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면 밖으로 밖으로

오늘 뜬 태양이 내일에도 뜬다는 보장이 없기에 해가 뜨는 날이면 사람들은 밖으로 나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했던 오늘, 점심시간 동기들과 함께 밖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바람도 약간 불고 온도는 6도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예전에 사람들이 추운데도 불구하고 굳이 밖에 나와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을 볼 때면 참 대단하다고 평했던 나인데, 이젠 해가 뜨면 밖으로 나선다. 추위에 약간 떨면서도 밖에 앉아서 밥을 먹고야 만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여름에 건조한 30도가 덥게 느껴질때면 인도의 습한 50도를 어떻게 견뎠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음주에 느낄 한국은 이보다 따뜻할테니 몸과 마음이 모두 훈훈해질 것 같다.

 

만난지 2년째

2년전 발렌타인데인 하루 전날, 옌스와 처음 만났다. 미리 사둔 하트모양 핑크색 화이트 초콜렛을 발렌타인데이 하루 전날 반으로 두동강내어 먹고 만난 것은 그 유혹 탓도 있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때문이기도 했다. 콩엔스 뉘토어 정류장 밖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추운 날씨를 피하려고 백화점으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추운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이중 문으로 되어 있는 구조인데, 나는 문과 문 사이에서 곧 올 것으로 예상되는 옌스를 기다리며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뒤에서 “혹시… 당신이 해인…?”이라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사진으로만 봤던 옌스가 눈에 들어왔다. 만나서 반갑다는 말과 함께 허그를 하는데, 같이 허그를 하면서 느낀 그 어색함이란… 아직 덴마크식 허그 인사에 익숙해있지 않았는데다가 초면에 허그를 예상하지 못한 탓에 너무나도 어색했다.

만난지 세번째에 키스를 하며 사귀기로 이야기를 나눴던 이유로 그 날을 우리의 기념일로 정했지만, 올해는 첫 만남을 기념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의 예약이 기념일에 다 차있었기에 이날로 바꾸기로 했지만, 더 큰 의미도 있다면서 말이다.

“그 날, 우리의 첫만남을 재현해볼까?”

그렇게 해서 이날, 우리는 첫만남의 어색함을 재현해보았다. 같이 역에 도착해서 나는 역 바깥으로 해서 백화점으로 들어가고, 옌스는 역안에서 백화점으로 연결되는 통로로 들어갔다. 혹시 엉뚱하게 기억해서 다른 문으로 갔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 첫 만남과 비슷한 초조함도 들었다.

“혹시… 당신이 해인…?”

“당신이 옌스…?”

만나서 반갑다는 말과 함께 한 포옹은 더이상 어색할 수 없었지만 그날의 기억을 새롭게 되살려주기엔 충분했다. 지난 2년간의 일들을 되새기며 많은 이야기를 하고 배가 터지도록 먹은 이날의 따스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덴마크 명절 단상

덴마크에 와서 보니 가족 모임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잦다. 그리고 모였다 하면 밖에서 외식하는 거 없이 대부분 집에서 모여 식사를 하고, 점심, 저녁까지 두끼는 기본이다. 모이는 장소는 자녀의 집에 처가, 시가 식구가 함께 모이는 경우부터 처가나 시가로 때에 따라 바꿔가며 방문한다. 딱히 정해져있는 건 없다. 음식도 나눠서 해가고 뒷정리도 다 같이 한다. 중요한 차이점은 남녀 모두 일을 한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남자가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최소한 우리 시댁은 그렇다.
 
손님을 집에서 치르는 일이 잦은데, 서로 오고가며 그리 하다보니 조금씩 손님맞이가 익숙해지고 좋아진다. 뒤늦게 치우는 일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부부가 같이 정리하면서 그날의 저녁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일도 즐거움의 일부다.
 
불만은 한쪽이 일을 부담할 때 생긴다. 덴마크의 이런 남녀 평등이 찾아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의 참정권 확보가 불과 100년전이고, 1950년대를 전후로 해서야 여성의 경제참여 비중이 늘어나고 여성의 역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을 시점으로 한 변화가 지금의 사회 모습의 초석이 되었으니 꽤나 최근의 일이다.
 
우리가 덴마크에 비해 민주화나 근대에 들어선 발전의 시작이 늦기는 했으나, 그 시간의 격차가 아주 큰 것은 아니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양성간의 차별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전통의 이름으로 이러한 차별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도 한다. 
대가족간의 모임이 예전같지 않고 갈수록 핵가족 되어가는 현상이 아쉽다. 현대화가 교류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텐데. 우리 명절 문화가 변화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아주 많이 부족하다.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떼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남자들이 조금 돕는 정도가 아니라 획기적으로 모두가 함께 일하고 먹고 즐기는 기회가 될 때가 충분히 되었다. 불만이 사라지면 교류에서 찾을 수 있는 과실이 눈에 보인다.
집안일을 추가로 더 하더라도 이곳의 명절은 즐거운 날이 되었다. 서로 위해주는 가족들을 만나게 되고, 나 또한 그 일원이 된다는 것, 그리고 미래에 내 아이들에게도 더 큰 가족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피로 섞인 내 가족이 아니기에 그와 같을 수 없다하더라도 그건 당연하다. 내가 그들에게 가족과 똑같은 애정을 부어주기엔 우리가 아는 시간이 아직 짧고 아직 더 가까워질 거리가 많이 남았기에 말이다.
물리적인 거리와 언어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의 내 가족과 옌스가 내가 이곳에서 동화되는 만큼 가까워지지 못함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문제일 뿐, 양쪽의 문화를 모두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더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멀지 않은 시기에 나도 우리의 2세를 가질 수 있고, 그 2세에게 두개의 다른 문화와 가족속에서 자랄 수 있게 해주길 바래본다.

