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주차에 접어들었다. 예정일까지 3주도 채 남지않은 셈. 하루하루 컨디션이 다르다. 어떤 날은 앉았다 일어나거나 돌아누울 때 억소리나게 많이 아프기도 하다가, 어떤 날은 또 너무 멀쩡하기도 하고. 하나의 머리가 골반으로 내려와 고정되면서부터는 간혹 한쪽 다리 신경이 눌리는지, 걷거나 서 있다가 전기가 통하듯 찌릿하거나 저리기도 한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서 이를 보상하기 위해 허리를 뒤로 젖히려 하게 되는데, 이게 허리 통증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주의하라고 한다. 의식적으로 배에 힘을 주고 바로 서면 뭔가 앞으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듯 해 꼭 앞으로 기울어진 느낌이다. 그래도 학교 잘 다니고 있고,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잘 돌아다닌다. 오늘은 출산 전 할 거리 중 하나였던 머리자르기도 해결했다. 출산 후 3개월부터면 앞머리가 많이 빠진다고 해서 미용사가 긴 앞머리를 내줬다. 앞머리 안좋아하지만 나중에 생길 무수한 잔머리를 숨기려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많이 짧아져서 한동안 머리를 틀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엔 친구들이 베이비샤워 파티를 열어주었다. 이는 덴마크가 아니라 영미권문화지만, 이 친구들은 덴마크 친구들이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핀란드, 미국, 한국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친구들이라 베이비샤워를 하게 되었다. 영국으로 귀국한 친구의 생일파티에 모였을 때, 1월 중 베이비샤워를 열어주고 싶다며 괜찮겠냐고 물어보길래, 물론 좋다고 했다. 우리 문화의 파티는 아니라 영화로 본 게 다이고 다소 생소하긴 했지만, 친구들과 만나는 데에 새로운 핑계는 언제나 좋고 하나를 위해 파티를 열어준다는 게 참 고마웠다.
호주에서 온 에밀리네 집에서 하기로 했는데, 이사한 지 일주일도 안된 집을 정리하고 수선하느라 엄청 바빴다고 한다. 유명한 건축사무소에서 건축가로 일하는 친구인데 주로 특급호텔과 레스토랑 건축+인테리어 디자인을 한다. 평소에도 미적 센스가 탁월한데, 감각도 감각이고 여기저기 이쁘고 세련된 것을 많이 보는 경험이 더해져 그녀가 지내는 집마다 참 디자이너답게 센스있게 꾸민다. 주중엔 일하느라 정신없었는데, 가구 조립에 짐 풀고, 여기저기 수선하느라 얼마나 바빴을 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저것 먹을거리며 케이크와 쿠키, 음료 등 어찌나 다양하게 준비했던지 깜짝 놀랐다. 그냥 차에 케이크나 쿠키 같은 거 먹을 거라는 기대에 갔는데 너무 융숭한 준비에 정말 놀랐다. 주말 오전 11시 반까지 준비하느라 얼마나 정신없었을런지… 집안 장식까지 말이다. 모든 게 완벽했다.
와우… 완전 감격! ㅠㅠ
호스트인 에밀리가 따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초대하라고 해서 미국에서 온 친구와 한국에서 온 친구는 내가 따로 초대했다. 우리 문화가 아닌 영미권 문화 파티라 다른 한국 친구들을 초대하기엔 약간 애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한 한국 친구는 고등학교부터 오랜기간을 미국에서 지내서 베이비샤워라는 컨셉에 익숙할 것 같았고, 다른 친구들과도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아서 초대했다. 약혼자네 가족 방문차 영국에 갔을 때 영국 근위병이 그려진 옷을 샀다며 손수 뜬 아기 양말과 함께 선물해주었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그 작은 양말 두개에 들어간 마음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다.
베이비샤워를 열어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뭔가 선물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적여봤다. 역시나 Thank you gift 같은 걸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되어, 뭐가 좋을 지 고민을 했다. 베이비 샤워라는게 아기에게 선물로 샤워를 시켜준다는 의미이니 뭔가 샤워와 연관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들의 스윗한 마음을 고맙게 여기며 친구들의 샤워를 스윗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의미로 달콤한 향이 나는 샤워오일을 준비했는데, 내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남아공에서 온 폴로소는 감정이 풍부한 예술적인 친구인데, 그 이야기에 괜히 눈물이 난다며 눈가를 훔쳤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다보니, 거의 다섯시간을 앉아서 있었던 것 같다. 임신전보다 7킬로나 불어 제법 동글동글해진 얼굴에 웃음이 떠날 새가 없었다. 선물을 열 때는 얼마나 두근두근대던지. 🙂
빨래가 너무 많다. 겨울이라 빨래가 잘 마르지도 않는데, 우리와 하나의 침구류와 옷, 소재별, 색깔별로 빨려니 정신이 없다. 높은 온도에 빠는 것들은 세탁기에서만도 3시간이나 걸리는 데다가, 손빨래한 모직 소재 옷들은 좀 평평하게 펴야해서 빨래대에서 차지하는 공간도 많은지라 침구류를 다 다림질해서 말렸더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어버렸네.
그래도 이제 빨 것도 거의 다 빨았고 해서 일주일간의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 출산 준비를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주부터는 기말고사 준비와 그룹 프로젝트를 위해 데이터 수집과 R 프로그래밍, 보고서 작성 등으로 정신이 없을 터인지라 출산준비는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그 와중에 옌스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마사지 상품권을 이용해보려 한다. 시험 끝나고 하면 너무 막바지라 예약해놨다가 취소 불가기간에 취소하면서 돈을 날릴 가능성도 있어서 다음주에 수업 없는 날 가보는 것으로 예약했다. 패키지 중 임산부 마사지 프로그램도 있는데, 옌스가 직장 동료 및 베프의 공통된 추천을 받은 코펜하겐에서 제일 좋다는 마사지샵이란다. 70분 정도야 시간을 못빼랴. 학교 후배가 출장와서 딱 한번 로비만 들어가본 호텔에 위치해 있다. 이번엔 그냥 기웃거리는 게 아니라 이용을 해보겠다 싶어서 기대를 살짝 해본다. 스파라고는 동남아 여행가서나 해본 터라. (솔직히 동남아 리조트 스파가 더 내 취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첫 세달 정도만 쓸 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새해가 시작되면 새해 목표와 함께 다이어리를 사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사왔다. 옌스가 읽을까봐 한국어로 쓰는데, 뭐하냐고 물어봐서 신년 목표 새운다 하니까, 목표가 뭐냐고 물어본다. 못지킬까봐 이야기해주지 못하겠다 하니까 그게 무슨 목표냐며 이야기하란다. 흑… 틀린 바가 없어서 이야기해줬다. 그래… 역시 목표는 공유해야 그나마 강제력이 생기지…
이번 연말 연시는 육체노동으로 점철된 시간이다. 옌스네 카약클럽 섬머하우스에서 하는 신년파티는 안가기로 해서 그나마 여유가 있긴 하지만, 우리끼리 만찬을 하기로 해서 고기 굽고 샐러드 만드는 거는 해야 할 것 같다. 거기 갈려면 음식도 해야지, 짐도 싸야지, 차도 빌려야지, 밤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하고, 다음 날 정리 및 청소까지 하고 돌아와서 차 반납하고 짐도 풀 생각하면… 안그래도 짧은 겨울방학에 출산준비까지 겹쳐 쓰러질 것 같았다. 옌스가 회사에서 샴페인 한 병 받아왔는데, 신년 만찬 하면서 그거 한 잔 마실 기회는 주시겠다고 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굽신거리며 받아야 할 것 같다. 한 잔을 모두 허할 거 같지도 않고, 나도 뭐 한 잔을 다 마실 마음까지는 없다. 출산하고 나면 꼭 한잔 마실 거라고, 좋은 것으로 한 병 준비해오라 했으니 병원에서 한 잔 쭉 들이키겠다는 마음으로 그 전까지는 그냥 맛 보는 것으로 감사해하리라.
