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 받기

올 1월부로 소급해서 월 100만원 조금 넘는 돈을 덴마크 정부로부터 받게되었다. 고등교육을 받는 덴마크인 또는 일정 조건에 부합하는 EU시민권자, 덴마크인과 결혼을 통해 덴마크시민권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은 SU를 받을 수 있다.

교육보조금(uddannelsesstøtte)라고 불리는 이 월급같은 돈은 인적자원이 중요한 개방형 소형경제 국가로서 고등교육을 받는 인력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돈이다. 이것 때문에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뭐라도 다른 일을 하면 이 이상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돈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 뿐이고, 실제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파트타임 직장을 갖는게 일반적이다.

나야 옌스 살던 곳에 숟가락 얹고 사는 상황이고 모아둔 돈이 있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쩌면 그래서 이 추가적인 백만원의 돈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래저래 좀 꼬인 문제로 행정절차를 제 때 밟지 못해 초반 4개월은 돈을 날리나 했는데, 그런 것 없이 다 챙겨주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 이야기하자마자 옌스는 그나마 내가 이돈을 받으니 조금 덜 속이 쓰리긴 하지만,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지 아느냐면서 나중에 세금 내봐야 그 마음 이해할거라 한다.

그 마음 이해도 가고, 앞으로는 더 이해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 사회가 이렇게 전반적인 행복수준이 유지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안정된 치안이 이런 시스템과 신뢰 아래서 생긴 것이라는 걸 생각할 땐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말 별것 없는 한국 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자소득(정말 달에 몇백원 할 것 같은…)을 세무신고때 해야하는 번거로움은 불평하고 싶지만 말이다. 아마 여기서 추가로 월에 몇 크로나 내야 할 것 같다. 이거 불평하니까, 옌스가 여기서 받는 정부지원을 생각하면 그거 불평하면 안된다고 한다. 께겡…

내 나라에서도 못받던 국가보조금을 여기서 받다니. 참 오래살고 볼 일이다.

인생의 여러가지 변화

아침 해가 6시면 중천에 뜬 것 마냥 쨍한 요즘 6시 이전에 이미 눈이 떠지곤 한다. 그래서 이번주 화요일, 자명종이 울려서야 눈이 떠지고, 침대에서 비비적거리며 잘 못일어나겠던 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야에 가까워지면서 잠을 설치지 않고 7시간을 내리 잔게 오랫만이었기 때문이다.

뭘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공공메일 온 것을 확인하려고 로그인을 하니 시스템에 내 이름이 바뀌어있었다. 처음에 외교단 비자로 와서 다른 비자로 바꾸니, 비자 바꾸는 문제부터, 결혼식, 이름 바꾸는 것까지 여러모로 예외적인 케이스에 해당되어 속을 많이 썩었는데 그래도 이름 바꾸는 문제는 크게 오래걸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큰 일이다. 아무리 한국에 등록된 내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나의 정체성에 큰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면서의 편의(구직 활동 중의 편의 등)를 위해 성을 추가하고 내 본래성을 미들네임으로 돌렸다. 그래도 미들네임으로 내 성을 유지했으니까 큰 변화는 아니야 라고 스스로에게 항변을 했지만, 간혹 미들네임을 기재할 공간이 없는 서류 제출시나 신청서 작성시 내 본래 성이 자리를 잃어버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니 당혹스러운 느낌도 갖게 되었다.

이런 느낌은 남편 성을 따라가지 않는 우리네 문화 때문일 것이다. 여기선 성을 바꾸는 거나 한 가족의 형제 자매가 아버지나 어머니, 조부모 등의 성을 따로 갖는 경우가 흔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에게 성은 한번 정해지면 그대로 평생동안 간직하는 것이기에 그 무게와 의미가 남다른 모양이다. 그래서 왠지 부모님이 서운해하실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죄송함도 버무려져서 내가 왜 이 성을 택하는지를 애써 변명하게된다. 묻는 사람이 없어도.

이런 복잡한 기분은 둘째로 치고, 계획하던 행정적 절차가 처리되어 홀가분해진 마음에 옌스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나니 어찌나 기뻐하던지. 이 곳에서도 역시 성이 갖는 의미가 있음을, 그리고 자기의 성을 따르기로 결정한 그 무게가 느껴짐을 알고 묘한 안도감도 들었다. 배우자가 내 결정의 무게를 알아준다는 사실은 나에겐 중요한 문제니까.

