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입덧, 덴마크 생활

요며칠 입덧이 심해서 하루에 1~200 그램씩 빠지는 것 같다. 최소한의 먹거리만을 먹고 버티고 있는데, 먹고 토하는 일이 잦아지니까 먹기도 살짝 겁나고 안먹자니 애한테도 좋지는 않을 거 같아서 최소한 먹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시험은 코앞으로 다가와있는데, 공부도 요며칠 하나도 안하고 놀고 있다. 다행인건 스트레스도 별로 받는게, ‘아, 임신해서 몸이 안좋아서 시험 못치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근거없는 생각 때문이랄까. 그나마 그간 성적을 잘 받아두어서 한두개 좀 못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도 없거니와 하나는 내가 쓴 페이퍼를 근거로 시험보는 것이라 이미 고생해서 낸 것에 대한 평가가 시험의 큰 몫을 좌우하기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다.

어느덧 임신 7주. 시어머니와 함께 임신 후 처음으로 병원을 다녀왔다. 멀리 Bornholm에 살고 계시지만 내일 새벽같이 시누이와 첫손녀와 함께 셋이서 떠날 2박 3일의 짧은 런던여행을 위해 Holte에 잠깐 와계셨다. 그 전에 병원 갈 때 혼자 가기 그러면 언제고 이야기해달라고 하셨는데, 비행기로 오셔야 하는 시어머니 일부러 오시라 하기 뭣해서 그냥 혼자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혹시 말씀은 드려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드렸는데 잘 한 일이었다. 마침 와계시기도 했고 기뻐하시며 같이 가주신다 하셨다.

시어머니와 함께 간 것은 잘한 일이다. 남편 CPR번호도 기억이 안났는데, 시어머니가 기억하고 계셨고 (그런게 필요할 줄이야), 남편 가족 병력 등에 대해서도 문진을 했는데 그 또한 시어머니가 답변해주실 수 있었다. 쌍둥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우리 가족에는 그런 이력이 전혀 없다 했더니, 시어머니가 자기네에는 이력이 있다 하신다.

앞으로의 병원 일정은 12~13주 중 다운증후군 검사 1차, 25, 32주에 있을 초음파 검사 및 기타 아이에 대한 상세 검진이 거의 다 인것 같다. 나머지는 나의 출산을 담당할 산파와 만나서 할 일들이 있고, 출산 교육 등이 있는 모양인데, 그건 산파가 나에게 연락을 준다고 하니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다. 아, 의사가 덴마크의 모든 병원 기록이 다 전산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임신과 관련된 것만큼은 문자 그대로 Paperwork이 아직도 살아있다면서 노란 봉투에 관련 내 임신 정보를 기록해서 넣어주었다. 앞으로 모든 진료시 항상 지참하라며. 이 아날로그식이라니. 모든 정보가 다 전산으로 날아오다가 갑자기 이런 노란봉투를 받아드니 월급봉투라도 받은 듯한 느낌이다.

다음 병원 일정에도 시어머니가 가주신다고 하니 이번엔 그냥 마음의 부담 없이 부탁하련다. 같이 가주시면 기쁘겠다고 말씀드리니 Bornholm에서 날아오신다고. 아. 이 감사함. 이 먼 덴마크에 내 부모와 떨어져살며 한켠으로나마 기댈 시댁이라는 구석이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시누이가 시어머니께 엽산 꼭 챙겨먹으라고 알려주라 했다는데, 시누이도 뭔가 참견하는 듯하게 보일까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나보다. 🙂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보라는데 사실 뭘 물어봐야할지 잘 모르겠고, 책이나 각국 정부 보건당국에서 제공하는 홈페이지도 워낙 자세하게 정보를 담고 있으니 아무래도 먼저 연락하게는 잘 안된다. 참 좋은 시누이인데도 괜히 폐끼칠까봐 어려운 건 한국인이라 그런걸까?

