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네번째 연말을 맞이하며

12월 22일. 동지가 지났다. 이제 해는 다시 길어질 것이고, 추위는 조금 더 절정을 향해 달리다 눈치채지 못하는 새 봄을 향해 달리겠지. 하나는 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1월 말 경에 태어날테니 이번 겨울은 뭔가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새에 지나가지 않을까 한다.

올 겨울 100년 이래 가장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하더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예보를 벗어나 유래없이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바람도 그다지 세차지 않고. 이러면 내년엔 병충해가 많이 돌텐데…

친구들을 불러 한국 음식을 차려 송년회를 했는데, 한 친구가 포인세티아를 사왔다. 살까말까하다 사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나는 포인세티아. 들어갈만한 적당한 화분이 없어서 검정플라스틱 화분을 감싸고 있던 녹색 포장지를 적당히 구겨 집에 있던 검정 리본으로 둘렀다. 밑에 접시를 받혀 창가에 두니 완연한 크리스마스 느낌이다. 선인장류가 아니면 1년 내에 식물이 죽어나가는 우리집에서 얼마나 오래 살 지 한번 두고 볼 일이다. 죽어나가는 식물의 수가 늘어가는 만큼 경험의 축적과 함께 평균 생존기간도 늘어나니, 혹시 또 아나? 이 포인세티아가 우리와 한참을 함께할런지.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도 끝났고, 26일에 있을 2차 크리스마스 오찬에 선보일 한식 메뉴도 결정했다. 시아버지의 자매들과 그 아래 직계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큰 모임이라 포트럭 스타일로 각자 메뉴를 하나씩 준비해오는데, 덴마크 전통 크리스마스 오찬 메뉴가 있어서 거기에 적당히 어울리는 음식으로 가져가야 한다.

작년엔 김밥을 해갖는데 인기가 매우 좋았다. 애들도 좋아했고. 그러나 시간상 점심이고, 차로 한시간 반 정도 가야 하는 길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 계란지단 부치고 오이를 소금에 절이고, 당근과 시금치, 고기 볶아 갓지은 밥에 마는 게 너무 힘들었다. 시간에 쫓겨 막판엔 집을 폭탄맞은 듯한 상태로 놔두고 갔는데, 집에 돌아와서 집안 가득한 참기름 냄새를 맡으니 피로가 어찌나 몰려오던지. 올해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새우전을 부치려고 한다. 전날 부쳐서 당일에 현장에서 데워 내면 되니까.

옌스네 가족 및 옌스 시누이네 가족과 함께 할 24일 메인 크리스마스 만찬은 옌스 시누이네서 하는데, 내가 합류한 이후에도 우리 집은 초콜릿과 디저트와인 등 돈으로 떼울 수 있는 쉬운 것을 맡고 있다. 명절에 돈으로 떼우는 게 쉽다는 건 해보니 알겠다. (머리로도 알긴 했지만, 해보니 정말 실감난다.) 그래도 한국식 생각해보면 정말 간단한 명절 준비다. 각각 집에서 큰 준비는 다 해와서 현장에서 데우는 식으로 해서 음식을 내니까. 올해는 원래 더 먼 Faxe Ladeplads로 가야했는데, 시고모님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작년과 같이 로스킬레로 간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중 침대 조립하고, 유모차 조립/해체법에 익숙해지도록 연습 몇 번 해보고, 하나 양말 몇 개 사고, 아기 용품 빨래만 하면 하나를 맞이할 준비는 거의 다 끝난 것 같다. 어제 친구와 함께 아이들 옷과 용품을 중고로 내놓는 중고 상점에 다녀왔다. 장소를 대여하는 업체가 운영을 담당하고, 팔 물건이 있는 사람들은 매대를 대여해 제품에 태그를 붙여 비치하는 영구적인 벼룩시장이다. 여기서 옷가지 몇 개와 모유수유 책 한권을 사왔는데 참 저렴하더라. 첫 한 해에 입을 옷은 사이즈가 다양하게 있는 편이어서 앞으로 1년은 여기에 많이 의존할 예정이다. 굳이 하나에게 새 옷을 입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애들은 워낙 빨리 자라니 새 것을 필요한 양만큼 사기엔 낭비가 크니까.

내가 이 곳에 산지도 어느새 3년 반이 다 되어간다. 정말 별로 오래 안된 것 같은데 벌써 3년 반이라니… 다행인 건 이 나라와 나의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않았으니 완전한 정착을 한 건 아니지만, 그냥 일상생활 속에서는 이방인 스트레스를 거의 졸업한 것 같다. 여기 신문을 읽으면서 한국 신문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고 여기 물정에 더 밝아지게 된다. 물론 한국의 정치기사는 워낙 요즘 정치가 신묘하고 황당하게 돌아가다보니 관심을 끌 수가 없지만… 그 밖에 일에서는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식사하는 방식이나 소소한 일상의 행동도 여기식으로 많이 바뀌었다. 임신이라는 경험과 출산 모두 이 곳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교육받고, 몸조리도 여기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게 될테니.

한국에서 살면서 항상 튀어서 지적받고 했던 내가 여기에선 크게 유별나지 않은 사람이 되서 그런가. 이국의 땅에 있지만 이곳에 살면서 내가 이방인이라고 느껴지던 순간들은 한국에서 비슷하게 느끼던 순간들보다 적으면 적었지 더 많지 않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성인이 20대 후반까지 자란 사람이라 절대 이들과 동질성을 느끼는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야 하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 사회를 더 이해하게 되고 녹아 들어가면서 한국인과 덴마크인의 모습이 뒤섞인 사람이 되겠지.

옌스가 스케이트를 타러 아이스링크에 간 사이 크리스마스 캐롤 피아노곡을 들으며 혼자 글을 쓰고 있으니 왠지 감수성이 넘쳐흘른다. 열흘에 불과한 짧은 연말연시 연휴, 프로젝트도 하고 출산준비도 하며 바쁘게 달려갈 생각을 하니 오늘의 평화를 더욱 잘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이 깊어가니 쿠키를 곁들여 디카페인 커피 한 잔 하며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 요즘 간혹 덴마크의 hygge가 소개되곤 하는데, 정말 별 것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없어도 되고, 꼭 촛불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 혼자 온기가 느껴지는 포근한 시간을 보내면 그걸로 충분하다. Jeg skal hygge mig herhjemme alene lige nu!

임신 후기, 병원 방문 단상

임신 중기 이후, 굳이 심박이 느껴지는 곳에 손가락을 올리지 않아도 심박수를 셀 수 있게 되었다. 심박의 강도가 세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간혹 그 심장의 박동이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호흡이 불편해지고 오심이 날 때가 있다. 심박수는 대충 80과 90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으니 특별히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난번 방문 이후로 의사가 좀 이상하다 싶은 건 오라고 했기에 예약을 잡고 병원을 방문했다.

