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블로그: 덴마크어 공부

각자 일터에서 자기계발의 목표가 있듯이 나의 자기계발 목표에는 덴마크어 실력 향상이 있다. 이 목표라는게 누가 정해주는 건 아니고, 내가 제안하고 상사가 받아들이면 그게 목표가 되는 건데 내 자기계발 목표 몇가지중 하나가 서면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이다. 여기서 서면 커뮤니케이션이라 함은 좋은 보고서 작성 능력을 이야기하는 거다.

덴마크어를 공부한다함은 문법상 틀림이 없는 덴마크어를 쓰겠다는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내용을 타인에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문법상 틀림이 없게 쓰는 건 지금도 가능하지만, 틀릴 확률을 제거하기 위해 어렵지 않은 문장, 확실히 아는 단어로만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건 지루한 일이다. 나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이제는 덴마크어로도 글을 유려하게 잘 쓰고 싶다. 일터에서 그냥 읽고 쓰고, 모르는 단어 사전 한번 찾아보고 스쳐지나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거 같아서 새로운 전용 블로그를 열었다. 나를 위해 연 블로그이지만 나와 같은 여정을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또 그에게도 영감과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덴마크를 배워라! 라는 의미를 담아 Lær dansk!로 도메인을 잡고, 블로그명은 ‘나는 덴마크어를 배웁니다.’라는 뜻의 Jeg lærer dansk로 정했다. 관심있을 사람을 위하여 도메인을 공유하자면: https://laerdansk.com/

나에게 맞는 직장 찾기 / 동태적 최적화

나에게 맞는 직장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 같다. 이는 한번 찾았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나와 직장, 같이 일하는 사람들 모두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동태적최적화 문제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 22세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기에 내 인생의 절반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낸 것과 마찬가지이니 직장생활은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리고 깨어있는 시간의 가장 큰 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니 진정 중요한 요소이다.

나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기까지 여러번의 실패하는 관계를 토대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겪는다면, 직장도 나에게 맞는 직장을 찾기까지 여러번의 실패를 겪어야 하는 것 같다. 실패가 쓰린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서 다음에 더 좋은, 알맞는 선택을 한다면, 그래서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가볼가치가 충분한 길이다. 간혹 어떤 부분에서는 맞는 배우자나 직장을 찾고서야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알게 되기도 하니 운도 많이 따라야 한다. 또 처음에는 안맞았다가 맞게 될 수도 있고, 맞았다가 안맞을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이 직장을 잡았을 때만 해도 전 직장에서 겪었던 내적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고, 불안한 마음이 내 속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잘 하고 싶었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며, 빨리 아는 게 많아져 문제를 척척 해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의 성격이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었다. 호흡이 긴 프로젝트들에 새로운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분석해 발간, 발표를 해야했다. 끊임없이 배워야 했는데, 복잡한 것들이 서로 얽혀있어 그 안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허우적대다보니 작은 분야지만 이해도도 조금씩 늘어나고 더이상 빠져죽을 것 같은 느낌은 없어졌다. 누가 나에게 내 프로젝트를 물어보면 답을 하고 나눠줄 수 있게 되었고, 작게나마 도움도 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워낙 방대한 분야이기에 배울건 태산이지만, 물어볼 수 있는 동료들이 더이상 부담스러운 대상이 아니고 지식을 공유받을 수 있고 스파링도 할 수 있는 진정한 동료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처음으로 내가 하는 일을 진정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고, 회의를 느끼지 않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손에 쥐게 되었다. 내 직장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으며, 내 동료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도 부끄럽지 않게 되도록 성장하고 있으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커리어의 방향을 맞춰가며 발전시켜가고 있으며, 일할 수록 도태된다거나 하면 어쩔까 하는 쓸데없는 불안함을 내려놓게 되었다.

이전에 언급했듯 내가 내 직장과 잘 맞느냐는 것은 동태적최적화 문제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라 이 마음은 내가 변하든 환경이 변하든 하는 과정에서 그 방향이 어긋나면서 바뀔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지금의 상황을 누리련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임윤찬의 피아노독주를 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페이스북 한인 그룹에 올라온 누군가의 포스트를 보고 친구에게 가보지않겠냐고 물어본 데서 시작했다. 임윤찬이 그렇게 어린 피아니스트인지도, 그가 그렇게 유명한지도 몰랐다. 그냥 조성진에 이어 여러번 미디어에서 스치듯이 본 이름으로 그냥 그가 피아니스트라는 걸 알고 있던 정도였다. 그랬던 그의 연주를 보러갔던 날 티볼리 곳곳에 흩어져 여기저기 보이는 한국인들을 보고 좀 대단한 사람인가보다 하고 감만 잡을 수 있었다. 친구를 보고 이야기를 듣고나서야 그 이름의 유명세가 어느정도인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티볼리 콘서트홀에 덴마크 대네브로와 함께 힘차게 휘날리던 태극기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덴마크에는 타국의 국기계양과 관련되어 규제가 타이트한 편이라 이렇게 태극기가 휘날리는 걸 보는게 대사관, 대사관저 인근이 아니고서야 힘든데 한개도 아니고 건물 지붕의 정면 모서리를 따라 대네브로와 하나씩 번갈아가며 여러개가 주욱 늘어서 펄럭이는 건 근사한 경험이었다.