병원을 나와 같이 커피한잔 (나는 초코우유 한잔)을 함께 하고 장을 본 뒤 각자 방향으로 향했다. 옌스랑 대화해도 쓰는 어휘가 한정되어 있는데, 병원에서 의사를 보거나 시어머니와 대화를 한다거나 할 땐 평소엔 잘 안쓰던 어휘도 쓰게 되서 좋다. 요즘 학원도 쉬다보니 듣기는 되도 뭔가 말은 퇴화하는 느낌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역시 집중력의 문제인 것 같다. 꼭 써야된다는 생각이 없으니 요즘 다시 덴마크어 비중이 줄어 반반 정도 쓰는 거 같다. 복잡한 건 대충 영어로 이야기하고 일상 대화만 덴마크어로 하는? 집에서도 다시금 덴마크어 비중을 늘려봐야할 것 같다. 곧 방학도 하니 더욱…

뭔가 약간 퇴보하나 하는 불안이 드는 와중 하나 위안이 되는 건, 대학원 덴마크 친구가 자기는 지방 방언도 좀 심하면 못알아 듣는데 내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겠다면서 나에게 억양이 별로 없다고 해준 것이다. 옌스가 너 발음 좋다 이렇게 이야기해줘도 뭔가 그냥 자기 아내니까 격려해주려 하는 이야기로 들리고 덜 객관적으로 들렸는데,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나의 덴마크어 미래가 전도유망하다는 착각을 더 하게 해줬다고나 할까? 흠흠.

시간이 지나면서 덴마크에 친구도 서서히 늘고, 이제 내 피를 나누는 가족도 곧 생기고 할테니 뭔가 정말 조금씩 뿌리를 내리는 기분이다. 아직도 나에게 내 나라는 한국이지만 이곳도 이제 내 나라가 될 것이니까.

입덧에 제대로 식사 못하는 아내를 위해 생일 아침상으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차려주는 남편도 있고, 병원간다고 멀리서 와주시는 시어머니도 있고, 다 감사하다. 인생의 많은 일들은 그간 걸어온 일과 우연이 만나 얽히면서 생기는 놀라운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을 떠나 일을 해보고 싶다 했던 아주 초등학교 3학년짜리의 꿈은 내 직장 선택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를 통해 이곳에 와있었고, 그간 잡다하게 해왔던 취미와 한국에선 드세다고 들어왔던 나의 적극적 성격은 옌스가 나에게 관심을 갖게한 동력이 되었다. 많은 연애 실패담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를 깨닫게 해주었고, 결혼생활은 어때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난 그는 나와 결혼과 인생관이 놀랍도록 흡사하게 닮아있었으며, 또한 다른 부분이 있어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있다. 우린 스스로의 자유를 갈망하면서 같이 함께 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갖고 있기에 서로 잘 이해해줄 수 있고 지지해줄 수 있다. 애가 생겨서 인생의 많은 변화가 생기고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잘 헤쳐갈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다. 일부러 상처를 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성격덕분에 문제를 차분히 잘 해결해나갈 수 있으니까.

정말 애를 가져도 좋겠다고 확신이 선 순간 이렇게 아이가 찾아와준 점 정말 고맙다. 앞으로 남은 기간 별 문제없이 건강하게 커주고 태어나주기만을 바랄뿐이다.

소논문 제출 완료

지난 6주간 나를 힘들게했던 소논문을 드디어 제출했다. 담당교수의 최종승인을 받고 제출했으니 이제 오럴 디펜스만 잘 하면 된다. 이 소논문은 7.5 ECTS에 불과한 작은 수업의 결과물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30ECTS의 논문이 어떤식으로 흘러갈 지에 대한 감을 잡아주는 좋은 경험의 산물이다.

한국에서 했던 석사가 약간 가라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정식 논문을 쓰는 대신에 경제학 에세이를 쓰고 졸업시험을 쳐서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 경제학 에세이는 내용이나 형식면에서는 차이가 없는데, 내 담당교수가 주심이 되어 그 주심의 승인만 받으면 되고, 논문으로 DB에 등록되지 않는다는데서 차이가 난다. 대신 이 차이를 졸업시험이라는 것으로 대체하는데, 시험을 선호하는 나에겐 이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물론 나와 같은 길을 택하지 않고 정식으로 논문을 쓰고 디펜스를 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주제를 늦게 잡아서 풀타임 직업이 있는 상태로 논문을 쓰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이곳에선 그런 옵션도 없거니와 이제는 풀타임 학생이니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한국에서 논문을 쓸 때 담당교수와의 관계는 지금과 매우 많이 달랐는데, 훨씬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때도 수업을 들어서 알고 있는 교수님이긴 했지만, 이곳에서처럼 상시적인 토론과 질문 등을 통해 교수가 학생들 면면을 잘 알고 있는 일이 드물었다. 이번 내 소논문 담당교수는 나를 잘 알고 있는 교수였고, 좋게 평가해주고 있는 교수였기에 더욱 많은 지원을 받은 것 같다.

