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덴마크어 학습방법

모듈 6를 꼭 듣겠다는 마음으로 Prøve i Dansk 3 시험을 계속 미뤄왔다. 모의 시험으로만 보면 우수한 성적은 아니더라도 이미 통과할 수 있었던게 벌써 7~8개월 전이니까. 읽기, 듣기, 구술, 작문 시험 모두 10점 또는 12점을 받아야 모듈 6를 들을 수 있기에 완전히 준비될때까지…라는 마음으로 오기를 부려왔다. 6개월을 쉬고 다시 등록했다가 4번 나가고 수업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대학원 공부만으로 정신적으로 벅차졌고, 새로운 선생님은 시험준비에만 몰입해 수업을 진행하는 탓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 배우면 시험은 따라오게 되어있다는게 내 시험 공부의 지론이다. 그래야 시험성적과 언어의 수준이 따로 놀지 않게 되어 있으니까. 이런 건 어떻게 표현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런건 시험에 중요하지 않다고, 시험에 복잡한 문장 쓰지 말고 간단히,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게 적당한 문형을 활용해서 쓰라고 하더라. 같은 모듈 5 선생님인데도 그 전 선생님과는 너무 달랐다. 빠르게 의욕을 잃고나서는 안그래도 큰 마음 먹고 가야하는 덴마크어 수업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덴마크어 공부를 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나 하고 싶은대로 공부하다가 나중에 시험 치고 싶을 타이밍 직전에나 학원에 다시 가야겠다.

그래서 하는게 닥치는 대로 방송을 보는 것이다. 드라마, 뉴스, 다큐멘터리 등. 집에 TV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국영방송인 DR (Danmarks Radio)만 시청할 수 있다. 처음엔 자막을 주로 깔고 보다가 요즘은 자막 없이 보기도 한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는 방법이라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본다.

신문 기사를 하나 정해서 필사를 하며 모르는 단어를 찾는다. 예전엔 대충 이해하면서 읽었다 하면 이제는 완전히 이해하려고 읽는다. 짧은 기사야 금방 읽지만, 신문 양면을 꽉 채운 특집기사는 다 읽는데 두시간 이상 걸린다. 긴 기사를 읽는 건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반복되는 어휘가 몇 개씩 꼭 있어서 그런 단어들을 외우기 좋다. 그리고 이런 기사는 일반적으로 중요한 경우가 많아서 덴마크 사회와 정치, 문화 등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영어를 배울 때부터 느낀 건데, 내 발음이 정확해야 상대 말이 들린다. 우리말 식으로 발음을 해석하지 않고, 원어민을 귀찮게 해서 내 발음과 상대의 발음의 차이를 찾아내서 같게 만들면, 상대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귀가 트이는 속도의 차이는 내가 얼마나 그 발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물론 그걸 인지해도 발음으로 복제해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걸 해내면 귀가 금방 트인다. 그런데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걸 문장으로 엮었을 때 어디에 강세를 두어야 하는지, 어떤 발음은 흘리게 되는지 등도 알아야 그게 대화로 옮겨졌을 때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듯이 어느 나라 말이든 한 음절 음절 똑똑히 발음하며 대화하는 언어는 설령 있다 하더라도 많지 않을테니까.

예전엔 옌스로부터 인터네이션 교정을 많이 받았다. 신문 기사나 책 등을 한 문장씩 읽어가며 강세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걸 잘 못하면 상대가 내 말을 잘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게 엄청 도움이 되서 이제는 새로운 문장을 읽거나 말할 때 큰 오류 없이 문장 속 중요 어휘와 문법적 요소를 찾아 강세를 바르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발음이나 강세로만 놓고 보면 외국인이란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다고 할 정도니 이 부분에 내가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 알 수 있다.

2014년 8월 중순부터 덴마크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이제 2년 3개월이 되었다. 조금 독학으로 찾아 읽은게 5월부터니까 그것까지 치면 2년 6개월. 대충 2년 정도 지나서부터 유럽 언어공통기준으로 중급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그런데, 언어가 중급 이상으로 늘기 시작하면 더이상 타인 주도의 학습으로는 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기가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초급이나 중급에서는 조금만 해도 느는 자기의 말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쉽게 할 수 있는데, 고급부터는 미묘한 문장 구성과 내용의 발전, 어휘의 배가 및 활용도 증진, 언어 구사의 능숙함 등에서 늘어나는 거라 하루가 다르게 느는 것을 느끼기엔 어렵다. 따라서 스스로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고 당근을 주지 않으면 꾸준히 하기 참 어렵다.

덴마크어 수업을 쉬는 동안 드라마 보고 띄엄띄엄 신문 좀 읽는 것 외에는 열심히 안했는데, 대학원 슬럼프 3주간의 기간 동안 지난 시즌 재상영이나 새시즌이 시작된 드라마 3개와 저녁 뉴스를 열심히 봤다. 완전 딴짓은 아니라는 자위를 하며. 그런데 그게 듣기에 도움이 되는게 새삼 또 느껴지니까 또 다시 동기부여가 되더라.

마지막 블록은 어려운 과목 하나만 들으면 된다. (옌스가 듣더니, 그거 어려운 수업인데… 란다. 왠지 더욱 오기가…) 그러면 남은 시간엔 덴마크어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공부하려한다. 그리고 옌스가 책 한권을 다 떼서 그 책에 있는 표현을 갖고 이야기 몇 편을 써달라 한다. 대화체 이야기, 서술형 이야기 등 섞어서. 이미 대화체 한편은 썼는데, 옌스도 참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열심히 한다. 이제 간혹 전화통화 하면 한국어로만 대화하거나, 산책 나가있는 동안엔 한국어만 쓰기 등의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예전 내가 덴마크어를 배우던 초기에 쓰던 방식인데, 그게 참 도움이 되었다. 옌스가 나 말고 한국어라곤 쓸 데도 없는 환경에서 완전 독학으로 이만큼 온 게 놀랍다.

