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산후조리

영국 왕세자비가 출산 다음날에 퇴원한 것을 두고 한국에서 논란이 많이 있었다. 한국의 산후조리 관점으로 봐서 동양인도 이럴 수 있느냐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우선 한국인의 출생시 머리둘레는 WHO 기준으로 평균이기에 애 머리가 커서 산후조리가 달라야 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또 흔히 이야기 되는 것으로 서양여성의 골반이 크고 근육량이 많아서 산후조리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 있다.

같은 체중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서양모계가 동양모계보다 출산이 용이하다는 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논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학원을 다녀서 저널 논문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간혹 임신과정에 대해 일반 책자로 알 수 있는 이상 더 파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를 읽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양인과 동양인의 혼혈아기 출산시 제왕절개율로 보는 서양인과 동양인간 출산 난이도 차이 같은 것 말이다. (Michael J. Nystrom, Aaron B. Caughey, Deirdre J. Lyell, Maurice L. Druzin,Yasser Y. El-Sayed (2008). Perinatal outcomes among Asian–white interracial couples in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 Gynecology 199 (4), (385.e1-385.e5) DOI:10.1016/j.ajog.2008.0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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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중요한 연구결과를 발췌한 표이다. Cesarean delivery (CD, 제왕절개)율을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의 자녀는 33.2%이고 백인 모계와 아시아 부계의 자녀는 23.0%이다. P value가 0.001보다도 낮아 매우 유의미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같은 아시아-백인 혼혈자녀를 출산할 경우 백인 모계 출산시 제왕절개율이 아시아 모계 출산의 경우보다 10.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골반 골격 차이 등을 포함한 생물학적 차이가 이런 차이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논외의 발견이지만, 각각의 하위그룹 중 인종간 커플의 샘플사이즈를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는 690,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는 178로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 결합이 훨씬 드문 것을 볼 수 있다.)

단지 이것만 놓고 이야기하면  동양 여성의 골반이 작아 산후조리도 더 길게 해야한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백인커플과 동양인커플의 제왕절개율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더 크게 태어나는 태아로 인해 백인커플의 출산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골반 사이즈 등의 체격 조건은 서양 모계가 출산에 더 용이하지만 아기가 더 커서 서양인의 출산시 충격이 동양인보다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골반 사이즈 차이로 인해 서양여성이 더 쉽게 출산할 수 있고, 따라서 산후조리가 필요 없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근육량은 어떨까? 인종간 선천적 근골격계 질량 차이를 보면 설명이 될 것 같다. (Silva AM, Shen W, Heo M, et al. Ethnicity-Related Skeletal Muscle Differences Across the Lifespan. American journal of human biology : the official journal of the Human Biology Council. 2010;22(1):76-82. doi:10.1002/ajhb.2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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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래프의 여성 근골격량을 보면 빨간색이 백인, 보라색이 아시아인이다. 남성의 경우 아시아인은 생략되었다. (아마 적은 샘플사이즈 등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안나와서 생략된 것 같다.) 여성의 인종간 근골격량 차이는 남녀의 근골격량 차이에 비하면 근소한 차이를 보이나 회귀분석으로 나타나는 백인과 아시아인 여성간 근골격량 차이는 전연령대에 걸쳐 개략적으로 3-4킬로그램 정도로 나타난다.  어쩌면 이 근골격량의 차이가 모체에 주는 출산의 충격에 차이를 빚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근골격량 3~4킬로그램 차이는 백인여성과 아시아인 여성의 키차이를 고려하면 골반 인근 근골격량 차이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사실 난 덴마크식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덴마크식 산후조리는 사실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조언하는 바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의학계의 산후조리에 대한 조언이 덴마크 의학계의 그것보다는 우리나라 전통 산후조리 방식에 근접해 있으나, 임신 기간 중 체중 관리 및 운동에 대한 조언과 출산 후 그것에 대한 조언은 원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산후조리방식은 사실 구전으로 내려온 전통적 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사실 이는 지금과 많이 다른 과거의 주거문화 및 생활방식에 기초해 형성된 것으로 지금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출산 후 산후조리의 차이는 임신 기간 중 산모의 신체관리 방식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덴마크에서는 임신 기간 중 꾸준한 운동을 권장한다. 근손실을 최대한 막아야 출산시 용이하고 출산 후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임신중에는 무조건 휴식을 권장하고, 임신 초기 몸가짐을 조심하여 신체활동을 극히 줄이도록 주문하는데 그게 근손실에 큰 영향을 준다. 또한 의사가 체중관리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임신 기간 중 먹고 싶은 것 못먹으면 스트레스가 애에게 간다든지, 몸이 요구해서 먹는다든지, 그때 남편이 원하는 것 안사다주면 평생 한이 된다든지의 이유로 원하는 대로 먹게 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체중 증량은 임신중독증, 임신성 당뇨, 부종, 아이의 체중 증가 – 이는 아이의 장기적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한다. – 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살이 트는 것도 피부가 감당하기에 너무 빠른 체중 증량과 관계가 있다.)

근손실과 과도한 체중증가의 결합은 출산 후 신체가 받는 충격을 가중시킨다. 출산에 대비해 관절을 유연하게 만드는 릴렉신 호르몬의 본비는 출산후 6개월여까지 지속되는데, 이로 인해 출산 후 가볍게 걷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고, 애를 안거나 돌보는 일도 힘들어진다. 그 와중에 급격히 체중이 느는 아기를 돌보면서 집안일을 하다보면 신체에 무리가 오고 소위 말하는 산후풍이라는 것을 겪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모체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임신과 출산후 산후조리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신 전부터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 임신기간 중 일부 근손실에 대비하고 임신 기간 전체기간 중 기간별로 알맞는 운동을 통해 근육량의 손실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그리고 출산 후에도 초반부터 기간 별로 권장되는 운동을 함으로써 골반저 회복부터 시작해 신체 회복을 돕고, 가벼운 걷기를 포함해 서서히 정상 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산 다음날 나는 퇴원을 해 복귀했는데, 경산의 경우 출산 후 6시간 내 퇴원하는 (산모가 난산 등으로 별도의 이유가 있지 않는한) 것이 이해가 간다. 나의 경우 초산이라 출산 후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잘 예상하기 어려워 산파와 건강상담사 (Sundhedsplejerske, 간호사 중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자격을 획득한 전문상담사) 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하루 머물렀지만, 지나고 보니 바로 퇴원해도 상관없었다.

물론 앞으로도 산후조리는 시간에 걸쳐 해야하는 일이기에 추가적으로 관찰해보고 판단할 사항들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시아인이라 해서 꽁꽁 싸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지루하게 산후조리원에 앉아서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초기 한달 정도는 모유 수유 및 기타 육아의 리듬과 패턴을 수립해 가는데 적응기간이 필요하기에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막대한 돈을 들여 산후조리원에 가서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사도우미를 쓰는게 더 낫지 않나 싶다. 그리고 모자 동실 쓰는게 엄청 힘들다고 하는 글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읽었는데, 사실 애가 가장 가볍고 요구사항이 가장 간단한 신생아 시절에 미리부터 아이에 대해 알아가고 밤중 수유의 패턴 등에 익숙해지는 것이 산후조리원 생활 이후 불쑥 커진 아기와 갑자기 둘이 앉아 그제서야 아이에 대해 배워가는 것보다 수월한 것 같다. 이제 13일차 된 하나를 보면 대충 뭘 원하는 지 우는 형태로 알겠고, 아이도 부모에 대해 빠르게 익혀가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게 여러모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재미가 있다. 내 지인들은 내가 특별한 경우라고 하지만, 사실 내가 특별히 다른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유별나게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경험을 공유함으로서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니 내가 쓰는 글이 절대적이거나 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덴마크 육아기] 아기 선천성 심장기형 코호트연구 참가기

출산후 열흘째 되는 날인 월요일, 출산 병원인 헤얼레우 병원에 다녀왔다. 2016년부터 2018년 기간 중 태어나는 아이를 대상으로 선천성 심장기형에 대한 전향적 추적연구 (Copenhagen Baby Heart, http://baby-heart.dk/)가 이뤄진다고 해서 참가를 신청하였다. 첫 초음파 검사를 하던 날 해당 연구에 대한 안내자료를 받았는데, 출생 직후 탯줄에서 제대혈을 체취해 연구용으로 보관하는 것과 출산 후 약 일주일 되는 시점에 병원에서 정밀 심장초음파 검사를 받는 것이었다.