심박이 불규칙한 건 아니고 규칙적인데 불편한 정도로, 어렸을 때 별다른 심장 질환이 없었다면, 지금 검사한 정도로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잠시 누워보라고 할 때 한 다리를 먼저 얹고 다른 다리를 끓어올리는데, 사흘 전부터 다시 시작된 치골통에 약간 신음을 하며 미간을 찌푸리니까 의사가 그렇게 움직이면 안된다고 한다. 양 다리를 벌렸다가 오므리는 활동은 치골통이 있는 경우 이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니 반드시 두 다리를 모아서 동시에 움직이라고 한다. 또한 잘 때 다리 사이에 베게를 끼우고 자라길래, 그건 이미 하고 있다고 답했다.

출산 후 몇 주 안에 없어지는 통증인데, 지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정 힘들면 파노딜같은 진통제를 먹으란다. 다 그렇게 한다고. 그런데 이런 치골통이 임신후기에 느껴지는 건 서서히 아이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골반뼈가 양쪽으로 벌어지는 때문이라며 몸이 출산에 준비하는 신호이니 좋은 거라며 위로해준다. 오늘 치골과 그 반대편 허리아래편이 아프던데, 이제 서서히 준비하는 거로구나 싶으니 빨리 이런저런 출산 준비를 마무리해야겠다 싶었다.

다음 주말 크리스마스엔 시부모님이 오셔서 우리 가구 움직이고 하는 거 도와주시겠단다. 난 이제 무거운 거 들면 조산할 수 있어서 안된다며. 칠순이 넘으신 시아버지가 괜히 힘쓰시다가 아파지시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더라. 차라리 옌스 친구를 부르는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한데, 도와주신다니까 우선 알겠다고 말씀은 드렸다.

배가 급격히 나오고 있다. 물론 이틀간 연이은 크리스마스 디너에 변비가 겹쳐 배가 더 나온 것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도 이미 배가 좀 급격히 나왔었다. 11월 하순 이후로 체중은 더이상 안늘고 있는 것 같다. 거의 한달 정도 되었는데. 아무래도 조금만 많이 먹어도 배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냥 임신 전과 다를 것 없이 먹게되는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그 기간중 애는 1킬로는 늘었을텐데, 내 몸에서 1킬로 정도가 빠진 모양이다.

나와 예정일이 같나, 하루차이인가 하는 지인은 양수가 부족해서 37주에 유도분만이든 뭐든 해서 애를 낳을 거 같다고 한다. 여기에선 딱히 양수를 검사하는 건 아닌데, 촉진을 통해서 자궁 크기와 아기 크기를 판단하니까, 그 두 개가 정상이면 양수도 정상이라고 판단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이제 이번주 수요일이면 모유수유 교육이 있다. 그게 끝나면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3주의 부모준비교실이 끝나는데, 사실 안가도 출산하고 수유하면서 배우게 되겠지만, 미리 알아두면 우리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를 알 수 있게 되서 조금 더 준비하기 수월해지는 것 같다. 또 책에 써있지 않지만 우리가 궁금해하는 병원의 프랙티스에 대해서는 따로 질문을 통해 배울 수 있고, 다른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질의응답을 통해 들으면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고민해 볼 수 있어서도 좋다.

이제 6주도 채 안남았는데, 크리스마스 명절에, 프로젝트 제출 및 시험도 있고 하니 정신없이 지내다가 덜렁 애를 낳을 것 같다. 시간이 어찌나 쏜살같이 흘러가는지. 오늘 병원에서 내 진료차례를 기다리며 여러 꼬마 아기들을 많이 봤는데, 저게 내 미래구나 싶어 새삼 두근거렸다. 흠흠…

부도 난 와인바

결혼식 선물로 받은 상품권 중 와인바 상품권이 있었다. 상품권은 빨리빨리 써야된다는 것을 알게된 오늘. 몇 달 전만 해도 잘 운영하고 있는, 품평이 좋은 와인바였는데. 이 상품권을 선물로 준 친구를 초대해 와인바에 가려고 주소와 상호 확인하려고 방금 인터넷을 뒤지니 부도가 났단다. 뭔지는 몰라도 수지타산이 안맞게 했던 모양이다. 좋은 와인을 과하게 저렴한 가격에 냈든 어떻게 했든간에 부도가 났다니 안타깝다. 미슐랭 별점을 받은 식당 상품권이 있는데, 이건 하나 태어나기전에 얼른 가야겠다. 무슨 이유든 문 닫으면 못쓰니까. 흠흠흠…

다음주엔 그냥 좋은 와인바 가서 마시는 것으로… Ved Stranden 10으로 결정. 임신한 내가 술을 마시면 한국에선 난리가 나겠으나, 일주일에 와인 한잔은 괜찮다는 덴마크 보건당국의 임산부 건강수칙에 따라 옌스의 보수주의를 더해 나는 샴페인 한 잔 시켜 옌스가 반을 마시는 것으로 했다. Ved Stranden 10는 웬만해서는 실패하지 않는 셀렉션과 좋은 분위기, 유쾌한 서비스 등으로 좋아하는 곳이다. 위치도 Holmens Kanal 옆으로 Nørreport 역에서 걸어가면 되서 편하다. Nørrebro에 있는 Vinhanen이라는 곳을 더 좋아하지만 거긴 우리가 만나기로 한 월요일에 문을 안연다. 늦게까지 여는 곳이라 주 2회 휴무를 하는 듯. Ved Stranden 10는 일요일 빼고는 다 여는데, 10시까지만 문을 연다. 바가 주 목적이라기보다는 바와 와인샵 기능이 동시에 중요해서 그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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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hanen에서. 부활절 직전에 친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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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d Stranden에서 친구들과의 모임. 이때는 입덧으로 주스만 들이켰는데… 사실 입덧이라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약하던 것이 이 뒤로 며칠 지나 심각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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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로 Ved Stranden 10. 무슨 패션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와인바와 바는 거의 다 이 친구들이랑만 갔었구나.

옌스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인 밥 딜런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또 오는 모양이다. 어제 자기전 침대에 누워 신문을 보다가 광고를 발견했다. 문화면을 꼼꼼히 챙겨보는 건 그래서이려나.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들 안놓치려고. 4월 초에 오는 일정이다. 내일 회사에 가 있는 중 예매가 시작된다며 좋은 자리를 예매하고 싶은 그가 시무룩해졌다. 그러다가, “너 내일 학교 안가지?” 라며 반색을 한다. 두 장 예매할 거 맞냐고 물어봤는데, 물어보나마나다. 당연히 혼자 가는 건 싫으니 친구를 데리고 가겠지. 시부모님을 불러 애를 맡기고 가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가서 조느니 (꼭 공연 전 마시는 와인 한잔 때문에 난 어떤 공연을 가도 존다. 지난번엔 엄청 시끄러운 락 공연 가서도 졸았다.) 옌스가 함께 열광할 친구와 가서 신나게 즐기고 오는게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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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바비! 웰컴 투 덴마크!