서로 주고 받거니 하면서 양쪽의 언어를 배우는 건 즐겁다. 고맙기도 하고. 서로의 언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하나가 보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언제 내 덴마크어가 원어민 수준으로 올라갈 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3년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거라는 낙관을 해본다. 2년 뒤엔 취업시장으로 나서야 하는데, 일할 수준으로는 충분히 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이 들어 영어 말고 제2외국어를, 특히 덴마크어를 배워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게 꼭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주말 손님 초대상

지난 주말 손님을 초대했다. 커플 저녁. 친구의 출산 예정일이 그 다음 주인데, 출산 중 첫째애를 돌봐주기로 했다하여 혹시나 그 날 출산하게 되면 갑작스레 못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준 상황. 실제 그 날 낮에 애가 태어나 저녁 식사가 한시간 뒤로 밀렸으나 운이 좋게도 출산이 빠르게 진행되어 계획한 날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유쾌했던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네시간 동안 계속된 담소가 즐거웠다. 내 커플 인간관계가 옌스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주로 이뤄지는데, 그 중심이 커플 당사자의 양쪽에 어느정도 분배가 되어야 장기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둘의 인생이 만난다는 걸 인간관계 형성에서도 느낄 수 있기에. 특히 내가 이민생활을 해서 그런게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역사, 문화를 공유하는 친구가 있는 건 의미가 또 다른 것 같다. 그래서 국제커플간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 중요하다.

후무스와 화이트브레드칩, 크렘프레시와 딜로 버무린 연어를 넣은 핑거파이쉘을 에피타니저로 준비하고, 갖은 채소로 만든 바질페스토 쿠스쿠스 샐러드와 모과드레싱과 토스티드 호두를 넣은 사과 윈터샐러드를 곁들여, 감자/고구마를 밑에 깔고 오븐에 구운 닭다리 요리를 메인으로 준비했다. 디저트로는 옌스의 크렘브륄레와 오렌지 소르베에 이어 달콤한 디저트와인과 칸투치니를 내었다. (주 1회 한잔은 괜찮다니까, 나도 한잔. 😉 임산부의 음주라는 사치는 덴마크니까 가능하다. 흠흠. 좋네.)

배가 터지게 먹을 걸 알고 있어서 아침, 점심 간단히 해결했지만, 여전히 배는 터질 것 같았다. 약간 음식을 여유있게 준비했기에 다음 날 저녁 요기거리가 될 만큼이 딱 남았다.

손님을 초대하면 좋은 점이 사치스럽다는 생각 없이 꽃을 집에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나혼자 보자고 꽃을 사올 때면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날엔 자신있게 한다발 집어들고 들어올 수 있는 것. 그리고 손님이 갖고 오는 선물도 기대가 된다. 그날 같이 마실 와인이나 초콜렛이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날과 같이 예상하지 못했던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을 수도 있는데, 집에서 직접 담근 맥주와 김치의 맛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

우리가 아주 즐겁고 유쾌한 저녁을 보낸 것처럼 그들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앞으로 있을 교류가 더욱 기대된다. 이제 임신도 30주차에 접어들었는데,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해서 장 보고,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까지 하루에 바삐 움직이며 다 처리하는게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임신 전에도 항상 토요일 손님초대 = 빡빡한 일정, 이런 공식이 성립되서 다음 날엔 뻗곤 했는데, 이젠 요령이 늘어 다음 날 뻗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냥 배도 좀 뭉치고 힘들더라. 출산 전까지 누군가를 더 초대한다면 (그러려는 계획이었는데) 좀 더 가벼운 디너를 준비하거나 출산 뒤로 미루든가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준비한 만큼 보람이 있었던 즐거운 저녁이었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내가 아침형인지 저녁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몸이 영 불편해 잠을 잘 못자서 일찍 깨는 것이 나를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필요조건은 형성한다. 다만 주로 따뜻한 침대에서 뭉게고 누워 인터넷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아침녘에 다시 토막잠에 들곤 하니 이를 생산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가, 뭘 하려는 욕구가 차오른다. 여름 방학이 끝났을 때완 사뭇 다르다. 아마 한국을 짧게 다녀오자마자 정신없이 학기를 시작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직전 1년동안 쌓여온 스트레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새 학기가 시작해서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생각이다. 여하튼간에 지금은 그런 스트레스 없이 대학원의 마지막 수업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어서 그런지 마음과 머리 둘 다 가볍다.

이번 주 중 처리할 일의 목록을 정리하고나니 6시가 되었다. 어젯밤 써놓은 할머니께 드릴 편지도 봉투에 담아 주소를 쓰고 나니 마음의 짐도 덜어 홀가분하기까지 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편지 쓸 마음의 여유가 영 나지 않았는데, 시간의 여유가 아예 없던 것도 아닌데 못쓰고 있으니 그게 다시 마음의 짐으로 돌아왔다. 아직 새카만 밤 하늘엔 큰 달이 약간 붉은 기를 보이며 나지막히 걸려있다. 책상에 앉아 창밖으로 걸린 달을 보니 분위기 참 오묘하구나. 오늘 아주 오래간만에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공전을 한다더니 수퍼문이긴 한가보다.

옌스가 일어나기까지는 아직도 50분의 시간이 남았다. 조용하게 클래식 음악을 틀어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기분이 상쾌하다. 커피를 한잔 내려왔더니 약간 으슬으슬하던 몸에 온기가 돈다. 이런 평화로운 순간은 앞으로 두 달여 후면 없어질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참 이상하다. 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을 하면 되는데, 왜 그걸 미루면서 더 스트레스를 받을까. 차라리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미리부터 일을 시작하면 될텐데. 예전엔 정말 부지런했는데. 요즘 내 미래의 꿈을 별로 안꿔서 그런 것 같다. 안분지족의 삶이 목표상실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잘 좀 챙겨봐야겠다.

