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관계

유튜브에서 우연히 이혼사유에 대한 동영상을 보았다. 섹스리스가 이혼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부분이는데, 사람들이 이혼을 하게 되는데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소위 성격차이 등을 이유로 헤어지는 경우에 그 기저에 섹스리스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걸 본격적인 이유로 꼽기는 주위의 시선 등 여러가지 까닭으로 저어하지만, 섹스가 부부관계의 역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 크다고 했다. 그렇다면 섹스리스가 이혼의 배경이 된 사람들은 왜 섹스를 하지 않게 되었을까?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아서 섹스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그건 각자에게 너무나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특정한 답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반대로 성생활이 원활한 부부는 어떤것일까? 과연 배우자가 좋고 사랑해서 섹스를 하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섹스관계도 좋기 때문에 배우자가 계속 좋고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동영상에서는 섹스관계가 좋으면 엄청 큰 문제가 아닌 이상 작은 갈등은 섹스를 통해 쉽게 풀 수 있다고 했다.

40대 중반의 나와 50대 초반의 옌스는 결혼 초기나 지금이나 성적인 욕구나 관계 빈도 그런 것들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큰 갈등 없이 잘 지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원만한 성관계 덕에 갈등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과거의 관계들을 돌아보자면 성관계는 서로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싶다.

과거의 나는 그닥 많은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모든 연인관계에서 성관계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안할 수 있으면 안하는게 제일이고 해도 좋은지도 모르겠고, 더러운 느낌도 들고. 또한 그 좋지 않음 자체가 나의 결함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불안함을 안겨주었다. 굳이 좋지도 않은 것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피하다 보면 그게 또 상대에게도 거절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간혹은 상대의 수동공격적인 반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내가 원치않음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상대에게 실망도 느끼고, 혹여나 그런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드 조성을 피하게 하기도 하는 등 괜한 피곤함마저 생겼다.

나는 성적으로 청소년기에 트라우마가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성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야기할만큼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서 이를 해소할 수 없었다. 옌스는 그걸 내가 털어놓을 수 있었던 첫번째 사람이었다. 사실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내 잘못인 일도 아니었지만 트라우마라는 건 그런거 아닌가. 이성적이지 않은 반응일지라도 그게 갖는 의미나 영향력이 컸기에 이를 타인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보고 보듬을 수 없는 그런 것. 옌스는 나의 트라우마를 내 입장에서 잘 듣고 소화해줬고, 나를 보듬어주었다. 그 덕에 이 일이 더이상 트라우마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성관계가 더이상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성관계는 사랑의 언어가 되었다.

결혼 10년차 우리는 더이상 예전처럼 설레임에 두근거리고 그렇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서로를 아끼고 보듬고, 서로를 여전히 남자와 여자로 느끼고 원한다. 일상에 무뎌지지만 서로를 무뎌지지 않게 하는 것은 부부관계라는 사랑의 언어 덕인 것 같다. 나를 원하는 그를 보며 우리는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상대도 나와 마찬가지의 감정적 상호 인정을 확인한다. 나의 무수한 결점을 그대로 드러내지만 사랑을 받고, 이는 상대도 마찬가지다. 나신을 보이고 살을 섞고 체액을 교환한다는 것은 가장 나약한 순간에 서로를 나와 하나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좋은 부부관계를 위한 우리의 원칙

결혼한지 3년이 조금 넘었으니까 신혼은 아니렸다. 남편이 이젠 정말 뼛속까지 가족같은 느낌. 아마 하나를 낳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나가 우리와 함께한 지 출생후 이제 20개월 되었는데 마치 우리와 평생을 한 느낌이 드니까 그 전에 결혼한 우리의 삶이 항상 그래왔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거다.

우리 딴에야 조금 다툰 일은 있지만 어디 명함을 내밀기에도 민망한 작은 다툼이 전부인 것 같다. 결혼 전 둘이 다짐한 몇가지가 있는데, 서로 사랑하더라도 짜증나는 일들은 있게 마련이니 1) 절대 서운한 감정을 쌓아두고 냉전하지 않기, 2) 서로에게 항상 좋은 의도로 대하기와 상대가 그러하리라고 믿기, 3) 서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기, 등이 있다. 아마 이를 지켜오기 위해 노력하고 지켜온 덕에 작은 다툼이 큰 다툼으로 번지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출산 후 1년 동안은 나의 여유가 없어지면서 내가 짜증내는 일이 제법 있었지만, 육아 및 가사일에 옌스가 익숙해지고, 하나가 커가면서 일들이 조금씩 줄어들자 과거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미움의 감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흘릴 수 있었다.