이 공연은 와인바처럼 부도가 안나겠지. 아니, 혹여나 공연 기획에 뭔가 차질이 생겨도 돈은 돌려줄테니. 쩝. 와인바 부도는 매우매우 아쉽지만 (따라서 선물이 공중분해…) 친구를 만난다는 것과 맛난 샴페인 반 잔 마실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밤이나 삶아먹어야겠다. 금요일엔 대학원 친구들 두커플 불러서 한국메뉴로 크리스마스 디너를 하기로 했는데 그걸 생각하며 남은 며칠 잘 보내봐야겠다. 흠흠… 뭘 먹여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나려나…

임신 전엔 몰랐던 임신에 관한 것

임신 전엔 임신에 대해 참 잘 몰랐다. 출산하고 나서는 또 출산에 대해 참 잘 몰랐다는 것을 또 배우겠지. 임신에 대해 나도 많이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보지도 않는데 굳이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일찍 애를 가진 친구들은 뭐 다 그렇게 낳는거지 하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했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잘 관리하고 운도 따라주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고, 불편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또 예상하지 못했던 점에서 불편하기도 하다.

대부분은 이래저래 들어서 알고 있던 어려움들인데, 아래 두가지는 몰랐던 일이다.

  •  배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는다.

복근, 피부 이렇게 안밖으로 따로 또 같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자궁이 커지면서 임신 초기에 아랫배에 콕콕 또는 쿡쿡 찌르는 느낌이 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피부가 찢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는 별로 못들어봤다. 너무 당연해서 이야기를 안해줬나보다. 1년 새 10킬로 찌거나 빠진 경험이 다수 있어 그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 묵직한게 들은 채로 배에 집중해서 체중이 증가할 경우 다를 거라는 것을 몰랐다. 살에 한줄 튼 살이 생겼는데, 실제 이렇게 찢어지는 느낌을 받는 거겠지.

  • 치질이 생긴다.

변비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치질 이야기는 잘 못들었고, 변비 없이도 치질이 생길 수 있다는 건 몰랐다. 치질은 변비나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때문에 생기는 것인 줄 알았는데, 임신으로 증가한 복압으로 생길 수도 있었다. 애 낳고 대부분은 좋아진다는 말에 기대하고 있다. 좌욕을 하기엔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건 임신 중 아이에게 좋지 않다해서 패스하고…

소위 후기에 많이 발생한다고 들었던 치골통이나 기타 문제들은  중기에 오히려 미리 겪고, 대부분은 여러가지 대처법을 통해 극복했는데, 저 위의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이 안되고 있다. 막판까지 계속 저럴 듯. 7주 동안 또 무슨 일들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젠 정말 막바지다.

옌스가 오늘 아침, 처음으로 하나를 만나는 순간을 꿈으로 꿨다는데, 눈을 잘 못떠서 애써 눈을 뜨려고 용을 쓰는 표정을 보았다고 한다. 이젠 실감이 정말 나나보다. 이번 주 토요일이면 하나 침대도 들어오고 이것저것 수납용품 등이 배송되는데, 그거 정리하면 진짜 실감날 듯. 식탁도 거실로 나오고… 집에도 대변화가 예상된다. (미니멀한 집은 안녕)

이웃집과의 소소한 기싸움

우리 아랫집의 맞은편에는 어린 아이가 둘인 싱글맘이 산다. 삶에 항상 찌든 듯한 표정을 보면 다소 안타깝기도 해서 가만히 있었지만, 거의 이사온 지 1년이 다되가는 지금까지 여러모로 참은 것들이 쌓여서 작은 대응을 시작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애를 자꾸만 공용 복도로 내보내고 자기네 집 문은 닫아 잠근다. (여기는 닫으면 잠기는 구조) 둘째 애가 이제 만 세살 조금 안된 것 같은데 복도에서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곤 한다. 한두살 차이나 보이는 오빠가 조용히 하라고 하는데, 그냥 애가 소리 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처음엔 우는 소리인가 했더니 신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우리 라인에 이 집만 이런 애가 있었던 게 아닌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째야 할 지 잘 모르겠더라. 영국 친구들은 애랑 엄마를 같이 마주치면 “네가 그 목소리가 큰 애구나!” 또는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인 줄 몰랐구나!”라고 살짝 비꽈주라는데, 애만 밖에 내어두니 그럴 기회가 잘 없었다.

한달 정도 전부터는 더이상 놔둘 수가 없었다. 출근하고 나가버리는 다른 집 사람들은 괜찮다쳐도 학교 안가고 집에서 공부하는 날들이 있는 나에겐 오전 9시~10시 경에 신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아이를 더이상 참기에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는 아이네 집 앞으로 내려가 여기는 너네 집이 아니라 공용공간이고 소리를 질러서는 안된다고 차분히 타일렀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왜?”를 반복하는 아이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집 안에서 애 엄마가 불쑥 나오면서 애를 집 안으로 들이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애를 집안에서 소리지르게 놔둘 인내심은 부족했던 엄마지만, 남에게 애가 잔소리 듣는 일은 싫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애를 복도에 풀어두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고, 어디 나가기 전에 잠깐 애 먼저 나가게 해서 소리지르는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옌스에게 하니, 사람들이 애들을 갈 수록 버릇없게 키우면서도 남들이 자기 애에게 한소리 하는 건 다들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한다. 하나가 나중에 어디 가서 버릇없이 행동해서 남에게 피해를 준 경우, 상식적인 선에서 남이 타이르는 것에 대해선 받아들일 거라면서 이 부분을 잘 못하는 부모가 늘어나는 게 아쉽다고.

두번째는 우리 아파트 라인의 출입구앞에 자전거와 유모차를 항상 두는 것이었다. 아파트 복도가 넓지 않고 소방안전 등의 문제가 있어서 복도와 출입구 앞에 물건을 적재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처음엔 한두 번이었는데, 누가 딱히 제제를 하지 않으니 6~7개월 정도 전부터는 항상 그곳에 두기 시작했다. 가을이 지나서는 쓰지도 않으면서 거기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전거와 유모차를 주차해 두었다. 먼지도 쌓이고 그 안에 빈 병 같은 것도 놓이기 시작했다. 공간이 작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서 유모차를 집으로 올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자전거와 유모차를 위한 지하 주차공간에 두는데, 우리처럼 새걸 사는 경우는 집에 올리거나 자기 창고 안에 넣어둔다. 거기가 조금 좁아서 주차하고 빼오기가 불편한 경우가 있는데, 자리가 없는 건 또 아니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디 나갈 때 일찌감치 여유있게 내려가서 챙겨야 한다는 것만 생각해두면 큰 불편은 아니다.

