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출산이 두렵지 않다.

어제 사람들과 만나서 점심을 했다. 중간에 출산이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 답은 아니라고 했는데, 아직 출산이 임박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아니면 잘 몰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출산이 무섭지 않은 이유는 그런 게 아니다. 사실 그 순간엔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냥 출산이 임박한 순간에도 그 고통이 무섭지 않을 거란 것은 안다. 물론 긴장은 되겠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왜 그런걸까?

고통은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물리적 고통 자체를 두려워한 적은 없었다. 어떤 기약없는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두려워할 것 같다. 그러나 누구나 감내할 통과의례적 고통으로 어떤 특정 기간만 견뎌내면 되는 고통은 괜찮다.

내가 무서워하는 건 고통이 아니라 어떤 결과다. 내가 정신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어떤 결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거나 하는 종류의 결과 말이다.

물론 출산과정 중 애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마음 한 켠에조차 없진 않다. 그러나 난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고, 사람들의 직업윤리를 믿고, 어떤 실수가 있더라도 그걸 만회할 정도의 상황이 되리라 믿기에 그 두려움이나 불안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럴 확률 또한 낮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삶이 한결 쉬워진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그게 나이브한 생각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믿음은 그런 거 아니던가? 타인이 생각하는게 중요하지 않은 것.

연극 Svantes Lykkelige Dag (스반테의 행복한 날)

모듈 2였나. Svantes Lykkelige Dag라는 시를 수업 중에 접한 것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운율에 대해 배우며 어떤 상황을 묘사한 것인지 해석하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만 기억난다. 많은 덴마크인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 시에 대해 그 때 가졌던 인상은, 인생의 소소한 기쁨에 즐거워하는 덴마크인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Nørreport역에서 환승을 하다가 바로 아래의 사진과 함께 적힌 이 시의 제목과 마주쳤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Anders W. Berthelsen이 주연을 맡는 것을 봐서 더 눈에 띄었다. (이 배우는 덴마크에서 시작된 dogma 95 – 교리에 가까운 원칙과 순결선언문을 기반으로 한 특별한 영화제작방식 – 영화 (Festen, Mifunes Sidste Sang, Itanliensk for Begyndere 등) 에 많이 출연했고, Krønikken을 포함해 다수의 TV 시리즈에도 출연했다.)  연극!

덴마크에서 본 첫번째 연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다. 덴마크어로 된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읽지않고 발레 공연을 예매한 줄 알았던 것이 하필이면 연극이었다니. 덴마크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고, 덴마크어라고는 인사 외에는 아는 게 없던 시기였다. 발레를 먼저 고르고 2013-2014 시즌을 선택한 줄 알았더니, 그 시즌이 발레의 하위카테고리가 아니었다. 그냥 별개의 카테고리였는데, 내 멋대로 한국 웹사이트 방식에 익숙한 사고방식을 여기서 그대로 적용해 그렇게 이해한 것 뿐이었다. ‘악령을 발레로 해석하다니! 정말 흥미진진하겠는걸?’ 이라는 생각으로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예매한 것이 실수였다.

그걸 뒤늦게 알고나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갔는데, 그건 내 말도 안되는 착각이었음이 극 시작 후 10분만에 드러났다. 우선 원작을 그대로 상영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적 배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70년대를 풍미하던 히피즘을 배경으로 다 바뀌었는데, 음악도 파격적이고, 덴마크 극 문화를 전혀 모르던 내게는 무대 장치부터 너무 생경했다. 스토리를 모르는 것도 그렇지만, 극의 진행으로 미루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는 것 조차 힘들만큼 어려웠다. 등장인물은 또 어찌나 많은지. 러시아문학의 특성을 고려해봐도 그렇긴 하지만, 난 그 난해함에 압도되어버렸다.

결국 1시간 30분동안 앉아있다가 인터미션 때 도망을 치고 말았다. 더이상 남은 한시간 반을 그런 멍한 정신상태로 앉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랬던 나의 덴마크 첫 연극 감상은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겼더랬는데, 또 연극이라니! 그런데 자막이 나온단다. 영어, 덴마크어 그리고 아랍어로. 남편은 연극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혹시 가겠냐고 물어보니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가주겠다고 했다. 기대한 바 그대로여서, 우선은 다른 사람을 먼저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한번 가보자고 했는데, 그녀가 흔쾌히 승낙을 했다.

La Petanque에 들러 간단히 걀레뜨로 식사를 하고 호수를 건너 Nørrebro로 향했다. Nørrebro의 메인 거리인  Nørrebrogade만 보고 이 지역을 힙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약간 지저분한 지역으로 알고 있던 그녀는 이 메인거리를 중심으로 양쪽에 퍼진 작은 길들에 Hyggelig한 가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어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나와 옌스의 생활반경에서 약간 벗어나있어 친구들 만나는 거 아니면 안가게 되는 이 곳. 오래간만에 목요일 (작은 금요일이라고도 불리는…) 에 나가보니 그 릴렉스한 분위기에 나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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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외관

8시에 시작하는 연극에 맞춰 극장에 들어서니 안이 정말 아늑했다. 연령대가 높은 관객이 주를 이루고 있는 듯했으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아마 이 시를 발간되고, 사랑을 받았던 시기가 70년대라 주 관객층도 이 시를 즐겼던 당시의 젊은 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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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내부 휴게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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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연극이 시작되었다. 어라? 그런데 자막은? 자막이 나올만한 구석도 없는데다가 어디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자막을 볼 수 있는 앱이 따로 있단다. 그냥 자막이 나온다는 한 줄을 보고 그 아래 부연 설명을 잘 안읽은게 함정이었다.)

아뿔사. 나는 그렇다쳐도 내 친구는 어떻게 하나. 살면서 연극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이게 3번째 정도 되는 거라고 했는데, 나의 덴마크 첫 연극과 같은 경험을 안겨주게 되나? 그녀도 덴마크어를 배우고 있으니 이해할 수 있을까? 연극이 시작되며 내가 이해되는 양을 보아하니 그녀에겐 조금 더 어려울 텐데 과연 괜찮을까? 등등…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이 빠르게 교차했다.

