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살 단상

어제가 생일이었다. 만으로 마흔두살이 되었으니 불혹의 나이렸다. 엄마가 좋은 나이라고 하시면서 본인이 그 나이였을 땐 자신의 결정에 있어서 확신이 있고 흔들리지 않았던 거 같다고 하셨는데, 딱 불혹의 나이와도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그게 맞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별로 없던 흰머리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으니 신체의 나이로만 보면 분명 내리막기를 걷고 있는데, 마음의 상태로만 보면 그 어느때보다 평온하다. 내 결정에 대해 확신이 있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에는 그마만한 확신을 실어 그렇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나온 시간들을 통털어보면 지금이 가장 강단있는 결정을 내리고, 내린 결정에 대해 뒤돌아보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았다. 실패해도 잃을게 별로 없던 이십대의 시절보다 오히려 가진 게 많아 잃을 게 많은 지금 왜 더 안정적인지. 마음에 괴로움이 없이 평안한지.

첫번째로 가진게 적당히 있고, 앞으로도 일궈낼 수 있는 기반이 어느정도 닦여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초조함이 크지 않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알고 앞으로의 길에 대한 대충의 방향성이 있다. 둘째로 나의 앞날에 대한 기대가 현실적이 되어서 내 앞날에 대한 기대와 현실사이에 큰 괴리가 없다. 또 나같은 경우 커리어를 바꿔서 전문성을 필요로하는 필드로 들어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보니 자리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다는 점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등 따숩게 몸을 누일 곳이 있고, 배 주리지 않고 먹을 수 있고, 춥지 않게 옷을 입을 수 있고, 나를 포함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에서 너무 힘겨워 하지 않고 같이 나아갈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라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이 자체도 사실 꽤나 야심찬 목표일 수 있는데, 이삼십대에는 정확히 뭔지 정의되지 않는 성공이라는 데 목말라있던 것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정말 모르게해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나마 그 중에서 확고했던 게 있다면 해외 생활이었는데, 한국에서의 나라는 사람은 토박이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같이 느껴지는 구석이 있던지라 채 열살이 되기 전부터 남녀평등에 있어서 앞서간 서양에 살고 싶었다. 코트라에서의 삶은 한시적인 주재원인데다가 일적으로 한국문화에 묶여있어서 덴마크에서 살아도 별로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삼십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옌스를 만나고 서서히 이곳 문화에 젖어들고, 덴마크 직장을 구하고 이 안에서 내 네트워크가 얇은 것부터 깊은 것까지 촘촘히 연결되고 난 지금에 들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위로 올라가야한다는 초조함이 없어졌다. 그 어느때보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없고 평온하다.

평온해서 그런지 생각도 단순해지고, 특별히 업다운이 될 일도 없고, 블로그도 조용해지는 것 같다. 그것도 나쁘진 않네.

나와 함께 케이크를 굽겠다고 함께하는 너가 있어서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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