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블록의 시작 – 이 산뜻한 기분

항상 이렇게 시험이든 뭐든 한 템포 끊어주고 새로 시작하는 이벤트가 있는 것이 정신건강에 참 유익하다. 시험이 다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기분은 어찌나 산뜻한지. 아침에 일어나는 마음도 가볍고, 학교 가는 발걸음도 날아가는 듯 하다. 땅에 구르는 낙엽조차도 이쁘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절로 웃음으로 인사를 하게 된다. 내가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엄청 뚱한 표정을 멈추고 밝은 웃음으로 답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그 기분은 더욱이 좋다. 힘찬 발걸음으로 이번 학기 첫 수업을 들어갔는데, 수업 전 리딩을 마치고 가는 여유에 더욱 힘이 났었다. 과목이 하나 뿐이라 마음에 부담도 적고, 농업경제학의 Head of studies인 교수가 가르치는 Economic Efficiency and Benchmarking 과목은 교수의 오랜 경력과 민간과의 많은 공동프로젝트 경험 덕분인지 설명이 아주 명쾌, 명료했다. 생산 단위의 성과 측정은 과거 근무했던 은행에서나 KOTRA에서나 모두 KPI로 대변되는 단순한 성과측정방식에 기대고 있었기에 이보다 더 advanced한 성과평가 방식인 Data Envelopment Analysis와 Stochastic Frontier Analysis가 어떤 식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할지 궁금하고, 따라서 수업도 매우 기대가 된다.

행정적인 업무들도 미루지 않고 제때 처리하고자 국가에서 지급되는 학업지원금 SU를 육아휴직 기간에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학교 SU 담당 사무실과 우리 SCIENCE faculty 학생서비스 사무실 모두에 질의해두었다. 정부에 육아휴직 기간 중 추가 SU를 수급받는 건 온라인으로 쉽게 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답변을 받았는데,  이 기간 중 학적 처리 방식에 대해 학교 규정이 매우 애매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자세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달라고 보내두었다.

논문 주제도 결정하고 수퍼바이저도 대충 정해둬야 출산 및 육아휴직 기간에 천천히 시작할 수 있어서 희망 교수에게 여름에 미리 운을 띄워두었는데, 이 또한 구체화를 시켜야겠다 싶었다. 지난 주 세미나가 있어서 겁먹지 말고 빨리 착수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해두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만 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나같이 쉬는 기간이 없으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 나도 자극이 되어 오늘 도서관에 앉아 이것저것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싶은지만 정해져 있었는데, 바로 Environmental amenity/characteristics에 대한 economic valuation을 Revealed preference method를 통해 하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환경의 어떤 요소를 평가하고 싶은건지가 모호했고, 뭘 하고 싶은지가 애매했다.

그러다가 지난 학기에 코펜하겐 시와 컨설팅 코스에서 협업을 했던 프로젝트가 기억이 났다.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해서 했던 프로젝트로, 해수면 상승과 발틱해 상류에 폭우가 쏟아져 북해로의 유량 공급이 증가할 경우 발생할 Storm surge에 코펜하겐 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한 것이었다. 홍수 피해에 대한 Economic valuation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Revealed preference method과 GIS를 결합해 많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내 희망지도교수의 이메일을 찾으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기후변화적응 스페셜리스트라는 타이틀도 있는게 아닌가. 뭔가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예감이 좋았다. 내 관심 방법론과 분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고 뭔가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느냐고, 주제 분야 토론을 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더니, 아주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논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다고.

뭔가 움직이기 전엔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크고 뭐부터 해야할 지 잘 모르겠는데, 막상 손과 발을 움직여 구체화하려면 의외로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의 느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6개월동안 하나만을 파야 하는 논문은 자기가 관심있는 주제가 아니면 중간에 막혀서 허우적 거리고 지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들어왔다. 또한 교육을 마치고 처음으로 구하는 직장은 논문과 연계되서 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정도 전략적인 요소를 고려해 어떤 방법론을 택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 또한 들어왔다. 그래서 중요하다는 생각에 부담감만 백배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시작은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좋은 석사 논문들 보면 정말 큰 연구를 수행한 것들을 보았기에 그 과정 자체는 절대 쉬울리가 없다는 건 안다. 그러나 긴 시간 꾸준히 시간과 과정을 관리해가며 차근차근 나아가야 하는 길을 생각하면 좋은 시작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번 여름학기 수업을 들으며 여름방학이 짧아진 것과, 여름학기/가을학기 간 한주간의 방학도 없다는 것에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내 희망 지도교수와 연결의 끈을 갖게 된 것과, 그 때 고생한 덕에 지금 한과목만 들으며 논문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시간 여유가 조금 더 있기에 신문과 방송도 봐가며 덴마크어 학습도 병행할 수 있기도 하고, 출산 준비도 조금씩이나마 할 수 있을 테니 그 또한 좋은 일이고.

대학원 수업으로는 마지막이 될 블록을 맞아 시작부터 예감이 좋다. 나머지 기간동안도 잘 해서 논문 전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고, 논문 시작의 초석을 잘 닦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고 행복하겠다. 오늘 아침, 3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만 볼 수 있다는 불타는 아침 일출 하늘을 보았는데, 이 또한 좋은 시작을 알리는 그런 징조인 것만 같아 (뭐 그런거 안믿지만…) 더 기분이 좋다.

Master thesis seminar at IFRO, KU SCIENCE

There was a master thesis seminar for IFRO students at KU SCIENCE today. Heads of studies, who organized the seminar, said it was the first time they tried this type of introductory seminar for master’s programme students.

It was a very productive seminar to understand what we should expect and know in the process of thesis writing in the following semester. I will take my maternity leave for most likely a year starting from next semester, therefore, the process will start a year after. But no matter when I start writing my thesis, it was very good to know answers for following questions: how I should approach potential supervisors; how I should formulate idea and research questions when not knowing too well what to write about; how I should deal with problems such as poor research results turning out to be crappy due to low quality data or insufficient data; whether I can have a head start during the maternity leave without signing on a formal contract with my future supervisor.

The most relieving fact was that it is okay to come up with bad research results. Bad research results can produce a good master thesis depending on how to communicate the results in the paper, e.g. why the expected outcome based on theory is not observed in our empirical model; what it would have looked like if we had different datasets; what are the limitations of models that we used. If that is the case, we would not be able to publish our thesis in a journal, but what can we do if we encounter this situation? There are always risks of ending up in this situation. But this is not a professional researcher’s article that has to be published, but an outcome of a learning process to present what we have studied and found, and what we have learned from this.