덴마크 신년맞이는 아주 정형화되어있다. 6시에 (불필요하게 긴장한) 여왕의 송구영신 메세지를 들으며 샴페인을 마시고 (거의 전 국민이 이 송구영신 메세지를 듣는다. 공화주의자들의 군주 메세지에 대한 신봉이라니, 놀랍다.), 저녁 식사를 준비해 11시 정도까지 먹고 마시고, 신년맞이때 하는 게임 등으로 하며 놀다가, 식탁을 대충 정리하고서 TV를 튼다. 국영방송에서 중계하는 클래식 합창 공연 등을 보다가 12시가 몇 초 안남으면 테이블이나 의자 등 높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코펜하겐 시청의 시계의 초침이 12시를 가로 지르는 순간 바닥으로 뛰어내린다. 그러면 크란서케이어(Kransekage) 라는 마지판이 듬뿍 들어간 과자 같은 케이크를 먹고, 폭죽을 터뜨리러 밖으로 나선다. 폭죽놀이가 끝나면 들어와서 커피를 마시거나 와인을 더 마시면서 최소 2시까지는 놀다가 자러 들어간다. 사실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 젊은 사람들은 집에 음악도 틀어놓고 춤도 추고 하면서 새벽 다섯시까지도 논다. 물론 정말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처럼 별장이나 집에서 파티를 하는게 아니라 밖으로 나서서 클럽 등에서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다들 진지하게 여왕의 2015년 맞이 송구영신 메세지를 듣고 있는 와중, 우리는 사진 찍고 있다.
2016년 맞이 만찬 준비중. 우리는 준비가 끝났다. 집에서 만두피까지 손수 빚어 만든 군만두를 곁들인 매콤 새콤 간장소스 샐러드. 이거 빚느라 여기 가기 전에 막노동으로 고생했다. 가서는 편했지만…
이날 맞이한 2016년은 내일 하루가 남았다. 이 날은 실컷 마셨더랬지.
메인코스 식사가 끝나고 담소를 나누는 중. 2015년 부활절 한국 방문시 사간 셀피스틱으로 모두를 담을 수 있었다. 다들 셀피스틱을 부담스러워하더라.
식사중에도 중간중간 폭죽에 불을 붙이고 게임도 한다.
크란서케이어 준비가 끝났다. 12시 타종 전에 폭죽에 불을 붙이면 all set! 케이크 옆에 놓인 은박캔디모양은 포장지를 양쪽에서 당기면 그 안에 왕관종이가 나온 사람이 왕이 되는 왕게임 도구다. 왕이라고 특별히 대접하는 건 없던데, 아마 원래는 뭔가 하는 걸거다.
바로 이렇게 왕은 왕관을 쓴다. 2015년 맞이 파티에서
타종이 시작돼서 바닐려크란서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다들 의자위로 올라섰다. 2016년이 오기 몇 초 전!
2016년이 밝았다. 모두 2015년(의자 위)에서 뛰어내려 2016년(바닥)에 안착. 덴마크 국가를 부르고 있다. 물론 우린 안부르고 사진 찍고 있지만… 자막이 나와서 외국인도 따라 부를 수는 있다. 멜로디를 모르는게 함정.
2016년 1월 1일엔 안개가 자욱했다. 춥기도 추웠는데, 아무튼 우리는 큰 폭죽은 없어서 작은 폭죽으로 소소히 즐겼다.
아무튼 이 날은 정말 외식업계에는 대목인게, 밖에서 먹는 것 뿐 아니라 반 조리 된 레스토랑 음식을 1인당 7~8만원 선으로 맞춰 포장 판매를 하는데 이 시장이 엄청 크단다. 카약클럽에서도 한번 그렇게 했었는데, 조금만 더 조리하고 나면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처럼 프레젠테이션까지 그럴 듯하게 해서 먹을 수 있다.
2015년 맞이 Cofoco에서 주문한 세트의 디저트. 우리 커플이 디저트를 담당했었다.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비쥬얼이다.
한국에 비하면 정말 소비주의가 팽배해있지 않은 나라라 해도, 크리스마스나 신년 같은 같은 명절이 갈수록 상업화되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늘자 일간지 베얼링스커엔 이런 소비주의와 상업화 세태를 따르기 싫은 한 기자가 자기의 이러한 태도를 변비에 비유하고, 상업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뱃가죽이 늘어나는 지, 자기가 구토직전 한계에 도달하는 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먹어 뱃속에서 꾸룩꾸룩 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비유하며 재미있게 비꼰 컬럼이 실렸다.
뭐 이 날을 어떻게 보내든 간에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새해는 친구들과 보내는 덴마크의 연말연시는 조용하지는 않다. 많이 먹고 마시고 가장 춥고 어두운 시기를 hyggeligt하게 보내는 것, 어떤 시대가 되든 이런 모습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매년 비는 뻔한 소원이긴 하지만, 새해엔 모든 이에게 더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길!!! 2017년, 곧 만나자!
일년에 한 번, 두 분의 시고모님 중 한 분의 댁에서 돌아가면서 두번째 크리스마스 오찬이 열린다. 덴마크에서는 25일과 26일을 각각 첫번째 크리스마스와 두번째 크리스마스라고 부르고, 첫번째 크리스마스 오찬과 만찬은 24일 이브에 하고, 두번째 크리스마스 오찬은 26일에 한다. 올 해는 Faxe Ladeplads의 첫째 고모님 댁에서 하는 거였는데, 막판에 고모님 손목이 부러지면서 작년과 마찬가지로 Roskilde에서 하게 되었다.
26일 저녁에 태풍이 예보되어, 페리를 타고 돌아가셔야 하는 시부모님은 참석을 못하시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도 열차를 타고 움직여야 되었다. 이번 오찬을 호스트였던 도리스 고모님과 크눌 고모부님은 칠십년대 히피의 삶을 사셨다는데 사실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냥 봐서는 점잖은 보통의 어른들인데 히피셨다니. 옌스 왈 고모님네 서가에 히피의 삶에 대한 책도 꽂혀있다고 했다. 언젠가 두분의 소시적 사진을 보고싶다.
