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한국여행 경험

한국을 방문할때마다 아이에게 자신의 뿌리를 조금씩 소개하는 기분이다. 그 뿌리에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지만, 기왕이면 좋은 것들을 많이 알게 되고 그 뿌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 뿌리를 연결하는 엄마인 내 마음이다. K-pop이 전 유럽에서 인기를 얻으며, 그 여파가 약한 덴마크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게 좀 더 많이 알려져서 하나가 한국인임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수월한 것은 장점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무엇인가하는 것은 한국에 가서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금 한국 방문을 좋은 기억으로만 채워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여름이라 너무 더웠던 것을 제외하면 크게 나쁠 것이 없던 여정.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도 좋은 시간 보내고, 부산에서 바닷가도 즐기고 새로운 곳들도 봤다. 분당에서 육촌 언니 오빠와 함께 짧지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왔으며, 서울에서는 한국여행에 조인한 고모와 사촌 언니오빠와 함께 색다른 추억을 만들었다.

육촌 언니오빠를 따라간 성당 복사 교육. 교육을 끝마치고, 복사단 교육을 관리하는 한 분이 탈색한 머리가 남아있는 아이에게 염색을 하라며, 복사단은 튀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걸 들은 하나가 자기같은 사람은 머리를 염색해야 복사를 할 수 있는 것이냐고 했다. 자기가 복사를 할 것은 아니지만, 튀는게 안된다며 다 같은 머리색을 하라는 것이 관심을 끈것이다. 머리 색깔이랑 성당에서 복사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는 것. 온갖 머리 색깔을 볼 수 있는 나라에서 온 아이에게 거의 대다수가 어두운 머리의 세상이 특이하게 느껴졌었는데, 그걸 달리 하는 것에 제재가 가해진다는 것은 더욱 특이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자신과 같은 사람은 존재 자체가 틀린 것인가 하는 의문을 주었던 것. 참 설명하기 어려웠다. 다른 것이 튀는 것이고, 그건 좋지 못하다는 것으로 아직도 해석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문화를 아이에게 설명해주면서 한국과 덴마크에서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는 아이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다르게 생기다보니 쳐다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아이를 갑자기 만지거나, 의도치 않은 관심을 사양해도 계속 그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아이에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애초에 누가 이쁘다고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 덴마크에서 살아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아이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 반응을 해주지만,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타인의 애에게 외모 칭찬을 하면서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데, 한국에서는 애가 달라서 이쁘다거나 아빠가 외국인인가보다 하면서 말을 거는 경우들이 있다. 아이가 한국어를 잘 못해도 요즘 꽤나 잘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싫고 불편해한다. 한번은 이상할 정도로 접근을 하고 말을 걸며 아이 주위를 따라다녀 아이가 불편해하니 거리를 둬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뒤를 따라와 머리를 만져대 그만하라고 하고 그 사람이 자기 길을 완전히 갈때까지 땡볕에 서서 기다린 적이 있었다. 아이가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어른들이 아이를 이뻐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저 할머니는 그와 달리 많이 이상해서 엄마가 너를 보호했지만, 간혹 그걸 날카롭게 반응하기에 곤란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을 해줬다. 나도 어느 수준에서 잘라내고 반응을 보여야할지 어려웠다.

길에서 걸어다니며 담배피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건물 앞, 옆 코너에서 떼를 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도심의 보행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탓에 아이에게는 도심보다 시골이 좋았던 것 같은데, 사람이 미어터졌어도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갔던 것은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이번 한국 여행은 너무 더운 것, 사람들이 만지는 것, 담배피는 사람들 많은 것 빼면 좋았다고 한다. 막상 덴마크가 가고 싶고 그립지만, 또 거기 가면 한국이 그리울 것 같다는 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내가 아이가 느낀 상처를 너무 크게 느낀 것 같기도 하다. 그 일이 있고 아이가 여러 날동안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걱정을 좀 크게 한 것 같기도 하고.