그나마 그녀는 연극에 대해 읽어보고 왔고, 나는 아무런 배경지식을 쌓고 오지 않아서 비슷하게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연극은 Benny Andersen이 이 시집을 쓰며 마주한 자기 자신과는 다른, 자기가 닮고 싶고, 지향하고 싶은 인격, 마음 속의 갈등, 이런 것들을 가상의 친구인 Svante로 만들어냈던 것, 그리고 이 Svante와 자기의 진정한 모습이 만나 화해를 하며 온전한 자신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그린 것이었다. 결국 Svantes Lykkelige Dag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그렸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1막이 끝날 때까지 Svante가 본인이 아니야? 그럼 누구지? 하면서 많은 혼란속에 보다가 인터미션에서 프로그램을 조금 읽어보고나니 대충 그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고, 머리속의 많은 혼란이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았다. 2막이 시작되며 주인공이 Svante가 자기 속의 다른, 자기가 되고 싶어하는 지향속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게 융해되어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는게 보다 명확해졌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한 Svantes Lykkelige Dag 노래가 얼마나 좋던지. 여주인공인 Lise Baastrup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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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장면

우리 말이었으면 보다 쉬웠겠지만, 한 사람의 내면 속 분화된 인격을 여러 인물로 상징적으로 분화시켜 극화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도 조금 난해했었을 지도 모른다. 연극의 묘미란 극으로 풀어낸 상징을 찾아내는 데 있으니, 그 소기의 목적을 잘 달성한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2막부터 뇌에 과부하가 걸려 집중력을 상실했다는 그녀에게 힘든 경험을 안겨준 것 뿐이려나 하고 마음이 다소 무거웠으나, 집에 돌아와 즐거웠다는 메세지를 보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좋은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다가, 앞으로 여러가지 문화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를 찾은 것도 기뻤다.

Svantes Lykkelige Dag의 작가와 가수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라이브로 공연했던 영상, 그리고 그 시를 아래에 공유한다.

 

 

Svantes Lykkelige Dag

Se, hvilken morgenstund!
Solen er rød og rund.
Nina er gået i bad.
Jeg’ spiser ostemad.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lomsterne blomstrer op.
Der går en edderkop.
Fuglene flyver i flok
når de er mange nok.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Græsset er grønt og vådt,
Bierne har det godt.
Lungerne frådser i luft.
Åh, hvilken snerleduft!
Glæd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Sang under brusebad.
Hun må vist være glad.
Himlen er temmelig blå.
Det ka jeg godt forstå.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Nu kommer Nina ud,
nøgen, med fugtig hud,
kysser mig kærligt og går
ind for at re’ sit hår.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enny Andersen 이 쓴 시는 1972년에 출간된 ‘스반테의 노래’ 시집에 실렸으며, 가수 Povl Dissing이 노래를 부르고 Benny Andersen이 반주자가 되어 1973년 LP판으로 발매되었다.

Source: http://www.festabc.dk/1/svantes-lykkelige-dag

 

사족. Povl Dissing이라는 가수는 노래를 잘 부른다기 보다는 그만의 매력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은데, 사형수의 형집행 전 25분을 그린 아래의 노래를 보면 그가 얼마나 독특한 가수인 지 알 수 있다. 상황 묘사 후 아직 25분이 남았다, 아직 24분이 남았다, …, 아직 1분이 남았다, 하고 25번을 반복하다가, 마지막 상황 묘사를 마치고 음악이 멈추며 형이 집행되었음을 암시한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며 갈 수록 절박해져가는 그의 목소리에서 정말 형 집행을 앞두고 노래부르는 사형수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덴마크스러움이란?

11월 말이 되니 Spotify에 캐롤 믹스가 넘쳐난다. Julesange du kender (Christmas songs you know)라는 믹스가 추천으로 떠서 틀어보니, 덴마크 크리스마스 노래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Jul-Det’Cool이라는 노래가 첫곡으로 나온다. 이젠 나이가 꽤나 든 덴마크 래퍼인 Mc Einar의 노래인데, 소비지향적인 크리스마스를 덴마크인 특유의 아이러니한 유머로 비꼰 노래다.

Jul-Det’Cool by Mc Ei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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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MC Einar. (Source: BT)

Det skete i de dage i november engang
at de første kataloger satte hyggen i gang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ebal i Nisseland, familiernes fest
med fornøjet glimt i øjet, trækker folk i vintertøjet
til den årlige folkevandring op og ned ad Strøget
der bli’r handlet, pakket ind, og der bli’r købt og solgt
tøsne, snot i næsen, det’ pisse koldt
det er vinter, man forventer vel lidt kulde og sne
men det’ da klart at en såd’n sag må komme heuj bag på DSB
intet vrøvl har de forsvoret, det de helt sikre på,
men ved den første rim på sporet, går møllen i stå
folk de tripper, skælder ud, og ser på deres ure
og sparker efter invalide, ynkelige duer
der er intet, man kan gøre, de sure buschauffører
gør det svært at praktisere lidt julehumør
“Gå så tilbage for helvede” råber stodderen hæst
men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r er mænd, der sælger juletræer på alle åbne pladser
12 bevægelige nisser og en sort mekanisk kat
i et vindue ud mod Strøget trækker flere tusind watt
kulørte gavepakker i kulørte juleposer
selv i Bilka og i Irma og i alle landets brugser
er der ægte julestemning og gratis brune kager
der er hylder fyldt med hygge, der er hygge på lager
og hos damerne i Illum kan man få det som man vil
“Kontant eller på konto, hr.? Ska’ prisen dækkes til?”
de smiler og er flinke, mest for fruerne i minke
og gi’r gode råd om alt fra sexet undertøj til sminke
og vi andre fattigrøve, vi ka’ gå i Dalle-Valle
der er damerne så flinke, at de smiler pænt til alle
der er masser tøj i kasser, der helt sikkert passer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15.000 mennesker i Magasin
de har våde lædersko, de har halstørklæder på
de har overfrakker, gavepakker, masser de ska’ nå
men de hygger sig, sel’fø’lig gør de det
plasikstjerner, plasikgran og plastiksne
sætter stemning i systemer, det’ så nemt og nul problemer
køb blot julestuens julesæt med fire fine cremer
eller sukkerkrukker, pyntedukker, pænt, mondænt og ganske smukt
søde sæt med proptrækker, glas og øloplukker
fra en skjult højtalerinstallation,
“Et barn er født i Bethlehem” i Hammondorgelversion
vi’ traditionsbundne folk, i traditionernes land,
så vi hygger os, li’så fint vi kan
og særlig uundværlig, det er Magasin,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Højt fra træets grønne top”
“Mød julemanden klokken 13, 15, og 17 på julestuen på 3. sal”
“Vores velassorterede vinafdeling kan tilbyde et komplet gløgg-sæt for kun 39.95”
“Lille Øjvind på fem år er blevet væk fra sin mor, han kan afhentes i kundeservice”

“Jamen du godeste er det allerede…”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der er intet lavet om siden sidste år
det’ de samme ting vi spiser, det’ de samme ting vi laver
de samme ting i TV, de samme julegaver
samme pengeproblemer, det’ dyrt og hårdt
udelukkende overtrukne kontokort
overflod og fråds med familie og med venner
samvittigheden klares med en ulandskalender
det’ julefrokosttid, traditionspilleri, spritkørsel, utroskab, og madsvineri
vi har prøvet det før, vi ved præcis hvad der sker
slankekur i januar og alt det der
det’ et slid, men der er lang tid til næste år
det’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Jeg drømmer om en hvid sandstrand,
med palmetræer og sommervejr
der vil jeg fejre julen
i swimmingpoolen
langt væk fra sne og juletræer”

옌스는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걸 매우 웃기게 생각한다. 가사도 모르던 이 노래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접하게 되면서부터다. 출근 길에 화장하면서,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항상 들었는데, 거기서 이 노래를 정말 자주 틀어줬다.

