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덴마크인

덴마크 생활이 십년을 넘어섰는데, 어느날 곰곰히 생각해보니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생활한 나라, 한국/인도/덴마크 중 덴마크 생활 기간이 가장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부하느라 정신없었던 유년시절과 학부시절에는 사회에 대한 큰 관심이 없던 시기였기에 그 이후 진정한 의미의 성인기의 가장 큰 부분을 덴마크에서 보낸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큰 일탈 없이 청소년기를 보내느라 소위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불리게 만드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을 새가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나를 분리해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는 시기를 만으로 서른이 넘는 시기에, 그것도 인도에서 경험했다. 집에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는 것, 외박하지 않는 것 등 처럼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하지만 전혀 위법할 것이 없는 것들 같은 거 말이다. 엄마는 처음 겪는 딸의 반항에 꽤 충격을 받으셨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나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는 첫발을 내딛으신 것 같다. 경제적인 것부터 여러가지 면에서 부모님과 분리를 이뤄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한국으로 돌아가 2년반을 지내고 덴마크로 나와 그대로 눌러앉아버렸다.

나는 다소 관찰자와 같은 시선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내 모든 판단의 준거는 유년기를 통해 내안에 깊숙히 심어넣은 한국문화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덴마크의 가치관과 문화가 그 위에 덮어쓰여지며 어느게 아주 오래된 가치관인지 아니면 새로 덧씌운 가치관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관찰하고 그 관찰한 결과를 주변인과 나누고, 그에 대해서 그들의 설명을 듣거나, 내 관찰을 근간으로 해서 벌어진 토론을 보며 새로운 인풋을 얻고 추가적으로 관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한다는 것은 대충 우리가 동질적인 집단에 속한 사람이니 일종의 편향된 문화적 인풋을 얻게 된다는 뜻이기도 할텐데, 그 안의 세분화된 다양성 속에서 나름의 다양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경험속에서 관찰자의 시선은 서서히 참여자의 시선으로 바뀌어가는데, 이러한 동화과정이 매우 은밀히 일어나기에 나또한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후 문득 내 가치관이 더이상 한국인의 평균의 가치관에서 많이 멀어져있음을 느끼데 된다.

현지어를 잘 하는 것은 이런 동화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언어가 매게가 되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지만, 언어야말로 이 문화의 가장 중요한 매개이자 문화와 문화의 역사가 담겨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언어를 통해 외부인의 시각으로 번역되지 않은 현지의 날것을 직접 흡수할 수 있고, 그렇게 흡수할 수 있는 스펙트럼 자체가 워낙 넓어서 외국어의 안경과 스피커를 통해 보고 듣고 흡수할 수 있는 양이 다르다.

그래서 꼭 현지어를 잘 해야 하냐? 그런건 아니다. 현지어 안하고 영어만으로도 살 수 있는 나라이니까. 하지만 영어만으로는 내가 주체적으로 사회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기에 이방인으로서 살 수 밖에 없는데서 오는 단점이 존재한다. 오래 살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추측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사실과는 다른 경우도 많고, 그래서 오해도 하고, 답답도 하고, 불만도 쌓일 수 있다. 현지어를 잘 하게 되고 그걸 활용해 문화를 이해하고 그 사회에 동화된다는 것은 내가 더이상 나를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게 된다는 것이고, 그건 나에게 편안한 마음을 가져다준다.