이해가 안되면 혼자 주구장창 붙들고 있는 나였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초반에 중요 이론에 대해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어서 교수의 조언과 내가 생각한 방향의 차이를 어떻게 메워야하는지 엄청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미팅일정을 잡지 않은채로 시간이 흘러가니, 어떻게 되고 있냐고 메일로 확인을 하시는 거였다. 혼자 끙끙 앓다가, “그때 설명해주셨는데 여전히 이해가 잘 가지 않아 진척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정말 중요한 파트인데 내가 알고있는 바와 교수님이 말씀해주시는 게 달라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있다.”고 말씀드렸다.

황당해하실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하겠다면서 잘 설명을 해주셨고, 그게 해결되고 나니 나머지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그 문제를 의논할 당시 프로젝트 관리가 잘 안된다고 상의하니, 그 스트레스 주는 역할 자기가 해주겠다면서 토픽마다 데드라인을 정해주시는 거였다. 아… 이런거 정말 좋아하는데. 누가 데드라인 정해주는 것…

정말 그 덕에 마지막까지 소논문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내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다음 논문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감을 잡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그룹 보고서 말고 개인 프로젝트로 해서 교수의 수퍼비전을 받아가며 20페이지짜리 영문 보고서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래저래 성취감이 큰 수업이었다. 시험만 잘 보면 될텐데… 아 긴장된다.

SU 받기

올 1월부로 소급해서 월 100만원 조금 넘는 돈을 덴마크 정부로부터 받게되었다. 고등교육을 받는 덴마크인 또는 일정 조건에 부합하는 EU시민권자, 덴마크인과 결혼을 통해 덴마크시민권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은 SU를 받을 수 있다.

교육보조금(uddannelsesstøtte)라고 불리는 이 월급같은 돈은 인적자원이 중요한 개방형 소형경제 국가로서 고등교육을 받는 인력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돈이다. 이것 때문에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뭐라도 다른 일을 하면 이 이상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돈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 뿐이고, 실제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파트타임 직장을 갖는게 일반적이다.

나야 옌스 살던 곳에 숟가락 얹고 사는 상황이고 모아둔 돈이 있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쩌면 그래서 이 추가적인 백만원의 돈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래저래 좀 꼬인 문제로 행정절차를 제 때 밟지 못해 초반 4개월은 돈을 날리나 했는데, 그런 것 없이 다 챙겨주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 이야기하자마자 옌스는 그나마 내가 이돈을 받으니 조금 덜 속이 쓰리긴 하지만,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지 아느냐면서 나중에 세금 내봐야 그 마음 이해할거라 한다.

그 마음 이해도 가고, 앞으로는 더 이해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 사회가 이렇게 전반적인 행복수준이 유지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안정된 치안이 이런 시스템과 신뢰 아래서 생긴 것이라는 걸 생각할 땐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말 별것 없는 한국 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자소득(정말 달에 몇백원 할 것 같은…)을 세무신고때 해야하는 번거로움은 불평하고 싶지만 말이다. 아마 여기서 추가로 월에 몇 크로나 내야 할 것 같다. 이거 불평하니까, 옌스가 여기서 받는 정부지원을 생각하면 그거 불평하면 안된다고 한다. 께겡…

내 나라에서도 못받던 국가보조금을 여기서 받다니. 참 오래살고 볼 일이다.

인생의 여러가지 변화

아침 해가 6시면 중천에 뜬 것 마냥 쨍한 요즘 6시 이전에 이미 눈이 떠지곤 한다. 그래서 이번주 화요일, 자명종이 울려서야 눈이 떠지고, 침대에서 비비적거리며 잘 못일어나겠던 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야에 가까워지면서 잠을 설치지 않고 7시간을 내리 잔게 오랫만이었기 때문이다.