남은 시간은 책과 신문을 읽어야겠다. 아침형 인간으로 다시 탈바꿈을 해보는 것도 고려해보며…

긍정의 에너지와 좋은 사람들

언젠가 말의 힘을 깨달은 적이 있다. 짜증이 나던 어느 날이었다. 시작은 작은 짜증이었는데, 그걸 입 밖으로 반복해서 내뱉었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하고. 그렇게 말하고 나니 정말 짜증이 폭발할 것처럼 넘쳐흘렀다. 그 근래에 그렇게 짜증난다는 말을 내뱉으며 짜증나는 상황을 다루고 있었는데, 그렇게 감정이 오히려 증폭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짜증을 되려 불러일으키고 있다니…

서른이 되었던 해, 지금은 뉴욕에 가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라고 김혜남 박사가 쓴 책을 추천해주었다. 인도에서 힘겹게 지내며 삶의 하루하루를 불평으로 채워가던 나에게 그 나이의 사람들이 고민하는 내용과 그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쓴 책이었다.

그 책을 필두로 해서 많은 심리학 책과 글들을 읽었는데, 하나같이 언급하는 것은 마음 또한 단련을 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신체에 근육이 있어서 우리가 이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훈련을 해야 하듯이 마음 또한 그렇게 단련을 해야한다는 것.

연애에 있어서 자신감이 없고 자기애가 부족했던 나를 과연 정말 사랑하게 되고 자신을 갖게될 수 있을까 라는 불신도 있었고, 정말 마음이 훈련할 수 있는 대상일까 하는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해보지 않고는 확인조차 할 수 없었기에 책들이 시키는 일들을 해봤다.

이러한 마음 수련은 사실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실제 책 몇권 읽고 몇 달 한다고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좀 나아졌나 싶다가 어떤 일이 있고나면 다 소용없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서 되돌아보니 30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여러면에서 달라졌다.

예전보다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나에 대해 보다 믿게 되었다. 두려움이 간혹 몰려와 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과연 내가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 두려움이 느껴지고 피하고 싶어진다. 힘든 순간이 올 때, 다 짚어치우고 숨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고, 중간에 포기해버리고자하는 생각도 든다. 자기 연민에 빠지며 내가 가장 힘든 사람인 척 하며 비련의 주인공으로 마냥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가치를 확인해야만 내 존재의 의미를 찾던 약한 과거의 내가 나를 조종하려 하는 시험에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렇지 않다고 이러한 유혹과 의심을 물리칠 힘도 생겼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 때, 이에 관심을 두고 왜 그럴까 생각하는 것이 이러한 생각을 없애는데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이런 생각이 먹고 살 먹이거리를 던져주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아… 이런 생각이 또 찾아왔구나. 그냥 내가 하던 거 포기하지 않고 하면 돼. 약간의 슬럼프가 왔다가 갈거야. 그냥 감기같은 거야.’ 라는 식으로 마음을 다지고 더이상 이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내 주변의 작은 것에 감사함을 갖고,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고, 이를 표현하고 내가 할 일을 조금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면 이런 것들은 서서히 자리를 잃고 떠나가더라.

그래서 긍정의 에너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긍정의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주변인도 중요하다. 그런 긍정의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나도 쓸데없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좋은 시선에 나도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으니까.

자기를 비하하고, 타인과 비교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드러내 연민을 얻고 거기에서 힘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은 오래 교제하기가 힘들다. 누구나 삶에 힘든 순간이 있고,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 남과 짐을 나눠지고 싶을 수 있다. 가까운 이들을 위해 내 어깨 내어주는 거 힘든 일 아니다. 그러나 가깝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거라며 가까움의 증표로 자신의 힘든 일만을 공유하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기 힘들다. 내가 그 부정적 에너지의 덤핑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의 기쁜 일을 두고도 자기의 어려움과 대비해 자기의 힘든 처지만을 부각하면 정말 기쁜 일을 축하받아야 할 주인공이 마냥 기쁨을 표할 수도 없고,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러한 인간관계는 멀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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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진찍는 뒷모습.  쪼그리고 앉았을 때 찍으려했는데. 

요즘 새로이 알게 된 사람들이 있다. 다들 긍정적인 사람들이고 만나면 여러가지 배울 수 있는게 많다. 각자 처한 여건도 다르고 관심있는 분야도 달라 화제가 다양한 게 좋다. 그 중 특히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생겼는데, 가까운 곳에 살기도 하고 생각도 잘 맞아서 만나면 참 즐겁다. 그리고 긍정의 에너지가 나에게도 힘이 된다. 사실 이 친구와는 새로이 알게 되었다고 하기에 알고 지낸지 거의 1년이 되어가는데,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가까워지다가 요즘 부쩍 가까워졌다. 이 친구도 이 나라에서 정착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마음이 확 더 가까워졌다고나 할까. 대학원 친구들과도 시간이 지나며 이것저것 생각을 좀 더 공유하고 가까워져서 이 또한 좋다.

멀리 떨어져서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나의 오래된 친구들과 동료들이 그립고, 그들을 자주 못보는 게 참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한켠에 그대로 두고 다른 한켠을 또 새로운 사람을 향해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과 순간이 하나의 기회가 되기도 해 또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출산전까지 할 일

올 겨울 참 추울 거란다. 지구 온난화는 계절의 양극화와 예측불가능성을 심화시킨다. 그래도 비가 오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겨울보다는 춥고 건조한 겨울이 좋다. 따뜻한 겨울은 거센 바람을 의미한다. 작년에 평균 풍속이 초속 15미터인 날이 20일 가까이 지속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초속 10~20미터의 바람이 계속 분다는 뜻이다. 우산을 쓰는게 큰 의미가 없도록 비가 직각으로 오는 기분이고, 우산도 뒤집어지니 그냥 우비 입고 다녀야 한다. 그래도 얼굴이 젖는 건 어쩔 수 없으니 그 젖은 얼굴이 영상 1도 정도 되는 기온에서 거센 바람에 노출된다고 하면 상상이 되나. 그런 겨울은 정말 최악이다. 그래서 올 겨울 추울 거라는 소식이 반갑기만 하다.

