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게 별로 없는 덴마크 유치원?

한국을 다녀오면 유치원에서 하나에게 남은 시간은 보름도 채 남지 않는다. 방과후 학교로 넘어가 학교 입학까지 3개월의 시간을 보내는데, 여름 휴가 기간 3주를 제외하고 나면 2개월 정도 시간을 보낸 후 8월 초부터 0학년을 시작하게 된다. 왜 서구는 주로 가을에 학기를 시작할까 생각을 했는데, 아마 여름방학이 길고 연말연시 연휴기간방학, 겨울방학, 부활절 휴가기간, 가을방학 기간 등은 1~2주 정도로 짧게 쉬다 오는 것들이라 한 학년을 끊기에 애매한 기간이라 그런게 아닌가 싶다.

2023년 중에 만 6세가 되는 아이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해에 0학년을 시작한다. 이보다 1년 먼저 일찍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고 늦춰서 만 7세가 되어 시작하는 애들도 있다. 덴마크는 의무교육이 10년으로 정해져있는데, 이를 꼭 학교에서 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가정에서 해도 무방하다. 즉 어디서 하든간에 0학년에 되는 시점부터 의무교육이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글을 배우고 기초적인 산수와 과학, 예술, 체육활동 등을 하는데, 기존에 유치원에서 놀이처럼 배우던 것이 책상에 앉아서 좀 더 학습처럼 배우는 형태를 띄게 된다.

아직까지 학교에 애를 보내지 않아서 학교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덴마크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뭘 하는지는 좀 빠삭해졌다. 한국인 부모 중에는 덴마크 어린이집/유치원보다 한국 어린이집/유치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개인의 교육관과 취향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덴마크 기관이 내 교육관과 취향에 맞는다.

덴마크 기관에서는 0학년에 가기까지 앉아서 뭘 가르치지 않는다. 앉아서 뭘 하는 건 레고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오리고 붙이고 만들고, 밥 먹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안과 밖에서 몸을 써 놀고, 운동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특별한 스포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이라고 하면 요가정도? 이 또한 아이들에게 체육 활동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시에 따라 조용히 움직이면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 신체에 일어나는 일에 집중을 하면서 조절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시키는 거다. Mindfulness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데, 그 시간에 뭐하냐고 물어보면 요가 매트 깔고 눕거나 앉아서 눈을 감고 호흡에 초점을 맞추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거라고 한다. 그러다가 간혹 10-15분씩 파워냅을 하기도 하고.

그밖에 노는 건 정말 뛰어 노는 거다. 지금 유치원에는 실내 암벽이 없는데, 예전 유치원에는 앞에 두툼한 매트리스를 깐 실내 암벽이 있어서 이미 두돌 반 때부터 이 벽을 원숭이처러럼 타고 놀았다. 비가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루에 한번은 꼭 밖에서 놀고, 비가 오는 날도 비가 그치면 나가서 논다. 그러면 옷이나 장화는 정말 진흙과 모래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어서 애를 데리고 올 때가 되면 그게 다 말라 붙어서 옷을 접으면 흙덩이가 부러져서 떨어져내린다. 그나마 말라있으면 다행이고, 그 진창 옷을 집으로 가져갈 때면 들고 가기도 정말이지 번거롭다. 자주 빨 수 있는 옷이 아니니까 집에 가서 말려 털어보내야 한다. 특별히 다칠만한 위험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은 대부분의 활동에 대해서 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다쳐오는 일도 종종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몸을 쓰는 법을 배우고, 건강하게 큰다.

운동이 아닌 활동은 소근육 발달을 위한 그림그리기, perler (한국에서는 펄러비즈라고 하던데, 판에다가 플라스틱 비즈를 끼워서 모양을 만들고 다림질을 해 이것저것 만드는 것으로 덴마크 기업이 만든 것) 판에 끼워 만들기, 부활절, 할로윈, 크리스마스 등 시즌에 맞춰 실내 장식할 때 뭔가 오리고 붙이고 만드는 공작 같은 창의력 향상 활동이 한 축을 이룬다. 또 다른 축으로는 아침에 모여서 조회시간에 노래 부르는 시간. 운율과 음율을 맞춘 동요가 많고, 학교에 가서도 운율과 음율에 많은 비중을 둬서 교육이 이뤄지는데, 같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게 조직내 소속감 등을 고양시켜준다고 해서 덴마크인들은 이를 교육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산수를 따로 배우지는 않는데, 뭔가 생활속에서 이런 저런 것을 배우는지, 2+2는 4, 4+4는 8, 8+8은 16, … 이런걸 나에게 와서 말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일상 속에 엮어 산수도 배우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도 물론 빼 놓을 수 없다.

기타 공동체 생활을 위해 유치원에서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 옷입고 벗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상황에 돕게 한다거나, 식사 당번을 정해서 배식을 돕게 한다. 또 일주일에 한번 씩 왕따 방지 교육을 해, 뭐가 괴롭히는 것인지, 그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해당 당사자와 주변인의 역할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배운다.

