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의 박사 디펜스 방문기

덴마크의 박사과정은 3년이다. 연구가 늦어지거나 개인적 사정으로 쉬는 경우 이보다 길어질 수 있지만, 우선은 3년을 기준으로 프로그램이 설계되어 있고 펀딩 또한 이를 토대로 한다. 시누이는 5~6년 걸렸다고 들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게 어느새 2년 반 정도가 된 것 같은데, 남편의 인도와 러시아 주재에 동반하느라 나를 만나기 얼마 전에 덴마크로 돌아왔다고 했었다. 그러니 중간에 최소 4년 이상 쉰 것이다. 아이 셋의 엄마로 박사 과정을 마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잘 안간다. 물론 오페어를 하나 두고 있었다지만, 애들 픽업하고 생일 있으면 애와 어른 파티 따로 다 준비하고 명절때면 가족과의 모임을 자기네 집에서 하고 등등 정말 수퍼우먼같은 모습으로 산 것 같다.

시누이는 시어머니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고 한다. 실제 시댁에 가 있으면 며칠동안 하루에 최소 한번은 전화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짧은 통화가 주를 이뤘지만, 간혹 조금 긴 통화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긴 통화 후 시어머니가 시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보는 시누이는 정말 멋진 여성이다. 항상 여름 햇살처럼 빛나는 환한 웃음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을 챙기는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따뜻한지.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것도 보면 참 대단하다 싶고. 그렇지만 엄마가 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 수가 있는게 시누이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아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터라 시누이가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 박사과정 중간에 해외로 나간 것도 그렇고, 애들을 학교에서 픽업하고 과외활동 하는 걸 지원하느라 같은 연구소에 있는 남자 동료들이나 양육의 문제가 없는 동료들처럼 연구와 커리어에 더 몰입할 수 없는 것 등 말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연구원으로서 모든 일을 잘 해내려고 하는 그녀가 여러모로 힘든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박사과정의 디펜스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한다. 따라서 수퍼바이저와 오포넌트 말고도 연구소 동료, 친구, 가족이 온단다. 그간 고생한 것을 치하하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좋은 선물도 준비하고. 옌스는 이번 주 또 출장을 가 못오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몰랐을 땐 그냥 안타까워하는 옌스를 대신해 내가 가야겠다 싶었는데, 안갔으면 영 그랬겠다 싶다. 미리 내가 가겠다고 한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갑을 하나 샀다.

디펜스는 바로 오늘 오후 2시 반. 시내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있단다.덴마크의 가장 큰 병원인 Rigshospital 예방의학과에서 고환암을 연구하고 있는데, 바로 그 곳에서 디펜스를 한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경주용 자전거를 타다가 경추에 금이 가 본홀름에서 이곳으로 헬리콥터 후송되셨던 일이 있다. 이 곳에서 처음 시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번엔 시누이 일로 와보게 되었다. 여긴 시댁 일 아니면 올 일이 없는 병원인 모양이다.

본홀름과 스웨덴을 오고가는 페리 스케줄이 가을부터는 오전, 오후 두편만 있기에 아침 열시에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했다. 지난 두주간 정신없이 바쁘고, 옌스가 출장을 두번이나 가 나 혼자 있었기에 집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다. 사실 정리정돈 잘하고 설겆이 밀린 것 없이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기에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는데, 시부모님 오신다니 싹 다 청소를 해둬야겠다. 어제 저녁에 못해서 아침 여섯시부터 일어나 식사하고, 엄마와 페이스타임 삼십분한 뒤, 청소하고 화장 끝내니 딱 도착하셨다. 항상 그렇시듯이 초콜렛이며 잼 등 작은 선물들을 갖고 오셨는데, 이번엔 특별히 아이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길 바라며 시어머니의 할아버지가 어딘가에서 발견하셨던 1700년대의 금화 한닢을 옌스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셨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것을 보다니 덴마크에 살면서 참 다양한 경험을 한다 싶었다.

