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옌스

발레수업이 갑자기 취소되었다. 선생님이 아프시다고 한다. 발레학교가 방학을 했을 타이밍에 보강을 하신다고 메세지가 왔길래 이 저녁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클라이밍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발레 수업을 찾아볼지 등등. 결국은 집에서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온라인 바수업을 유튜브로 보면서 조금 움직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스트레칭이나 좀 하려고.

홀로 삼십분 정도 바워크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하나를 재우고 내려온 옌스가 소파에 앉아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왜그러냐고 물어보니, 아름다운 아내가 앉아서 스트레칭 하는 모습이 보기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발레용 워머인 onesie 입고서 머리 질끈 묶어 똥머리를 하고 큰 헤드폰 끼고 있는 와이프가 뭐 그리 이쁠까 싶지만, 그렇게 봐주는 남편이 있어서 행복하다. 그러면 스르르 웃음이 흘러나오며 사랑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연애와 관련해서 자존감이 낮아서 항상 연애가 힘들었던 나에게 온전히 사랑받는게 어떻다는 것인지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었던 옌스. 우리가 함께한지 3개월이면 십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항상 일상 속에서 그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충만해진 감정을 나도 돌려주고 또 받고… 처음과 같은 설렘은 흐려졌지만 지금도 간혹 차려입은 옌스를 보면 마음이 떨리기도 하고, 옌스도 그렇다고 한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옌스를 만나 가정을 꾸린 것이다. 살면서 어떤 풍파가 있을지야 지금으로선 모르겠지만, 이 타국땅을 내땅으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가족의 뿌리를 여기에 잘 내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준 옌스 덕임이 틀림없다.

남편과 싸우는 이유

남편과 크게 싸우는 일은 없어도 간간히 짧게 투닥거릴 일은 생긴다. 주로 내가 팩 하고 성질을 내는 경우이다.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왜 성질을 내나. 이는 자격지심과 동서양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차이의 버무림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내가 부족하다 스스로 느끼는 부분에 대한 주제를 (내가 느끼기에) 내포하고 있을 때, 그리고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뭔가 시사점이나 의도를 (역시 내가 느끼기에) 내포하고 있을 때 나의 방어기제가 작동하며 팩 성질을 부리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 옌스라고 이기적인 생각이 없겠느냐만 이는 대체로 이타와 중립을 선택함에 있어서 중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음에서 이기적인 거고, 나는 중립과 이기의 선택에서 이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음에서 이기적인 것이기에 둘 간에는 차이가 있다. 이 이기적인 마음을 나라고 좋아하는 건 아닌데, 상황에 따라 자기합리화도 해가며 이기적인 선택을 하곤 하니 이는 내 숨기고 싶은 성격이다.

오늘 좋은 날씨, 시주모님과 함께 아파트 정원의 테이블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테이블이 딱 두개가 있는데 혹여나 이 좋은 날씨에 자리가 채일까봐 약간 부족한 찬거리를 장보러 가기전에 자리를 맡고자 했다. 삼십분 후면 상을 차릴 거라 크게 무리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고. 옌스가 하나랑 잠시 화장실에 들르러 집에 돌아온 김에 테이블보와 살라미를 썰어먹을 도마릉 미리 갖고 내려가라고 했더니 그렇게 미리 갖고 가기 그렇다는 거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미리 테이블을 맡으연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짜증이 확 치밀어올랐다. 어쩌면 그런 마음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걸 갖고 한 몇분 투닥거려도 결국 매번 그렇듯 옌스의 화해의 제스쳐로 별 일 아닌 듯 일은 마무리 되었다. 옌스는 바람도 많이불고 그 남은 삼십분동안 자기와 하나, 시부모님은 놀이터가러 자리를 비울텐데 그것만 거기에 덩그러니 두기 그래서 그랬다 말하는데, 그것까지 듣고 났더라면 그렇게 팩 하지 않았을 것을 나혼자의 자격지심에 갈등을 만든 것 같아 마음이 좋진 않았다.

이래저래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관계에서 내가 갈등을 초래하는 일이 생기는 것 같아서 조금 더 조심하고 적극적으로 소통을 해야겠다 느낀다. 넘고짚고 오해하고 불필요하게 상처받고 주는 일은 줄여야겠다. 가까운 사람일 수록 부대끼는 시간도 많고 서로 잘 안다하는 생각에 더 넘겨짚고 오해하게 되는 것 같다. 더 조심하고 아껴야지.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