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뉴스 헤드라인 – 2016/09/27

Samuelsen får advarsel af virksomhedsledere: »Ultimative krav er en skandale i et demokratisk samfund«

사뮤엘슨, 산업계로부터 경고를 받다 “최후통첩식의 요구조건은 민주사회에 있어 스캔들감이다.”

기사 링크: http://www.politiko.dk/nyheder/samuelsen-faar-advarsel-af-virksomhedsledere-ultimative-krav-er-en-skandale- (Berlingske)

Liberal Alliance (자유연합당)은 현 정권을 잡고 있는 Venstre 정당이 제시한 2025년 경제정책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핵심안은 최고 과표구간의 한계세율을 5% 인하하는 것으로, 이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현 정부를 지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당초 원안은 보다 파격적인 것으로 약 7.5%를 인하하는 것을 포함해 각종 세금 인하정책을 포함하고 있으나, 이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을 5%로 그었다. (자유연합당의 정책제안 원안: http://www.b.dk/kronikker/anders-samuelsen-her-er-las-bud-paa-et-bedre-danmark)

덴마크 미래 경제정책의 향방을 정하는 중요 중장기 정책안이 부결될 경우, 현 Venstre 정권은 향후 정책 추진에 대한 동력을 상실해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전체 득표수는 청색블록이 약간 더 많아 청색블록이 정권을 잡았지만, 최대의석수를 확보한 정당은 적색블록에 있었기에, 조기 총선을 실시할 경우 좌파정권이 집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조기 총선 및 정권 교체는 그간 청색블록의 집권을 고대해왔던 산업계에게는 악몽과 같은 일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덴마크의 전경련과 같은 Dansk Industri (DI)는 자유연합당 총수인 사뮤엘슨에게 이러한 최후통첩은 용납될 수 없다며, 덴마크 산업계의 미래를 혼돈속으로 내몰지 말라고 경고했다.

사뮤엘슨은 이와 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는 단지 협상을 위해 내건 미끼로 건 조건이 아니라고, 이는 타협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맞섰다. 라스무센 총리는 협상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확정된 것은 없고 각 당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입장에서 약간씩 타협을 해야만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로 더이상의 평은 하지 않고 있다.

덴마크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어 원래 시끄러운 정치판이 눈에 띄는 것인지, 아니면 덴마크 정치가 최근 시끄러워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집권 연정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조금 더 시끄러워질 수 밖에 없긴 한 것 같지만 말이다.

 

관련 블로그 포스트

  1. 예상과 다른 결과로 전국을 흔든 2015년 덴마크 총선 결과
  2. 덴마크 정당의 정치성향 스펙트럼

 

덴마크 뉴스 헤드라인 – 2016/09/26

Elever ville have hævn over efterskolen: »Flæk dem, tak«

학생들이 에프터스콜레(기숙사형 자율고등학교)에 대한 복수를 청했다: “학교를 부숴버려줘. 고마워”.

기사 링크: http://www.b.dk/nationalt/elever-ville-have-haevn-over-efterskolen-flaek-dem-tak (Berlingske)

최근 Fyn섬의 Middelfart에 소재한 한 학교에서 해쉬 흡연이 적발된 10명의 학생을 정학시킨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중 몇명의 학생이 최근 덴마크에서 청소년 폭력 문제로 크게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페이스북 그룹인 Offensimentum에 학교에 대한 복수를 요청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실제 학교 교직원에 대한 인격적 비난이 담긴 메세지가 학교 페이스북 페이지에 쇄도하는 등 해당 그룹의 보복이 시작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학교 폭력의 정도는 심하지 않다해도 이 곳의 학교폭력도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몇 일 전에는 이 그룹에 좋은 데이팅앱을 추천해달라는 글을 올린 여학생을 대상으로 무차별적 언어 폭력이 가해져 이 학생이 사회생활을 기피하는 것을 다룬 기사가 크게 보도된 적 있다. Offensimentum이라는 그룹은 10살부터 10대 후반까지 기가입된 친구의 승인에 의해 가입할 수 있는 폐쇄적 그룹으로 학생의 실명과 누드사진이 공유되는 것부터 해서 사회적 물의를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

왜 사회가 갈 수록 이렇게 무섭게 되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덴마크 뉴스 헤드라인 – 2016/09/25

Større utryghed sender tilliden til politikerne mod bunden

증대된 불안감이 정치권에 대한 신뢰도를 바닥으로 내리꽂고 있다.