임윤찬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 내가 평가하는 건 의미없겠지만, 그 강렬한 연주 바로 뒤에 찾아오는 다음 곡의 여리여리한 피아니시모를 마치 정적속에서 시작한 것마냥 연주하는 그 컨트롤에 놀랐고, 화려하고 빠르게 어우러진 화성 속에 또렷한 울림이 가득한 멜로디가 레이어 바이 레이어 켜켜이 얹어 딜리버리할 수 있는 게 놀라웠다. 콘서트 전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 음반을 몇번 듣고 갔는데 콘서트 홀에서 듣는 라이브가 주는 소리의 질적인 차이를 제외하더라도 마음을 깊은 곳부터 동하게 하는 연주더라.

도대체 어떤 재능에 어떤 연습과 지도를 통해야 저런 음악이 가능할까 싶었다. 엄청난 연습이 따랐겠지만, 독보적이고 특출난 재능이 함께 하기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겠지. 거기에다가 아마도 음악이 전부인 그런 일상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그도 연습이 싫었던 순간은 있었을까? 인간이니까 있었겠지? 아니면 그나마도 없었을까?

그의 연주를 듣고 나서 오랫동안 먼지만 쌓이게 두었던 피아노를 다시 한번 열어보고 연습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건반속에 녹던 그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데 과거에 내가 칠 수 있던 것 대비 실력이 늘지 않는 것에 바쁠 것이 전혀 없는대도 인내심이 사그러들고 손에서 놓게 되더라. 인생에서 쌓아올리는 많은 것은 꾸준함이 기반임을 발레를 통해 배웠기에 앞으로 얼마나 가게 될 진 모르겠지만 한 손가락부터 한번 시작해봐야겠다.

과정을 즐기기

나는 일을 해치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정해진 루트가 있고, 그걸 밟아가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걸 빨리 해낼 수 있으면 가장 좋다. 어쩌면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고. 살다보면 협업을 해야해서 타인을 기다려야 하는 순간도 있고, 여러가지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경우, 한 작업을 중간에 멈춰두고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 하는 동안 그 멈춰진 작업이 남겨둔 흔적이 끊임없이 머리속 뒤에서 괴롭힌다. 저것도 빨리 끝내야 한다고. 뭔가를 끝내는 데 초점을 맞추면 과정을 즐기기 어렵다. 여기서 즐긴다는 것은 정말 즐긴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에 걸리는 시간과 그게 언제 끝나나를 염두에 두지 않고 그냥 그 순간의 작업에 집중하는 자체가 꽤나 어렵다.

내가 하는 일들이 대부분 긴 호흡의 프로젝트들이라 짧으면 몇달에서 길게는 일년을 넘어서는 일들이 많은데, 그런 긴 호흡이 주는 유연성의 장점을 좋아하면서도 그게 힘들게 다가올 때가 있다. 바로 언제 이걸 끝내나 하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찾아오면 그 과정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다보면 더 초조해지기도 하고. 그런 때면 의식적으로 초조한 마음을 조절해야 한다.

늦봄부터 집을 유지보수하는 여러가지 일들을 해오고 있다. 집 외관의 매지 부분을 미장하는 것부터 테라스 기름칠하기, 집 외부 벽과 담장 등 나무로 된 모든 곳을 페인트질 하는 것 등. 집안 구석구석 실리콘을 교체하는 작업도 남아있고, 자잘하게 손 볼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집안일의 특성상 이걸 해치운다고 끝나는게 아니고, 그 기간 중 살면서 쓰면서 새로이 유지보수할 것들이 조금씩 나온다. 이걸 한번에 다 해치워야 한다면 비용을 지불하고 외부의 도움을 빌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지만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회와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는 것일 수 있다. 물론 돈도 들고. 또 한번에 해치운다 해도 언젠가 또 유지보수를 해야하고. 굳이 한번에 해치워야 하는 게 아니라면 천천히 시간을 들여가며 할 수 있다. 여기엔 많은 계획이 필요하고, 이를 시행함에 있어서 착오를 겪을 수도 있고, 과정이 진행되는 도중 정돈되지 않은 혼돈을 옆에 두고 살아야 할 수 있다. 혼돈 속에 사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게 주는 스트레스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나 법적으로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우리가 다 하기로 했다. 큰 유지보수를 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평소에 어떤 곳을 어떻게 유지보수해야하는 지 배울 수 있게 되니까 한번 고생하고 나서 그 다음엔 소소히 손을 보는 식으로 잘 관리할 수 있게 되기도 해서고, 워낙 외부 손을 쓰는 게 비싸기도 해서이다. 덴마크인이 핸디맨이 되는 과정을 이해한다고나 할까? 이렇게 부모가 관리의 노하우를 배우면 아이들도 가르쳐가며 세대를 따라 전수할 수 있게 되니까.