이제 석사 프로그램의 마지막 수업 한과목만 남겨두고 있다. 그게 끝나면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마치고 논문 쓰는 것만 남았다. 물론 1년을 쉴거라 진짜 다 마치려면 1년 반정도 더 있어야 하지만, 정말 끝을 향해 가는 기분이다. 덴마크 사회의 편입을 위해 언어를 배울 시간도 벌면서 내가 조금 더 하고 싶었던 공부를 국가 교육 보조금 받아가며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가 어떻다는 것을 내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지난달, 이번달 생활비가 확 줄만큼 대외 생활도 줄이고 거의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했는데, 시험도 다 끝났겠다, 리딩리스트도 아직 없겠다, 정말 제로스트레스로 집을 나서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9시경부터 시작된 모닝커피가 점심으로 이어져 책방투어까지 하고 집에 돌아오니 2시 반이 되었다. 빌 브라이슨의 모국어라는 책을 사왔는데, 영어에 대한 책이란다. 요즘 내 마음의 양식을 위해 학업 비관련으로 읽은 책이 너무 없어 마음이 빈곤해진 기분이었는데, 이 책은 정말 학업에 관련이 없는 책이라 사왔다. 이 책 말고 사고 싶은 책들도 있었지만, 이젠 가급적이면 책도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해서 딱 한권만 하면서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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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안쪽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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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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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 모국어

출산 전까지 할 일들이 많이 있다.

아기 침대, 유모차 커버, 유모차 안에 들어갈 리프트 등을 사야 하고, 나머지는 애가 나오면 사던가 하려한다. 미리 사놨다가 안쓰는 것 만큼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짓을 너무 많이 해와서 이젠 그런 거 안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기에. 편리함과 약간의 할인을 버리면 정말 필요한 소비를 중심으로만 하게 되서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옌스가 한국어 책 한권을 거의 끝마쳤다. 이제 그 안에 써있는 표현들만 갖고 이야기를 하나 써달란다. 출산전까지. 그러면 그걸 싹 다 외워가며 공부하겠다고. 나의 기괴한 유머를 반영한 스토리를 써줘야겠다. 멀쩡한 문장도 이상한 순서와 맥락으로 배열하면 웃기게 되니까. 그러면 외우기 더 쉽겠지. 흠흠…

할머니께 쓰다가 7월말을 기해 중단했던 편지도 다시 써야겠다. 학기가 시작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니 쓸 힘이 안나더라. 사실 편지 쓰는 건 내가 좋아해서 쓰는 일인데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고 나니 내용이 건조해지더라. 머리가 온통 학업에만 쏠려있어서 그런가보다.

피아노도 다시 치려한다. 남들 다 한다는 태교, 난 그냥 경제학 공부로 하련다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는데, 피아노도 좀 치고, 비생산적인 일들도 많이 하면서 정신적인 여유를 찾아보련다.

원래는 6개월 쓰려다가 한국 방문 계획으로 육아휴직을 1년 쓰기로 결정했는데, 아마 복귀하고 나서도 애 보육원 다니면 감기나 이것저것 질병을 옮아와 온전히 논문 쓰는데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 미리부터 준비를 하려한다. 우선 미리 지도교수에게 주제를 받아서 Contract 없이 천천히 자료 수집 및 문헌연구부터 시작하다가 나중에 육아휴직 막판에 애를 보육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슬슬 시작하면 6개월안에 써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희망 지도교수에겐 미리 언질을 해두었고 구두 허락은 받았으니, 이번 블록부터 슬슬 시동을 걸어야지.

이렇게 하고 나면 어느새 1월말이 되서 애를 낳아야 할 시기가 될 거다. 제일 추운 겨울의 정점을 찍었을 때쯤 하나가 태어나면 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삶을 받아들여야 하겠지. 옌스는 아직은 설레고 좋은 것보다는 두렵고 긴장된다고 하는데, 막상 애가 태어나면 정신이 없어서 그런 저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을 것 같다.

시험이나 데드라인 등은 다 좋아하진 않지만, 한템포 끊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좋구나…

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뒤죽박죽 장문

부제는 “대학원 생활의 즐거움과 내 정체성”

이번 구술시험은 그간 봤던 시험 중 가장 터프했다. 외부 시험관이 그렇게 많은 질문을 날카롭게 던지며 압박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10분 프레젠테이션에 10분 질문일 거라고 당초에 설명을 들었으나 시험 시간은 30분씩 배정되어 있었고, 막상 들어가서는 프레젠테이션 중간마다 질문이 들어와 발표와 질의응답이 뒤섞인 시간이 되었다. 시간 자체도 35분~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 부분은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답을 한 질문이 2개나 될 정도로 내 질문의 답에 또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그것 때문에 10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중간에 이것저것 교수에게 귀찮을 정도로 질문했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사실은 그러한 질문이 10점을 줄 것인지 12점을 줄 것인지를 보기 위해 한 질문이었던 것이었다.

우리 그룹 멤버를 모두 불러 각각의 개인시험 결과를 알려주고,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데, 내가 가장 방어를 잘 해서 가장 깊게 물어보았다고. 나보다 먼저 시험을 친 그룹멤버들이 질문이 어렵긴했지만 대충 답변은 다 했다며 편하게 생각하라길래 오히려 내가 더 못봤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초반 2/3까지는 정말 열심히 하다가 막판에 슬럼프에 빠지며 3주를 많이 놓쳤기에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그 앞에 많은 고민을 하고 따라갔던 게 해당 수업의 에센스를 이해하기엔 중요했었나보다.

지난 1년이 약간 넘는 기간동안 영어로 내 주장을 펼치고, 논거를 제시하고, 상대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받아들일 부분을 받아들이고, 반박할 것은 반박하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훈련이 된 것 같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 사회 경험이 수업시간 중 적극적 참여를 가능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훈련이 된 것이다.