나는 내가 한국인이기에 남과는 다른 관점을 갖고 이 사회를 바라보고, 또 그래서 제공할 다른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그건 그거대로 장점을 인지하되, 내가 이방인이기에 움직임이 조심스럽거나 의도치 않게 오해를 한다거나 이런 게 없어졌고, 그게 좋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생기는 불만이 없어졌고, 그냥 어느 사회에나 있는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 덕에 볼 수 있는 방송이나 책이 늘어나는 점도 장점이고, 덴마크어가 늘면서 영어가 간접적으로 늘기도 한다. 영어와 덴마크어가 역사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주고 받은 탓이다. 덕분에 뒤늦게 왜 어떤 표현이 특정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어원을 알게 되면서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하지만 일상을 현지어로 완전히 전환한다는데는 또 다른 이면이 있다. 내 아이에게 내 뿌리를 잘 설명해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음식 문화 이외에 아이가 한국문화를 나에게서 크게 느낄 일이 없다. 아이가 두돌이 되기 전에 우리의 언어가 덴마크어로 서서히 교체가 이뤄졌으며 아이에게 한국어는 조금 알아듣는 외국어, 엄마의 말 정도로만 남게 되었다. 다행히 한글학교를 통해 요즘 한국어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배우고, 한국의 문화도 조금이나마 체험하기 시작했다. 덴마크인 선생님을 통해 이뤄지긴 하지만 이게 가능하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

아마 앞으로 십년정도 더 살고나면 반덴마크 사람이 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쯤 되면 한국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가도 뭔가 낯설어 집에 가는 것 같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시민권 취득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한국의 가족을 넘어서서 그게 나를 한국과 이어주는 끈처럼 느껴지는 것 때문인 것 같다. 시민권이 없어도 덴마크를 내나라나 다름없이 느끼고 있는 지금, 굳이 시민권으로 나를 묶지 않을 필요는 없다고 느끼기도 하고. 그때쯤에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스트레스

지난 한주는 너무 많은 행사가 있었다. 평소에 누구를 잘 만날 일도 없고 회사, 집, 하나 방과후 활동 따라가니기, 운동, 우리 세식구와의 시간 등 뻔하디 뻔한 루틴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자체로도 바빠 다른 일을 끼워넣을 여유가 별로 없다. 그런 타이트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테마데이, 친구와의 저녁 약속, 런치 약속, 조카 생일, 옌스 출장 공항 드롭에 평소 옌스가 했을 소소한 집안일도 내가 넘겨받아야 했으니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사무실로 출근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두른 후 아침 커피 한잔을 마시며 산업뉴스를 읽으면 그제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주당 1회 재택근무가 가능하지만, 의사를 만나거나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는 한 가급적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유는 집으로부터 물리적으로 공간을 불리해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함이다.

이렇게 평화스러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스트레스로 가득찼던 것이 바로 내 머리속 내 목소리와 생각 때문이었다는 게 참 놀랍다. 내가 겪은 생각과 스트레스는 다수의 현대인이 겪는 일이기에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민 생활에 이정도 힘든 거야 당연하잖아?’하면서 이를 진작에 다루지 않은 게 문제를 키운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이를 적극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도. 물론 문제가 이정도 커졌으니 이게 상담을 요하는 일이란 것도 알게 되었지만.

내가 나에게 엄격했던 것 만큼 남의 아픔에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힘듦을 토로했을 때 그 힘듦이란 게 누구나 겪기도 하고 다 이겨내야 하는 것이니까, 어느정도는 공감하면서도 이겨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대화를 했다.

해외에서 산다는 게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힘들어 상담이 필요한 순간에 상담의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데 있다. 아마 영어로 상담을 해야 했다면 내게 맞는 상담자를 고를 수 있는 풀이 크게 줄어들었을 거다. 현지어나 영어 모두 상담하기에 불편하다면 한국에서 온라인 상담을 해야할텐데 온라인이라는 환경이 오프라인의 환경을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그 또한 아쉬웠을 거다.

내가 문제에서 헤어나온 이후 주변에 같은 고민으로 고통받거나 받았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문제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고민을 하거나 했던 사람들. 내 주변의 동료들에게서도 여럿 같은 종류의 고민으로 상담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도 참 많이 받았는데, 그런 모든 사람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해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덴마크 석사유학 후 정착이민?