두분은 초반에 나와 별로 말을 섞지 않으셨다. 내가 마음에 안드시거나 영어가 편치 않으시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란 생각을 했으나, 그게 후자의 이유였음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내가 덴마크어를 더듬거리며 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하셨고, 어느 타이밍부터는 내가 영어로 말하더라도 덴마크어로 답을 하셨다. 그리고 크눌고모부님은 특히나 내 덴마크어의 변천사에 유독 관심을 많이 보이고 표현하셨다.
이 날도 나를 보자마자 몇마디 섞으시더니, 이제 정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거의 없다하시며 놀라움을 표하셨다. 더이상 다른 가족들도 나를 위해 말을 천천히하거나 영어로 말하는 수고로움을 피해도 되게되니, 나 또한 부담스러움이 사라졌다. 다른 것보다도 이제 대그룹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포함될 수 있고, 대부분의 주제를 자연스럽게 다루고 이해하게 되어서, 소외감이나 지루함이 없어졌다. 꼬맹이들의 말도 알아듣고 그들과의 친밀도도 높아져서 그들이 나와도 놀기시작하고, 내가 준비한 명절 음식들도 항상 완판되니 소속감이 더 커진다고 할까?
올해는 새우를 다져 약간의 당근과 양파를 넣어 뭉쳐만든 새우전을 준비해갔는데, 여기 음식 중 피스크프리카델라라는 생전요리와 유사한점이 많아서 그런지 생소함 없이 사람들이 smørrebrød의 토핑으로 얹어먹더라. 한국에서도 애들이 새우전 좋아하는 것처럼 여기 애들도 좋아하더라.
각자 음식 한가지씩 또는 디저트나 음료 등을 분담해서 준비하고 나눠먹는 명절은 꽤나 유쾌하다. 집에 오면 하루가 다 가 피곤하기도 하지만, 자주 돌아오는 명절도 아니고 일년에 한 번 뿐이니 즐겁게 준비할 수 있다. 내년엔 하나가 나오니 또 느낌이 완전히 다르겠지. 돌 가까이 되는 타이밍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신없게 하겠지.
12월 22일. 동지가 지났다. 이제 해는 다시 길어질 것이고, 추위는 조금 더 절정을 향해 달리다 눈치채지 못하는 새 봄을 향해 달리겠지. 하나는 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1월 말 경에 태어날테니 이번 겨울은 뭔가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새에 지나가지 않을까 한다.
올 겨울 100년 이래 가장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하더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예보를 벗어나 유래없이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바람도 그다지 세차지 않고. 이러면 내년엔 병충해가 많이 돌텐데…
친구들을 불러 한국 음식을 차려 송년회를 했는데, 한 친구가 포인세티아를 사왔다. 살까말까하다 사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나는 포인세티아. 들어갈만한 적당한 화분이 없어서 검정플라스틱 화분을 감싸고 있던 녹색 포장지를 적당히 구겨 집에 있던 검정 리본으로 둘렀다. 밑에 접시를 받혀 창가에 두니 완연한 크리스마스 느낌이다. 선인장류가 아니면 1년 내에 식물이 죽어나가는 우리집에서 얼마나 오래 살 지 한번 두고 볼 일이다. 죽어나가는 식물의 수가 늘어가는 만큼 경험의 축적과 함께 평균 생존기간도 늘어나니, 혹시 또 아나? 이 포인세티아가 우리와 한참을 함께할런지.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도 끝났고, 26일에 있을 2차 크리스마스 오찬에 선보일 한식 메뉴도 결정했다. 시아버지의 자매들과 그 아래 직계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큰 모임이라 포트럭 스타일로 각자 메뉴를 하나씩 준비해오는데, 덴마크 전통 크리스마스 오찬 메뉴가 있어서 거기에 적당히 어울리는 음식으로 가져가야 한다.
작년엔 김밥을 해갖는데 인기가 매우 좋았다. 애들도 좋아했고. 그러나 시간상 점심이고, 차로 한시간 반 정도 가야 하는 길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 계란지단 부치고 오이를 소금에 절이고, 당근과 시금치, 고기 볶아 갓지은 밥에 마는 게 너무 힘들었다. 시간에 쫓겨 막판엔 집을 폭탄맞은 듯한 상태로 놔두고 갔는데, 집에 돌아와서 집안 가득한 참기름 냄새를 맡으니 피로가 어찌나 몰려오던지. 올해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새우전을 부치려고 한다. 전날 부쳐서 당일에 현장에서 데워 내면 되니까.
옌스네 가족 및 옌스 시누이네 가족과 함께 할 24일 메인 크리스마스 만찬은 옌스 시누이네서 하는데, 내가 합류한 이후에도 우리 집은 초콜릿과 디저트와인 등 돈으로 떼울 수 있는 쉬운 것을 맡고 있다. 명절에 돈으로 떼우는 게 쉽다는 건 해보니 알겠다. (머리로도 알긴 했지만, 해보니 정말 실감난다.) 그래도 한국식 생각해보면 정말 간단한 명절 준비다. 각각 집에서 큰 준비는 다 해와서 현장에서 데우는 식으로 해서 음식을 내니까. 올해는 원래 더 먼 Faxe Ladeplads로 가야했는데, 시고모님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작년과 같이 로스킬레로 간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중 침대 조립하고, 유모차 조립/해체법에 익숙해지도록 연습 몇 번 해보고, 하나 양말 몇 개 사고, 아기 용품 빨래만 하면 하나를 맞이할 준비는 거의 다 끝난 것 같다. 어제 친구와 함께 아이들 옷과 용품을 중고로 내놓는 중고 상점에 다녀왔다. 장소를 대여하는 업체가 운영을 담당하고, 팔 물건이 있는 사람들은 매대를 대여해 제품에 태그를 붙여 비치하는 영구적인 벼룩시장이다. 여기서 옷가지 몇 개와 모유수유 책 한권을 사왔는데 참 저렴하더라. 첫 한 해에 입을 옷은 사이즈가 다양하게 있는 편이어서 앞으로 1년은 여기에 많이 의존할 예정이다. 굳이 하나에게 새 옷을 입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애들은 워낙 빨리 자라니 새 것을 필요한 양만큼 사기엔 낭비가 크니까.
내가 이 곳에 산지도 어느새 3년 반이 다 되어간다. 정말 별로 오래 안된 것 같은데 벌써 3년 반이라니… 다행인 건 이 나라와 나의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않았으니 완전한 정착을 한 건 아니지만, 그냥 일상생활 속에서는 이방인 스트레스를 거의 졸업한 것 같다. 여기 신문을 읽으면서 한국 신문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고 여기 물정에 더 밝아지게 된다. 물론 한국의 정치기사는 워낙 요즘 정치가 신묘하고 황당하게 돌아가다보니 관심을 끌 수가 없지만… 그 밖에 일에서는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식사하는 방식이나 소소한 일상의 행동도 여기식으로 많이 바뀌었다. 임신이라는 경험과 출산 모두 이 곳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교육받고, 몸조리도 여기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게 될테니.