기사 링크: http://www.politiko.dk/nyheder/stoerre-utryghed-sender-tilliden-til-politikerne-mod-bunden (Berlingske)

 

신규 경제정책 패키지 발표 이후 이에 대한 국회동의가 과반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전해지면서, 조기 총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라스무센 현 총리는 자리를 내놓을 것으로, 이 경우 차기 당권을 노릴 것으로 유력시되는 정치인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만약 조기 총선이 이뤄지고 레드블록으로 정권이 넘어갈 경우 사회민주당이 총리를 낼 확률이 높은데, 이민 정책을 포함해 환경정책 등 다양한 정책의 향배가 달라질 것이다. 흥미진진하다.

 

산파 면담기

아침부터 부지런히 페달을 밟고 나섰다. 산파와의 첫 만남이 예정되었기 때문에. 자전거로 7분거리에 있는 겐토프트병원에서 면담이 예정되었는데, 응급실 말고 제대로 가본 적이 없는 병원이었던 터라 내부도 궁금했다.

이름을 까먹었는데, 내 담당 산파는 젊은 여성이었다. 경력은 어느 정도 있는 듯 안정된 모습이었고 침착한 성격으로 보여 앞으로 함께 할 출산의 여정을 맡겨도 괜찮을 사람으로 느껴졌다.

약 30분간 인터뷰와 촉진을 했는데, 주로 임신 경험 (임신까지 걸린 시간, 입덧, 체중 변화추이, 기타 힘들었던 사항) , 유전관련 참고사항 (가족병력 – 당뇨 등을 포함해), 생활 습관 (흡연, 음주, 운동, 식이요법, 영양제 복용), 출산에 대한 희망사항 등에 대한 상담이 주를 이뤘다. 촉진으로는 자궁의 위치를 확인하고,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또한 의료 정보에 대한 제공동의, 내 응급상황의 보호자 정보 수집, 응급상황시 연락할 곳 안내 등이 이뤄졌다.

임신 경험

6주~14주 사이의 입덧으로 4킬로 빠진 걸 제외하면 내 임신경험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입덧 기간 중 먹은게 없어 움직이지 못하니 근손실이 많았는데, 그래도 그 전에 축적해둔 근육이 있었고, 입덧이 끝나자마자 다시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시작하며 체력을 조금씩 다졌다. 발레도 시작해서 잃어버린 근육들의 흔적을 찾아헤매고 있다. (물론 아직은 집 나간 근육들이 다 돌아오진 않았다.) 몸에 근육이 있어야 나오는 배를 안정적으로 잡아주고, 릴렉신이란 호르몬으로 인해 관절 가동범위가 늘어나 발생할 수 있는 부상 등에서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살이 한번에 과도하게 찌지 않아야 해서 운동하라는 것도 있지만, 근육 운동도 하라는 것은 그런 이유가 있단다. 살면서 항상 배에 긴장감을 주고 지내왔는데, 그 긴장감을 한번 풀어보니 배가 불룩하고 튀어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여하튼 운동이 체력을 키워준다는 말은 임신과 상관없이 맞는 말인 모양이다. 물론 운동의 선택에 있어 제약은 따르지만.

우리는 임신을 계획하자마자 했기에 인고의 기다림의 시간이 없었고, 한국에서 미리 하고 온 산전 검사에서도 내 난소의 기능이 20대 중반의 기능이라 했던 것처럼 1차 초음파 검사 결과 기형아 발생 확률도 1/4000을 훨씬 밑돌았기에 큰 걱정 없이 임신기간을 보내왔다. 체중도 이제야 입덧기간 중 빠졌던 체중을 회복했는데, 22주에 4킬로면 정상적이라고 듣고 왔다. 기타 사항은 약간의 치골통이 있는 것? 서서히 좀 아프긴 하지만, 남들 다 겪는 일이니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유전관련 참고사항

당뇨를 포함해 각종 유전병에 대한 질문을 했다. 아버지 형제분들이 당뇨병이 있고, 아빠는 엄청 체중을 관리하시는데도 위험군에 들었다 나왔다를 반복하시기에, 아마 나에게도 당뇨병 유전인자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점 이야기 했는데, 1형 당뇨병이 아니면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엔 유전관련 위험인자는 딱히 없는 것 같다.

생활습관

옌스나 나는 생활습관은 좋은 편이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으려고 하고, 흡연과 음주 등 안좋은 것 피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다. 사실 임신 이후 샴페인을 총량 기준으로 2잔 정도 마셨다. 친구 결혼식과 우리 결혼기념일 저녁식사때 반 잔씩, 얼마전 친구들과 만나서 야외에서 한 잔을 마셨으니. 산파 왈, 한달에 1~4잔 이내를 마시는 것은 괜찮지만, 권장사항은 안마시는 것이니 그 점 알아두라했다. 그리고 내가 여태까지 2잔 정도 마셨음을 다 컴퓨터에 기록해두었다. 흠흠.