임신상태의 경과를 포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병원으로 향했다. 점심은 병원의 카페테리아에서 가볍게 하고 컨퍼런스룸으로 갔다. 40여명의 사람들이 와있었는데, 시누이의 45분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해 오포넌트 2명의 오포지션까지 총 2시간 30분을 모두 꼼짝없이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임신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은 자리, 딱딱한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던 적이 없던지라 허리도 좀 아프고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오랜 기간 연구한 성과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실제 박사과정 디펜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는 것, 오포넌트가 어떻게 디펜스에서 논문에 챌린지를 하는지 보고 듣는 것, 다 흥미로웠다. 나중에 내 석사논문 디펜스에 대해서 감을 잡아볼 수도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애 셋을 돌보며 세개의 manuscript를 성공적으로 저널에 등재하고 (그 중 하나는 세계적인 저널에 등재되었단다.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이었나? 아무튼 옌스가 이 저널을 모르냐길래, 당신은 보건경제학자니 아는거고, 나는 환경경제학자라 모른다고 해줬다. – 환경경제학에서 유명한 저널이 뭔지도 난 사실 모른다. 흠흠.) 1년전에는 Young European Sceintist 상인가 뭐도 타서 유명 컨퍼런스에서 발표도 하고 그랬단다. 뭐랄까, 약간 허허실실한 타입이라 잘 몰랐는데, 그 상 탔을 때 이야기 들어보니 항상 열심히 하고 꼼꼼하고, 성과욕도 많아서 뭐든 잘한다고 한다. 사실 그러니 애들과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게 얼마나 스트레스도 될까 이해도 된다.

발표도 여유있게 잘하고 디펜스도 정말 잘해서 누가 봐도 성공적으로 디펜스를 마무리짓는 것을 보았을 땐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내가 박사학위 받는 것도 아닌데 내가 다 뿌듯해졌다. 이번에 고환암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계량경제학 때 배운 내용들이 회귀분석에 사용된 가정이나 방법론 등을 논할 때 다뤄지는 것을 보며, 이런 내용을 몰랐다면 강의를 들어도 크게 이해가 안되었을텐데, 하면서 배우는 만큼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기도 한 고마운 순간이었다. 옌스에게 잘 끝났다고 문자를 하니, 큰 오빠가 자랑스러워 한다며 축하해주라고 하며 정말 기뻐하더라.

디펜스 결과가 박사학위 수여 커미티에게 모두 만족스러웠다는 발표가 이뤄지며 디펜스가 마무리 되었으며, 대학교 측에서 준비한 리셉션을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프리카델라, 샌드위치, 과일과 케이크 등 먹을 거리 뿐 아니라 여러명의 축사와 시누이의 감사인사말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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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중 시누이네 가족

맛있게 먹으며 시누이네 이웃, 시누이 생일 때 만났던 시누이 어릴 적 친구와도 만났는데, 시누이 친구가 Dong energy에서 풍력발전으로 일을 한다길래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독일인이라는데, 뭔가 정말 반 독일인스럽게 더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했다. 여기서는 뭐하는 지 물어보고 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사생활 침해가 아닌데, 상대도 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듯이 나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는게 익숙해져서 더이상 취조당하는 느낌이 안든다. 처음엔 뭔가 동양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인가 하는 오해에 부담감마저 느꼈는데, 그냥 이들의 관습임을 알게되니 나도 남의 직업 탐방의 시간이 재미있기조차 하다.

내가 덴마크어를 잘 못할 땐 남들이 하는 말 중에 못알아듣는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되서 자꾸 질문을 해야하다보니 은근히 위축되고, 시간이 오래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제 뇌가 언어를 처리하느라 물리적인 스트레스도 받는데 덴마크어 학원을 쉰 지난 6개월간 오히려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방학기간 중 덴마크어 드라마를 엄청 보고, 옌스와 덴마크어 사용 비중을 크게 늘려 90% 정도를 거의 덴마크어로 사용한 게 큰 도움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이상 덴마크어로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게 정신적인 부담이 안된다. 그 전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이런 자리에 나서야 빨리 말에 익숙해지고 적응할 수 있어!’ 라며 스스로를 밀어붙였다면, 이젠 그런 것 없이 설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 얼마나 편안해지던지.

아무튼 그렇고 나니까 주변인들이 나를 챙기려고 부담감 느낄까봐 불편하던 마음도 없어지고 그냥 편해졌다. 그런 편안함과 함께 이방인의 느낌도 많이 없어지고. (그 방안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었지만, 내 눈엔 내가 안보이니… 더욱 이질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흠.)