옌스가 간혹 나보고 자기보다 더 덴마크인스럽다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다. 덴마크 캐롤을 좋아하는 것,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Ris a la mande (프랑스 메뉴인 척 하는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디저트)나 Æbleskiver를 먹고 싶어하는 것, 덴마크식의 self-irony 유머를 즐기는 것 등 말이다. 사실 self-irony 유머는 그냥 여기에 와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덴마크 문화와 맞아떨어진 개인적 특성일 뿐이지만…

그런데 막상 옌스는 덴마크인스럽지만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사람이기도 해서 진짜 덴마크인스러운 게 뭔지는 집 안팎을 두루 관찰하고 이야기를 골고루 듣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실제 옌스는 전형적 덴마크인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한다. 남들끼리는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는 공감하기 어렵고, 반대로 내 경험을 남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을 꼽아보자면… Rugbrød(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에서 주로 먹는 호밀빵으로 점심때 먹는다.)은 가족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행사같은 날 빼고는 안먹는 것 (자기는 어려서 평생 먹을 Rugbrød을 다 먹었다며…), 있으면 먹지만 Lakrids (감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각종 종교적 전통을 좋아하지 않는 점 (크리스마스때 선물 교환은 딱 조카들과 나에게만 하고, 가족들에겐 선물 안주고 안받는다고 못을 박아두었다.), 새로운 음식이나 새로운 문화, 언어를 배우는 것 등을 좋아하는 점, 덴마크를 좋아하지만 굳이 덴마크를 자랑스러워하거나 덴마크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거나 그런 게 없다는 점, 그래서 내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점, 덴마크 국기인 Dannebrog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맥주를 안좋아하는 점 등이다.

덴마크인스러운 점도 물론 많다. 운동을 정말 좋아해서 하루라도 운동을 빼놓는 날이 없다는 점, 매사 성실한 점, 개인생활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시하고 가사분담 참여비율이 높다는 점, 직업 윤리가 투철하다는 점,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점, 집에서 밤에 불 밝게 켜는 것 싫어한다는 점 (현광등은 정말 질색팔색한다. 한국가서 한두달 지내려면 적응하느라 고생 좀 할 듯), 겨울에도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자야하는 점, TPO에 맞는 옷을 잘 차려입는 것 좋아하고 패션에 대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점 (자기 것 쇼핑은 반드시 자기가 한다. 의견은 수렴하지만, 결정은 자기의 몫. ) 등

물론 이러저러한 특성을 굳이 덴마크인스러운 점과 그렇지 않은 점으로 나눴지만, 사실 외국인 남편과 그의 모국에서 살다보니 국민적 특성이란 것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개별특성의 스펙트럼이 평균으로부터 워낙 넓게 펼쳐져 있어 저 구분이 틀리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이 또한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 자기가 교제하는 사람과 준거집단을 중심으로만 살펴보게 되서 덴마크인스럽다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겐 전혀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도 많고, 내가 덴마크인스럽지 않다고 하는 것도 덴마크인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친구를 초대해서 음식을 넉넉히 하다보니, 다음날 저녁에 데워서 먹을 만큼 넉넉히 남았었는데, 난 그에 곁들일 탄수화물로 빵을 굽고 있는데, 옌스는 밥을 달라고 했다. 서양음식인데 밥을? 이라는 나의 반응과 달리 옌스는 내가 해준 쌀밥이 덴마크 어느 식당에서 먹는 쌀밥보다도 맛있다면서 그걸 달라하고, 간장에 참기름을 달라해서 그 쌀밥위에 끼얹어 먹는걸 보면서 기함했다. Rugbrød위에 남들과 다른 컴비네이션을 얹어먹는 걸 봐도 크게 놀라지 않는 옌스인 걸 생각해보면 그만의 기이한 조합도 딱히 놀랄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방송에서 “진정한 덴마크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걸로 이것 저것 다양하게 다룬다. 토론, 뉴스, 다큐멘터리 등등… 옌스는 그런 토론 자체가 정말 피곤하고 언론에서 덴마크인이라는게 뭐 대단한 거고 그게 얼마나 통일성이 있는 것이고 독창성이 있는 거라고 그걸 그렇게 따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공동체 의식, 개인주의 등 가장 핵심적인 가치만이 지켜진다면 사회는 항상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고, 개인마다 덴마크인다움에 대한 정의가 다 다른데 그걸 dansk함과 udansk함을 나누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 나에게도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인 다움이 있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이곳의 가치에 영향을 받으며 한국에서 갖고 있던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너도 덴마크인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내가 한국인인 것만큼 덴마크인도 되어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 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함께 덴마크인의 행복함의 원천에 대해서 휘게와 기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찾고 이를 홍보하고 수출하는 것도 피곤하다고 한다. 그냥 타인과 비교 별로 안하고, 현실감있는 목표를 정하고,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서열의식이 적고 자연환경이 좋은 편이어서 다른 나라사람들이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덜 받고, 그래서 행복한 거 아니냐고. 그게 우리에게 특별한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란다.