운동양은 적당하다고 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 같은 극한의 운동 및 몸에 충격을 꾸준히 주는 승마와 같은 운동만 제외하면 다 좋다고 한다. 자전거든 발레든 향후 체형의 변화에 따라 힘든 정도가 달라질 텐데 그 정도를 감안해 강도나 양을 조절해주라는 것만 잊지말라고 했다.

영양제 복용 문제로 갔을 땐 내가 좀 부끄러워 했는데, 사실 비타민을 열심히 먹는 편이 아니라 이실직고하는데 왠지 꼼지락거리게 되었다. 특히 철분은 변비가 너무 심해서 복용을 시도하는 자체가 무섭다고 하자, 철분제제마다 변비 유발 정도가 다르니 영 안맞으면 다른 것을 먹어보도록 하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으로 해서 우선은 복용해보도록 하라고 했다. 그리고 우유는 어쩌냐 해서 많이 마시고 있다 하니, 잘 하고 있다며, 애는 알아서 다 필요한 만큼 칼슘을 다 빼가니까 애와 상관없이 나를 위해 마시라고 했다. 또한 내 피부가 태닝되었기에 광량이 부족하기 시작한 요즘시기부터 충분히 태양광을 흡수하지 못해 비타민 D 소요량만큼 충분히 생성이 안될 것이라며, 이 또한 복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관련 희망사항

혹시 출산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본 바 있냐고 해서, 우선은 에피듀럴 없이 자연출산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회음부가 찢어지는 확률을 조금이나마 낮춰보려고. 그리고 고통은 심하더라도 출산을 좀 빨리, 자궁의 수축 리듬에 따라 힘을 줘가며 수월하게 해보고자 함이었다. 자연주의를 추종하고 뭐 그런거랑은 상관없이, 내 몸이 가장 빨리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고자 함이다.

촉진

누워보라며 배를 이래저래 만져보더니 자궁의 위치와 크기가 적당하단다. 그래서 그 위치가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냐하니, 너무 아래로 내려와 있거나 등의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단다. 그리고 이틀 전 헤얼레우 병원에서 들었던 아기 심장소리를 한번 더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 들은 소리는 내 심장소리였고, 조금 옆으로 이동해 들어보니 아기 심장소리가 들렸다.

응급상황시 

응급상황시 연락할 수 있는 번호를 받았다. 어떤 상황이 응급상황인지에 대해서도 안내를 받았고. 지금부터는 매일매일 태동을 느끼는 게 맞고, 하루라도 태동을 못느끼는 날이 있으면 그 또한 응급상황이라고.

임시 또는 최종 이름

옌스가 저글링클럽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어 공부 복습을 하다가 ‘유레카’하는 순간이 있었나보다. ‘하나’라는 이름 어떠냐고. 첫째기도 하고, 두음절 이름에다가, 덴마크에서도 쓰는 이름 (그러나 아주 흔하지는 않은) 이며, 약간은 이국적이기도 한 이름이라고 한다. Hanne면 완전히 덴마크 이름인데 Hannah면 약간 이국적인 스펠링이라, 검은 머리 아기일 우리애에게 적당한 이름이라며. 또한 ‘한’이라는 글자가 한글, 한국을 뜻하기도 하니 아주 적합하지 않냐한다. 나도 매우 공감하며, 우선 이 이름으로 아기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간 부른 ‘아기’라는 태명이, 실제 덴마크 이름 (Aggi) 으로 존재한다. 이 사람은 평생 아기.)

내 생각에 아마 태명이 아니라 정말 이름이 될 것 같다. 🙂

앞으로 11월에 또 산파를 만나서 그때는 임신중독증 및 임신성 당뇨 등을 검사하게 될텐데, 그 때는 내 배가 얼마나 커질지 궁금해진다. 이렇게 목요일이 또 거의 다 지나가며 주말이 되는구나.

두번째 초음파 검사 – It’s a girl!

두번째 초음파 검사가 예정되었던 오늘. 수업이 12시에 끝나는데 초음파는 1시 15분에 잡혀있었다. 수업이 5분 늦게 끝나서 열차 타고 버스 갈아타면 오히려 빙 돌아가 늦을 거 같은 위기감에 자전거로 가기로 했다. 끊임없이 미세한 오르막길을 꾸준히 올라가다보니 40분 걸리는 길이 엄청 힘들더라.

만 21주를 딱 채운 그저께부터 좀 늦게나마 태동도 느끼기 시작했기에 태아가 잘 크고 있을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2차 발달검사를 통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여러가지 신체적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다니 긴장이 조금 되었다. 그리고 성별도 확인할 수 있을거라는 마음에.

