 좋다. 거기에 아파트 부족으로 딸린 문달린 큼직한 차고를 월 400크로나 정도에 함께 텐트치고 있으니 이런 조건에 이런 가격의 아파트는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할 집을 찾기 시작한 것은 집이 한국 기준으로 30평에 조금 못미치는 크기이다보니 아이가 크면서 불편해질게 뻔히 보이고 있다. 물론 못할 일은 없고 달라면 오래 살 수도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데이트를 하거나 아이가 시대에 들어설 때 좀더 사생활이 보장되는 독립 공간을 주는 문제 등에 있어서 이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특히 부엌에서 수납이나 조리공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학군이 평균보다 조금이라도 나으면, 대중교통이 편했으면, 시끄럽지 않으면, 통근이 너무 멀지 않으면서 예산은 450만 크로나 아니면 좋겠다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맞추기 어렵다. 옌스에게 오늘 대중교통 근접성 요건을 조금 완화해 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더니 가능성은 열어두자고 한발 물러섰다.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이 있었는데 소음이 생각보다 심한 지역이라 관두고 나니 더이상 찾기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그러니 뭔가 타협해야하는데 교통에서 타협을 보는게 제일 나을 것 같았다. 이미 차도 한 대 샀겠다, 한 대 더 살때 심리적 저항은 첫 한 대보다 낮다. 지금 보고있는 타운하우스들 중에서 참고가 있거나 설치가 가능한 곳들에서는 충전기도 설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올해 제일 싼 전기차로 15만 크로나로 가성비가 아주 괜찮은 차가 새로 출시된 모양이다. 좀 멀리가도 가격이 낮아지니 차한대 더 사면 어떤가하는 제안에 옌스도 딱 잘라 안된다고 하지 않았으니 그만큼도 장족의 발전이다.

사실 이렇다가도 언제 집을 사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이사하려면 최소 삼개월은 걸리니까. 은행은 서류 준비는 끝났으니 컨택만 하면 된다. 거래만 성사되면 주식을 좀 팔고 다운페이를 하고 나머지는 대출로 삼십년 상환하는 거다. 장기간의 투자이니 신중히 잘 결정해야한다. 여긴 애들이 전학을 잘 안하고 어릴적 친구가 오래 가는 탓이 학교 입학 전 이사하고 거기서 오래 사는 게 거의 보편에 가까워서 더욱 그렇다.

과연 우리는 언제 집을 살 수 있을까?

끝내주는 요즘 날씨

요즘 날씨같은 날만 이어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물론 그러면 가뭄으로 이 모든 풍경이 유지될 수 없겠지만. 동네 산책길에서 아름다운 길을 새로이 또 걸어보았다. 갠토프트 호수에서 항상 한쪽편만 걸었었는데 이번에 반대편을 걷다보니 작은 습지내 산책길이 있는 게 아닌가. 날씨가 좋으니 풍경도 아주 아름다웠다. 저녁 아홉시 열시 사이의 풍경. 이처럼 좋은 시기가 연중에 또 없다. 누리고 또 누려야지. 지금. 할 수 있을 때.

40개월의 하나

키는 95센티미터 정도, 몸무게 15킬로그램. 나이 대비 매우 평균적인 아이이다. 머리크기는 잊었지만 이또한 평균. 먹는 것은 덴마크에서 한국 식생활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식탐이 없고 그렇다고 적게 먹는 것도 아니다. 신체적 성장의 면에 있어서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평균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성이 탁웚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고 자기를 소개하고 상대에 대해 질문한다. 이름을 외우는 것을 좋아하고 이름을 포함해 대화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대화에 적극 활용한다.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아 상대가 무시하고 갈 경우 다소 상심도 하고 주변 어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왜 상대가 자기를 무시했을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다행히도 그런 일을 훌훌 터는 걸 잘 한다. 주변의 친구와 어른에게 포옹 등 신체적 접촉을 통해 친밀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와 같이 노는 걸 좋아하지만 아쉬움이 없이 잘 놀기 때문인지 헤어짐은 우는 것 없이 흔쾌히 받아들인다.

