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3회는 해야…

월, 화, 목, 토 저녁은 내 활동의 시간이고, 수, 금, 일은 옌스 활동의 시간이다. 각자의 취미 활동 또는 친구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인데, 딱히 친구를 자주 만나지 않는 관계로 우리 모두 취미활동에 이 시간을 할애하곤 한다. 나는 주 4회, 옌스는 주 3회라니까 조금 불공평한 것 같지만, 집안대소사, 일상과 관련해 나의 멘탈로드와 육체적 로드가 모두 더 큰 관계로 옌스의 불만 없이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발레 2회, 클라이밍 2회 하던 것을 발레 1회, 클라이밍 3회로 바꿨다. 요즘은 발레보다 클라이밍에 좀 더 많은 재미가 느껴지기도 하고, 클라이밍 실력향상에 다소 정체기가 온 것 같아 이를 극복해보고자 바꿨는데, 역시나 실력에 변화가 조금씩 느껴진다. 그간 발레와 클라이밍 모두로 느껴온 것은, 주 1회하면 크게 늘지 않고 현상유지가 되고, 주 2회하면 실력이 천천히 늘고, 주 3회하면 실력이 는다는 것이다.

클라이밍은 자기의 체중이라는 무게가 정해져 있는 것이나 가볍게 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운동이다. 따라서 상체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 그나마 발레를 통해 미약하게 존재해온 등과 코어 빼고는 상체근육이 없던 나에게 적응 시간이 꽤 오래 걸린 운동이다. 처음부터 강도를 세게 가져갈 수 없었던 이유도 조금만 자주하면 손목이나 팔꿈치 등이 아파오곤 했기 때문인데, 이제 어떤 자세로 운동을 할 때 아픈지도 알게 되었고, 체력도 꽤나 다져졌기 때문에 주3회까지는 몸이 견딜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계속 하려면 꾸준한 훈련을 통해 부상 없이, 강인함을 유지해야지. 생각만 해도 너무 좋고 두근거리네. 이번 겨울은 정말이지 언제 지나갔다 싶게 거의 지나가버렸다. 클라이밍 덕분에.

Kamp mod frygt

Når man klatrer op ad en høj klatrevæg, mens man skal sikre sig undervejs ved at klippe sit reb ind i karabinhager, kommer man en gang i mellem til at tænke på det værst mulige scenarie om fald. Hvad nu hvis jeg bliver flippet rundt og rammer hovedet eller kroppen i væggen eller grebet? Hvad hvis faldet er så voldsomt og hårdt med en pendulbevægelse, at jeg får min ankel eller fod forstuvet?

Præstation ved leadklatring bliver utrolig meget påvirket af mentalitet, hvordan man håndterer frygten, som løbende trænger igennem huden. Frygten opstår typisk lige der, hvor jeg står over for det sidste klip, eller jeg skal lige klippe. Mine håndoverflader bliver våde. De sveder. Åh, nej. Nej. Nej……

Efter de kommentarer, jeg har fået fra mange andre gode klatrere, har jeg prøvet at trække vejret dybere og sige til mig selv, “Det er okay. Min makker har mig. Jeg har øvet mig med at falde. Jeg har det! Jeg kan klare det!”

Der er ikke sket noget særligt hårdt på nær små skader i ankelen i starten af min leadklatreerfaring. Den gang var min makker markant tungere end mig, og han tog mig vist nok hårdt en del gange. Men jeg klatrer nu med andre makkere, som enten er gode til sikring eller ligger i samme vægtklasse, hvilket har løst problemet. Så reelt set behøver jeg ikke at være så bange og skal bare kaste mig ud i klatring, som mine trænere gentagne gange sagde, “I skal klatre til, I falder!”

Bangebuks er jeg stadig. Av, av, av. Efterhånden er jeg alligevel blevet bedre til at håndtere frygten. Det er blot en konstant kamp mod frygten. Frygten er der nok for at beskytte mig. Men den skal ikke tage over. Jeg har det. Det skal jeg bare huske på væggen.