무척이나 덥던 날이었다. 친구와 헤어지고나서 안되겠다 싶어 반바지를 두개 사들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많은 사이트에서 말하던 소위 “착상혈”이라는 것을 보고 나서 아침에 느꼈던 그 이상함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인생에 있어 나중에 “그게 그래서였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작은 순간들이 있지만 그 당시에 모르는 것처럼, 그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테스터기를 두세트 사들고 와서 바로 확인해보았다. 희미한 줄이 보였다. 역시…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설마 한번에 이렇게 아기가 찾아와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놀라움이 컸다. 물론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 막 엄청 기쁘다기 보다는 얼떨떨하고 정말 이게 확실한가 싶은 마음에 놀라움이 가장 지배적인 기분이었다. 예정일이 논문 학기 전 마지막 시험의 바로 다음주라 한달 미룰까 했었는데 그냥 뭐 설마 한번에 되겠느냐 싶어 시작한 임신계획이 예상을 뒤엎고 임신으로 결론이 나서 깜짝 놀랐다. 대부분 6개월 정도 계획하고 애를 갖는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학기 중에 애를 나면 골치가 아파진다는 생각에 그 전엔 임신을 일찍 하나 싶어 걱정을 했는데, 바로 이달부터는 고령임신이라 안생기면 어쩌나 하고 바로 한달을 간격으로 고민의 주제가 180도 뒤바뀐 것이 우습다. 아무튼 그 많은 걱정과 달리 계획대로 움직여준 아기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오늘부로 두달째에 들어선 거라 아직은 불안정한 시기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를 잃는 일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면 그건 우리가 감당할 일이니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불운을 대비해 기쁨을 기념하고 즐기지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에게도 알리고…

옌스가 꽃을 한다발 사들고 집에 왔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내가 임신한 걸 알았나? 이 꽃은 뭐지? 그냥 사온건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빨간 장미. 매번 이러저러한 꽃다발을 사오다가 한번 친구가 거의 빨간색에 가까운 진한 분홍의 장미를 내게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가 빨간 장미 꽃다발을 먼저 선물할 기회를 빼앗겼다며 서운해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건 아주 진한 분홍장미야~ 빨갛지는 않네.”라고 귀띔해줬더니 그 기회가 남았을 때 빨간 장미를 사온 것이었다.

“왠 꽃이야?” 하며 기뻐하는 나에게 “여러모로 군거가족의 일원이 된 것을 다시한번 축하해!”라며 꽃을 내밀었다. 임신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지. 나도 몰랐는데.

“또 소식이 하나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니 “뭔데?”하며 평이하게 물어본다. 불쑥 테스터기를 내밀었더니 이게 무슨 뜻이냔다. “글쎄?”라는 답에 “임신????!!!”하면서 어찌나 놀래던지. 애가 떨어지겠다는 표현은 바로 이 순간에 쓸 것이다.

이 날 저녁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이미 우리는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지만, 이 아이가 생김으로써 우리는 다른 의미로 평생에 끊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는거야.”라는 말을 불쑥 했다. 항상 장난스럽고 로맨틱하지 않은 나에게 그가 있기에 로맨틱한 감성이 사라질 수가 없는 모양이다.

바로 몸조리 잘하고 몸조심하라는 우리 가족과 하던 운동들 그대로 계속 하고 지내던 대로 계속 지내고 술담배만 안하면 된다(술도 간혹 작은 글라스 한잔은 되는 것으로 덴마크 보건당국이 권고사항을 바꿨다며..)는 시댁 가족들. (하루 한잔 커피는 당연히 오케이!) 의사인 시누이는 애들이나 짐을 싣고 다닐 수 있는 아주 무거운 크리스챠니아 자전거에 애들 둘을 태우고 셋째 임신기간 중 내내 데리고 다니고, 출산 때 조차도 자전거 타고 갔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활동이 건강한 임신과 출산에 도움이 된다면서. 승마 등 몇가지 운동만 안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만 아니면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중에 생기는 유산은 그냥 배아의 유전적 결함에 따른 것이지 그 생활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면서 전혀 생활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강조를 한다.

물론 이 나라에도 다양한 가족들이 있기에 순수 유기농 제품만 쓰고 입고 먹는다든지 하며 여러모로 조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운동에 대해선 다 비슷하게 강조하는 것 같다.

굳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겠다고 생각해도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나는 그냥 학교 공부하던대로, 운동 하던대로 하면서 살기로 했다.

이제 이번 여름이 애가 없는 마지막 여름이라며, 이 여름을 불사르겠다는 남편과 벌써 이름을 지어보겠다고 이름 책을 사들고 우리 둘은 이 변화의 시기를 벌써부터 즐기고 있다. 입덧만 너무 심하지 않기를 빌며 이 변화의 순간을 아주 잘 즐겨야겠다.

봄의 시작

내 오래된 DSLR 카메라는 배터리의 수명으로 인해 오랫동안 장롱안에 쳐박혀 있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오래된 모델의 배터리를 취급하지 않는 탓에 어떻게 해야하나 하다가 삼성 미러리스 카메라로 갈아탔다. 그렇지만 캐논 카메라의 색감 그리고 뷰파인더로 바라보는 촬영시 감각이 그리워 아마존을 뒤져본 결과 독일 아마존에서 원하는 배터리를 받아볼 수 있었다.

사월 마지막 주 막판 사흘은 춥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으며 눈까지 내리는 최악의 날씨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오월로 넘어오면서 날씨는 급격히 변해서 오늘은 20도에 육박하는 최고의 봄날을 선사하였다.