덴마크 잡설 1

  1. 바람이 정말 많이 분다. 거센 바람이 거의 항상 분다. 과거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매미가 초속 30m의 바람을 동반했는데, 여기선 초속 20m로 바람이 부는 날이 흔하다.
  2. 겨울이 길다. 멕시코만류(난류)의 영향으로 본격적 겨울은 12월부터 시작되서 4월까지 간다.
  3. 비가 많이 온다. 강수량 자체가 많은 것을 아니지만 추적추적 자주 온다. 특히 가을부터 봄까진 흐린 날이 대부분이라 파란 하늘을 보면 감사하게 된다.
  4. 기온으로는 추워봐야 영하 5~10도로 크게 춥지 않지만 거기에 거센 바람과 습한 공기가 결합하면 참 춥다.
  5. 겨울엔 낮이 정말 짧지만 반대로 여름엔 낮이 정말 길다. 흑주, 백야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그에 준한다. 겨울엔 해떠있는 시간이 5시간 정도에 불과하고, 해도 매우 낮게 떠서 하루 종일 해질녘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6. 여름은 짧지만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멕시코 만류가 여름의 기운을 실어다 주기까지 시간이 걸려 여름 또한 7월 정도로 늦게 시작되지만, 9월정도까지 지속되는 여름은 참 아름답다. 기후가 안좋은 해에는 여름이 실종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여름이 실종된다는 것은 여름에도 최고기온 15도 내외로 비가 추적추적내리는 음습한 날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 촛불을 많이 켠다. 1인당 초 사용량 기준 세계 1위다.
  8. Hygge를 좋아한다. 겨울이 길고, 음습하고, 밤이 길지만, 집에서 촛불을 켜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나 차, 와인을 마시면 어찌나 아늑한지. 그 분위기를 일컬어 “Hyggelig”하다고 한다.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을 표현하는 동사로 “At hygge sig”가 있다. 다른 나라 말로 번역이 정확히 안되는 단어다.
  9. 커피를 정말 많이 마신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 5위안에 든다. 그러나 대형 커피 체인은 장사가 별로 잘 안된다. 독립 커피점이 잘 되는 나라다. 물론 집에서도 많이 마시지만.
  10. 코펜하겐 사람들은 날씬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날씬하지만, 코펜하겐 사람들은 더 날씬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도시가 운동에 꽂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거리를 누비며 뛰는 사람도 많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철인을 보유한 것처럼 강인한 체력을 소유하는 것을 좋게 생각해서 그런 게 더 큰 것 같다. 날씬하고 건강한게 트렌디한 것이라. 지방으로 나가면 비만 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맥주와 소세시, 돼지를 즐겨먹는 식문화에서 날씬한 사람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11. 다른 코카시안에 비해 얼굴이 조금 더 밋밋하게 생겼다. 눈위 뼈가 도드라지지 않아 눈이 푹 파이지 않았으며, 코도 아주 높거나 크지 않고, 매부리코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하나하나의 얼굴 부위 특성을 따지면 아시아인의 얼굴같은 느낌이 있다. 물론 금발머리가 흔하고, 얼굴 색은 겨울엔 거의 창백하고, 여름엔 구릿빛이 되고(빨개지지 않고 잘 타는 편이라 다른 유럽인들이 부러워한다.)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아시아인같은 느낌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 왈 덴마크인은 잘생긴 편이란다. 처음엔 그닥 공감하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를 갔을 때 공감했다. 덴마크인들이 크다는데 크게 공감하지 않다가 한국 돌아가서 공감한 것과 마찬가지로.
  12. 장을 동네 슈퍼마켓에서 자주 본다. 미국식 대형 슈퍼마켓에서 대량으로 사와 쟁여놓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렇게 사먹으면 신선한 것을 못먹는다는 생각에서 그렇다는데, 그것보다는 장을 자주 볼 수 있을 만큼 여유있게 퇴근을 하거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슈퍼가 충분히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13. 빈번한 외식문화는 한국처럼 발달해있지 않다. 한국에서처럼 매일 사먹으면 가산을 탕진하기 때문이라 그런 것도 있고, 집에 와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할 시간적 여력도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외식도 자주 안해 버릇하니, 예전 한국에 있을 때처럼 이게 먹고 싶다, 저게 먹고 싶다 이런 생각 자체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14. 전국민이 자전거를 탄다. 나이, 성별 따지지 않고 다 탄다. 그래서 보조 바퀴를 단 자전거를 볼 일이 없다. 눈비 가리지 않고 타는 그들을 보면 놀라울 지경이다. 추운 겨울엔 핸들바를 잡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타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15. 생산성이 높다. 일하는 시간이 짧은 대신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짧고, 업무강도가 높다. 점심시간은 최대 30분 정도 쓰고, 이 또한 그냥 자리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는 것으로 대신하는 사람들도 많다.
  16. 무상복지 패키지는 별로 없다. 국민 연금은 많이 내도 적게 내도 받는 액수엔 큰 차이가 없다. 의료의 대부분은 나라에서 지원하지만, 의약품은 개인 부담이 우리보다 크고, 치과진료, 물리치료 등은 개인 부담이 크다. 대학교육을 제외하고는 보육부터 의무교육기간까지 추가로 학교에 내야하는 돈이 꽤 크다. 한국 사립학교 수준이다. 그렇지만 살림이 어려운 가정에게는 나라에서 추가로 보조해준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소득재분배 측면에서 옳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17.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사회 계층의 차이가 있다. Hellerup, Rungsted, Chalottenlund 등지의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갖고 있으며, 못사는 집 애들과는 놀지 못하게 하는 부모들도 있다.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이런저런 경험담을 덴마크인을 통해 듣다보면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다 하는 생각이 든다.
  18. 세금을 많이 낸다. 최고 평균 세율이 55%이다. 따라서 한계세율을 기준으로 보면 60% 넘게 내는 사람들이 있다.
  19. 1인당 가처분 소득은 세후 기준으로는 한국보다 1.5~2배정도 된다. 그러나 물가가 2배 정도 되기에 검소하게 살 수 밖에 없다.
  20. 전반적으로 다 깔끔하게 하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명품을 든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품브랜드가 한국에서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하지 않다.
  21. 녹지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도시 슬럼화 현상을 먼저 관찰한 후 도시계획을 잘 수립해 중심부가 슬럼화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왔으며, 녹지계획이 그와 함께 잘 수립되어 있어 녹화된 도시로 성장했다.
  22. 종교세가 있다. 국교인 루터교가 하나의 정부 부처로 설립되어 있으며, 종교세 1%를 과세한다. 교회에서 탈퇴하면 안내도 된다.
  23. 젊은 사람들은 영어를 참 잘하지만,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많다. 시부모님이나 시누이가 간혹 원하는 영단어를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 괜히 미안해 한다. 영어를 잘 하셔서 오히려 감사할 일인데 말이다.
  24. 덴마크어의 발음 규칙은 복잡하다. 쓰인대로 읽지 않는다고 외국인들이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쓰인대로 읽지 않는게 아니라 알파벳의 결합에 따라 읽히는 규칙이 다른 언어에 비해 복잡한 것 뿐이다. 영어와 독어를 잘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배운다. 동사 변형이 다른 유럽어에 비해 간단한 편이다. 발음 때문에 사람들이 청해에서 어려움을 느껴 언어 자체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지, 언어 자체가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25. 애플 제품을 정말 많이 쓴다. 대학교에서 맥이 아닌 컴퓨터를 찾는게 더 어렵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애플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한다. 아마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해서 그런게 아닐까.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나는 건 많지만, 다음에 이어가기로 하고…