덴마크에서는 매년 450명의 신생아가 선천성 심장기형을 안고 태어난다고 한다. 이중 70%가 성장과정 중 적절한 시점에 기형의 종류와 형태에 따라 맞는 치료를 받아야 하며 선천적 심장기형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현재 22,000명 정도라 한다.

Copenhagen Baby Heart에 따르면, 이 연구는 얼마나 많은 신생아가 심장 기형을 안고 태어나는지, 연구에서 시행하는 것과 같은 조기의 일상적인 심층적 초음파 검사가 신생아에게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이 연구에서 조기에 심장기형을 발견한 아이의 경우 장기적으로 추적검사를 하며 필요한 후속 진료를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선천적 심장기형이 어떻게 생애주기를 거쳐 발전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체취한 제대혈에서는 해당 심장질환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동의서를 읽어보니 보호자로서 우려할 수 있는 것은, 선천성 심장기형이 있다고 발견되었을 때 부모가 갖게 되는 심리적 우려였다. 우선 30%는 진료가 필요없는 경우인데, 이 또한 나중에 진행과정을 보면서 진료 필요 여부가 결정되고, 70%에 해당되도 즉각적인 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에 치료를 해야 하기에 그 시점까지 부모가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옌스가 보건경제학자라 병원에서 진행하는 코호트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했고, 미리 심장질환을 알 수 있다면 그게 더 낫다라고 생각을 했기에 우리는 연구에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물론 출산한지 얼마 안돼서 병원을 가야한다는 것이 부담이긴 했으나 말이다.

열차로 두정거장 가서 버스를 타고 한 20분이면 가는 곳에 병원이 있는데 2시 반에 가기로 약속이 잡혔다. 1시 반에 집을 나서서 병원에 도착해 미리 수유를 하고 (검사 전 요건이었다.) 검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 간단히 본 것 뿐인데 4시 반이 넘었다. 애가 있으니 뭘 해도 행동이 느려지게 돼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하나는 울지 않고 검사를 잘 마쳤고, 검사하는 중 기저귀에 큰 실례를 하는 소리를 내며 소노그래퍼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소노그래퍼가 초음파 장비를 다루는 솜씨는 흡사 프로게이머가 마우스를 다루는 듯 하여 놀랐는데, 마침 옆에 있는 의사가 “당신처럼 장비를 빠르게 다루는 사람 처음 봤다.”고 말해서 내 놀라움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간에 하나가 약간 칭얼거리자 소노그래퍼가 새끼손가락을 입에 물려보라고 했다. 며칠전 집에 방문했던 건강방문사 (Sundhedsplejerske) 도 그렇게 하던데 싶어서 손가락을 물려보니 애가 젖을 물릴 때처럼 빨더라. 얼마나 강하게 빨던지 깜짝 놀랐다. 4주 정도까지는 공갈젖꼭지를 물리지 말라면서 애가 공갈젖꼭지로 살살 무는 것에 적응하면 힘들게 엄마 젖 안빨려 한다한 간호사의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손가락을 물리는 트릭으로 하나를 진정시켜 무사히 검사를 잘 마쳤는데, 다행히 하나는 문제가 없이 건강하다고 했다.

선천적 심장기형은 왜 발생하는지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 규명이 되지 않았는데, 임신 기간 중 정밀초음파로 확인할 수 없는 기형이 많기 때문에 출생 후 확인이 된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은 소아과 및 흉부외과의 진료 및 외과적 수술 등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 관리형 질병이라고 한다. 의료 비용에 있어 자기 부담 비중이 상시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덴마크는 나라에서 의료비용을 전액 부담하기에 (약제비용은 자가부담 비중이 있으나 연간 부담 상한이 있어 이를 초과하는 비용은 나라에서 부담하며 처방이 빈번한 만성질환용 약품의 경우 처방 빈도에 따라 자가 부담비중이 경감되는 구조로 설계) 이런 관리형 질병이 상대적으로 덜 부담된다. 그 점은 공공의료가 참 좋다. (일부 질병의 경우 철저히 가정의-전문의-종합병원 순으로 철저히 이뤄지는 공영의료 시스템이 병을 키우게 된다고 해 공공의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하나, 100% 공공재원으로 이뤄지는 공영의료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비용효과 (Cost effectiveness) 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갑자기 옆에서 자고 있는 하나가 꿈결에 까르르 웃더니 엄청 크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눈을 떠서 한번 더 씨익 미소를 짓더니 다시 꿈나라로 돌아갔다. 언제 이렇게 웃는 법을 배웠는고? 아이가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익힐 때마다 감격을 하는 우리는, “예전에 이런 것에 감동하며 웃는 사람들 보고 나중에 나는 그렇지 말아야지…”했던 기억을 하면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게 우습다.

첫 감기에 걸려 (심하진 않지만) 고생을 한 하나가 앞으로 크고 작게 아플 일은 많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라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다. 애가 조금이라도 아파 울면 마음이 영 좋지 않고 해결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는게 마음이 힘들어서 말이다.

[덴마크 육아기] 출산 후 5일간의 경험 – 한국과 덴마크의 차이점

금요일 새벽 6시 출산을 하고 난 뒤, 24시간의 입원 끝에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3일간 시부모님이 계시면서 집안일과 이것 저것 추가로 필요한 물건들 쇼핑, 신생아 대사검사 등을 도와주신 후 어제 떠나셨고, 어제부터는 남편과 나 둘만의 육아휴직이 시작되었다.

출산 이후 수면은 안녕. 낮잠을 자려 해도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아서 절대적으로 수면시간이 부족하다. 그나마 오전엔 좀 자는데, 그 땐 내가 잠이 깨서 어거지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질 않는다. 무엇보다 사흘째부터 젖이 돌면서 수유간 간격이 길어지면 가슴에 통증이 오는 관계로 잠이 더 잘 안온다.

기저귀 가는 법도 익숙해지고 모유수유도 익숙해지고, 집안일이야 집도 크지 않고 해서 크게 할 일도 많지 않으니 옌스가 식사 준비해주고 빨래, 설겆이 등을 도와주니 딱히 어려움은 없다. 청소도 힘쓰는 것은 옌스가 하니까. 정리나 물건 표면 닦고 그런 건 쉽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국식 산후조리는 출산일까지도 활발하게 움직이던 성향 등을 고려할 때 원래도 내 체질에 맞지 않아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여기식 산후조리가 괜찮다. 여기도 산모 힘 쓰지 말라는 것이나 본격적 운동과 같은 체력 회복은 6주까지는 미뤄두라는 것 등 기조는 비슷하니까.

차이가 있다면 손님 방문이나 외출의 룰에 있다.

물론 여기도 신생아가 있는 집에 오래 방문하지는 않더라. 시누도 엄청 조심하면서 안된다고 해도 이해한다는 말을 몇차례나 반복하면서 아주 잠깐만 들러도 되냐고 묻더라. 그게 일요일이었으니 출산 후 사흘째. 조카들 셋과 함께 방문한 시누는 이것 저것 선물을 가지고 왔다. 나는 10분 정도 있다가 하나 수유를 해야 해서 들어가고 시부모님과 옌스는 좀 더 앉아서 대화를 하다가 총 30분 정도 머물렀나? 곧 자리를 떴다.

앞집 이웃이 우리 출산 예정일을 알고 있었는데다가 시부모님이 우리집에 우리 없이 들락날락 하시는 것을 보고 출산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 모양이다. 여름에 입을 수 있는 예쁜 원피스를 선물해주셨는데, 인사 차 하나와 함께 방문을 했다. 20분 정도 앉아있었나. 안아보시라는 말에, 지금 집안일 하다가 맞이해서 몸에서 먼지와 세제 냄새난다고 사양하시더니, 그래도 한번 안아봐도 되냐고 하셔서 물론 된다고 말씀드렸다. 185센치미터로 엄청 키가 크신 할머니신데, 정말 좋아하셨다.

