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보육기관을 시작하고 어느정도까지는 한국어 발화단어수가 덴마크어보다 더 많았는데, 아무래도 어린이집에서 가장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깨어있는 시간 중 대부분을 보내다보니, 오래지않아 아이의 덴마크어가 더 뛰어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아이의 모토릭과 호기심도 빠르게 늘면서 아이에게 가르칠 일이 늘다보니 덴마크어로 아이와 소통하는 것이 더 편해지게 되었다. 한국어로 설명하려면 더 돌려 설명해야 하는데, 덴마크어로는 아이가 이미 더 많은 어휘를 이해하니까 더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일상 속 덴마크어를 늘려야 하는 나의 숙제도 있었기에 여러가지 이해가 맞물려 선택한 결과였다.
예전 동영상을 보다보면 아이의 한국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던 시기가 있었다. 오히려 지금의 아이보다 어휘가 뛰어난 부분도 있었고. 중간중간 아이의 한국어를 늘리기 위해서 한국어 사용 시간을 조금 늘려보던 시기도 있었는데, 그건 잘 안되더라. 식사시간엔 한국어를 사용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한다 해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옌스에게 덴마크어를 섞어 쓰거나 옌스가 한국어로 표현할 수 없어 덴마크어로 쓴다든지 하면서 다시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한국어를 쓰는 것에 대해 아이가 강하게 저항하는 날도 있었고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한글학교에 하나처럼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반이 개설되었다. 하나처럼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인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 입양된 덴마크인의 자녀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배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의 한국어 학습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는 것도 있는 것 같고, 한글에 대한 관심을 올려주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하나가 나를 이겨보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게 늘면서 풍차돌리기, 외발자전거 타기 등 엄마가 못하는 것을 자기가 할 수 있게 되는 것에서 어른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 같았다. 엄마는 액센트가 거의 없지만, 간혹 어떤 단어에서 발음을 틀리게 하는 것이 있다면서 미묘한 모음 교정을 해주곤 했는데, 거기서 뭔가 나를 이겨보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날, 어떤 문장의 문법적인 요소에 대해 자기가 틀린 것을 모르고 내가 옳게 말한 것을 고쳐주려 하길래, “내가 확신이 없는 것이라면 들어보고 네가 맞으면 그를 고치겠는데, 이건 네가 틀린 것이다.” 라고 답을 해준 적이 있다. 그랬더니 계속 우기더니 기분이 팍 상했던 모양이다. 집에 오자마자 방으로 달려가 문을 쾅 닫고 들어 앉았다. 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탄수화물로 밥과 파스타 중 어느걸 할까 고민하다가 애한테 고르게 해주려고 뭘 먹겠다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무슨 말 하는지 못알아 듣겠어!”라는 거다. 그 근래에 이런 일이 몇번 있었던 터라 나도 짜증이 확 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에게 “내가 한국어로 말해도 잘 못알아 듣겠고, 덴마크어로 말해도 마찬가지면, 나는 앞으로 그냥 한국말로 말하겠다. 그러면 최소한 네가 한국어를 배우겠지.”라고 말하고 그냥 한국어로 바꿔버렸다. 그게 지난주 월요일.
이제 일주일이 지난 지금 돌아보자면 일련의 break down이 있었다. 수영장 가서 제일 즐거워야 할 순간에도 엄마가 한국말을 해서 제대로 놀수가 없다면서 펑펑 울었던 때, 뭘 물어봤는데, 내가 대답하는 것을 못알아들으니까 차분히 설명해 줄래도 엄마가 하는 말을 못알아듣겠는데 못알아 듣는 말로 질문에 답을 해주면 어떡하냐며 엄청 성질을 내더라. 하지만 그 강도로 보자면 거부반응이 차츰 사그러드는 강도로 나타나고 있고, 이제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한 거 같다.
예전보다 아이가 훨씬 커서 좀 더 이해하는 방식이 체계적으로 바뀐 것도 한국어를 제2외국어와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요즘 글을 읽는 것을 연습하고 있는데, 덴마크어 뿐 아니라 한글도 읽기 시작하고 있다. 내년 2월말에 부모님이 오시는데, 그 때쯤 되면 자기가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설명해드리고, 말씀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 같다. 그러면 부모님이 아이를 학교에서 하교시키실 수도 있을 거고. 아무튼 주변의 응원을 토대로 마음의 용기를 갖고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마음을 먹었으니 굳게 마음을 먹고 밀고 나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