목요일에 첫 8시간 에세이 시험이 있다. 공부하다가 이렇게 블로깅으로 딴 짓 하고 있는 건데, Political Ecology라고 선택과목이다. 재미있는 부분도 없는 부분도 있었는데, 텍스트의 유형과 구성 등도 경제학 및 생태학 저널 텍스트와 너무 달라 학기 내내 힘이 들었다. 인류학과 정치경제학, 정치과학, 생태학이 결합된 수업인데다가 많은 텍스트가 철학적이라 정말 적응이 안되었다. 양도 많고, 어휘도 다르고 엄청 방대하다. 뭔가 내가 사용하는 어휘가 이렇게 많다 하고 뽐내는 향연의 텍스트 같은 느낌? 미국에서 온 학생들도 사전을 찾아야 하는 단어가 있을 정도였으니…

이 시험은 내 최초의 4점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으로 편히 접근하기로 했다. 성적이 나쁘게 나오면, 아… 내가 정치과학은 아니었다 하고 변명하기로 하고 말이다. 우선 그렇게 마음 먹고나니 조금 편해져서 설렁설렁이나마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었으면 아마 불안해서 정말 공부가 안되었을 것 같다.

이 늦은 나이에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 다닌 건 어찌 보면 무모해도 보이지만 참 잘한 일이었다. 동기들과 학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화, 정치, 예술, 여행, 스포츠, 파티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항상 열정에 차있고 동기부여되어 있는 그들을 보면 내가 그들과 같은 삶을 다 누릴 수는 없지만 그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달이 된다. 각각의 국가별로 다른 상황에 대해 듣는 것도 즐겁고, 별 중요하지도 않은 농담으로 시시껄렁하게 웃는 것도 좋다. 간혹 힘든 상황이나 여건에 대해서 서로 묻고 의견을 나누며 진지해지는 것도 좋고,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논하며 나에게 조언을 구할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도 기쁘고 고맙기도 하다.

조금 뒤면 엄마가 된 나이지만, 난 사실 모성이 풍부한 엄마는 아니다. 아마 정말 엄마다운 엄마라기보다는 그냥 인생 선배나 친구 같은 엄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신을 한 지금도 애에 대한 대화보다는 다른 것이 더 재미있다. 애가 태어나면 여러 궁금증과 내가 배워야 할 것들 때문에 내 화제의 중심에 아이라는 요소가 더 늘어나긴 하겠지만 세상이 뒤바뀌듯 내가 완전히 뒤바뀌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책임감있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겠지만 아마 애를 물고빨고 모든 것을 다 제치고 애가 일순위에 딱 등장하는 그런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뭘 이야기해도 다 애 이야기로 귀결되는 대화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결혼해봐, 지금 우리하는 이야기가 이해될 걸?”, “임신해봐, 또 달라질 걸?” 이런 질문과 같이, “애 낳아봐, 지금 생각한 대로 될 거 같아?”이라는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아마도 “내 인생이 딱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지향하는 방향에 조금이나마 가까운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기에, 인생에 한가지 정답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가 될 것이다. 하나가 태어나도 나는 하나 엄마가 아니라 나로서 존재할 것이고, 항상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뭔가 삐죽 나와서 튀는 사람이었던 나는 큰 틀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이의 존재는 인격적으로 훈련을 할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고, 많은 시행착오와 반성, 기쁨, 괴로움 속에 작고 큰 깨달음을 얻고 조금이나마 더 성장을 할 수 있겠지만, 갑자기 하나의 엄마로 뒤바뀌어 모성이 내 인생의 중심으로 부각될 수는 없다. 그리고 애의 성공이 내 인생사 목표도 아니고, 그게 나를 평가하는 잣대도 아니다. 난 인간이니 실패도 하겠지만, 내가 우리 부모님의 육아상 여러 의사결정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내 시행착오에 대해 크게 자책하거나 나를 비하하고 싶지 않다.

사람의 정체성은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탈바꿈을 하게 마련이다. 엄청난 변화도 있을 수 있고 소소한 변화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끊임없이 재탐구해야 인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탐구가 잘 이뤄지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해야할 일만 명확해지면 남은 것은 실행 뿐이다. 실천으로 옮기고 나서는 내가 원하는 것에 최소한 가까운 곳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크게 불평할 것이 없다. 내가 불평을 엄청 하고 있다면 현재 잘못된 곳에 있다는 것. 내가 직장을 관두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것은 바로 그 불평을 엄청하고 있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애를 낳아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의 어려움 등에 봉착한다 해도 그 안에서 최선의 길을 모색하고 나아가도록 노력할 것이고, 내가 노력을 할 동력만 갖고 있고, 실제 노력을 하고 있다면 난 불평하지 않을 거다.

예전에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 수록 와닿는다. 예전엔 ‘어차피 대천명이니, 사람이 크게 노력할 거 없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이게 어찌 보면 ‘평안의 기도’라는 짧은 기도문과도 맞닿아있는 이야기 같다.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요즘 내 머리를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뒤죽박죽 써서 정신이 없는 길고 산만한 글이 되었지만, 이게 말 그대로 내 요즘 머리속에 계속 흐르고 있는 생각들이다. 모성은 나의 성장의 원천이 되겠지만 나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닐 거라는 점, 그리고 더욱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자는 것이다. 난 이제 갓 36살, 앞으로 살날이 산날보다 훨씬 긴 젊은 사람이니 아직도 성장하고 발전을 위해 정진해야 하고, 그런 게 나니까.

늦가을이 물러갈 채비를 하면…

드디어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날이 찾아왔다. 비소식이 있는 내일과 주말동안에 다시 영상으로 올랐다가 그 다음주엔 또 영하인 날들이 지속될 전망이다. 가을이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날이 추워지긴 하지만, 이런 때 내가 덴마크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건, 아직까지 별다른 난방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 난방으로 더워진 공기를 신선하지 못한 공기와 동일시 하며 따뜻한 실내를 참지 못하는 옌스와 살다보니 그런 것도 있지만, 굳이 옌스가 아니더라도 덴마크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춥게 지내는 것 같다. 난방비가 비싼 것도 무시 못하는 요소다. 주택에서 살던 첫 해, 멋모르고 난방하다가 난방비 폭탄으로 몇백만원 낸 기억이 있다. 요금 정산이 전년도 평균을 납부한 후 증감분을 다음해에 사후정산하는 시스템인데, 전 입주자보다 더 많이 썼다가… (사무실과 같은 공간은 난방을 잘 하고 얇게 입고 지내는 게 보통이다.)