이럴 때 난 덴마크인이지만 덴마크인이기만 하지 않은 옌스와 결혼을 한게 참 안도가 된다고 할까? 안그래도 타국에서 살면서 적응할 게 많은데 그걸 강요당한다거나 기대를 받는다면 어땠을라나? 여기의 룰에 맞춰가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다름을 같음으로 맞춰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과, 내가 다른 건 옌스가 다른 덴마크인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다르다고 전제를 깔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리 없이 편입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고 적응을 도와주는 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이번에 새로 주문한 한국어 책에서 (한권을 드디어 끝냈다. ㅠㅠ) “하다”동사를 활용한 한국어 동사변형의 여러가지 유형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걸 패턴드릴로 연습한다고, 몇가지 동사를 주면서 이걸 같은 형식의 테이블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들어줬더니, 다음날 회사에서 출력을 해갖고 온 것을 보여주며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사실 옌스랑 나는 주중엔 퇴근 후 30분정도 그날 있었던 이야기 좀 하고, 같이 뉴스 보고, 각자 할 일 하다가 소파에서 30분 정도 같이 앉아 쉬고, 또 각자 할 일 하다가 잠자리 들어서 조금 이야기 나누는 것 정도가 일상이다. 각자 할 일 하다가 시덥잖은 말 한 두마디 던지면서 낄낄대는 것 외엔 자기 할 일 할 때는 자기 것만 따로 하기에 각자의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크다. 평일엔 저녁도 둘다 뉴스 보면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 간단히 먹으니까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게 둘이 필요로하는 공통사항이라 서로 이를 존중해주는 것이 참 좋고 고마운 거다. 우리는 서로 뭐 배우고 하는 거 좋아해서, 같이 있지만 또 각자 저녁에 배움의 시간을 가진다는 점에서 닮아서 정말 좋다고 하니까, 인생의 목적은 배우는 데 있는게 아니냐고 한다. 항상 옌스가 강조하는게 general education의 중요성인데, 이걸 덴마크인스러운 것이라고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옌스스러운 것이지.

이런 옌스와 살아서 딱히 문화충격을 받을 일이 없는 것도 있겠지만, 인도에서 겪은 문화충격이 워낙 커서 웬만한 다름에 충격을 크게 받지 않는 것도 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어떻게 적응하고 사느냐의 문제로 인식하면 되는가 싶기도 하고. 또 곰곰히 뒤를 돌아봐 생각해보면 나름 여기서도 큰 문화충격을 받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 힘든 시간들이 대부분 잊혀지고 그냥 그 틀에 내가 녹아들어가 바뀌어 더이상 놀라울 게 크게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다시 들춰보며 과거의 추억에도 잠겨보고, 스스로의 과오나 성과에서 배워도 보려고 별거 아닌 이런 생각의 조각들을 그래서 그때그때 남겨두는 거니까… 몇 년이 지나서 지금을 반추해보면 그땐 또 무슨 생각이 들런지…

새 블록의 시작 – 이 산뜻한 기분

항상 이렇게 시험이든 뭐든 한 템포 끊어주고 새로 시작하는 이벤트가 있는 것이 정신건강에 참 유익하다. 시험이 다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기분은 어찌나 산뜻한지. 아침에 일어나는 마음도 가볍고, 학교 가는 발걸음도 날아가는 듯 하다. 땅에 구르는 낙엽조차도 이쁘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절로 웃음으로 인사를 하게 된다. 내가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엄청 뚱한 표정을 멈추고 밝은 웃음으로 답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그 기분은 더욱이 좋다. 힘찬 발걸음으로 이번 학기 첫 수업을 들어갔는데, 수업 전 리딩을 마치고 가는 여유에 더욱 힘이 났었다. 과목이 하나 뿐이라 마음에 부담도 적고, 농업경제학의 Head of studies인 교수가 가르치는 Economic Efficiency and Benchmarking 과목은 교수의 오랜 경력과 민간과의 많은 공동프로젝트 경험 덕분인지 설명이 아주 명쾌, 명료했다. 생산 단위의 성과 측정은 과거 근무했던 은행에서나 KOTRA에서나 모두 KPI로 대변되는 단순한 성과측정방식에 기대고 있었기에 이보다 더 advanced한 성과평가 방식인 Data Envelopment Analysis와 Stochastic Frontier Analysis가 어떤 식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할지 궁금하고, 따라서 수업도 매우 기대가 된다.

행정적인 업무들도 미루지 않고 제때 처리하고자 국가에서 지급되는 학업지원금 SU를 육아휴직 기간에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학교 SU 담당 사무실과 우리 SCIENCE faculty 학생서비스 사무실 모두에 질의해두었다. 정부에 육아휴직 기간 중 추가 SU를 수급받는 건 온라인으로 쉽게 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답변을 받았는데,  이 기간 중 학적 처리 방식에 대해 학교 규정이 매우 애매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자세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달라고 보내두었다.

논문 주제도 결정하고 수퍼바이저도 대충 정해둬야 출산 및 육아휴직 기간에 천천히 시작할 수 있어서 희망 교수에게 여름에 미리 운을 띄워두었는데, 이 또한 구체화를 시켜야겠다 싶었다. 지난 주 세미나가 있어서 겁먹지 말고 빨리 착수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해두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만 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나같이 쉬는 기간이 없으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 나도 자극이 되어 오늘 도서관에 앉아 이것저것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싶은지만 정해져 있었는데, 바로 Environmental amenity/characteristics에 대한 economic valuation을 Revealed preference method를 통해 하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환경의 어떤 요소를 평가하고 싶은건지가 모호했고, 뭘 하고 싶은지가 애매했다.

그러다가 지난 학기에 코펜하겐 시와 컨설팅 코스에서 협업을 했던 프로젝트가 기억이 났다.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해서 했던 프로젝트로, 해수면 상승과 발틱해 상류에 폭우가 쏟아져 북해로의 유량 공급이 증가할 경우 발생할 Storm surge에 코펜하겐 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한 것이었다. 홍수 피해에 대한 Economic valuation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Revealed preference method과 GIS를 결합해 많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내 희망지도교수의 이메일을 찾으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기후변화적응 스페셜리스트라는 타이틀도 있는게 아닌가. 뭔가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예감이 좋았다. 내 관심 방법론과 분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고 뭔가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느냐고, 주제 분야 토론을 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더니, 아주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논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다고.

뭔가 움직이기 전엔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크고 뭐부터 해야할 지 잘 모르겠는데, 막상 손과 발을 움직여 구체화하려면 의외로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의 느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6개월동안 하나만을 파야 하는 논문은 자기가 관심있는 주제가 아니면 중간에 막혀서 허우적 거리고 지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들어왔다. 또한 교육을 마치고 처음으로 구하는 직장은 논문과 연계되서 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정도 전략적인 요소를 고려해 어떤 방법론을 택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 또한 들어왔다. 그래서 중요하다는 생각에 부담감만 백배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시작은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좋은 석사 논문들 보면 정말 큰 연구를 수행한 것들을 보았기에 그 과정 자체는 절대 쉬울리가 없다는 건 안다. 그러나 긴 시간 꾸준히 시간과 과정을 관리해가며 차근차근 나아가야 하는 길을 생각하면 좋은 시작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번 여름학기 수업을 들으며 여름방학이 짧아진 것과, 여름학기/가을학기 간 한주간의 방학도 없다는 것에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내 희망 지도교수와 연결의 끈을 갖게 된 것과, 그 때 고생한 덕에 지금 한과목만 들으며 논문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시간 여유가 조금 더 있기에 신문과 방송도 봐가며 덴마크어 학습도 병행할 수 있기도 하고, 출산 준비도 조금씩이나마 할 수 있을 테니 그 또한 좋은 일이고.