매일 사진은 엄청 찍으면서도 정리를 하지 않는게 아쉬웠는 바, 그냥 그 날 그 날의 기록으로 공유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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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탈출 단상

시험이 끝났다. 이번은 그 어느 때보다 적정 페이스를 잘 유지하면서 공부했던 시험기간이었다. 집안을 딱히 어지르는 것도 아니고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하되 엉덩이 붙잡아 앉혀두고 꾸준히 공부했던 시기. 이번 블록이 시작되고 5주간은 쉬는 시간도 별로 없이 무지막지한 리딩리스트를 클리어해가며 수업을 들었는데, 그게 역화가 되어 돌아와 부활절 휴가를 한주 앞두고 번아웃상태에 돌입했다. 집안일도 대충대충…의욕 저하 상태에 시험은 서서히 다가오고 부활절 휴가는 잘 즐길 수 있으려나 걱정하며 짐에 무거운 책들만 괜히 바리바리 싸들고 떠났었다. 비행기 회항으로 휴가 일정이 다 흐트러지니 더더욱 의욕상실…

한국에서 짧은 72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남은 2주간의 수업은 그냥 수업에 빠지지 않고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리딩은 거의 갖다 버리다시피했다. 수업은 열심히 들었지만, 그게 다.  번아웃이라는 건 모르는 듯한 옌스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고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에만 주력했다. 그런 때일수록 너무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더 바닥으로 상태가 떨어지니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상황을 인정하고 대신 뭘 하든간에 최소한만이라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은 얼마나 서핑을 해대는지. 뭔가를 하지 않는 시간이면 핸드폰에서 이것저것 읽어대곤 했다. 깊은 사고를 요하지 않는 많은 소비형 컨텐츠들을 중심으로. 내 페이스북 뉴스피드는 말그래도 뉴스 피드에 가까워서 시간 보내며 읽기가 참 좋다. 문제는 이런 컨텐츠 소비가 너무 많아진 나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혐오감을 감내하면서도 내가 당장 해야 하는 것 (리딩 등)을 미루고 더이상 읽을 것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계속 뉴스거리를 찾아 읽고있는 내가 더 어이가 없었다. 인터넷 중독을 해결하는 방법을 읽을만큼 내가 살짝 걱정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겨울의 끝자락 봄이 오기 직전 해를 갈구하는 몸이 기력을 다해 그런거였나 싶기도 하다.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감기까지 걸리고 나니 정말 몸과 마음이 다 바닥을 치더라. 날이 밝아지고, 나무에 순이 오르고, 잔디밭에는 봄꽃이 피고, 새들이 울고, 어느새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날이 밝아져 눈이 뜨이는 시기가 되자 마치 마술처럼 그간 중독자처럼 관심이 가던 뉴스거리들도 더이상 흥미롭지 않아졌으며 공부에 흥미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 꼭 이렇게 시험이 코앞에 다가와서야…

다행히 초반에 엄청 열심히 해둔 가락과 함께 수업은 빼먹지 않고 (주당 22시간) 가서 열심히 듣고 참여해둔 덕에 시험 공부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늦게 다시 시작한 공부라 더 잘해야 한다는 욕심에 남들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라 그런지, 내가 공부한 것이 충분하긴 한건지, 좋은 성적이 나올지, 그런 생각이 자꾸 머리를 채우니 괜한 조급한 마음과 스트레스가 함께 찾아오더라. 그 마음 다잡아 내려, 늦게라도 공부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고 내가 잘해야 한다는 자만심 내려놓고 한자라도 더 읽자하는 마음으로 애써 공부를 했다.

너무 읽기 싫은 마지막 순간엔 머리에 안들어와도 소리내서 조금 읽다보면 한 한페이지 읽어내려갈 때쯤 되면 긴장감이 조금 안정되면서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일상엔 가족, 학교, 덴마크어, 몇안되는 여기 친구 이게 다가 되어버렸다. 생각도 단순해졌고, 어느정도 여기 생활에 적응이 되어버려 차이점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내가 여기에 맞춰 변해버렸다는 것이겠지. 오히려 한국가면 놀라게되니, 반대로 사람들이 나를 보면 다르게 느낄 것 같다. 소비지향적 삶을 벗어던진 것도 그렇고.

쓸 거리의 빈곤이 느껴진다는 데에서 뭔가 마음이 묵직했었는데, 이젠 블로그는 좀 쉴까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덜 한다고 부담감 느낄 이유는 없지. 마지막 블록에 집중하고 여름 휴가를 기쁘게 맞이해볼까 한다. 화이팅!

소논문 프로젝트 시작

다음 블록에는 그간 배운 내용을 이용해 20페이지에 해당하는 소논문을 작성하는 수업이 있다. 수업은 8주간 진행되는데 전체 학생이 발표하고 디펜스 하는데 2주가 걸리기에 실제 작성은 6주간에 걸쳐 이뤄진다. 향후 논문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바, 써볼 수 있는 주제를 찾지 말고 자기가 쓰고 싶은 주제를 찾아오라고 한다.
 
난 재생에너지(핵발전 등 신에너지는 제외)에 관심이 있었지만 막연한 관심 뿐이었고, 이를 경제학적으로 풀만한 주제에는 어떤 것이 있을 지는 보다 막막했다. 지난 주말 옌스와 함께 카페에 가 앉아 뭘 쓰고 싶은지를 컴퓨터를 앞에 놓고 생각해보았다.
 
그간 공부하면서 관심이 있었던 주제는 뭐가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재생에너지가 충분히 잘 보급됨으로써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규제와 인센티브 도입의 정책적 도구에 관심이 갔다. 이를 토대로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위한 최적 정책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어떤지, 얼마나 주제를 줄이는게 좋을 지 등을 상의해보고 싶다고 교수에게 문의했다.
 
