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같은 분면의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이 두 개념은 같이 따라다녀야 하는 개념으로 오랜 시간 이해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내 머리속엔 그 두개의 개념이 혼재했으니 상당히 오랜시간 혼란을 겪었던 것이다. 일반사회를 선택했던 나에겐 정치에 대해서 제대로 배울 시간이 없었고, 대학교에 와서도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하며 정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일이 없었다.
그나마 공부를 적당히 했던 나는, 내가 기득권층에 속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보수쪽 입장을 취했다. 대학시절 이미 민주화가 충분히 될 만큼 되었는데도 여전히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빨간색이라고 생각하면서.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우리 사회가 보다 민주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채널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확대되기도 하고. 그러나 공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정권의 변화에 따라 정치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자체 검열을 하며 일절 공개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게되며, 표현의 자유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비판적으로 파란색을 띄고 있던 내가 중도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내가 겪는 딜레마는, 이러한 나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정당의 부재로 어디를 찍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이분화된 정당구조가 가져다준 딜레마였다.
이런 양당구조에 익숙해있다가 넓은 정치적 스펙트럼과 다양한 경제, 사회 정책믹스가 존재하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에 와서 살면서 느낀 것은 분배를 강조한다 하여 “사회를 전복하려는 의도를 가진 좌파”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이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 아주 빈국에 태어났어도 지금 갖고 있는 부와 성공을 누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누리고 있는 것은 그 사회가 가져다 준 것이기에 세금을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그 분배의 정도를 얼마로 할 것인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분배시스템이 과연 사회에서 얼마나 합의가 된 것인가?
나는 한번도 비정규직이 되 본적이 없지만, 적지않은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관리하며, 비정규직 법률은 당초 목적과는 달리 악용이 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꼈고, 부당함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음 또한 느꼈다. 내가 그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구조상 그렇게 비춰질 수밖에 없었고, 나도 살기 빠듯하고, 공기업에 근무해서 정치적 색깔을 드러낼 수 없으니 그 부당함을 역설할 입장도 아니라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내 나라에서 나는 이제 중간에 서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이국땅, 덴마크에서 나는 상당히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이다. 사회가 어떤 가치에 합의하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속한 사회에 따라 정치스펙트럼에 서있는 위치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너무 당연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 경험할 때는 그 충격이 크게 다가온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우리나라의 양당구조는 사회를 가르는 데 폭넓게 사용된다고 생각한다. 내 입장을 조금이나마 더 대변해주는 정당을 통해 정치성향이 대변되다보면, 이 당 아니면 저 당으로 소속이 바로 나뉜다. 사실 그 정당이 내 입장을 제대로 대변해 주는 것도 아니고, 상대도 같은 상황인데, 두 사람이 마치 큰 입장 차이를 가진 것처럼 양쪽으로 나뉜다.
나는 정당이 지금보다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려 각자의 당이 각자의 색깔에 맞는 정책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너무 넓은 스펙트럼을 커버하기위해 우왕좌왕하며 이도저도 아닌 정책으로 지지자에게 호소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큰 나라는 아니지만, 이보다 작으면서도 성공적으로 다수의 정당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가 많다. 이 사회가 너무 힘들어 헬조선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서도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나오기를 바라며,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해서 빨갱이나 종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기를 바란다.
내나라를 떠나 이국에서 평생을 살게 될 나이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태어날 내 아이들이 엄마의 나라를 봤을 때, 다양성(“창조”가 인정되는)이 존중되는 사회로 인식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는 내 결혼이 이미 한국에서는 표준에 벗어나 있고, 내 아이들은 단일민족이 아닌 두 민족이 만나서 생긴 아이일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마냥 믿기보다는 각자 행동해야 변한다는 사실, 씨앗을 뿌려야 열매가 맺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하고 조금씩이나마 각자의 영역에서 실천해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