대학원 수업으로는 마지막이 될 블록을 맞아 시작부터 예감이 좋다. 나머지 기간동안도 잘 해서 논문 전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고, 논문 시작의 초석을 잘 닦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고 행복하겠다. 오늘 아침, 3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만 볼 수 있다는 불타는 아침 일출 하늘을 보았는데, 이 또한 좋은 시작을 알리는 그런 징조인 것만 같아 (뭐 그런거 안믿지만…) 더 기분이 좋다.

Master thesis seminar at IFRO, KU SCIENCE

There was a master thesis seminar for IFRO students at KU SCIENCE today. Heads of studies, who organized the seminar, said it was the first time they tried this type of introductory seminar for master’s programme students.

It was a very productive seminar to understand what we should expect and know in the process of thesis writing in the following semester. I will take my maternity leave for most likely a year starting from next semester, therefore, the process will start a year after. But no matter when I start writing my thesis, it was very good to know answers for following questions: how I should approach potential supervisors; how I should formulate idea and research questions when not knowing too well what to write about; how I should deal with problems such as poor research results turning out to be crappy due to low quality data or insufficient data; whether I can have a head start during the maternity leave without signing on a formal contract with my future supervisor.

The most relieving fact was that it is okay to come up with bad research results. Bad research results can produce a good master thesis depending on how to communicate the results in the paper, e.g. why the expected outcome based on theory is not observed in our empirical model; what it would have looked like if we had different datasets; what are the limitations of models that we used. If that is the case, we would not be able to publish our thesis in a journal, but what can we do if we encounter this situation? There are always risks of ending up in this situation. But this is not a professional researcher’s article that has to be published, but an outcome of a learning process to present what we have studied and found, and what we have learned from this.

Students who just finished their theses and defenses came to share their experience throughout the whole process of writing: how they started from the scratch; how they found their supervisors and group members in case of writing in groups;  how they dealt with situations like being stuck in the middle of different types of problems; importance of time management. It was good to know that not knowing where to start was not rare and a lot of other fellow students shared the same fears that I had.

It will be a challenging journey to conduct an independent project for six months. It is a long enough period of time to feel loneliness while tackling this big vague monster that we have to deliver at the end somehow. Hence, it is good to know what to expect, how to do, and so forth.

After the seminar, a small discussion and networking session with researchers at IFRO, who can provide us some guidance and offer potential project ideas. As I only had a vague idea about what kind of scientific methodology that I wanted to master with this thesis project, I stayed with our head of study, Søren, asking him some extra questions together with my fellow students. Discussion shed more lights on what I should do later on, e.g. where to browse relevant studies to inspire my own project, how to contact researchers before writing a formal contract with them.

The discussion was continued by some chats about the university reforms, PhD positions and fundings for PhD, and job prospects as an environmental economist. Well, the university reforms and budget cuts affecting PhD funding from research foundations are not favoring us at the moment. What Søren said is that PhD funding is very cyclical and now it is in its downward cycle. Arghh… Anyway, I could ask him many questions that I was curious about but did not ask before, as I did not pursue to find the time to have a meeting with him.

The seminar and following discussions lasted about two hours and a half and, in the end, it was very satisfying. I hope more could have come and joined us today, as some could not make it.

산파 면담 후 가을 산책

2개의 블록 사이의 일주간의 방학. 이 타이밍에 산파와의 면담이 딱 걸려서 편히 다녀왔다. 10월 정도부터 배가 좀 불러와서 자전거 타기를 관뒀는데, 그러고 나니 유산소운동이 크게 부족해졌다. (여기 임산부들은 막판까지 타는데, 난 팔이 짧아서 앞으로 많이 숙여야 하는 탓에 그게 불편해진 타이밍부터 열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해가 쨍하고 날도 푹해 옳다구나 싶어 산책을 겸해 병원까지 걸어갔다 왔다.

가는 길 풍경도 좋고, 적당히 싸늘한 공기가 어찌나 쾌적한지 가을이 온 게 행복한 그런 날이었다. 우리보다 위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 해가 드는 각도가 철따라 급격하게 변하는데, 그러다 보면 같은 풍경도 참 달리보인다. 빛이 드는 곳과 그림자가 지는 곳이 바뀌니 그 전엔 눈에 띄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같은 건물조차 다른 느낌으로 보인다. 늦가을에 들어서면서 나무들도 거의 헐벗기 시작하지만, 아직까지 겨울의 잿빛 느낌은 아니고 햇살도 아직 따뜻한 색감을 보여 마음이 아직까지는 춥지 않다. 작은 하천가를 수북히 덮던 수초들도 추워 시들고 나면 물이 좀 더 많이 보인다.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샛소리가 안들린다는 것이다. 남녘으로 갈 철새들은 이미 날아갔고, 텃새들은 동절기 준비에 바쁜 모양이다. 간혹 보이는 까치나 갈매기가 그나마 여기에 새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활엽수의 낙엽들은 축축하게 젖어 땅에 납작하게 붙어있고, 서서히 분해가 시작되어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밑에 작은 곤충류가 얼마나 바삐 움직이고 있을런지. 그런 낙엽들 아래에는 공벌레가 많더라.

예전 사택에서 살 때, 나무가지를 좀 쳐내고 지친 나머지 일주일 뒤에 낙엽들을 치운 적이 있는데, 그걸 들자마자 쏟아져나온 공벌레들에 얼마나 기함을 했던지. 대학원에 들어와서 생태학을 배우면서야 작은 곤충들의 역할에 대해 알 게 되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공포에서 호기심으로 약간 바뀌었다. 벌레와 흙을 만지기 무서워하는 나를 보고 유럽 친구들이 얼마나 나를 신기하고 웃기게 보던지. 어떻게 환경경제를 공부할 생각을 했냐고. 자연에 대해 너무 모르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굳이 내 변명을 하자면, 난 환경 보호에 관심이 있고 그에 접목해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환경에 대해 잘 모르면 배우면 되니까.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쭉 자란 내가 자연에 대해 잘 모르는게 너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삭막하게 자랐나 싶다.