지도교수와 약속한 시간에 찾아가지 마침 재생에너지 정책을 전공으로 하는 다른 교수님과도 동석을 하게 되어 추가적인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덴마크의 2050년 화석연료 제로 정책에 대한 소논문을 쓰기로 결정했다.
 
덴마크는 205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완전히 없애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EU의 정책 목표보다 훨씬 야심찬 계획이다. 해당 정책의 목표와 경제학적 이점과 불리를 수학적 모델을 포함하지 않고 푸는 게 목표다. 기존에 있는 수리적 모델을 갖고 써내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프로젝트라 상당히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교수가 한마디 했다. 그러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추천하는 프로젝트니 열심히 해보라며, 대신 어려운 프로젝트이니 만큼 풀 서포트를 해주겠다고 했다. 
 
마침 이달 초 덴마크 환경경제위원회가 연도별로 발표하는 정책제안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덴마크의 2050 Fossilfri 정책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영문 요약이 있긴 하지만, 덴마크어로 되어 있는 본보고서를 꼭 읽어보기를 추천받았다. 소설이나 신문보다는 아무래도 보고서가 어휘면에서 반복되는게 많으니 내용이 어려워도 읽어낼 수 있을 거라는 있을 거라는 옌스의 말을 믿어보며 천천히 준비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생각만해도 머리가 저릿저릿하지만, 앞으로 계속 마주할 덴마크어 보고서를 조금 미리 마주한다고 생각하고 읽어보련다.
의외로 주제가 빨리 정해져서 정말 다행이다. 중간중간 어려움도 있겠지만, 불가능할 건 없다. 덴마크어 보고서가 한 50페이지정도 되는데, 옌스가 두페이지까지 어휘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도 해주었으니 열심히 해봐야지.

농업정책 패키지가 불러온 덴마크 정국 파장

덴마크 정치판이 새로 발표된 농업정책 패키지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환경식품부에서 발표한 농업정책 패키지가 논란의 주인공이다. 주무장관인 Eva Kjer Hansen(에바 키어 핸센, 소속정당 Venstre)은 불신임 투표의 대상이 될 지 모르는 상태이며, Venstre의 총수이자 국무총리인 Lars Løkke Rasmussen은 중요 정치인인 Eva를 불신임하느니 총선을 다시 하겠다고 나서면서 온나라가 시끄럽다.

참고 링크 덴마크 정당의 정치성향 스펙트럼예상과 다른 결과로 전국을 흔든 2015년 덴마크 총선 결과

논란의 배경은 이렇다. Venstre가 집권한 후 환경정책이 많이 퇴보할 것이라는 우려는 환경관련 학계에 이미 널리 퍼져있었다.  전통적으로 농민이라는 풀뿌리에 기반한 정당 Venstre는 농업 및 관련 산업계로부터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었고, 공약으로 농업진흥책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업과 환경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에 있기에, 농업진흥책은 환경규제완화의 성격을 띌 수 밖에 없다.

이 정책은 비료사용상한량을 현재보다 20% 증가, 하천으로부터 9m 간격으로 설정되어 있던 농업완충지대(Randzoner)를 2m로 축소, 6만 핵타르에 해당하는 간작물 대상지 규제를 철폐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다. 농업진흥책이 추진될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정책은 예상보다도 더욱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정책 근거로 삼은 자체용역 연구결과도 같이 발표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정책 추진이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고 농업 생산성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그간 자연과학계에서 정책예상안을 토대로 줄기차게 제기해온 문제의식과는 정반대의 결과이다. 학계가 지적해온 문제는 다음과 같다. 비료사용을 현재보다 증가시킬 경우 질소 및 인이 토양에서 용탈하고 인근 하천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게 된다. 하천, 호수, 피오르드, 인근 해역 등 각종 수체의 부영양화가 가속되고, 녹조현상을 유발해 용존산소가 부족해지고 심할 경우 어족자원이 폐사하는 등의 문제도 심화된다. 현재 덴마크가 준수하도록 되어있는 EU의 Water Framework Directive의 수자원 품질개선 목표에서도 오히려 퇴보하게된다. 농업완충지대를 2m로 축소할 경우 사실상 없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토양에서 용탈하는 질소, 인 등이 인근 하천과 호수, 늪지대 등으로 쉽게 유입될 것이다. 간작물 규제 철폐 또한 토양 영양분의 용탈로 인한 지하수 오염문제를 야기하며, 땅이 비는기간 중 광합성을 통한 CO2 배출 감축 가능성을 차단함과 동시에 알비도(태양 단파복사광선의 반사율)을 낮춰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는데 기여한다. 그리고 이는 아주 단편적인 영향만을 언급한 것이며 이러한 단편적인 영향이 종다양성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등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경우 더욱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는 덴마크가 지난 8년간 추진해온 정책을 반대로 돌리는 행위이다.