오늘은 이모님 내외 커플, 시누이네 남편이 두바이에서 잠시 출장으로 돌아오자마자 잠깐 들른다고 해서 두번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짧지만 분주한 수유 스케줄 속에서 맞이하다보면 다소 정신이 없기도 하다. 물론 그런 것을 이해하기에 방문이 30분-1시간 이내로 끝나니 크게 상관없기도 하고, 나도 옌스와 하나하고만 있으면서 집에 있으면 그것도 무료하니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손님 오시면 우리는 애 만지기 직전에 손을 씻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여기는 어느 집에 방문하던 손을 맨 먼저 씻곤 하니, 그 다음엔 굳이 애를 만진다고 손을 씻거나 하진 않는다. 집안에서 손에 묻히게 되는 오염물질은 부모나 손님이나 똑같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다. 나도 애 만진다고 매번 손 씻는게 아니라 특별히 손님에게 더한 청결을 요구할 이유도 없다.

오늘은 두번의 방문객 사이나 그 뒤로 잠깐 산책을 나갈 예정이다. 유모차도 한번 이용해보고 다음주 보육원 시설 설명도 들을겸 방문을 계획하고 있어서 그 전에 한번 연습삼아 외출을 짧게 해볼 계획이다. 옷을 따뜻하게 입혀 겨울에도 밖에서 재우는 덴마크인의 생활습관상 백일이 안된 신생아의 외출은 이상하지 않다.

시부모님은 이제 나의 각종 추한 모습은 다 보셨다.

떡지고 헝클어진 머리, 수유하면서 흐트러진 모습 등. 시어머니 뿐 아니라 시아버지도 내 모유수유 장면을 다 보셨으니 이젠 정말 가족이다. 흠흠. 엄마가 되면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포기해야한다는 건 아닌데, 엄마로서 있을 때의 헝크러진 모습이 외부에 드러내는 여성으로서의 나의 모습과는 괴리가 많이 있고, 아주 가까운 가족 아니면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보니 시부모님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이런 계기가 아니면 기회가 없다.

산모영양식은 따로 없다.

과일과 채소를 잘 먹고, 탄수화물을 매끼 챙겨먹고, 기타 단백질과 지방을 모두 골고루 섞어 먹되 하루 300 킬로칼로리 정도 더 먹도록 양을 챙기라는 것 외에는 산모영양식은 따로 없다. 그리고 6개월 이내에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라는 건 여기도 동일하고, 원상태로 회복 없이 다음 아이를 임신할 경우 여러가지 임신 중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고 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천천히 체력관리를 할 생각이다. 출산하자마자 토스트를 먹은 것을 비롯해 집에 와서도 점심으로는 주로 잼과 버터바른 토스트에 우유를 곁들여 먹었다. 저녁은 시부모님이 잘 챙겨주셔서 이것저것 좋은 음식을 먹었다. 산후에 우리처럼 매끼 잘 챙겨먹는 것은 지양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는 차이점이었다.

간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아이를 관리한다.

이미 월요일에 간호사가 와서 아이의 몸무게와 키를 측정하고, 모유수유 방법을 보여달라고 해서 잘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추가적인 수유자세 하나를 가르쳐주고 갔다. 궁금한 점에 대해서 답변해주고, 다음번 방문할 일정을 설명해주고 갔다. 안그래도 아침에 신생아 대사검사 차 병원에 갔을 때 산파가 이것저것 상담해줬는데 그때 다 물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답변을 주고 가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일 또 한번, 다음주에도 한두번 방문이 예정되어 있는데, 아동학대나 무지로 인한 육아상의 실수 등을 체크하고 혹시 모르는 아이의 건강상 문제점 등을 초기에 발견해 대처하려는 데에 따른 시스템이다.

 

대충 그간 경험한 것들을 요약해봤다. 어느새 거의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하나는 반복되어 가는 일상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눈과 콧망울은 나를 닮았으나, 눈동자는 아빠를 닮았다. 약간 회색빛이 도는 파란색인데, 눈동자 색은 갈색눈이 아닌 이상 확정이 되는 시기가 아니라 언제고 더 짙어져서 초록, 갈색 등이 될 수 있고, 드문 경우로 이 색깔이 유지될 수도 있다 한다. 입술은 또렷한게 신랑을 닮았고, 귀는 내 귀를 닮았다. 옌스는 자기 귀 모양을 안좋아하는데 그게 나를 닮아 좋다.

가슴팍 골격을 보아하니 이건 시아버지와 옌스를 똑 닮았다. 팔다리, 손가락, 발가락 모두 엄청 긴데, 이 또한 아빠를 닮았다. 정말 오묘한 조화다. 머리나 털도 아빠를 닮은 것 같은게, 머리는 밝은 갈색, 몸 털은 금발이라 내 것일 수가 없다. 머리는 앞으로 더 검어질 수도 있지만, 몸 털 색은 그대로 가니까 그걸로 보면 대충 아빠 유전자라는 생각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아이는 다 동양인처럼 생겼다며 그렇지 않다고 하던 나와 다르게 주장해오던 옌스는 막상 자기 딸을 보더니, 내 말이 맞는 것 같다며, 하나는 코카시안에 더 가깝게 생긴 거 같다고 한다. 한국인 입양인이 많아 그들과 덴마크인의 혼혈 2세를 본 경험이 많은 옌스는 대부분 다 동양인의 유전자가 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인이 보면 혼혈은 서양애처럼 보인다는 말에 서로 자기에게 없는 것을 봐서 그런거 같다고 했지만, 하나는 어떨려나 모르겠다. 그래도 눈이 나를 닮으니 뭔가 인상면에서 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만족한다. 옌스를 닮아 좋은 부분들도 있지만, 내 딸이니 나의 흔적을 찾게 되는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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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래퍼의 기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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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가 많이 크다. 3개월짜리 모자라 그런 듯.

집에 와서 자던 두번째의 밤이자 출산 이후 세번째의 밤은 특히 힘겨웠다. 정말 매트리스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일어나고, 아직 초유밖에 없어서 그런지 엄청 칭얼거리면서 쉬지 않고 몇시간씩 수유를 요구하는데,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러다가, ‘아… 이게 원래 그런거다라고 받아들이고, 조금이나마 잘 타이밍을 나중에 찾으면 되니 내 페이스대로 애를 끌고 가지 말아야지… ‘라고 마음을 먹고나니 평화가 찾아왔다. 힘들 거 알고 있었는데 조금 편한 걸 찾으려니 그 괴리에서 마음이 고생을 하기에, 아예 그 괴리를 없애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 그러고 나니 편해지더라.

앞으로 더 힘들어지더라도 이런 마음을 유지하면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육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흐트러지지 않고 이런 마음챙김을 잊지 말아야겠다.

덴마크 출산기

마지막으로 신파를 만났던 날, 지난 목요일. 다녀와서 덴마크 출산 시 산모 내진에 대한 글을 크다가 저장을 해두었는데, 그날 밤 그 글을 다 쓰기도 전에 출산을 해버리게 되었다. 내진의 고통에 대한 여러가지 글들을 익히 읽어둔 터라 그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임신 막달 들어 흔히 내진을 하는 한국의 프랙티스와 이곳의 차이가 크게 다가오기도 했다.