Students who just finished their theses and defenses came to share their experience throughout the whole process of writing: how they started from the scratch; how they found their supervisors and group members in case of writing in groups;  how they dealt with situations like being stuck in the middle of different types of problems; importance of time management. It was good to know that not knowing where to start was not rare and a lot of other fellow students shared the same fears that I had.

It will be a challenging journey to conduct an independent project for six months. It is a long enough period of time to feel loneliness while tackling this big vague monster that we have to deliver at the end somehow. Hence, it is good to know what to expect, how to do, and so forth.

After the seminar, a small discussion and networking session with researchers at IFRO, who can provide us some guidance and offer potential project ideas. As I only had a vague idea about what kind of scientific methodology that I wanted to master with this thesis project, I stayed with our head of study, Søren, asking him some extra questions together with my fellow students. Discussion shed more lights on what I should do later on, e.g. where to browse relevant studies to inspire my own project, how to contact researchers before writing a formal contract with them.

The discussion was continued by some chats about the university reforms, PhD positions and fundings for PhD, and job prospects as an environmental economist. Well, the university reforms and budget cuts affecting PhD funding from research foundations are not favoring us at the moment. What Søren said is that PhD funding is very cyclical and now it is in its downward cycle. Arghh… Anyway, I could ask him many questions that I was curious about but did not ask before, as I did not pursue to find the time to have a meeting with him.

The seminar and following discussions lasted about two hours and a half and, in the end, it was very satisfying. I hope more could have come and joined us today, as some could not make it.

산파 면담 후 가을 산책

2개의 블록 사이의 일주간의 방학. 이 타이밍에 산파와의 면담이 딱 걸려서 편히 다녀왔다. 10월 정도부터 배가 좀 불러와서 자전거 타기를 관뒀는데, 그러고 나니 유산소운동이 크게 부족해졌다. (여기 임산부들은 막판까지 타는데, 난 팔이 짧아서 앞으로 많이 숙여야 하는 탓에 그게 불편해진 타이밍부터 열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해가 쨍하고 날도 푹해 옳다구나 싶어 산책을 겸해 병원까지 걸어갔다 왔다.

가는 길 풍경도 좋고, 적당히 싸늘한 공기가 어찌나 쾌적한지 가을이 온 게 행복한 그런 날이었다. 우리보다 위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 해가 드는 각도가 철따라 급격하게 변하는데, 그러다 보면 같은 풍경도 참 달리보인다. 빛이 드는 곳과 그림자가 지는 곳이 바뀌니 그 전엔 눈에 띄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같은 건물조차 다른 느낌으로 보인다. 늦가을에 들어서면서 나무들도 거의 헐벗기 시작하지만, 아직까지 겨울의 잿빛 느낌은 아니고 햇살도 아직 따뜻한 색감을 보여 마음이 아직까지는 춥지 않다. 작은 하천가를 수북히 덮던 수초들도 추워 시들고 나면 물이 좀 더 많이 보인다.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샛소리가 안들린다는 것이다. 남녘으로 갈 철새들은 이미 날아갔고, 텃새들은 동절기 준비에 바쁜 모양이다. 간혹 보이는 까치나 갈매기가 그나마 여기에 새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활엽수의 낙엽들은 축축하게 젖어 땅에 납작하게 붙어있고, 서서히 분해가 시작되어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밑에 작은 곤충류가 얼마나 바삐 움직이고 있을런지. 그런 낙엽들 아래에는 공벌레가 많더라.

예전 사택에서 살 때, 나무가지를 좀 쳐내고 지친 나머지 일주일 뒤에 낙엽들을 치운 적이 있는데, 그걸 들자마자 쏟아져나온 공벌레들에 얼마나 기함을 했던지. 대학원에 들어와서 생태학을 배우면서야 작은 곤충들의 역할에 대해 알 게 되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공포에서 호기심으로 약간 바뀌었다. 벌레와 흙을 만지기 무서워하는 나를 보고 유럽 친구들이 얼마나 나를 신기하고 웃기게 보던지. 어떻게 환경경제를 공부할 생각을 했냐고. 자연에 대해 너무 모르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굳이 내 변명을 하자면, 난 환경 보호에 관심이 있고 그에 접목해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환경에 대해 잘 모르면 배우면 되니까.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쭉 자란 내가 자연에 대해 잘 모르는게 너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삭막하게 자랐나 싶다.

10월 중순쯤에 위치하는 한 해의 42번째 주가 지나면 비가 안오는 날에도 땅이 항상 젖어있고 축축하다. 그래서 그 시기가 지나면 감자가 다 썩는다고 애들 손까지 빌어가며 감자를 캐던 과거의 역사를 반영하는게 42번째 주에 있는 게 가을 방학인데, 감자방학 (kartoffelferie) 으로도 불린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옌스는 땅이 젖으면 바퀴의 그립이 안좋아져서 미끄러지는 등의 사고가 나기 좋다며 이 계절의 도래를 안좋아하는데, 사실 하늘이 맑을 땐 약간 땅이 축축한 느낌이 난 좋더라. 비온 뒤의 상쾌함과 비슷한 기분을 낼 수 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흙과 풀냄새를 많이 느낄 수 있어서 자연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 듯한 착각을 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산파와의 약속이 10시에 있었어서 그게 끝나고 돌아오던 시각은 약 10시 반. 다들 각기 바쁠 시간인지 주택가인 우리 동네에는 사람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적했고, 하천을 따라 걷는 30분동안 몇 명 만나지 못했다. 자주 놀던 오리들도 다 떠나고. 그래서 이 좋은 풍경을 거의 혼자 느끼는 것 같아 사치를 부리는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산파가 내 배를 여기저기 꼼꼼히 눌러가며 만지고 줄자를 대고 길이를 재보고, 레퍼런스 테이블 같은 것을 찾아보더니 대충 하나는 1.3 킬로 정도이고, 자궁의 크기, 아기 보두 내 주차수에 맞게 크고 있다고 해주었다. 하나가 딱국질 할때마다 오른쪽 아래에서 경련이 느껴지길래 애가 옆으로 누워있다보다고 약간 걱정을 했는데, 머리가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쳤지만 아래 있다며 잘 있다고 알려주길래 안심했다. 다들 이렇게 원시적인 듯한 방법으로 해도 애 낳오면 대충 비슷하게 보는 거 보면 산파들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나도 하나 나오고 보면 산파들의 이런 촉진의 정확도를 가늠해 보려 한다.