유지보수 프로젝트들을 통해 여러 건자재, 화학제품에 대해서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게 큰 힘을 주는 것 같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 하는 불확실성 자체가 주는 마음의 부담을 많이 덜어주기 때문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라는 표현은 여기에 쓰기엔 너무 과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뭔가를 안다는 건 어느정도 자유를 주는 게 진정 옳다. 외부의 손을 빌어 대대적 프로젝트를 한다면 기간 중 집이 난장판이 될텐데, 우리가 하면 그 정도를 적당히 통제해가며 진행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혼잡함이 생긴다. 이를 보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데, 최근의 프로젝트를 통해 이 혼잡함과 혼돈을 감내해가며 그 긴 과정을 받아들이고 서둘러 해치워가려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특별한 배움이 있다기 보다는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그걸 거스르려다보면 문제가 생기거나 피로도가 과도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중간에 과정을 갈무리하고 휴식을 취하고, 또 다른 날에 갈무리한 지점부터 일을 시작하는 것, 그를 위한 정리와 준비과정 모두 시간 낭비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하나 해내 가는 것이 마음에 안정을 준다.

이게 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괜한 마음의 불안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완벽하게 해내려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믿음을 갖고 불안을 떨쳐내는 것이 중요함도 배운다.

과거였으면 싫었을 소위 내 몸을 써서 해야하는 힘든 일들을 직접 하면서 인생의 많은 지혜를 배운다. 이 지혜들은 이런 물리적인 작업 뿐 아니라 회사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에도 적용되는 것이라 놀라울 뿐이다. 어떤 종류이든 일을 하면 배우는 게 생기고 인생을 해쳐나갈 힘을 얻는다. 그래서 오히려 힘이 나고 행복하다.

집 관리하기: 무지의 두려움과 싸우기

늦은 봄부터 초여름인 지금까지 가뭄이 지속되고 있다. 가뭄의 무서움을 알지만서도 특히나 춥고 비가 많이 오던 봄을 지나고 맞은 햇살 좋은 기간이라 개인적으로는 좋기도 하다.

해가 쨍쨍하게 좋은 기간이 오기 전에 할 일이 있다. 바로 테라스에 기름칠하기. 해가 쨍쨍하기 전에 해야하고, 비가 오지 않는 기간에 해야하기에 대충 부활절 기간이 기름칠하기가 제일 좋은 때인데, 이때 한국에 다녀온지라 돌아와서 해야했다. 최적의 날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하긴 했다. 이제 벌써 세번째 하는 거라서 일이 얼마나 걸리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손에 익었다. 오랫동안 관리안한 테라스를 관리하는 건 힘들지만, 관리가 잘 된 테라스를 관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이번의 작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파트에서 한번, 새로 이사와서 한번 기름칠 할 때 고생을 많이 했는데, 작년에 힘들게 하고 나니까 올해는 훨씬 빠르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특히나 지어진지 오래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살면서 여기저기 손질할 곳이 생긴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지붕도 갈아야겠지만, 이처럼 크고 보험을 들기위해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을 고용해서 해야하는 것은 빼고 나머지는 직접 할만한 일들이 많다. 한국같으면 무조건 남에게 맡겼을 일이겠지만, 인건비가 특히나 비싼 이곳에서는 할 수 있는 건 자기가 하는 경우가 많다. 덴마크와서 처음 해본 것 중 하나는 미장일이다. 정원에 두줄짜리 낮은 블록이 우리집 테라스와 공유지 사이 공간을 나누고 이 공유지가 장미과 나무로 된 담장으로 시작된다. 뿌리들의 부피가 커져서 블록을 테라스쪽으로 밀면서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이 블록들 사이를 채우던 모르타르가 이 힘을 못견뎌 블록들이 더이상 같이 붙어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게 되었다. 아이가 밟고 돌이 굴러 넘어질 수도 있고 해서 이를 고쳐야했는데, 그게 내 첫 미장 작업이었다.