일찍 깬 시험날 아침 이런저런 생각

오늘 드디어 이번 학기의 마지막 시험을 치른다.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생태학 시험을 그저께 성공리에 치르고 나니 자원경제학 시험은 좀 수월한 기분이다. 아침 9시부터 4시간 동안 머리를 굴려야 할 터라, 6시 반인 지금부터 괜히 뇌를 부리지 않으려 블로그에 들어왔다. 시험이라는 이유로 읽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자유로이 하지 못했기에 많이 아쉬웠는데.

한학기동안 쭉 진행되었던 생태학 수업은 15 ECTS, 한국 3학점이 6ECTS로 환산되니, 8학점 쯤 되는 수업이다. 그걸 중간고사 없이 기말에 한번도 마주한 적 없는 구술시험의 형태로 진행하게 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험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감이 없었고, 교수 4명과 외부감독관 1명으로 구성된 시험관이 어떤식으로 학생들을 추가로 시험할 지 몰랐기에 불안했다. 막상 시험 문제를 뽑아보니, 어려운 문제.

학기중 총 9개의 모듈을 공부했는데, Carbon, Nutrient, Water, Biodiversity 등 4개의 모듈 관련 그룹보고서를 제출하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 4개의 프로젝트에서 하나를 뽑기로 뽑고, 100개의 문제은행에서 그룹 보고서의 모듈과 다른 모듈의 질문을 하나 또 뽑기로 뽑은 다음, 별도의 룸에서 30분동안 준비한다. 그리고 나서는 프로젝트와 질문에 대해 각각 5분간 발표하고, 7~8분간 추가 질의응답을 하는 것을 통해 25분의 구술시험이 종료된다.