임신성 당뇨나 단백뇨 수치 등도 모두 정상이고, 혈압도 극히 정상이다. 다음달에 부모준비 교실이 3차례 있다고 해서 병원 가서 열심히 들어보려 한다. 영어로 된 과정은 한시간 반짜리 한번이던데, 덴마크어로 하는 건 두시간짜리 세번짜리 과정이길래, 옌스와 그걸로 가보려 한다. 그거 알아보라고 자꾸 옌스가 재촉을 해대길래 잊지 않고 물어봤는데, 마침 12월에 하는게 있다고 하니 거기 가서 하라는 것들 좀 해봐야겠다. 외국인에 대해 꾸준히 배려는 하지만, 덴마크 살면서 덴마크어 못하면 손해보는 순간들이 꽤 되는 것 같다.

다음 블록 리딩리스트도 나오고 했으니, 이제 진정한 의미의 방학은 끝났다. 다음주 시작할 과정 준비를 하며 주말을 보내야하겠다. 그 전에 이런 좋은 날씨가 있어서 상쾌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던 게 참 좋았다. 오늘은 점심으로 삼겹살 김치덮밥을 해 먹어야지. 친구가 선물해준 맛있는 집김치로 메인 재료만 스팸, 연어, 삼겹살로 바꿔가며 김치볶음을 해먹고 있는데, 세번째 여는 오늘이면 다 끝날 예정이다. 덕분에 아주 맛나게 먹었네. 좋은 가을날이다.

 

 

나의 덴마크어 학습방법

모듈 6를 꼭 듣겠다는 마음으로 Prøve i Dansk 3 시험을 계속 미뤄왔다. 모의 시험으로만 보면 우수한 성적은 아니더라도 이미 통과할 수 있었던게 벌써 7~8개월 전이니까. 읽기, 듣기, 구술, 작문 시험 모두 10점 또는 12점을 받아야 모듈 6를 들을 수 있기에 완전히 준비될때까지…라는 마음으로 오기를 부려왔다. 6개월을 쉬고 다시 등록했다가 4번 나가고 수업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대학원 공부만으로 정신적으로 벅차졌고, 새로운 선생님은 시험준비에만 몰입해 수업을 진행하는 탓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 배우면 시험은 따라오게 되어있다는게 내 시험 공부의 지론이다. 그래야 시험성적과 언어의 수준이 따로 놀지 않게 되어 있으니까. 이런 건 어떻게 표현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런건 시험에 중요하지 않다고, 시험에 복잡한 문장 쓰지 말고 간단히,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게 적당한 문형을 활용해서 쓰라고 하더라. 같은 모듈 5 선생님인데도 그 전 선생님과는 너무 달랐다. 빠르게 의욕을 잃고나서는 안그래도 큰 마음 먹고 가야하는 덴마크어 수업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덴마크어 공부를 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나 하고 싶은대로 공부하다가 나중에 시험 치고 싶을 타이밍 직전에나 학원에 다시 가야겠다.

그래서 하는게 닥치는 대로 방송을 보는 것이다. 드라마, 뉴스, 다큐멘터리 등. 집에 TV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국영방송인 DR (Danmarks Radio)만 시청할 수 있다. 처음엔 자막을 주로 깔고 보다가 요즘은 자막 없이 보기도 한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는 방법이라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본다.

신문 기사를 하나 정해서 필사를 하며 모르는 단어를 찾는다. 예전엔 대충 이해하면서 읽었다 하면 이제는 완전히 이해하려고 읽는다. 짧은 기사야 금방 읽지만, 신문 양면을 꽉 채운 특집기사는 다 읽는데 두시간 이상 걸린다. 긴 기사를 읽는 건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반복되는 어휘가 몇 개씩 꼭 있어서 그런 단어들을 외우기 좋다. 그리고 이런 기사는 일반적으로 중요한 경우가 많아서 덴마크 사회와 정치, 문화 등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영어를 배울 때부터 느낀 건데, 내 발음이 정확해야 상대 말이 들린다. 우리말 식으로 발음을 해석하지 않고, 원어민을 귀찮게 해서 내 발음과 상대의 발음의 차이를 찾아내서 같게 만들면, 상대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귀가 트이는 속도의 차이는 내가 얼마나 그 발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물론 그걸 인지해도 발음으로 복제해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걸 해내면 귀가 금방 트인다. 그런데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걸 문장으로 엮었을 때 어디에 강세를 두어야 하는지, 어떤 발음은 흘리게 되는지 등도 알아야 그게 대화로 옮겨졌을 때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듯이 어느 나라 말이든 한 음절 음절 똑똑히 발음하며 대화하는 언어는 설령 있다 하더라도 많지 않을테니까.

예전엔 옌스로부터 인터네이션 교정을 많이 받았다. 신문 기사나 책 등을 한 문장씩 읽어가며 강세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걸 잘 못하면 상대가 내 말을 잘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게 엄청 도움이 되서 이제는 새로운 문장을 읽거나 말할 때 큰 오류 없이 문장 속 중요 어휘와 문법적 요소를 찾아 강세를 바르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발음이나 강세로만 놓고 보면 외국인이란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다고 할 정도니 이 부분에 내가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 알 수 있다.

2014년 8월 중순부터 덴마크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이제 2년 3개월이 되었다. 조금 독학으로 찾아 읽은게 5월부터니까 그것까지 치면 2년 6개월. 대충 2년 정도 지나서부터 유럽 언어공통기준으로 중급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그런데, 언어가 중급 이상으로 늘기 시작하면 더이상 타인 주도의 학습으로는 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기가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초급이나 중급에서는 조금만 해도 느는 자기의 말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쉽게 할 수 있는데, 고급부터는 미묘한 문장 구성과 내용의 발전, 어휘의 배가 및 활용도 증진, 언어 구사의 능숙함 등에서 늘어나는 거라 하루가 다르게 느는 것을 느끼기엔 어렵다. 따라서 스스로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고 당근을 주지 않으면 꾸준히 하기 참 어렵다.

덴마크어 수업을 쉬는 동안 드라마 보고 띄엄띄엄 신문 좀 읽는 것 외에는 열심히 안했는데, 대학원 슬럼프 3주간의 기간 동안 지난 시즌 재상영이나 새시즌이 시작된 드라마 3개와 저녁 뉴스를 열심히 봤다. 완전 딴짓은 아니라는 자위를 하며. 그런데 그게 듣기에 도움이 되는게 새삼 또 느껴지니까 또 다시 동기부여가 되더라.