그리움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 발레에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보름달과 때마침 스피커에서 흐르는 다소 드라마틱한 음악이 뒤섞이며 갑자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보고싶었다. 그냥 보고싶은게 아니라 같이 앉아서 시덥지 않은 이야기도 나누고, 엄마가 시키시는 부엌일을 귀찮지만 몸을 일으켜 하는 순간, 아빠도 도우시라며 핀잔도 드리고, 티비에서 재미도 없는 명절특집 프로그램에 깔깔거리는 게스트들의 잡담이 배경음악처럼 깔리고 하는 그런 정말 명절일상. 그런게 그리웠다. 약간의 눈물이 눈동자를 가리려고 하는 것을 애써 다시 욱여넣고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나 정말 잘지내는데.

그리움이 커지면 슬플까봐, 슬프면 잘 지내지 못할까봐, 그리움의 감정이 생길라치면 억누르고 있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마음의 욕심이라는게 갈증을 하나 채워주면 더이상 같은 걸로 갈증이 채워지지 않고 더 뭔가 큰 것을 얻어야 갈증이 채워지는 것처럼 보고 싶은 것을 보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고, 또 보고 싶고, 만져보고싶고, 더 경험하고 싶어진다. 정말 충분히 봐서 일정 수준이상 만족도가 채워질때까지는 계속 더 원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것을 피하려고 음식도, 사람도, 자연도. 지금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도 부족한데, 또 더 원해? 욕심 아니야? 이런 생각에 스스로를 애써 억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립지만 너무 그리워하지 않고, 적당히 그리울 때 그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균형. 그런 걸 내가 이미 갖고 있다면 한없이 좋으련만, 나는 적당히가 잘 없는 사람이다. 한껏 좋아할 때 흠뻑 빠졌다가 또 멀어졌다가. 어쩌면 그래서 내가 덴마크에 잘 적응했는지도 모르겠다. 덴마크가 좋을 때 언어고 뭐고 한없이 몰아붙여서 그 덕에 내것으로 온전히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하지만 그래서 그리움에 흠뻑 빠진다면 물을 한껏 머금은 스펀지처럼 아주 무겁게 가라앉을 것 같은 두려움이 크다.

너무 깊게 빠지지 말고 아주 잠깐 그리워하자. 덴마크와 한국, 덴마크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한국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모두를 한꺼번에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지금의 그리움을 잘 받아들이고 소화해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할 수 있도록 하자.

흘러가는 조류에 맡기는 일상

흘러가는대로 살고 있다. 일상과 습관이 나를 끌어가는 느낌이다. 이유중 하나는 그 일상과 습관이 하루 일과의 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생활에 더해 뜨개질과 발레, 클라이밍과 같은 취미생활과 아이의 학교와 과외활동에 맞춰 바래다 주고 데려오는 것, 작은 냉장고로 인한 잦은 장보기, 아이 도시락싸기, 저녁 식사 준비 등을 다 하고 나면 시간이 별로 남질 않는다. 뭔가 하나를 늘리면 다른 하나를 줄여야만 하는 상황.

그럼에도 연중행사처럼 돌아오는 일들은 빼먹지 않고 해줘야만 한다. 봄이 오면 겨우내 테라스에 낀 녹조도 제거해 줘야 하고, 겨우내 얼어죽은 화분은 정리해서 새로이 뭔가를 심어줘야 한다. 마당 돌 사이사이에 낀 이끼와 거기서 피어난 잡초도 제거해 줘야 하고, 창문도 다 닦아줘야 한다. 이런 건 일상을 깨는 일이라 머리를 피곤하게 한다. 오토파일럿 모드로 돌릴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매년 하고, 그래서 스킬이 늘어나도, 일년 지나면 또 까먹는 부분이 생겨서 시작을 하기까지 마음먹는게 쉽지 않다. 막상 하고나면 다 하게 되는 일인데.

이런 시간이 돌아온다는 것은 한해가 또 지나갔다는 뜻이다. 올해 여름이면 만으로 마흔네살이 된다. 요즘 주름도 늘고 피부도 쳐지고 피부도 좀 칙칙해지는 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내가 나이드는 만큼 내 주변의 어른들도 나이가 들어가심을 느끼게 되고, 아이야말로 부쩍 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싶은데, 뭘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 일을 하고, 신문을 읽고, 관련 자료를 읽으며 지식은 머리에 욱여넣고 있지만 방향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이 나를 끌어가는 대로 부유하고 있다. 그 방향이 딱히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아 그 방향이 이끄는 대로 가고 있다. 어쩌면 내가 설정한 방향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설정한 방향이 있었다면 여러가지 우연한 요소로 인해 뒤틀리는 계획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가는 길은 같았을지라도.