놀이를 잘 만든다. 상상력이 풍부해서 이러저러한 놀이를 잘 만들고 친구들을 놀이에 끌어들이는 것을 잘 한다. 장난감이나 사물을 본연의 모습이나 기능과 달리 사용하는데서 창의적임을 느낄 수 있다. 잠에서 혼자놀 때는 인형에 역할을 부여해 혼자 대화를 주고받는 역할 놀이를 많이 한다. 상황에 따라 부여하는 이름이 세트로 나뉘어있고 그 세트가 매우 다양하다. 사자 가족일 땐 엄마사자, 아마사지, 아기사자 이름이 뭐뭐고 고양이 가족일 땐 그게 또 다르고 그냥 아기일 땐 뭐고. 너무 많아서 이제는 내가 다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다.

노래는 좋아하지만 음정은 좋은 것 같지 않고 미술을 좋아하나 그건 내가 잘 모르겠다. 그냥 특별할 것 없이 그 나이 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정도인 것 같다.

숫자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냥 일부터 이십까지 세는 것 정도가 일상적으로 쓰게 되는 전부이고 시간에 대한 관념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매일 아빠가 읽어주던 라임책 덕에 두돌때 알파벳은 이미 읽을 수 있었지만 글자를 일고 싶어하는 욕구를 드러낸다거나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책은 좋아하는 것 같은 게 간혹 문닫고 조용히 있을 때면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고 집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덴마크어는 또래 애들중에서 뛰어나다. 발달 정기검진에서도 언어나 신체조절능력이 많은 부분에서 평균보다 1년정도 빠른 것 같다고 나왔는데 실제 보육원에서 다른 아이들을 만날 때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어려서부터 발음도 좋았어서 타인과 의사소통이 어려서부터 쉬웠다. 아무래도 공갈젖꼭지를 물리지 않은 것도 발음이 일찌기 좋았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오래 문 애들의 경우 이가 완전히 물리지 않아 발음이 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덴마크어가 뛰어난 것에 비해 내 노력의 부족탓인지 한국어는 부진하다. 요즘 좀 한국어 사용을 내가 늘리면서부터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자기도 자기 한국어가 뛰어나지 않은 건 잘 알고 있고 내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따금 다른 아이들 이름 발음을 교정해주기도 하고 문법을 교정해주는 것도 있다. 덴마크어애는 부정의문문에 긍정으로 답할 때는 Yes에 해당하는 ja를 jo로 바꿔 답해야 한다. 간혹 내가 그냥 이에 ja라고 하거나 실수로 ja라고 해야할 경우에 jo라고 답하면 정정해준다. 그리고 엄마 덴마크어는 나쁘지 않아 라고 이야기해주는 걸 보면 내 덴마크어가 모국어가 아님을 자기가 느낀다는 거다. 요즘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갖고 와서 한국어로 읽어달라고 한다. 이해를 다는 못할 텐데 열심히 듣고 질문하는 거 보면 기특도 하다. 주도적 한국어발화는 많이 제한적이고 주로 내 요구에 의해 한국어를 말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다. 생활속 레퍼런스가 떨어지는 게 한국어 실력 향상에 걸림돌이 된다.

성별 구분에 일찌기 관심을 가졌다. 여자, 남자 이렇게. 누가 가르친 게 아닌데 소방관처럼 그 끝이 영어로 하면 man으로 끝나는 단어일 경우 성별에 따라 자기가 단어를 변형해 woman에 해당하는 단어로 대체해 쓴다. 어느날 플레이데이트에서 애가 그렇게 단어를 쓰니 상대방 아이가 하나가 말한 게 맞는건가 싶어하며 다소 혼란스러워했는데 그 엄마 왈, 그런 거 내가 가르친 거냐 한다. 그런거 아니고 자기가 그냥 그런다고 했는데, 그 아이를 보면 남자냐 여자냐를 그렇게 따지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누가 시킨 게 아닌데 원피스, 공주, 악세사리 이런 거 엄청 좋아한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니고, 애한테 일찌기 중성적인 옷을 많이 입혀온 나인데.

운동기능이 뛰어나다. 체력 단련이 일상화된 게 우리집 발레바를 무슨 철봉처럼 메달리는데 쓴다. 매일. 팔다리, 코어가 모두 아주 단단하다. 봉을 타고 약간이나마 올라갈 정도니. 뛰어다니는 자세에 있어서도 어린 아이같은 어색함은 완전히 없어졌다.기어 올라가고 내려오고 높이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다. 자기가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아기용 그네 같은 경우는 하늘높이 밀어도 두려움이 없으니 말이다. 그건 아주 어려서부터 그네를 태운 탓인 것 같긴 하다. 옌스가 애를 이래저래 많이 훈련을 시키는 것도 있어서 발달이 빠른 것 같다. 요즘은 두발자전거와 외줄타기도 연습중이다.