한국에서 살면서 항상 튀어서 지적받고 했던 내가 여기에선 크게 유별나지 않은 사람이 되서 그런가. 이국의 땅에 있지만 이곳에 살면서 내가 이방인이라고 느껴지던 순간들은 한국에서 비슷하게 느끼던 순간들보다 적으면 적었지 더 많지 않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성인이 20대 후반까지 자란 사람이라 절대 이들과 동질성을 느끼는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야 하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 사회를 더 이해하게 되고 녹아 들어가면서 한국인과 덴마크인의 모습이 뒤섞인 사람이 되겠지.
옌스가 스케이트를 타러 아이스링크에 간 사이 크리스마스 캐롤 피아노곡을 들으며 혼자 글을 쓰고 있으니 왠지 감수성이 넘쳐흘른다. 열흘에 불과한 짧은 연말연시 연휴, 프로젝트도 하고 출산준비도 하며 바쁘게 달려갈 생각을 하니 오늘의 평화를 더욱 잘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이 깊어가니 쿠키를 곁들여 디카페인 커피 한 잔 하며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 요즘 간혹 덴마크의 hygge가 소개되곤 하는데, 정말 별 것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없어도 되고, 꼭 촛불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 혼자 온기가 느껴지는 포근한 시간을 보내면 그걸로 충분하다. Jeg skal hygge mig herhjemme alene lige nu!
모듈 2였나. Svantes Lykkelige Dag라는 시를 수업 중에 접한 것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운율에 대해 배우며 어떤 상황을 묘사한 것인지 해석하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만 기억난다. 많은 덴마크인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 시에 대해 그 때 가졌던 인상은, 인생의 소소한 기쁨에 즐거워하는 덴마크인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Nørreport역에서 환승을 하다가 바로 아래의 사진과 함께 적힌 이 시의 제목과 마주쳤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Anders W. Berthelsen이 주연을 맡는 것을 봐서 더 눈에 띄었다. (이 배우는 덴마크에서 시작된 dogma 95 – 교리에 가까운 원칙과 순결선언문을 기반으로 한 특별한 영화제작방식 – 영화 (Festen, Mifunes Sidste Sang, Itanliensk for Begyndere 등) 에 많이 출연했고, Krønikken을 포함해 다수의 TV 시리즈에도 출연했다.) 연극!
덴마크에서 본 첫번째 연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다. 덴마크어로 된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읽지않고 발레 공연을 예매한 줄 알았던 것이 하필이면 연극이었다니. 덴마크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고, 덴마크어라고는 인사 외에는 아는 게 없던 시기였다. 발레를 먼저 고르고 2013-2014 시즌을 선택한 줄 알았더니, 그 시즌이 발레의 하위카테고리가 아니었다. 그냥 별개의 카테고리였는데, 내 멋대로 한국 웹사이트 방식에 익숙한 사고방식을 여기서 그대로 적용해 그렇게 이해한 것 뿐이었다. ‘악령을 발레로 해석하다니! 정말 흥미진진하겠는걸?’ 이라는 생각으로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예매한 것이 실수였다.
그걸 뒤늦게 알고나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갔는데, 그건 내 말도 안되는 착각이었음이 극 시작 후 10분만에 드러났다. 우선 원작을 그대로 상영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적 배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70년대를 풍미하던 히피즘을 배경으로 다 바뀌었는데, 음악도 파격적이고, 덴마크 극 문화를 전혀 모르던 내게는 무대 장치부터 너무 생경했다. 스토리를 모르는 것도 그렇지만, 극의 진행으로 미루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는 것 조차 힘들만큼 어려웠다. 등장인물은 또 어찌나 많은지. 러시아문학의 특성을 고려해봐도 그렇긴 하지만, 난 그 난해함에 압도되어버렸다.
결국 1시간 30분동안 앉아있다가 인터미션 때 도망을 치고 말았다. 더이상 남은 한시간 반을 그런 멍한 정신상태로 앉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랬던 나의 덴마크 첫 연극 감상은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겼더랬는데, 또 연극이라니! 그런데 자막이 나온단다. 영어, 덴마크어 그리고 아랍어로. 남편은 연극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혹시 가겠냐고 물어보니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가주겠다고 했다. 기대한 바 그대로여서, 우선은 다른 사람을 먼저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한번 가보자고 했는데, 그녀가 흔쾌히 승낙을 했다.
La Petanque에 들러 간단히 걀레뜨로 식사를 하고 호수를 건너 Nørrebro로 향했다. Nørrebro의 메인 거리인 Nørrebrogade만 보고 이 지역을 힙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약간 지저분한 지역으로 알고 있던 그녀는 이 메인거리를 중심으로 양쪽에 퍼진 작은 길들에 Hyggelig한 가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어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나와 옌스의 생활반경에서 약간 벗어나있어 친구들 만나는 거 아니면 안가게 되는 이 곳. 오래간만에 목요일 (작은 금요일이라고도 불리는…) 에 나가보니 그 릴렉스한 분위기에 나도 취했다.
극장 외관
8시에 시작하는 연극에 맞춰 극장에 들어서니 안이 정말 아늑했다. 연령대가 높은 관객이 주를 이루고 있는 듯했으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아마 이 시를 발간되고, 사랑을 받았던 시기가 70년대라 주 관객층도 이 시를 즐겼던 당시의 젊은 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극장 내부 휴게공간
객석
연극이 시작되었다. 어라? 그런데 자막은? 자막이 나올만한 구석도 없는데다가 어디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자막을 볼 수 있는 앱이 따로 있단다. 그냥 자막이 나온다는 한 줄을 보고 그 아래 부연 설명을 잘 안읽은게 함정이었다.)
아뿔사. 나는 그렇다쳐도 내 친구는 어떻게 하나. 살면서 연극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이게 3번째 정도 되는 거라고 했는데, 나의 덴마크 첫 연극과 같은 경험을 안겨주게 되나? 그녀도 덴마크어를 배우고 있으니 이해할 수 있을까? 연극이 시작되며 내가 이해되는 양을 보아하니 그녀에겐 조금 더 어려울 텐데 과연 괜찮을까? 등등…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이 빠르게 교차했다.
그나마 그녀는 연극에 대해 읽어보고 왔고, 나는 아무런 배경지식을 쌓고 오지 않아서 비슷하게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연극은 Benny Andersen이 이 시집을 쓰며 마주한 자기 자신과는 다른, 자기가 닮고 싶고, 지향하고 싶은 인격, 마음 속의 갈등, 이런 것들을 가상의 친구인 Svante로 만들어냈던 것, 그리고 이 Svante와 자기의 진정한 모습이 만나 화해를 하며 온전한 자신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그린 것이었다. 결국 Svantes Lykkelige Dag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그렸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1막이 끝날 때까지 Svante가 본인이 아니야? 그럼 누구지? 하면서 많은 혼란속에 보다가 인터미션에서 프로그램을 조금 읽어보고나니 대충 그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고, 머리속의 많은 혼란이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았다. 2막이 시작되며 주인공이 Svante가 자기 속의 다른, 자기가 되고 싶어하는 지향속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게 융해되어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는게 보다 명확해졌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한 Svantes Lykkelige Dag 노래가 얼마나 좋던지. 여주인공인 Lise Baastrup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커튼콜 장면
우리 말이었으면 보다 쉬웠겠지만, 한 사람의 내면 속 분화된 인격을 여러 인물로 상징적으로 분화시켜 극화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도 조금 난해했었을 지도 모른다. 연극의 묘미란 극으로 풀어낸 상징을 찾아내는 데 있으니, 그 소기의 목적을 잘 달성한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2막부터 뇌에 과부하가 걸려 집중력을 상실했다는 그녀에게 힘든 경험을 안겨준 것 뿐이려나 하고 마음이 다소 무거웠으나, 집에 돌아와 즐거웠다는 메세지를 보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좋은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다가, 앞으로 여러가지 문화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를 찾은 것도 기뻤다.