Carbon 모듈 프로젝트를 뽑고 질문을 뽑았는데, 아싸! Biodiversity 중에서 쉬운 질문이다 생각한 순간, “그 문제는 네 Carbon 프로젝트가 Biodiversity를 연관해 아우르는 프로젝트라 다시 뽑아야 해.”라는거다. 다시 뽑은건 Water… Hydrology와 Nutrient cycle을 연결해서 묻는 질문이었는데, 처음엔 질문도 잘 이해가 안가더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서 준비방으로 갔는데, 내가 원하는 정보가 출력하지 않는 논문에 있어서 인터넷을 하려하니, 내 컴퓨터 인터넷이 먹통… 패닉되려는 순간 마음을 다잡고 이건 치우고 다른 내용에 초점을 맞추자 싶어서 진정하고 준비했다.

프로젝트는 4개 모두 집에서 발표를 준비하고 내용도 꼼꼼히 다 읽어봤던 터라 자신있는 것부터 시작하는게 기선제압에 좋겠다 싶었는데, 전략이 유효했다. 문제에 대한 발표는 프로젝트보다 덜 매끄러웠지만, 질의응답에 나름 잘 대응했고.

시험이 다 끝나고 방 밖으로 나가 평결을 기다리는데 (구술은 즉각 성적을 알려준다.) 그 3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긴장이 되서 창가에 설치된 예술품을 보며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딴짓을 해가며 시간을 보냈다.

성적이 결정되면 성적과 함께 시험에 대한 평가, 약점, 강점 등을 설명해준다. 약간의 weakness는 있지만, 전체 수업 내용을 다 이해하고 복잡하게 연결된 생태 문제를 잘 풀어낼 수 있도록 모듈 간 지식 융합과 연결을 잘 할 수 있어서 12점을 준다고 했다. 이번 수업에 두명만 만점이었는데, 내가 그 중 하나가 되다니. ㅠㅠ

나보다 옌스가 더 기뻐해줘서 더 기뻤다. 가장 부담되었던 생태학이 잘 끝났으니, 이제 조금 있다가 학교가서 마지막 시험 잘 봐야지.

My wedding speech :)

I would do my speech both in English and Korean as I have guests from different backgrounds. So it will be exceptionally long for a bride’s speech. It is okay to fall asleep.

Undskyld mig for ikke at tale også på dansk. Det er min brudens tale og jeg vil gerne udtrykke mine tanker og følelse fuldtud. Men mit dansk er ikke så godt nok til at gøre det. Så jeg vil bare tale på engelsk og koreansk. Måske allerede er der nogle gramatiske fejl.

First of all, thank you so much for everyone once again who came all the way from different parts of Denmark and the world. I am very grateful that I could share this precious moment in life with people that I care about.

우선 먼 곳에서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 인생의 소중한 이 순간을 제가 아끼는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I met Jens at an online dating site. As an economist, I wanted to be most efficient and effective even in terms of dating someone. Jens was my first date at the site, and he became my husband. It cost only 100 kroner to find my husband and he has been the most amazing and the best man that I have ever known! So, that 100 kroner was very cheap but the most efficient and the most valuable investment in my life.  

저는 옌스를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에서 만났어요. 경제학자로서 저는 누군가를 데이트하는 순간마저도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고 싶어했지요. 옌스는 거기에서 만난 첫번째 데이트였고, 제 남편이 되었어요. 제 남편을 찾기까진 단돈 100 크로나가 들었을 뿐인데, 그는 제가 여태껏 알아온 중 가장 훌륭하고 놀라운 남자였답니다. 그러니 이 100 크로나는 아주 쌌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가치있는 투자였어요.

Since there are some of guests, who didn’t have enough time to get to know him well, I would like to introduce him a little bit. Maybe this proud introduction would be against Janteloven in Denmark, unwritten rule telling people not to be proud, but I would do it anyway as it is my wedding dinner. 🙂 Jens is an incredibly sweet, caring, loving, artistic, hard-working, good-looking, keeping house clean, intelligent, humorous, calm, relaxed, down-to-earth, humble, tall, lean, no-smoking, not-drinking-heavily man. I should cut it here, because it will take nearly this whole night to descibe good things about him.

He didn’t make me nervous by playing games, and has made me smile or laugh by sending me some witty SMS’es from the beginning. One day after our first date, he sent an SMS starting like this, “The rules said that guys should wait 2-3 days before contacting a girl for the next date, otherwise the guy would look too desperate. And I was desperate.”

옌스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간단히 소개해드릴께요. 이런 자랑스러운 소개를 하는 것이 자만하는 것을 금하는 덴마크의 얀테법에는 다소 어긋나겠지만, 오늘은 제 결혼파티날이니까요. 옌스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다정하고, 잘 챙기고, 사랑하며, 예술적이고, 근면하고, 잘생겼고, 집을 깨끗이 관리하고, 명석하고, 유머러스하고, 침착하고, 여유가 있으며, 현실적이고, 겸손하고, 키크고, 잘생겼으며, 담배도 안피우고 술도 과하게 마시지 않는 남자에요. 여기까지만 할께요. 옌스의 좋은 면을 다 설명하려다가는 오늘 밤이 다 가 버릴테니까요.