10월 중순쯤에 위치하는 한 해의 42번째 주가 지나면 비가 안오는 날에도 땅이 항상 젖어있고 축축하다. 그래서 그 시기가 지나면 감자가 다 썩는다고 애들 손까지 빌어가며 감자를 캐던 과거의 역사를 반영하는게 42번째 주에 있는 게 가을 방학인데, 감자방학 (kartoffelferie) 으로도 불린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옌스는 땅이 젖으면 바퀴의 그립이 안좋아져서 미끄러지는 등의 사고가 나기 좋다며 이 계절의 도래를 안좋아하는데, 사실 하늘이 맑을 땐 약간 땅이 축축한 느낌이 난 좋더라. 비온 뒤의 상쾌함과 비슷한 기분을 낼 수 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흙과 풀냄새를 많이 느낄 수 있어서 자연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 듯한 착각을 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산파와의 약속이 10시에 있었어서 그게 끝나고 돌아오던 시각은 약 10시 반. 다들 각기 바쁠 시간인지 주택가인 우리 동네에는 사람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적했고, 하천을 따라 걷는 30분동안 몇 명 만나지 못했다. 자주 놀던 오리들도 다 떠나고. 그래서 이 좋은 풍경을 거의 혼자 느끼는 것 같아 사치를 부리는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산파가 내 배를 여기저기 꼼꼼히 눌러가며 만지고 줄자를 대고 길이를 재보고, 레퍼런스 테이블 같은 것을 찾아보더니 대충 하나는 1.3 킬로 정도이고, 자궁의 크기, 아기 보두 내 주차수에 맞게 크고 있다고 해주었다. 하나가 딱국질 할때마다 오른쪽 아래에서 경련이 느껴지길래 애가 옆으로 누워있다보다고 약간 걱정을 했는데, 머리가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쳤지만 아래 있다며 잘 있다고 알려주길래 안심했다. 다들 이렇게 원시적인 듯한 방법으로 해도 애 낳오면 대충 비슷하게 보는 거 보면 산파들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나도 하나 나오고 보면 산파들의 이런 촉진의 정확도를 가늠해 보려 한다.

임신성 당뇨나 단백뇨 수치 등도 모두 정상이고, 혈압도 극히 정상이다. 다음달에 부모준비 교실이 3차례 있다고 해서 병원 가서 열심히 들어보려 한다. 영어로 된 과정은 한시간 반짜리 한번이던데, 덴마크어로 하는 건 두시간짜리 세번짜리 과정이길래, 옌스와 그걸로 가보려 한다. 그거 알아보라고 자꾸 옌스가 재촉을 해대길래 잊지 않고 물어봤는데, 마침 12월에 하는게 있다고 하니 거기 가서 하라는 것들 좀 해봐야겠다. 외국인에 대해 꾸준히 배려는 하지만, 덴마크 살면서 덴마크어 못하면 손해보는 순간들이 꽤 되는 것 같다.

다음 블록 리딩리스트도 나오고 했으니, 이제 진정한 의미의 방학은 끝났다. 다음주 시작할 과정 준비를 하며 주말을 보내야하겠다. 그 전에 이런 좋은 날씨가 있어서 상쾌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던 게 참 좋았다. 오늘은 점심으로 삼겹살 김치덮밥을 해 먹어야지. 친구가 선물해준 맛있는 집김치로 메인 재료만 스팸, 연어, 삼겹살로 바꿔가며 김치볶음을 해먹고 있는데, 세번째 여는 오늘이면 다 끝날 예정이다. 덕분에 아주 맛나게 먹었네. 좋은 가을날이다.

 

 

나의 덴마크어 학습방법

모듈 6를 꼭 듣겠다는 마음으로 Prøve i Dansk 3 시험을 계속 미뤄왔다. 모의 시험으로만 보면 우수한 성적은 아니더라도 이미 통과할 수 있었던게 벌써 7~8개월 전이니까. 읽기, 듣기, 구술, 작문 시험 모두 10점 또는 12점을 받아야 모듈 6를 들을 수 있기에 완전히 준비될때까지…라는 마음으로 오기를 부려왔다. 6개월을 쉬고 다시 등록했다가 4번 나가고 수업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대학원 공부만으로 정신적으로 벅차졌고, 새로운 선생님은 시험준비에만 몰입해 수업을 진행하는 탓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 배우면 시험은 따라오게 되어있다는게 내 시험 공부의 지론이다. 그래야 시험성적과 언어의 수준이 따로 놀지 않게 되어 있으니까. 이런 건 어떻게 표현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런건 시험에 중요하지 않다고, 시험에 복잡한 문장 쓰지 말고 간단히,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게 적당한 문형을 활용해서 쓰라고 하더라. 같은 모듈 5 선생님인데도 그 전 선생님과는 너무 달랐다. 빠르게 의욕을 잃고나서는 안그래도 큰 마음 먹고 가야하는 덴마크어 수업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덴마크어 공부를 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나 하고 싶은대로 공부하다가 나중에 시험 치고 싶을 타이밍 직전에나 학원에 다시 가야겠다.

그래서 하는게 닥치는 대로 방송을 보는 것이다. 드라마, 뉴스, 다큐멘터리 등. 집에 TV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국영방송인 DR (Danmarks Radio)만 시청할 수 있다. 처음엔 자막을 주로 깔고 보다가 요즘은 자막 없이 보기도 한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는 방법이라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본다.

신문 기사를 하나 정해서 필사를 하며 모르는 단어를 찾는다. 예전엔 대충 이해하면서 읽었다 하면 이제는 완전히 이해하려고 읽는다. 짧은 기사야 금방 읽지만, 신문 양면을 꽉 채운 특집기사는 다 읽는데 두시간 이상 걸린다. 긴 기사를 읽는 건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반복되는 어휘가 몇 개씩 꼭 있어서 그런 단어들을 외우기 좋다. 그리고 이런 기사는 일반적으로 중요한 경우가 많아서 덴마크 사회와 정치, 문화 등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영어를 배울 때부터 느낀 건데, 내 발음이 정확해야 상대 말이 들린다. 우리말 식으로 발음을 해석하지 않고, 원어민을 귀찮게 해서 내 발음과 상대의 발음의 차이를 찾아내서 같게 만들면, 상대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귀가 트이는 속도의 차이는 내가 얼마나 그 발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물론 그걸 인지해도 발음으로 복제해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걸 해내면 귀가 금방 트인다. 그런데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걸 문장으로 엮었을 때 어디에 강세를 두어야 하는지, 어떤 발음은 흘리게 되는지 등도 알아야 그게 대화로 옮겨졌을 때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듯이 어느 나라 말이든 한 음절 음절 똑똑히 발음하며 대화하는 언어는 설령 있다 하더라도 많지 않을테니까.

예전엔 옌스로부터 인터네이션 교정을 많이 받았다. 신문 기사나 책 등을 한 문장씩 읽어가며 강세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걸 잘 못하면 상대가 내 말을 잘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게 엄청 도움이 되서 이제는 새로운 문장을 읽거나 말할 때 큰 오류 없이 문장 속 중요 어휘와 문법적 요소를 찾아 강세를 바르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발음이나 강세로만 놓고 보면 외국인이란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다고 할 정도니 이 부분에 내가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 알 수 있다.