지금은 그냥 흘러가는 조류에 몸을 맡기련다. 조류에 쓸려가는 시기가 항상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낯선이들 속에서 오롯이 나로 자유로이 서기

처음이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네트워킹을 하고 코스를 듣고 내 의견을 말하고 질문을 하고 내 소개를 하고 하는 과정 속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한 것 말이다. 나에게 향했던 내 내부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타인의 발언을 들을 때 그에 100% 집중해 경청하니 상대방이 더 잘보이기 시작했다. 내 결점에 집중하고 그걸 타인이 어떻게 볼까 걱정하느라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모습이.

언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내 머리속에 자리한 번잡한 생각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한 것이었다. 테크니컬한 내용의 강의와 토의를 따라가고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내 덴마크어가 부족할까봐 미리 변호하거나 하는 일이 필요없었다. 조금씩 실수하거나 그러면 또 어떠한가. 우리말하면서도 실수 할 수 있는 건데. 저녁 식사하다가 문화간 차이 이야기가 나와서 덴마크 이주시 경험을 이야기하니 언제 왔냐고, 이민온 지 몰랐다고 하는 거보면 작은 실수는 그냥 나만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던 거였던 거 같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틀려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는 거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다른 동료가 있고, 나는 그 자리를 메울 다른 것을 갖고 있으며, 나는 계속 배워가고 계속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저런 사람인데… 이런 생각으로 걱정하거나 나를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고 그래서 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나다. 이 말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새롭게 와닿은 순간 이게 정말 나를 자유롭게 하는 말임을 알았다.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수가 없고 나는 그냥 내 생각과 행위, 선호, 가치관 등으로 구성된 사람이고 이는 내가 내리는 일련의 결정과 행위로 끊임없이 변하는 동태적인 유기체이기에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나는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가치관과 선호, 정보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거다. 정보가 추가되거나 가치관이나 선호가 바뀌면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고. 타인이 나를 좋아하건 안하건 나는 나이고 타인의 평가는 나의 어느 일면만을 갖고 평가하는 것이기에 필요한 오해가 있으면 풀고, 그게 아니면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 하고 넘어가는 거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오늘은 스스로에게 정말 칭찬해줄 날이다. 내가 낯선이들 사이에서 나로서 자유롭게 오롯이 선 날이기 때문이다. 잘 했어!

실내암벽타기

코로나와 관련된 모든 제한조치가 해제된 이른 봄부터 다시 벽을 타기 시작했으니 대충 반년 쯤 벽을 탄 것 같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번, 많으면 서너번도 탔다. 잡생각 따위는 자리잡을 새 없이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이 내 성향에 정말 잘 맞는다. 손의 피부가 거칠어지고 손가락 마디마디와 발가락, 손 발 여기저기에 생기는 굳은 살은 안타깝지만, 사실 크게 상관은 없다. 안느는 거 같은데 천천히 늘고, 어제까지 반밖에 못올라가던 루트를 그보다 몇미터 더 올라가고, 완등하고, 중간에 실패없이 완등을 할 수 있게 되고, 기존에는 생각도 못했던 루트를 올라가게 되고, 기존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오를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강해지게 된다.

클라이밍 자체도 좋지만, 소셜라이징 측면에서도 클라이밍 경험은 긍정적이다. 낯선 사람과 만나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을 크게 즐겨하지 않지만, 벽을 타는 공간에서는 사람들과 대화를 조금 더 쉽게 나눌 수 있다. 어제만 해도 나의 클라이밍 파트너가 일찍 암장을 떠나야 하는 관계로 홀로 남게 되었는데, 딱 봐도 나처럼 혼자서 벽을 타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말을 걸었다. 암장을 새로이 바꾼 체코 대학원생이었는데, 수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벽을 타고 내려와서 바톤 터치를 하고 장비를 교대하는 타이밍이면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아도 장비를 교대할때마다 대화를 하면 그 또한 제법 시간이 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뭘 공부하는지, 언제부터 등반을 했는지부터 가벼운 사생활까지도. 때로는 잘 모르는 사이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에서는 털어놓기 어려운 일도 가벼운 주제처럼 털어놓을 수 있기도 하고, 생사를 서로의 손에 맡기고 서로의 등반을 응원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유대감과 친밀감이 빠르게 생기게 된다.