그는 한번도 밀당 게임을 하는 식으로 저를 불안하게 한 적이 없었고, 처음부터 아주 위트있는 메세지를 보내며 저를 미소짓거나 웃게 만들었죠. 첫 데이트 이후 바로 다음날, 그는 이렇게 시작하는 문자메세지를 보낸 적이 있어요. “데이팅 법칙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랑 다음 데이트를 정하기까지 2~3일은 기다려야 절박하게 보이지 않는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저는 절박했어요.”

Jens. Thank you for being you and being with me, accepting me as your life partner to spend the rest of our life together. Thank you for being patient. I still remember our first walk around our neighborhood, trying to talk only in Danish, though it was even before for me to have a proper Danish education. That one hour was incredibly long, mostly filled with Umm… Jeg… umm… You have been patient always to listen to what I was trying to say. It was not just my Danish. But my feelings, my ideas, how my life is in Denmark, how my study is. You have not just been my partner, but have also taken over the roles that my parents had taken for me, and have been so much more than I could have imagined what a partner could be like.

I love our childish moments and jokes, and our economists’ dance turning into judo or wrestling. I love our small rituals such as three kisses or kyskyskys. I will love you until we cannot properly walk, and until the only sports we could play together is balloon tennis at a nursing home. You will always have your husband’s rights to have massages every four hours as you demand. I will complain just a little bit like, saying okay, okay, okay. I love you. Jeg elsker dig.

옌스. 당신이어서, 나와 함께 해줘서, 나를 여생을 함께 보낼 인생의 반려자로 맞이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항상 인내심을 가져줘서 고마워요. 나는 아직도 덴마크어로만 말하며 걸었던, 우리 동네에서의 첫 산책을 기억해요. 그땐 아직 제대로된 덴마크어 수업을 받기도 전이었죠. 그 한 시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길었고, 대부분이 음. 나는. 음으로 채워졌었죠. 당신은 항상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듣기위해 인내심을 가져줬어요. 그건 단순히 덴마크어뿐 아니라, 내 감정, 생각, 덴마크에서 내 삶이 어떤지, 내 공부는 어떤지 말이죠. 당신은 단순히 내 파트너일 뿐 아니라, 내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셨던 역할도 이어받았으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파트너란 어때야 하는 것인가 이상의 사람이 되어주었어요. 나는 우리의 유치한 순간과 농담들, 유도와 레슬링으로 바뀌곤 하는 우리 경제학자간의 춤을 사랑해요. 그리고 우리만의 삼세번의 키스와 같은 의식들도 사랑하죠. 나는 우리가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스포츠라곤 양로원에서 하는 풍선 테니스가 될 때까지 당신을 사랑할께요. 당신은 당신이 요구하는대로 매 네시간에 한번씩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남편의 권리를 항상 가질 수 있으며, 나는 알았어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하는 작은 불평을 할 거에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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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my king! 😀

Thank you so much mor og far for bringing up your son to this fantastic man and letting me be his life partner. And thank you also for being my another parents in Denmark. New family is a beautiful by-product of the marriage. I now have amazing family members on top of my loving family in Korea. Mor, far, Gry, Frederik and all the other family members, thank you for welcoming me to your family. I would be your another loving daughter and sister. Tusind tak!

어머님, 아버님, 당신의 아들을 지금의 아주 훌륭한 남자로 키워주셔서, 그리고 덴마크에서 제 또다른 부모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가족은 결혼의 아름다운 부산물이에요. 저는 한국의 제 사랑하는 가족에 더해 어머님, 아버님, 아가씨와 아주버님, 그리고 다른 친척까지 좋은 가족을 얻게 되었어요.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환영해주셔서 감사하고, 저 또한 사랑하는 딸과 여동생이 될께요.

I am happy to have my parents and aunt all the way from Korea, and Sunse and Dennis from Switzerland. Thank you for flying over to Denmark only to celebrate our wedding in this dready time of the year. This long distance sucks, but that does not mean that our distance in mind is also long. Even though I am away from you, and may not be in touch with you as frequent as before, I am caring and loving you my family and friends, missing you even more.

한국에서 여기까지 먼 길 와주신 부모님과 이모, 스위스에서 온 순재언니와 데니스 형부, 이 음울한 계절에 단지 제 결혼을 축하해주러 덴마크까지 먼길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 장거리는 참 몹쓸 것이지만, 그 거리가 마음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멀리 떨어져있고, 그 전처럼 연락을 자주 하지는 못하더라도, 제가 여전히 제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하답니다.

Sometimes, it feels like I am an undutiful daughter leaving my own country flying half way around the world in distance, not being able to be next to you mom and dad, but I know that you are happy for me that I met my Mr. Right, the perfect match and that you bless me and this marriage. Thank you for being my parents. You brought me up to have my life full of happiness, enlightened my life with your loving care, lessons of life and the education. You have been my mentors and you will always be. I will always dream, pursue, learn, love and be considerate or at least try to do or be so as you have taught me to. And I will be happy, I promise.