집에 있다가 끼니 사이 좀 추워지는 타이밍엔 스웨터를 하나 더 입고, 차나 커피를 한잔 마시고, 그래도 추우면 약간의 맨손체조를 하며 몸을 덥힌다. 스쿼트가 최고.

부활절에 한국 다녀올 때, 미리 엄마한테 모과차를 부탁했었다. 시중에 파는 건 모과 향만 나는 설탕물이니 과일로 담궈달라고. 끝물이라 모과 찾기가 쉽지 않아 많이 담그지 못했다며 주신 작은 두 병중 한병만 후딱 먹고 한 병은 놔뒀다. 아주 얇게 채를 썬 모과를 보며 느껴지는 정성. 오늘 날이 추우니 딱 생각나더라. 모과차. 사실 모과차엔 한과가 딱인데, 한과는 없으니 제껴두고… 그냥 모과차를 끓였다. (샐러드 드레싱에도 아주 유용한 모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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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 땐 역시 모과차. 여름엔 생각이 전혀 안난다.

한국보다 온도는 높지만 습하고 제주도 바람보다 거센 바람이 자주 부는 겨울은 유독 견디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해가 짧고 어두운데다가 4월까지 길게 늘어져서 그럴 거다. 그나마 올 해, 학교내 정원을 가로질러 다니며 2월 초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 꽃을 관찰하며 시간의 변화를 조금씩 느끼다보니 어떻게 봄을 기다릴 수 있는지 나만의 방법을 하나 체득하였다.

다음주는 시험인데, 이번 시험은 다소 망했다. 이미 예감이 온다.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 만큼 사기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무서워서 공부를 자꾸 미루다가, 에이 좀 망치면 어때! 이런 생각이 드니 다시 공부할 마음이 조금 든다. 내일부터 시험 공부 바짝해서 현재 기준으로 가능한 좋은 성적을 받도록 노력하기로 하고, 초조한 마음은 덮어두기로 했다. 최악의 슬럼프에서만 헤어나왔을 때, 한 블로그 이웃분께서 나보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좋은 의미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 하나씩 차근히 해보려고 하라고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맞는 말씀인 것 경험으로도 알고 있고, 그게 맞는데, 그걸 이행하기까지 힘든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 그런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아무튼 너무 늦은 건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보고, 그리고 다음 블록 한과목 잘 해서 석사과정 수업들을 잘 마무리해보도록 해야겠다.

블로그도 이런 슬럼프 속에 접어두었는데, 그간 쓰려다가 접고 저장만 해둔 아이들도 보고 시험 끝나고는 다시 열심히 기록을 남겨야겠다.

무력감 탈출

가을 탓인지,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 탓인지, 그냥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에너지 레벨 하락의 탓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무기력해졌다. 왜 그랬는지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간혹 그랬으니까. 중요한 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그런 징후는 조금씩 있었다. 다소 지치는. 학업과 개인 시간의 경계가 애매한 학생의 생활은 생활의 리듬을 흐트러뜨린다.

지난 2주간이 힘들었다. 한주는 수업을 취사선택해 갔고, 그 수업의 리딩으로 허덕였으며 (시간 총량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내가 산만했기 때문에.), 그 다음주는 모든 학업을 중단했다. 리딩이며 수업이며 덴마크어 수업까지.

지난 3일간은 거의 각종 드라마만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 주의 초는 이래도 되는가 하는 감정과 이럴 수 밖에 없다는 감정이 내 안에서 힘을 겨뤘지만, 서서히 그런 생각을 잊고, 이번 주는 아주 아팠던 샘 치자고 마음을 먹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겪었던 리바운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바닥을 쳐야만 제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시기. 흐린 와중에 햇살이 몇줄기 비추는 날씨도 그런 마음을 북돋워주는 느낌이다.

 

임신 7개월차 돌입

오늘부로 임신 7개월차로 접어든다. 거의 2/3선에 다가서는구나.
 
이제 배가 가슴보다 앞으로 나와 헐렁한 옷을 입어도 살짝 눈에 띈다. 이 시기의 자궁은 축구공만한 크기라고 하니, 배가 눈에 띄는 게 이상할 게 전혀 없다.
 
태반이 복벽쪽으로 자리를 잡아 태동을 남들보다 약하게 느낄거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남보다 늦게 느끼기도 했고, 남들 이야기하듯 불편할 정도의 태동은 느끼지 않고 있다. 그래도 그 빈도나 강도는 확실히 처음과 달리 잦고 강해졌다.
 
간간히 자세에 따라 왼쪽 아랫허리나 치골뼈가 아프기도 하고 (살짝 비뚤어진 골반이 이유인 모양이다. 그나마 발레해서 척추측만과 골반의 전반측만이 일부 교정된 덕에 이정도라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수면 자세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번 편한 자세를 찾았나 싶으면 곧 또 그게 아니고, 돌아눕다 보면 앗!하고 싶은 찰나의 통증에 깰 때도 있다.
쉬는 시간 없이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있으면 배가 뭉쳐서 중간중간 꼭 한번씩 일어나 줘야 하는 것도 새로이 생긴 변화다.
또 배에 자주 가스가 차서 의도치 않게 갑작스레 방귀를 뀔 때가 있는데 (ㅠㅠ), ‘아, 이게 내가 원래 이렇게 예의없지 않은데, 하나 때문에 생긴 일이야. 아, 민망해.’ 라며 변명을 하니 옌스가 너무 웃기다며 웃는다. 방귀가 웃긴게 아니라 너무 민망해하며 설명을 하는게 웃기단다. 물론 옌스 앞에서 이런 일이 있었던게 처음은 아닌데, 그냥 아직도 이는 민망하다.
 