미리 배합된 모르타르를 사서 작업 했는데, 빠르게 마르는 모르타르를 산 것이 흠이었다. 나의 낮은 작업속도를 생각하면 그렇게 빨리 마르는 것을 사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을 얼마나 배합하면 되는지 써있긴 했는데, 이게 대략 얼마다 이렇게 나와있고, 작업하는 표면이 너무 젖어도, 말라도 안된다는데, 그게 얼마인지도 잘 모르겠고. 결국 시행착오끝에 잘 하긴 했는데, 대충 어떻게 해야한다는 느낌을 알듯말듯한 정도의 경험을 쌓았다. 그 다음 작업은 우리 카포트 기둥을 바치는 밑돌이 금이가 있었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아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얼른 작업을 했는데, 금속과 블록을 결합하는 수리에 필요한 것을 모르타르를 사다가 작업했다. 거푸집을 만들고 했어야 하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결국 거푸집 없이 원하는 결과를 내긴 했지만 이상적이지는 않은 작업과정이었다.

이번에는 나무로 된 외벽과 벽돌벽 사이의 매지를 교체하는 작업. 오래된 매지를 제거하는 것도, 이를 채우는 작업 모두 큰 작업이었다. 채우는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절반정도 끝나서 이 일에 필요한 경험치를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종류가 다른 자재 사이에서 이를 묶어주는 재료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매지가 다른 것보다 빨리 수선을 요하게 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 일은 제거하는 작업도 그렇고, 채우는 작업까지 모두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 받는 작업이었다. 물론 일도 힘들지만 머릿속으로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실패 가능성을 생각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수직으로 매지를 채우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처음엔 중간에 포기하고 전문가를 불러야하나 생각을 하기도 했는게, 잘 붙지도 않고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모르타르에 수분 함량이 조금 너무 많았고, 작업을 아래부터 해 올라가야 했는데, 위에서부터 해서 내려오려고 했던 점이 초기 난관의 원인이었다. 옌스에게 아무래도 전문가를 불러야할 것 같고, 벽돌 사이 몇군데 매지를 수선해야 하는데, 그것이나 하겠다고 말했다. 이 작은 수리작업을 통해 세로 매지 작업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었고, 포기하기 전에 한번 다시 해보자 하고 한 게 성공이었다. 작업을 통해 깨끗이 작업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리 시작했고, 모르타르가 그렇게 위험한 자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혹여나 어디 튀고 떨어지면 물로 닦아낼 수도 있고 또 염산을 이용해서 닦아낼 수도 있다. 애초에 어디에 튀지 않게 하고 깨끗하게 작업을 할 수는 없고, 정리해가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뭔가에 대해 잘 모를때면, 이 무지가 초래할 결과도 잘 모르니, 그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 대상 자체가 무서워지곤 한다. 모르타르가 무서운 건 그래서였다. 흙도 잘 모를 땐 무서워했는데,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흙에 대해 덜 무서워하게 된 것처럼 모르타르도 비슷하게 되었다.

우선 자세히 연구를 하자.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시작하자. 잘 안되면 어때. 다시 하지뭐. 안되면 그땐 전문가를 부르자. 무서움은 무지에서 시작된다. 알면 덜 무서워진다.

집은 내가 가꿀 수록 구석구석 더 좋아지는 모양이다. 매지를 바꿨더니 바꾼 매지마저 좋아하게 되니 말이다. 사실 작업이 꽤나 힘들었는데, 내가 아주 나이들어 이런 걸 못하게 되는 때가 아니라면 이렇게 조금씩 배워가는 스킬로 집을 가꿔가면서 더 손떼 묻은 사랑이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새로운 환경을 익숙한 환경으로 바꾸는 기간

코트라 입사동기가 덴마크로 발령이 났단다. 내가 같은 입장으로 덴마크에 온 지 딱 십년이 되는 타이밍에. 참 지난 십년동안 많은 일이 있었구나.

여기 학제로 0학년을 시작해야 하는 둘째 아이와 초등학교를 가야 하는 첫째 아이 둘의 학부형이 되서 오는 거라 내가 경험했던 것과 다른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할 것이다. 다뤄야 하는 일의 가짓수가 훨씬 많아지는 것이고, 언어 부분에서 엄마보다 힘든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도 보듬어야 하니 그 힘듦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현지 학교에 아이를 보내야 하는 게 후진국에서 일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보다 힘이 들 것 같다.

덴마크가 살기 참 좋은 나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살기 좋다는 것이 살기 편하다는 말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을 익숙하게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거지? 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고는 이미 머리가 굳은 어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여러 난제가 따른다. 뇌의 가소성이 뛰어난 애들은 질문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를 어른들은 이해가 되고 이를 내재화할 수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내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어디서나 발견될 보편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는 기간이기에 예상치 못했던 일과 비용이 발생될 수 있고, 그러면 화도 나고 보다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냥 다른 것이고 배우고 적응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면 받아들이게 된다. 과거의 편리함을 버려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할 수도 있다. 이방인이기에 새로운 터전의 이점이 나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게 이점임을 깨닫는 순간 떠나야 하는 시간이 올 수도 있다. 빨리 적응하려고 아등바등해봐야 걸리는 시간은 크게 차이나지 않을 수 있기에 그냥 스트레스 받지 말고 천천히 열린 마음으로 관찰을 하고 참여하다보면 서서히 가랑비에 젖어들듯이 적응하게 되는 거 같다.

