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사람들 / 수다쟁이 츤데레

그린랜드 사람들이 덴마크로 넘어와 살게되면 받게되는 오해가 말수가 적다는 거란다. 그린랜드 래퍼가 그린란드의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노래를 발표했다며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한 말이다. (스톡홀름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처럼 그린랜드사람들은 덴마크 문화가 우월하다고 느끼며 그린랜드의 뿌리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싫어하거나 하는 복잡한 심경을 갖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린랜드의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노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화에 참여하는 대상이 말을 완전히 끝낸게 아닌데, 마침표와 다음 문장 사이에 빠르게 치고들어와서 말을 하는데, 상대의 말이 다 끝낼때까지 기다리는게 미덕인 그린랜드 사람들은 자신 이야기를 할 차례를 기다리다 주제가 바뀌어서 대화에서 조용하게 있는 경우가 많아 생긴 오해란다.

그러고 보면 그게 정말 맞다. 길에서 만나는 덴마크인들 참 시크한 것 같고 별로 말 많이 안할 것 같은데, 가까워지면 어찌나 수다스럽고 말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지. 정말 별의별 주제로 대화를 다 한다. 그리고 대화에 낄려면 중간에 잘 치고 들어가야한다. 덴마크사람들 전반적으로 말이 빨라서 직장생활 초반 그게 참 힘들었다. 주제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중간에 잘 치고 빠르게 비집어 들어가려면 내가 할말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걸 포기하고 듣는데에 집중하거나 아예 그냥 혼자만의 버블속에서 공상을 하기도 했더랬다. 물론 중간에 나를 참여시키기 위한 질문이라도 던져지면, 나는 맥락을 다 잘라먹고 있었기에 “뭐라고? 나 앞에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못들었는데?”라고 대답을 해야했다.

물론 개인차는 있다. 그중 유독 대화를 지배하며 너무 말이 많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조용한 사람도 있다. 조용한 경우는 순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중간에 치고들어오는게 부담스러운 사람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주중에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다. 일 끝나고 회식같은 거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친구와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고. 한국회사생활처럼 끝나고 한잔, 이런건 안하고, 팀빌딩 일년에 몇번 할 때 식사하며 술 한두잔 곁들이는 것이나, 프라이데이바 (금요일에 회사 끝나는 시간 쯤 회사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 에서 잠깐 시간 보내는게 대부분이다. 그래도 회사내 사회생활이 부족하지 않은 것은 짧은 점심시간, 탕비실에서의 커피챗 등으로 정말 많은 대화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일상, 가족, 취미, 집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 관심사, 정치 등 정말 다양하다. (덴마크 사회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우리나라처럼 양극단의 폭이 넓지 않기도 하고, 아무래도 academic한 사람들을 채용하는 중앙정부기관 사람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그중에서도 그닥 넓게 퍼져있지 않아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게 그닥 위험하지 않다.) 서로 배우자, 아이들, 반려동물 이름도 다 알고, 집에서 뭐하는지 등등 서로 잘 알고 지낸다. 정말이지 숟가락, 젓가락 개수마저 다 안다고 할 것 같다.

한국에서 살 때는 덴마크인들의 이런 직장사회생활 문화를 상상할 수 없었는데. 아니, 덴마크 직장생활을 하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는데, 정말 다르다. 직장 동료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가 이야기했던가? 정말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되고, 업무 시간 이외에도 보고 연락하게 되면 그게 친구지. 시간이 걸리는 것 뿐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오히려 더 인정이 느껴지는 덴마크 생활 덕에 이방인으로서의 삶도 그닥 팍팍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동료가 동네친구로

동료와는 사적으로 만나는 일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드문 이곳에서 옌스의 동료가 아닌 내 동료와 같이 사적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자기 일상이 바쁘고, 기존 친구 만날 시간이 더 중요하니까.

전 직장 동료와 비슷한 시점에 같은 동네로 이사한 사실을 알게되어 연락을 하고 애들과 함께 만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밖에서 보려다가 우리 집에서 보는 것으로 계획이 좀 바뀌고, 잠깐 티타임만 가지려던 것이 밥도 같이 먹자고 즉흥적으로 바뀌어 그녀의 남편도 불러서 밥을 먹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와 그집 하나와 동갑내기 딸이 같은 유치원, 같은 반에 다닌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여기 유치원도 많고 유리 유치원에 반도 하나가 아닌데…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간 일상도 조금 업데이트하고, 요즘 나는 무슨일 하는지도 이야기하고 전직장 이야기도 하고. 하나가 잘 노는 친구의 엄마이기도 해서 더욱 마음이 좋은 게, 나도 좋아하는 동갑내기 동료였어서 같이 만나기도 마음이 참 편해서 말이다.

앞으로 좋은 동네친구가 생겼다. 남편도 말로만 많이 들었던 사람인데 드디어 얼굴도 직접 보고 이름에 매칭도 하고. 너무 좋구나~~~

동료들의 편견을 깰 기회

오늘 아침 금요일회의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이주전 다녀온 컨퍼런스에서 보고 들은 것 중 중요하거나 재미있는 걸 추려서 발표해달라고 센터장의 지시를 받은 게 지난 주 목요일. 막상 일이 바빠서 일중에는 도저히 준비를 못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목요일까지도 다 준비가 안되서 할 수 없이 목요일 저녁 집에서 준비를 했다. 애 재우고 준비를 하다보니 열한시가 되서야나 대충 발표할 내용이 정리되었다.