기저귀는 코로나 재택근무를 계기로 떼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편할수가. 여기는 대충 세돌 근처에 자연스럽게 떼는데 서너번 실수하고 더이상은 실수하지 않고있다. 밤엔 그냥 기저귀를 채우는데 거의 마른 기저귀가 대부분이다. 마르지 않은 경우 아침에 깬 이후에 눟는 경우가 주인 것 같다

예전에 지도교수가 세돌 반 지나면 거의 다 키운 거라더니 진짜 거의 그런 것 같다. 밥도 예전보다 덜 흘리고 먹고, 원하는 건 다 의사표현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해 해결하니까.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지만 이쯤 수월해지니 내가 한 5년정도 젊었으면 힘들었던 기억 이쯤에선 다 잊고 하나 더 낳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나이에는 우리 둘 다 하나로 족하다. 조카가 남자 사촌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옌스가 꿈 깨라고 말해줬다. 하나면 족하지 아무렴.

인생의 의미

사람들은 각자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것일까? 각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일까? 인생에 있어서 어떤 시기라는 게 있는 걸까? 인생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지만 비슷한 인생의 이벤트를 겪는 단계에서 비슷한 고민을 듣게 되는 걸 보면 타인의 고민에서 혜안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되었던 펀자이씨 (instagram id @punj_toon) 께서 공유하신 어머니의 이야기 중 한 부분이 마음 속에 탁 와닿았다.  “부자라는 게 겉으로 화려하고 안정적인 것처럼 보여도 속사정은 그렇지만은 않아. 평화로울 날이 없지. 언제나 발버둥치고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오늘을 걸고 내일을 도박하지. 풍요로움 속 비신과 술수, 불안감은 친구처럼 따라다니지. 아버지는 내게 주셔야 할 것을 이미 다 주셨어. 자존감을 높여주셨고, 책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셨으니까.”

사실 부를 좆아온 인생은 전혀 아니었는데, 새로운 주거지를 천천히 물색하면서 – 꼭 이사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현재 지역 내에서 조금 더 큰 주거지로 옮겨보려는 생각 속에 기약없는 탐색 중이다. – 내가 가진 것을 부족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에게 조금 더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 조금 더 넓고, 좋고, 편안하고 안락함을 더 느끼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커지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나도 모르게 폄하하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저 말씀을 읽는 데 무릎을 탁 치게 되더라. 아차. 내가 이미 가져야 할 것을 다 가지고 있었구나. 내가 더 많은 물질적 여유를 누리려면 그에 수반해 얻을 고통이 또 있었겠구나.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 중 분명히 포기해야 할 것들이 더 있겠구나. 마음의 고통도 있었겠구나. 그리고 하나에게 줘야 할 것은 물질이 아니고 어려움이 닥칠 때 이를 마주할 용기와 극복할 힘을 주고 자기 통제 밖에서 일어나는 난관속에서 불필요하게 자책하지 않을 수 있는 자존감을 주는 것이겠구나. 그리고 답을 찾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거나 그를 탐색해갈 수 있는 삶의 태도를 알려주는 거겠구나. 그리고 나도 이를 향해 전진해나가며 하나가 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거겠구나. 