그렇게 적응을 하고 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너무 많이 변해있어서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는 바와 너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놀래게도 된다. 다른 점이 어느새 매력으로 다가오면서 내 관점의 지평이 열린다. 때로는 새로운 것이 좋아서, 아니면 그 새로운 것에 통합되고 싶은 갈망에 과거의 것과 관점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헤겔의 정반합이 뭔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지는 사람마다 너무 다르겠지만, 그 또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파도처럼. 처음에는 아주 큰 파도가. 그 다음엔 그보다는 작은 큰 파도가. 그렇게 파도가 잔잔히 잦아들긴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십년이 된 지금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아직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부분에서 새로움을 접하고 경험하고, 느끼고, 배우게 된다. 더이상 급진적인 새로움은 없어도 끊임없이 작은 새로움을 경험하게 될 거 같다. 익숙함이라는 큰 틀 속에서. 그런 새로움이 이국 땅에서의 생활을 힘들지만 즐겁게도 하는 마쌀라 같은 거 아닐까?

홍차생활

홍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거의 물 대신 습관적으로 마시는 블랙커피는 몸을 크게 따뜻하게 해주지도 않고, 회사에서 마시는 블랙커피는 집에서 마시는 것처럼 맛있지 않아서 다 마시지도 못하고 차갑게 식어 낭비가 심하기도 하며, 그 씁쓸한 맛이 단 것을 궁금하게 해 결론적으로 살을 찌게 만들기 때문이다.

살이 올라서 다이어트 겸 먹는 양을 줄이기라도 할라치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몸이 금방 차가워지고 꼭 아플 것만 같은 게 그렇게 하면 안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을 안해서 살이 찌는 게 아니라 먹는 게 늘어서, 남들보다 많이 먹어서 살이 찐 거라 먹는 걸 줄이긴 해야하는데, 어떻게 줄여야 하나 나중에 생각해보자 하고 미뤄두고 있었다. 발레도 매번 힘에 부치는 강도로 주 2회를 하고, 달리기도 주 1회 하고, 주말이면 하나랑 짧게나마 수영도 가고 하니 운동이 부족한 건 아니다. 위가 늘어나서 그런지 먹는게 줄면 어찌나 허기가 진지. 그러다가 홍차를 마시면서 거기에 꿀 한스푼과 우유를 조금 넣어서 먹기 시작했는데, 이게 포만감과 신체의 온기를 가져다 주고 단 것에 대한 욕구를 없애주는 게 아닌가. 꿀 한스푼도 칼로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설탕과 달리 혈당을 급격히 치솟게 하지 않는다 하고 간식 욕구를 없애주니 결과적으로 낮은 칼로리 섭취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커피도 마시지만 홍차를 하루에 두번은 즐겨 드시는 시부모님 덕에 간혹 홍차를 마시는데, 난 항상 그냥 아무것도 타지 않은 홍차를 마셨더랬다. 우유를 섞어 마시지 않으면 잔에 침전물이 착 달라붙어 착색을 잃으켜서 잔을 정성스레 빡빡 씻어야 하는데, 그게 치아에도 같은 효과를 준다고 하셨다. (전직 치과의사) 우유를 안섞어 마시고자 하니까 치아 착색도 신경이 쓰이고 우유 없이는 차가 향은 좋지만 그렇게 맛있는지도 모르겠고, 해서 마시지 않았다. 어렸을때 캔으로 나오던 로열밀크티를 참 좋아했는데, 엄청 마셔댄 탓에 살이 찐 기억 때문에 차와 우유, 설탕 조합이 싫었던 것 같다.

이놈의 체중 관리는 평생 가져갈 숙명 같은 존재이지만 한번도 쉬운 적이 없었고, 매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성공적이었던 체중관리는 어땠는지. 그리고 매번 성공했던 방법도 바뀌었던 거 같고. 이번엔 아마 홍차가 같이 해줄 것 같다.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아도 한가지 기억나는 건 항상 성공적이었던 체중관리경험은 어느 정도 의지와 노력은 필요하지만 이게 너무 힘들지 않을 때 가능했다는 건데, 홍차가 체중 관리의 경험을 힘들지 않게 도와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윗세대의 이야기를 찾아서

아이의 일상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던 출산 후 1년을 빼고는 아이의 일상에서 내가 없는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아이는 열시간 이상 잠을 자니까 14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에서 8시간은 유치원에 있고, 나머지 시간도 집안일이다 내 취미 활동이다 하면 남는 시간이 별로 없다. 아이에게 일상을 물어보고 요약해서 듣는 것이 대부분인 셈이다.