돌아오며 한국어 사용이 많이 늘어난 것은 짧은 여름 휴가의 큰 수확인 것 같다. 8월 말에 다시 시작할 한글학교가 기대된다.

4년만에 덴마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덴마크에 살기 시작한 지 거의 4년이 되었다. 만약 계속 코트라에 계속 다녔더라면 돌아가야 할 시점이었겠지.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지면서도 그것밖에 안되었나 싶은 모순된 감정이 가로지른다. 인생에 전혀 계획하지 못했던 일들이 무수하게 벌어졌으니 역시 살아봐야 아는 게 인생이구나.

 

앞으로 어떤 생각이 들런지는 또 지내봐야만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난 덴마크의 삶이 참 잘 맞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인도로 첫 발령받기 전까지 한번도 해외 거주 경험이 없었으니 참으로 토종 한국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이방인 같은 느낌으로 살았었다. 여기와서 옌스를 만나고 결혼을 해 하나를 낳고 친구들도 생기고 하니, 나답게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그냥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덴마크 사람들과 케미가 잘 맞는다고 해야할런지. 덕분에 뿌리를 내리기에 참 좋은 토양이다 싶다. 물론 옌스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덴마크 사회로 진입하기에 이런 가족과 같은 연결고리는 정말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경험해보니 정말 그렇다.)

 
출산하고 애를 키우며 지난 오개월 사이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학교 다니면 영어 쓰는 시간이 지배적이고 저녁에도 공부하느라 덴마크어가 소홀해진다. 그런데 애 보면서 토막나는 시간에 공부하기가 잘 안되니(조금 핑계같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방송 간간히 보고, 신문 읽고, 엄마그룹 모임 하고 했더니 몰입환경이 조성된 걸까? 듣기가 확 트이고, 어휘도 늘고 하다보니, 말문이 눈에 띄게 트였다. 물론 듣고, 읽고 이해하는 폭이 말하거나 쓰는 폭보다 넒기에 덴마크어로 보고서를 유창하게 써야 하는 일을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덴마크어 사용이 자유로워졌다. 방송시청과 신문 읽기가 어렵지 않아왔으니 말이다. 출산 시점을 돌이켜보면 그땐 영어로 하겠다고 했었는데 요즘은 밖에서 영어를 쓰는 일이 없다.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든, 엄마그룹을 만나든, 뭔가 상담을 받든 말이다. 옌스와의 대화도 95% 정도는 덴마크어를 쓰니.

 
작은 나라라서 그런가? 말이 되면 엄청 좋아하고 환대해 주며 사회의 성원으로 빠르게 받아들여주는 점은 한국과 덴마크가 같다. 요즘 덴마크 사회에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부쩍 받는다.

 
논문이 끝나면 직장을 구해야 할텐데 이제 걱정은 한켠으로 접어두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환경경제쪽으로 직장을 꼭 잡고 싶은데 안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접었다. 내가 공부를 다시 한 목적은 직장을 잡는 자체에 있었고, 내가 덴마크에서도 경쟁력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물론 좋은 성과를 내고 졸업한다는 전제하에 그 기간동안 덴마크어도 가다듬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깨에 든 힘도 좀 빠졌나? 내가 앞으로 뭘 하든 밥값만 하면 되지, 꼭 좋은 직장 잡아서 잘 다녀야 하는 거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드니, 설마 직장 하나 못잡겠나 싶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밸류 프로포지션만 명확하면 직장은 잡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마음에 드는 직장을, 아니면 그냥 밥벌이라도 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아마 이 모든 느낌은 더이상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드는 것 같다. 옌스 가족과 친구, 내 생활 반경 속 사람들에게 그냥 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나니 그냥 이대로 살면 되겠다는 생각이랄까? 한국에서 갖고 있었던 뿌리깊은 자기증명 강박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내 부모와 가족, 친구가 멀리 있는 건 아쉽지만, 난 내가 뿌리내릴 토양을 지구 반비퀴를 돌아 찾아온 느낌이다. 나에겐 이제 고향이 두 곳이다. 둘이 같을 수는 없지만 다른 의미로 아주 중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