옌스와 1시 5분에 진단실 앞에서 만나 기다렸는데, 의외로 오래 걸려서 1시 35분이 되어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반차를 냈지만, 2시와 3시에 회의가 있어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던 옌스는, 3시 회의는 놓치면 안된다고 초조해하면서 왜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냐며 조바심을 냈다. 이번에도 우리 이름 안부르면 물어보자고 했는데, 우습게도 바로 우리 차례였다.

소노그래퍼와 악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무엇을 검사할 지 등을 듣고 의자위에 앉았다. 바르게 앉아있는 아기. 태반이 자궁 앞쪽벽에 붙어있어 이게 쿠션역할을 하는 탓에 태동을 남보다 늦게 느낄 거고 약하게 느낄거라 알려줬다. 그러나 자궁경부로부터는 충분히 떨어져있어 안전한 곳에 착상이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늦게 느꼈구나 싶었다.

40분에 걸친 초음파 검사를 통해 여기저기 샅샅이 검사하고 보여주었다. 중간에 아기가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데 잘 안바꿔줘서 좀 걸어다니고 배를 흔들어보라더라. 초음파 젤이 바지에 뭍지말라고 배에 수건을 하나 껴둔 상태로 걷고, 한발로 뛰기도 하고, 허리를 숙였다 폈다가, 배를 양옆으로 흔드는 등의 생 쇼를 한 뒤에 다시 자리에 가 앉았더니 애가 자세를 바꿨다. 애가 아직까지는 말을 잘 듣는다는 소노그래퍼 말이 웃겼다. 앞으로 내 말 안들을 날이 얼마나 많을지를 예고하는 징표같다고나 할까.

눈, 코, 입 위치, 척추뼈 개수, 심장 움직임과 생김새, 뇌 발달, 혈류, 내장장기, 뼈 발달상황, 등등 다양한 것을 보더니 모든 것이 정상이고, 체중은 398그램이니 임신 주차에 맞게 찰 크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무게를 아냐니까, 두개골과 허벅지 뼈, 기타 신체 둘레 등을 입력하면 체중이 계산되어 나온단다. 회귀분석으로 모델링을 하는 듯) 임신 초기에 빠졌던 4킬로가 이제야 거의 다 회복이 되었는데, 필요한 영양분 다 엄마 몸에서 빼다가 잘 크고 있으니 앞으로 잘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임신 6~14주차의 8주간만 아니면 임신으로 크게 고생한 것도 없고 아주 잘 지내고 있기에 엄마 고생시키지 않고 쑥쑥 잘 커주는 아이가 고맙게 느껴졌다.

머리 생긴거 보는데, 옌스를 닮아서 그러는지 머리가 앞뒤로 확연히 긴 짱구머리다. 난 전형적 한국인 얼굴이라 앞뒤가 짧은데. 코도 오똑한 것 같고. 이 점은 성공한 듯.

성별을 보려는데 다리로 얼마나 가리는지. 잘 못느끼던 태동을 팍팍 느끼게 해주며 초음파 검사에 항의하던 아기가 결국 자신의 private한 곳을 보여주었는데, 보여준 결과는 딸. 소노그래퍼가 딸이 shy한 것 같다길래, 아무래도 좀 privacy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고 답을 해주었다. 하하하. 난 사실 뭐래도 상관없어했기에 딱히 더 기쁘거나 실망할 일 자체가 없어서 덤덤했는데, 옌스는 아들을 조금 더 원한다고 했기에 어땠을런지. “딸이라도 축구는 같이 할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주니 소노그래퍼가 웃는다. 그래도 옌스가 미니 해인이 나올 거라며 기뻐해주었다.

정상적이라 3차 초음파는 안봐도 된다고 해서 출산 전까지 아기를 만날 일은 더이상은 없다. 좀 아쉽기까지 하네. 고령출산이라 3차도 보나 하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흠흠.

옌스는 시부모님께 안부인사를 전하고, 나는 집에 와서 페이스타임으로 집에 연락을 했는데, 모두 기뻐해주셨다. 이제 이름 정하기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겠다. 남자 이름은 리스트에서 지우고 여자 이름을 정해봐야지.

얼굴은 앞으로 19주 뒤에 보자, 아기야! 그 전엔 이름도 지어줄게. 😉

덴마크에 돌아온 가을

가을이 돌아왔다. 흐린 하늘과 함께.

덴마크의 가을날씨 흐린 하늘, 비가 오지 않아도 항상 젖어있는 땅 (특히 42번째 주 이후), 잦은 비, 간혹 오는 폭풍 등으로 요약된다. 기온은 10~15도 사이를 오가는 것으로 여름대비 평균 5도~10도 가량 낮아진다. 한국에 비해 선명하지 않은 단풍. 딱히 매력적인 계절은 아니다. 그래도 여름내내 줄어들었던 바람이 다시금 세차게 불기 시작해 바람의 나라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해줘 싫지만은 않다.