마지막 블록은 어려운 과목 하나만 들으면 된다. (옌스가 듣더니, 그거 어려운 수업인데… 란다. 왠지 더욱 오기가…) 그러면 남은 시간엔 덴마크어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공부하려한다. 그리고 옌스가 책 한권을 다 떼서 그 책에 있는 표현을 갖고 이야기 몇 편을 써달라 한다. 대화체 이야기, 서술형 이야기 등 섞어서. 이미 대화체 한편은 썼는데, 옌스도 참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열심히 한다. 이제 간혹 전화통화 하면 한국어로만 대화하거나, 산책 나가있는 동안엔 한국어만 쓰기 등의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예전 내가 덴마크어를 배우던 초기에 쓰던 방식인데, 그게 참 도움이 되었다. 옌스가 나 말고 한국어라곤 쓸 데도 없는 환경에서 완전 독학으로 이만큼 온 게 놀랍다.

서로 주고 받거니 하면서 양쪽의 언어를 배우는 건 즐겁다. 고맙기도 하고. 서로의 언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하나가 보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언제 내 덴마크어가 원어민 수준으로 올라갈 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3년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거라는 낙관을 해본다. 2년 뒤엔 취업시장으로 나서야 하는데, 일할 수준으로는 충분히 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이 들어 영어 말고 제2외국어를, 특히 덴마크어를 배워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게 꼭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주말 손님 초대상

지난 주말 손님을 초대했다. 커플 저녁. 친구의 출산 예정일이 그 다음 주인데, 출산 중 첫째애를 돌봐주기로 했다하여 혹시나 그 날 출산하게 되면 갑작스레 못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준 상황. 실제 그 날 낮에 애가 태어나 저녁 식사가 한시간 뒤로 밀렸으나 운이 좋게도 출산이 빠르게 진행되어 계획한 날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유쾌했던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네시간 동안 계속된 담소가 즐거웠다. 내 커플 인간관계가 옌스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주로 이뤄지는데, 그 중심이 커플 당사자의 양쪽에 어느정도 분배가 되어야 장기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둘의 인생이 만난다는 걸 인간관계 형성에서도 느낄 수 있기에. 특히 내가 이민생활을 해서 그런게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역사, 문화를 공유하는 친구가 있는 건 의미가 또 다른 것 같다. 그래서 국제커플간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 중요하다.

후무스와 화이트브레드칩, 크렘프레시와 딜로 버무린 연어를 넣은 핑거파이쉘을 에피타니저로 준비하고, 갖은 채소로 만든 바질페스토 쿠스쿠스 샐러드와 모과드레싱과 토스티드 호두를 넣은 사과 윈터샐러드를 곁들여, 감자/고구마를 밑에 깔고 오븐에 구운 닭다리 요리를 메인으로 준비했다. 디저트로는 옌스의 크렘브륄레와 오렌지 소르베에 이어 달콤한 디저트와인과 칸투치니를 내었다. (주 1회 한잔은 괜찮다니까, 나도 한잔. 😉 임산부의 음주라는 사치는 덴마크니까 가능하다. 흠흠. 좋네.)

배가 터지게 먹을 걸 알고 있어서 아침, 점심 간단히 해결했지만, 여전히 배는 터질 것 같았다. 약간 음식을 여유있게 준비했기에 다음 날 저녁 요기거리가 될 만큼이 딱 남았다.

손님을 초대하면 좋은 점이 사치스럽다는 생각 없이 꽃을 집에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나혼자 보자고 꽃을 사올 때면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날엔 자신있게 한다발 집어들고 들어올 수 있는 것. 그리고 손님이 갖고 오는 선물도 기대가 된다. 그날 같이 마실 와인이나 초콜렛이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날과 같이 예상하지 못했던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을 수도 있는데, 집에서 직접 담근 맥주와 김치의 맛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

우리가 아주 즐겁고 유쾌한 저녁을 보낸 것처럼 그들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앞으로 있을 교류가 더욱 기대된다. 이제 임신도 30주차에 접어들었는데,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해서 장 보고,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까지 하루에 바삐 움직이며 다 처리하는게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임신 전에도 항상 토요일 손님초대 = 빡빡한 일정, 이런 공식이 성립되서 다음 날엔 뻗곤 했는데, 이젠 요령이 늘어 다음 날 뻗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냥 배도 좀 뭉치고 힘들더라. 출산 전까지 누군가를 더 초대한다면 (그러려는 계획이었는데) 좀 더 가벼운 디너를 준비하거나 출산 뒤로 미루든가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준비한 만큼 보람이 있었던 즐거운 저녁이었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내가 아침형인지 저녁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몸이 영 불편해 잠을 잘 못자서 일찍 깨는 것이 나를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필요조건은 형성한다. 다만 주로 따뜻한 침대에서 뭉게고 누워 인터넷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아침녘에 다시 토막잠에 들곤 하니 이를 생산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가, 뭘 하려는 욕구가 차오른다. 여름 방학이 끝났을 때완 사뭇 다르다. 아마 한국을 짧게 다녀오자마자 정신없이 학기를 시작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직전 1년동안 쌓여온 스트레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새 학기가 시작해서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생각이다. 여하튼간에 지금은 그런 스트레스 없이 대학원의 마지막 수업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어서 그런지 마음과 머리 둘 다 가볍다.

이번 주 중 처리할 일의 목록을 정리하고나니 6시가 되었다. 어젯밤 써놓은 할머니께 드릴 편지도 봉투에 담아 주소를 쓰고 나니 마음의 짐도 덜어 홀가분하기까지 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편지 쓸 마음의 여유가 영 나지 않았는데, 시간의 여유가 아예 없던 것도 아닌데 못쓰고 있으니 그게 다시 마음의 짐으로 돌아왔다. 아직 새카만 밤 하늘엔 큰 달이 약간 붉은 기를 보이며 나지막히 걸려있다. 책상에 앉아 창밖으로 걸린 달을 보니 분위기 참 오묘하구나. 오늘 아주 오래간만에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공전을 한다더니 수퍼문이긴 한가보다.

옌스가 일어나기까지는 아직도 50분의 시간이 남았다. 조용하게 클래식 음악을 틀어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기분이 상쾌하다. 커피를 한잔 내려왔더니 약간 으슬으슬하던 몸에 온기가 돈다. 이런 평화로운 순간은 앞으로 두 달여 후면 없어질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참 이상하다. 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을 하면 되는데, 왜 그걸 미루면서 더 스트레스를 받을까. 차라리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미리부터 일을 시작하면 될텐데. 예전엔 정말 부지런했는데. 요즘 내 미래의 꿈을 별로 안꿔서 그런 것 같다. 안분지족의 삶이 목표상실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잘 좀 챙겨봐야겠다.