예정일이 지나도 안나와 다음 약속한 시간에 산파를 만날 경우, 분만 유도의 일환으로 내진이 어떻게 활용되는 지, 기타 예정일 후 12일이 지나도 안나와 경우 유도분만이 어떻게 진행될지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안내되어 있는 문서를 받아들고 집에 왔었더랬다. 도대체 내 자궁경부는 얼마나 많이 열려있는지, 진행은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신파의 견해도 궁금했기에 살짝 아쉬웠다. 뭔가 예정일 직전 마지막 면담에는 내진을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한 탓이었다.
그날 밤, 유독 하나가 많이 움직였다. 그 전에 하나가 많이 움직이면서 손가락으로 하나가 자궁경부를 파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 들이 있었는데, 그게 알고보니 자궁경부가 조금씩 얇아지거나 벌어지면서 생기는 느낌일 수 있다고 한다. 애의 태동과 동시에 나는 경우, 그건 머리가 움직이면서 생기는 마찰 때문에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고 하니 손가락으로 파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 전날 브랙스턴 힉스 수축이 유독 강했던지라 그날 출근하려나 김칫국을 마신 경험을 하고 난 후였어서, 이날 밤 세번의 강한, 꼭 생리통 같았던 배뭉침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냥 하나의 격렬한 태동이 다소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다가 뭔가 왈칵하고 흐르는 느낌. 소변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분비물이라기엔 느낌이 수상해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번 더 왈칵하는 느낌이 들더니, 변기에 앉자마자 뭔가가 주르륵 쏟아졌다. 희뿌옇게 혼탁한 액체에 선홍빛 피가 섞여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자궁경부를 임신 기간 내 봉인하고 있었던 점액질의 플러그인가, 아니면 양수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화장실 분을 열고 자고있던 옌스에게 소리를 쳤다. “I think, my water just broke!.” 그리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때가 12:30. 한밤중이었다. 양수면 계속 흐른다고, 30분만 관찰해보고 다시 전화를 달라했다. 조금 지나고 보니 이게 말로만 듣던 양수였다. 다시 전화를 하니 6:30까지 진통이 4-5분 간격으로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단계에 돌입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와서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유도분만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는데, 사실 이미 심한 생리통같은 진통은 양수 터지기 시작 직전부터 브랙스턴힉스 수축의 형태로 세번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난 과연 6:30까지 아무일도 없으려나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었다.
다운 받아둔 진통 어플을 이용해 진통 간격 및 지속시간 등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진통 시작시점 기준, 분명 4-5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면서 도래하는 진통이 1분여 정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여부를 한두시간 정도 관찰하고 병원으로 연락을 하라 했었다. 그런데 이건 뭐랄까… 처음부터 7-10분 간격이었는데 그게 빠르게 7-8, 6-7분 간격으로 내려오더니 5분, 4분, 3분 간격으로도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이미 아주 심해져서 호흡을 관리하기 힘들었다. 산파의 설명을 들은 후 유투브 비디오도 보고 열심히 연습도 해두었는데.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할 거 같아서 양수 색을 확인하려고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가기 직전 진통이 끝나고 화장실 가자마자 한번, 나오는 길에 화장실 앞에서 한번, 물이라도 한잔 더 마시려는데 부엌에서 또 한 번 더. 이건 재보지 못했지만 삼분 간격인 것같았다.
옌스에게 병원에 전화해서 가겠다고 하라 했는데, 병원 출산동 응급라인이 통화중이란다. 택시부터 잡으라 했는데, 옌스도 정신이 없었는지 허둥대고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하기를, 택시 부르는 법이 순간 기억이 안났다더라. 그때가 3:55분. 4:10분에 부를지 20분에 부를지를 물어보길래, 그냥 기다리게 해도 좋으니 우리 준비되면 바로 떠나게 10분으로 부르라고 했다. 십분 더 기다려서 돈이 더 나오는게 (물론 십분 차이에 한 이삼만원 더 내야겠지만) 뭐 대수냐는 마음에 치밀어오르는 화를 눌렀다. 사실 평소였으면 너무 당연한 질문인 건데, 상황이 이런데도 그런 질문을 하다니!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히 이야기를 하고 옷을 입었고, 이미 싸둔 짐을 챙기고 병원에 추가로 연락해서 우리가 간다는 걸 알리는 모든 걸 다 해야하는 옌스는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전화가 연결되서 내가 상황을 설명하고, 가는 것으로 알렸다. 덴마크인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는 역시나 그 와중에도 신호를 꼬박꼬박 지켰으나, 달리는 순간 만큼은 속도 제한 내에서 엄청 달리는 게 느껴졌다. 십분을 달리는 와중 세네번의 진통을 겪고 병원에 도착했다. 출산동으로 복잡한 길을 헤매며 도착했더니 시간이 4:20의 되어있었다. 목이 말라 밤새 못마신 물을 두잔 마시고 났더니 속이 미식거렸다. 아마 진통이 시작되면서 소화가 멈췄었던지, 다섯시에 먹었던 김치찌개의 일부와 그 이후 먹은 과일의 흔적을 확인하게끔 말끔히 게워냈다.
산파는 처음으로 내진을 해주었고, 통증따위는 없었다. 양수가 내내 이런 색이었냐길래, 그렇다고, 내내 선홍빛이 돌았다 하니, 지금은 약간 초록빛이란다. 오기 직전까진 아니었는데, 그 사이 색이 바뀐 모양이었다. 자궁경부는 이미 4-5센치가 열렸고, 매우 부드럽고 얇아 금방 열릴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자기가 지금 마사지를 하고 있으니 조금 시원할 거라고 하는데, 시원하진 몰라도 말로만 듣던 고통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애 심장 박동은 무리가 없는데, 그냥 태변을 봐서인지, 그걸 먹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조금 모니터링을 해야한다길래 산모 접수실에서 모니터링을 조금만 더 하자고 했다. 오늘 분만실이 바쁘다며, 분만실 정리중이고, 모니터링 세팅은 추가로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내가 진통중 자세를 움직이면서 모니터링이 잘 안되자, 누군가 들어와서 이렇게 움직이면 안된다고 하고 다시 심장박동기를 세팅해주로 나갔다. 두번째 그런 일이 생기자 들어온 사람이 (산파가 아닌 듯했다.) 이러면 모니터링에 시간이 더 걸린다며 움직이지 말라면서 그 방에 십분 더 있으라고 했다. 그런 일이 한번 더 있고 나서는 옌스가 내가 움직이지 않게끔 옆에 앉아 날 잡아주었다. 정말 아파서 어쩔 수 없었고, 물론 움직이려면 움직일 수 있었지만, 옆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버틸 정신적 힘이 조금 더 생겼다. 다행히 하나의 심장박동은 괜찮았다. 이때 에피듀럴 혹시 맞는게 가능하냐고 한번 물어봤는데, 아무 대답을 못들어었고, 나도 원래 원하던 바가 아니었기에 더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진통은 빠르게 양상이 바뀌고 있었다. 갑자기 난 짐승과 같은 괴성이 섞인 긴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아주 긴 복식 호흡이 중요하다 해서 길게 내쉬고 있었는데, 이 호흡이 야수의 신음같이 나왔다. 그르릉 하는 소리로. 그리고 머리가 아래로 내려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빨리 산파 부르라고 옌스에게 말하고 나니 또 그런 진통이 왔다. 다시금 그런 느낌이 오는데 아직도 누가 안와서 옌스에게 화를 내며 재촉을 했다. 나 여기서 낳을 것 같다고, 빨리 부르라고.
나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던 야속한 그녀가 나를 데리고 휠체어로 분만실에 데리고 갔다. 가는 길에 또 한번의 진통이 와서 야수같은 호흡을 내뱉자, 그녀가 히히후 하는 호흡을 하란다. 내 산파가 그건 구식 호흡이라고 이야기해줬는데. 힘들게 호흡을 컨트롤 하고 있는데 자꾸 히히후를 강요해서 짜증이 났다. 나 호흡중이라고 쏘아붙이고 나니 더이상 가타부타 않는다.
분만실 도착해서는 침대에 올라가 앉으라길래 왼쪽으로 기대 앉았다. 하나의 심박을 모니터링하고 때 그 자세가 아이에게 가장 편한 자세라고 했었기에. 옌스는 내 옷을 벗기라는 명을 받았는데, 나에게 몸을 움직여 보라길래, 그냥 당겨서 빼라고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또 한번 강하게 오는 진통에 다시 짐승같은 호흡을 시작하자 산파가 잘 하고 있단다. 관장을 할 시간도 없었는데 뭔가 나온 것 같았다. 산파에 그 당황스러운 상황을 이야기했다. 기저귀를 벗기려는데, 옌스는 옆에 있고… 약간 지린 것이 맞았다. 이런… 그 와중이지만 민망하여 농담이 나왔다. 다 잊어버리라면서, 나 나중에 치매와서 벽에 똥칠하면 그 때 어차피 봐야하는 거니까 그렇게 본 셈 치라고. 농담을 할 힘이 난 건 좀 웃기긴 했지만 나도 오죽 민망했으면 그랬겠나.
그리고 또 한번 진통이 왔다. 이 진통이 끝날때쯤 이미 머리가 보였다고 하는데 진통이 멈추자 애가 다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진통에는 진통이 끝나고도 배에 긴장을 늦추면 안되겠구나 싶었다. 지금 정말 잘하고 있다고, 딱 그 느낌으로 하라는데, 다음 진통엔 애의 머리가 나오고, 그 다음엔 하나의 온 몸이 나왔다. 중간에 힘 멈추랄 때 멈추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애가 나오자마자 배에 하나를 올려주는 순간 사실 너무 얼떨떨했다. 그 정신없는 와중 탯줄 아빠가 잘라줄 거냐고 산파가 물어서 옌스 얼굴을 한 번 봤는데, 이미 둘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안자른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눈이 촉촉히 젖어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많이 울었다더라. 난 약간 실감도 안나고 해서 눈물은 안났고, 그럼 엄마가 자르겠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썩둑썩둑 잘랐다. 듣던대로 잘 잘라지지 않더라.
막상 분만기는 십오분에 불과했던건데, 가장 힘든건 이때보다는 자궁경부가 열리는 진통기였다. 특히 택시에서 내려 출산동으로 가는 시간, 태아 심박 모니터링하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회음부 절개는 없었지만, 질이 일부 열상이 있어 여러 바늘 꼬맸는데, 마취 스프레이의 따가운 느낌도, 중간에 다소 깊은 열상을 꼬맬때의 따가운 통증도 느낄 만큼 통각이 살아있었다. 그만큼 산고의 시간이 짧있단 뜻인 것 같다. 괜찮냐는 산파의 질문에, 물론 괜찮긴 하다고, 출산도 했는데 이정도 못견디겠냐는 농담도 할 정도로 여유도 있었고, 실제 지쳐 쓰러질 것 같은 그런 게 없이 출산 후엔 상쾌했다. 하나의 첫 똥도 치우고. 내 손에 똥 범벅을 해 준 하나. 흠흠.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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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다섯시간만에 산모병실로 내려와서 하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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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병동 @ Herlev hos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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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실에서 애 나오고나서 10분뒤 모습