덴마크에서는 여닫이 창문이 보통이라 이런 계절 창문을 잘 고정해두지 않으면 꽝하고 귀를 때리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아파트엔 우리집 창문처럼 이렇게 열리는 창문이 흔한데 (거의 360도 가량 회전이 가능해서 집 안에서 창을 안밖으로 닦기 편하다. 사실 애 있는 집에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창문은 중간에 고정할 수 있는 걸쇠가 아주 조금 열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것밖에 없어서 이렇게 확 180도 열어놓지 않으면 바람 많은 시기엔 열어둘 수가 없다. 가을엔 바람이 잘 안부는 날이 별로 없기에 거의 항상 이렇게 열어둬야 한다. 덕분에 창문을 활짝 열고 싶은 날은 제대로 열어둘 수 있지만, 또 활짝 열고 싶지 않은 날도 열어두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활짝 열어놔야 한다는 면에서 장단점이 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런 창이 찔끔 열 수 있는 창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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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 보이는 하늘이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다. 아이 심심해.

그런데 날이 이렇니까 실내가 좋아진다. 이곳의 실내 조명은 노랗고 우리보다 훨씬 조도가 낮아, 어렸을 때 좋아하던 스탠드만 켜놓던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래서 덴마크 사람들이 hygge를 중시하고, 불 밝게 켜는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내가 뭘 찾는 것도 아니면서 천장등이라도 켜놓고 있으면, 옌스는 아직도 덴마크의 hygge를 못배웠냐며 스탠드를 켜주고 천장등을 끈다.

집에서 마시는 커피가 맛있어지는 것도 이맘때쯤. 밖이 조금 쌀쌀해지니까 창문 열어두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 얼마나 맛있게 느껴지는 지. 야외커피 느낌이랄까?

주말, 한인회에서 여는 추석모임에 다녀왔다. 서울 뿐 아니라 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에 가도 도회지에 나온 느낌이 든다며 기분이 전환된다고 하는데, 이리 심심한 덴마크 삶이 좋은 나는 촌이 좋은 모양이다. 매일 빠르게 바뀌는 일출, 일몰시간, 시기별로 차이나게 꽃을 피우는 다른 종류의 식물, 헐벗음에서 연한 초록과 또 짙은 녹음으로, 녹음에서 스리슬쩍 노란색으로 조금씩 옷을 갈아입는 나무, 새끼 오리와 백조가 성장하는 모습, 계절별 구름과 하늘 색깔의 변화, 시기별로 바뀌는 새소리 등 그런 변화를 느끼고 살 수 있게 된 것이 나는 마냥 신기하고 좋아서 그렇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문화생활은 충분히 즐기면서 말이다.

한국에 비해서는 다소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나무들이 노랗게 옷을 갈아입는 것을 관찰하는 건 좋다. 변화는 사람을 자극하니까. 이렇게 올 한해도 후반기로 들어서는구나.

 

 

덴마크 근현대 변화상을 보여주는 Matador

덴마크가 지금처럼 평등한 사회를 이룬 건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남녀간, 사회계층간 차이가 명확했던 사회가 지금의 모습으로 어떻게 탈바꿈 했는지 쉽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 ‘마타도어 (Matador)’는 보드게임 ‘모노폴리(우리나라의 부루마블)’게임 또는 ‘실업계의 거물’, 두가지를 모두 의미한다. 실제 드라마에서 모노폴리 게임이 자주 등장하는데, 진정 의미하는 바는 Mads Skjern이라는 주인공의 사업이 성장해 해당 지역의 거물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덴마크가 어떻게 현대의 모습으로 바뀌어가는지를 그려낸다.

마타도어는 다음과 같은 2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 Episode 1.     Den Rejsende / 1929
  • Episode 2.     Genboen / 1929
  • Episode 3.     Skiftedag / 1930
  • Episode 4.     Skyggetanten / 1931
  • Episode 5.     Den Enes Død / 1932
  • Episode 6.     Opmarch / 1932
  • Episode 7.     Fødselsdagen / 1933
  • Episode 8.     Komme Fremmede / 1934
  • Episode 9.     Hen til Kommoden / 1935
  • Episode 10.   I Disse Tider / 1935
  • Episode 11.    I Klemme / 1936
  • Episode 12.   I Lyst og Nød / 1936-1937
  • Episode 13.   Et Nyt Liv / 1937-1938
  • Episode 14.   Brikkerne / 1938-1939
  • Episode 15.    At Tænke og Tro / 1939
  • Episode 16.   Lauras Store Dag / 1940
  • Episode 17.   De Voksnes Rækker / 1941-1942
  • Episode 18.   Hr. Stein / 1943
  • Episode 19.   Handel og Vandel / 1944
  • Episode 20.  Den 11. Time / 1945
  • Episode 21.   Vi Vil Fred Her til Lands / 1945
  • Episode 22.   Det Går Jo Godt / 1945-1946
  • Episode 23.   Mellem Brødre / 1946
  • Episode 24.   New Look / 1947

허구의 도시인 Korsbæk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가 꽤나 빠르게 진행되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다.