뭘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공공메일 온 것을 확인하려고 로그인을 하니 시스템에 내 이름이 바뀌어있었다. 처음에 외교단 비자로 와서 다른 비자로 바꾸니, 비자 바꾸는 문제부터, 결혼식, 이름 바꾸는 것까지 여러모로 예외적인 케이스에 해당되어 속을 많이 썩었는데 그래도 이름 바꾸는 문제는 크게 오래걸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큰 일이다. 아무리 한국에 등록된 내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나의 정체성에 큰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면서의 편의(구직 활동 중의 편의 등)를 위해 성을 추가하고 내 본래성을 미들네임으로 돌렸다. 그래도 미들네임으로 내 성을 유지했으니까 큰 변화는 아니야 라고 스스로에게 항변을 했지만, 간혹 미들네임을 기재할 공간이 없는 서류 제출시나 신청서 작성시 내 본래 성이 자리를 잃어버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니 당혹스러운 느낌도 갖게 되었다.

이런 느낌은 남편 성을 따라가지 않는 우리네 문화 때문일 것이다. 여기선 성을 바꾸는 거나 한 가족의 형제 자매가 아버지나 어머니, 조부모 등의 성을 따로 갖는 경우가 흔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에게 성은 한번 정해지면 그대로 평생동안 간직하는 것이기에 그 무게와 의미가 남다른 모양이다. 그래서 왠지 부모님이 서운해하실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죄송함도 버무려져서 내가 왜 이 성을 택하는지를 애써 변명하게된다. 묻는 사람이 없어도.

이런 복잡한 기분은 둘째로 치고, 계획하던 행정적 절차가 처리되어 홀가분해진 마음에 옌스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나니 어찌나 기뻐하던지. 이 곳에서도 역시 성이 갖는 의미가 있음을, 그리고 자기의 성을 따르기로 결정한 그 무게가 느껴짐을 알고 묘한 안도감도 들었다. 배우자가 내 결정의 무게를 알아준다는 사실은 나에겐 중요한 문제니까.

무척이나 덥던 날이었다. 친구와 헤어지고나서 안되겠다 싶어 반바지를 두개 사들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많은 사이트에서 말하던 소위 “착상혈”이라는 것을 보고 나서 아침에 느꼈던 그 이상함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인생에 있어 나중에 “그게 그래서였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작은 순간들이 있지만 그 당시에 모르는 것처럼, 그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테스터기를 두세트 사들고 와서 바로 확인해보았다. 희미한 줄이 보였다. 역시…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설마 한번에 이렇게 아기가 찾아와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놀라움이 컸다. 물론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 막 엄청 기쁘다기 보다는 얼떨떨하고 정말 이게 확실한가 싶은 마음에 놀라움이 가장 지배적인 기분이었다. 예정일이 논문 학기 전 마지막 시험의 바로 다음주라 한달 미룰까 했었는데 그냥 뭐 설마 한번에 되겠느냐 싶어 시작한 임신계획이 예상을 뒤엎고 임신으로 결론이 나서 깜짝 놀랐다. 대부분 6개월 정도 계획하고 애를 갖는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학기 중에 애를 나면 골치가 아파진다는 생각에 그 전엔 임신을 일찍 하나 싶어 걱정을 했는데, 바로 이달부터는 고령임신이라 안생기면 어쩌나 하고 바로 한달을 간격으로 고민의 주제가 180도 뒤바뀐 것이 우습다. 아무튼 그 많은 걱정과 달리 계획대로 움직여준 아기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오늘부로 두달째에 들어선 거라 아직은 불안정한 시기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를 잃는 일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면 그건 우리가 감당할 일이니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불운을 대비해 기쁨을 기념하고 즐기지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에게도 알리고…

옌스가 꽃을 한다발 사들고 집에 왔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내가 임신한 걸 알았나? 이 꽃은 뭐지? 그냥 사온건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빨간 장미. 매번 이러저러한 꽃다발을 사오다가 한번 친구가 거의 빨간색에 가까운 진한 분홍의 장미를 내게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가 빨간 장미 꽃다발을 먼저 선물할 기회를 빼앗겼다며 서운해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건 아주 진한 분홍장미야~ 빨갛지는 않네.”라고 귀띔해줬더니 그 기회가 남았을 때 빨간 장미를 사온 것이었다.