유치원에서 뭔가 다양한 수업을 하지는 않지만, 어른들이 만드는 놀이나 학습에 애들이 참가하는 형태가 아니라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놀이를 만들고 노는데 익숙하다.

다만 애들은 좀 꾀죄죄하다. 옷이 더러워지고 헤지고 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애를 데릴러 갈 때 보면 애들이 죄다 꾀죄죄하다. 머리도 엉망진창, 얼굴과 옷도 여기저기 더러워져있고. 좋은 옷은 살 필요가 없고, 유치뽕짝이든 뭐든 애들 취향에 맞춰 대충 저렴하고 튼튼한 옷을 사주면 된다. 괜히 좋은 옷 입고 가서 더러워지고 찢어지면 아깝기나 하지.

아침이면 15분 정도 침대에서 뒹굴며 잠을 깰 시간을 주고, 일어나서 옷 갈아입고, 머리도 자기가 빗고, 부엌에 내려가서 자기 먹을 아침식사 직접 챙겨다가 아빠랑 아침 식사 하고, 겉옷 챙겨입고, 도시락이랑 물통 가방에 챙겨 넣어 집을 나서고, 혼자 놀 땐 놀고, 도움을 필요할 땐 도움을 요청하고 등등 하나의 인간으로서 역할을 다 한다. 도시락이야 내가 싸주지만, 그나마도 내 옆에서 간혹 거들때도 있고, 빨래랑 밥해주고, 책읽어주고 조금 놀아주고 여기저기 데려다주는 역할 때면 내가 하는 게 진짜 별로 없어졌다. 자기 주도성, 스스로를 돕는 자조능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능력, 자기가 필요한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 못하는 것도 연습하면 늘게 되어 있음을 알고 꾸준히 하는 것 등 물론 가정교육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것들이 유치원에서의 교육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시간이 흐르고 보면 한국에 있는 아이들이 여기에 있는 아이들보다 더 많이 배워 좋은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애들이 즐겁게 놀고 어른의 과도한 통제 없이 적당한 상처도 입어가면서 보다 창의적으로 자신을 배우고 성장하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면서 사회성 기르는 이곳이 나는 마음에 든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규칙을 잘 지키고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 더 초점을 두는 것도 마음에 들고. 결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줘야 하는 것인데, 그 근간을 유치원에서 닦을 수 있는 것이 좋다. 내가 선행학습과 안맞았던 사람이라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적당한 시기의 적당한 자극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야 학교 가서 하면 된다 싶다.

주변의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하여 개개인이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야 말로 정말 가르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유형의 것으로 보여주기 어렵지만 아이의 매일을 통해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덴마크 공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취학전 전환기 상담

반차를 내고 아이 유치원에 가서 취학전 전환기 상담을 하고 돌아왔다.

한국과 달리 덴마크에서는 0학년이라고 정규 과정 전 1년을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학교에서 보내게 한다. 0학년에서 보내는 시간은 시간의 양적 총량에 있어서 유치원에서와 다를 게 없지만 활동의 종류와 성격, 교사 1인당 배정되는 아이 인원수 등에서 차이가 꽤 난다. 덴마크는 보육원에서 유치원으로, 유치원에서 학교로의 전환 등에 있어서 그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인근 유치원을 몇차례 방문해서 아이들과 얼굴을 익히기도 하고, 반대로 아이들이 학교를 방문해 0학년의 생활을 간접 체험하며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지 등을 미리 익힐 수 있게 도와준다. 유치원으로 올라갈때도 같이 올라가는 아이들이 훨씬 긴 기간동안 틈틈히 유치원을 방문하게 해 전환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불안함을 최대한 낮춰주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어려서 보육원에 다닐 때는 육아를 이렇게 하는 게 맞는건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 등에 있어서 하원길에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고, 유치원에 처음 올라가서도 계속 이어진 통합 유치원이라 선생님들과도 관계가 깊어지니 대화를 할 일이 많이 있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와 시작한 처음 유치원에서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다른 애들을 떼리고 소리지르는 아이들이 많아서 1년의 짧은 기간동안 하나가 너무 힘들어해서 이런 상황을 개선해보기 위해 상담을 할 일들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번 유치원에서는 내내 하나가 너무 잘 지내서 선생님과 가벼운 인사 정도 이외에는 크게 이야기를 할 일이 없었다. 중간 중간 잘 지내는지, 문제는 없는지 물어보기는 했어도 너무 잘 지낸다 하니 딱히 더 물어보기도 그랬고. 그런 연유로 이런 상담이 너무 오래간만이라 그간 하나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유독 궁금하고 살짝 긴장마저 되더라.