학계는 정부가 근거로 삼은 결과가 그간 관련연구를 수행해온 학계 등에서 제출한 자료와 상반된 결과를 낸다는데 주목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등 로비활동을 벌였다. 해당 근거자료를 분석하니, 해당 자료가 정부 정책 추진을 유리하게 하도록 자료를 부적절하게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당초 현 여당진영인 Blå blok 정당은 모두 의견을 조율해 해당 정책을 지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중 하나인 Det Konservative Folkeparti (6석 확보)가 근거수치에 대한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해당 장관인 Eva Kjer에게 해당 수치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돌연 해당 법안 표결안 당일 해당 장관과 수치 모두 신뢰할 수 없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이 의견을 낼 수 있는 기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표결 당일에 이렇게 반대의견을 표시한 건 아주 극적이고 의아한 상황이다. 물론 관련 학계 및 환경론자들은 어찌되었든 반기고 있긴 하지만.)

야당진영인 Rød blok이 이미 이와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상황에 Konservative 정당이 돌아섰다는 것은 해당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며, 경질을 하지 않을 경우 불신임 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Eva Kjer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 농부와 결혼한 여성으로 농업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고, 농업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하고 있다. 농업계를 중요한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Venstre 입장에서는 그녀를 경질하는 것은 농업계를 등지는 것과 같은 선택이거니와 Eva Kjer가 그간 Lars Løkke 총리를 여러모로 어려운 순간 많이 도와왔기 때문에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안이다. 따라서 총리는 해당 장관 경질을 해야한다면 내각을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하는 것도 불사하겠다며 강경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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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Berlingske Facebook (링크) “네 놈들은 그녀를 데려가지 못한다! by Løkke”

덴마크 정치에서 “내가 멍청해서 수치를 잘 이해 못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용서의 대상으로 고려될 수 있지만, 신뢰를 깨는 행위는 용서받기 어렵다. 그래서 Konservative 정당이 “우리는 그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표현은 “그렇든지 말든지”하고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관련 뉴스 팔로잉하기: http://www.dr.dk/nyheder/tema/eva-kjer-hansen-sagen

덴마크에서는 신뢰가 일반 사회 뿐 아니라 정치의 가장 중요한 축이 된다는 것을 이번 사태에서 또다시 느낄 수 있다. 물론 반대로 이렇게 숫자를 조작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통해 이 사회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고 말이다.

우리 국회도 과거처럼 최루가스가 터지고 육탄전이 벌어지는 부끄러운 모습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이 곳의 정치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또한번 느낀다. 그리고 우리의 (참담한) 4대강 사태를 보며 환경 정책이 가야할 길이 얼마나 먼지,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이 투명하게 바뀌려면 얼마나 힘이 들지 등 또한 느낀다.

덴마크 명절 단상

덴마크에 와서 보니 가족 모임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잦다. 그리고 모였다 하면 밖에서 외식하는 거 없이 대부분 집에서 모여 식사를 하고, 점심, 저녁까지 두끼는 기본이다. 모이는 장소는 자녀의 집에 처가, 시가 식구가 함께 모이는 경우부터 처가나 시가로 때에 따라 바꿔가며 방문한다. 딱히 정해져있는 건 없다. 음식도 나눠서 해가고 뒷정리도 다 같이 한다. 중요한 차이점은 남녀 모두 일을 한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남자가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최소한 우리 시댁은 그렇다.
 
손님을 집에서 치르는 일이 잦은데, 서로 오고가며 그리 하다보니 조금씩 손님맞이가 익숙해지고 좋아진다. 뒤늦게 치우는 일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부부가 같이 정리하면서 그날의 저녁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일도 즐거움의 일부다.
 
불만은 한쪽이 일을 부담할 때 생긴다. 덴마크의 이런 남녀 평등이 찾아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의 참정권 확보가 불과 100년전이고, 1950년대를 전후로 해서야 여성의 경제참여 비중이 늘어나고 여성의 역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을 시점으로 한 변화가 지금의 사회 모습의 초석이 되었으니 꽤나 최근의 일이다.
 
우리가 덴마크에 비해 민주화나 근대에 들어선 발전의 시작이 늦기는 했으나, 그 시간의 격차가 아주 큰 것은 아니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양성간의 차별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전통의 이름으로 이러한 차별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도 한다. 
대가족간의 모임이 예전같지 않고 갈수록 핵가족 되어가는 현상이 아쉽다. 현대화가 교류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텐데. 우리 명절 문화가 변화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아주 많이 부족하다.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떼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남자들이 조금 돕는 정도가 아니라 획기적으로 모두가 함께 일하고 먹고 즐기는 기회가 될 때가 충분히 되었다. 불만이 사라지면 교류에서 찾을 수 있는 과실이 눈에 보인다.
집안일을 추가로 더 하더라도 이곳의 명절은 즐거운 날이 되었다. 서로 위해주는 가족들을 만나게 되고, 나 또한 그 일원이 된다는 것, 그리고 미래에 내 아이들에게도 더 큰 가족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피로 섞인 내 가족이 아니기에 그와 같을 수 없다하더라도 그건 당연하다. 내가 그들에게 가족과 똑같은 애정을 부어주기엔 우리가 아는 시간이 아직 짧고 아직 더 가까워질 거리가 많이 남았기에 말이다.
물리적인 거리와 언어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의 내 가족과 옌스가 내가 이곳에서 동화되는 만큼 가까워지지 못함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문제일 뿐, 양쪽의 문화를 모두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더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멀지 않은 시기에 나도 우리의 2세를 가질 수 있고, 그 2세에게 두개의 다른 문화와 가족속에서 자랄 수 있게 해주길 바래본다.