“왠 꽃이야?” 하며 기뻐하는 나에게 “여러모로 군거가족의 일원이 된 것을 다시한번 축하해!”라며 꽃을 내밀었다. 임신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지. 나도 몰랐는데.

“또 소식이 하나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니 “뭔데?”하며 평이하게 물어본다. 불쑥 테스터기를 내밀었더니 이게 무슨 뜻이냔다. “글쎄?”라는 답에 “임신????!!!”하면서 어찌나 놀래던지. 애가 떨어지겠다는 표현은 바로 이 순간에 쓸 것이다.

이 날 저녁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이미 우리는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지만, 이 아이가 생김으로써 우리는 다른 의미로 평생에 끊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는거야.”라는 말을 불쑥 했다. 항상 장난스럽고 로맨틱하지 않은 나에게 그가 있기에 로맨틱한 감성이 사라질 수가 없는 모양이다.

바로 몸조리 잘하고 몸조심하라는 우리 가족과 하던 운동들 그대로 계속 하고 지내던 대로 계속 지내고 술담배만 안하면 된다(술도 간혹 작은 글라스 한잔은 되는 것으로 덴마크 보건당국이 권고사항을 바꿨다며..)는 시댁 가족들. (하루 한잔 커피는 당연히 오케이!) 의사인 시누이는 애들이나 짐을 싣고 다닐 수 있는 아주 무거운 크리스챠니아 자전거에 애들 둘을 태우고 셋째 임신기간 중 내내 데리고 다니고, 출산 때 조차도 자전거 타고 갔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활동이 건강한 임신과 출산에 도움이 된다면서. 승마 등 몇가지 운동만 안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만 아니면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중에 생기는 유산은 그냥 배아의 유전적 결함에 따른 것이지 그 생활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면서 전혀 생활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강조를 한다.

물론 이 나라에도 다양한 가족들이 있기에 순수 유기농 제품만 쓰고 입고 먹는다든지 하며 여러모로 조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운동에 대해선 다 비슷하게 강조하는 것 같다.

굳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겠다고 생각해도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나는 그냥 학교 공부하던대로, 운동 하던대로 하면서 살기로 했다.

이제 이번 여름이 애가 없는 마지막 여름이라며, 이 여름을 불사르겠다는 남편과 벌써 이름을 지어보겠다고 이름 책을 사들고 우리 둘은 이 변화의 시기를 벌써부터 즐기고 있다. 입덧만 너무 심하지 않기를 빌며 이 변화의 순간을 아주 잘 즐겨야겠다.