Svantes Lykkelige Dag의 작가와 가수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라이브로 공연했던 영상, 그리고 그 시를 아래에 공유한다.
Svantes Lykkelige Dag
Se, hvilken morgenstund! Solen er rød og rund. Nina er gået i bad. Jeg’ spiser ostemad.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lomsterne blomstrer op. Der går en edderkop. Fuglene flyver i flok når de er mange nok.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Græsset er grønt og vådt, Bierne har det godt. Lungerne frådser i luft. Åh, hvilken snerleduft! Glæd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Sang under brusebad. Hun må vist være glad. Himlen er temmelig blå. Det ka jeg godt forstå.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Nu kommer Nina ud, nøgen, med fugtig hud, kysser mig kærligt og går ind for at re’ sit hår.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enny Andersen 이 쓴 시는 1972년에 출간된 ‘스반테의 노래’ 시집에 실렸으며, 가수 Povl Dissing이 노래를 부르고 Benny Andersen이 반주자가 되어 1973년 LP판으로 발매되었다.
사족. Povl Dissing이라는 가수는 노래를 잘 부른다기 보다는 그만의 매력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은데, 사형수의 형집행 전 25분을 그린 아래의 노래를 보면 그가 얼마나 독특한 가수인 지 알 수 있다. 상황 묘사 후 아직 25분이 남았다, 아직 24분이 남았다, …, 아직 1분이 남았다, 하고 25번을 반복하다가, 마지막 상황 묘사를 마치고 음악이 멈추며 형이 집행되었음을 암시한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며 갈 수록 절박해져가는 그의 목소리에서 정말 형 집행을 앞두고 노래부르는 사형수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무래도 남편네 나라에 살다보니 친정보다 시가와 자주 보게된다. 물론 연락이야 비교할 수 없이 친정과 더 많이 하지만 보는 주기는 시가가 훨씬 잦다. 시부모님과 연락은 주로 문자메세지로 이뤄지는데, 간간히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로부터 메세지를 받고 나도 두분께 메세지를 보낸다. 주로 두분을 수신자로 헤딩에 넣어 시어머니께 문자를 보내드리지만, 혹여나 그게 섭섭하실까봐 시아버지께 보내기도 한다. 전화는 주로 시어머니와 이뤄지는데, 내가 전화를 드리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주시기도 한다. 주기로 보자면 한 2주에 한 번 정도?
옌스는 우리 부모님께 직접 연락을 드리지는 않고 내가 연락을 드릴 때 옆에 있으면 안부를 전하곤 한다. 영어로 아빠와는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아직 옌스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나 없이 부모님과 대화를 할 수 없기도 하고. 아마 이부분은 우리 부모님이 조금 섭섭해 하실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한데, 여긴 약간 자기 부모님에 대한 연락이나 그런건 셀프인 부분이 많아서 딱히 내가 뭐라 이야기하긴 애매하다. 시부모님께 연락 드린 것도 시부모님이 먼저 문자로 연락을 주셔서 답을 하다보니 나도 답을 하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아, 내가 조금 너무했나?’ 싶어 전화로 한 번 연락을 드렸더니 그 다음부터 조금씩 전화로도 연락을 주신 거였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아마 내가 좀 역할이 부족했나 싶다. 양쪽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하면 그냥 내가 잘 지낸다고 양쪽에 전할 뿐이지, 안부를 물었다는 사실을 옌스에게 전하는 건 잘 안했다. 옌스는 누가 전화나 문자로 연락하며 내 안부를 물으면 꼭 나에게 그 사실을 전하곤 했는데. 그런 사실을 듣고 나면, ‘아. 그 사람이 내 생각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걸 떠올려보면, 나도 그랬어야 했었는데… 옌스가 괜히 우리 부모님은 자기 안궁금해하나 싶어하겠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국제결혼이라고 시가와의 갈등이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게 다 똑같다고, 여기도 가족간의 갈등이 다 있는 것이고,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도 집안 따라, 사람 따라, 국가별 문화 따라 갈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렇다. 다행히 난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시댁을 만나 아무런 문제 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는데, 항상 그걸 당연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국제결혼은 양가의 문화가 만나는 것이라 나 뿐 아니라 시가 입장에서도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부모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이 곳의 문화를 내가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르는 우리 문화를 시부모님이 받아들일 것이냐 같은 작은 문제부터 그렇다. 옌스는 처음엔 이상할 것 같다고 했지만, 시부모님께 내가 우리 문화를 설명하고 그래도 되겠는지 여쭤봤을 때 시부모님은 매우 좋아하시며 (그런 문화냐고 놀라시긴 했지만) 그러라고 하셨고, 그분들 또한 나를 딸 해인이라고 불러주신다.
시가를 방문해서 집안일을 거드는 문제부터, 시부모님이 우리집에 오셨을 때 어느 방이든 편히 드나드시는 것까지 다 다르다. 이건 그냥 나라간의 문화차이에 집안 차이가 겹쳐 있어, 어느 까지가 나라의 문화고 가풍인지의 경계가 모호하고 나로선 구분해내기가 불가능하다. 간혹 내가 생각하는 시가와 며느리 사이의 경계를 넘어선 행동들에 살짝 놀라는 일이 있더라도, 그게 만약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하실 일에서 벗어나있지 않다면 그냥 별 의미없이 받아들이기로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모여 같이 이동하는 일이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기억이 정확히 안나지만 시어머니께서 옌스 옷인가 소품인가를 하나 챙기시려고 침실 옷장을 여셨던 일이 있었다. 순간은 놀랐지만, 나와 같이 살기 전까지는 매우 편히 드나드시던 아들네 집이니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아실 것이고, 옷장을 여는 일이 갑작스레 터부시될 일도 아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며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내가 시부모님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내가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과 같을 수 없듯이 시부모님이 옌스나 시누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시부모님이 나를 딸과 똑같이 대하지 않으신다 해서, 아니면 옌스 생각을 하시는 것만큼 내 생각을 안하신다 해서 섭섭하지 않고, 섭섭해 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런걸 느낀 바도 없지만,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해도…) 같이 사는 아들이 행복하기를 위해서이든 어떤 이유이든 내가 잘 지내고, 잘 지내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어찌 상대에게 기대하랴.