어느새 시간은 흘러흘러 6시. 시누이네 집에서 개인적으로 준비한 리셉션이 또 있단다. 핫도그 캐이터링을 불렀다고 하는데, 난 학교 친구 생일파티가 있다고 해서 못간다고 했다.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추가로 잡은 약속인데. 아쉽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8시 파티에 가기전 조금 쉰다고 소파에 눌러앉은게 화근이었다. 피로가 몰려와서 한시간만 쉬고 나가려던게 그냥 마냥 소파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그리하여 이렇게 손가락만 놀려도 되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다.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긴 시간을 포멀한 옷차림을 하고 소셜모드로 있었더니 영 피곤했던 모양이다. 혼자서 쉴 시간이 필요했다. 내일 옌스가 출장에서 돌아오는데다가 주말에 공부할 것도 많은데 이정도의 저녁 휴식시간은 필요하다. 이제 다 덮고 조금 일찍 자야겠다. 하나도 많이 피곤했을 것 같고.

덴마크어 발음은 독일어와 너무 다르다.

게르만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덴마크어이기에 많은 단어가 독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생김새도 독어와 비슷한 경우가 많아, 독어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들은 어떻게 발음해야할 지 잘 모르는 단어를 그냥 독어식으로 읽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독일인들은 덴마크어를 빠른 속도로 배우지만 자기네식 발음을 못버리는 경우가 많아 발음이 나쁜 나라 사람들로 낙인이 찍혀있다는 것이다.

덴마크어의 모음과 자음은 우리와 상이한 게 워낙 많아 우리네 한글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이를 독일어식 발음으로 치환해서 한국어로 표현할 경우는 원래 발음과 너무 달라진다. 덴마크에 여행객도 늘고 유학생 및 워킹홀리데이 방문자도 늘어나면서 블로그에 덴마크 지명과 브랜드명 등이 많이 소개되는데, 완전 잘못된 발음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아쉬운 점이 많다. 짧은 기간 지내는 사람들이라 덴마크어를 배우지 않고 그렇다고 현지인에게 해당 발음을 듣는게 아니라 여기서 비슷한 목적으로 온 사람들을 통해 구전에 구전으로 발음과 정보가 공유되기에 앞으로 오는 많은 사람들도 잘못된 정보를 안고 전파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Nørreport (뇌어폿 O – 뇌레포트 X), Nørrebro (뇌어브로 O – 뇌레브로 X), Torvehallerne (토(우)어핼러네 O – 토브할렌 X), Amelienborg (아멜리엔보어 O – 아멜리엔보그 X), Kongens Nytorv (콩엔스 뉘토우 O – 콩겐스 뉘토브 X), Carlsberg (칼스베어 O – 칼스베르 X), Tuborg (투보어 O – 투보그, 투보르 X), Helsingør (헬싱외어 O – 헬싱괴어 X), Skagen (스케인  O – 스카겐 X) 등이 있다. 네이버 블로그 이웃님의 추천으로 누락된 것과 하나 더 추가하면 Amager (아마 O – 아마게르, 아마거 X), Strøget (스트로이엘, 스트로이엣 O  – 스트뢰엘, 스트뢰엣, 스트뢰이에트 X) 등이 있다.

덴마크의 R은 한글의 첫자음 자리에 해당하는 발음이 될 때는 불어 R에 가까우나 더 목구멍에 가까운 데에서 나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받침자음 자리에 해당하는 발음이 될때는 ‘어’의 발음이 난다. 따라서 -borg, -berg는 보어, 베어 식으로 발음이 나고, -bro에서는 브로 식으로 발음이 난다.

V는 첫자음 자리에 오는 경우가 아니면 ‘우’의 발음으로 바뀐다.  Vogn은 웨건의 뜻을 가진 단어인데, 이는 보운으로 발음이 나지만, 코펜하겐의 덴마크어 원어인 København은 쾨벤하븐이 아니라 쾨벤하운으로 발음한다. Nytorv의 v도 우로 발음한다.