아침식사로는 토스트빵에 버터와 잼, 치즈(는 안먹었지만), 요구르트가 제공되었고 이를 먹으며 정말 한국과 다른 경험을 한다 싶었다. 출산이 바빴던 밤에 애를 낳은 탓에 산모병실이 안비어서 분만실에서 서너시간 지루하게 있다가 방을 옮겼다. 일인실인 방은 괜찮았고, 첫날부터 수유도 정상적으로 하고 밤도 무사히 잘 보냈다. 배는 바람빠진 듯 뭔가 이상한 감촉이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그냥 모든게 예상한 것보다 수월했다. 덕분에 바로 다음날 무리 없이 퇴원해 집에 올 수 있었는데, 정상으로 분만한 경산부가 여섯시간만에 집으로 가는게 어떻게 가능한 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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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실로 아침식사가 배달되었다. 생일엔 대네브로(Dannebrog, 덴마크 국기)가 빠질 수 없다. 

이제 시작이지만, 그 시작이 수월해서 참으로 감사하다. (산파 왈, 이렇게 급격한 출산이 골반인대엔 그닥 좋지 않단다. 너무 급격하게 벌어지니 일종의 충격이… 그래도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긴 것보단 짧은 게 산모의 고통 입장에서는 나은 듯…?) 효녀 하나 덕분인 것 같다. 앞으로 잘 해보자 우리. 🙂

또 이렇게 봄이 오는구나…

봄이 오고 있다.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옌스는 겨울은 공식적으로는 2월까지이고, 개인적으로는 3월까지라 생각한다고 반박한다. 그런 숫자를 떠나서 내가 봄이 오고 있다고 하는 것은 모든 생명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을 나고 꽃을 틔우는 식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2월 21일 동지가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 2~3분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이 때는 오전, 오후 각 1~2분씩 길어지는 거라 별로 티가 나지 않지만, 동지라는 반환점을 확실히 지나고 나면 하루 5분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어느날 갑자기 해지는 시간이 뒤로 밀렸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날이 오게되는데, 요즘이 바로 그런 때이다.

4시 반이면 새카맣게 변해있던 하늘이, 오늘은 같은 시간임에도 푸른 조각을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른 봄을 알리는 노란 꽃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아직 꽃잎을 활짝 벌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봄 내내 여기저기 피며 함께할 긴 시간을 생각하면 벌써 얼굴을 활짝 내어 보여주기에는 아직 이르다. 관목들도 서서히 가지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고 그 끝은 초록빛이 감돈다. 어떤 잎몽우리는 이미 껍질을 터뜨리고 나왔고,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리할 채비를 하는 몽우리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한낮엔 해가 쨍하니 코트 앞섶을 여미지 않아도 춥지 않았다. 영상 4~5도의 날씨에 해가 쨍한 겨울이라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100년만에 가장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하더니만 몇번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거 외엔 크게 추운 날씨도 없었고, 비나 눈도 별로 오지 않았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기후가 정말 변하고 있다. 이젠 뭐가 정상적인 건지 잘 모르겠다. 온난한 겨울은 덴마크에도 좋지 않은게 해수면 상승과 태풍 등이 결합하면 폭풍해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실제 이로 인해 얼마전 덴마크엔 작고 큰 해일 피해가 잇따랐다.

임신을 한 엄마의 두뇌는 아이에 초점을 맞추도록 회백질이 일시적으로 1~2년간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나도 그래서 그런가, 삶의 관심이 임신, 출산, 육아에 맞춰지고 있다. 날이 따뜻해지고 나니 예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아이에 생각이 또 미친다. 이제 벌써 봄이 시작되면 애를 유모차에 데리고 산책하기 좋겠네, 기기 시작할 때가 여름이라 잔디에서 놀게 하기 좋겠네, 등 소소한 생각 조각이 아이에게 가 있는 나를 발견하며 생소함을 느낀다.

덴마크에서 임산부가 된다는 것은?

옌스는 화요일이면 저글링클럽에 나간다. 나도 가족으로 멤버 등록은 되어있지만 세 번 가본 게 다이다. 스케이트 타다가 허리에 약간 무리가 간 이후로는 이도 줄였고, 날이 갑자기 추워지고 바람이 거센 날이 많아지며 카약을 많이 못타고 있는데, 그래서 저글링클럽 가는 날이 무척이나 신나고 기다려지는가 보다. 188cm의 키에 74~76kg의 체중을 항상 유지하는 옌스는 모든 옷이 76kg을 기준으로 맞춰져있어서 그보다 살이 찌는 건 참을 수 없어한다. 그런데 요 며칠전 한동안 안재던 체중을 재더니 77kg이라면서 다이어트를 선언했다. 간식도 사오지 말란다. 난 간식을 사면 오랫동안 아껴먹는 편인데, 옌스는 있으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애초에 사오는 양으로 간식을 컨트롤 한다. 그러나 내가 사온 간식을 옌스가 다 먹어버리면 난 몇 입 먹지도 못한 탓에 또 사오고, 옌스가 또 먹고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나보다. 나야 뭐 다시 사오면 되니까 상관없었는데, 먹는 중에는 기쁜 마음으로 먹지만 살이 찌고나니 스트레스를 받았더라. 사실 보기엔 76~77kg가 가장 좋아보이는데, 본인의 지향점이라는 게 있으니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지. 뱃살 나오는 것을 끔찍하게 여기는 남편인 것은 불평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옌스와 결혼할 때, 결혼했다고 생활습관 갑자기 바꾸고 운동을 안하거나 건강하지 않게 폭식하며 살찌지 말기를 당부받았다. 난 누가 강요하는 건 싫어하지만 약간은 관리를 받는 것을 좋아하고 (동기부여가 된다고나 할까? 혼자서 마음 독하게 먹기엔 마음속에 게으름의 악마가 항상 살고 있어서…) 살 안찌는 건 나도 바라는 바라 열심히 체중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임신하자마자 내가 두명분 먹을까봐, 임신했다고 두명분 먹는거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둘 다 뭘 하더라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에 기초해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이야기가 섭섭하지 않았다. 실제 덴마크 보건당국 뿐 아니라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임신 기간 중 칼로리 추가 필요 섭취량을 초중기에는 150kcal, 후기에 250kcal 정도 로만 권고하고 있다. 이 또한 당근, 토마토, 사과, 호밀빵, 치즈, 요구르트, 햄 등 건강한 간식으로 조합해 먹으라고 하고 있다. 살면서 항상 건강하게만 먹고 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매일 건강하게만 먹겠냐만은 최대한 건강한 식품의 조합으로 평소 섭취량에서 크게 늘리지 않는 식으로 체중을 관리했다.