좁은 창고에 불뚝나온 배를 안고 들어가 유모차 주차 공간을 만드려고 먼지 들이키며 정리 및 청소를 하고, 자전거 빼올 때마다 많은 자전거 해치며 씨름을 하더라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아파트의 규칙을 지키려는데, 갈수록 더 규칙을 안지키고 주변을 어지럽히는 이웃이 참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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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후 창고. 유모차는 이곳에 주차할 수 있겠지.

결국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메일로 불평을 여러차례 했다. 담당자가 이웃에게 경고서한만 발송하며 6주가 넘도록 해결을 잘 안해주길래, 그녀의 보스를 참조로 넣어, “이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문제를 해결 안해주면 이게 새로운 규칙인 줄로 이해하고 앞으로 자전거니 뭐니 우리도 다 출입구에 주차하겠다”라고 메일을 넣었다. 다음날 새벽 6시 반에 답장이 와서, 바로 주민과 전화해보겠다며 절대 주차하면 안된다고 보스에게서 답장이 왔다. 복도 규정공고문에 붙어 있듯이 이런 건 주차하면 안된다고.

이런 공식적인 불평에 더불어 비공식적이나 적극적인 대처를 추가하기로 했다. 공식적 항의서한을 보낸지 한달이 조금 넘은 시점부터는 이게 과연 이렇게 해결될지 확실하지 않아 뭔가 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녀의 유모차와 자전거를 사진으로 찍어 우리 라인 전체사람에게 쓰는 공고문처럼, “자전거, 장난감, 유모차는 공용공간인 출입구 앞에 비치해서는 안되고, 지하실 전용공간에 두어야 한다. 이 사진은 하면 안되는 행동의 대표적 예시다. 모두가 규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덴마크어로 써붙였다. 규정 공고문 바로 아래에. 안그래도 그걸 붙이겠다고 했던 이야기를 들었던 옌스가 집에 와서 웃더니, 몇 개 문법을 수정해야지 아니면 네가 붙인 거 알겠다고 한다. 그리고 문법은 틀리지 않았어도 너무 딱딱하고 공식적인 것 같은 표현은 수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빨간펜으로 수정을 해주었다.

다음 날, 학교가는 길에 보니 그 공고문은 사라져있었다. 옌스가 퇴근한 이후에 사라진 것이니 청소부가 뗀 것은 아니고. 수정한 문서를 붙이고 떼는 숨바꼭질 같은 일이 일주일여간 지속되더니 유모차가 사라졌다. 그리고 공고문이 남아있었다. ‘아하… 유모차 치운 것으로 떳떳해졌군! 그런데 자전거는 안치워도 떳떳한 건가?’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고문에 자전거 부분을 강조해서 “자전거는? (Hvad med cyklen?)” 이라고 손으로 쓴 뒤 다시금 붙였더니 이틀 만에 자전거도 사라졌다. 열흘 정도 씨름을 하고 나니 해결이 되었구나.

진작 얼굴보고 불평했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안되었을 수도 있는데, 뭔가 이사온 초반부터 안맞는 이웃이었다. 인사를 여러 번 해도 씹고 (지금은 그 집이 먼저 인사하기 전엔 나도 인사 안한다.), 애가 뭘 복도에 엎으면 남들같으면 치우는데 치우지도 않아서 다음주 청소부가 걸레질을 할 때까지 복도를 엄청 끈끈해진 채로 놔두고, 뭐 빌린다고 불쑥불쑥 와서 강한 율란 억양으로 빠르게 이야기하고, 내가 외국인이라 그러니 천천히 이야기해달라고 해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두르륵 이야기 하고 가는 등… 발코니에 남이 보이도록 뭘 적재하면 안되도록 되어있는데 (이건 참 신기한 규정이다. 밖에서 보이는 아파트가 지저분해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이니.) 이사온 지 일년이 지나도록 그 집 발코니는 안이 거의 안보일 정도로 뭔가 쌓여있다.) 그거 안지킨다고 옌스가 여러번 지적하더라. 아무튼 뭔가 상식이 통하는 집은 아닌 거 같아서 얼굴 보고 불평하며 얼굴 붉히기 싫었다. 그래서 이런 치사한 방식으로 해결을 한 거다.

공고문을 붙이는 순간부터는 더이상 이 일이 짜증나기보다는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 숨바꼭질 같아서 재미있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오기를 부렸다. 해결되고 나니 십년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다시금 아파트 주변 환경도 깨끗해지고. 애들도 소리를 안지르고. 옌스가 나중에 하나 태어나면 그 집 앞에 가서 소리를 지르게 해봐야 하는게 아니냐 할 정도였는데. 🙂

논문 프로젝트 시작

출산 및 육아휴직때문에 논문의 공식적 시작은 2018년 2월부터지만 교수의 너그러운 배려 덕분으로 Contract sign 없이 미리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첫 미팅은 잘 끝났다. 이렇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논문을 쓸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의외로 주제 뽑는 문제가 스르륵 풀려버려서 이제는 데이터 수집하고 준비해서 쓰기 시작하면 된다. 덴마크어로 된 자료 수집도 필수불가결한 거라, 교수가 덴마크어 어느 정도 하는지 물어봤는데, 사전 써가며 신문 읽을 정도 된다고 하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정부 보고서가 덴마크어로만 된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논문 키워드는 헤도닉 모델, 홍수이다. 계량경제학, GIS, 헤도닉 모델을 열심히 파게 될 것 같은데, 하나가 얌전한 아기로 잠을 많이 자주면 조금 더 미리 많은 것을 할 수 있어 홍수피해방지책에 대한 CBA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 그 건 번외로 하고 논문은 범위를 조금 더 줄여서 컴팩트하게 가려고 한다.

쿨한 교수와 함께 하게 된 것도 좋은데, 교수가 이 주제대로 나오면 정말 cool할 것 같다고, 덴마크에 없는 자료를 만드는 것이니 여러 지방정부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더 좋았다.

논문이란게 이렇고 시작하다가도 여러가지 장벽을 만나 꼬여 방향을 틀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지만, 사람들이 한결같이 우선 쓰기 시작해야 한단다. 그래야 고칠 게 있지, 쓴 게 없으면 고칠 수도 없단다. 맞는 말이다. 지난 번 소논문 쓸 때도 쓴 게 없으면 지도교수도 도와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고, 실제 그를 피부로 느꼈다.

아직 하나가 나올 때까진 시간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겠다. 읽을 거리들도 읽어두고, 뇌도 계속 깨워두고.