때로는 지구의 반바퀴를 날아와야 하는 곳에 떨어져있다는 사실이 제가 불효녀인 것처럼 느껴지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운명의 짝을 만나게 된 것을 엄마 아빠가 누구보다 행복해하고 계심을, 저와 이 결혼을 축복해주심을 잘 알아요. 저의 부모님이어 주셔서 감사해요. 제 삶을 행복으로 가득하도록 저를 키워주셨고, 사랑과 삶의 교훈과 교육으로 제 삶을 밝혀주셨죠. 제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셨고, 앞으로도 계속 그리해주시겠죠. 저는 항상 꿈꾸고 그를 추구하며, 배우고,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께요. 그렇게 못되더라도 최소한 그리 노력하고 살께요. 그리고 항상 행복할께요. 약속해요.

제 긴 스피치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all for being patient to listen to my long speech.
Jeg elsker dig, skat.

블록 1 수업을 모두 끝내고 시험을 준비하며 쓰는 잡설

8주간의 수업을 끝으로 블록 1이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시험 뿐. 한 수업이 15ECTS의 큰 과목이라 이 과목은 다음 블록까지 진행되며, 시험은 맨 마지막에 한번만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 공부를 중간중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모두 통과해야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과제가 학기 중 쉴 새 없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첫 3~4주를 보내고 나서 적당히 딴짓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 것은 첫째로 덴마크어 수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한 결정과 요령이 늘었기 때문이리라.

다음주 목요일에 있을 계량경제학 시험은 총 4시간에 걸쳐서 치르게 되는데, 인터넷만 사용할 수 없을 뿐 책과 노트, USB에 담은 파일 등 모든 자료를 다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 컴퓨터로 진행되는 시험이지만, 수식, 그래프 등 손으로 그리는 게 더 편한 것은 디지털 펜을 이용해서 쓸 수 있다. 시험 프로그램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 열린 오픈하우스때 테스트해봤는데, 정말 훌륭한 펜이었다. 디지털 펜용 종이에 쓰고싶은 만큼 쓰고 나서 펜을 거치대에 꼽으면 바로 데이터가 컴퓨터로 전송되는 방식인데, 쉽게 캡처해서 워드파일에 옮길 수 있다.

학사때 시절이야 현대의 IT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물던 시절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오래된 일이니 비교해서도 안되겠지만, 불과 몇년전 석사때를 생각해봐도, 한국에서 시험이라 하면 극히 제한된 몇 개의 오픈북 시험과정 – 난 겪어본 적이 없지만, 그렇게 치른 친구들이 있었음을 기억할 뿐이다. – 을 제외하고는 펜만 달랑 들고가서, 정해진 1시간의 시간동안 문제를 읽고, 종이에 손가락과 팔뚝이 아플만큼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을 쏟아내고 오는 것이었다. 중간에 손이 너무 아파서 탁탁 털어가며 시험을 치른 것이 추억이라면 추억일까.

오픈북 시험이라 함은, 컨닝할 수 없는 시험이라는 것이고, 지식의 중요성은 암기가 아니라 논리적 추론능력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의 제한이 있기에 뭐가 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책을 찾아가면서 풀 수는 없다.

덴마크에서 시험이 갖는 의미는 우리나라나 미국에서 갖는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학생들이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아는지, 어떻게 추론해 낼 수 있는지, 어디서 추론을 못하는지, 전반적으로 학생들이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음번 강의에서 어떤 점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지를 파악해 내고, 그런 결과로 실제 작년 학생들과 우리는 약간 다른 커리큘럼으로 배울 수 있었다. 계량경제학 1을 배운지 오래된 학생들이 기본 가정에 약해 허덕이는 것을 보고, 첫 주는 전 과정의 복습으로 시작한 것인데, 엄청 빠른 속도에 다들 힘들어했지만, 중요한 기초가 되었고 대부분 이점에 동의했다.

물론 여기도 학점이 나오고, 이로써 학생들을 나래비 세운다. 다만, C에 해당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은 경우는 총 2번의 재시험의 기회가 주어진다. 바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고, 다음 블록이 끝나고 주어지기에 추가로 공부할 수 있는 두달의 시간이 생기는 셈이다. 이런 학점은 PhD 등 후속 학업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학점이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고, 영 준비가 안되었다 싶으면 포기하고 다음 시험을 치를 수 있기에 학생들이 성적을 낼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과목 공부하기도 바쁜 데 추가시험까지 치르긴 싫기에 죽이되든 밥이되든 그 학기에 끝을 보는게 더 좋다는 생각이지만, 개인적 사유로 그리 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이 제도가 숨통을 틔워줄 것이다.)

