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조류에 맡기는 일상

흘러가는대로 살고 있다. 일상과 습관이 나를 끌어가는 느낌이다. 이유중 하나는 그 일상과 습관이 하루 일과의 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생활에 더해 뜨개질과 발레, 클라이밍과 같은 취미생활과 아이의 학교와 과외활동에 맞춰 바래다 주고 데려오는 것, 작은 냉장고로 인한 잦은 장보기, 아이 도시락싸기, 저녁 식사 준비 등을 다 하고 나면 시간이 별로 남질 않는다. 뭔가 하나를 늘리면 다른 하나를 줄여야만 하는 상황.

그럼에도 연중행사처럼 돌아오는 일들은 빼먹지 않고 해줘야만 한다. 봄이 오면 겨우내 테라스에 낀 녹조도 제거해 줘야 하고, 겨우내 얼어죽은 화분은 정리해서 새로이 뭔가를 심어줘야 한다. 마당 돌 사이사이에 낀 이끼와 거기서 피어난 잡초도 제거해 줘야 하고, 창문도 다 닦아줘야 한다. 이런 건 일상을 깨는 일이라 머리를 피곤하게 한다. 오토파일럿 모드로 돌릴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매년 하고, 그래서 스킬이 늘어나도, 일년 지나면 또 까먹는 부분이 생겨서 시작을 하기까지 마음먹는게 쉽지 않다. 막상 하고나면 다 하게 되는 일인데.

이런 시간이 돌아온다는 것은 한해가 또 지나갔다는 뜻이다. 올해 여름이면 만으로 마흔네살이 된다. 요즘 주름도 늘고 피부도 쳐지고 피부도 좀 칙칙해지는 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내가 나이드는 만큼 내 주변의 어른들도 나이가 들어가심을 느끼게 되고, 아이야말로 부쩍 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싶은데, 뭘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 일을 하고, 신문을 읽고, 관련 자료를 읽으며 지식은 머리에 욱여넣고 있지만 방향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이 나를 끌어가는 대로 부유하고 있다. 그 방향이 딱히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아 그 방향이 이끄는 대로 가고 있다. 어쩌면 내가 설정한 방향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설정한 방향이 있었다면 여러가지 우연한 요소로 인해 뒤틀리는 계획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가는 길은 같았을지라도.

지금은 그냥 흘러가는 조류에 몸을 맡기련다. 조류에 쓸려가는 시기가 항상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