내일이면 담당 GP를 임신 초기 검사 이후로 처음 만나는데, 뭘 할 지 궁금하다. 피검사와 자궁 크기와 위치 보고 뭐 대충 그런거 할 거 같긴 한데. 처음부터 좀 부실하게 챙기긴 했지만, 영양제 열심히 안먹고 있는데, 그런 거 답할 때가 제일 부담이다. 먹는 건 열심히 골고루 먹으려 하고 있고, 채소, 과일 이런건 열심히 먹고 있는데.
 
지금쯤이면 하나는 30센치미터 정도의 크기에 600그램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을 것이라 한다. 여태까지는 거의 교과서적인 사이즈로 성장하고 있었기에 대충 실제로도 그정도 크기와 무게가 아닐까 싶다.
 
친구가 선물로 준 루이보스티를 오늘 처음으로 마셨다. 집에 티백으로 몇 개 있을 땐 마셨지만 일부러 사서는 먹게 안되던 루이보스티. 양수를 맑게 또는 풍부하게 해준다고 들었는데, 양수가 충분하다는 검사 결과에 따라 별 신경 안쓰고 있었다. 그냥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냐며. 커피와 달리 차는 수퍼마켓가서 챙겨 사지는 않게 되는 품목인데, 선물로 받은 덕에 끝을 볼 때까지 열심히 챙겨마시려고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마셔야지. 마침 조카가 나의 임신을 축하한다고 만들어준 잔이 생겼으니, 여기에 챙겨 먹어야겠다. 문구는 ‘Tillykke Haein’ (축하해요, 해인숙모: 조카들은 나를 Tante Haein (해인 숙모) 이라고 부른다.)
얼마전 ‘브리짓존스의 아기’ 영화를 보았는데, 배꼽을 잡고 웃었다. 간만에 정말 신나고 유쾌한 영화였다. 2편과 달리 억지스러운 장면도 그렇게 많지 않고 브리짓 존스의 다소 성장한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내가 출산을 3~4개월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남 일 같지 않은 장면을 볼 수 있어서 더 그랬던 지 모른다. 출산이 살짝 무서워지기도 했지만, 다시금 엄마라면 누구나 겪는 일인데 싶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사그라들었다.
시간이 잘만 가는구나. 이제 아침 저녁으로 5~10도 정도의 기온 변화가 일어나고 하루종일 세찬 동풍이 부는 계절이 왔다. 이상하게 가을엔 동풍이 자주 분다. (옌스가 카약을 하는 이유로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대해 매일 듣고 보게 되어 이런 이상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달 말이면 썸머 타임도 끝나고, 12월에 들어 겨울이 오고 나면 하나와 만날 날도 후딱 다가와있겠지. 그렇게 싫어하는 겨울도 올 해엔 참 기다려진다.

시누이의 박사 디펜스 방문기

덴마크의 박사과정은 3년이다. 연구가 늦어지거나 개인적 사정으로 쉬는 경우 이보다 길어질 수 있지만, 우선은 3년을 기준으로 프로그램이 설계되어 있고 펀딩 또한 이를 토대로 한다. 시누이는 5~6년 걸렸다고 들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게 어느새 2년 반 정도가 된 것 같은데, 남편의 인도와 러시아 주재에 동반하느라 나를 만나기 얼마 전에 덴마크로 돌아왔다고 했었다. 그러니 중간에 최소 4년 이상 쉰 것이다. 아이 셋의 엄마로 박사 과정을 마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잘 안간다. 물론 오페어를 하나 두고 있었다지만, 애들 픽업하고 생일 있으면 애와 어른 파티 따로 다 준비하고 명절때면 가족과의 모임을 자기네 집에서 하고 등등 정말 수퍼우먼같은 모습으로 산 것 같다.

시누이는 시어머니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고 한다. 실제 시댁에 가 있으면 며칠동안 하루에 최소 한번은 전화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짧은 통화가 주를 이뤘지만, 간혹 조금 긴 통화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긴 통화 후 시어머니가 시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보는 시누이는 정말 멋진 여성이다. 항상 여름 햇살처럼 빛나는 환한 웃음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을 챙기는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따뜻한지.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것도 보면 참 대단하다 싶고. 그렇지만 엄마가 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 수가 있는게 시누이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아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터라 시누이가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 박사과정 중간에 해외로 나간 것도 그렇고, 애들을 학교에서 픽업하고 과외활동 하는 걸 지원하느라 같은 연구소에 있는 남자 동료들이나 양육의 문제가 없는 동료들처럼 연구와 커리어에 더 몰입할 수 없는 것 등 말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연구원으로서 모든 일을 잘 해내려고 하는 그녀가 여러모로 힘든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박사과정의 디펜스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한다. 따라서 수퍼바이저와 오포넌트 말고도 연구소 동료, 친구, 가족이 온단다. 그간 고생한 것을 치하하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좋은 선물도 준비하고. 옌스는 이번 주 또 출장을 가 못오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몰랐을 땐 그냥 안타까워하는 옌스를 대신해 내가 가야겠다 싶었는데, 안갔으면 영 그랬겠다 싶다. 미리 내가 가겠다고 한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갑을 하나 샀다.

디펜스는 바로 오늘 오후 2시 반. 시내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있단다.덴마크의 가장 큰 병원인 Rigshospital 예방의학과에서 고환암을 연구하고 있는데, 바로 그 곳에서 디펜스를 한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경주용 자전거를 타다가 경추에 금이 가 본홀름에서 이곳으로 헬리콥터 후송되셨던 일이 있다. 이 곳에서 처음 시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번엔 시누이 일로 와보게 되었다. 여긴 시댁 일 아니면 올 일이 없는 병원인 모양이다.

