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손님 초대상

지난 주말 손님을 초대했다. 커플 저녁. 친구의 출산 예정일이 그 다음 주인데, 출산 중 첫째애를 돌봐주기로 했다하여 혹시나 그 날 출산하게 되면 갑작스레 못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준 상황. 실제 그 날 낮에 애가 태어나 저녁 식사가 한시간 뒤로 밀렸으나 운이 좋게도 출산이 빠르게 진행되어 계획한 날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유쾌했던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네시간 동안 계속된 담소가 즐거웠다. 내 커플 인간관계가 옌스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주로 이뤄지는데, 그 중심이 커플 당사자의 양쪽에 어느정도 분배가 되어야 장기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둘의 인생이 만난다는 걸 인간관계 형성에서도 느낄 수 있기에. 특히 내가 이민생활을 해서 그런게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역사, 문화를 공유하는 친구가 있는 건 의미가 또 다른 것 같다. 그래서 국제커플간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 중요하다.

후무스와 화이트브레드칩, 크렘프레시와 딜로 버무린 연어를 넣은 핑거파이쉘을 에피타니저로 준비하고, 갖은 채소로 만든 바질페스토 쿠스쿠스 샐러드와 모과드레싱과 토스티드 호두를 넣은 사과 윈터샐러드를 곁들여, 감자/고구마를 밑에 깔고 오븐에 구운 닭다리 요리를 메인으로 준비했다. 디저트로는 옌스의 크렘브륄레와 오렌지 소르베에 이어 달콤한 디저트와인과 칸투치니를 내었다. (주 1회 한잔은 괜찮다니까, 나도 한잔. 😉 임산부의 음주라는 사치는 덴마크니까 가능하다. 흠흠. 좋네.)

배가 터지게 먹을 걸 알고 있어서 아침, 점심 간단히 해결했지만, 여전히 배는 터질 것 같았다. 약간 음식을 여유있게 준비했기에 다음 날 저녁 요기거리가 될 만큼이 딱 남았다.

손님을 초대하면 좋은 점이 사치스럽다는 생각 없이 꽃을 집에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나혼자 보자고 꽃을 사올 때면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날엔 자신있게 한다발 집어들고 들어올 수 있는 것. 그리고 손님이 갖고 오는 선물도 기대가 된다. 그날 같이 마실 와인이나 초콜렛이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날과 같이 예상하지 못했던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을 수도 있는데, 집에서 직접 담근 맥주와 김치의 맛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

우리가 아주 즐겁고 유쾌한 저녁을 보낸 것처럼 그들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앞으로 있을 교류가 더욱 기대된다. 이제 임신도 30주차에 접어들었는데,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해서 장 보고,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까지 하루에 바삐 움직이며 다 처리하는게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임신 전에도 항상 토요일 손님초대 = 빡빡한 일정, 이런 공식이 성립되서 다음 날엔 뻗곤 했는데, 이젠 요령이 늘어 다음 날 뻗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냥 배도 좀 뭉치고 힘들더라. 출산 전까지 누군가를 더 초대한다면 (그러려는 계획이었는데) 좀 더 가벼운 디너를 준비하거나 출산 뒤로 미루든가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준비한 만큼 보람이 있었던 즐거운 저녁이었다.

 

어버이의 날 단상

옌스와 함께 산 날도 어느새 일년이 넘게 지났다. 우리도 곧 아이를 가질 계획인데, 이제는 정말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아이를 갖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재미를 빙자하여 이름을 논하기도 한다. 원칙은 많지만 간단하다. 덴마크에만 있는 알파벳인 ø, å, æ를 배제하고, 덴마크어 발음과 영어발음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r과 y를 배제한 다음, 한국어나 영어로 발음했을 때 이상하지 않은 이름이어야 한다. 또 Kristian처럼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이름은 배제하는 것으로. 그 다음엔 가급적 이름의 유래가 좋은 것, 들어서 이쁜 것, 현재 과하게 유행하고 있지 않을 것, 너무 구식의 이름은 배제할 것. 그런데 간단하지만 이 많은 원칙들을 다 조합하고 나면 이름 찾는게 만만치 않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생활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정하고, 삶의 패턴을 많이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만큼은 세상 대부분의 부모에게 해당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문화마다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너도 겪어보면 다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런데 짧다면 짧을 36년의 삶을 통해 보니, “다 그렇다”고 들은 게 꼭 옳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요소들이 삶을 휘몰아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소용돌이 안에서 개개인마다 다른 선택을 하고 방향을 잡는 것은 결국 개인의 원칙이 어떤 방향을 향하느냐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옌스와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전에도 지나가듯이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들이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2세 계획을 실행하기 전 다시한번 명확히 하고 싶은 것들 말이다. 난 최대한 이 사회가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활용해서 애를 키울 것이고, 애를 위해 내가 “희생”했다고 느끼는 수준으로 나를 헌신하지는 않을 것이며, 둘간에 육아에 있어서 안맞는 방식은 대화를 하겠지만 최대한 상대의 방식을 존중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사회가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활용해서 애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보육원에서 받아주는 생후 6개월부터 애를 보육시설에 보내고 난 내 학업과 향후 이어질 커리어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 많은 엄마들이 지향하는 애착육아는 내 육아방식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옌스는 애와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은 안된다는 것과 애가 가족에서 중요한 일원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 둘이 모두 중요한 당사자인 점, 아이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또한 그에 동의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키워보라거나, 애를 생각해보면 그런 방식은 이기적이라는 반응을 얻게된다. 그리고 실제 나도 애를 갖게 되고 키우다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고 내가 선택한 방법이 맞는 것인지 무수한 고민을 하고 방식에 수정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정말 많은 방식의 양육이 있는 것처럼 그 무엇에도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내 나라를 떠나 이민을 오고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남편과 결혼하며 생긴 가정의 문화는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어느게 옳고 그른 게 없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이 정답이라 믿고 가는 것, 그게 정답이 아니면 중간중간 수정해 가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게 앞으로 우리가 해나갈 일이다.

내년 이맘때면 나도 과연 어버이의 대열에 속해있을 지가 궁금하다. 카네이션은 못받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