소유를 많이 할 수록, 도둑이 들까, 재난이 찾아올까, 이를 어떻게 더 가꿔가야하나 하는 여러 구속이 따르겠다 싶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소유를 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이 더 크다면 내게 그 가치는 크지 않을 거다. 우리 동네 주택가를 걸어다니며 좋은 집들을 보고 좋은 환경을 흠뻑 느끼다가 생각한게 거기서 누리고 싶은 정원에서의 활동은 공원에서 해도 되고 넓은 공간이 필요할 땐 집의 물건을 정리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게 꼭 내 지척에 있어야 하는 것도, 매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야 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싶었다. 무리하지 않고 그를 얻을 수 있는 여건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리고 사실 내가 갖고 있는 것도 분에 넘치고 좋은 것들인데 말인데, 그보다 좋은 것을 바라보느라 내가 갖고 있는 것의 부족함에 초점을 맞춘게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이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했더니 내 일생에 드라마는 없어졌다. 항상 내 인생을 여기저기로 끌어가던 모험에 대한 열망도 사그라들었고. 드라마가 없으니 남는 건 매일의 일상이다. 밥을 준비해 먹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회사일을 하고 애를 돌보고 남편과 수다를 떨고 운동하고 같이 취미활동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차를 마시고. 반복되는 삶에서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이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끼고,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럴 체력과 여력이 있음에 감사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무료해질만큼 안전함이 내게 있음에 감사하며 일상의 소소함을 지켜나가는 것, 배움을 놓지 않고 크든 작든 배움을 이어가는 게 내 인생의 의미라는 것. 그리고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지는 않더라도 소유에 대한 집착은 끊임없이 내려놓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잊지 말아야겠다. 

38개월 하나

자기는 대놓고 한국어 잘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하나. 덴마크어만 아주 잘 하고 발음도 이 또래 애 같지 않게 또박또박 잘한다. 한국어와 덴마크어 간에 격차가 엄청 크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주어진 범위 안에서 노력하는 수밖에.

요즘은 역할놀이에 꽂혔다. 역할에 따라 이름이 바뀌고 나도 그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부여가 된다. 나는 잘 기억하는데, 옌스는 너무 역할이 다양해서 자긴 기억 못하겠다고 한다. 사람과 하는 역할놀이도 있지만 인형들에게 역할을 나눠준 뒤 혼자 다인역할을 하며 놀기도 한다.

프로즌과 라이온킹을 본 후 부모의 죽음이나 자녀의 독립 등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나가 태어나기 전에 옌스와 같이 간 곳에 하나와 처음으로 같이가다가 내가 길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더니 자기는 어디에 있었냐 묻는거다. 아직 너는 세상에 없었다 하니 자기를 혼자 어디에 두고 둘만 다녀왔는가 싶었는지 자기 두고 떠나면 안된다고 서럽게 울더라. 그러고 나서 덧붙이길 자기는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네로 비행기 타고 갈거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기를 잘 보살펴 주셔서 다시 행복해 질 거라고. 여기서 빵 터졌다.

사회성이 엄청 좋다. 동네에서 덕분에 아는 사람이 늘었다. 어찌나 인사성이 좋은지. 코로나 때문에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해야하는지라 목청 높여 대화를 시도한다. 간혹 그냥 무시하고 가는 어른들도 있는데, 그럴 땐 자기랑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서운해하기도 하고.

우리 집에 반절이 옷걸이로 사용되는 발레바가 있는데 나머지 반절은 하나의 철봉으로 사용된다 나는 옷걸이가 걸린 쪽을 발레바로 쓰고. 어찌나 힘이 좋은지. 매일 엄청 자주, 또 오래 매달린다. 복근이 덕분에 장난이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표정이 엄청 풍부하다. 또렷하고. 이녀석 나중에 뭘 할런지.

떼를 쓸 때는 또 엄청나다. 음… 시부모님도 하나 보시더니 보통이 아니라며 첫째 조카랑 비슷한 것 같다 하시는데… 평소에는 참 수월한 아이지만 한번 성깔을 부릴 땐 정말 대단하다. 흠…

모두가 자기 새끼 다 이뻐하듯이 우리 눈에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사랑스러운 하나. 계속 이렇게만 자라주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셀프커트

머리를 스스로 잘랐다. 머리가 많이 길어졌고 미용실은 문을 닫았고… 마침 옌스 머리를 잘라주기 위해 가위를 샀었던 바, 옌스 머리에 손을 대기 전에 내 머리부터 잘라봐야겠다 결심을 했다.

비싸게 주고 산 가위는 아니었다. 숱가위랑 일반가위가 한 세트로 되어있는 가위였는데 두 개 합쳐 4만원 정도였으니 말이다. 딱 봐도 집에서 엄마가 쓰시던 좋은 가위랑 달라보였다. 뭐 어떠랴. 부엌 가위보다는 잘 들테니 말이다.

분명 부엌 가위보다는 잘 들었을 거다. 그래도 내 머리가 확실히 두껍다는 게 느껴졌다. 서걱서걱 소리와 함께 머리가 잘려나가는데 뭉치로 자르기엔 참 힘겨울 정도로 두꺼운 머리였다.