본홀름과 스웨덴을 오고가는 페리 스케줄이 가을부터는 오전, 오후 두편만 있기에 아침 열시에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했다. 지난 두주간 정신없이 바쁘고, 옌스가 출장을 두번이나 가 나 혼자 있었기에 집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다. 사실 정리정돈 잘하고 설겆이 밀린 것 없이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기에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는데, 시부모님 오신다니 싹 다 청소를 해둬야겠다. 어제 저녁에 못해서 아침 여섯시부터 일어나 식사하고, 엄마와 페이스타임 삼십분한 뒤, 청소하고 화장 끝내니 딱 도착하셨다. 항상 그렇시듯이 초콜렛이며 잼 등 작은 선물들을 갖고 오셨는데, 이번엔 특별히 아이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길 바라며 시어머니의 할아버지가 어딘가에서 발견하셨던 1700년대의 금화 한닢을 옌스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셨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것을 보다니 덴마크에 살면서 참 다양한 경험을 한다 싶었다.

임신상태의 경과를 포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병원으로 향했다. 점심은 병원의 카페테리아에서 가볍게 하고 컨퍼런스룸으로 갔다. 40여명의 사람들이 와있었는데, 시누이의 45분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해 오포넌트 2명의 오포지션까지 총 2시간 30분을 모두 꼼짝없이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임신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은 자리, 딱딱한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던 적이 없던지라 허리도 좀 아프고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오랜 기간 연구한 성과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실제 박사과정 디펜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는 것, 오포넌트가 어떻게 디펜스에서 논문에 챌린지를 하는지 보고 듣는 것, 다 흥미로웠다. 나중에 내 석사논문 디펜스에 대해서 감을 잡아볼 수도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애 셋을 돌보며 세개의 manuscript를 성공적으로 저널에 등재하고 (그 중 하나는 세계적인 저널에 등재되었단다.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이었나? 아무튼 옌스가 이 저널을 모르냐길래, 당신은 보건경제학자니 아는거고, 나는 환경경제학자라 모른다고 해줬다. – 환경경제학에서 유명한 저널이 뭔지도 난 사실 모른다. 흠흠.) 1년전에는 Young European Sceintist 상인가 뭐도 타서 유명 컨퍼런스에서 발표도 하고 그랬단다. 뭐랄까, 약간 허허실실한 타입이라 잘 몰랐는데, 그 상 탔을 때 이야기 들어보니 항상 열심히 하고 꼼꼼하고, 성과욕도 많아서 뭐든 잘한다고 한다. 사실 그러니 애들과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게 얼마나 스트레스도 될까 이해도 된다.

발표도 여유있게 잘하고 디펜스도 정말 잘해서 누가 봐도 성공적으로 디펜스를 마무리짓는 것을 보았을 땐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내가 박사학위 받는 것도 아닌데 내가 다 뿌듯해졌다. 이번에 고환암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계량경제학 때 배운 내용들이 회귀분석에 사용된 가정이나 방법론 등을 논할 때 다뤄지는 것을 보며, 이런 내용을 몰랐다면 강의를 들어도 크게 이해가 안되었을텐데, 하면서 배우는 만큼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기도 한 고마운 순간이었다. 옌스에게 잘 끝났다고 문자를 하니, 큰 오빠가 자랑스러워 한다며 축하해주라고 하며 정말 기뻐하더라.

디펜스 결과가 박사학위 수여 커미티에게 모두 만족스러웠다는 발표가 이뤄지며 디펜스가 마무리 되었으며, 대학교 측에서 준비한 리셉션을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프리카델라, 샌드위치, 과일과 케이크 등 먹을 거리 뿐 아니라 여러명의 축사와 시누이의 감사인사말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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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중 시누이네 가족

맛있게 먹으며 시누이네 이웃, 시누이 생일 때 만났던 시누이 어릴 적 친구와도 만났는데, 시누이 친구가 Dong energy에서 풍력발전으로 일을 한다길래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독일인이라는데, 뭔가 정말 반 독일인스럽게 더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했다. 여기서는 뭐하는 지 물어보고 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사생활 침해가 아닌데, 상대도 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듯이 나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는게 익숙해져서 더이상 취조당하는 느낌이 안든다. 처음엔 뭔가 동양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인가 하는 오해에 부담감마저 느꼈는데, 그냥 이들의 관습임을 알게되니 나도 남의 직업 탐방의 시간이 재미있기조차 하다.

내가 덴마크어를 잘 못할 땐 남들이 하는 말 중에 못알아듣는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되서 자꾸 질문을 해야하다보니 은근히 위축되고, 시간이 오래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제 뇌가 언어를 처리하느라 물리적인 스트레스도 받는데 덴마크어 학원을 쉰 지난 6개월간 오히려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방학기간 중 덴마크어 드라마를 엄청 보고, 옌스와 덴마크어 사용 비중을 크게 늘려 90% 정도를 거의 덴마크어로 사용한 게 큰 도움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이상 덴마크어로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게 정신적인 부담이 안된다. 그 전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이런 자리에 나서야 빨리 말에 익숙해지고 적응할 수 있어!’ 라며 스스로를 밀어붙였다면, 이젠 그런 것 없이 설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 얼마나 편안해지던지.

아무튼 그렇고 나니까 주변인들이 나를 챙기려고 부담감 느낄까봐 불편하던 마음도 없어지고 그냥 편해졌다. 그런 편안함과 함께 이방인의 느낌도 많이 없어지고. (그 방안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었지만, 내 눈엔 내가 안보이니… 더욱 이질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흠.)

어느새 시간은 흘러흘러 6시. 시누이네 집에서 개인적으로 준비한 리셉션이 또 있단다. 핫도그 캐이터링을 불렀다고 하는데, 난 학교 친구 생일파티가 있다고 해서 못간다고 했다.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추가로 잡은 약속인데. 아쉽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8시 파티에 가기전 조금 쉰다고 소파에 눌러앉은게 화근이었다. 피로가 몰려와서 한시간만 쉬고 나가려던게 그냥 마냥 소파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그리하여 이렇게 손가락만 놀려도 되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다.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긴 시간을 포멀한 옷차림을 하고 소셜모드로 있었더니 영 피곤했던 모양이다. 혼자서 쉴 시간이 필요했다. 내일 옌스가 출장에서 돌아오는데다가 주말에 공부할 것도 많은데 이정도의 저녁 휴식시간은 필요하다. 이제 다 덮고 조금 일찍 자야겠다. 하나도 많이 피곤했을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