임신 기간 중 체중을 매일은 아니고 며칠 간격으로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기록해서 그래프로 항상 업데이트해 보고 있다. 어떤 패턴으로 체중이 늘어나는지 관찰하기 위함이다.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못먹으면 스트레스가 되서 애한테 더 안좋다는 이야기를 인터넷 맘카페 등에서 자주 접했는데, 의사에게 한번 물어봤더니 그런 건 그냥 핑계고 애를 핑계로 많이 먹어 과도하게 체중이 느는 것은 본인이나 애에게 좋지 않다고 단칼에 잘라 이야기하더라. 나는 평균체중에 속하니 12kg 정도 목표로 보고 관리하면 된다고하며 일일 기준으로는 정말 조금씩 변하는 것이니까 관리 잘하라고 했다. 특히 나처럼 만 35세를 넘은 고위험군 임산부는 임신중독증을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운동 모두 게을리하지 말라고…

내 질문에 대해 의사가 직접 설명해준 내용과 읽어보라고 권해준 책자와 웹사이트 등의 정보를 종합해서 운동에 대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임신전의 활동에서 크게 조절을 할 필요가 없고, 다만 몸에 큰 충격이 오는 격투기나, 테니스, 승마 등을 피하고, 몸의 체온을 과하게 올리고 심장박동을 심하게 올리며 45분 이상 지속해서 하는 운동 (격한 달리기 등) 도 피하라고 했다. 중기 넘어서 배가 많이 무거워지면 바로 누워하는 운동 종류는 태아와 하반신으로 가는 혈류량을 감소시키므로 이 또한 피해야 한다고 한다. 이 시점부터는 크런치 형태의 복근운동은 피해야 한다. 혈류량 문제 뿐 아니라 복직근 이개와 같은 부작용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허리를 숙여 무거운 것을 들고 하는 것은 안되지만, 어느정도 무게가 있는 장바구니를 무릎을 굽혀 들어올리는 것은 괜찮다고 한다.)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가장 안전한 운동 중 하나로 권고한다. 물론 넘어지면 이야기가 다른데, 이미 자전거가 익숙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다. 안장에 엉덩이가 퉁퉁거려서 태아에 충격이 간다며 우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 정도 충격은 태아에 위험을 유발할 정도의 충격과 거리가 매우 멀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노면이 거친 경우는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페달에 체중을 실어 타는게 정석이고,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타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하기에 괜찮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초기 유산에 대해서는 어떤 특별한 사고가 있어서 그런게 아닌 이상은 유전적으로 크로모좀에 이상이 있어서 1/4~1/5의 확률로 흔히 발생하는 일이기에 산모의 몸 관리 방법에 따른 게 아니므로 편히 생활하라고 한다. 사실 나는 이 말이 임신 기간 중 삶을 정말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생활에 대해서 실제 구체적으로 뭘 해도 좋고 안좋은지가 잘 정의되어 있다. 임신 기간 중 마신 총 술의 양을 따지자면 샴페인을 기준으로 2잔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반잔 씩 다섯번 정도 마신 것 같으니 말이다. 1주일에 술 한잔 (주종별로 한 잔의 기준이 따로 있었다. 주종에 상관없이 알콜 컨텐트를 동일하게 만들어주는 양을 기준으로 보건 당국이 한 잔의 양을 정하고 있더라.)은 무방하다고 한다. 커피도 의학적으로 태아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밝혀진 바가 없으나, 성인에게도 카페인 양을 제한하도록 권고하는 만큼 산모도 하루에 두잔정도 마셔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달리 감기나 독감에는 별도로 약을 처방하지 않으니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처방이 필요하다고 하는 약은 그걸 먹는게 왜 안먹는 것보다 좋은지 설명을 해주며 산모에게 불필요한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한다. 예를 들면, 얼마전 처방받은 치질약이 그렇다. 약간 이물감이 있는 수준의 치질은 최대한 관리하며 버티도록 하고, 중기 이후 통증과 출혈을 수반한 치질은 관리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나는 상태가 안좋아지면서 좌약을 처방받았는데, 임신 초기에 이 약을 사용하는 경우 구순구개열을 유발하는 임상사례가 있는 약이었다. 의사와 상의를 통해 최대 복약기간과 중기 이후에는 부작용을 유발한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듣고 그냥 마음의 불편함 따위는 지워버리고 복약하기로 결정했다.

의사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을 보인 부분은 임신중독증이었다. 사실 나도 그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평소 저녁이면 몸이 전반적으로, 특히 하반신이 좀 붓는 경향이 있었던지라 임신을 해서 그게 심해지면 어쩌나 했었기 때문이었다. 사지 말단의 부종을 막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근력운동임을 평소의 부종 문제로 알고 있었기에 종아리는 플렉스-포인트, 허벅지와 둔부는 스쿼트, 사이드 스쿼트로 관리했고, 팔과 손목은 서서 벽에 기대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발레의 팔동작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단련했다. 체중이 증가하면서 고관절에 부담이 늘어 기존에 있던 고관절 인대 부상이 다시 안좋아지기 전까지는 주 1회 발레도 했다.

사실 이런 운동이 없었으면 체중관리도 안되었을 것이고, 안그래도 무거워진 몸을 지탱해줄 근육을 잃게 되어 많은 관절 문제와 혈액순환 장애를 겪어 부종 등도 겪었을 것이다. 또 출산 이후 육아에 필요한 근력도 부족해 산후통증도 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임산부를 최대한 활동을 줄이게 하고 안정만을 추구하게 하는 게 사실은 임산부의 고통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는 게, 이런 일련의 과학적 사실과 내 개인적인 경험을 종합한 결론이다.

입덧으로 4kg 체중감소를 경험하며 일련의 활동 자체를 거의 할 수 없던 시기, 막대한 근손실로 이를 일부나마 회복하느라 이후 고생을 했는데, 그런 노력을 한 게 절대 아깝지 않았다. 간혹은 운동하면 배뭉침이 느껴진다고 하며 그러면 운동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사실 배뭉침은 브랙스턴-힉스 수축운동으로 임신 기간 중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현상이고 한시간에 네번을 넘어선 반복적인 수축이 조산의 신호일 수 있어서 주의해야 하는 것이란다. 이는 자궁이 출산을 위해 수축운동을 연습하는 것이므로 애가 스트레스를 받는니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부부관계 후 겪게 되는 브랙스턴-힉스 수축운동이 실제 출산을 유발하는 경우는, 이미 자궁경부가 짧아져서 조산기가 있거나 이미 만삭이 되서 태아가 출산의 준비가 된 경우에나 해당하기에 그걸 염려해 부부관계를 회피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초반에 마음을 좀 불편하게 했던 것은 영양제 복용이었다. 엽산과 철분은 여기서도 꽤나 강하게 권고하는 부분이다. 시어머니는 자기 때는 엽산이 뭔지도 몰랐다고, 그냥 자연에서 녹황색 채소를 통해 섭취한 걸로 떼웠지 일부러 먹지 않았다고 하셨다. 나는 임신 초기 심한 입덧과 변비 등으로 엽산이나 철분 등 중요 영양보충제를 먹다 안먹다를 반복하다가 중기부터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변비 부분은 2주만에 볼일을 보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한 이후로 의사의 상담에 따라 마그네슘제를 매일 500mg씩 먹고 수분 섭취량을 늘리면서 좋아졌다. 내가 경험한 치질은 변비때문은 아니었고, 순전히 증가한 복강내 압력때문이었다.) 다행히 2차 기형아 검사 시점에 신경계 결손 등의 장애가 발견되지 않아서 일말의 죄책감을 털을 수 있었다.