첫 학기를 무사히 잘 마치고

마지막 남은 과목의 성적도 확인했다. 12점. A를 받았다고 이렇게 기뻐한 적은 학부때에도 없었는데. 학점 인플레가 없는 곳이라 A의 의미가 달라서 그런 것인가? 그런 게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공부에 대한 절박함이 그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라 그런 것 같다.

학부때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고등학교 때 있었던 외환위기와 그에 따른 IMF 구제금융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외환위기를 야기한 최전방에 있었던 종금업계에서 근무하셨기에 많은 일들이 불거지기 전 미리부터 불길함의 전조를 건너 들을 수 있었고, 왜 그런 일이 생긴 것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공부에는 별로 필요도 없었던 매일경제신문을 매일 읽었고, 경제기사 읽는법이라는 책도 사서 읽었다.

재미있긴 했는데, 막상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함에 있어서는 절박함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 가면 뭔가 삶도 더 많이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공부할 게 생각보다 많았고, 앞으로의 취직도 걱정해야 했기에 뭐하나 게을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해야되서 했고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에 대한 갈증 자체는 없었다.

학부초반때 경제학 공부가 재미있긴 했는데, 그 재미가 학년이 올라갈 수록 덜해졌다. 공부의 방향성 설정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남들 듣는 수업 찾아 듣다보니 왜 그 공부를 하는지 잘 모르는 채로 부유했다. 이것을 갖고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경영학 이중전공을 했고, 실생활에 보다 적용하기 쉬운 경영학에 보다 큰 관심을 쏟으며 공부하고, 졸업했다.

회사생활을 한지 12년만에 모든 것을 관두고 다시 공부의 삶으로 돌아왔는데,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회사다니는 중간에 한국에서 석사를 한번 했지만, 졸업시험과 경제학에세이라는 것으로 논문을 대체한 나는 뭔가 가라로 석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학부 생활을 다시 한번 한 것 같은 느낌. 회사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한 것이라 한학기 한학기 떼우기 바빴던 시기였다. 다만 그 때 차이가 있다면 그간 나를 괴롭혔던 경제수학과 통계학과 한층 가까워졌던 시기였다는 것과, 내가 모르는 것을 이해하고 그 모르는 것을 질문으로 푸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만은 않다는 걸 회사생활을 통해 배우기도 했고, 내가 모르면 남들도 모를 수 있지 라는 생각으로 질문할 수 있는 배짱도 생겼다. 그때의 그 경험이 이번 석사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유학경험이 없었고, 영어로 하는 세미나에 앉아있으면 장시간 앉아서 집중해 듣는다는게 피곤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수업을 영어로 하고, 읽고, 시험을 보는 것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꽤나 했다. 실제로 계량경제학은 그 컨셉 자체가 어려웠고, 내가 약했던 과목이었기에 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몇주가 지나면서 조금씩 수월해졌고, 자신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출문제를 입수해서 같이 모여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제한된 시간 자원속에 나는 혼자 개념 공부에 집중하기로 했다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C. 예상치 못했던 황망한 결과였기에 받고 우울해했다. 여기는 성적 분포표가 인터넷으로 공개되는데, 그게 평균 이상임에 놀랐으며, 그걸 알고도 C라는 글자에 우울해하는 나에게도 놀랐다. 옌스는 평균 이상을 받고 우울해하는 것은 자만이라고 이야기하기에 마음을 애써 추스르긴 했지만 말이다.

이미 지난번 블록때도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에 딱히 이번 블록이라고 더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두과목 모두 A를 받았다. 계량경제학에서 받은 C에 대한 설움에 보상이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다.

오래간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새로운 지식이 머리로 들어오는 과정이 놀랍게도 재미있다. 물론 딴짓을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날도 있지만, 내가 워낙에 한결같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간의 삶의 시간에서(고등학교 이후…) 지금이 가장 자발적이면서도 꾸준히 공부의 길을 걷고 있는 때라는 것을 자신한다.

학부를 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어린 학생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같이 자원경제학 시험을 준비하는 도중 자신들과 나는 공부의 동기부여가 다르다면서, 자기들은 그냥 계속 하던 것을 하는 거라 지겨울 때도 있다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첫학기는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그 과정도 즐겼고, 좋은 동기들도 얻었으며, 결과도 좋았다. 전체 석사과정 중 다음 학기에 가장 중요한 수업들이 진행된다. 1학기에 배운 내용을 갖고 실제 학계를 나가면 쓰게 될 내용들을 공부하게 되기에 가장 큰 도전이 될 과목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다 보니 삶에서 공부 또는 배움이라는 것에서 멀어지지 않는 길을 계속 걷게 되었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석사는 안할거라고, 경제학은 더이상 안할거라고 했던 내가 석사를 두번이나 하게 될 줄은, 또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박사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그래서 절대…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하는가 보다.

한주간의 방학이 이제 거의 끝나간다. 다음주면 새학기가 또 시작이 되는구나. 긴장의 끈을 놓칠 새 없이 다시 달려야 한다는게 부담이 되긴 하지만, 설렘 또한 나를 반긴다. 다시 한번 잘 달려봐야지.