매 주 우리가 배울 내용이 무엇인지, 읽어와야 할 범위와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 수업 전에 알아두고 와야할 내용 등이 수업 전에 게시되고, 모듈이 바뀔때마다 배운 내용을 30분 정도를 할애해 복습하는 점, 학생들에게 “멍청한” 질문이 없음을 꾸준히 설파하고 질문을 장려하는 점,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변 중 부족한 부분은 추가 자료로 배포하는 등의 모습은 한국에서 공부한 16년 반 동안 한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시스템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유럽 학교들도 우리처럼 교수의 지식 전달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이다. 그런 익숙함에서 벗어나, 교육 목표에 맞는 스스로 학습과 참여가 중요한 체제에 들어오는 것이 불편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학제는 안맞는 옷과 같다. 수업시간은 길지만 그 수업시간 중 연습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되기에, 배운 것을 실생활에 접목하는 실습을 어떻게 진행해야하는지 몰라 헤메는 사람들은 멍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또한 순수 강의 시간에 수업이 진행되는 속도는 빠르기에, 한번 놓치면 허덕이게 마련이고, 아예 포기하고 프로그램을 떠나는 사람도 적지만 있다.  모든 사람을 안고 갈수는 없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을 안고가려는 덴마크 교육시스템은 본인이 노력하고, 참여하면, 그만큼 얻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떠먹여주는 것이 별로 없기에 떠다가 입에 넣어주는 학습방식에 익숙해져 있으면 초반 적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 나라의 교육도 요즘 많은 진통을 겪고 있다. 덴마크 정부가 교육예산을 대폭적으로 삭감하고, 교육개혁을 실시하면서, 학생들의 교육 선택의 자유도 예전보다 줄어들고 있으며, 인문학 등 투자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전공은 폐지의 길을 걷게 된다. 어제만 해도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미래의 대학교육 수혜자가 될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참여했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정학 등 여러가지 조치가 취해졌을 것이고, 교직원이 참여했으면 징계 처분 등이 있었을 것임을 생각해보면서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시험기간이 되니 또 이렇게 잠깐 딴짓을 하게 된다. 해야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오히려 책상정리하고 방정리하는 것과 같은 일이랄까?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시험도 끝나있을 것이고, 부모님도 오실 거고, 또 한주가 지나면 내 웨딩디너파티가 열리겠지. 시간 참 잘 간다. 스피치 써야하는데, 반도 못썼다. 옌스는 뭘 썼을까? 부모님들은 어떤 것을 쓰셨을까? 그리고 앞으로 내 앞날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긴장도 되지만 설렌다. 스트레스를 받는 날도 있겠지만, 성취의 날도 있을 것이고. 공부를 하다보니 박사과정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졸업하고 취업의 길을 택할지 공부를 더하는 길을 택할지는 지금 생각하기엔 너무 이른 일이지만,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옌스는 내 결정을 지지하겠다고 했으니 오롯이 앞으로 남은 기간 공부하면서 잘 생각해봐야겠다.

올해 첫 여름날, 혼자만의 프레덴스보 여행

유난히 해가 쨍하고 뜨거운 날씨. 올해 진정한 여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첫날이었다. 고백하기 부끄럽게도 게으름이 뼛속까지 배어있는 나에게는 아무리 좋은 날씨라고 몸을 추스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직장을 다니면 원하지 않아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어 밖으로 나서게 되는데, 그렇지 않은 지금은 자유와 방만함 사이의 줄타기를 하며 지내고 있다. 열심히 지내는 날이 있다가도 정말 손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 있으니 그게 우연히 날씨가 좋은 날과 겹치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집에서 공부를 하는 경우라면 육체적으로는 게을러도 지적으로는 부지런하다며 자위라도 할 수 있는데, 아무 것도 안하면서 나가지도 않다니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렇지만 어제는 날이 너무 좋았다. 이러저러한 일들로 수학공부를 게을리한지 몇날이 흘렀으니 사실은 연필을 쥐고 책상 앞에 앉았어야 쓰겠으나, 이렇게 좋은 날씨를 나가 찬양하지 않기엔 왠지 모르게 다른 종류의 죄책감이 들었다. 흔하지 않은 날을 기념하지 않고는 이런 날씨가 서운해서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밖에 나가기를 결심하고 막상 밖으로 나서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침 9시, 옌스에게 “나 오늘 짧은 여행을 하고 올거야. 기차타고 자전거 타고 유채꽃이 핀 들판을 찾아 나설거야.”라고 문자를 보냈다. 저녁에 오늘 공부 뭐했냐고 물어보지 않기를 원하는 문자다. 조심하라는 답을 듣고, 사실 진짜 조심하긴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는 들판 한가운데서 자전거 바퀴라도 펑크나면 어떻게 해야할 지는 나도 모르니까.

작년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고속도로를 타고 멀리 여행할 때면 유채꽃이 한가득 핀 들판이 끝도 없이 펼쳐진 것을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와 함께 밀이 누렇게 영글어 있는 들판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가 최절정에 이르는 시기임을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어제는 그런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열심히 구글 검색을 하느라 쓸데 없이 시간을 낭비하다가, 이러다 또 나가기를 관두겠다 싶어 그냥 외어순스토(Øresundstog)를 타고 올라가자 마음먹고 비스켓 하나, 물 한병, 깔고 앉을 담요를 한장 챙겨서 서둘렀다. 벌써 정오였다.

열차 안에 자전거를 고정시키려다가 자전거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칸은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로 가득차있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나를 보고 귓속말을 하는 아이도 있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도 있었다. 이런 일에 신경쓰려면 한도 끝도 없는 해외생활이기에 그냥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음악을 들으며 알랑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조금 읽자니 나의 게으름과 그에 따른 죄책감을 그도 똑같이 느꼈다는 사실에 실소를 흘렸다.