교수가 카페에 데려가 옆에 재워두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라떼 아기”이면 미리 일하기 수월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 끊임없이 소리지르고 우는 아이면 애를 보육원에 보낼 때까지 일하는 건 거의 포기해야 할 것이란다. 그래서 한국 갔다와서 한 9~10월때쯤 애를 보육원에 보내려한다 했더니, 자기네도 9개월 때 보냈다며 그때 보내기 괜찮은 때 같단다. 애가 스스로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하는 타이밍이라 그런대로 보낼만 하다고. 그전에 보내면 그런 소통 자체가 어려우니 혼자 거의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좀 많이 안쓰럽다고. 그렇게 애를 보내기 시작하면 좀 본격적으로 일 할 수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도 해준다. 중간에 언제고 연락하고 찾아오란 말을 더하며.

마음이 편해졌다. 집에 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 연하장도 부치고 나니 뭔가 한 해를 거의 마무리한 느낌도 들고. 하나가 좋은 타이밍에 와줘서 삶이 조금 더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는구나 싶어 고맙기도 하고 좋다. 비가 와 날은 참 우중충하지만, 바나나와 아몬드, 고지베리를 넣고 따끈하게 오트밀을 끓여먹었더니 마음도 푸근하다. 조금 있다가 오후에 옌스와 함께 산모교실도 다녀오고 하루를 잘 마무리해야겠다.

겨울아침 잡생각

아침 8시. 해는 아직 뜨지 않았고, 새벽녘의 어스름으로 하늘은 잿빛이 되었다. 따뜻한 글뢱 한잔을 곁들이며 K-pop을 듣고 있다. (글뢱 – Gløgg, 독어 Glühwein (글뤼바인)의 glüh와 같은 어원의 단어 – 은 와인에 계피, 팔각, 카다몸, 오렌지 등을 넣어 뭉근히 끓인 것으로, 프랑스에서는 Vin Chaud(뱅 쇼)라고 한다. 가족을 위한 글뢱이라고 와인대신에 사과즙을 넣어 만든 걸 팔길래 사왔다.) Spotify가 장르중의 하나로 K-pop을 따로 구분해놨길래 그 중 그나마 아침에 들어볼 만한 것으로 OST를 골랐는데, 다는 아니라도 들을 만한 것들이 있다. 굳이 아침에 딱히 어울리는 믹스는 아니다. 그냥 다른 거 들어야겠다. 한국분위기 내볼까 했는데 영 실패.

얼마전에 옌스가 왜 K-pop을 안듣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좋아했던 한국가수가 많지 않은데, 전람회, 이적, 토이, 박정현 등 발라드 가수 일부를 좋아했던 게 전부였던 것 같다. 학창시절엔 그나마 길거리 음반가게에서 음악도 많이 틀어줘서 관심가는 노래가 생기면 듣기도 하고, 애들이 들려준 거 좋으면 찾아 듣기도 하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사람도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서양 음악이라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게 이미 거의 정해져서 그런지 자꾸 듣다보니 Spotify의 discover가 내 취향을 정말 잘 파악할 정도가 되었다. 놀라운 알고리즘.

어제 저녁에 피곤함이 심해서 다리가 아플지경이었다. 딱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오전수업하고 자켓 하나 사느라 쇼핑한 게 전부인데. 10시 반에 침대에 누워 딴짓을 하다가 11시에 불을 껐고, 12시 전에 옌스에게 잘 자라는 말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뻗어버렸다. 아침엔 또 어찌나 일어나기 힘든지… 깊게 못자고 잘 깨는 나답지 않았다. 특히 태동이 심해져 하나가 뱃속에서 온갖 아크로배틱한 동작들을 해댈 때면 한참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곤 했는데. 중간에 불편해서 한 번 깨고는 그냥 쭉 잤다. 물론 꿈자리는 사나웠지만. 남들이 말하던 임신 후기의 피곤함이 9개월차 들면서 느껴지는 것인가보다.

어제는 겨울파카를 사왔다. 안사고 버티려다가 안에 입는 옷을 조금만 두껍게 입어도 지퍼를 잠글 수 없음에 짜증이 밀려와 정신건강에 좋지 않겠다 싶어 벼르던 옷을 샀다. 앞판에 자크가 양쪽으로 달려있는 긴 패치가 있어 출산 후엔 이 패치를 떼어내 슬림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사실 지금 겨울이라고 해도 유래없이 따뜻하고 비도 안오는 기이한 날씨를 보이고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풍 한파가 몰려올 경우엔 확 추워지기 때문에 그런 날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주엔 딱 한번 영하 5도까지 내려간다하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에 불과하고… 백년에 한번 오는 추위가 온다 해서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실망마저 든다. 겨울은 추워야 하는 법. 그래야 겨울에 마땅히 죽어야 할 양의 병충해의 근원이 죽어 다음해의 나무와 작물이 잘 클 수 있는데.

하늘이 흐려서 언제 해 뜨는지도 모르게 해가 뜨려나보다. 하늘이 밝은 회색으로 변했다. 곧 해가 뜨려나보니 나도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야겠다. 오늘은 논문 지도교수와의 첫 면담이 예정되어 있는 날. 기대가 된다. 두근두근. 오늘 결혼하는 친구도 있는데 나때와 마찬가지로 비가 오려나. 행복하게 잘 살 모양이다. 출산교육도 저녁에 예정되어 있으니 뭔가 이벤트가 많은 날이네. 좋은 하루가 되기를…

나는 출산이 두렵지 않다.

어제 사람들과 만나서 점심을 했다. 중간에 출산이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 답은 아니라고 했는데, 아직 출산이 임박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아니면 잘 몰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출산이 무섭지 않은 이유는 그런 게 아니다. 사실 그 순간엔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냥 출산이 임박한 순간에도 그 고통이 무섭지 않을 거란 것은 안다. 물론 긴장은 되겠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왜 그런걸까?

고통은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물리적 고통 자체를 두려워한 적은 없었다. 어떤 기약없는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두려워할 것 같다. 그러나 누구나 감내할 통과의례적 고통으로 어떤 특정 기간만 견뎌내면 되는 고통은 괜찮다.

내가 무서워하는 건 고통이 아니라 어떤 결과다. 내가 정신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어떤 결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거나 하는 종류의 결과 말이다.

물론 출산과정 중 애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마음 한 켠에조차 없진 않다. 그러나 난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고, 사람들의 직업윤리를 믿고, 어떤 실수가 있더라도 그걸 만회할 정도의 상황이 되리라 믿기에 그 두려움이나 불안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럴 확률 또한 낮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삶이 한결 쉬워진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그게 나이브한 생각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믿음은 그런 거 아니던가? 타인이 생각하는게 중요하지 않은 것.