아이는 아직 나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비밀이라는 것을 갖기에 아직 입이 너무 근지러운 나이라 더 털어놓지만, 부끄러움/수치라는 감정을 서서히 배워가고 있는 것도 같고, 방에서 문닫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기 시작하는 걸 볼 때 나에게 많은 비밀을 갖는 시기가 곧 다가올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아이의 이런 저런 일상을 이야기하다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나눠보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 나아가서 나의 부모님 세대와 그 윗세대의 이야기는 참 들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형제 자매들과는 어떤 감정을 갖고 컸는지, 무슨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어떤 강렬한 감정을 느낀 일이 있었다면 그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등… 항상 내가 관심을 받는게 커서, 내가 중심이었어서,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컸는지 등 과거에 대한 궁금함을 마치 거세라도한냥 여쭤보지 않고 지냈다. 같이 하는 일상 만으로 부모님을 다 안다고 생각하며 넘겼지만, 그게 또 그렇지도 않은건데. 엄마 아빠도 어린 시절 보듬어주지 못한 내 속의 나를 품고 사셨을텐데 그건 친구들과 나누셨을까 하는 마음에 이제라도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간 누구에게도 일절 안하셨던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위암 수술후 간으로 전이되기 전 기간이었는데, 태극기함 만드는 숙제를 도와주신다고 오신 할아버지께서 톱질과 망치질을 하시면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참전 이야기를 해주신거다. 강제 동원이 된 배경, 어떻게 포로로 잡혀 러시아군인에게 끌려갔는지, 하마터면 사할린 동포가 되실 뻔했던 상황에서 어떻게 도망쳐나왔는지, 이남으로 돌아와는 과정 종전이 되면서 어떻게 38선을 넘었는지, 38선을 넘어 레이밴 선글라스를 쓴 미군장교를 본 순간 드디어 무사히 돌아왔다고 느낀 순간의 감정 등 정말이지 생생한 이야기였다. 폭탄을 안고 러시아 탱크 아래로 뛰어 들어가 탱크를 제거하는 임무를 받았는데, 안들어가면 일제 장교에게 죽고, 들어가면 터져 죽을 거 같아서 이도저도 못하다가 오줌을 싸고 기절하신 이야기, 이가 들끓는 옷을 벗어서 탈탈 털어 최대한 이를 제거하고 다시 입은 이야기, 포로들에게 밭에서 볼일을 볼 수 있게 해줄 때, 다시 이동하기 전 포로 수를 다 셀 수 없어 기관총으로 밭을 주욱 갈겨 쏘고 이동하는 걸 피하고자 인근 똥통에 숨었다가 온 몸에 똥독이 올라서 고생했던 이야기 등 정말 어디 소설에서나 볼법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살면서 할아버지가 한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들은적이 없다 하셨고, 이후 해병대에 들어가셨고, 그 끈끈한 전우애와 해병대의 강인함 이런 이야기만 듣고 보고 자라셨다 했다. 그런 이야기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건 본인이 곧 돌아가실 걸 아신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만 해보신다며..

엄마, 아빠, 그리고 이제 내년이면 백세가 되실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이번에 방문하면 꼭 들어보고자 한다. 이런 드라마틱한 일은 아니더라도,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궁금하다. 그때의 일상과 생각, 기억에 남는 것들 말이다. 그를 듣고 나면 엄마와 아빠를 조금 더 다른 형태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글로 남기고자 한다.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때 기록으로 남겼다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아서 기억이 드문드문 지워지고 오염되었다.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배우는 게 별로 없는 덴마크 유치원?

한국을 다녀오면 유치원에서 하나에게 남은 시간은 보름도 채 남지 않는다. 방과후 학교로 넘어가 학교 입학까지 3개월의 시간을 보내는데, 여름 휴가 기간 3주를 제외하고 나면 2개월 정도 시간을 보낸 후 8월 초부터 0학년을 시작하게 된다. 왜 서구는 주로 가을에 학기를 시작할까 생각을 했는데, 아마 여름방학이 길고 연말연시 연휴기간방학, 겨울방학, 부활절 휴가기간, 가을방학 기간 등은 1~2주 정도로 짧게 쉬다 오는 것들이라 한 학년을 끊기에 애매한 기간이라 그런게 아닌가 싶다.

2023년 중에 만 6세가 되는 아이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해에 0학년을 시작한다. 이보다 1년 먼저 일찍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고 늦춰서 만 7세가 되어 시작하는 애들도 있다. 덴마크는 의무교육이 10년으로 정해져있는데, 이를 꼭 학교에서 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가정에서 해도 무방하다. 즉 어디서 하든간에 0학년에 되는 시점부터 의무교육이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글을 배우고 기초적인 산수와 과학, 예술, 체육활동 등을 하는데, 기존에 유치원에서 놀이처럼 배우던 것이 책상에 앉아서 좀 더 학습처럼 배우는 형태를 띄게 된다.