예전에 어떤 친구로부터 덴마크의 과거 남녀관계가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기 할머니가 젊은 시절, 몸이 안좋아 남편에게 물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물을 들고 온 할아버지가 할머니 바로 앞에서 물잔을 뒤집어 물을 뒤엎으며, 본인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노발대발 했단다. 나보다 10살 어린 친구이니 대충 할머니, 할아버지 연배가 지금 80대쯤 되었을 거다. 보수적인 율란 출신이니 아마 코펜하겐보다는 더했겠지만, 놀랍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도 경제성장과 함께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증가하면서 남녀관계의 볂화가 갈등의 형태로도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유교의 남존여비적 사상이 향후 20년 뒤에는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소비가 적은 삶을 지향하며

우리집의 가사분담은 대충 정해져있다. 옌스는 청소기를 돌리고, 다림질을 하고, 나는 부엌살림 및 나머지다. 노동 총량으로 놓고 보면 대충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옌스의 다림질은 99%가 자기 옷이니까 당연히 자기가 할 일이긴 하지만, 내 것이 껴 있을 경우 내 것도 해준다. (난 다림질 하는 옷은 거의 안산다.)

월요일 오전 7시 비행기로 떠나 일요일인 오늘 10시 15분에 랜딩하는 출장을 떠난 옌스는 이번 주 집에 없었으므로 내가 다림질을 제외한 모든 일을 해야한다. 그가 청소기를 돌리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꼼꼼하지는 않기에 간혹 내가 청소기를 돌리고 옌스가 다른 일을 할 때가 있다. 이번처럼 이러나 저러나 내가 다 해야하는 경우를 포함해, 내가 청소기를 돌릴 때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힘도 더 들지만, 그래도 다 하고서 집이 깨끗해 진 것을 보면 속이 어찌나 후련한지.

치우고 사는 걸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워낙 깔끔하게 하고 사신 엄마 덕분에 청결에 대한 기준은 높다. 따라서 내가 어지르고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이렇게 모든 것이 한번에 깔끔하게 정리되고 나면 속에 쌓인 묵은 짐을 다 비워낸 느낌이다.

이런 때면 소소하게 찬장 안도 정리하고 버릴 것들을 버리는데, 살면서 쓸 데 없는 것들을 왜이리 많이 사 모으는지. 예전보다 물건을 잘 사지 않고, 최대한 써서 없애는 편이라 정리할 게 없을 거 같은데도 막상 치우다보면 버릴 것들이 많이 나온다.

덴마크에 살면서 크게 변한 것 중 하나가 있다면 쇼핑이다. 지름신과의 작별. 물건을 사모으는 일을 크게 지양하고 있고, 세일이나 1+1에 현혹되지 않도록 필요할 때 물건을 사는 것으로 정했다. 과일이나 채소 등 기타 먹는 것도 다 하나씩 사고, 이미 산 것을 다 먹을 때까진 유사 품목은 사지 않는다. 1+1이나 세일 등으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샀을 때, 결국 버리는 일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 괜히 묵혀두다 버리게 되기도 해서 그렇다. 어느게 결과적으로 경제적인 삶인가를 장기간에 걸쳐 관찰해보니, 이게 더 남는 장사인 것 같다.

이 뿐만 아니라 집에 여백이 남는 것을 좋아하는데, 짐이 늘어나면 다 채워넣어야 하고, 그 부족한 공간을 마련해내느라 스트레스도 받는다. 크지도 않은 집, 그리고 벽에 그림이 많아 수납 공간이 가뜩이나 부족한데 물건을 새로 장만하면 자리 마련하는게 참 힘들다. 그리고 새 물건이 주는 정서적 만족감은 그 유효기간이 극히 짧아 줄어든 잔고가 주는 스트레스에 비해 너무 적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미니멀리스틱한 삶을 사는 것까진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이 많아 시간이 걸리겠지만, 소유가 적은 삶을 살고 싶다. 소유한게 적으면 관리할 것도 적으니까. 그리고 소유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자연을 가까이 하면 그게 행복임을 알았으니까.

