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겨울은 길다. 아직 가을이 끝나지 않았지만 벌써 절정으로 달려가는 가을의 빛깔을 보면 겨울이 한발짝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우리내 명절도 아니고, 덴마크 명절도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여름방학과 크리스마스 사이 긴 하반기를 즐겁게 보내게 해주는 할로윈도 코앞에 다가왔다. 다채로운 노랑과 붉은 계열 색깔의 향연을 멋지게 뽐내는 이 절정이 지나고 나면 11월은 나무가지가 앙상해지는 쓸쓸한 시간이 된다. 그렇게 가을은 끝나고 겨울이 다가오겠지. 올 가을은 해가 좋은 날들이 많았어서 노란색과 붉은 색의 다양한 채도를 또렷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가을은 가장 바쁘면서도 한해의 마무리를 준비해야 하는시기인데, 연봉협상시기이도 하다. 연말 연봉협상시기를 앞두고 센터장과 면담을 했다. 공무원은 대부분 연봉 테이블을 따라가서 협상할 여지가 많지 않은데, 본인이 생각했을 때 특별한 성과가 있다고 생각하면 승진을 하거나 연봉에 추가 수당을 얹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상사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본인이 노조에 요청해서 임원진과 직접 협상을 해달라고 요청할수도 있고, 상사를 설득해서 상사가 임원진에 이에 대한 승인을 요청할 수도 있다. 다만 전체 조직에서 승진을 시키거나 연봉을 올리는데 필요한 T/O와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 부서별로 자신의 부서에 이를 땡겨오기 위해서 임원진간에 합의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상사가 연봉상승안이나 승진안을 올린다고 해서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한해 나에게는 조금 힘든 시기였다. 나 뿐 아니라 같은 프로젝트에 들어갔던 인원들 모두 협업 부서와의 갈등으로 고생을 했다. 약간 비열함마저 느껴지는 협업부서 동료들은 해당 부서의 엄청난 인원교체를 유발한 약간 암적인 동료들인데, 은근하게 사람을 힘들게 해서 징계를 하기는 어렵고 끊임없는 주의만 남발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튼 이들이 담당자인 프로젝트으로부터 업무 발주를 받아 우리 팀에서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우리끼리 방문 닫아놓고 욕도 하고, 상사에게 애로사항을 토로하기도 하고, 노조에도 이야기하고 등 여러 조치를 취해볼 정도로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다. 프로젝트가 길게 연장되면서 나는 못견디겠다고 손들고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가면서 한숨 돌렸는데, 정말 퇴사도 고려해보게 할 정도로 힘들었다.
막바지 단계이긴 했지만, 프로젝트를 완수 못하고 나머지 동료들에게 넘겨두고 나만 빠졌던 터라 뭔가 실패를 경험한 느낌이었기에 연봉협상에서 뭔가를 요구하기가 그랬다. 그래서 뭐가 되었든 상사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고 더이상 코멘트하지 않았는데, 상사는 그거 말고도 프로젝트에서 보인 책임감과 질적인 부분에 대해 항상 고민하는 부분을 토대로 추가 수당 부분을 임원진 회의에 상정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평가해주면 고맙다 하고 내년 한 해 좀 더 좋은 프로젝트들로 더 성장할 수 있기를 노력해보겠다며 마무리했다.
중간중간 상사와 면담도 하면서 피드백을 받기도 하지만, 연봉협상시기야 말로 상사의 진정한 평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상사가 내 성과를 토대로 임원진과 합의를 이뤄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이 공무원도 구조조정을 하는 불확실성들이 많은 시기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년에 시민권도 신청해야 하는데 시민권이 나올 때까지 직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이 계속 잘 근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 창문의 블라인드를 활짝 열어두고 파란하늘과 노란색의 물결을 흠뻑 느끼며 근무시간을 시작해서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