G도 첫자음으로 올 땐 g의 발음이 나지만 그 외의 자리에 올 경우 다른 모음의 발음을 변형시킨다거나 다른 자음을 변형시키는 역할을 하지 독립적으로 g의 발음을 내지 않는다. 따라서 Kongens는 콩겐스가 아니라 콩엔스로 발음이 난다.  Skagen도 스카겐이 아니라 스케인인 것, Helsingør가 헬싱괴어가 아니라 헬싱외어인 것, -borg, -berg에서 마지막 g가 발음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유럽 사람들이나 동유럽 사람들, 중동 사람들이 특히 이 g발음을 못버려 수업시간에 자주 지적되곤 한다. 내 관찰이 아니라 수업에서 해당 지역 사람들의 발음 특성에서 주로 거론되는 특징인데,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는 발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그냥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알고는 대부분 쉽게 고치는 것 같으니 말이다.

-ager로 끝나는 단어는 원래는 ‘-에이어’ 식으로 말음되다가 이제는 ‘-아’ 식으로 발음된다. Amager, tager 등 모두 아마, 타로 발음하면 된다.

Øj, øg는 많은 경우 ‘-오이’로 발음된다. 따라서 Strøget이 스트로이엘, 스트로이엣 식으로 발음되는데, -et는 원래는 엣으로 발음되다가 현대에 와서는 -ed식으로 발음되면서 엘로 많이 발음된다. 한국 엘과는 전혀 다른, 처음 시도하면 왠지 구토를 유발할 거 같은 발음인데, 얼핏 들으면 영어식 엘로 발음한 것처럼 들린다. 미국이나 영국 원어민 모두 공감하는 바이다. 24시까지 여는 Døgn netto도 같은 원리로 도인 네토라고 발음하면 된다.

‘발음이 뭐 중요해, 말만 통하면 되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덴마크에서는 이말이 안통한다. 정말 안통한다. 정확한 발음을 워낙에 강조하는 나라이고 거기에서 어긋나면 못알아듣는게 일반적이다. 이로 인해 처음 덴마크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자기 딴에는 엄청 비슷하게 발음한다고 말을 해도 상대가 못알아 들어 좌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좌절을 계속 극복하고 꾸준히 발음을 연습해야 대화의 문이 트이고, 문이 트여야 연습도 자꾸해서 늘게 된다.

위에 쓴 예시들은 한국인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푸느라 현지어 발음을 우리 한글로 풀어낸 것이기에 실제 발음을 들으면 또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발음을 한국어식, 다른 나라 사람일 경우 자기네 나라 발음으로 대입해서 공부하면 평생 외국인의 액센트를 달고 살 수밖에 없기에 절대 이렇게 공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덴마크에 대해서 쓴 많은 블로그 글에 완전 off한 발음들이 구전에 구전을 거듭하여 먼 한국까지 전파되는 게 안타까워 오지랖이 넓게도 이 글을 쓴다.

 

임신, 입덧, 덴마크 생활

요며칠 입덧이 심해서 하루에 1~200 그램씩 빠지는 것 같다. 최소한의 먹거리만을 먹고 버티고 있는데, 먹고 토하는 일이 잦아지니까 먹기도 살짝 겁나고 안먹자니 애한테도 좋지는 않을 거 같아서 최소한 먹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시험은 코앞으로 다가와있는데, 공부도 요며칠 하나도 안하고 놀고 있다. 다행인건 스트레스도 별로 받는게, ‘아, 임신해서 몸이 안좋아서 시험 못치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근거없는 생각 때문이랄까. 그나마 그간 성적을 잘 받아두어서 한두개 좀 못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도 없거니와 하나는 내가 쓴 페이퍼를 근거로 시험보는 것이라 이미 고생해서 낸 것에 대한 평가가 시험의 큰 몫을 좌우하기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다.

어느덧 임신 7주. 시어머니와 함께 임신 후 처음으로 병원을 다녀왔다. 멀리 Bornholm에 살고 계시지만 내일 새벽같이 시누이와 첫손녀와 함께 셋이서 떠날 2박 3일의 짧은 런던여행을 위해 Holte에 잠깐 와계셨다. 그 전에 병원 갈 때 혼자 가기 그러면 언제고 이야기해달라고 하셨는데, 비행기로 오셔야 하는 시어머니 일부러 오시라 하기 뭣해서 그냥 혼자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혹시 말씀은 드려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드렸는데 잘 한 일이었다. 마침 와계시기도 했고 기뻐하시며 같이 가주신다 하셨다.