덴마크어로 준비할까도 생각해 봤는데 바빠서 야근을 해야만 준비를 할 판에 이걸 또 덴마크어로 준비한다는 게 시간과 에너지 낭비다 싶어서 그냥 영어로 준비를 했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한 15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서 발표를 했다. 컨퍼런스가 영어로 진행되었고 새로운 인풋 중에는 덴마크어로 모르는 단어가 제법 되는데 영어, 덴마크어 모두가 나에게 외국어라 덴마크어로 모르는 단어만 영어로 바꾸고 하는 게 더 어렵고 헷갈려서 그냥 영어로 하겠다 말했다. 덴마크인 중에 영어 못하는 사람이 별로 안되니까.

전달했던 컨퍼런스의 내용이 실제 흥미롭기도 했고 환경경제가 내 분야이니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정리해서 재미있게 공유한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실 내가 발표한 게 회의도 여러번 있고 이래저래 처음이 아닌데 발표 잘했다면서 동료들이 점심시간이며 커피 내리러 가는 길에 한두마디씩 던지는 거다. 뭐랄까. 영어때문에 그렇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긴 덴마크어로 말하다보면 말이 꼬여서 문장을 리프레이징해서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 이렇게 내가 하고싶은 말을 편하게 하는 게 생경하기도 하겠다 싶다.

스웨덴으로 직장을 구해 이사를 간 스위스 친구가 있다. 언어에 재능이 있고 노력도 하는 친구라 네덜란드에 살며 배운 네덜란드어와 덴마크에 살며 배운 덴마크어를 기반으로 3개월 빡세게 스웨덴어 인텐시브코스를 듣고나서 스웨덴어로 일을 하고 있는 특출난 친구다. 막상 동료들하고는 영어로 대화를 할 일이 없으니 동료들이 그녀의 영어를 들을 일이 없었다. 그녀가 스웨덴어 배운지 몇달이 안되는 걸 알고 있는 동료들도 당연히 그녀의 영어가 스웨덴어보다 훨씬 나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겠지만 그 수준에 대해서는 그냥 지레 짐작할 뿐이었을 거다. 어느날 네덜란드 파트너 회사에서 스웨덴 회사를 방문해서 회의가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그녀가 하는 영어를 듣더니, 나중에 너 영어 되게 잘한다면서 뭐랄까 그녀를 보는 눈이 달라진 거 같다고 했다. 그녀의 언어의 부족으로 인한 대화전개상의 매끄럽지 못함을 그녀의 수준으로 간주했음이리라.

동료들도 내가 이렇게 편하고 매끄럽게 하고 싶은 말들을 세세한 예시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들어가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놀라웠던 것 같다. 아무리 내 덴마크어가 늘었다 한 들 영어로 표현하는 미묘한 뉘앙스를 아직 다 덴마크어로 전달할 수 없고, 꼭 해야하는 말을 클리어하게 표현하는 데 가장 큰 초점을 두는 덴마크어가 영어와 같을 수는 없다.

거기다가 아마 간혹은 덴마크어로 하다가 생각안나는 단어를 갖고 버벅대면, 영어로 말하라고 하는데, 머리가 덴마크어 모드인 상황에는 아는 영어단어도 안나올 때가 있었다. 그 말을 하려면 아예 처음부터 영어로 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 말이다. 아마 그래서 그랬을까? 내 영어도 덴마크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글로 써서 일하는 건 해도 말로 유려하게 표현하며 일하는 건 한계가 있다 생각했을 수도 있고 영어도 그와 마찬가지일거라는 짐작을 했을 수도 있다.

사실 덴마크어를 일상생활에서 열심히 쓰는 과정 속에 도저히 의사 전달이 원하는 만큼 안이뤄져서 상대가 나를 바보로 볼까 싶은 상황들에 자주 맞부딪히곤 했다. 그래서 미안한데 그냥 영어로 하겠다고 말을 바꾸고 나면 상대가 짜증섞인 표정을 갑자기 풀면서 놀랍고 좋은 표정으로 바꾸는 경우를 보면 기분도 상하기도 하고, 참 언어 배우기 어렵다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배워야지만 늘지 이런 마음으로 꾸준히 덴마크어를 쓰고 살았는데, 일터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고 나니 좀 웃기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옛날같았으면 기분나빴을 거 같은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자기들도 내가 멍청이가 아니라는 건 알았을 거고, 뭐 사실 그들이 혹여나 나를 멍청하다 생각하더라도 내가 내일만 잘 처리하면 되니까 상관이 없다 싶기도 하고. 그리고 다 마음 좋은 동료들이니까. 그리고 일부러 나를 얕보려고 해서 그렇게 반응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내가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핸디캡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공정하게 평가하려 노력한다 하더래도 자기가 보고 듣는 것에서 편견을 갖게 되는 건 피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옌스왈, 영어를 잘 해도 네 모국어와 같지 않을텐데, 그들이 한국어로 일하는 네 모습은 못보더라도 영어로 일할 때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공감한다. 아주 간혹은 이런 기회처럼 자리가 있을 땐 영어를 쓰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자리를 마킹하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