어버이의 날 단상

옌스와 함께 산 날도 어느새 일년이 넘게 지났다. 우리도 곧 아이를 가질 계획인데, 이제는 정말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아이를 갖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재미를 빙자하여 이름을 논하기도 한다. 원칙은 많지만 간단하다. 덴마크에만 있는 알파벳인 ø, å, æ를 배제하고, 덴마크어 발음과 영어발음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r과 y를 배제한 다음, 한국어나 영어로 발음했을 때 이상하지 않은 이름이어야 한다. 또 Kristian처럼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이름은 배제하는 것으로. 그 다음엔 가급적 이름의 유래가 좋은 것, 들어서 이쁜 것, 현재 과하게 유행하고 있지 않을 것, 너무 구식의 이름은 배제할 것. 그런데 간단하지만 이 많은 원칙들을 다 조합하고 나면 이름 찾는게 만만치 않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생활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정하고, 삶의 패턴을 많이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만큼은 세상 대부분의 부모에게 해당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문화마다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너도 겪어보면 다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런데 짧다면 짧을 36년의 삶을 통해 보니, “다 그렇다”고 들은 게 꼭 옳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요소들이 삶을 휘몰아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소용돌이 안에서 개개인마다 다른 선택을 하고 방향을 잡는 것은 결국 개인의 원칙이 어떤 방향을 향하느냐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옌스와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전에도 지나가듯이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들이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2세 계획을 실행하기 전 다시한번 명확히 하고 싶은 것들 말이다. 난 최대한 이 사회가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활용해서 애를 키울 것이고, 애를 위해 내가 “희생”했다고 느끼는 수준으로 나를 헌신하지는 않을 것이며, 둘간에 육아에 있어서 안맞는 방식은 대화를 하겠지만 최대한 상대의 방식을 존중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사회가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활용해서 애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보육원에서 받아주는 생후 6개월부터 애를 보육시설에 보내고 난 내 학업과 향후 이어질 커리어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 많은 엄마들이 지향하는 애착육아는 내 육아방식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옌스는 애와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은 안된다는 것과 애가 가족에서 중요한 일원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 둘이 모두 중요한 당사자인 점, 아이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또한 그에 동의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키워보라거나, 애를 생각해보면 그런 방식은 이기적이라는 반응을 얻게된다. 그리고 실제 나도 애를 갖게 되고 키우다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고 내가 선택한 방법이 맞는 것인지 무수한 고민을 하고 방식에 수정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정말 많은 방식의 양육이 있는 것처럼 그 무엇에도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내 나라를 떠나 이민을 오고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남편과 결혼하며 생긴 가정의 문화는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어느게 옳고 그른 게 없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이 정답이라 믿고 가는 것, 그게 정답이 아니면 중간중간 수정해 가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게 앞으로 우리가 해나갈 일이다.

내년 이맘때면 나도 과연 어버이의 대열에 속해있을 지가 궁금하다. 카네이션은 못받겠지만…

 

En gåtur ind i byen

Når vejret er godt, nej, fantastisk som i dag, skal man ud og gå en tur! Det gjorde vi også. Solen skinner og temperaturen er høj nok til rigtigt at nyde det. Gaderne var fulde med mennesker, der også ville nyde det og hygge sig.

Det er næsten sommer nu, for temperaturen er omkring 20 grader og vil blive lidt varmer midt på dagen. Nu er jeg lidt “danskificieret”, og tænker jeg, at det er lidt for varmt. Men man skal ikke klage over vejret, når det er varmt og dejli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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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mall walk to a neighboring school yard

We enjoy a small picnic or walk to a neighboring school yard when it is a sunny day. We left home a little too late, so we couldn’t enjoy the sun sitting down on the lawn. It was still nice to do some activities such as juggling for Jens, taking pictures for me.

In some part of Copenhagen, cherry blossoms shed a long while ago. But in my neighborhood, spring has just arrived. It is amazing that weather conditions are quite different that I see differences in trees among areas in the small Greater Copenhagen region.

Summer is about to come. My favorite season was fall in Korea, but now it is spring. Winter is so long and dreary that spring stands out dramatically with so many small changes that I can easily spot. And yet, summer cannot be underestimated anyway. Summer in Denmark is exceptionally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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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시작

내 오래된 DSLR 카메라는 배터리의 수명으로 인해 오랫동안 장롱안에 쳐박혀 있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오래된 모델의 배터리를 취급하지 않는 탓에 어떻게 해야하나 하다가 삼성 미러리스 카메라로 갈아탔다. 그렇지만 캐논 카메라의 색감 그리고 뷰파인더로 바라보는 촬영시 감각이 그리워 아마존을 뒤져본 결과 독일 아마존에서 원하는 배터리를 받아볼 수 있었다.

사월 마지막 주 막판 사흘은 춥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으며 눈까지 내리는 최악의 날씨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오월로 넘어오면서 날씨는 급격히 변해서 오늘은 20도에 육박하는 최고의 봄날을 선사하였다.