루이지애나 미술관과 가을날씨

 

어제 저녁, 간만에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다녀왔다. Daniel Richter라는 독일 작가의 회화전이 열리는데, 전시 안내 우편에 실린 작품의 색에 매료되어 날 좋을 때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평일엔 저녁 10시까지 열기에 마침 외곽으로 이사를 갈 친구와 시간이 맞아 수업 끝나고 다녀왔다.

형광색과 비형광색을 절묘하게 섞은 강렬한 이미지의 그림이 많았다. 아노미적인 상황을 포착한 그림이 많았는데, 끔찍할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색과 사람들의 기묘한 표정 등으로 인해 보고 피식 웃게되는 경우가 있었다. 난민 보트가 밤바다위에서 표류하는 장면이나 폭동이 난 도시가 불타고 있는 장면 등을 담은 작품이 바로 그랬다.

덴마크는 미술관 뿐 아니라 많은 문화시설이 연간회원제를 운영하는데, 루이지애나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1+1 멤버십을 가입할 경우 혼자 세번 가는 것에 못미치는 가격에 나 이외에 한 명을 동반해 연간 언제든지 갈 수 있고, 추가 2명까지는 50% 할인된 가격으로 동반할 수 있어서 손님 모시고 갈 때 참 좋다. 또한  안에서 먹고, 마시고, 쓰는 모든 것을 10% 할인된 회원가격에 살 수 있다. 뮤지엄 샵에서 살 수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백화점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이기에, 같은 것을 산다면 미술관에서 사는 게 이득이다. 일년에 대여섯번은 가는 나에게는 이 멤버십이 최고이다.

어제는 덕분에 겨울에 쓸 베레모와 화려한 반지도 샀다. (사실 마음에 들어도 비쌌으면 안샀는데, 정말 놀랍게도 다 싸서 사버렸다.) 같이 간 친구 왈,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하얀 베레모를 쓰고 나타나서 놀랐다고 하는데, 난 다른 모자모다 베레보가 제일 잘 어울려서 이것만 쓰고 다닌다 하니 잘 어울린단다.

스웨덴이 바로 바다 건너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보인다. 해질녘 은빛으로 변한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명확히 나눠주는 건 스웨덴 땅이다. 산이 없어 얇은 띠처럼 보이는 땅이 하늘과 바다를 둘로 나눠주는데 그 풍경이 참 아름답다. 임신만 안했어도 와인 한 잔 사들고 그 바다를 보며 마시는 건데, 아쉽게도 임신을 한 탓에 그럴 수가 없다. 그런 여유는 내년 이후로 기약하며…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나에겐 휴식과 같은 공간이다. 혼자 가도, 여럿이 가도 좋고, 가면 마음이 차분하고 풍요로워진다. 특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둑어둑한 플랫폼에서 기차를 잡아 타고 돌아오는 길은 어쩐지 여행을 다니는 기분마저 자아낸다.

배가 눈에 띄게 커지고 있고, 그 무게도 이제 조금씩 느껴지지만, 임신 기간 중 몸이 제일 가벼울 기간이라고 하니 이 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며 혼자의 여유를 즐기련다. 내년 1월만 지나면 이런 자유와도 작별이니까.

오늘은 아침 잠시 시내에 다녀오는 길에 Østerbro 길을 자전거로 달렸다. 깔끔하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라 좋아하는 곳. 해는 여전히 쨍하지만 간만에 바람이 많이 부는 오늘, 옷을 노랗게 갈아입기 시작한 나무들이 솨아…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게 어찌나 상쾌하던지. Hyggeligt한 그 길의 정취와 가을 나무가 어우러져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덴마크의 가을은 좀 우울하고 축축하지만, 오늘은 손에 꼽는 아름다운 가을날씨를 보인 것 같다.

마침 금요일이라 마음도 가벼운데 기분이 참 좋구나. 추석은 멀리 있지만, 그래도 외롭지 않은 그런 좋은 날씨다.

“한국이 그리운가?”

몇 일 전, 여름과정 기말 프로젝트를 함께 하던 덴마크 친구가 물었다. “한국이 그립지는 않아?” 한 5초정도 고민을 하다가 (사실 대화 중 5초의 적막은 짧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답을 해주었다. 사실 내가 그리운 건 한국이 아니라 한국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 등이지 한국이 그리운 건 아니라고 덧붙이며.

뭘 먹을 수 있을지조차 잘 모르겠어 한국 음식이 막연히 그립던 입덧 시기를 지나간 후에는 한국 음식 자체가 생각이 나지 않고 있다. 강한 냄새나 양념, 고기 등이 싫어지고 나니 그런 것 같고, 그나마 심각한 갈증을 느끼던 음식은 한국가서 몇 번 먹고나니 해갈이 되었던 모양이다. 또 엄청나게 그리워하던 음식들은 내 머릿속으로 그리던 음식 맛과 실제 맛 간의 괴리만 오히려 느끼고 나서 그 갈증이 싹 없어지기도 했고.

