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여행단상

  • 덴마크가 오랫동안 잘 살아온 선진국이라는 것을 느낀 것은 이번 여행을 통해 전국 구석구석 잘 닦인 포장도로를 보면서다.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은 잘 관리가 되어도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곳은 자원을 충분히 투입하기 어렵기에 속속들이 관리하기 어려운데, 개인의 집이 낡고 낙후된 지역은 있을지언정 그를 연결하는 인프라가 낙후된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 시골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교회는 정부 종교부에서 관리를 하는데, 교회와 그 묘지, 인근 도로며 주차장까지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던지.
  • 율란을 여행하며 덴마크가 풍력의 나라임을 명성 뿐 아니라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드넓은 평원과 농지엔 어김없이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었고 바람의 땅 답게 거센 바람이 그들을 쉬지 않고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 율란사람들이 무뚝뚝할 것이란 편견과 달리 시골인심이 더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나라나 비슷하구나.
  • 옌스가 18살이 될때까지 자랐던 집에 처음으로 가봤다. 구글 스트리트뷰로만 봤던 곳이었는데. 다음에 한국에 가면 내가 자라면서 살았던 동네들을 가보고 싶단다.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더 알고 싶다고.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한자리에 살고 계신 외할머니댁을 방문했을 때, 내 삶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고. 옌스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공터, 10학년까지 다녔던 학교, 시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치과, 옌스와 여동생이 크면서 방과 독립된 출입구를 따로 주기 위해 증축했던 부분의 흔적을 보는 일은 마치 과거를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난 어렸을 때 살 던 곳을 가면 상전벽해라는 표현이 딱 맞다고 느낄만큼 너무 많이 변해서 추억을 더듬기 어려운데, 그래도 다음엔 그 흔적들을 찾아 보여주고 싶다.
  • 덴마크 사람들은 속도를 꽤나 내는 편이다. 정속으로 맞추고 크루즈로 주행하려면 마지막 차선에서 조용히 달려야 한다. 대부분은 시속 10~20킬로미터 정도 초과한 속도로 달린다. 독일인에 비하면 덴마크인은 규제에 적응하는 방식이 평균적으로는 유연한 것 같다.
  • 에벨토프트에 가서는 유명한 정치인을 봤다. Radikal Venstre라고 중요 보수당 중 하나인 정당의 당수다. KBS 다큐에서 자기 애를 사무실에 데리고 온 모습이 잠시 비춰진 적이 있는데, 그 딸과 함께 1800년대 전함을 보러 왔더라. 매우 유명한 정치인임에도 아무도 아는 척 하지 않는게 역시나 인상깊었다. 매번 유명한 사람 보면 아는 척하는 사람은 나고, 옌스는 티내지 말라고 한다. 사생활은 존중해줘야 한다고.
  • 콜드하와이라고도 불리고 파도가 서핑하기에 좋아 사람들이 몰린다는 서해안가 Klitmøller라는 곳에 다녀왔다. 바람이 불고 날도 흐리고 비가 와 추웠는데, 샵들이 문을 닫는 시간 막판까지 서핑과 스탠딩 패들링 보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영어로 대화하고, 액센트가 여기 것이 아닌 점으로 보아 미루어 짐작하길 덴마크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겨울에도 서핑을 즐기는 지역이라 하니 지금 즐기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이상할 건 아니겠지만, 역시 내 눈엔 놀랍게 보였다.
  • 산업화된 어업이 발달된 어촌을 방문했는데, 정말 생선 냄새가 진하더라. 어부들은 그 냄새를 돈냄새라고 한다던데, 돈냄새 한번 진하게 맡고 왔다. 바다도 비린듯한 바다 특유의 짠내가 나던데, 역시 대양에 접한 바다에 가야 이런 냄새가 나는구나 싶었다. 우리네 삼면의 바다에서 나는 그 짠내가 코펜하겐에선 나지 않아 바다가 바다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대서양을 접하는 서해안은 우리네 바다와 닮아있었다.