사실 가까운 사람에게 가깝다는 이유로 내 힘든 순간 날을 새우고 의도치 않게 또는 죄책감을 심어준다던지 하는 식으로 의도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고 또 주는 일이 흔하다. 가족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지만 관계는 정태적인 게 아니라 가까운 관계도 언제고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소중하고 가까운 관계는 그 모습이 헤어져 변해버리기 전에 항상 잘 가꿔야 한다. 그리고 양쪽이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살면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서로 타협하고 조율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타협하고 조율한다 함은 매우 실용적인 관점에서 출발한다. 누가 옳고 그르냐, 어떤 것이 공평하냐와 같은 원칙이나 정의 중심의 접근이 아니다. 한 쪽의 상황이 어렵고 다른 한 쪽의 상황이 여유있으면 여유있는 쪽이 맞춰주고, 도움 받는 쪽은 고마워하고 도움을 잘 받아들이고 나중에 내가 여유있는 상황에 있을 때 또 도와주고 그런 거다. 어쩌다보면 항상 여유있는 쪽 또는 도움 받는 쪽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삶은 원래 그런 거 같다. 꼭 공평하지 않은 것. 서로 양보하려고 노력하고 그걸 각자가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할 때 관계가 부드럽게 흐른다. 그러니 남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상관없이 두 사람만의 원칙을 갖고 문제를 풀어간다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생각한다.

물론 문제가 없는 관계라고 해서 좋은 관계라는 건 아니다. 평생을 같이 하려고 만난 사이이니 만큼 남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런게 있어서 결혼을 한 것일테니 그걸 가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다. 옌스는 로맨틱함이라고는 찾아보기도 어려운 나와 달리 조금의 로맨틱함을 갖고 있다. 물론 이는 상대적인 거고 우리 둘다 별로 로맨틱한 유형은 아니다. 그래도 서로에 대한 로맨스는 아직까지 잘 갖고 있는데 그건 어쩌면 매일 사랑을 표현해서가 아닐까 싶다. 사랑을 표현하려다보면 칭찬도 해야하고 칭찬이 칭찬다우려면 구체적이어야 하다보니 서로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잊고 있던 장점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또 모르던 부분도 보이기도 하고 괜히 가슴 설레는 순간도 다시금 생긴다. 그리고 상대의 그런 칭찬을 듣다보면 내가 아직 상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에 나를 다시금 가꾸고 싶게되고 내 마음에도 달짝지근한 사랑의 기운이 번진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옌스하고의 관계에서는 그냥 그렇게 되었다. 그게 바로 인연이라서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유지하고 가꾸는 건 노력없이는 안된다는 측면에서 그냥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닐게다.

사랑한다는 건 사랑에 빠진다는 것처럼 감정의 회오리에 휩쓸리는 피동적인 게 아니다. 능동적인 행동이다. 어려울 때건, 내가 지치고 힘들때 건, 아끼고 가꿔나가는 게 관계이고 그 행동이 사랑한다는 행위이다. 결혼을 하고 같이 살다보면 처음과 같은 두근거림이나 열정은 서서히 사그라들지언정 내 마음에 큰 자리를 내어 같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른 종류의 감정이 싹트고 서로를 위해 나를 내어줄 수 있게 되는데 나는 그게 사랑이라 생각한다. 먼저 결혼한 친구가 오래전에 나에게 결혼에 대한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해인아. 조급해 하지마. 대충 거슬리는 게 없다고 결혼하는 게 아니라 꼭 네가 존경할 만한 점이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해. 그래야 나중에 힘든 일이 있고 서로에게 지치는 순간이 와도 그 존경하는 점 때문에 그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어.” 라고 말이다. 그게 참 와닿았고, 그 말에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나니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이제 만난지 거의 5년이 다 되어가는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남편이나 시댁이나 좋은 사람을 만나서 잘 지내오고 있는 건 행운일 지 모르겠지만, 과거의 나였다면 이 관계를 현재와 같이 가꿔오지 못하고 아마 진작에 망쳐버렸을 거다. 결혼하기 전에 서로 합의한 이 원칙을 앞으로도 잘 지키고 서로를 귀하게 여긴다면 계속 행복한 가족을 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