시어머니와 함께 간 것은 잘한 일이다. 남편 CPR번호도 기억이 안났는데, 시어머니가 기억하고 계셨고 (그런게 필요할 줄이야), 남편 가족 병력 등에 대해서도 문진을 했는데 그 또한 시어머니가 답변해주실 수 있었다. 쌍둥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우리 가족에는 그런 이력이 전혀 없다 했더니, 시어머니가 자기네에는 이력이 있다 하신다.

앞으로의 병원 일정은 12~13주 중 다운증후군 검사 1차, 25, 32주에 있을 초음파 검사 및 기타 아이에 대한 상세 검진이 거의 다 인것 같다. 나머지는 나의 출산을 담당할 산파와 만나서 할 일들이 있고, 출산 교육 등이 있는 모양인데, 그건 산파가 나에게 연락을 준다고 하니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다. 아, 의사가 덴마크의 모든 병원 기록이 다 전산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임신과 관련된 것만큼은 문자 그대로 Paperwork이 아직도 살아있다면서 노란 봉투에 관련 내 임신 정보를 기록해서 넣어주었다. 앞으로 모든 진료시 항상 지참하라며. 이 아날로그식이라니. 모든 정보가 다 전산으로 날아오다가 갑자기 이런 노란봉투를 받아드니 월급봉투라도 받은 듯한 느낌이다.

다음 병원 일정에도 시어머니가 가주신다고 하니 이번엔 그냥 마음의 부담 없이 부탁하련다. 같이 가주시면 기쁘겠다고 말씀드리니 Bornholm에서 날아오신다고. 아. 이 감사함. 이 먼 덴마크에 내 부모와 떨어져살며 한켠으로나마 기댈 시댁이라는 구석이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시누이가 시어머니께 엽산 꼭 챙겨먹으라고 알려주라 했다는데, 시누이도 뭔가 참견하는 듯하게 보일까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나보다. 🙂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보라는데 사실 뭘 물어봐야할지 잘 모르겠고, 책이나 각국 정부 보건당국에서 제공하는 홈페이지도 워낙 자세하게 정보를 담고 있으니 아무래도 먼저 연락하게는 잘 안된다. 참 좋은 시누이인데도 괜히 폐끼칠까봐 어려운 건 한국인이라 그런걸까?

병원을 나와 같이 커피한잔 (나는 초코우유 한잔)을 함께 하고 장을 본 뒤 각자 방향으로 향했다. 옌스랑 대화해도 쓰는 어휘가 한정되어 있는데, 병원에서 의사를 보거나 시어머니와 대화를 한다거나 할 땐 평소엔 잘 안쓰던 어휘도 쓰게 되서 좋다. 요즘 학원도 쉬다보니 듣기는 되도 뭔가 말은 퇴화하는 느낌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역시 집중력의 문제인 것 같다. 꼭 써야된다는 생각이 없으니 요즘 다시 덴마크어 비중이 줄어 반반 정도 쓰는 거 같다. 복잡한 건 대충 영어로 이야기하고 일상 대화만 덴마크어로 하는? 집에서도 다시금 덴마크어 비중을 늘려봐야할 것 같다. 곧 방학도 하니 더욱…

뭔가 약간 퇴보하나 하는 불안이 드는 와중 하나 위안이 되는 건, 대학원 덴마크 친구가 자기는 지방 방언도 좀 심하면 못알아 듣는데 내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겠다면서 나에게 억양이 별로 없다고 해준 것이다. 옌스가 너 발음 좋다 이렇게 이야기해줘도 뭔가 그냥 자기 아내니까 격려해주려 하는 이야기로 들리고 덜 객관적으로 들렸는데,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나의 덴마크어 미래가 전도유망하다는 착각을 더 하게 해줬다고나 할까? 흠흠.

시간이 지나면서 덴마크에 친구도 서서히 늘고, 이제 내 피를 나누는 가족도 곧 생기고 할테니 뭔가 정말 조금씩 뿌리를 내리는 기분이다. 아직도 나에게 내 나라는 한국이지만 이곳도 이제 내 나라가 될 것이니까.