연극 Svantes Lykkelige Dag (스반테의 행복한 날)

모듈 2였나. Svantes Lykkelige Dag라는 시를 수업 중에 접한 것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운율에 대해 배우며 어떤 상황을 묘사한 것인지 해석하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만 기억난다. 많은 덴마크인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 시에 대해 그 때 가졌던 인상은, 인생의 소소한 기쁨에 즐거워하는 덴마크인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Nørreport역에서 환승을 하다가 바로 아래의 사진과 함께 적힌 이 시의 제목과 마주쳤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Anders W. Berthelsen이 주연을 맡는 것을 봐서 더 눈에 띄었다. (이 배우는 덴마크에서 시작된 dogma 95 – 교리에 가까운 원칙과 순결선언문을 기반으로 한 특별한 영화제작방식 – 영화 (Festen, Mifunes Sidste Sang, Itanliensk for Begyndere 등) 에 많이 출연했고, Krønikken을 포함해 다수의 TV 시리즈에도 출연했다.)  연극!

덴마크에서 본 첫번째 연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다. 덴마크어로 된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읽지않고 발레 공연을 예매한 줄 알았던 것이 하필이면 연극이었다니. 덴마크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고, 덴마크어라고는 인사 외에는 아는 게 없던 시기였다. 발레를 먼저 고르고 2013-2014 시즌을 선택한 줄 알았더니, 그 시즌이 발레의 하위카테고리가 아니었다. 그냥 별개의 카테고리였는데, 내 멋대로 한국 웹사이트 방식에 익숙한 사고방식을 여기서 그대로 적용해 그렇게 이해한 것 뿐이었다. ‘악령을 발레로 해석하다니! 정말 흥미진진하겠는걸?’ 이라는 생각으로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예매한 것이 실수였다.

그걸 뒤늦게 알고나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갔는데, 그건 내 말도 안되는 착각이었음이 극 시작 후 10분만에 드러났다. 우선 원작을 그대로 상영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적 배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70년대를 풍미하던 히피즘을 배경으로 다 바뀌었는데, 음악도 파격적이고, 덴마크 극 문화를 전혀 모르던 내게는 무대 장치부터 너무 생경했다. 스토리를 모르는 것도 그렇지만, 극의 진행으로 미루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는 것 조차 힘들만큼 어려웠다. 등장인물은 또 어찌나 많은지. 러시아문학의 특성을 고려해봐도 그렇긴 하지만, 난 그 난해함에 압도되어버렸다.

결국 1시간 30분동안 앉아있다가 인터미션 때 도망을 치고 말았다. 더이상 남은 한시간 반을 그런 멍한 정신상태로 앉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랬던 나의 덴마크 첫 연극 감상은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겼더랬는데, 또 연극이라니! 그런데 자막이 나온단다. 영어, 덴마크어 그리고 아랍어로. 남편은 연극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혹시 가겠냐고 물어보니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가주겠다고 했다. 기대한 바 그대로여서, 우선은 다른 사람을 먼저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한번 가보자고 했는데, 그녀가 흔쾌히 승낙을 했다.

La Petanque에 들러 간단히 걀레뜨로 식사를 하고 호수를 건너 Nørrebro로 향했다. Nørrebro의 메인 거리인  Nørrebrogade만 보고 이 지역을 힙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약간 지저분한 지역으로 알고 있던 그녀는 이 메인거리를 중심으로 양쪽에 퍼진 작은 길들에 Hyggelig한 가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어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나와 옌스의 생활반경에서 약간 벗어나있어 친구들 만나는 거 아니면 안가게 되는 이 곳. 오래간만에 목요일 (작은 금요일이라고도 불리는…) 에 나가보니 그 릴렉스한 분위기에 나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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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외관

8시에 시작하는 연극에 맞춰 극장에 들어서니 안이 정말 아늑했다. 연령대가 높은 관객이 주를 이루고 있는 듯했으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아마 이 시를 발간되고, 사랑을 받았던 시기가 70년대라 주 관객층도 이 시를 즐겼던 당시의 젊은 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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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내부 휴게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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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연극이 시작되었다. 어라? 그런데 자막은? 자막이 나올만한 구석도 없는데다가 어디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자막을 볼 수 있는 앱이 따로 있단다. 그냥 자막이 나온다는 한 줄을 보고 그 아래 부연 설명을 잘 안읽은게 함정이었다.)

아뿔사. 나는 그렇다쳐도 내 친구는 어떻게 하나. 살면서 연극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이게 3번째 정도 되는 거라고 했는데, 나의 덴마크 첫 연극과 같은 경험을 안겨주게 되나? 그녀도 덴마크어를 배우고 있으니 이해할 수 있을까? 연극이 시작되며 내가 이해되는 양을 보아하니 그녀에겐 조금 더 어려울 텐데 과연 괜찮을까? 등등…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이 빠르게 교차했다.

그나마 그녀는 연극에 대해 읽어보고 왔고, 나는 아무런 배경지식을 쌓고 오지 않아서 비슷하게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연극은 Benny Andersen이 이 시집을 쓰며 마주한 자기 자신과는 다른, 자기가 닮고 싶고, 지향하고 싶은 인격, 마음 속의 갈등, 이런 것들을 가상의 친구인 Svante로 만들어냈던 것, 그리고 이 Svante와 자기의 진정한 모습이 만나 화해를 하며 온전한 자신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그린 것이었다. 결국 Svantes Lykkelige Dag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그렸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1막이 끝날 때까지 Svante가 본인이 아니야? 그럼 누구지? 하면서 많은 혼란속에 보다가 인터미션에서 프로그램을 조금 읽어보고나니 대충 그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고, 머리속의 많은 혼란이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았다. 2막이 시작되며 주인공이 Svante가 자기 속의 다른, 자기가 되고 싶어하는 지향속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게 융해되어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는게 보다 명확해졌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한 Svantes Lykkelige Dag 노래가 얼마나 좋던지. 여주인공인 Lise Baastrup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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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장면

우리 말이었으면 보다 쉬웠겠지만, 한 사람의 내면 속 분화된 인격을 여러 인물로 상징적으로 분화시켜 극화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도 조금 난해했었을 지도 모른다. 연극의 묘미란 극으로 풀어낸 상징을 찾아내는 데 있으니, 그 소기의 목적을 잘 달성한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2막부터 뇌에 과부하가 걸려 집중력을 상실했다는 그녀에게 힘든 경험을 안겨준 것 뿐이려나 하고 마음이 다소 무거웠으나, 집에 돌아와 즐거웠다는 메세지를 보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좋은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다가, 앞으로 여러가지 문화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를 찾은 것도 기뻤다.

Svantes Lykkelige Dag의 작가와 가수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라이브로 공연했던 영상, 그리고 그 시를 아래에 공유한다.