엄지발가락 부상으로 암벽타기와 발레 모두를 잠시 중단했다가 암벽등반에 먼저 복귀한지 두주째인데, 발도 천천히 좋아지고 해서 언제 발레에 복귀를 해야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발레를 줄이고 나니 내가 너무 바쁘게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발레를 일주일에 한번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발레를 한동안 확 쉴까 하는 마음도 드는데, 옌스는 취미를 몇개는 가져 두는 것이 지금과 같이 뭔 일이 있어서 하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해서 – 그 말이 맞기도 하고 – 고민이다. 우선 발레는 를르베 상태로 오래 균형을 잡고 서있으면서도 발가락에 통증이 없을 때까지는 쉬기로…

높아진 물가, 달라진 식생활

물가가 많이 올랐다. 전기료가 오르니 남들 유류대만큼은 아니더라도 통근과 관련된 비용도 오르고, 특히 식생활과 관련되서는 물가가 오르는 것을 크게 느낀다. 많이 오른 품목은 20-30%씩 오르기도 했으니 같은 메뉴를 유지한다면 장바구니 지출이 엄청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나 에너지 비용이 오를 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살던대로 살 수는 없는 법. 생활비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비를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맛있지만 다소 고가 카테고리에 속하는 브랜드를 많이 판매하는 동네 수퍼에서 장을 보다가 적당한 퀄리티와 좀 더 표준적인 카테고리에 속하는 브랜드를 많이 판매하는 다른 동네 수퍼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크게 가격을 신경쓰지 않고 매달 정해진 예산에만 맞춰 장을 보다가 단가에 조금 더 신경을 기울여가며 장을 보다 보니 가격 차이가 10% 가까이 차이나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래도 덴마크 통화가 원화 대비 약 180-190배의 가치를 지니다보니 표시되는 단가 차이가 1~2 크로나 밖에 차이가 안난다해도 개당 단가 자체가 10크로나다라 하면 큰 차이가 나게 되는데, 아무래도 1~2 크로나 차이는 기억에 크게 남지 않는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존에는 맛있는 브랜드, 고품질 제품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장을 봤다면, 이제는 그보다 하위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장을 본다. 대충 비슷한 제품을 산다고 해도 크게 지출을 낮출 수 있으니 물가가 올라도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하는 품목도 있으니 모든 품목에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할 수 있으면 그리한다.

예전에는 육류 소비 비중이 높았는데, 하나가 고기류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육류를 아주 가끔 구입하고, 구입하더라도 가공육 중심으로 소량만 구입해서 메뉴 자체를 채식 중심으로 돌리기 시작하니 지출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게 채식의 비중을 크게 늘리게 되었는데, 기후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이라서 괜찮다. 나의 창의력을 조금 더 올려야 한다는 부분은 있지만, 그렇게 식생활도 바꿀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진짜 이 전쟁은 어디로 흘러갈 것이며, 앞으로의 추운 겨울은 어떨 것인가? 공공건물은 모두 실내기온 상한을 19도로 설정했고, 옌스네 회사도 “연대의식”에 따라 공공건물은 아니지만 19도 상한을 따라간다고 한다. (실제 비용 측면에서라도 그리 하고 싶을텐데 공공이 한다니까 얼씨구나 따라한 것일 거라 생각한다.) 공공건물은 이에 더불어 벌써 온수를 잠궜다. 벌써 물이 차던데… 한겨울 찬 물로 손 씻으면 참 손이 시려울 것 같다. 커피랑 차를 많이 마시겠네. 한국에서 한 때 14도의 추운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큰 도움은 되겠지만, 사람이 고통은 금방 잊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이야 19도라 해도 나중에 18도로 내려갈 수도 있는거고. 집도 마찬가지고.. 빨리 전쟁은 끝나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성도 빨리 없애고 재생에너지로 얼른 전환을 했으면 좋겠다. 비행기도 비싸지니 여행은 최소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