남은 시간은 책과 신문을 읽어야겠다. 아침형 인간으로 다시 탈바꿈을 해보는 것도 고려해보며…

긍정의 에너지와 좋은 사람들

언젠가 말의 힘을 깨달은 적이 있다. 짜증이 나던 어느 날이었다. 시작은 작은 짜증이었는데, 그걸 입 밖으로 반복해서 내뱉었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하고. 그렇게 말하고 나니 정말 짜증이 폭발할 것처럼 넘쳐흘렀다. 그 근래에 그렇게 짜증난다는 말을 내뱉으며 짜증나는 상황을 다루고 있었는데, 그렇게 감정이 오히려 증폭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짜증을 되려 불러일으키고 있다니…

서른이 되었던 해, 지금은 뉴욕에 가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라고 김혜남 박사가 쓴 책을 추천해주었다. 인도에서 힘겹게 지내며 삶의 하루하루를 불평으로 채워가던 나에게 그 나이의 사람들이 고민하는 내용과 그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쓴 책이었다.

그 책을 필두로 해서 많은 심리학 책과 글들을 읽었는데, 하나같이 언급하는 것은 마음 또한 단련을 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신체에 근육이 있어서 우리가 이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훈련을 해야 하듯이 마음 또한 그렇게 단련을 해야한다는 것.

연애에 있어서 자신감이 없고 자기애가 부족했던 나를 과연 정말 사랑하게 되고 자신을 갖게될 수 있을까 라는 불신도 있었고, 정말 마음이 훈련할 수 있는 대상일까 하는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해보지 않고는 확인조차 할 수 없었기에 책들이 시키는 일들을 해봤다.

이러한 마음 수련은 사실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실제 책 몇권 읽고 몇 달 한다고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좀 나아졌나 싶다가 어떤 일이 있고나면 다 소용없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서 되돌아보니 30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여러면에서 달라졌다.

예전보다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나에 대해 보다 믿게 되었다. 두려움이 간혹 몰려와 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과연 내가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 두려움이 느껴지고 피하고 싶어진다. 힘든 순간이 올 때, 다 짚어치우고 숨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고, 중간에 포기해버리고자하는 생각도 든다. 자기 연민에 빠지며 내가 가장 힘든 사람인 척 하며 비련의 주인공으로 마냥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가치를 확인해야만 내 존재의 의미를 찾던 약한 과거의 내가 나를 조종하려 하는 시험에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렇지 않다고 이러한 유혹과 의심을 물리칠 힘도 생겼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 때, 이에 관심을 두고 왜 그럴까 생각하는 것이 이러한 생각을 없애는데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이런 생각이 먹고 살 먹이거리를 던져주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아… 이런 생각이 또 찾아왔구나. 그냥 내가 하던 거 포기하지 않고 하면 돼. 약간의 슬럼프가 왔다가 갈거야. 그냥 감기같은 거야.’ 라는 식으로 마음을 다지고 더이상 이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내 주변의 작은 것에 감사함을 갖고,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고, 이를 표현하고 내가 할 일을 조금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면 이런 것들은 서서히 자리를 잃고 떠나가더라.

그래서 긍정의 에너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긍정의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주변인도 중요하다. 그런 긍정의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나도 쓸데없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좋은 시선에 나도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으니까.

자기를 비하하고, 타인과 비교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드러내 연민을 얻고 거기에서 힘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은 오래 교제하기가 힘들다. 누구나 삶에 힘든 순간이 있고,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 남과 짐을 나눠지고 싶을 수 있다. 가까운 이들을 위해 내 어깨 내어주는 거 힘든 일 아니다. 그러나 가깝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거라며 가까움의 증표로 자신의 힘든 일만을 공유하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기 힘들다. 내가 그 부정적 에너지의 덤핑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의 기쁜 일을 두고도 자기의 어려움과 대비해 자기의 힘든 처지만을 부각하면 정말 기쁜 일을 축하받아야 할 주인공이 마냥 기쁨을 표할 수도 없고,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러한 인간관계는 멀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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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진찍는 뒷모습.  쪼그리고 앉았을 때 찍으려했는데. 

요즘 새로이 알게 된 사람들이 있다. 다들 긍정적인 사람들이고 만나면 여러가지 배울 수 있는게 많다. 각자 처한 여건도 다르고 관심있는 분야도 달라 화제가 다양한 게 좋다. 그 중 특히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생겼는데, 가까운 곳에 살기도 하고 생각도 잘 맞아서 만나면 참 즐겁다. 그리고 긍정의 에너지가 나에게도 힘이 된다. 사실 이 친구와는 새로이 알게 되었다고 하기에 알고 지낸지 거의 1년이 되어가는데,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가까워지다가 요즘 부쩍 가까워졌다. 이 친구도 이 나라에서 정착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마음이 확 더 가까워졌다고나 할까. 대학원 친구들과도 시간이 지나며 이것저것 생각을 좀 더 공유하고 가까워져서 이 또한 좋다.

멀리 떨어져서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나의 오래된 친구들과 동료들이 그립고, 그들을 자주 못보는 게 참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한켠에 그대로 두고 다른 한켠을 또 새로운 사람을 향해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과 순간이 하나의 기회가 되기도 해 또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출산전까지 할 일

올 겨울 참 추울 거란다. 지구 온난화는 계절의 양극화와 예측불가능성을 심화시킨다. 그래도 비가 오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겨울보다는 춥고 건조한 겨울이 좋다. 따뜻한 겨울은 거센 바람을 의미한다. 작년에 평균 풍속이 초속 15미터인 날이 20일 가까이 지속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초속 10~20미터의 바람이 계속 분다는 뜻이다. 우산을 쓰는게 큰 의미가 없도록 비가 직각으로 오는 기분이고, 우산도 뒤집어지니 그냥 우비 입고 다녀야 한다. 그래도 얼굴이 젖는 건 어쩔 수 없으니 그 젖은 얼굴이 영상 1도 정도 되는 기온에서 거센 바람에 노출된다고 하면 상상이 되나. 그런 겨울은 정말 최악이다. 그래서 올 겨울 추울 거라는 소식이 반갑기만 하다.

