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목소리, 두려움과 싸우기

리드클라이밍을 하다보면 두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내가 어떤 내면의 목소리와 마주하게 되는지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쓰며 그 상황을 복기하기만 해도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오는 그 순간의 두려움은 사실 본질적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다. 위험 자체보다는 위험이 있을 수도 있는 확률, 즉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다. 바닥으로부터 3미터 정도의 높이를 벗어나면 우리가 다리와 로프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유지하고, 무리하게 높은 곳에 줄을 걸려고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 이후에는 자잘한 부상 가능성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등반을 하는 것이다.

벌써 20회 가까이 시도했지만 계속 마지막 구간을 실패하는 루트가 있다. 물론 실패의 종류는 달랐다. 초반의 등반에서는 여러번의 휴식을 취해야 했고, 첫번째 난관의 구간에서 계속 실패했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갔고, 한번의 휴식만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더 클린하고 안정적인 테크닉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최근 도달한 마지막점에서부터는 그 위로 더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등반 각도가 45도 이상으로 눕는 가파른 구간이기도 하고, 이미 거기까지 올라가며 소진한 에너지 탓에 낭비할 시간과 에너지 따위는 없다. 따라서 빠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고, 내린 결정은 의심하지 않고 믿고 행동으로 바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러번 실패한 이 구간에서 나를 제한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미 너무 힘들어, 여기서 더 뛰어오를 힘도 없어, 뛰어봐야 아래로 떨어질 거야,와 같은 목소리다. 이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에 싸우지 못하고 그 짧은 머뭇거림의 순간 체력도 고갈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면 그냥 포기해버리게된다. 포기하지 않고 시도라도 해보면 잃을 것도 없는데. 워낙 힘든 루트라 한번 가서 도전해볼 수 있는 여력 자체가 많이 없다. 그러면 다음 기회로 또 미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좀 더 노력해보고 더 노력해보아 지금의 높이까지 다다를 수 있었지만 마지막 홀드들이 너무 힘들어서 그 목소리가 더 크고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이미 떨어지고 나면 너무 가파른 각도 탓에 줄을 잡고 원래 높이 가까이까지 가야 하는데, 나는 그런 힘은 없어서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서 애초에 떨어지기 전에 시도를 해봐야한다. 2~3초의 짧은 시간. 벽과 나밖에 없는 그 순간, 그 목소리가 나를 얼마나 좌절하게 하는지. 지난번 클라이밍에서 이 루트로 그날의 트레이닝을 마무리하며 나에게 너무 화가났다. 다음에는 꼭 다음 홀드를 시도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정도 마음이 아니라, 다음 홀드를 꼭 잡겠다는 마음으로 해야만 실질직인 진전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리드클라이밍을 하면서 나안의 목소리와 두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위기의 순간에 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배우고, 이를 어떻게 개선해야할지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호흡이 얕고 가파라지는 순간 이를 의식하고 깊고 힘있는 호흡을 하며 한손, 한발에 집중을 하며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 이걸 자연에서도 느끼고 싶다. 올해 5월에 클럽에서 나갈 투어에 함께하며 이를 조금 더 잘 느껴보고 싶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