덴마크에서 살려면, 덴마크 유학, 덴마크 이민… 요즘 눈에 띄는 유입검색어다. 덴마크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나 했는데 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덴마크에 사는 건 어떤가? 난 덴마크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다. 다만 지금 좋아하는 덴마크의 모습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여기식의 삶의 모습은 현지 여건에 맞춰 살기 적합한 형태이다. 여기의 장점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도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살면서 좋다고 느꼈던 걸 여기로 다 갖고 오면서 덴마크의 좋은 점을 같이 취해서 살 수 있고 그런 건 없는 거다. 그게 가능하려면 엄청 부자이면서 여기 비자를 획득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아니 그래도 한국에서 좋았던 모든 것을 여기서 그대로 누릴 수는 없다. 돈으로 대접을 사는 게 힘드니까. 한국식 고객의 까다로움을 갖고 오면 스스로도 피곤하고 경멸의 눈길도 받을 수 있다.

유학으로 이민을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건 아닌데 꽤나 챌린징한 것 같다. 그전엔 좀 상대적으로 쉬웠는데 시간이 갈 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덴마크어가 안되면 직업을 구하기 어려워서 더 그렇다. 영어만으로 취직을 하려면 글로벌 기업에 취업을 해야하는데, 대부분 아주 유창한 영어실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이라고 해도 한국에서 대기업이 채용하듯 대규모로 채용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영어를 모국어수준으로 사용하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그런 자리를 지원하니까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따라서 취업 가능성을 올리려면 덴마크어를 활용해서 일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게 유학기간 내에 학업과 병행해서 이 수준으로 올리기엔 대학원 학업 강도가 상당히 세다.

여기 사람에겐 취업에 있어 학점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닌 거 같은데 유학 온 외국인에게는 학점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덴마크에서의 학업 후 유관분야로 신입 자리를 노리는 경우에는 더 그런 듯 하다. 내 한국에서의 이력이나 학력의 수준을 이들이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덴마크 학교내에서 보여주는 경쟁력으로 기존의 성과도 같이 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그러니 덴마크어 공부하면서 학업을 잘 관리한다는 게 쉽지 않다. 나도 학교 다니는 와중에는 덴마크어를 손에서 거의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냥 등하교길 신문 읽고, 라디오 듣고, 주말이나 저녁에 아주 간혹 티비 보고, 집에서 남편이랑 이야기하고 그런 거 외에는 말이다. 학원도 잠깐 다녀봐도 학교공부에 치여서 숙제를 몇번 못하고 자꾸 수업도 빠지다 보면 그만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원래 go against all odds, 불도저 같은 사람이다, 실패도 상관없이 도전하다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라고 말할 유형의 사람이라면 사실 어떻게든 여기서 자리잡고 잘 살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나 그런 타입이 아니라면, 녹록하진 않다. 나처럼 처음 일자리를 잡고 여기에 와서 덴마크어를 공부할 시간도 갖고, 현지인인 남편과 결혼해서 학비 없이 대학원 다니고 (그냥 유학생은 돈 내야한다.) 몇개월 실업기간동안 버틸 돈도 있고 직장다니고 있는 남편이 있어서 비빌 언덕이 있으면 좀 모를까.

오늘 생일인 직원이 있어서 그 직원이 구워온 초콜렛 케이크를 먹으며 20분정도 담소를 나눴는데, (생일인 사람이 케이크나 초콜렛이나 간식을 갖고 와서 나눠 먹으며 축하를 받는 기묘한 문화가 있다.) 나 채용할 때 같이 채용되어 들어온 다른 덴마크 직원 두명은 인성 검사만 받았고, 나만 적성검사(라 하고 아이큐 검사 비스무레한…)와 인성검사를 다 받았더라. 누군가는 적성검사만 보고, 누군가는 인성검사만 보고, 또는 다 보는 사람도 있는데, 채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조금 확인해보고 싶은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개별로 필요한 시험 타입을 정해서 알려준다고 한다. 오늘 보아하니 전체 센터에서 우리 청에 들어오기 위해 적성검사를 한 건 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인적성 검사는 우리 청에서 우리 센터가 가장 많이 활용한다고 한다. 농담으로 “내 지능에 의문을 가졌군! 다행히 내가 살아남았네!”라고 말했는데, 돌아서서 생각해보는데 외국인에게는 진입장벽이 알게모르게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덴마크 직장에 첫 발을 들이고 나면 그걸 기반으로 해서 다른 덴마크 직장으로 이직하는 건 수월해지지만 이런 진입장벽으로 인해 첫 발 딛는게 아무래도 더 어려울 수 있겠다. 집에 와서 옌스랑도 이야기해보는데, 아무래도 외국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일하는지 서로 잘 알지 못하니 불안함이 더 크고, 확인해보고 싶은 게 많지 않겠느냐 한다.