이제 석사 프로그램의 마지막 수업 한과목만 남겨두고 있다. 그게 끝나면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마치고 논문 쓰는 것만 남았다. 물론 1년을 쉴거라 진짜 다 마치려면 1년 반정도 더 있어야 하지만, 정말 끝을 향해 가는 기분이다. 덴마크 사회의 편입을 위해 언어를 배울 시간도 벌면서 내가 조금 더 하고 싶었던 공부를 국가 교육 보조금 받아가며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가 어떻다는 것을 내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지난달, 이번달 생활비가 확 줄만큼 대외 생활도 줄이고 거의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했는데, 시험도 다 끝났겠다, 리딩리스트도 아직 없겠다, 정말 제로스트레스로 집을 나서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9시경부터 시작된 모닝커피가 점심으로 이어져 책방투어까지 하고 집에 돌아오니 2시 반이 되었다. 빌 브라이슨의 모국어라는 책을 사왔는데, 영어에 대한 책이란다. 요즘 내 마음의 양식을 위해 학업 비관련으로 읽은 책이 너무 없어 마음이 빈곤해진 기분이었는데, 이 책은 정말 학업에 관련이 없는 책이라 사왔다. 이 책 말고 사고 싶은 책들도 있었지만, 이젠 가급적이면 책도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해서 딱 한권만 하면서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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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안쪽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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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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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 모국어

출산 전까지 할 일들이 많이 있다.

아기 침대, 유모차 커버, 유모차 안에 들어갈 리프트 등을 사야 하고, 나머지는 애가 나오면 사던가 하려한다. 미리 사놨다가 안쓰는 것 만큼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짓을 너무 많이 해와서 이젠 그런 거 안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기에. 편리함과 약간의 할인을 버리면 정말 필요한 소비를 중심으로만 하게 되서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옌스가 한국어 책 한권을 거의 끝마쳤다. 이제 그 안에 써있는 표현들만 갖고 이야기를 하나 써달란다. 출산전까지. 그러면 그걸 싹 다 외워가며 공부하겠다고. 나의 기괴한 유머를 반영한 스토리를 써줘야겠다. 멀쩡한 문장도 이상한 순서와 맥락으로 배열하면 웃기게 되니까. 그러면 외우기 더 쉽겠지. 흠흠…

할머니께 쓰다가 7월말을 기해 중단했던 편지도 다시 써야겠다. 학기가 시작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니 쓸 힘이 안나더라. 사실 편지 쓰는 건 내가 좋아해서 쓰는 일인데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고 나니 내용이 건조해지더라. 머리가 온통 학업에만 쏠려있어서 그런가보다.

피아노도 다시 치려한다. 남들 다 한다는 태교, 난 그냥 경제학 공부로 하련다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는데, 피아노도 좀 치고, 비생산적인 일들도 많이 하면서 정신적인 여유를 찾아보련다.

원래는 6개월 쓰려다가 한국 방문 계획으로 육아휴직을 1년 쓰기로 결정했는데, 아마 복귀하고 나서도 애 보육원 다니면 감기나 이것저것 질병을 옮아와 온전히 논문 쓰는데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 미리부터 준비를 하려한다. 우선 미리 지도교수에게 주제를 받아서 Contract 없이 천천히 자료 수집 및 문헌연구부터 시작하다가 나중에 육아휴직 막판에 애를 보육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슬슬 시작하면 6개월안에 써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희망 지도교수에겐 미리 언질을 해두었고 구두 허락은 받았으니, 이번 블록부터 슬슬 시동을 걸어야지.

이렇게 하고 나면 어느새 1월말이 되서 애를 낳아야 할 시기가 될 거다. 제일 추운 겨울의 정점을 찍었을 때쯤 하나가 태어나면 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삶을 받아들여야 하겠지. 옌스는 아직은 설레고 좋은 것보다는 두렵고 긴장된다고 하는데, 막상 애가 태어나면 정신이 없어서 그런 저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을 것 같다.

시험이나 데드라인 등은 다 좋아하진 않지만, 한템포 끊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좋구나…

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뒤죽박죽 장문

부제는 “대학원 생활의 즐거움과 내 정체성”

이번 구술시험은 그간 봤던 시험 중 가장 터프했다. 외부 시험관이 그렇게 많은 질문을 날카롭게 던지며 압박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10분 프레젠테이션에 10분 질문일 거라고 당초에 설명을 들었으나 시험 시간은 30분씩 배정되어 있었고, 막상 들어가서는 프레젠테이션 중간마다 질문이 들어와 발표와 질의응답이 뒤섞인 시간이 되었다. 시간 자체도 35분~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 부분은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답을 한 질문이 2개나 될 정도로 내 질문의 답에 또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그것 때문에 10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중간에 이것저것 교수에게 귀찮을 정도로 질문했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사실은 그러한 질문이 10점을 줄 것인지 12점을 줄 것인지를 보기 위해 한 질문이었던 것이었다.

우리 그룹 멤버를 모두 불러 각각의 개인시험 결과를 알려주고,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데, 내가 가장 방어를 잘 해서 가장 깊게 물어보았다고. 나보다 먼저 시험을 친 그룹멤버들이 질문이 어렵긴했지만 대충 답변은 다 했다며 편하게 생각하라길래 오히려 내가 더 못봤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초반 2/3까지는 정말 열심히 하다가 막판에 슬럼프에 빠지며 3주를 많이 놓쳤기에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그 앞에 많은 고민을 하고 따라갔던 게 해당 수업의 에센스를 이해하기엔 중요했었나보다.

지난 1년이 약간 넘는 기간동안 영어로 내 주장을 펼치고, 논거를 제시하고, 상대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받아들일 부분을 받아들이고, 반박할 것은 반박하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훈련이 된 것 같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 사회 경험이 수업시간 중 적극적 참여를 가능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훈련이 된 것이다.

목요일에 첫 8시간 에세이 시험이 있다. 공부하다가 이렇게 블로깅으로 딴 짓 하고 있는 건데, Political Ecology라고 선택과목이다. 재미있는 부분도 없는 부분도 있었는데, 텍스트의 유형과 구성 등도 경제학 및 생태학 저널 텍스트와 너무 달라 학기 내내 힘이 들었다. 인류학과 정치경제학, 정치과학, 생태학이 결합된 수업인데다가 많은 텍스트가 철학적이라 정말 적응이 안되었다. 양도 많고, 어휘도 다르고 엄청 방대하다. 뭔가 내가 사용하는 어휘가 이렇게 많다 하고 뽐내는 향연의 텍스트 같은 느낌? 미국에서 온 학생들도 사전을 찾아야 하는 단어가 있을 정도였으니…

이 시험은 내 최초의 4점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으로 편히 접근하기로 했다. 성적이 나쁘게 나오면, 아… 내가 정치과학은 아니었다 하고 변명하기로 하고 말이다. 우선 그렇게 마음 먹고나니 조금 편해져서 설렁설렁이나마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었으면 아마 불안해서 정말 공부가 안되었을 것 같다.