여기에선 별도로 태교라는 이야기를 안하는 것 같다. 내가 못들었거나. 그냥 다들 자기 하던 일 하고 생업에 종사하고 간혹 태담이나 하지 태교에 대해서는 별다른 내용을 보지 못했다. 3cm쯤 되는 두꺼운 임신 책자에서도 일련의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 나도 별도의 태교는 한 적이 없다. 학교 생활 및 덴마크어 공부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클래식이야 밤에 자기 전에 오페라를 틀어놓고 잠이 드니 이미 충분히 듣는 것고 있고 해서 평소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물론 실제 남들과 다른 임신으로 유의를 해야하는 산모들이 있고 (산모의 특이점, 다태아 등 태아의 특이점, 조산기가 있거나 기타 질병이 있는 산모 등), 그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권고사항 등이 있지만, 대부분의 건강한 산모들은 최소한 중기까지는 그냥 일상생활을 무리없이 해도 된다고 한다. 그게 사실 임산부를 위해, 태아를 위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임산부보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참견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임신을 하니, 사실 별도의 배려를 받는 거 없어도 난 훨씬 좋았다. 이제 예정일까지 2주 반 정도 남았는데, 다음주에 있을 기말고사도 잘 보고 출산을 하면 정말 더할나위없이 좋은 임신기간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다. (4kg 줄었다고 하면 심한 입덧이었나보다고 하는데, 하도 외할머니와 엄마의 최악 입덧 경험담을 듣고 자란 탓인지, 힘은 좀 들었지만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나의 베이비샤워 @ 베스터브로

38주차에 접어들었다. 예정일까지 3주도 채 남지않은 셈. 하루하루 컨디션이 다르다. 어떤 날은 앉았다 일어나거나 돌아누울 때 억소리나게 많이 아프기도 하다가, 어떤 날은 또 너무 멀쩡하기도 하고. 하나의 머리가 골반으로 내려와 고정되면서부터는 간혹 한쪽 다리 신경이 눌리는지, 걷거나 서 있다가 전기가 통하듯 찌릿하거나 저리기도 한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서 이를 보상하기 위해 허리를 뒤로 젖히려 하게 되는데, 이게 허리 통증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주의하라고 한다. 의식적으로 배에 힘을 주고 바로 서면 뭔가 앞으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듯 해 꼭 앞으로 기울어진 느낌이다. 그래도 학교 잘 다니고 있고,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잘 돌아다닌다. 오늘은 출산 전 할 거리 중 하나였던 머리자르기도 해결했다. 출산 후 3개월부터면 앞머리가 많이 빠진다고 해서 미용사가 긴 앞머리를 내줬다. 앞머리 안좋아하지만 나중에 생길 무수한 잔머리를 숨기려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많이 짧아져서 한동안 머리를 틀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엔 친구들이 베이비샤워 파티를 열어주었다. 이는 덴마크가 아니라 영미권문화지만, 이 친구들은 덴마크 친구들이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핀란드, 미국, 한국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친구들이라 베이비샤워를 하게 되었다. 영국으로 귀국한 친구의 생일파티에 모였을 때, 1월 중 베이비샤워를 열어주고 싶다며 괜찮겠냐고 물어보길래, 물론 좋다고 했다. 우리 문화의 파티는 아니라 영화로 본 게 다이고 다소 생소하긴 했지만, 친구들과 만나는 데에 새로운 핑계는 언제나 좋고 하나를 위해 파티를 열어준다는 게 참 고마웠다.

호주에서 온 에밀리네 집에서 하기로 했는데, 이사한 지 일주일도 안된 집을 정리하고 수선하느라 엄청 바빴다고 한다. 유명한 건축사무소에서 건축가로 일하는 친구인데 주로 특급호텔과 레스토랑 건축+인테리어 디자인을 한다. 평소에도 미적 센스가 탁월한데, 감각도 감각이고 여기저기 이쁘고 세련된 것을 많이 보는 경험이 더해져 그녀가 지내는 집마다 참 디자이너답게 센스있게 꾸민다. 주중엔 일하느라 정신없었는데, 가구 조립에 짐 풀고, 여기저기 수선하느라 얼마나 바빴을 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저것 먹을거리며 케이크와 쿠키, 음료 등 어찌나 다양하게 준비했던지 깜짝 놀랐다. 그냥 차에 케이크나 쿠키 같은 거 먹을 거라는 기대에 갔는데 너무 융숭한 준비에 정말 놀랐다. 주말 오전 11시 반까지 준비하느라 얼마나 정신없었을런지… 집안 장식까지 말이다. 모든 게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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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완전 감격! ㅠㅠ

호스트인 에밀리가 따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초대하라고 해서 미국에서 온 친구와 한국에서 온 친구는 내가 따로 초대했다. 우리 문화가 아닌 영미권 문화 파티라 다른 한국 친구들을 초대하기엔 약간 애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한 한국 친구는 고등학교부터 오랜기간을 미국에서 지내서 베이비샤워라는 컨셉에 익숙할 것 같았고, 다른 친구들과도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아서 초대했다. 약혼자네 가족 방문차 영국에 갔을 때 영국 근위병이 그려진 옷을 샀다며 손수 뜬 아기 양말과 함께 선물해주었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그 작은 양말 두개에 들어간 마음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다.

베이비샤워를 열어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뭔가 선물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적여봤다. 역시나 Thank you gift 같은 걸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되어, 뭐가 좋을 지 고민을 했다. 베이비 샤워라는게 아기에게 선물로 샤워를 시켜준다는 의미이니 뭔가 샤워와 연관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들의 스윗한 마음을 고맙게 여기며 친구들의 샤워를 스윗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의미로 달콤한 향이 나는 샤워오일을 준비했는데, 내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남아공에서 온 폴로소는 감정이 풍부한 예술적인 친구인데, 그 이야기에 괜히 눈물이 난다며 눈가를 훔쳤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다보니, 거의 다섯시간을 앉아서 있었던 것 같다. 임신전보다 7킬로나 불어 제법 동글동글해진 얼굴에 웃음이 떠날 새가 없었다. 선물을 열 때는 얼마나 두근두근대던지. 🙂

이렇게 행복하고 기억에 남을 시간을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모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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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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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온 마리아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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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푸드와 음료, 케이크와 빵 등 다양한 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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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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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고 쓰기엔 작지만, 하나에게는 완벽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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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정말 고마워!!!

임신 후기, 병원 방문 단상

임신 중기 이후, 굳이 심박이 느껴지는 곳에 손가락을 올리지 않아도 심박수를 셀 수 있게 되었다. 심박의 강도가 세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간혹 그 심장의 박동이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호흡이 불편해지고 오심이 날 때가 있다. 심박수는 대충 80과 90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으니 특별히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난번 방문 이후로 의사가 좀 이상하다 싶은 건 오라고 했기에 예약을 잡고 병원을 방문했다.

심박이 불규칙한 건 아니고 규칙적인데 불편한 정도로, 어렸을 때 별다른 심장 질환이 없었다면, 지금 검사한 정도로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잠시 누워보라고 할 때 한 다리를 먼저 얹고 다른 다리를 끓어올리는데, 사흘 전부터 다시 시작된 치골통에 약간 신음을 하며 미간을 찌푸리니까 의사가 그렇게 움직이면 안된다고 한다. 양 다리를 벌렸다가 오므리는 활동은 치골통이 있는 경우 이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니 반드시 두 다리를 모아서 동시에 움직이라고 한다. 또한 잘 때 다리 사이에 베게를 끼우고 자라길래, 그건 이미 하고 있다고 답했다.

출산 후 몇 주 안에 없어지는 통증인데, 지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정 힘들면 파노딜같은 진통제를 먹으란다. 다 그렇게 한다고. 그런데 이런 치골통이 임신후기에 느껴지는 건 서서히 아이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골반뼈가 양쪽으로 벌어지는 때문이라며 몸이 출산에 준비하는 신호이니 좋은 거라며 위로해준다. 오늘 치골과 그 반대편 허리아래편이 아프던데, 이제 서서히 준비하는 거로구나 싶으니 빨리 이런저런 출산 준비를 마무리해야겠다 싶었다.