덴마크 잡설 1

  1. 바람이 정말 많이 분다. 거센 바람이 거의 항상 분다. 과거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매미가 초속 30m의 바람을 동반했는데, 여기선 초속 20m로 바람이 부는 날이 흔하다.
  2. 겨울이 길다. 멕시코만류(난류)의 영향으로 본격적 겨울은 12월부터 시작되서 4월까지 간다.
  3. 비가 많이 온다. 강수량 자체가 많은 것을 아니지만 추적추적 자주 온다. 특히 가을부터 봄까진 흐린 날이 대부분이라 파란 하늘을 보면 감사하게 된다.
  4. 기온으로는 추워봐야 영하 5~10도로 크게 춥지 않지만 거기에 거센 바람과 습한 공기가 결합하면 참 춥다.
  5. 겨울엔 낮이 정말 짧지만 반대로 여름엔 낮이 정말 길다. 흑주, 백야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그에 준한다. 겨울엔 해떠있는 시간이 5시간 정도에 불과하고, 해도 매우 낮게 떠서 하루 종일 해질녘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6. 여름은 짧지만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멕시코 만류가 여름의 기운을 실어다 주기까지 시간이 걸려 여름 또한 7월 정도로 늦게 시작되지만, 9월정도까지 지속되는 여름은 참 아름답다. 기후가 안좋은 해에는 여름이 실종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여름이 실종된다는 것은 여름에도 최고기온 15도 내외로 비가 추적추적내리는 음습한 날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 촛불을 많이 켠다. 1인당 초 사용량 기준 세계 1위다.
  8. Hygge를 좋아한다. 겨울이 길고, 음습하고, 밤이 길지만, 집에서 촛불을 켜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나 차, 와인을 마시면 어찌나 아늑한지. 그 분위기를 일컬어 “Hyggelig”하다고 한다.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을 표현하는 동사로 “At hygge sig”가 있다. 다른 나라 말로 번역이 정확히 안되는 단어다.
  9. 커피를 정말 많이 마신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 5위안에 든다. 그러나 대형 커피 체인은 장사가 별로 잘 안된다. 독립 커피점이 잘 되는 나라다. 물론 집에서도 많이 마시지만.
  10. 코펜하겐 사람들은 날씬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날씬하지만, 코펜하겐 사람들은 더 날씬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도시가 운동에 꽂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거리를 누비며 뛰는 사람도 많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철인을 보유한 것처럼 강인한 체력을 소유하는 것을 좋게 생각해서 그런 게 더 큰 것 같다. 날씬하고 건강한게 트렌디한 것이라. 지방으로 나가면 비만 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맥주와 소세시, 돼지를 즐겨먹는 식문화에서 날씬한 사람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11. 다른 코카시안에 비해 얼굴이 조금 더 밋밋하게 생겼다. 눈위 뼈가 도드라지지 않아 눈이 푹 파이지 않았으며, 코도 아주 높거나 크지 않고, 매부리코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하나하나의 얼굴 부위 특성을 따지면 아시아인의 얼굴같은 느낌이 있다. 물론 금발머리가 흔하고, 얼굴 색은 겨울엔 거의 창백하고, 여름엔 구릿빛이 되고(빨개지지 않고 잘 타는 편이라 다른 유럽인들이 부러워한다.)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아시아인같은 느낌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 왈 덴마크인은 잘생긴 편이란다. 처음엔 그닥 공감하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를 갔을 때 공감했다. 덴마크인들이 크다는데 크게 공감하지 않다가 한국 돌아가서 공감한 것과 마찬가지로.
  12. 장을 동네 슈퍼마켓에서 자주 본다. 미국식 대형 슈퍼마켓에서 대량으로 사와 쟁여놓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렇게 사먹으면 신선한 것을 못먹는다는 생각에서 그렇다는데, 그것보다는 장을 자주 볼 수 있을 만큼 여유있게 퇴근을 하거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슈퍼가 충분히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13. 빈번한 외식문화는 한국처럼 발달해있지 않다. 한국에서처럼 매일 사먹으면 가산을 탕진하기 때문이라 그런 것도 있고, 집에 와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할 시간적 여력도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외식도 자주 안해 버릇하니, 예전 한국에 있을 때처럼 이게 먹고 싶다, 저게 먹고 싶다 이런 생각 자체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14. 전국민이 자전거를 탄다. 나이, 성별 따지지 않고 다 탄다. 그래서 보조 바퀴를 단 자전거를 볼 일이 없다. 눈비 가리지 않고 타는 그들을 보면 놀라울 지경이다. 추운 겨울엔 핸들바를 잡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타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15. 생산성이 높다. 일하는 시간이 짧은 대신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짧고, 업무강도가 높다. 점심시간은 최대 30분 정도 쓰고, 이 또한 그냥 자리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는 것으로 대신하는 사람들도 많다.
  16. 무상복지 패키지는 별로 없다. 국민 연금은 많이 내도 적게 내도 받는 액수엔 큰 차이가 없다. 의료의 대부분은 나라에서 지원하지만, 의약품은 개인 부담이 우리보다 크고, 치과진료, 물리치료 등은 개인 부담이 크다. 대학교육을 제외하고는 보육부터 의무교육기간까지 추가로 학교에 내야하는 돈이 꽤 크다. 한국 사립학교 수준이다. 그렇지만 살림이 어려운 가정에게는 나라에서 추가로 보조해준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소득재분배 측면에서 옳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17.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사회 계층의 차이가 있다. Hellerup, Rungsted, Chalottenlund 등지의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갖고 있으며, 못사는 집 애들과는 놀지 못하게 하는 부모들도 있다.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이런저런 경험담을 덴마크인을 통해 듣다보면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다 하는 생각이 든다.
  18. 세금을 많이 낸다. 최고 평균 세율이 55%이다. 따라서 한계세율을 기준으로 보면 60% 넘게 내는 사람들이 있다.
  19. 1인당 가처분 소득은 세후 기준으로는 한국보다 1.5~2배정도 된다. 그러나 물가가 2배 정도 되기에 검소하게 살 수 밖에 없다.
  20. 전반적으로 다 깔끔하게 하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명품을 든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품브랜드가 한국에서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하지 않다.
  21. 녹지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도시 슬럼화 현상을 먼저 관찰한 후 도시계획을 잘 수립해 중심부가 슬럼화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왔으며, 녹지계획이 그와 함께 잘 수립되어 있어 녹화된 도시로 성장했다.
  22. 종교세가 있다. 국교인 루터교가 하나의 정부 부처로 설립되어 있으며, 종교세 1%를 과세한다. 교회에서 탈퇴하면 안내도 된다.
  23. 젊은 사람들은 영어를 참 잘하지만,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많다. 시부모님이나 시누이가 간혹 원하는 영단어를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 괜히 미안해 한다. 영어를 잘 하셔서 오히려 감사할 일인데 말이다.
  24. 덴마크어의 발음 규칙은 복잡하다. 쓰인대로 읽지 않는다고 외국인들이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쓰인대로 읽지 않는게 아니라 알파벳의 결합에 따라 읽히는 규칙이 다른 언어에 비해 복잡한 것 뿐이다. 영어와 독어를 잘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배운다. 동사 변형이 다른 유럽어에 비해 간단한 편이다. 발음 때문에 사람들이 청해에서 어려움을 느껴 언어 자체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지, 언어 자체가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25. 애플 제품을 정말 많이 쓴다. 대학교에서 맥이 아닌 컴퓨터를 찾는게 더 어렵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애플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한다. 아마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해서 그런게 아닐까.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나는 건 많지만, 다음에 이어가기로 하고…