이 늦은 나이에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 다닌 건 어찌 보면 무모해도 보이지만 참 잘한 일이었다. 동기들과 학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화, 정치, 예술, 여행, 스포츠, 파티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항상 열정에 차있고 동기부여되어 있는 그들을 보면 내가 그들과 같은 삶을 다 누릴 수는 없지만 그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달이 된다. 각각의 국가별로 다른 상황에 대해 듣는 것도 즐겁고, 별 중요하지도 않은 농담으로 시시껄렁하게 웃는 것도 좋다. 간혹 힘든 상황이나 여건에 대해서 서로 묻고 의견을 나누며 진지해지는 것도 좋고,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논하며 나에게 조언을 구할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도 기쁘고 고맙기도 하다.

조금 뒤면 엄마가 된 나이지만, 난 사실 모성이 풍부한 엄마는 아니다. 아마 정말 엄마다운 엄마라기보다는 그냥 인생 선배나 친구 같은 엄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신을 한 지금도 애에 대한 대화보다는 다른 것이 더 재미있다. 애가 태어나면 여러 궁금증과 내가 배워야 할 것들 때문에 내 화제의 중심에 아이라는 요소가 더 늘어나긴 하겠지만 세상이 뒤바뀌듯 내가 완전히 뒤바뀌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책임감있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겠지만 아마 애를 물고빨고 모든 것을 다 제치고 애가 일순위에 딱 등장하는 그런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뭘 이야기해도 다 애 이야기로 귀결되는 대화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결혼해봐, 지금 우리하는 이야기가 이해될 걸?”, “임신해봐, 또 달라질 걸?” 이런 질문과 같이, “애 낳아봐, 지금 생각한 대로 될 거 같아?”이라는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아마도 “내 인생이 딱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지향하는 방향에 조금이나마 가까운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기에, 인생에 한가지 정답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가 될 것이다. 하나가 태어나도 나는 하나 엄마가 아니라 나로서 존재할 것이고, 항상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뭔가 삐죽 나와서 튀는 사람이었던 나는 큰 틀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이의 존재는 인격적으로 훈련을 할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고, 많은 시행착오와 반성, 기쁨, 괴로움 속에 작고 큰 깨달음을 얻고 조금이나마 더 성장을 할 수 있겠지만, 갑자기 하나의 엄마로 뒤바뀌어 모성이 내 인생의 중심으로 부각될 수는 없다. 그리고 애의 성공이 내 인생사 목표도 아니고, 그게 나를 평가하는 잣대도 아니다. 난 인간이니 실패도 하겠지만, 내가 우리 부모님의 육아상 여러 의사결정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내 시행착오에 대해 크게 자책하거나 나를 비하하고 싶지 않다.

사람의 정체성은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탈바꿈을 하게 마련이다. 엄청난 변화도 있을 수 있고 소소한 변화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끊임없이 재탐구해야 인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탐구가 잘 이뤄지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해야할 일만 명확해지면 남은 것은 실행 뿐이다. 실천으로 옮기고 나서는 내가 원하는 것에 최소한 가까운 곳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크게 불평할 것이 없다. 내가 불평을 엄청 하고 있다면 현재 잘못된 곳에 있다는 것. 내가 직장을 관두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것은 바로 그 불평을 엄청하고 있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애를 낳아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의 어려움 등에 봉착한다 해도 그 안에서 최선의 길을 모색하고 나아가도록 노력할 것이고, 내가 노력을 할 동력만 갖고 있고, 실제 노력을 하고 있다면 난 불평하지 않을 거다.

예전에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 수록 와닿는다. 예전엔 ‘어차피 대천명이니, 사람이 크게 노력할 거 없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이게 어찌 보면 ‘평안의 기도’라는 짧은 기도문과도 맞닿아있는 이야기 같다.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요즘 내 머리를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뒤죽박죽 써서 정신이 없는 길고 산만한 글이 되었지만, 이게 말 그대로 내 요즘 머리속에 계속 흐르고 있는 생각들이다. 모성은 나의 성장의 원천이 되겠지만 나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닐 거라는 점, 그리고 더욱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자는 것이다. 난 이제 갓 36살, 앞으로 살날이 산날보다 훨씬 긴 젊은 사람이니 아직도 성장하고 발전을 위해 정진해야 하고, 그런 게 나니까.

시가와 친정사이, 그리고 행복의 레시피

아무래도 남편네 나라에 살다보니 친정보다 시가와 자주 보게된다. 물론 연락이야 비교할 수 없이 친정과 더 많이 하지만 보는 주기는 시가가 훨씬 잦다. 시부모님과 연락은 주로 문자메세지로 이뤄지는데, 간간히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로부터 메세지를 받고 나도 두분께 메세지를 보낸다. 주로  두분을 수신자로 헤딩에 넣어 시어머니께 문자를 보내드리지만, 혹여나 그게 섭섭하실까봐 시아버지께 보내기도 한다. 전화는 주로 시어머니와 이뤄지는데, 내가 전화를 드리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주시기도 한다. 주기로 보자면 한 2주에 한 번 정도?