한국의 자연이 그리울 때는 있다. 자주 가지는 않았어도 간혹 가고 싶을 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었던 것이 가장 그립다. 지평선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여기저기 솟아있는 산은 한국에 사는 이상 그리워할 이유가 없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는데, 덴마크는 다 평지니까.

20대까지만 해도 서울이 정말 좋았다. 모든 것이 집적되어 있기에 음식, 공연, 전시, 쇼핑 등 내가 먹고, 보고, 하고 싶은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평균 한시간이 넘는 도시내 이동시간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낄 일도 없었고, 사람이 많은 거리는 도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피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런 인파를 뚫고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그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동을 느꼈고, 미여터질듯한 유명 작가의 전시를 줄서서 볼 때면, 그 인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감사했다. 교보문고와 같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큰 서점에 앉아서 사고 싶은 책을 천천히 읽어가며 고를 때면 도심 한복판의 여유가 더욱이나 소중하게 느껴졌고, 또 대형 오페라나 클래식 콘서트에 가면 그런 공연 저변이 별로 없는 지방에 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다 싶었는지.

인도에서 2년 반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던 2011년 그 해, 나는 역문화충격을 받았다. 길에는 차와 사람, 동물로 그 복잡함에 정신이 혼미해질 듯한 현기증을 자주 느끼곤 했지만, 쇼핑센터를 가던 식당을 가던 내가 돈을 내고 소비를 하는 공간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미 길에서 느낀 피곤함으로 인해 한국과 다르다고 느끼지 못했고, 한국에 돌아가면 항상 지금의 이 생활보다 좋을 것이라고만 상상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막상 돌아온 후에 느낀 건 인도보다 질서정연한 도로와 정리된 도심 이외에는 더 복잡하고, 더 피곤한 일상이었다. 어딜 가도 줄을 서야 하고, 물건을 사려고 해도 사고 싶은 건 사이즈가 없고, 뭘 보려해도 미여터지는 사람 구경을 해야 하는 것 등. 물론 인도에 없던 문화 저변에 대한 접근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던 것과 달리 서울이 정말 붐비고 지치는 도시라는 것을 인식하게된 큰 계기가 되었다.

덴마크에 오고 나니 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더이상 내가 서울과 같은 대도시생활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난 아주 간혹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기회와 자연만 있으면 크게 여행을 다녀야 되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것을 찾아 먹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것 저것 쇼핑을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모르던 나를 알게 된 것이다.

이민이라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이 직장을 구해야 하고, 언어도 배워야 한다. 이제 사전을 옆에 두면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일간신문을 읽을 수 있고, 왠만한 대화는 다 덴마크어로 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덴마크어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 뿐이지. 대학원을 원하는 대로 배우고 싶은 것들을 잘 흡수해 배우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목표를 향해감과 동시에, 내 가정도 잘 꾸려가고, 운동도 해가며 덴마크어를 배우는 등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저글링하듯 해야 한다. 마침 운동선수가 잘 맞는 매니저를 만난 듯이 나를 잘 이해하고 나와 비슷한 남편을 만나 여러모로 배우며 나 스스로를 잘 채찍질 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 조절 잘하며 장거리 레이스를 잘 할 수 있게끔 말이다.

이민자로서 느끼는 피로감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시기가 다시금 닥쳐올 순간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있다. 그래도 난 이제 덴마크의 삶에 충분히 적응을 했고, 이 곳의 삶이 내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기에 오히려 더 내 집같은 생각이 든다. 언어가 편안해지면서 사회로부터 더욱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물질적이든 자연 환경이든 소비를 하고 싶은 것들은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저변이 되면서도 물질적 소비가 중심을 이루지 않는 사회문화, 가족 중심의 생활 패턴,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사회의 룰을 지키는 범위안에서라면 서로 터치하지 않는 점 등이 좋다. 내가 가정을 꾸리며 처음으로 제대로 된 뿌리를 내리게 된 곳이 여기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막상 질문을 던진 덴마크 친구는, 자기는 덴마크를 뜨면 정말 덴마크가 그리울 것 같다며, 인도네시아에 정착해 현지인과 결혼해 10년 이상 살고 있는 자기 형처럼 나 같이 이민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을 크게 그리워하지 않으며 살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고. 3년을 살고 이런 일을 논하기엔 내 이곳 생활이 너무 짧은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7년을 더 살고 나면 난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