대충 제일 긴 머리를 기준으로 7센치 정도를 잘라낸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층이 많이 나있는 머리라 그런가, 길게 자른 머리의 양은 많이 되지 않았다. 커트의 길이는 대충 길지 않았고 숱을 좀 많이 쳤다. 다 자르고 나서 보니 딱히 미용실 가서 10만원 (비싼게 아닌 그냥 미용실 가격) 주고 자른 머리와 크게 다른 점을 모르겠더라.

앞으로 내 머리는 내가 자르리가 결심했다. 특별히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한.

아래 링크된 영상을 보고 했는데 너무 쉽게 설명이 되어 있고 따라하기에 어렵지도 않았다. 해외에서 특히 이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 상황에서 머리는 너무 무겁다 싶을 때 너무나 유용한 영상이 아닌가 싶다.

성과에 대한 인정, 앞으로의 노력

우리는 인건비 총액에서 일부를 떼어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다른 중앙부처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기업부 소속 청이나 공기업의 경우는 성과급 도입이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 청의 성과급은 일인당 받을 수 있는 사안이 100%로 정해지고 근로 기간과 성과에 따라 0%부터 100%까지 차등 지급된다. 또한 인트라에 누가 몇%의 성과비율을 적용받아 얼마를 받았는지까지 게시된다.

어제 점심을 먹고 일하려하는데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성과급 통보를 위해서 연락했더며 최고등급인 100%를 줬다고 하는거다. 잘했다기 보다는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하련다. 지금 걸린 프로젝트도 많고 해야할 일이 자꾸 늘어나니 말이다.

오늘 중요한 발표를 했는데 스카이프 발표를 하며 발표 전에 긴장을 많이 했다. 청중과 교감이 어렵다는 건 긴장되는 상태에선 부담이 덜 되기도 하지만 나도 청자의 반응을 읽을 수가 없으니 불확실성 속 긴장이 더 되는 상황도 있으니.

다른 동료의 지원사격 없이 내 보고서 발표에 대해 방어도 성공적으로 하고 질의에 매끄럽게 응답을 하고 나서 회의를 잘 끝냈는데 옆에서 옌스가 자랑스럽다고 하는 말에 얼마나 뿌듯하던지.

아마 상사도 지난 1년간 내 업무에 있어서 내 오너십과 전문성이 강해지는 것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면에 있어서도 발전이 크게 된 부분을 높이 평가해준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열심히 전문가인 척 하며 열심히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을 엄청하면, 언젠가는 전문가가 되어있겠지. 모르는 건 모른다 하고 열심히 배우다보면 전보다 많이 알고 늘어있겠지.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려워하지 말고 한걸음씩만 조금씩 조금씩…

[덴마크 vs. 한국] 공공부문 근로문화 비교 – 타부처와 협업

내부적으로 꼭 공문서의 형식으로 남겨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데에 있어서는 이메일이 사용된다. 여러부처가 협업을 해서 통합된 문서를 생산해야 하는 경우, 예를 들어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책문서를 생산할 경우 엄청 많은 메일이 오고 간다. 주무부처가 초안을 만들기는 하지만 그 문서가 오고가면서 관련부서 담당자들이 트랙체인지 기능을 통해 수정제안을 하고 코멘트를 주고 받는다. 물론 해당 코멘트를 담당자 이름으로 보내기까지 상사와 조율을 한다. 그리고 해당 사안이 아주 중요하거나 마무리 단계로 넘어갈 경우 사안에 상응하는 책임자와 조율을 한다. 이 과정이 우리보다 형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이뤄진다. 메일로 상사에게 코멘트를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권한 이양도 많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협업패턴은 여러 부처가 연관된 법안을 만들때도 마찬가지다.

