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두려움의 연속

연봉협상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 센터 성과는 좋았고, 나도 내 담당 업무의 목표를 달성했다. 공무원은 크게 협상 여지가 많지 않다는데 얼마만큼 해야하는데 아직 감이 잘 서지 않는다. 덴마크어로 일하는 데서 오는 생산성 손실을 다른 경쟁력으로 얼마나 메우고 있는지도 불확실한 터라 더욱 그렇다.

매일 매일 작은 불안함을 갖고 지낸다.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큰 부담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전달하지 못할까봐서. 또 언어의 부족으로 인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의견의 강약 조절에 있어서 의도치 않게 실패를 할까봐서. 그래서 조직에 피해를 끼칠까봐. 그 결과로 타인의 시선과 단정적 평가를 받을까봐. 그래서 성과 협상은 더더욱 불안하다.

일년의 기간이 흘러 이제 나는 나대로의 위치가 정해졌고 업무 영역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내 위치와 업무 영역은 크든 작든 변해가고 책임도 늘 것이다. 내가 적응을 한다 싶으면 또 변해가겠지.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는 게 두렵다.

사실 정 안되면 관두면 되지. 이런 마음으로 일하면 될 것 같기도 하면서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쩌면 한국어로 했어도 가졌을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런 두려움은 앞으로도 계속 원치않는 친구같이 데리고 나아가야할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왜 두려울까? 내가 가진 원래의 가치보다 낮게 보이는 게 두려운 걸까? 생각을 좀 해 볼 문제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있는 걸까? 실제보다 못나보일까 걱정하는 걸까? 좀 못나보이면 어떤가? 남이 어떻게 평가하는 게 왜 나에겐 그렇게 중요할까? 어려서 높은 기대 수준 속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게 지금도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는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고 달래가야 하나?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이 힘들다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이 불행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 좋고, 감사한데, 그냥 서서히 그런 두려움을 안고 가는 내가 이해가 안된다. 이해를 하려 하는 이 과정이 두려움을 맞이하는 길이 되겠지. 우선은 덴마크어 공부도 하고 업무도 열심히 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가면서… 올 한해 큰 모델 마무리 짓고 보고서고 발안하고, 입법안 초안도 내고 기타 운영업무도 하면 한 해가 흘러가 있겠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5 thoughts on “작은 두려움의 연속

  1.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해인. 여기와서 음악을 중심으로 하루가 돌아가고, 종일 음악얘기만 하다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것 같아 심장이 펄떡거리고 벅차면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왜 이렇게 겁이 나는지. 실망시키는 게 겁나나? 크리티시즘이 겁나나?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사실 크리티시즘이 없는 게 더 겁나야 하는건데, 안좋은 얘기 듣고싶지 않은거지. 머리론 알겠는데, 너무나 큰 벽이란 말이야… 내가 어느 정도인지 확신도 없고 말이지. 실력에 상관없이 당당하게 드러내고 남들 앞에서 연주하고 싶어하는 젊은 애들을 보니 나이들면서 겁만 늘어가나 싶다. 여기와서 생각이 엄청 엉켜있어 ㅎㅎ 그래도 일단 누리는 중. 하루에 레슨 청강만 8시간. 쉬는 시간엔 오케스트라 리허설도 구경 다니고 🙂

    • 오스트리아에서 돌아온 영감이 현재와 미래를 그려가는데 원동력이 계속 되어주면 좋겠다. 겁도 어찌보면 그 잘하고 싶은 마음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안좋은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기보다 안좋은 이야기를 듣지 않을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어.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이 모든 건 이런 감정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겁을 내는 곳에 멈춰있는 거고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가는게 아니련가 싶다.

      애가 있는 생활로 돌아오자니, 그 여행의 영감이야 마음 속 고스란히 남아있겠지만 바쁜 현실에 그게 어느새 옛날옛적 이야기같이 느껴질 것 같기도 하네. ㅎㅎ 근데 진짜 멋있다. ㅎㅎ 공연 리허설 같은 것이 너에겐 남 이야기만이 아닌거잖아. 공연을 하는이에겐 숙명같은. 그 부담도 엄청날거란 생각이 들면서도 멋있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 나이브한 생각. ㅎ

  2. 사회적 동물(넘 거창;;) 에게는 속한 집단에서의 성취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나 긴장은 기본적으로 다 있는게 아닐까요? 특히나 자아가 강하고 성취욕이 큰 주체일수록요~ 하물며 다른 문화의 사회속에 정착하고 흡수되는 과정인데 어떻게 그런게 없을 수 있겠어요. 모든 감정이 다 컨트롤되면 도인이거 신선이게요? 그리고 억울하지만…단정적 평가가 제대로 된 평가보다 훨씬 많은거 같더라구요 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단 말이 괜히 있겠어요? 근데 언닌 이미 첫 단추를 훌륭히 꿰고 한 세번째까진 채우신거 같은데요? 그냥 긴장을 즐기시길~!!(근데 사실 저라면 어우..벌써 몇 번은 혼자 눈물 짰을 듯~ ㅎㅎㅎ)

    • 네가 한 말이 참 맞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있는 거겠지. 나처럼 자아의식이 과잉이라 그걸 통제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하는 사람에겐 그런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눈물이야 짜는 게 의미가 없으니까 짜지 않지만, 어쩌면 눈물을 짜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에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감정의 과잉과 억제 사이에서 줄타기 하며 균형잡는게 생각보다는 어렵구나. 마흔이면 불혹이라는데 ㅎㅎ 생각보다 어렵네. 몇달 안남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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