다음 주말 크리스마스엔 시부모님이 오셔서 우리 가구 움직이고 하는 거 도와주시겠단다. 난 이제 무거운 거 들면 조산할 수 있어서 안된다며. 칠순이 넘으신 시아버지가 괜히 힘쓰시다가 아파지시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더라. 차라리 옌스 친구를 부르는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한데, 도와주신다니까 우선 알겠다고 말씀은 드렸다.

배가 급격히 나오고 있다. 물론 이틀간 연이은 크리스마스 디너에 변비가 겹쳐 배가 더 나온 것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도 이미 배가 좀 급격히 나왔었다. 11월 하순 이후로 체중은 더이상 안늘고 있는 것 같다. 거의 한달 정도 되었는데. 아무래도 조금만 많이 먹어도 배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냥 임신 전과 다를 것 없이 먹게되는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그 기간중 애는 1킬로는 늘었을텐데, 내 몸에서 1킬로 정도가 빠진 모양이다.

나와 예정일이 같나, 하루차이인가 하는 지인은 양수가 부족해서 37주에 유도분만이든 뭐든 해서 애를 낳을 거 같다고 한다. 여기에선 딱히 양수를 검사하는 건 아닌데, 촉진을 통해서 자궁 크기와 아기 크기를 판단하니까, 그 두 개가 정상이면 양수도 정상이라고 판단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이제 이번주 수요일이면 모유수유 교육이 있다. 그게 끝나면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3주의 부모준비교실이 끝나는데, 사실 안가도 출산하고 수유하면서 배우게 되겠지만, 미리 알아두면 우리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를 알 수 있게 되서 조금 더 준비하기 수월해지는 것 같다. 또 책에 써있지 않지만 우리가 궁금해하는 병원의 프랙티스에 대해서는 따로 질문을 통해 배울 수 있고, 다른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질의응답을 통해 들으면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고민해 볼 수 있어서도 좋다.

이제 6주도 채 안남았는데, 크리스마스 명절에, 프로젝트 제출 및 시험도 있고 하니 정신없이 지내다가 덜렁 애를 낳을 것 같다. 시간이 어찌나 쏜살같이 흘러가는지. 오늘 병원에서 내 진료차례를 기다리며 여러 꼬마 아기들을 많이 봤는데, 저게 내 미래구나 싶어 새삼 두근거렸다. 흠흠…

임신 전엔 몰랐던 임신에 관한 것

임신 전엔 임신에 대해 참 잘 몰랐다. 출산하고 나서는 또 출산에 대해 참 잘 몰랐다는 것을 또 배우겠지. 임신에 대해 나도 많이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보지도 않는데 굳이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일찍 애를 가진 친구들은 뭐 다 그렇게 낳는거지 하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했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잘 관리하고 운도 따라주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고, 불편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또 예상하지 못했던 점에서 불편하기도 하다.

대부분은 이래저래 들어서 알고 있던 어려움들인데, 아래 두가지는 몰랐던 일이다.

  •  배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는다.

복근, 피부 이렇게 안밖으로 따로 또 같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자궁이 커지면서 임신 초기에 아랫배에 콕콕 또는 쿡쿡 찌르는 느낌이 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피부가 찢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는 별로 못들어봤다. 너무 당연해서 이야기를 안해줬나보다. 1년 새 10킬로 찌거나 빠진 경험이 다수 있어 그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 묵직한게 들은 채로 배에 집중해서 체중이 증가할 경우 다를 거라는 것을 몰랐다. 살에 한줄 튼 살이 생겼는데, 실제 이렇게 찢어지는 느낌을 받는 거겠지.

  • 치질이 생긴다.

변비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치질 이야기는 잘 못들었고, 변비 없이도 치질이 생길 수 있다는 건 몰랐다. 치질은 변비나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때문에 생기는 것인 줄 알았는데, 임신으로 증가한 복압으로 생길 수도 있었다. 애 낳고 대부분은 좋아진다는 말에 기대하고 있다. 좌욕을 하기엔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건 임신 중 아이에게 좋지 않다해서 패스하고…

소위 후기에 많이 발생한다고 들었던 치골통이나 기타 문제들은  중기에 오히려 미리 겪고, 대부분은 여러가지 대처법을 통해 극복했는데, 저 위의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이 안되고 있다. 막판까지 계속 저럴 듯. 7주 동안 또 무슨 일들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젠 정말 막바지다.

옌스가 오늘 아침, 처음으로 하나를 만나는 순간을 꿈으로 꿨다는데, 눈을 잘 못떠서 애써 눈을 뜨려고 용을 쓰는 표정을 보았다고 한다. 이젠 실감이 정말 나나보다. 이번 주 토요일이면 하나 침대도 들어오고 이것저것 수납용품 등이 배송되는데, 그거 정리하면 진짜 실감날 듯. 식탁도 거실로 나오고… 집에도 대변화가 예상된다. (미니멀한 집은 안녕)

논문 프로젝트 시작

출산 및 육아휴직때문에 논문의 공식적 시작은 2018년 2월부터지만 교수의 너그러운 배려 덕분으로 Contract sign 없이 미리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첫 미팅은 잘 끝났다. 이렇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논문을 쓸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의외로 주제 뽑는 문제가 스르륵 풀려버려서 이제는 데이터 수집하고 준비해서 쓰기 시작하면 된다. 덴마크어로 된 자료 수집도 필수불가결한 거라, 교수가 덴마크어 어느 정도 하는지 물어봤는데, 사전 써가며 신문 읽을 정도 된다고 하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정부 보고서가 덴마크어로만 된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논문 키워드는 헤도닉 모델, 홍수이다. 계량경제학, GIS, 헤도닉 모델을 열심히 파게 될 것 같은데, 하나가 얌전한 아기로 잠을 많이 자주면 조금 더 미리 많은 것을 할 수 있어 홍수피해방지책에 대한 CBA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 그 건 번외로 하고 논문은 범위를 조금 더 줄여서 컴팩트하게 가려고 한다.

쿨한 교수와 함께 하게 된 것도 좋은데, 교수가 이 주제대로 나오면 정말 cool할 것 같다고, 덴마크에 없는 자료를 만드는 것이니 여러 지방정부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더 좋았다.

논문이란게 이렇고 시작하다가도 여러가지 장벽을 만나 꼬여 방향을 틀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지만, 사람들이 한결같이 우선 쓰기 시작해야 한단다. 그래야 고칠 게 있지, 쓴 게 없으면 고칠 수도 없단다. 맞는 말이다. 지난 번 소논문 쓸 때도 쓴 게 없으면 지도교수도 도와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고, 실제 그를 피부로 느꼈다.

아직 하나가 나올 때까진 시간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겠다. 읽을 거리들도 읽어두고, 뇌도 계속 깨워두고.

교수가 카페에 데려가 옆에 재워두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라떼 아기”이면 미리 일하기 수월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 끊임없이 소리지르고 우는 아이면 애를 보육원에 보낼 때까지 일하는 건 거의 포기해야 할 것이란다. 그래서 한국 갔다와서 한 9~10월때쯤 애를 보육원에 보내려한다 했더니, 자기네도 9개월 때 보냈다며 그때 보내기 괜찮은 때 같단다. 애가 스스로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하는 타이밍이라 그런대로 보낼만 하다고. 그전에 보내면 그런 소통 자체가 어려우니 혼자 거의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좀 많이 안쓰럽다고. 그렇게 애를 보내기 시작하면 좀 본격적으로 일 할 수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도 해준다. 중간에 언제고 연락하고 찾아오란 말을 더하며.

마음이 편해졌다. 집에 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 연하장도 부치고 나니 뭔가 한 해를 거의 마무리한 느낌도 들고. 하나가 좋은 타이밍에 와줘서 삶이 조금 더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는구나 싶어 고맙기도 하고 좋다. 비가 와 날은 참 우중충하지만, 바나나와 아몬드, 고지베리를 넣고 따끈하게 오트밀을 끓여먹었더니 마음도 푸근하다. 조금 있다가 오후에 옌스와 함께 산모교실도 다녀오고 하루를 잘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