명절 스트레스도 없고, 연락 자주 안한다 타박하는 사람도 없고, 가정 대소사는 다 직접 챙기는 남편이 있으니 시가 문제로는 난 아주 땡잡은 기분이다. 내가 시부모님을 좋아하는 것처럼 옌스도 우리 부모님을 좋아하고, 특히 내년 한국에 방문해 우리 부모님과 지내며 혹여나 엄마와 단둘이 있는 순간이 생길 때에 대비하려고 옌스가 지금 바짝 한국어를 공부하는 걸 보면 참 고맙다.
반대로 옌스는 굳이 그렇게 안해도 되는데 자주 시가에 연락을 하는 나에게 참 고마워한다. 자기 가족은 자기가 챙기는 셀프문화가 자리잡힌 이 곳에서 자발적으로 꾸준히 연락을 하고 가까이 지내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연애 초기에, 자기 가족과 내가 만나는 자리가 몇번 있고 나서,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며, “가족과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에게도 좋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너는 나와 함께하는 것이지, 내 가족과 함께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여나 내 가족과 너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하면 난 네 편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옌스이니 물론 내가 가족과 잘 지내길 기대했겠고, 나도 그들이 이미 마음에 들었지만, 저렇게 이야기해준 자체에 마음이 정말 든든해졌었다.
이런 고마운 감정이 조금씩 쌓이는 걸 모아두었다가 간혹 표현하곤 한다. 그러면 옌스나 나나 모두 이런 것들 당연시 하지 말자며 이런 소소한게 삶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공감하는데, 이런 게 서로 잘 맞는다는게 참 감사하다.
이제 불과 3년밖에 안된 커플이지만 정말 큰 갈등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온 것에 대해 요인을 분석해보자면,
우선 라이프스타일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 금전감각과 관리, 건강/체력관리, 가족과의 관계, 인생 전반에 걸친 목표와 생활 태도, 집안 관리 등등
서로에 대해 어떻게 해주길 기대하는 점이 없다거나, 딱히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려는 점
서로가 하는 행동이 혹여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게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마음 상하게 하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원하는 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정확히, 또 솔직히 말하는 것
상대가 내 요구에 거절하더라도 이유가 합당하면 받아들이는 것
감사함과 사랑함을 작든 크든 꾸준히 표현하는 것
침묵 고문하지 않는 것 (이것은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한 바 있다.)
주말 하루는 꼭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갖는 것 (하나가 태어나면 다른 형태로 바뀌겠지만)
서로가 각자의 취미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적당한 수준의 개인 공간/시간/자유를 주는 것
서로를 위해 상대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에 노력하는 것
우리 문화가 이렇다고 강요하지 않고 서로 대화를 통해 타협하는 것
우리의 현재 생활와 주어진 것에 대해 당연시 여기지 않는 것
이런 우리의 삶의 방식을 친정과 시가 모두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
대충 이런 것 같다.
간혹 국제결혼해서 해외에 나가 사니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데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마음가짐에 따라서는 정말 더 힘든 게 될 수도 있다. 실제 그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커플들도 많이 있고. 사실 옌스를 만나서 한국의 문화 중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겪지 않아 좋은 대신에 한국 문화에서 내게 편하거나 득이되는 것들을 누리지 못해 좋지 않은 점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 생각하면 끝이 없고 서로 자기 좋은 것만 주장하는 것으로 흐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 둘이 합리적으로 판단해 공평하고 서로가 만족스러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날이 찾아왔다. 비소식이 있는 내일과 주말동안에 다시 영상으로 올랐다가 그 다음주엔 또 영하인 날들이 지속될 전망이다. 가을이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날이 추워지긴 하지만, 이런 때 내가 덴마크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건, 아직까지 별다른 난방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 난방으로 더워진 공기를 신선하지 못한 공기와 동일시 하며 따뜻한 실내를 참지 못하는 옌스와 살다보니 그런 것도 있지만, 굳이 옌스가 아니더라도 덴마크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춥게 지내는 것 같다. 난방비가 비싼 것도 무시 못하는 요소다. 주택에서 살던 첫 해, 멋모르고 난방하다가 난방비 폭탄으로 몇백만원 낸 기억이 있다. 요금 정산이 전년도 평균을 납부한 후 증감분을 다음해에 사후정산하는 시스템인데, 전 입주자보다 더 많이 썼다가… (사무실과 같은 공간은 난방을 잘 하고 얇게 입고 지내는 게 보통이다.)
집에 있다가 끼니 사이 좀 추워지는 타이밍엔 스웨터를 하나 더 입고, 차나 커피를 한잔 마시고, 그래도 추우면 약간의 맨손체조를 하며 몸을 덥힌다. 스쿼트가 최고.
부활절에 한국 다녀올 때, 미리 엄마한테 모과차를 부탁했었다. 시중에 파는 건 모과 향만 나는 설탕물이니 과일로 담궈달라고. 끝물이라 모과 찾기가 쉽지 않아 많이 담그지 못했다며 주신 작은 두 병중 한병만 후딱 먹고 한 병은 놔뒀다. 아주 얇게 채를 썬 모과를 보며 느껴지는 정성. 오늘 날이 추우니 딱 생각나더라. 모과차. 사실 모과차엔 한과가 딱인데, 한과는 없으니 제껴두고… 그냥 모과차를 끓였다. (샐러드 드레싱에도 아주 유용한 모과청!!!)
추울 땐 역시 모과차. 여름엔 생각이 전혀 안난다.
한국보다 온도는 높지만 습하고 제주도 바람보다 거센 바람이 자주 부는 겨울은 유독 견디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해가 짧고 어두운데다가 4월까지 길게 늘어져서 그럴 거다. 그나마 올 해, 학교내 정원을 가로질러 다니며 2월 초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 꽃을 관찰하며 시간의 변화를 조금씩 느끼다보니 어떻게 봄을 기다릴 수 있는지 나만의 방법을 하나 체득하였다.
다음주는 시험인데, 이번 시험은 다소 망했다. 이미 예감이 온다.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 만큼 사기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무서워서 공부를 자꾸 미루다가, 에이 좀 망치면 어때! 이런 생각이 드니 다시 공부할 마음이 조금 든다. 내일부터 시험 공부 바짝해서 현재 기준으로 가능한 좋은 성적을 받도록 노력하기로 하고, 초조한 마음은 덮어두기로 했다. 최악의 슬럼프에서만 헤어나왔을 때, 한 블로그 이웃분께서 나보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좋은 의미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 하나씩 차근히 해보려고 하라고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맞는 말씀인 것 경험으로도 알고 있고, 그게 맞는데, 그걸 이행하기까지 힘든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 그런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아무튼 너무 늦은 건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보고, 그리고 다음 블록 한과목 잘 해서 석사과정 수업들을 잘 마무리해보도록 해야겠다.
블로그도 이런 슬럼프 속에 접어두었는데, 그간 쓰려다가 접고 저장만 해둔 아이들도 보고 시험 끝나고는 다시 열심히 기록을 남겨야겠다.
