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 발레에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보름달과 때마침 스피커에서 흐르는 다소 드라마틱한 음악이 뒤섞이며 갑자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보고싶었다. 그냥 보고싶은게 아니라 같이 앉아서 시덥지 않은 이야기도 나누고, 엄마가 시키시는 부엌일을 귀찮지만 몸을 일으켜 하는 순간, 아빠도 도우시라며 핀잔도 드리고, 티비에서 재미도 없는 명절특집 프로그램에 깔깔거리는 게스트들의 잡담이 배경음악처럼 깔리고 하는 그런 정말 명절일상. 그런게 그리웠다. 약간의 눈물이 눈동자를 가리려고 하는 것을 애써 다시 욱여넣고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나 정말 잘지내는데.

그리움이 커지면 슬플까봐, 슬프면 잘 지내지 못할까봐, 그리움의 감정이 생길라치면 억누르고 있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마음의 욕심이라는게 갈증을 하나 채워주면 더이상 같은 걸로 갈증이 채워지지 않고 더 뭔가 큰 것을 얻어야 갈증이 채워지는 것처럼 보고 싶은 것을 보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고, 또 보고 싶고, 만져보고싶고, 더 경험하고 싶어진다. 정말 충분히 봐서 일정 수준이상 만족도가 채워질때까지는 계속 더 원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것을 피하려고 음식도, 사람도, 자연도. 지금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도 부족한데, 또 더 원해? 욕심 아니야? 이런 생각에 스스로를 애써 억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립지만 너무 그리워하지 않고, 적당히 그리울 때 그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균형. 그런 걸 내가 이미 갖고 있다면 한없이 좋으련만, 나는 적당히가 잘 없는 사람이다. 한껏 좋아할 때 흠뻑 빠졌다가 또 멀어졌다가. 어쩌면 그래서 내가 덴마크에 잘 적응했는지도 모르겠다. 덴마크가 좋을 때 언어고 뭐고 한없이 몰아붙여서 그 덕에 내것으로 온전히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하지만 그래서 그리움에 흠뻑 빠진다면 물을 한껏 머금은 스펀지처럼 아주 무겁게 가라앉을 것 같은 두려움이 크다.

너무 깊게 빠지지 말고 아주 잠깐 그리워하자. 덴마크와 한국, 덴마크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한국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모두를 한꺼번에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지금의 그리움을 잘 받아들이고 소화해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할 수 있도록 하자.

구직기간의 스트레스 관리

실업기간이 6개월에서 길게는 1년도 될 수 있음을 마음에 두고 조급함을 버리라는 옌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불안함과 조급함이 끊임없이 마음에 찾아온다. 이 녀석들… 불안함과 조급함은 내가 부족하다 느끼기에 생긴다. 결국 내 욕심에 비해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겠지. 욕심을 버리거나 노력을 늘리거나, 아니면 둘다 조금씩 조정하거나 해야지 그냥 앉아서 불안함과 조급함에 내 정신을 맡겨두는 건 건강하지 못하다.

항상 하려는 건 많고 그 중 건지는 건 몇 개에 불과한 나이기에 이런 노력이 얼마나 갈 지야 모르겠다. 하지만 항상 이것 저것 해보기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건지는 게 늘어남 또한 알고 있다. 꾸준함이 덜하다면 시도라도 해서 맞는 걸 건져야 할 것.

한국 다녀와서 5주동안 데이터 사이언스 온라인 과정을 들으면서 R에 대한 숙련도도 늘리고, 기타 다른 프로그래밍 스킬을 계발하려고 한다.

그간 풀어진 정신상태도 조금씩 조여서 쓸데없는 넷서핑도 줄이고.

unsolicited 이력서도 조금씩 내보고… 원하는 일자리 자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옌스가 이 전공이 특화된 전공이기 때문에 구직 기간을 비전문 전공보다 더 길게 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별로 나지 않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다.

그래도 천천히 해보자.

대신 일주일에 한번 정도  평일에 친구를 만나거나 문화생활을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구직기간을 조금이나마 즐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