입덧에 제대로 식사 못하는 아내를 위해 생일 아침상으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차려주는 남편도 있고, 병원간다고 멀리서 와주시는 시어머니도 있고, 다 감사하다. 인생의 많은 일들은 그간 걸어온 일과 우연이 만나 얽히면서 생기는 놀라운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을 떠나 일을 해보고 싶다 했던 아주 초등학교 3학년짜리의 꿈은 내 직장 선택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를 통해 이곳에 와있었고, 그간 잡다하게 해왔던 취미와 한국에선 드세다고 들어왔던 나의 적극적 성격은 옌스가 나에게 관심을 갖게한 동력이 되었다. 많은 연애 실패담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를 깨닫게 해주었고, 결혼생활은 어때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난 그는 나와 결혼과 인생관이 놀랍도록 흡사하게 닮아있었으며, 또한 다른 부분이 있어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있다. 우린 스스로의 자유를 갈망하면서 같이 함께 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갖고 있기에 서로 잘 이해해줄 수 있고 지지해줄 수 있다. 애가 생겨서 인생의 많은 변화가 생기고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잘 헤쳐갈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다. 일부러 상처를 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성격덕분에 문제를 차분히 잘 해결해나갈 수 있으니까.

정말 애를 가져도 좋겠다고 확신이 선 순간 이렇게 아이가 찾아와준 점 정말 고맙다. 앞으로 남은 기간 별 문제없이 건강하게 커주고 태어나주기만을 바랄뿐이다.

현지에서 배우는 언어의 학습곡선

언어는 그 말을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 살면서 배우는 게 빠르다는게 맞다는 걸 거의 매일 실감하고 있다. 아직 그린카드비자로 변경이 완료되지 않아 수업료 내면서 비싼 수업을 듣고 있긴 하지만, 학원을 최근 바꾸고 모듈도 3으로 올라가면서 빠르게 늘고 있음을 느낀다. (사족. 요즘 그린카드 발급에 6개월 이상이 걸린단다.)

언어 배우는 것을 취미로 여겨온 터라 언어의 학습곡선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간 몸소 느껴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해당 국가에 직접 살면서 배워본 것은 처음인지라, 이를 보다 명확하고 빠르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초반에는 주변 모든 것에 흥미를 느껴 금방 이것 저것 조금씩 말하는 것이 가능해, 그 전에 하나도 말을 못하던 것에 비하면 빠르게 느는 것 같아서 흥분된다. 길에 보이는 싸인 하나하나도 새롭게 보이고, 그것을 이해하는 나를 보면서 흥분하게 된다. 그 신기함에도 익숙해지고 나서 그런 느낌이 사그라들고 나면 내 실력의 현주소를 다시금 무겁게 확인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모국어로 표현해내는 풍성한 내용인데, 나는 아주 어린 아이와 같은 수준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별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크게 느끼고, 누군가에게 이 언어로 대화를 시도를 하기에 스스로도 답답하다보니 할 수 있는 언어로 전환하고 싶어진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크게 안느는 것 같은 시기가 온다.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현지생활에서 단순하게 쓰는 말들이 익숙해진다.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하거나 등 자주 반복되는 말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도 말 할 수 있게 된다. 내 말을 알아듣기만 해도, 그리고 그 대답을 대충 짐작하고 답변하는 것으로 감동받던 시기는 어느새 과거가 된다. 막상 이런 단순한 대화는 늘었는데, 조금만 주제가 복잡해져도 대화가 삐그덕거릴 때 다시금 이 말은 언제 느는 것인가 하면서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내 말의 속도와 발음이 개선되면서 상대도 평상시처럼 대화를 하면, 다시금 대화가 어렵다고 느낀다. 그리고 방송과 전화 등 비대면 언어는 알아듣기 매우 힘들다. 분절되지 않은 소리의 덩어리가 뭉게져 스쳐지나간다. 웅얼거리는 것만 같은 소리. 또는 뭔가 들리는 것 같지만 그 소리를 머리에서 처리하기에 실제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와 내 머리에서 언어로 재구성하는 속도사이에 격차가 너무 크다. 새로운 소리가 계속 흘러들어오는 탓에 새로운 말을 듣지 못하거나, 내용의 해독을 할 수가 없다. 매일 듣는 지하철 방송도 무슨 이야기인지 남에게 물어봐서 다 알고는 있지만, 그 소리가 나에겐 완벽하게 들리지 않는다. 매일 듣는 방송도 아직도 안들리다니, 하면서 도대체 언제 느는지 싶고 지친다.