“… 이 책들은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입을 모아 바깥에는 마드리드라고 부르는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운 현상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곳에는 기념관, 교회, 박물관, 분수, 광장, 쇼핑거리 등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나도 그런 유혹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내가 그것을 볼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 자신의 게으름과 좀 더 정상적인 관광객들이 느꼈을 진지함을 비교하며 냉담과 자기혐오가 뒤섞인 느낌에 시달리기만 했다.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욕구, 가능하다면 얼른 비행기에 올라타 집에 가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 <알랑 드 보통, 여행의 기술>

5페이지도 채 읽지 않은 짧은 기차여행에서 그 부분을 읽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지며,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괜히 더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중의 하나라는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이 위치한 홈르백(Humlebæk)에 내려 왕실의 여름궁전인 프레덴스보(Fredensborg)에 가기로 했다. 그 길로 가는 중엔 유채꽃밭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2년이나 살면서 그곳에 아직 가보지 않았다는게 게으름의 표상인 것 같아, 아무도 비난하지 않지만 스스로 비난받은 듯한 느낌마저 들어 선택한 곳이었다. 남들은 굳이 힘들게 돈과 시간을 들여 오는 여행지중 하나인 유럽에 살면서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지 않는 건 귀한 걸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을 다녀올 때면 흔히 이용하던 고속도로까지 가는 지방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니 주변 풍경이 사뭇 달랐다. 지방도로가 자전거도로와 높이가 다른데다가 가로수로 가려져 있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전거도로는 들판 안쪽으로 훨씬 가까이 붙어 차도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2시가 거의 다 된 시간. 집에서 나올 때보다 한결 뜨거워진 공기가 느껴졌다. 이날 따라 바람이 덜 부니 22도밖에 되지 않는 온도도 매우 덮게 느껴졌다.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아 해가 더 쨍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시골이라 인적이 드문 길이 많았다.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길에 잠시 멈춰 한참 사진을 찍다가 다시 페달을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즐기다보니, 아차. 어느 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바퀴가 큰 자전거임에도 40분은 족히 달려야 할 거리라 빨리 다녀와야 저녁시간에 늦지 않게 집에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 탓이었다.

갑자기 훅하고 코를 잡는 꽃향기. 라일락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뜨거운 공기 속에 열기인지 향기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자신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느끼는 그 기분이 좋아 굳이 멈춰서지 않고 계속 페달을 밟았다.

밀밭은 알이 충분히 영근 밀작물로 짙은 초록색을 뽐내고 있었다. 그 옆의 유채꽃밭은 이제 갓 꽃몽오리가 진 유채꽃 사이에 성급히 터진 어린 꽃들만 조금 보여, 그 노란색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았다. 6월 말에서 7월 정도 사이에 다시 오면 노란 물결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아쉽다고 느끼는 순간, 그럴 거 없이 또 오면 된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또 한번 이런 여행을 해야겠구나.

간간히 지나가는 차들 빼고는 인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 밭과 멀리보이는 농장을 지나치며, 여기서 타이어 터지면 정말 난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물지만 가파른 언덕에서 20kg에 달하는 나의 무거운 애마의 페달을 간신히 밟아가며 오르다, 잠깐이지만 내가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니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다음 만나는 내리막길에선 신나게 바람을 즐기며 내려갔지만, 반대로 집에 갈 땐 어쩌나 하는 두려운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프레덴스보 궁전은 여름 별궁답게 소박한 느낌이었다. 관광철이 아니라 그런지 북적임도 없어 궁전 부속 공원을 산책하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작은 새들이 조잘거리는 소리는 어찌나 영롱하고 행복한지. 굳이 여기가 아니라도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새소리이지만, 적막함과 바람소리에 어우러지는 새소리는 메아리까지 쳐서 들려 한차원 다른 소리로 들렸다.

공원의 끝에 접하고 있는 이스훔 호수(Esrum Sø)는 크고 고요했다. 나중에 지도를 살펴보니, 셸란(Sjælland) 섬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이다. 그 큰 공원과 호수를 몇 안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호사스러울 지경이었다. 관광철에 와서 북적임을 느낀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즐거울 수 있겠지만, 북적임보다는 적막을 좋아하는 나에겐 이쪽이 훨씬 좋다.

집에서 싸온 비스켓을 우물우물 씹어먹으며 앉아있는데, 예전이면 외롭게도 느껴졌을 수 있던 그런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길지 않은 시간, 땀을 식히며 앉아있는 그 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초록색이 가득한 곳이라 그랬을까?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거리 까페에서 홀로 앉아있으면, 내 땅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싶어 유독 고독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는 그곳에 앉아 있으니, 간혹 산책하는 사람들 한두명과도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며 오히려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

돌아가는 길은 다행히 다른 루트로 운행하는 로컬 열차가 있어 쉽게 돌아왔다. 그 열차 속에 앉아, 그 무수히 많았던 날들처럼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몸을 일으켜 나온 5시간 전의 나에게 감사하며, 또 이런 혼자만의 여행을 나서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