2014년 8월 중순부터 덴마크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이제 2년 3개월이 되었다. 조금 독학으로 찾아 읽은게 5월부터니까 그것까지 치면 2년 6개월. 대충 2년 정도 지나서부터 유럽 언어공통기준으로 중급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그런데, 언어가 중급 이상으로 늘기 시작하면 더이상 타인 주도의 학습으로는 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기가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초급이나 중급에서는 조금만 해도 느는 자기의 말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쉽게 할 수 있는데, 고급부터는 미묘한 문장 구성과 내용의 발전, 어휘의 배가 및 활용도 증진, 언어 구사의 능숙함 등에서 늘어나는 거라 하루가 다르게 느는 것을 느끼기엔 어렵다. 따라서 스스로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고 당근을 주지 않으면 꾸준히 하기 참 어렵다.

덴마크어 수업을 쉬는 동안 드라마 보고 띄엄띄엄 신문 좀 읽는 것 외에는 열심히 안했는데, 대학원 슬럼프 3주간의 기간 동안 지난 시즌 재상영이나 새시즌이 시작된 드라마 3개와 저녁 뉴스를 열심히 봤다. 완전 딴짓은 아니라는 자위를 하며. 그런데 그게 듣기에 도움이 되는게 새삼 또 느껴지니까 또 다시 동기부여가 되더라.

마지막 블록은 어려운 과목 하나만 들으면 된다. (옌스가 듣더니, 그거 어려운 수업인데… 란다. 왠지 더욱 오기가…) 그러면 남은 시간엔 덴마크어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공부하려한다. 그리고 옌스가 책 한권을 다 떼서 그 책에 있는 표현을 갖고 이야기 몇 편을 써달라 한다. 대화체 이야기, 서술형 이야기 등 섞어서. 이미 대화체 한편은 썼는데, 옌스도 참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열심히 한다. 이제 간혹 전화통화 하면 한국어로만 대화하거나, 산책 나가있는 동안엔 한국어만 쓰기 등의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예전 내가 덴마크어를 배우던 초기에 쓰던 방식인데, 그게 참 도움이 되었다. 옌스가 나 말고 한국어라곤 쓸 데도 없는 환경에서 완전 독학으로 이만큼 온 게 놀랍다.

서로 주고 받거니 하면서 양쪽의 언어를 배우는 건 즐겁다. 고맙기도 하고. 서로의 언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하나가 보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언제 내 덴마크어가 원어민 수준으로 올라갈 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3년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거라는 낙관을 해본다. 2년 뒤엔 취업시장으로 나서야 하는데, 일할 수준으로는 충분히 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이 들어 영어 말고 제2외국어를, 특히 덴마크어를 배워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게 꼭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주말 손님 초대상

지난 주말 손님을 초대했다. 커플 저녁. 친구의 출산 예정일이 그 다음 주인데, 출산 중 첫째애를 돌봐주기로 했다하여 혹시나 그 날 출산하게 되면 갑작스레 못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준 상황. 실제 그 날 낮에 애가 태어나 저녁 식사가 한시간 뒤로 밀렸으나 운이 좋게도 출산이 빠르게 진행되어 계획한 날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유쾌했던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네시간 동안 계속된 담소가 즐거웠다. 내 커플 인간관계가 옌스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주로 이뤄지는데, 그 중심이 커플 당사자의 양쪽에 어느정도 분배가 되어야 장기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둘의 인생이 만난다는 걸 인간관계 형성에서도 느낄 수 있기에. 특히 내가 이민생활을 해서 그런게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역사, 문화를 공유하는 친구가 있는 건 의미가 또 다른 것 같다. 그래서 국제커플간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 중요하다.

후무스와 화이트브레드칩, 크렘프레시와 딜로 버무린 연어를 넣은 핑거파이쉘을 에피타니저로 준비하고, 갖은 채소로 만든 바질페스토 쿠스쿠스 샐러드와 모과드레싱과 토스티드 호두를 넣은 사과 윈터샐러드를 곁들여, 감자/고구마를 밑에 깔고 오븐에 구운 닭다리 요리를 메인으로 준비했다. 디저트로는 옌스의 크렘브륄레와 오렌지 소르베에 이어 달콤한 디저트와인과 칸투치니를 내었다. (주 1회 한잔은 괜찮다니까, 나도 한잔. 😉 임산부의 음주라는 사치는 덴마크니까 가능하다. 흠흠. 좋네.)

배가 터지게 먹을 걸 알고 있어서 아침, 점심 간단히 해결했지만, 여전히 배는 터질 것 같았다. 약간 음식을 여유있게 준비했기에 다음 날 저녁 요기거리가 될 만큼이 딱 남았다.

손님을 초대하면 좋은 점이 사치스럽다는 생각 없이 꽃을 집에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나혼자 보자고 꽃을 사올 때면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날엔 자신있게 한다발 집어들고 들어올 수 있는 것. 그리고 손님이 갖고 오는 선물도 기대가 된다. 그날 같이 마실 와인이나 초콜렛이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날과 같이 예상하지 못했던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을 수도 있는데, 집에서 직접 담근 맥주와 김치의 맛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

우리가 아주 즐겁고 유쾌한 저녁을 보낸 것처럼 그들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앞으로 있을 교류가 더욱 기대된다. 이제 임신도 30주차에 접어들었는데,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해서 장 보고,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까지 하루에 바삐 움직이며 다 처리하는게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임신 전에도 항상 토요일 손님초대 = 빡빡한 일정, 이런 공식이 성립되서 다음 날엔 뻗곤 했는데, 이젠 요령이 늘어 다음 날 뻗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냥 배도 좀 뭉치고 힘들더라. 출산 전까지 누군가를 더 초대한다면 (그러려는 계획이었는데) 좀 더 가벼운 디너를 준비하거나 출산 뒤로 미루든가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준비한 만큼 보람이 있었던 즐거운 저녁이었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내가 아침형인지 저녁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몸이 영 불편해 잠을 잘 못자서 일찍 깨는 것이 나를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필요조건은 형성한다. 다만 주로 따뜻한 침대에서 뭉게고 누워 인터넷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아침녘에 다시 토막잠에 들곤 하니 이를 생산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가, 뭘 하려는 욕구가 차오른다. 여름 방학이 끝났을 때완 사뭇 다르다. 아마 한국을 짧게 다녀오자마자 정신없이 학기를 시작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직전 1년동안 쌓여온 스트레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새 학기가 시작해서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생각이다. 여하튼간에 지금은 그런 스트레스 없이 대학원의 마지막 수업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어서 그런지 마음과 머리 둘 다 가볍다.