어느날 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낀다. 뭉게져 들리던 소리뭉치가 깨끗한 음절로 분화되어 들리고, 라디오 방송도 들리기 시작한다. 집에 오던 광고 전화에 덴마크어 못한다고 초장부터 이야기하던 내가, 덴마크어로 대화를 끝마친다. 주로 왜 걸었는지 설명 듣고, 옌스가 집에 없고, 언제 올 것인지, 또는 내가 답해줘도 되는 전화이면 그 답을 해주는 정도에 그치지만, 장족의 발전이다.

귀가 뚤린다는 것은 어휘의 증가와 현지인이 말하는 말투에 익숙해지는 것, 내가 기존에 하던 말을 번역하지 않고 그나라 말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 다 결합되어 생기는 일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귀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방송에 나오는 말들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더라도 소리가 정확히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덴마크어 배운지 9개월 거의 가 되어가고 있으니, 대충 만 8개월차부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나니 ARS 음성 안내가 더이상 스트레스가 되지 않고, 집에 간혹 전화가 오면 대화를 할 수 있다. 1년 정도면 귀가 뚤린다고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겠다.

영어 공부의 경험을 토대로, 모르는 단어를 맥락으로 파악하고 넘기는 노하우와, 꼭 이해해야 하는 동사를 파악해서 사전을 찾는 노하우가 쌓인 덕에 신문도 이제는 대충 내가 아는 주제의 기사라면 집중해서 읽어낼 수 있다.

옌스와 덴마크어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고, 한시간 대화는 큰 스트레스도 없다. 매일 무슨 일을 했는지, 수업에 무슨 공부를 했는지 설명을 하다보니 반복 학습도 되서 좋다. 덴마크어는 발음만이 아니라 영어와 조금 다른 문장상의 강세 표현이 중요한데, 옌스와 최근 들어 시작한 읽기 연습이 강세표현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게 말을 알아듣는데도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대학원 졸업하기까지 약 3년의 시간 동안 덴마크어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만 늘어준다면, 앞으로 이곳에서의 삶이 참 좋을 것 같다. 주변에서 남친이나 남편이 자기의 덴마크어를 인내해주지 않아서 언어가 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많은데, 연습만이 숙달의 지름길이라면서 채찍질을 해주는 옌스에게 감사의 말을 (본인은 이 글 이해 못하지만…) 하고 싶다. 그리고 빨리 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나에게, 그러다가 또 잘 안되는 날이 오기도 하고, 그게 또 당연하다고 이야기해주는 게 참 고맙다.

물론 덴마크어가 영어와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속도의 발전이 가능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곳에서 살지 않았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었던 학습곡선이다. 이곳에서, 한국에서 산 이상의 시간을 살게 되면 언젠가 영어보다 덴마크어가 편해지는 날도 있겠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제논의 역설이 성립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것은 농담.)

덴마크어 공부하기

덴마크어를 한국에서 배우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교재를 구하기도, 과정을 찾기도 어렵다. 영어로 된 교재를 찾는 것도 어려운데, 한국어로 되어 있는 교재를 찾는 것이 쉬울리가 없다.

그러나, 기쁘게도 영어로 되어 있는 교재는 늘어나고 있다. 아이북스를 통해새도 덴마크어 책과 동사변형 책, 문법 책 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몇가지 온라인 교재가 있는데, 이를 공유하고자 한다.