 

 

Svantes Lykkelige Dag

Se, hvilken morgenstund!
Solen er rød og rund.
Nina er gået i bad.
Jeg’ spiser ostemad.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lomsterne blomstrer op.
Der går en edderkop.
Fuglene flyver i flok
når de er mange nok.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Græsset er grønt og vådt,
Bierne har det godt.
Lungerne frådser i luft.
Åh, hvilken snerleduft!
Glæd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Sang under brusebad.
Hun må vist være glad.
Himlen er temmelig blå.
Det ka jeg godt forstå.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Nu kommer Nina ud,
nøgen, med fugtig hud,
kysser mig kærligt og går
ind for at re’ sit hår.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enny Andersen 이 쓴 시는 1972년에 출간된 ‘스반테의 노래’ 시집에 실렸으며, 가수 Povl Dissing이 노래를 부르고 Benny Andersen이 반주자가 되어 1973년 LP판으로 발매되었다.

Source: http://www.festabc.dk/1/svantes-lykkelige-dag

 

사족. Povl Dissing이라는 가수는 노래를 잘 부른다기 보다는 그만의 매력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은데, 사형수의 형집행 전 25분을 그린 아래의 노래를 보면 그가 얼마나 독특한 가수인 지 알 수 있다. 상황 묘사 후 아직 25분이 남았다, 아직 24분이 남았다, …, 아직 1분이 남았다, 하고 25번을 반복하다가, 마지막 상황 묘사를 마치고 음악이 멈추며 형이 집행되었음을 암시한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며 갈 수록 절박해져가는 그의 목소리에서 정말 형 집행을 앞두고 노래부르는 사형수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덴마크스러움이란?

11월 말이 되니 Spotify에 캐롤 믹스가 넘쳐난다. Julesange du kender (Christmas songs you know)라는 믹스가 추천으로 떠서 틀어보니, 덴마크 크리스마스 노래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Jul-Det’Cool이라는 노래가 첫곡으로 나온다. 이젠 나이가 꽤나 든 덴마크 래퍼인 Mc Einar의 노래인데, 소비지향적인 크리스마스를 덴마크인 특유의 아이러니한 유머로 비꼰 노래다.

Jul-Det’Cool by Mc Ei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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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MC Einar. (Source: BT)

Det skete i de dage i november engang
at de første kataloger satte hyggen i gang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ebal i Nisseland, familiernes fest
med fornøjet glimt i øjet, trækker folk i vintertøjet
til den årlige folkevandring op og ned ad Strøget
der bli’r handlet, pakket ind, og der bli’r købt og solgt
tøsne, snot i næsen, det’ pisse koldt
det er vinter, man forventer vel lidt kulde og sne
men det’ da klart at en såd’n sag må komme heuj bag på DSB
intet vrøvl har de forsvoret, det de helt sikre på,
men ved den første rim på sporet, går møllen i stå
folk de tripper, skælder ud, og ser på deres ure
og sparker efter invalide, ynkelige duer
der er intet, man kan gøre, de sure buschauffører
gør det svært at praktisere lidt julehumør
“Gå så tilbage for helvede” råber stodderen hæst
men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r er mænd, der sælger juletræer på alle åbne pladser
12 bevægelige nisser og en sort mekanisk kat
i et vindue ud mod Strøget trækker flere tusind watt
kulørte gavepakker i kulørte juleposer
selv i Bilka og i Irma og i alle landets brugser
er der ægte julestemning og gratis brune kager
der er hylder fyldt med hygge, der er hygge på lager
og hos damerne i Illum kan man få det som man vil
“Kontant eller på konto, hr.? Ska’ prisen dækkes til?”
de smiler og er flinke, mest for fruerne i minke
og gi’r gode råd om alt fra sexet undertøj til sminke
og vi andre fattigrøve, vi ka’ gå i Dalle-Valle
der er damerne så flinke, at de smiler pænt til alle
der er masser tøj i kasser, der helt sikkert passer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15.000 mennesker i Magasin
de har våde lædersko, de har halstørklæder på
de har overfrakker, gavepakker, masser de ska’ nå
men de hygger sig, sel’fø’lig gør de det
plasikstjerner, plasikgran og plastiksne
sætter stemning i systemer, det’ så nemt og nul problemer
køb blot julestuens julesæt med fire fine cremer
eller sukkerkrukker, pyntedukker, pænt, mondænt og ganske smukt
søde sæt med proptrækker, glas og øloplukker
fra en skjult højtalerinstallation,
“Et barn er født i Bethlehem” i Hammondorgelversion
vi’ traditionsbundne folk, i traditionernes land,
så vi hygger os, li’så fint vi kan
og særlig uundværlig, det er Magasin,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Højt fra træets grønne top”
“Mød julemanden klokken 13, 15, og 17 på julestuen på 3. sal”
“Vores velassorterede vinafdeling kan tilbyde et komplet gløgg-sæt for kun 39.95”
“Lille Øjvind på fem år er blevet væk fra sin mor, han kan afhentes i kundeservice”

“Jamen du godeste er det allerede…”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der er intet lavet om siden sidste år
det’ de samme ting vi spiser, det’ de samme ting vi laver
de samme ting i TV, de samme julegaver
samme pengeproblemer, det’ dyrt og hårdt
udelukkende overtrukne kontokort
overflod og fråds med familie og med venner
samvittigheden klares med en ulandskalender
det’ julefrokosttid, traditionspilleri, spritkørsel, utroskab, og madsvineri
vi har prøvet det før, vi ved præcis hvad der sker
slankekur i januar og alt det der
det’ et slid, men der er lang tid til næste år
det’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Jeg drømmer om en hvid sandstrand,
med palmetræer og sommervejr
der vil jeg fejre julen
i swimmingpoolen
langt væk fra sne og juletræer”

옌스는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걸 매우 웃기게 생각한다. 가사도 모르던 이 노래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접하게 되면서부터다. 출근 길에 화장하면서,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항상 들었는데, 거기서 이 노래를 정말 자주 틀어줬다.

옌스가 간혹 나보고 자기보다 더 덴마크인스럽다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다. 덴마크 캐롤을 좋아하는 것,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Ris a la mande (프랑스 메뉴인 척 하는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디저트)나 Æbleskiver를 먹고 싶어하는 것, 덴마크식의 self-irony 유머를 즐기는 것 등 말이다. 사실 self-irony 유머는 그냥 여기에 와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덴마크 문화와 맞아떨어진 개인적 특성일 뿐이지만…

그런데 막상 옌스는 덴마크인스럽지만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사람이기도 해서 진짜 덴마크인스러운 게 뭔지는 집 안팎을 두루 관찰하고 이야기를 골고루 듣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실제 옌스는 전형적 덴마크인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한다. 남들끼리는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는 공감하기 어렵고, 반대로 내 경험을 남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을 꼽아보자면… Rugbrød(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에서 주로 먹는 호밀빵으로 점심때 먹는다.)은 가족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행사같은 날 빼고는 안먹는 것 (자기는 어려서 평생 먹을 Rugbrød을 다 먹었다며…), 있으면 먹지만 Lakrids (감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각종 종교적 전통을 좋아하지 않는 점 (크리스마스때 선물 교환은 딱 조카들과 나에게만 하고, 가족들에겐 선물 안주고 안받는다고 못을 박아두었다.), 새로운 음식이나 새로운 문화, 언어를 배우는 것 등을 좋아하는 점, 덴마크를 좋아하지만 굳이 덴마크를 자랑스러워하거나 덴마크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거나 그런 게 없다는 점, 그래서 내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점, 덴마크 국기인 Dannebrog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맥주를 안좋아하는 점 등이다.