덴마크의 박사과정은 3년이다. 연구가 늦어지거나 개인적 사정으로 쉬는 경우 이보다 길어질 수 있지만, 우선은 3년을 기준으로 프로그램이 설계되어 있고 펀딩 또한 이를 토대로 한다. 시누이는 5~6년 걸렸다고 들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게 어느새 2년 반 정도가 된 것 같은데, 남편의 인도와 러시아 주재에 동반하느라 나를 만나기 얼마 전에 덴마크로 돌아왔다고 했었다. 그러니 중간에 최소 4년 이상 쉰 것이다. 아이 셋의 엄마로 박사 과정을 마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잘 안간다. 물론 오페어를 하나 두고 있었다지만, 애들 픽업하고 생일 있으면 애와 어른 파티 따로 다 준비하고 명절때면 가족과의 모임을 자기네 집에서 하고 등등 정말 수퍼우먼같은 모습으로 산 것 같다.
시누이는 시어머니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고 한다. 실제 시댁에 가 있으면 며칠동안 하루에 최소 한번은 전화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짧은 통화가 주를 이뤘지만, 간혹 조금 긴 통화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긴 통화 후 시어머니가 시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보는 시누이는 정말 멋진 여성이다. 항상 여름 햇살처럼 빛나는 환한 웃음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을 챙기는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따뜻한지.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것도 보면 참 대단하다 싶고. 그렇지만 엄마가 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 수가 있는게 시누이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아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터라 시누이가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 박사과정 중간에 해외로 나간 것도 그렇고, 애들을 학교에서 픽업하고 과외활동 하는 걸 지원하느라 같은 연구소에 있는 남자 동료들이나 양육의 문제가 없는 동료들처럼 연구와 커리어에 더 몰입할 수 없는 것 등 말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연구원으로서 모든 일을 잘 해내려고 하는 그녀가 여러모로 힘든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박사과정의 디펜스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한다. 따라서 수퍼바이저와 오포넌트 말고도 연구소 동료, 친구, 가족이 온단다. 그간 고생한 것을 치하하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좋은 선물도 준비하고. 옌스는 이번 주 또 출장을 가 못오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몰랐을 땐 그냥 안타까워하는 옌스를 대신해 내가 가야겠다 싶었는데, 안갔으면 영 그랬겠다 싶다. 미리 내가 가겠다고 한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갑을 하나 샀다.
디펜스는 바로 오늘 오후 2시 반. 시내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있단다.덴마크의 가장 큰 병원인 Rigshospital 예방의학과에서 고환암을 연구하고 있는데, 바로 그 곳에서 디펜스를 한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경주용 자전거를 타다가 경추에 금이 가 본홀름에서 이곳으로 헬리콥터 후송되셨던 일이 있다. 이 곳에서 처음 시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번엔 시누이 일로 와보게 되었다. 여긴 시댁 일 아니면 올 일이 없는 병원인 모양이다.
본홀름과 스웨덴을 오고가는 페리 스케줄이 가을부터는 오전, 오후 두편만 있기에 아침 열시에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했다. 지난 두주간 정신없이 바쁘고, 옌스가 출장을 두번이나 가 나 혼자 있었기에 집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다. 사실 정리정돈 잘하고 설겆이 밀린 것 없이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기에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는데, 시부모님 오신다니 싹 다 청소를 해둬야겠다. 어제 저녁에 못해서 아침 여섯시부터 일어나 식사하고, 엄마와 페이스타임 삼십분한 뒤, 청소하고 화장 끝내니 딱 도착하셨다. 항상 그렇시듯이 초콜렛이며 잼 등 작은 선물들을 갖고 오셨는데, 이번엔 특별히 아이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길 바라며 시어머니의 할아버지가 어딘가에서 발견하셨던 1700년대의 금화 한닢을 옌스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셨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것을 보다니 덴마크에 살면서 참 다양한 경험을 한다 싶었다.
임신상태의 경과를 포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병원으로 향했다. 점심은 병원의 카페테리아에서 가볍게 하고 컨퍼런스룸으로 갔다. 40여명의 사람들이 와있었는데, 시누이의 45분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해 오포넌트 2명의 오포지션까지 총 2시간 30분을 모두 꼼짝없이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임신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은 자리, 딱딱한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던 적이 없던지라 허리도 좀 아프고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오랜 기간 연구한 성과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실제 박사과정 디펜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는 것, 오포넌트가 어떻게 디펜스에서 논문에 챌린지를 하는지 보고 듣는 것, 다 흥미로웠다. 나중에 내 석사논문 디펜스에 대해서 감을 잡아볼 수도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애 셋을 돌보며 세개의 manuscript를 성공적으로 저널에 등재하고 (그 중 하나는 세계적인 저널에 등재되었단다.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이었나? 아무튼 옌스가 이 저널을 모르냐길래, 당신은 보건경제학자니 아는거고, 나는 환경경제학자라 모른다고 해줬다. – 환경경제학에서 유명한 저널이 뭔지도 난 사실 모른다. 흠흠.) 1년전에는 Young European Sceintist 상인가 뭐도 타서 유명 컨퍼런스에서 발표도 하고 그랬단다. 뭐랄까, 약간 허허실실한 타입이라 잘 몰랐는데, 그 상 탔을 때 이야기 들어보니 항상 열심히 하고 꼼꼼하고, 성과욕도 많아서 뭐든 잘한다고 한다. 사실 그러니 애들과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게 얼마나 스트레스도 될까 이해도 된다.
발표도 여유있게 잘하고 디펜스도 정말 잘해서 누가 봐도 성공적으로 디펜스를 마무리짓는 것을 보았을 땐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내가 박사학위 받는 것도 아닌데 내가 다 뿌듯해졌다. 이번에 고환암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계량경제학 때 배운 내용들이 회귀분석에 사용된 가정이나 방법론 등을 논할 때 다뤄지는 것을 보며, 이런 내용을 몰랐다면 강의를 들어도 크게 이해가 안되었을텐데, 하면서 배우는 만큼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기도 한 고마운 순간이었다. 옌스에게 잘 끝났다고 문자를 하니, 큰 오빠가 자랑스러워 한다며 축하해주라고 하며 정말 기뻐하더라.
디펜스 결과가 박사학위 수여 커미티에게 모두 만족스러웠다는 발표가 이뤄지며 디펜스가 마무리 되었으며, 대학교 측에서 준비한 리셉션을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프리카델라, 샌드위치, 과일과 케이크 등 먹을 거리 뿐 아니라 여러명의 축사와 시누이의 감사인사말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축사 중 시누이네 가족
맛있게 먹으며 시누이네 이웃, 시누이 생일 때 만났던 시누이 어릴 적 친구와도 만났는데, 시누이 친구가 Dong energy에서 풍력발전으로 일을 한다길래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독일인이라는데, 뭔가 정말 반 독일인스럽게 더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했다. 여기서는 뭐하는 지 물어보고 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사생활 침해가 아닌데, 상대도 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듯이 나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는게 익숙해져서 더이상 취조당하는 느낌이 안든다. 처음엔 뭔가 동양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인가 하는 오해에 부담감마저 느꼈는데, 그냥 이들의 관습임을 알게되니 나도 남의 직업 탐방의 시간이 재미있기조차 하다.