이번 주 중 처리할 일의 목록을 정리하고나니 6시가 되었다. 어젯밤 써놓은 할머니께 드릴 편지도 봉투에 담아 주소를 쓰고 나니 마음의 짐도 덜어 홀가분하기까지 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편지 쓸 마음의 여유가 영 나지 않았는데, 시간의 여유가 아예 없던 것도 아닌데 못쓰고 있으니 그게 다시 마음의 짐으로 돌아왔다. 아직 새카만 밤 하늘엔 큰 달이 약간 붉은 기를 보이며 나지막히 걸려있다. 책상에 앉아 창밖으로 걸린 달을 보니 분위기 참 오묘하구나. 오늘 아주 오래간만에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공전을 한다더니 수퍼문이긴 한가보다.

옌스가 일어나기까지는 아직도 50분의 시간이 남았다. 조용하게 클래식 음악을 틀어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기분이 상쾌하다. 커피를 한잔 내려왔더니 약간 으슬으슬하던 몸에 온기가 돈다. 이런 평화로운 순간은 앞으로 두 달여 후면 없어질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참 이상하다. 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을 하면 되는데, 왜 그걸 미루면서 더 스트레스를 받을까. 차라리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미리부터 일을 시작하면 될텐데. 예전엔 정말 부지런했는데. 요즘 내 미래의 꿈을 별로 안꿔서 그런 것 같다. 안분지족의 삶이 목표상실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잘 좀 챙겨봐야겠다.

남은 시간은 책과 신문을 읽어야겠다. 아침형 인간으로 다시 탈바꿈을 해보는 것도 고려해보며…

긍정의 에너지와 좋은 사람들

언젠가 말의 힘을 깨달은 적이 있다. 짜증이 나던 어느 날이었다. 시작은 작은 짜증이었는데, 그걸 입 밖으로 반복해서 내뱉었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하고. 그렇게 말하고 나니 정말 짜증이 폭발할 것처럼 넘쳐흘렀다. 그 근래에 그렇게 짜증난다는 말을 내뱉으며 짜증나는 상황을 다루고 있었는데, 그렇게 감정이 오히려 증폭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짜증을 되려 불러일으키고 있다니…

서른이 되었던 해, 지금은 뉴욕에 가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라고 김혜남 박사가 쓴 책을 추천해주었다. 인도에서 힘겹게 지내며 삶의 하루하루를 불평으로 채워가던 나에게 그 나이의 사람들이 고민하는 내용과 그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쓴 책이었다.

그 책을 필두로 해서 많은 심리학 책과 글들을 읽었는데, 하나같이 언급하는 것은 마음 또한 단련을 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신체에 근육이 있어서 우리가 이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훈련을 해야 하듯이 마음 또한 그렇게 단련을 해야한다는 것.

연애에 있어서 자신감이 없고 자기애가 부족했던 나를 과연 정말 사랑하게 되고 자신을 갖게될 수 있을까 라는 불신도 있었고, 정말 마음이 훈련할 수 있는 대상일까 하는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해보지 않고는 확인조차 할 수 없었기에 책들이 시키는 일들을 해봤다.

이러한 마음 수련은 사실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실제 책 몇권 읽고 몇 달 한다고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좀 나아졌나 싶다가 어떤 일이 있고나면 다 소용없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서 되돌아보니 30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여러면에서 달라졌다.

예전보다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나에 대해 보다 믿게 되었다. 두려움이 간혹 몰려와 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과연 내가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 두려움이 느껴지고 피하고 싶어진다. 힘든 순간이 올 때, 다 짚어치우고 숨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고, 중간에 포기해버리고자하는 생각도 든다. 자기 연민에 빠지며 내가 가장 힘든 사람인 척 하며 비련의 주인공으로 마냥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가치를 확인해야만 내 존재의 의미를 찾던 약한 과거의 내가 나를 조종하려 하는 시험에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렇지 않다고 이러한 유혹과 의심을 물리칠 힘도 생겼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 때, 이에 관심을 두고 왜 그럴까 생각하는 것이 이러한 생각을 없애는데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이런 생각이 먹고 살 먹이거리를 던져주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아… 이런 생각이 또 찾아왔구나. 그냥 내가 하던 거 포기하지 않고 하면 돼. 약간의 슬럼프가 왔다가 갈거야. 그냥 감기같은 거야.’ 라는 식으로 마음을 다지고 더이상 이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내 주변의 작은 것에 감사함을 갖고,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고, 이를 표현하고 내가 할 일을 조금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면 이런 것들은 서서히 자리를 잃고 떠나가더라.

그래서 긍정의 에너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긍정의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주변인도 중요하다. 그런 긍정의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나도 쓸데없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좋은 시선에 나도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으니까.

자기를 비하하고, 타인과 비교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드러내 연민을 얻고 거기에서 힘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은 오래 교제하기가 힘들다. 누구나 삶에 힘든 순간이 있고,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 남과 짐을 나눠지고 싶을 수 있다. 가까운 이들을 위해 내 어깨 내어주는 거 힘든 일 아니다. 그러나 가깝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거라며 가까움의 증표로 자신의 힘든 일만을 공유하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기 힘들다. 내가 그 부정적 에너지의 덤핑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의 기쁜 일을 두고도 자기의 어려움과 대비해 자기의 힘든 처지만을 부각하면 정말 기쁜 일을 축하받아야 할 주인공이 마냥 기쁨을 표할 수도 없고,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러한 인간관계는 멀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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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진찍는 뒷모습.  쪼그리고 앉았을 때 찍으려했는데. 

요즘 새로이 알게 된 사람들이 있다. 다들 긍정적인 사람들이고 만나면 여러가지 배울 수 있는게 많다. 각자 처한 여건도 다르고 관심있는 분야도 달라 화제가 다양한 게 좋다. 그 중 특히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생겼는데, 가까운 곳에 살기도 하고 생각도 잘 맞아서 만나면 참 즐겁다. 그리고 긍정의 에너지가 나에게도 힘이 된다. 사실 이 친구와는 새로이 알게 되었다고 하기에 알고 지낸지 거의 1년이 되어가는데,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가까워지다가 요즘 부쩍 가까워졌다. 이 친구도 이 나라에서 정착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마음이 확 더 가까워졌다고나 할까. 대학원 친구들과도 시간이 지나며 이것저것 생각을 좀 더 공유하고 가까워져서 이 또한 좋다.

멀리 떨어져서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나의 오래된 친구들과 동료들이 그립고, 그들을 자주 못보는 게 참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한켠에 그대로 두고 다른 한켠을 또 새로운 사람을 향해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과 순간이 하나의 기회가 되기도 해 또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