덴마크인스러운 점도 물론 많다. 운동을 정말 좋아해서 하루라도 운동을 빼놓는 날이 없다는 점, 매사 성실한 점, 개인생활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시하고 가사분담 참여비율이 높다는 점, 직업 윤리가 투철하다는 점,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점, 집에서 밤에 불 밝게 켜는 것 싫어한다는 점 (현광등은 정말 질색팔색한다. 한국가서 한두달 지내려면 적응하느라 고생 좀 할 듯), 겨울에도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자야하는 점, TPO에 맞는 옷을 잘 차려입는 것 좋아하고 패션에 대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점 (자기 것 쇼핑은 반드시 자기가 한다. 의견은 수렴하지만, 결정은 자기의 몫. ) 등

물론 이러저러한 특성을 굳이 덴마크인스러운 점과 그렇지 않은 점으로 나눴지만, 사실 외국인 남편과 그의 모국에서 살다보니 국민적 특성이란 것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개별특성의 스펙트럼이 평균으로부터 워낙 넓게 펼쳐져 있어 저 구분이 틀리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이 또한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 자기가 교제하는 사람과 준거집단을 중심으로만 살펴보게 되서 덴마크인스럽다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겐 전혀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도 많고, 내가 덴마크인스럽지 않다고 하는 것도 덴마크인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친구를 초대해서 음식을 넉넉히 하다보니, 다음날 저녁에 데워서 먹을 만큼 넉넉히 남았었는데, 난 그에 곁들일 탄수화물로 빵을 굽고 있는데, 옌스는 밥을 달라고 했다. 서양음식인데 밥을? 이라는 나의 반응과 달리 옌스는 내가 해준 쌀밥이 덴마크 어느 식당에서 먹는 쌀밥보다도 맛있다면서 그걸 달라하고, 간장에 참기름을 달라해서 그 쌀밥위에 끼얹어 먹는걸 보면서 기함했다. Rugbrød위에 남들과 다른 컴비네이션을 얹어먹는 걸 봐도 크게 놀라지 않는 옌스인 걸 생각해보면 그만의 기이한 조합도 딱히 놀랄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방송에서 “진정한 덴마크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걸로 이것 저것 다양하게 다룬다. 토론, 뉴스, 다큐멘터리 등등… 옌스는 그런 토론 자체가 정말 피곤하고 언론에서 덴마크인이라는게 뭐 대단한 거고 그게 얼마나 통일성이 있는 것이고 독창성이 있는 거라고 그걸 그렇게 따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공동체 의식, 개인주의 등 가장 핵심적인 가치만이 지켜진다면 사회는 항상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고, 개인마다 덴마크인다움에 대한 정의가 다 다른데 그걸 dansk함과 udansk함을 나누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 나에게도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인 다움이 있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이곳의 가치에 영향을 받으며 한국에서 갖고 있던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너도 덴마크인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내가 한국인인 것만큼 덴마크인도 되어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 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함께 덴마크인의 행복함의 원천에 대해서 휘게와 기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찾고 이를 홍보하고 수출하는 것도 피곤하다고 한다. 그냥 타인과 비교 별로 안하고, 현실감있는 목표를 정하고,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서열의식이 적고 자연환경이 좋은 편이어서 다른 나라사람들이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덜 받고, 그래서 행복한 거 아니냐고. 그게 우리에게 특별한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란다.

이럴 때 난 덴마크인이지만 덴마크인이기만 하지 않은 옌스와 결혼을 한게 참 안도가 된다고 할까? 안그래도 타국에서 살면서 적응할 게 많은데 그걸 강요당한다거나 기대를 받는다면 어땠을라나? 여기의 룰에 맞춰가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다름을 같음으로 맞춰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과, 내가 다른 건 옌스가 다른 덴마크인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다르다고 전제를 깔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리 없이 편입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고 적응을 도와주는 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이번에 새로 주문한 한국어 책에서 (한권을 드디어 끝냈다. ㅠㅠ) “하다”동사를 활용한 한국어 동사변형의 여러가지 유형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걸 패턴드릴로 연습한다고, 몇가지 동사를 주면서 이걸 같은 형식의 테이블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들어줬더니, 다음날 회사에서 출력을 해갖고 온 것을 보여주며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사실 옌스랑 나는 주중엔 퇴근 후 30분정도 그날 있었던 이야기 좀 하고, 같이 뉴스 보고, 각자 할 일 하다가 소파에서 30분 정도 같이 앉아 쉬고, 또 각자 할 일 하다가 잠자리 들어서 조금 이야기 나누는 것 정도가 일상이다. 각자 할 일 하다가 시덥잖은 말 한 두마디 던지면서 낄낄대는 것 외엔 자기 할 일 할 때는 자기 것만 따로 하기에 각자의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크다. 평일엔 저녁도 둘다 뉴스 보면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 간단히 먹으니까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게 둘이 필요로하는 공통사항이라 서로 이를 존중해주는 것이 참 좋고 고마운 거다. 우리는 서로 뭐 배우고 하는 거 좋아해서, 같이 있지만 또 각자 저녁에 배움의 시간을 가진다는 점에서 닮아서 정말 좋다고 하니까, 인생의 목적은 배우는 데 있는게 아니냐고 한다. 항상 옌스가 강조하는게 general education의 중요성인데, 이걸 덴마크인스러운 것이라고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옌스스러운 것이지.

이런 옌스와 살아서 딱히 문화충격을 받을 일이 없는 것도 있겠지만, 인도에서 겪은 문화충격이 워낙 커서 웬만한 다름에 충격을 크게 받지 않는 것도 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어떻게 적응하고 사느냐의 문제로 인식하면 되는가 싶기도 하고. 또 곰곰히 뒤를 돌아봐 생각해보면 나름 여기서도 큰 문화충격을 받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 힘든 시간들이 대부분 잊혀지고 그냥 그 틀에 내가 녹아들어가 바뀌어 더이상 놀라울 게 크게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다시 들춰보며 과거의 추억에도 잠겨보고, 스스로의 과오나 성과에서 배워도 보려고 별거 아닌 이런 생각의 조각들을 그래서 그때그때 남겨두는 거니까… 몇 년이 지나서 지금을 반추해보면 그땐 또 무슨 생각이 들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