방학 아닌 1주간의 방학을 보내며

시험이 끝나고 한주간 있는 방학. 딱히 쉬기도 어려운 건 방학이 시작하기 무섭게 주어지는 읽을 거리때문이다. 수업 진행 방향을 미세조정하기 위해 수강생들의 수학배경을 확인하기 위한 설문조사도 이때 이뤄진다.

혹여나 해당 학기 이전에 통과하지 못한 시험이 있는 학생들은 이 주간에 재시험을 칠 기회가 주어진다. 재수강이라는 개념은 없어서 해당학기에 쳐야 할 시험에 이전 학기에 통과하지 못한 시험까지 쳐야하니 부담이 더해진다. 수업을 들은지 한참 지나서 재시험을 쳐야 하니 그것도 고통일 것 같은데, 원하는 결과가 안나올 것 같은 수업의 경우 일부러 시험을 안치고 재시험을 노리는 학생들도 꽤나 되는 것 같다.

읽을거리들을 출력하느라 도서관이 나왔더니, 예상한대로 별로 사람이 없다. 낯이 익은 사람이 다른 누구와 대화하며 재시험 치는 것 때문에 너무 걱정된다고 하는 것 보니, 나와있는 사람 중 몇몇은 재시험을 보는 학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갖고있는 강박중 하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중요하지 않아 넘어가도 되는 부분에 사로잡혀 머리를 끙끙 싸매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급박한 프로젝트가 있는 경우 그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를 잘 하지 못하고 도망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많은 고생을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깊이 이해해야 하는지, 과거 다루고 넘어갔던 컨셉이 세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을 경우 얼마나 자세히 복습을 해야하는지 등등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한다. 적당히 넘어가는 포인트를 찾는 것은 아마도 평생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초반에 너무 열정을 투여할 경우 중간에 지쳐서 용두사미처럼 헤이해지기 좋기에 완급 조절은 필수다. 우리 단과대학처럼 제대로된 방학이 여름밖에 없는 경우는 더욱 그렇고, 주당 백페이지가 훌쩍 넘는 리딩이 주어지는 수업은 더욱 그렇다. 다 깊이있게 이해하고 넘어가려 해서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 적당히 선택을 해야한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는 이런 식의 학습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경험으로부터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런 문제가 없는데 – 간혹 받는 실력 향상에 대한 스트레스 빼고 – 일반 학습은 그게 잘 안된다.

긴 학기가 끝나고 쉬어야 하는데, 별로 쉬지 못하고 새로운 학기에 다시 진입하게되니 아쉽다. 그래도 오개월만 버티면 두달의 방학이 기다리고 있고, 그보다 먼저 두달만 버티면 한국에 잠시 다녀오게 되니 시간이 잘 갈 것 같다. 물론 한국 방문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시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