내가 덴마크어를 잘 못할 땐 남들이 하는 말 중에 못알아듣는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되서 자꾸 질문을 해야하다보니 은근히 위축되고, 시간이 오래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제 뇌가 언어를 처리하느라 물리적인 스트레스도 받는데 덴마크어 학원을 쉰 지난 6개월간 오히려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방학기간 중 덴마크어 드라마를 엄청 보고, 옌스와 덴마크어 사용 비중을 크게 늘려 90% 정도를 거의 덴마크어로 사용한 게 큰 도움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이상 덴마크어로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게 정신적인 부담이 안된다. 그 전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이런 자리에 나서야 빨리 말에 익숙해지고 적응할 수 있어!’ 라며 스스로를 밀어붙였다면, 이젠 그런 것 없이 설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 얼마나 편안해지던지.
아무튼 그렇고 나니까 주변인들이 나를 챙기려고 부담감 느낄까봐 불편하던 마음도 없어지고 그냥 편해졌다. 그런 편안함과 함께 이방인의 느낌도 많이 없어지고. (그 방안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었지만, 내 눈엔 내가 안보이니… 더욱 이질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흠.)
어느새 시간은 흘러흘러 6시. 시누이네 집에서 개인적으로 준비한 리셉션이 또 있단다. 핫도그 캐이터링을 불렀다고 하는데, 난 학교 친구 생일파티가 있다고 해서 못간다고 했다.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추가로 잡은 약속인데. 아쉽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8시 파티에 가기전 조금 쉰다고 소파에 눌러앉은게 화근이었다. 피로가 몰려와서 한시간만 쉬고 나가려던게 그냥 마냥 소파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그리하여 이렇게 손가락만 놀려도 되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다.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긴 시간을 포멀한 옷차림을 하고 소셜모드로 있었더니 영 피곤했던 모양이다. 혼자서 쉴 시간이 필요했다. 내일 옌스가 출장에서 돌아오는데다가 주말에 공부할 것도 많은데 이정도의 저녁 휴식시간은 필요하다. 이제 다 덮고 조금 일찍 자야겠다. 하나도 많이 피곤했을 것 같고.
기사 링크: http://www.b.dk/nationalt/elever-i-god-kondition-scorer-hoejere-karakterer (Berlingske)
올보어대학교가 올보어 꼬문 8학년-10학년 학생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사회경제적인 여건이나 인종적 배경에 상관없이 신체가 건강한 학생이 학교 성적도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덴마크어와 같은 인문학 과목뿐 아니라 수학과 같은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보였다며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의 강도높은 체육활동에 학생들을 보다 더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권고했다.
덴마크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날씬하고 근육질인 편인데 학교 체육 활동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여자학생들도 남자학생들과 같이 축구를 하는 등 (성별 섞어서) 여자라고 강도 낮은 활동을 시키는게 아닌 듯 하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듯 체력이 공부에도 중요한 건 개인적으로도 많이 느꼈지만, 이렇게 연구결과로도 나왔다 하니 더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 흠흠.
약 2주 전에 한 로펌의 여변호사가 출산 몇시간전까지 이메일을 쓰고 일하다가 일주일만에 일선으로 복귀한 기사가 베얼링스커 1면을 장식하며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오른 적이 있다. 어느 나라나 아이를 양육하는 문제에 대해서 엄마의 전통적 성역할을 강조하듯이 덴마크 또한 그렇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보육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웨이팅 리스트가 긴 보육원을 제외하면 6개월부터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엄마는 직업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 전업주부로 눌러앉는 것은 사회의 복지시스템에 커다란 짐이 되기에 (덴마크 사회복지 시스템은 심신이 건강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일을 하며 세금을 낸다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비난하는 시선도 있지만, 엄마가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아이를 남편이나 오페어(Au pair, 입주 가정부)에게 양육의 상당부분을 맡기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시선도 존재한다.엄마가 야근 열심히 하고, 애를 보육원에 일찍 맡기고, 늦게 픽업하면 비난의 시선이 꽂히고, 남편에 대해서는 이중적 잣대가 적용되어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인다. 결국 여기도 수퍼맘을 원하는 것이다.
해당 여변호사의 열혈 근로의욕에 대해서 진정한 엄마가 아니라는 평론도 실리는 등 뜨거운 토론이 되고 있는데, 오늘 기사는 오후스와 코펜하겐을 원거리로 통근하며 일주일 2회는 코펜하겐에서 지내되, 근로시간을 주 31시간으로 단축해 금요일은 집에 머물며 애들을 보육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에 대해서 다뤘다. 그녀의 경험담과 의견을 통해, 양육이 부부 양측의 합의에 의해 잘 조율되고 애들이 만족한다면 상관 없는 일이 될 것도, 자신의 이런 근로 방식에 대해 비난의 눈길이 쏠리는 현상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해당 여변호사처럼 열혈로 근무를 해야 커리어 우먼이 된다고 프레이밍하는 것도, 그렇다고 엄마가 애를 시스템이 수용해주는 대로 일찌감치 보육원에 보내고 일을 한다고 진정한 엄마가 아니라고 프레이밍하는 것도 모두 반대한다. 이런 때 보면 덴마크의 성평등은 진정한 의미의 성평등이 아니라 사회가 기반으로 설계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도 세금을 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를 가능하게 하려 남성이 양보를 조금 한 강요된 성평등의 면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진정한 의미에서 애를 키우는 것은 애가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18년이다. 그 외에는 더이상 키우는 게 아니라 같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족으로 함께 살고, 서로 기대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18년의 시간동안 나는 내 인생의 일부분을 희생해야 할 것이고 그게 힘들 것이지만 그 대신 얻게되는 기쁨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그렇지만 양육이 내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렇게 큰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면, 난 내 인생의 공허함을 느낄 것임을 내 성향으로 보아 충분히 알고 있으며, 나중에 그러한 희생이 내 아이에게 짐으로 작용할 것 또한 알기 때문이다. 내가 투사가 되어 페미니즘의 선봉에 서거나, 남편에게 나의 커리어 성공을 위해 당신이 무조건 양보하라 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편을 위해 내 커리어를 마냥 희생하고 싶진 않다. 솔직히 보면 남편보단 내가 권력욕이나 사회적 성공 욕구가 더 크기에 나의 희생이 효율적이지도 않다.
우리보다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 진보적인 이 나라도 아직도 나아갈 길이 멀다. 오늘 기사에서 인터뷰한 여성이 언급한 것중에 크게 공감한 부분이 있다. ‘왜 남편이 잘 하고 있어도 내가 떨어져 있으면 애들이 불쌍하다고 하는 것인가? 우리 남편은 좋은 아버지이고 남편이 비는 날 내가 그의 빈자리를 잘 메우듯 그 또한 나의 빈자리를 잘 메울 수 있는데. 그리고 내가 떨어져 있음으로 애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 불쌍한 건 내 아이들이 아니라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