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편견 사이에서

인종, 성별, 종교, 성적지향 등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차별과 편견에 대한 토론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성별이나 인종과 관련한 편견을 넘어서 사실에 대한 표현을 포함해 이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토론이 꾸준히 이뤄진다. 스웨덴은 그와 그녀라는 인칭대명사가 누군가에게는 부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다 해서 성중립적인 인칭대명사를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크리스마스에 해당하는 단어인 율(jul)이 붙은 크리스마스빵, 크리스마스소세지, 이런 것도 비기독교인을 소외시키는 표현이 될 수 있다 해서 겨울로 단어를 바꾸는 일도 생기고, 그 또한 부적절하다면서 논쟁이 붙기도 하고 있다. 

덴마크식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에 대한 고민은 때로는 너무 멀리간 것 같다 생각한다. 옛날 노래에 쓰인 당시에 생각없이 쓰이던 인종차별적인 표현이 쓰인 노래를 새로운 개정판에서 아예 빼버린다는 사례가 있었다. 또 학교노래책에 나온 “덴마크 소녀는 금발머리 소녀”라는 표현이 금발머리가 아닌, 이민자나 이민자의 후손인 사람들을 소외시켰다 하여 해당 노래를 부르지 않게 하겠다는 어느 대학교의 발표 사례도 있었고. 또한 공공장소에 가족 구역을 표시하는 표시도안을 두고 남녀로 구성된 부모와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아이가 성적인 편견을 고착화시킨다며 문제시되는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대학교에서는 학생이 법적 이름을 쓰는 것을 꺼릴 수 있으니 교수에게 수업 시작 전, 그런 예민한 사안에 대해 학생들과 미리 교감해서 실수하지 않게 하라거나, 여학생이나 남학생 표현을 써서 성별로 구분을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나왔음이 알려지기도 했다. 옛날 노래에 나온 인종차별적인 표현은 잘못된 과거의 표현의 과오를 돌아보는 사례로 쓸 수도 있는데 무조건 덮는 것 같기도 하고, 차이에 대한 인식이 차별로 이어질까 두려워 미리 그런 기회조차 막으려는 게 나에겐 과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나뿐 아니라 이에 대해서는 양론으로 갈리는 듯 하다.  

그러나 이는 사회 전체적 차원의 고민이고 개인적 수준에서는 이런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상반된 상황을 간간히 접할 수 있다. 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아시아에 대한 무지 등으로 인해 빈정상하는 상황 말이다. 덴마크인의 냉소적인 농담은 자기 비하를 담는 경우도 많고 농담일 경우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평등의식하에 조롱성 농담의 대상에 성역이 없어서 정치인, 종교적 지도자 등 할 것 없이 다 조롱성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농담에 성역이 없다는 의식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농담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예를 들어 백인이 기독교인에 대한 조롱성 농담을 하는 것처럼 특권을 가진 사람이나 평소 편견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자기에 대해서 아니면 비슷한 상황의 사람에 대해 조롱성 농담을 할 경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백인이 무슬림에 대한 조롱성 농담을 하면 문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에 대우상 차별을 받거나 놀림을 당한다거나 하는 두드러지는 차별적 상황이 있다. 이처럼 편견과 차별이 다 얽혀있는 경우 상황이 명료하다. 하지만 애매한 경우도 종종 생긴다. 아시아인이라고 무조건 중국어로 인사를 한다거나,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인사를 한다거나, 아시아인은 이렇지? 라며 어디서 유래한 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거나. 국제커플이 가입한 카페에 근근히 올라오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듣기도 하는 기분 나쁜 상황들. 이게 기분나쁠 일인지, 아닌지, 짜증이 약간 나는데 현지 서양인 지인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싶어 물어봤을 때 그들이 그냥 친밀감의 표현이라 넘기면 팔은 안으로 굽는건가, 아니면 내가 예민한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오랜시간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편견은 편견이고 차별과 구분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차별과 편견을 혼용해서 쓰면 논점이 흐려지고 토론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일이 생길 것이고, 실제 이런 일은 왕왕 벌어진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편견에 부딪히게 되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편견은 좋지 않은 것이고 바꿔갈 노력이 필요하지만 편견 자체가 차별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편견 자체는 사람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를 바꾸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지만 차별은 시정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채널이 존재할 수 있다는 데에서 차이를 갖는다.

내가 아시아인이라 아시안누들과 간장소스, 밥 등을 좋아할 거라 상대가 믿는 건 편견이다. 내가 아시아여자라 순종적일 거라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다. 내가 아시아인이니까 수학을 잘할 거라 믿는 것도, 영어를 못할 거라 믿는 것도 편견이다. 여자는 밥을 잘할 거라 믿는 것도 편견이다. 여자는 히스테리컬하다고 믿는 것도 편견이다. 아시아 여자는 여성스럽고 작고 내 말 잘 듣고 착할 것 같아서 아시아 여자만 좋다는 것 (소위 옐로우 피버)도 편견이다. 

하지만 이건 차별이 아니다. 차별은 일련의 편견으로 인해 남들과 달리 나에게 어떤 권리나 기회가 배제되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내가 아시아인이라 영어를 못할 것이라 믿어 서류 검토도 안하고 이력서를 옆으로 재껴두는 것, 아니면 자기가 만난 아시아 부인에게 상대가 서양인이었으면 요구하지 않았을 부당한 것을 당연히 요구하고 이에 불응시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물론 차별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편견을 가질 때 문제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적으로 편견이 널리 퍼져있을 경우, 그게 차별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편견을 깨려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편견을 가진 모든 사람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게 그 사람이 받은 교육의 수준일 수 있고, 주변 상황에서 오는 한계 때문일 수 있다. 시골에서 살면서 딱 한번 외국인을 만나보고 그 외에 보고 들을 일이 없었으며, 일반화의 오류 등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한명의 외국인에게서 가진 편견을 다른 외국인에게 적용한다 하면, 그걸 교육받지 못한 당신 탓이고 나쁘다, 이렇게 말하기 어렵다는 거다.

외국살이하면 편견을 겪을 일도 종종 있고 굳이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편견이 넘치는 사회라 이를 경험할 일이 많은데 이 편견 모두를 차별이다 라고 외치는 것도 잘못이라 생각한다. 편견에서 상처를 받는 건 사실 어찌보면 내 선택이다. 편견을 편견으로 치부하고 남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왈가왈부하지 않겠다고 하고 갈 수 있는 일을 자기가 상처받겠다고 선택한 거란 이야기다. 편견을 해소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물론 더 좋지만, 그 편견에 차별이라 외치며 혼자 상처받을 필요도 없다.

상처받거나 싸우는 건 차별에 초점을 맞추자. 나와 남의 권리가 편견으로 인해 제한되었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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