아직까지 학교에 애를 보내지 않아서 학교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덴마크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뭘 하는지는 좀 빠삭해졌다. 한국인 부모 중에는 덴마크 어린이집/유치원보다 한국 어린이집/유치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개인의 교육관과 취향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덴마크 기관이 내 교육관과 취향에 맞는다.

덴마크 기관에서는 0학년에 가기까지 앉아서 뭘 가르치지 않는다. 앉아서 뭘 하는 건 레고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오리고 붙이고 만들고, 밥 먹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안과 밖에서 몸을 써 놀고, 운동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특별한 스포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이라고 하면 요가정도? 이 또한 아이들에게 체육 활동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시에 따라 조용히 움직이면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 신체에 일어나는 일에 집중을 하면서 조절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시키는 거다. Mindfulness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데, 그 시간에 뭐하냐고 물어보면 요가 매트 깔고 눕거나 앉아서 눈을 감고 호흡에 초점을 맞추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거라고 한다. 그러다가 간혹 10-15분씩 파워냅을 하기도 하고.

그밖에 노는 건 정말 뛰어 노는 거다. 지금 유치원에는 실내 암벽이 없는데, 예전 유치원에는 앞에 두툼한 매트리스를 깐 실내 암벽이 있어서 이미 두돌 반 때부터 이 벽을 원숭이처러럼 타고 놀았다. 비가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루에 한번은 꼭 밖에서 놀고, 비가 오는 날도 비가 그치면 나가서 논다. 그러면 옷이나 장화는 정말 진흙과 모래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어서 애를 데리고 올 때가 되면 그게 다 말라 붙어서 옷을 접으면 흙덩이가 부러져서 떨어져내린다. 그나마 말라있으면 다행이고, 그 진창 옷을 집으로 가져갈 때면 들고 가기도 정말이지 번거롭다. 자주 빨 수 있는 옷이 아니니까 집에 가서 말려 털어보내야 한다. 특별히 다칠만한 위험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은 대부분의 활동에 대해서 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다쳐오는 일도 종종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몸을 쓰는 법을 배우고, 건강하게 큰다.

운동이 아닌 활동은 소근육 발달을 위한 그림그리기, perler (한국에서는 펄러비즈라고 하던데, 판에다가 플라스틱 비즈를 끼워서 모양을 만들고 다림질을 해 이것저것 만드는 것으로 덴마크 기업이 만든 것) 판에 끼워 만들기, 부활절, 할로윈, 크리스마스 등 시즌에 맞춰 실내 장식할 때 뭔가 오리고 붙이고 만드는 공작 같은 창의력 향상 활동이 한 축을 이룬다. 또 다른 축으로는 아침에 모여서 조회시간에 노래 부르는 시간. 운율과 음율을 맞춘 동요가 많고, 학교에 가서도 운율과 음율에 많은 비중을 둬서 교육이 이뤄지는데, 같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게 조직내 소속감 등을 고양시켜준다고 해서 덴마크인들은 이를 교육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산수를 따로 배우지는 않는데, 뭔가 생활속에서 이런 저런 것을 배우는지, 2+2는 4, 4+4는 8, 8+8은 16, … 이런걸 나에게 와서 말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일상 속에 엮어 산수도 배우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도 물론 빼 놓을 수 없다.

기타 공동체 생활을 위해 유치원에서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 옷입고 벗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상황에 돕게 한다거나, 식사 당번을 정해서 배식을 돕게 한다. 또 일주일에 한번 씩 왕따 방지 교육을 해, 뭐가 괴롭히는 것인지, 그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해당 당사자와 주변인의 역할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배운다.

유치원에서 뭔가 다양한 수업을 하지는 않지만, 어른들이 만드는 놀이나 학습에 애들이 참가하는 형태가 아니라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놀이를 만들고 노는데 익숙하다.

다만 애들은 좀 꾀죄죄하다. 옷이 더러워지고 헤지고 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애를 데릴러 갈 때 보면 애들이 죄다 꾀죄죄하다. 머리도 엉망진창, 얼굴과 옷도 여기저기 더러워져있고. 좋은 옷은 살 필요가 없고, 유치뽕짝이든 뭐든 애들 취향에 맞춰 대충 저렴하고 튼튼한 옷을 사주면 된다. 괜히 좋은 옷 입고 가서 더러워지고 찢어지면 아깝기나 하지.