결론은 아무런 비빌 언덕 없이 2년동안 석사해서 바로 취직하는 걸 머리에 그리고 오는 유학이라면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다. 박사자리 오퍼받고 오는 건 다른 이야기다. 그건 한국과 달리 취직해서 오는 거니까. 물론 박사자리가 끝나서 무조건 스테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석사보다는 훨씬 높은 확률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월급도 아주 풍족하진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없을 정도로는 나오니까. 그리고 학계는 덴마크어가 모자라도 장기적으로 덴마크어를 배우면서 정착하기에 괜찮은 국제적인 환경이니까.

이 나라 사람들 영어 참 잘하는데, 그래도 모국어가 더 편하고, 영어가 그닥 안편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일을 하는데 굳이 영어로 일할 이유가 없다. 거기에 고객 업무가 있을 경우 고객을 불편하게 하기 싫을 거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 한국말 못하는 사람 안뽑듯이 여기도 덴마크어 안되는 외국인은 잘 안뽑는다. 영어를 잘하면 덴마크어 배우기 많이 수월해지지만, 그래도 분명 다른 언어도 배우는 데 시간이 또 걸린다. ‘덴마크 사람들이 영어 잘 하니까, 대학원 대부분의 과정이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거기서 석사 유학하고 나면 취직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한국에서 다른 나라 외국인이 한국어 없이 우리나라에서 취업하려는 것과 진배 없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만든다.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 덴마크가 행복한 나라라기에 유학 이민을 꿈꾸는 사람일 경우라면 이런 이유로 매우 비추라고 말해주고 싶다. 올 경우 이런 상황에 대한 인지 후 엄청 노력해서 살아남을 각오를 하고 올 것을 추천한다.

“한국이 그리운가?”

몇 일 전, 여름과정 기말 프로젝트를 함께 하던 덴마크 친구가 물었다. “한국이 그립지는 않아?” 한 5초정도 고민을 하다가 (사실 대화 중 5초의 적막은 짧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답을 해주었다. 사실 내가 그리운 건 한국이 아니라 한국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 등이지 한국이 그리운 건 아니라고 덧붙이며.

뭘 먹을 수 있을지조차 잘 모르겠어 한국 음식이 막연히 그립던 입덧 시기를 지나간 후에는 한국 음식 자체가 생각이 나지 않고 있다. 강한 냄새나 양념, 고기 등이 싫어지고 나니 그런 것 같고, 그나마 심각한 갈증을 느끼던 음식은 한국가서 몇 번 먹고나니 해갈이 되었던 모양이다. 또 엄청나게 그리워하던 음식들은 내 머릿속으로 그리던 음식 맛과 실제 맛 간의 괴리만 오히려 느끼고 나서 그 갈증이 싹 없어지기도 했고.

한국의 자연이 그리울 때는 있다. 자주 가지는 않았어도 간혹 가고 싶을 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었던 것이 가장 그립다. 지평선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여기저기 솟아있는 산은 한국에 사는 이상 그리워할 이유가 없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는데, 덴마크는 다 평지니까.