  • 세계 2차대전 기간 중 덴마크는 독일에 점령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금방 항복을 했기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내 나라의 주권을 잃은 슬픔이야 어느나라고 다를 바 있겠나. 연합군이 덴마크 연안을 통해 침공을 해올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독일군은 서해안가에 무수히 많은 벙커를 지었다. 이는 서해안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는데, 콩크리트가 부식되며 무너지고 그 안에 날카로운 철근이 드러나는 등 애들에게 위해요소가 되고 있다고 한다. 경관을 해치는 것은 당연하고. 이를 철거하는 비용을 독일이 대야 한다는 등 논란이 계속 있다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바뀌려나? 전쟁의 기억을 위해 놔두는 것도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구조물을 해체한다고 기억도 해체되는 것이 아니며 아름다운 경관을 해하는 구조물은 없애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 한국음식이든 다른 아시아음식이든 빵이 아닌 메뉴를 오래 못먹으니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원래 빵만 먹고도 일주일 버티는 것은 일도 아니었는데, 입덧 덕에 버터나 유제품을 많이 못먹는 관계로 힘들었다. 마트에 뭐 사러 들어가면 나는 빵집 버터냄새로 인해 몇차례나 구토감을 느꼈다. 중간에 태국 식당을 하나 발견해서 볶음밥을 먹고나니 얼마나 살 것 같던지.
  • 다니다보면 건물들 관리상태에서 못사는 지역과 잘사는 지역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Udkantsdanmark (울캔츠덴마크) 는 조세수입보다 지출이 큰, 사실상 경제가 죽어있는, 잘 못사는 지역을 일컫는 단어다. 갈수록 경제가 큰 도시들로 집중되다보니 이런 지역들도 늘어나는데, 일할 의욕도 없고 나라가 주는 돈보다 더 벌 능력도 없는 사람들 중에 이런 지역으로 이주오는 사람들이 많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나라에서 주는 돈은 똑같은데 집세가 낮고, 사회복지를 수령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나라에서 강제하는데, 일자리가 없어 일을 하라고 등떠밀릴 일이 없는 지역이기에 이사를 온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지방세수가 부족해 해당 지방정부는 지역사업에 투자할 예산이 부족해지고 사람들도 집 관리를 잘 안하니 도시가 우중충해지고 좋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으려는 지역으로 변해가게 되어 악순환이라고. 조금만 가꿨으면 좋았을 도시들이 우중충하게 바뀌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 마지막 여정을 위해 선택한 (호텔이 다 예약이 차서) Bed & breakfast에선 기이한 집주인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만 65세가 되어 은퇴를 한 그는 피아니스트 와이프와 이혼을 하며 2백만 크로나를 주고 데려온 전처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깨에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유수의 콩쿠르도 나가며 바이올린을 연주했다는데, 그의 바이올린 선율에서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좀 뜬금없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음에도 그 집을 예약한 이유는 그 집 사진에 있는 그랜드피아노 때문이었는데,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었다.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유럽내 상업항공사의 파일럿을 했던 그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얼핏 들으면 허풍처럼 들릴 수 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던 그였지만, 이야기를 통해 느껴지는 그의 해박한 지식들과 마침 놀러온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야기가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에 또 그 곳에 갈 일이 있다면 그의 집으로 또 방문을 할 것 같다. 남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그랬을까? 쉽게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품어주는 느낌에 마치 남유럽사람을 만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 4박 5일의 짧은 일정동안 즐겁게 여행하다 돌아왔다. 중간중간 입덧 때문에 오후스는 거의 보지 못하고 라틴쿼터만 돌아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는데, 그래도 다른 지역들도 돌아보고, 옌스 친구와 내 친구, 옌스네 친척도 만나면서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란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한-덴마크 커플중 여자분인데, 한-덴마크 커플이기에 공유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던 점, 참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들이란 점에서 이번 여행을 또 다른면에서 알차게 해준 시간이었다.
  • 집으로 오는 길은 항상 길다. 600킬로가 넘는 거리를 주로 고속도로로 달리다보니 지루하기도 하고 해서 열심히 달려왔다. 옌스가 나보고 속도악마 (speed devil) 란다. 시작은 나도 여유롭게 달리고 싶었는데,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속도에 대한 감각도 흐려지고, 인내심도 서서히 바닥을 보이며 막 달렸다. 집에 오니 시체가 되어 침대에 널부러져있었는데, 역시 집이 최고인 것 같다. 물론 이런 여행을 해야 집이 최고라는 것을 느끼게 되곤 하지만.
  • 오후스에서 만난 친구와도 이야기한 바이지만, 이 나라가 진정한 의미에서 내 집이라고 느껴지려면 얼마나 살아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막상 한국에 돌아가면 또 이질적인 감정을 느끼게도 되긴 하지만, 그 곳에선 삶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고, 여기선 그렇지 않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우리가 커오면서 너무나 당연히 아는 사실과 관습이 사실은 얼마나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학습을 해온, 어렵게 체득해온 것인지를 인지하기엔 해외에서 살아보기 전까진 모른다. 아마 앞으로 30년을 살아도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있을 거다. 그래도 그땐 내 집이라고 정말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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