매일 사진은 엄청 찍으면서도 정리를 하지 않는게 아쉬웠는 바, 그냥 그 날 그 날의 기록으로 공유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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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탈출 단상

시험이 끝났다. 이번은 그 어느 때보다 적정 페이스를 잘 유지하면서 공부했던 시험기간이었다. 집안을 딱히 어지르는 것도 아니고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하되 엉덩이 붙잡아 앉혀두고 꾸준히 공부했던 시기. 이번 블록이 시작되고 5주간은 쉬는 시간도 별로 없이 무지막지한 리딩리스트를 클리어해가며 수업을 들었는데, 그게 역화가 되어 돌아와 부활절 휴가를 한주 앞두고 번아웃상태에 돌입했다. 집안일도 대충대충…의욕 저하 상태에 시험은 서서히 다가오고 부활절 휴가는 잘 즐길 수 있으려나 걱정하며 짐에 무거운 책들만 괜히 바리바리 싸들고 떠났었다. 비행기 회항으로 휴가 일정이 다 흐트러지니 더더욱 의욕상실…

한국에서 짧은 72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남은 2주간의 수업은 그냥 수업에 빠지지 않고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리딩은 거의 갖다 버리다시피했다. 수업은 열심히 들었지만, 그게 다.  번아웃이라는 건 모르는 듯한 옌스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고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에만 주력했다. 그런 때일수록 너무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더 바닥으로 상태가 떨어지니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상황을 인정하고 대신 뭘 하든간에 최소한만이라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은 얼마나 서핑을 해대는지. 뭔가를 하지 않는 시간이면 핸드폰에서 이것저것 읽어대곤 했다. 깊은 사고를 요하지 않는 많은 소비형 컨텐츠들을 중심으로. 내 페이스북 뉴스피드는 말그래도 뉴스 피드에 가까워서 시간 보내며 읽기가 참 좋다. 문제는 이런 컨텐츠 소비가 너무 많아진 나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혐오감을 감내하면서도 내가 당장 해야 하는 것 (리딩 등)을 미루고 더이상 읽을 것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계속 뉴스거리를 찾아 읽고있는 내가 더 어이가 없었다. 인터넷 중독을 해결하는 방법을 읽을만큼 내가 살짝 걱정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겨울의 끝자락 봄이 오기 직전 해를 갈구하는 몸이 기력을 다해 그런거였나 싶기도 하다.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감기까지 걸리고 나니 정말 몸과 마음이 다 바닥을 치더라. 날이 밝아지고, 나무에 순이 오르고, 잔디밭에는 봄꽃이 피고, 새들이 울고, 어느새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날이 밝아져 눈이 뜨이는 시기가 되자 마치 마술처럼 그간 중독자처럼 관심이 가던 뉴스거리들도 더이상 흥미롭지 않아졌으며 공부에 흥미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 꼭 이렇게 시험이 코앞에 다가와서야…

다행히 초반에 엄청 열심히 해둔 가락과 함께 수업은 빼먹지 않고 (주당 22시간) 가서 열심히 듣고 참여해둔 덕에 시험 공부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늦게 다시 시작한 공부라 더 잘해야 한다는 욕심에 남들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라 그런지, 내가 공부한 것이 충분하긴 한건지, 좋은 성적이 나올지, 그런 생각이 자꾸 머리를 채우니 괜한 조급한 마음과 스트레스가 함께 찾아오더라. 그 마음 다잡아 내려, 늦게라도 공부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고 내가 잘해야 한다는 자만심 내려놓고 한자라도 더 읽자하는 마음으로 애써 공부를 했다.

너무 읽기 싫은 마지막 순간엔 머리에 안들어와도 소리내서 조금 읽다보면 한 한페이지 읽어내려갈 때쯤 되면 긴장감이 조금 안정되면서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일상엔 가족, 학교, 덴마크어, 몇안되는 여기 친구 이게 다가 되어버렸다. 생각도 단순해졌고, 어느정도 여기 생활에 적응이 되어버려 차이점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내가 여기에 맞춰 변해버렸다는 것이겠지. 오히려 한국가면 놀라게되니, 반대로 사람들이 나를 보면 다르게 느낄 것 같다. 소비지향적 삶을 벗어던진 것도 그렇고.

쓸 거리의 빈곤이 느껴진다는 데에서 뭔가 마음이 묵직했었는데, 이젠 블로그는 좀 쉴까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덜 한다고 부담감 느낄 이유는 없지. 마지막 블록에 집중하고 여름 휴가를 기쁘게 맞이해볼까 한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