20대까지만 해도 서울이 정말 좋았다. 모든 것이 집적되어 있기에 음식, 공연, 전시, 쇼핑 등 내가 먹고, 보고, 하고 싶은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평균 한시간이 넘는 도시내 이동시간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낄 일도 없었고, 사람이 많은 거리는 도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피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런 인파를 뚫고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그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동을 느꼈고, 미여터질듯한 유명 작가의 전시를 줄서서 볼 때면, 그 인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감사했다. 교보문고와 같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큰 서점에 앉아서 사고 싶은 책을 천천히 읽어가며 고를 때면 도심 한복판의 여유가 더욱이나 소중하게 느껴졌고, 또 대형 오페라나 클래식 콘서트에 가면 그런 공연 저변이 별로 없는 지방에 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다 싶었는지.

인도에서 2년 반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던 2011년 그 해, 나는 역문화충격을 받았다. 길에는 차와 사람, 동물로 그 복잡함에 정신이 혼미해질 듯한 현기증을 자주 느끼곤 했지만, 쇼핑센터를 가던 식당을 가던 내가 돈을 내고 소비를 하는 공간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미 길에서 느낀 피곤함으로 인해 한국과 다르다고 느끼지 못했고, 한국에 돌아가면 항상 지금의 이 생활보다 좋을 것이라고만 상상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막상 돌아온 후에 느낀 건 인도보다 질서정연한 도로와 정리된 도심 이외에는 더 복잡하고, 더 피곤한 일상이었다. 어딜 가도 줄을 서야 하고, 물건을 사려고 해도 사고 싶은 건 사이즈가 없고, 뭘 보려해도 미여터지는 사람 구경을 해야 하는 것 등. 물론 인도에 없던 문화 저변에 대한 접근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던 것과 달리 서울이 정말 붐비고 지치는 도시라는 것을 인식하게된 큰 계기가 되었다.

덴마크에 오고 나니 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더이상 내가 서울과 같은 대도시생활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난 아주 간혹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기회와 자연만 있으면 크게 여행을 다녀야 되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것을 찾아 먹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것 저것 쇼핑을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모르던 나를 알게 된 것이다.

이민이라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이 직장을 구해야 하고, 언어도 배워야 한다. 이제 사전을 옆에 두면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일간신문을 읽을 수 있고, 왠만한 대화는 다 덴마크어로 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덴마크어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 뿐이지. 대학원을 원하는 대로 배우고 싶은 것들을 잘 흡수해 배우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목표를 향해감과 동시에, 내 가정도 잘 꾸려가고, 운동도 해가며 덴마크어를 배우는 등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저글링하듯 해야 한다. 마침 운동선수가 잘 맞는 매니저를 만난 듯이 나를 잘 이해하고 나와 비슷한 남편을 만나 여러모로 배우며 나 스스로를 잘 채찍질 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 조절 잘하며 장거리 레이스를 잘 할 수 있게끔 말이다.

이민자로서 느끼는 피로감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시기가 다시금 닥쳐올 순간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있다. 그래도 난 이제 덴마크의 삶에 충분히 적응을 했고, 이 곳의 삶이 내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기에 오히려 더 내 집같은 생각이 든다. 언어가 편안해지면서 사회로부터 더욱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물질적이든 자연 환경이든 소비를 하고 싶은 것들은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저변이 되면서도 물질적 소비가 중심을 이루지 않는 사회문화, 가족 중심의 생활 패턴,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사회의 룰을 지키는 범위안에서라면 서로 터치하지 않는 점 등이 좋다. 내가 가정을 꾸리며 처음으로 제대로 된 뿌리를 내리게 된 곳이 여기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막상 질문을 던진 덴마크 친구는, 자기는 덴마크를 뜨면 정말 덴마크가 그리울 것 같다며, 인도네시아에 정착해 현지인과 결혼해 10년 이상 살고 있는 자기 형처럼 나 같이 이민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을 크게 그리워하지 않으며 살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고. 3년을 살고 이런 일을 논하기엔 내 이곳 생활이 너무 짧은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7년을 더 살고 나면 난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