옌스는 우리 부모님께 직접 연락을 드리지는 않고 내가 연락을 드릴 때 옆에 있으면 안부를 전하곤 한다. 영어로 아빠와는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아직 옌스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나 없이 부모님과 대화를 할 수 없기도 하고. 아마 이부분은 우리 부모님이 조금 섭섭해 하실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한데, 여긴 약간 자기 부모님에 대한 연락이나 그런건 셀프인 부분이 많아서 딱히 내가 뭐라 이야기하긴 애매하다. 시부모님께 연락 드린 것도 시부모님이 먼저 문자로 연락을 주셔서 답을 하다보니 나도 답을 하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아, 내가 조금 너무했나?’ 싶어 전화로 한 번 연락을 드렸더니 그 다음부터 조금씩 전화로도 연락을 주신 거였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아마 내가 좀 역할이 부족했나 싶다. 양쪽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하면 그냥 내가 잘 지낸다고 양쪽에 전할 뿐이지, 안부를 물었다는 사실을 옌스에게 전하는 건 잘 안했다. 옌스는 누가 전화나 문자로 연락하며 내 안부를 물으면 꼭 나에게 그 사실을 전하곤 했는데. 그런 사실을 듣고 나면, ‘아. 그 사람이 내 생각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걸 떠올려보면, 나도 그랬어야 했었는데… 옌스가 괜히 우리 부모님은 자기 안궁금해하나 싶어하겠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국제결혼이라고 시가와의 갈등이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게 다 똑같다고, 여기도 가족간의 갈등이 다 있는 것이고,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도 집안 따라, 사람 따라, 국가별 문화 따라 갈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렇다. 다행히 난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시댁을 만나 아무런 문제 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는데, 항상 그걸 당연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국제결혼은 양가의 문화가 만나는 것이라 나 뿐 아니라 시가 입장에서도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부모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이 곳의 문화를 내가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르는 우리 문화를 시부모님이 받아들일 것이냐 같은 작은 문제부터 그렇다. 옌스는 처음엔 이상할 것 같다고 했지만, 시부모님께 내가 우리 문화를 설명하고 그래도 되겠는지 여쭤봤을 때 시부모님은 매우 좋아하시며 (그런 문화냐고 놀라시긴 했지만) 그러라고 하셨고, 그분들 또한 나를 딸 해인이라고 불러주신다.

시가를 방문해서 집안일을 거드는 문제부터, 시부모님이 우리집에 오셨을 때 어느 방이든 편히 드나드시는 것까지 다 다르다. 이건 그냥 나라간의 문화차이에 집안 차이가 겹쳐 있어, 어느 까지가 나라의 문화고 가풍인지의 경계가 모호하고 나로선 구분해내기가 불가능하다. 간혹 내가 생각하는 시가와 며느리 사이의 경계를 넘어선 행동들에 살짝 놀라는 일이 있더라도, 그게 만약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하실 일에서 벗어나있지 않다면 그냥 별 의미없이 받아들이기로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모여 같이 이동하는 일이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기억이 정확히 안나지만 시어머니께서 옌스 옷인가 소품인가를 하나 챙기시려고 침실 옷장을 여셨던 일이 있었다. 순간은 놀랐지만, 나와 같이 살기 전까지는 매우 편히 드나드시던 아들네 집이니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아실 것이고, 옷장을 여는 일이 갑작스레 터부시될 일도 아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며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내가 시부모님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내가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과 같을 수 없듯이 시부모님이 옌스나 시누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시부모님이 나를 딸과 똑같이 대하지 않으신다 해서, 아니면 옌스 생각을 하시는 것만큼 내 생각을 안하신다 해서 섭섭하지 않고, 섭섭해 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런걸 느낀 바도 없지만,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해도…) 같이 사는 아들이 행복하기를 위해서이든 어떤 이유이든 내가 잘 지내고, 잘 지내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어찌 상대에게 기대하랴.

명절 스트레스도 없고, 연락 자주 안한다 타박하는 사람도 없고, 가정 대소사는 다 직접 챙기는 남편이 있으니 시가 문제로는 난 아주 땡잡은 기분이다. 내가 시부모님을 좋아하는 것처럼 옌스도 우리 부모님을 좋아하고, 특히 내년 한국에 방문해 우리 부모님과 지내며 혹여나 엄마와 단둘이 있는 순간이 생길 때에 대비하려고 옌스가 지금 바짝 한국어를 공부하는 걸 보면 참 고맙다.

반대로 옌스는 굳이 그렇게 안해도 되는데 자주 시가에 연락을 하는 나에게 참 고마워한다. 자기 가족은 자기가 챙기는 셀프문화가 자리잡힌 이 곳에서 자발적으로 꾸준히 연락을 하고 가까이 지내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연애 초기에, 자기 가족과 내가 만나는 자리가 몇번 있고 나서,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며, “가족과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에게도 좋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너는 나와 함께하는 것이지, 내 가족과 함께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여나 내 가족과 너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하면 난 네 편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옌스이니 물론 내가 가족과 잘 지내길 기대했겠고, 나도 그들이 이미 마음에 들었지만, 저렇게 이야기해준 자체에 마음이 정말 든든해졌었다.

이런 고마운 감정이 조금씩 쌓이는 걸 모아두었다가 간혹 표현하곤 한다. 그러면 옌스나 나나 모두 이런 것들 당연시 하지 말자며 이런 소소한게 삶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공감하는데, 이런 게 서로 잘 맞는다는게 참 감사하다.

이제 불과 3년밖에 안된 커플이지만 정말 큰 갈등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온 것에 대해 요인을 분석해보자면,

  1. 우선 라이프스타일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 금전감각과 관리, 건강/체력관리, 가족과의 관계, 인생 전반에 걸친 목표와 생활 태도, 집안 관리 등등
  2. 서로에 대해 어떻게 해주길 기대하는 점이 없다거나, 딱히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려는 점
  3. 서로가 하는 행동이 혹여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게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마음 상하게 하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4. 원하는 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정확히, 또 솔직히 말하는 것
  5. 상대가 내 요구에 거절하더라도 이유가 합당하면 받아들이는 것
  6. 감사함과 사랑함을 작든 크든 꾸준히 표현하는 것
  7. 침묵 고문하지 않는 것 (이것은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한 바 있다.)
  8. 주말 하루는 꼭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갖는 것 (하나가 태어나면 다른 형태로 바뀌겠지만)
  9. 서로가 각자의 취미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적당한 수준의 개인 공간/시간/자유를 주는 것
  10. 서로를 위해 상대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에 노력하는 것
  11. 우리 문화가 이렇다고 강요하지 않고 서로 대화를 통해 타협하는 것
  12. 우리의 현재 생활와 주어진 것에 대해 당연시 여기지 않는 것
  13. 이런 우리의 삶의 방식을 친정과 시가 모두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

대충 이런 것 같다.

간혹 국제결혼해서 해외에 나가 사니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데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마음가짐에 따라서는 정말 더 힘든 게 될 수도 있다. 실제 그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커플들도 많이 있고. 사실 옌스를 만나서 한국의 문화 중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겪지 않아 좋은 대신에 한국 문화에서 내게 편하거나 득이되는 것들을 누리지 못해 좋지 않은 점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 생각하면 끝이 없고 서로 자기 좋은 것만 주장하는 것으로 흐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 둘이 합리적으로 판단해 공평하고 서로가 만족스러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