  1. http://onlinedansk.ventures.dk/ – 온라인댄스크(온라인 덴마크어). 어디선가 링크를 옮겨타다가, 정부가 운영하는 사이트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찾아보니 어디에서 이를 봤는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학원에서 모듈체게와 EVA체계로 배우는 내용을 순서대로 담았다. 이런 사이트는 없었던 것 같은데, 매우 좋은 사이트라고 생각한다. 예전 모듈 복습할 때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2. http://basby.dk/ – 배스뷔(덴마크 성 중에 하나). 문법과 발음에서 엄청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Studieskolen이라는 코펜하겐 소재 어학원(현재 나는 모듈 2까지 다른 학원에 다니다가 지난 주부터 이곳으로 옮겼는데, 최고의 학원이라고 할 만 하다고 느꼈다. 그간 수업시간 문제로 집근처 어학원에 다니다가 영 안맞아서 옮겼는데, 구관이 꼭 명관은 아닌 모양이다.)의 선생님인 Anders Basby(애너스 배스뷔)가 운영하는 페이지인데, 아주 훌륭한 사이트다.
  3. http://lexin-billedtema.emu.dk/billedtema/sprog/dansk.html – 렉신 빌를테마(어휘-사진테마). 덴마크 어휘 학습에 탁월한 사이트다. 그림과 함께 단어를 학습할 수 있고, 덴마크에 많이 거주하는 나라 언어를 중심으로 번역된 내용을 제공한다. 영어로 학습하면 충분하다. 사실 영어로도 모를 단어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 그림으로 잘 표현되어 있기에 굳이 영어로 번역해서 볼 필요도 없다.
  4. http://www.alfabetaforlag.dk/ – 알파베타포레이(알파베타 출판사). 덴마크어 교재 출판사 홈페이지다. 책마다 듣기와 영상파일, 해당 파일에 대한 텍스트를 무료로 제공한다. 듣기 공부에 참 좋은 것이, 온라인댄스크는 외국인 학습자에 맞추어 발음을 정확하고 천천히 해주는 데 반해, 이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파일은 일상 대화와 같이 주어진다.
  5. https://www.duolingo.com/ – 듀오링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듀오링고는 모바일 앱으로도 쉽게 이용할 수 있어서 덴마크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그러나 어느정도 학습이 이뤄진 다음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이전 포스트에서도 썼지만, 덴마크어는 영어 및 독일어와 유사한 점이 많이 있다. 덴마크어는 북게르만어군, 영어는 서게르만어군에 속하며, 게르만어는 독어이기 때문이다. 중간에 분화된 형제 언어라 다르긴 하지만, 문법이 상당히 유사해, 두 언어간 문법적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재미있다. 직역을 했을 때 의미가 상당히 전달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이 때문에 비영어권 국가 중 가장 영어를 잘한다는 나라 중 하나인 덴마크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표현들도 있다. 이것은 나중에 다뤄볼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구글 번역이 쓸만하게 작동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덴마크어를 배울 때 중요한 것은 발음이다. 덴마크인은 유독 발음에 까다롭다. 정확한 위치에 단어 상의 강세와 문장 상의 강조를 지키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한다. 부드러운 D는 처음 배울 때는 토하는 발음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Rød grød med fløde(크림을 얹은 빨간 그뢸(횔과 뢸의 중간발음, 콩포트류의 덴마크 과일 조림)은 덴마크어를 배운다고 하면 간혹 해보라고 시키는 문구중 하나이다. 덴마크어 초급 때 저 발음 하려면 진짜 구토할 것 같다. 목 뒷쪽을 쓰는 소리라 그렇다.

Rød grød med fløde

Rød grød med fløde

따라서 덴마크어에서 발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영어를 배울 때 발음에 집착하던 나에게 유난을 떤다고 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덴마크어는 선생님들 조차도 간혹 학생들의 발음을 잘 못알아듣곤 한다. 이러한 발음에 대한 집착은 덴마크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좋은 학습 기반이 될 것이다.

오늘 학원 수업을 마치고 S-tog (일종의 광역도시간 열차 정도 되겠다.)를 기다리는데, 하필 배차시간이 10분에서 20분으로 늘어나는 시간대에 막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도착을 해서 뭔가를 할 짬이 났다. 덴마크어 동사변형을 외우려고 앱을 열고 중얼중얼하다가, 아… 앞으로 10년은 해야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약간 힘이 들기도 했다. 삼십대 중반에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러나 다시금, 이건 내 선택이고, 원래 언어 배우는 거 좋아하잖아. 하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한국가서 옌스와 이야기 할 때, 남들이 못알아 듣게 이야기하고 싶은 건 덴마크어로 이야기를 하니 우리만의 비밀언어가 생긴 거 같아서 재미있었다. 유치한 우리 커플에겐 이런 소소한 거리들이 참으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는데, 그런 건 또 적어봐야겠다. 시간이 지나도 보면서 다시 웃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