아침이면 15분 정도 침대에서 뒹굴며 잠을 깰 시간을 주고, 일어나서 옷 갈아입고, 머리도 자기가 빗고, 부엌에 내려가서 자기 먹을 아침식사 직접 챙겨다가 아빠랑 아침 식사 하고, 겉옷 챙겨입고, 도시락이랑 물통 가방에 챙겨 넣어 집을 나서고, 혼자 놀 땐 놀고, 도움을 필요할 땐 도움을 요청하고 등등 하나의 인간으로서 역할을 다 한다. 도시락이야 내가 싸주지만, 그나마도 내 옆에서 간혹 거들때도 있고, 빨래랑 밥해주고, 책읽어주고 조금 놀아주고 여기저기 데려다주는 역할 때면 내가 하는 게 진짜 별로 없어졌다. 자기 주도성, 스스로를 돕는 자조능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능력, 자기가 필요한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 못하는 것도 연습하면 늘게 되어 있음을 알고 꾸준히 하는 것 등 물론 가정교육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것들이 유치원에서의 교육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시간이 흐르고 보면 한국에 있는 아이들이 여기에 있는 아이들보다 더 많이 배워 좋은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애들이 즐겁게 놀고 어른의 과도한 통제 없이 적당한 상처도 입어가면서 보다 창의적으로 자신을 배우고 성장하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면서 사회성 기르는 이곳이 나는 마음에 든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규칙을 잘 지키고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 더 초점을 두는 것도 마음에 들고. 결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줘야 하는 것인데, 그 근간을 유치원에서 닦을 수 있는 것이 좋다. 내가 선행학습과 안맞았던 사람이라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적당한 시기의 적당한 자극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야 학교 가서 하면 된다 싶다.

주변의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하여 개개인이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야 말로 정말 가르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유형의 것으로 보여주기 어렵지만 아이의 매일을 통해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덴마크 공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해마다 돌아오는 MUS의 철이 왔구나.

1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MUS (Medarbejderudviklingssamtalen, 직원계발면담). 쥐에 해당하는 단어인 mus와도 발음이 같아서 처음엔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MUS는 덴마크 직장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MUS와 mini-MUS, 임금협상*은 하나의 사슬처럼 얽혀서 굴러간다. 연초에 MUS를 하고나면, 반년뒤에 mini-mus가 있고 오래지 않아 그 뒤로 연봉 협상이 따른다. (*민간에서도 비슷하게 굴러간다하지만, 나는 덴마크에서 민간 경험은 없으므로 중앙부처에 해당하는 Staten만 보자면 우리 사무관급에 해당하는 Fuldmægtig는 거의 개별 협상을 하지 않는다. 수당 정도만 협상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속한 노조가 협상한 결과를 그냥 받아들인다. 자신이 특별하게 더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라면 개별 협상을 물론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 난 딱히 내가 더 특별하게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MUS는 Kompetencehjul이라는 툴을 통해 개인 역량 계발을 돕고자 하도록 하는데, 우리 조직같은 경우 구술커뮤니케이션, 서술방식 소통, 협업, 사회성 (사회성이 포함되어있다!), 직무전문성, 창조성 및 발명능력, 업무수행력, 생산성, 수용력 등 9개 분야로 계발분야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면 mini-MUS를 통해 반년 후 진행상황을 점검한다. 임금협상에서는 이걸 토대로 평균보다 잘하고 있을 경우 역량수당 분야에서 개별 협상을 할 수 있다.

먼저 개인이 매뉴얼 따라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그걸 토대로 상사와 면담을하고, 내가 생각하는 중점 계발 분야가 뭔지, 상사가 생각하는 건 뭔지, 그걸 어떻게 계발할지 (연수, 업무 수행, 기타 구체적인 사항 등), 그걸 계발해서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등 양측에서 합의된 내용을 계발계획양식에 채워넣고 사인하고 나면 MUS가 끝난다.

예전엔 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작년 MUS 이후 이를 내 일과에 적극 반영하고 난 후에 이게 중요한 툴이란 걸 알게 되었다. 작년에는 구술 및 서술방식 커뮤니케이션 분야와 직무전문성 분야의 계발에 중점을 두고 싶다고 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내 계발분야를 내 업무시간에 평소에 녹여넣으면서 커뮤네케이션 부분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 교육도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서 가서 듣고, 평소에도 이를 활용하다보니 조직내에서 내 위치와 내 스스로 평가하는 내 모습이 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조직내 성장보다는 전문가쪽 역량을 키워가는 쪽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커리어 방향도 설정할 수 있었고, 내가 관심있는 직무에 대해서도 이야기함으로서 향후 기대되는 프로젝트의 참여에 대해서 나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좋다.

한국의 인사고과는 정치적인게 컸다면 지금 소속된 조직에서는 MUS를 통해 자기가 능력을 계발, 성장하고 연봉의 형태로 그 보상을 받는 형태로 크게 정치적인 요소가 없다는데서 속이 아주 시원하다. 내가 남보다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내 현재에서 필요한 역량과 그에 맞춰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되는 거니까. 올해 농사를 또 잘 지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