부처간에 이견이 갈릴 때는 코멘트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주무부서가 총대를 매고 정리를 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적극적인 코멘트를 요청하는데, 언어적인 문제도 있고 어떤 포인트를 봐야하는지도 미숙하기도 했다. 덕분에 초반엔 너무 무른사람처럼 보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한국 공공부문에서 일을 중단한지 5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그 새 한국의 공공부문 근로문화도 바뀌었을까 싶지만, 사실 이런 수준의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형식주의 탈피에서 느껴지는 생산성 향상이 엄청 크기에 우리나라에도 이런 캐주얼한 근로문화가 도입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덴마크 주말근무/야근. 외노자의 두려움

뜨거운 감자인 정책을 위한 모델을 만드는 부서에 있다보면 덴마크라고 다를게 없구나. 금요일 늦은 밤에 메일을 보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뭐고, 주말동안 자신이 할 건 뭐고 자기 담당 파트는 월/화까지 준비되는 데 내 파트는 언제까지 될 수 있냐는 메일. 주말에 일을 해서 최대한 빨리 보내야겠다. 안그래도 이미 바쁜 다음 주인데… 겁나게 바쁘겠다. 좀 더 차분히 더 꼼꼼하게 준비하고 싶은데 또 장관님 생각은 다르신거지… 재택근무에 보육원도 닫아서 풀타임 근무하려면 아침 7시부터 6시까지 일하면서 중간에 애도 보고 밥도 해야하는데.

그래도 한국과 다른 건 진짜 응급한 상황이 아니면 야근이나 주말근무에 대한 직접적 요구는 없다는 것. 딜리버리만 맞추면 된다 이거지. 물론 중간중간 유연적 태도에 감사하다며 (미리) 떡밥이 깔리는 경우도 있다.

뭐 근로 문화에 불만은 없다. 그냥 여기에도 바쁠 때는 어쩔 수 없는 걸 아니까. 업무가 늘고 커버리지가 넒어질 수록 로드가 올라간다.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짧은 시간 일하지만 더 갈려들어가고 이 분야에는 내가 전문가가 되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주변의 뛰어난 동료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과거 논문 쓸 때는 그냥 분석만 하는 거였다면 이젠 이 내용을 매뉴얼로 만들어 남들이 다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실제 경제에 큰 영향이 가니까 두렵다. 큰 신뢰만큼 두로움도 커진다. 거기에 덴마크어로 일을 하는 것도 미묘하지만 끊임없이 두렵다. 매일 매일 직면하는 두려움이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아드레날린같기도 하다. 중앙부처에서 일한다는 건 그렁 그런 것 같다. 박봉이지만 영향력이 있는 곳에서 일함으로써 내가 한 일이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잘 헤쳐가야지…

가족과 함께하는 코로나 자가격리 및 재택근무 일상

확인할 길은 없지만, 지난 한 주 코로나로 의심되는 증상을 경험하고 거의 회복이 끝나가고 있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꼬박 집에 있었으니 벌써 만으로 열흘을 집에 콕 박혀있었다. 지금 덴마크는 거의 나라를 닫은 상태다. 공공은 필수 (치안/의료 등)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택근무로 전환되었고 민간에서도 강제로 닫은 부문도 있고 상당수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사재기는 처음 이 조치가 있었던 날 이후 48시간 정도에만 있었고 대부분은 정상화되었다. 식량안보를 정부에서 잘 조율하고 있는 상황.

전원 재택근무 결정이 난 날인 수요일 저녁부터 약간 몸이 으슬으슬한가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목요일 오후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몸살에 마른 심한 기침만 있었는데 월요일 낮부터 수요일 오후까지는 기존 증상에 추가해서 열도 나고 -다행히 38도 정도의 미열이었지만 – 무엇보다 몸이 참 부서지는 거 같이 아프더라. 손발가락 끝까지 아픈 몸살은 또 처음 경험해봤다. 목요일부터는 진통제 먹고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신종플루보다는 덜하지만 심하게 아프다보니 월요일 낮부터 수요일 낮까지 꼬박 48시간은 회사일/집안일/육아를 모두 손에서 놓았다. 덕분에 옌스가 혼줄이 났다. 그 모든 일을 다 떠맡은 옌스가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정말 고맙더라. 그 와중 옌스와 하나는 가볍게 기침하고 약간 으슬으슬해하는 정도로 끝났다. 어찌나 다행인지.

하나는 재택근무기간 얼마나 잘 지내는지 대견하기 이를데 없다. 아침 6시반-7시 사이에 일어나던 평소에는 졸렵다고 잠투정도 하고 짜증도 많이 냈다. 재택근무 기간 에는 깨우지 않고 알아서 일어나게 두었는데, 평소보다 일어나는 타이밍이 30분 정도 늦어진 대신에 투정부리지 않고 혼자 방에서 걸어나온다. 잠이 살짝 덜 깬 눈으로 휘적휘적 걸어나와 우리를 안아주며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는데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물론 양치질을 안한다고 하거나, 수가 틀려서 떼를 쓰고 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간간히 난리를 치기도 하지만, 그거야 뭐 애들이 원래 그런 거고.