하나는 중간중간 짧게 들었던 피드백 그대로 너무 잘 지내고 있었다. 주변 상황을 잘 살피고, 민첩하고, 다른 사람을 돌볼 줄 아는 아이란다. 모든 발달 측면에서도 그 나이에 맞는 발달을 하고 있되 뛰어난 쪽에 속한다고 한다. 용감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에 두려움이 없고, 시도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적절히 한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들이 와서 활동을 하면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쭈뼛쭈뼛 위축되서 눈치만 보는 아이들도 있다면, 우선 당면한 과제에 바로 참여해서 질문을 해가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한다.

타인과 큰 갈등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없는데, 자기의 목소리도 낼 것은 내되 협상을 잘 하고 모두를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시키고, 양보할 때 양보하기 때문에 그렇다며, 삐져서 혼자 토라져 있는 형태로 갈등을 피하는 게 아니라 갈등 상황을 잘 해결한다고 한다. 그 점 참 마음이 놓이는 이야기였다. 살면서 수많은 갈등상황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줄 안다는 건 큰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규칙을 잘 이해해서 뭘 해야하고 하면 안되는지 잘 알아서 그를 잘 준수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누군가로 인해 분위기가 많이 안좋아지거나 위험하거나 등 하면 필요한 타이밍에 어른에게 알려준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자질쟁이 같은 식으로 하는 건 아니고 제지할 수 있는 건 제지하고 크게 위해가 되지 않으면 어른이 개입할 때까지 개입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니 내가 아는 하나가 맞다.

놀이를 만들어내는 창의성이 좋고 아이디어가 많은데 판타지 동물 이런식의 창의성은 아니라 현실성에 근간한 창의성을 보인다니 엄마 아빠의 드라이함이 반영된 부분이 있는 거 같다. 뭔가를 만들고 그리고 춤추고 몸을 써서 하는 활동에 특히 뛰어나다니까 그 점 많이 계발해주면 좋을 것 같다.

관찰력과 기억력이 뛰어난데, 거기에 질문을 잘 던져서 언제 저런걸 알아차렸지? 정말 좋은 질문인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많단다. 그런 생각을 나만 하는게 아니었다. 그리고 지적 호기심이 뛰어나다고 한다. 어른이 하자고 하는 활동에 있어서 “나는 싫어” 라며 빠지는 것 없이 항상 적극적이고 밝게 참여해서 타인의 참여를 유발한다고 한다.

유치원에 두 반이 있는데 취학연령 아이들은 모아서 따로 큰아이 그룹을 일주일에 한두차례 운영하는데, 다른 반 아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서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있는 아이라고 한다. 본인이 사랑이 넘치는 아이라 어린 아이들도 잘 보살피는데, 하나가 있으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하나가 있음을 알게끔 그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학교 가서 너무 잘 적응할거라고 하는데 참 마음이 놓이더라.

이제 이틀이면 하나 생일이고, 삼개월이면 학교를 시작하니 얼마나 시간이 빨리 흐르는지 모르겠다. 사랑이 넘치는 우리 아이.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게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이더라. 애를 데릴러 가야지 이제.

하나 유치원 마지막날…

하나의 지금 유치원 마지막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10개월부터 시작해서 52개월인 지금까지 약 4년 가까이 다닌 이곳에 나도 정이 엄청 많이 들었다. 가장 정이 많이 들은 선생님과는 내일 픽업 담당인 내 시간이 맞지 않아서 금요일에 인사를 나눴다. 안아도 되겠느냐고 여쭤보고 괜찮다는 답을 들어서 (백신 1차 접종을 완료하셨으니..) 꼭 안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우리 집에 아이들과 소풍을 나오는 것도 매우 환영이고, 여름 휴가중에 괜찮다면 유치원을 방문해도 되겠는지도 문의하였다. 그전에 선생님한테 하나가 그래도 된다고 했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또 혹시 모르니까.

선생님들께 드릴 초콜렛 한팩과 선생님과 아이들과 함께 나눌 케이크도 한판 구웠다. 지금 오븐에서 초콜렛 케이크의 향기가 솔솔 풍기고 있는데, 하나와 함께 만들어서 더 특별한 케이크. 하나가 원하는 엘사는 내가 만들어줄 수 없지만 – 퐁당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이사 사후 작업으로 바쁜 시기에 이 이상 시간을 쓰기는 어렵고… – 하나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렛 케이크 위에 이쁘게 장식은 해줄 수 있으니까. 어떤 장식인지는 자기도 모르게 서프라이즈로 해달라고 했으니 천천히 생각을 해봐야겠다.

작별은 힘들지만, 또 새로 시작하는 시점에 정신이 팔려서 처음엔 힘든줄도 모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리움이 뒤늦게 몰려오지 않을까 싶다. 하나 친구들도 초대해서 과거의 인연도 잘 아껴 키워나가야지. 이렇게 하나가 이별을 이해하게 되고 또 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