우리와 함께 집안에 꼬박 같혀 지내는 이 기간동안 우리의 설명을 잘 받아들여 버텨주고 있다. 회의가 있는 타이밍에는 간간히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집안을 매일매일 폐허로 만들고 (밤에 재우기 전에 싹 치워도 다음날이면 여지없는 폐허…), 자기 혼자하는 가상의 통화놀이에는 “나 지금 회의중이라 바뻐.”, “지금 아파서 남들에게 병을 옮길 수 있어서 밖에 나갈 수 없어.” 이런 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애 식사도 챙겨줘야하고 번갈아가며 애랑도 간간히 놀아줘야 하는 시간을 메우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야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 이틀간 육아와 병행하는 재택근무의 일상에 조금 더 익숙해졌다. 자가 격리가 끝나고 나면 애랑 밖에서도 놀아줄 수 있을테니 집 안에서 혼자 놀아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상황이나마 해소가 될 수 있겠지.

일하는 중간 애랑 나는 온라인 발레클래스를 따라하기도 하고 옌스는 하나의 장난감을 섞어서 HIIT같은 트레이닝을 놀이처럼 만들어 하나와 함께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사람이 중요한 회의가 있는 경우 다른 사람이 애랑 다른 방에 가서 놀기도 하고, 이제는 중요한 회의 플래닝은 서로의 스케줄을 봐가면서 짠다. 대신 하나도 평소에 30분 이내로 보던 동영상을 1시간 정도로 늘여보게 되었다.

이렇게 하루가 가면 정말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휙 가버린다. 하나가 좀 안쓰럽긴 하지만 지금은 이게 우리가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이고 흔들리지 않고 월급을 줄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하기에 하나가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그래도 이렇게 가족끼리 부대껴가며 잘 지내고 있지만, 혼자서 해외생활하다가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적막과 외로움, 두려움 등으로 정말이지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 코로나에 걸렸다면… 생각만 해도 두렵다. 예전에 옌스 만난지 얼마 안되서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 정말 너무 아파서 반쯤 몽롱한 상태로 병원 응급실 여는 시간에 (당시 우리 동네 제일 가까운 종합병원은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았다. 지금도…) 차를 끌고 운전해가 입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전날 오후에 아프기 시작해 바로 그날 밤에 기관지염으로 넘어갈만큼 심했었는데, 그 때 혼자 산다는 게 참 힘들었던 게 기억난다. 그제 막 사귀기 시작했던 옌스가 장도 좀 봐다주고 해서 힘겹게 버틸 수 있었는데, 그나마도 없는 사람이 혼자 아프면 어떨런지 상상도 가고…

굳이 이 상황에서 긍정적인 상황을 찾자면, 모두 바깥 활동을 못하고 집에서 있어야 하다보니, 주말이 너무 바쁘지 않게 가족간의 활동으로만 즐겁게 채워질 수 있어서 좋다는 거다. 발레를 못하는 건 아쉽지만, 온라인 클래스로 바랑 약간의 플로어 연습은 할 수 있고.

또 자가격리 상태에서 배송 폭주 문제로 나흘에서 닷새에 한번 꼴로 배송이 가능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을 보다보니, 간혹 고기나 빵, 등 주문에 있어서 필요한 물량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거나 유통기간의 걱정으로 다소 부족하게 주문할 때가 생긴다. 그러면 창의적으로 요리를 해야하는데, 덕분에 오늘은 도우를 직접 반죽해서 피자도 해먹었다. 이렇게 피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든 건 거의 7년만의 일인 것 같다. 덴마크 오기 전엔 몇번 손반죽으로 해 먹었는데… 이번엔 그나마 다행인 게 반죽기가 있기 때문이다. 물자의 부족 속에서 이렇게 알뜰살뜰 해먹고 사는 재미도 있으니 이게 또 장점이라면 장점일런지?

다들 힘들겠지만, 서로를 위해 조금씩 더 조심하며 생활해 이 위기를 빨리 극복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