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6일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당당히 요구하자

남편과 나, 둘 다 가벼운 감기기운이 있어서 코로나 테스트 예약을 해두었다. 토요일에야나 테스트가 가능하다고 해서 남편이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야 집에서 일하니까. 학생들에게 연락해서 수업을 취소한다고 해두었다. 코로나라고 생각되기 너무 어려운 증상이지만 예방 차원에서. 애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유치원에 보냈다.

친구가 유치원에 아이 언어 발달과 관련된 걱정을 진지하게 나눴더니 미팅을 잡아줬다고 했다. 어제 미팅을 했었을 것 같아 잘 했는지 연락을 했더니, 언어 발달 프로그램을 별도로 잡아준다고 했단다. 유치원 내부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또 외부 전문가를 통해 밖에서 개별적으로.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한국 뿐 아니라 덴마크에서도 적용이 되는 모양이다. 예전에 하나 병원에 입원했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부모가 매사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이에게 추가적인 자극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설 경우 적당한 시기에 부모가 개입을 해서 도움을 청하고 대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의를 믿고 움직이지 않으면 바쁜 일상 속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곤 하는 게 여기서도 일어난다.

잘 따르는 선생님과의 작별

유치원 선생님 한 분이 이달 말을 기점으로 관두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으신 분으로 하나가 엄청 따르는 분이고, 우리 유치원에서 14년이나 일하신 분이라 왜 관두시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선생님을 마주쳐 관두시는 이유 여쭤봐도 되겠느냐 했더니, 작년에 새로 부임한 유치원장님과 맞지 않아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야 선생님들하고만 접촉하니까 원장님이 어떤지는 느낄 일이 없어서 어떤 면에서 맞지 않았는지 여쭤보니, 선생님들끼리 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상의를 하면, 선생님들끼리 잘 결정하라고 한다는 거다. 본인은 어려움이 있을 때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해줄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며, 그게 안되는 채로 시간이 흐르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는 거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나도 과거 경험을 통해 알기에 이해한다는 말이 그냥 나왔다. 양쪽의 말을 다 들어본 건 아니지만, 선생님의 느낌은 또 본인의 느낌인 거니까, 둘 사이의 리더쉽 관점에서의 케미스트리가 매우 안맞았다는 건 분명하다. 누군가에겐 좋은 리더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안좋은 리더일 것이고. 아쉽다는 마음과 함께 보고 싶을 거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목이 잠기고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내 아이를 봐주는 선생님으로 믿도 맡기도 따라온 좋은 선생님이 리더와의 케미 문제로, 오래 일하신 직장을 떠나 다른 곳을 알아보신다니 마음이 엄청 상했고, 진짜 보고싶을 거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도 선생님이 매우 보고 싶을 거다. 어느 타이밍인가에는 하나도 유치원을 졸업해서 선생님을 거의 보지 못하는 시기가 오긴 하겠지만, 그건 자기의 새로운 앞길에 대한 설렘과 겹치며 그 여파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넘어가겠지. 특히 미리 진학할 학교를 방문시키며 적응기간을 거치는 덴마크의 시스템 속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자기의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선생님이 관두는 건, 그것도 자기가 정말 많이 따르는 선생님이 관두는 건 조금 충격적인 일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고 길게 아이를 돌봐주던 선생님들이 관두시거나 일하시는 건물을 바꾼 일이 몇차례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힘들어할 지도 모르겠다. 아직 세상을 삼년 반 정도밖에 살지 않은 아이지만, 정을 쌓고 작별을 하는 일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에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나오시는 다음주 월요일에 하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별거 아니야, 라고 털 수 있는 능력

Pyt med det! Skidt, pyt! 라는 말이 있다. 안좋은 일인데, 별 거 아니라고 하고 넘어가자고 할 때 하는 말이다. 작은 일에 집착하는 것,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일이다. 작은 실패도 넘어가지 않고 개선을 하든, 정정을 하든 해서 상황을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그냥 넘어가도 될만한 일 하나하나에 집착해서 짜증을 자주 느끼거나, 실패하는 일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시간이 갈 수록 덴마크인들도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여전히 느껴지는 건 어떤 일상의 불편함이나 실수, 실패 등에 있어서 ”Pyt med det!” 하고 말하며 툭툭 털고 가는 걸 잘한다는 거다.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태도를 가르쳐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포함해서.

우리도 하나에게 어떤 실수나 실패를 할 경우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잘 못하는 일로서, 나 또한 이런 마음을 가지려고 실천하고 있는 바라 더욱 이를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제 하나는 두발 자전거를 평지에서 스스로 출발해서 페달을 밟아 주행하고 코너를 돌고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브레이크를 잡아 정지하는 것까지 모두 익혔다. 아직 잘 못하는 것들이 있지만, 우선 해낼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그러기까지는 물론 무수히 많이 넘어지고 연습을 했다. 넘어질 때마다 아파하는 건 호호 불어주고, 피나면 반창고도 붙여주지만, 원래 그렇게 배우는 거라며 시도하게끔 도와준다. 하기 싫다면 강요하지는 않고. 동시에 아이 아빠나 나 모두 각자의 취미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또한 연습만이 실력이 좋아지는 유일하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Øvelse gør mester. (Practice makes perfect.)”, 이건 하나가 세살이 되기 전부터 이미 흔히 하게 된 말이다. 그래서 그냥 실패에 크게 속상해하지 않고 배우는 법을 이미 익힌 것 같다. 혼자서도 잘 일이 안풀리면, ”Pyt med det!”하고 이야기 하니 말이다.

물건과 관련되어서도 뭔가 잘못되었을 때, 그걸 해결하거나 크게 속상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치려고 한다. 이미 꺠진 거 속상해봐야 달라지는 거 없으니까, 얼른 그 감정을 털어버리는 게 중요하다 싶다. 어제는 하나가 많이 기대하던 새 신발 두 켤레가 도착했다. 발이 커져서 새로이 신발을 장만해야 했는데 신발이 젖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여벌까지 해서 두 켤레를 주문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색깔 취향 정도만 반영해 내 마음대로 나이키 등에서 활동성이 좋은 신발 중심으로 구입을 해왔는데, 이번엔 본인의 취향을 적극 반영해서 불이 들어오는 캐릭터 신발 – 내 취향이나 기준에는 별로 맞지 않지만 – 을 샀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한켤레의 불이 잘 안들어오는 거였다. 한짝은 아예 불이 들어오지 않고, 다른짝은 반절만 들어오는 거다. 막상 주문한 나도 속상한데, 반품하고 또 주문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잡했다. 내 거였으면 그냥 넘어갈만한 일이었는데 어떻게 할까…하는 갈등으로 찰나의 순간 마음 속이 동하고 있었는데, 하나가 “Pyt med det!”라며 괜찮다는 거다. 그래서 얼른, “신발 색깔이 이뻐서 불이 조금 안들어와도 마음에 들지?”라고 물어봤더니, 그렇다는 거다. 귀찮았던 마음을 한번에 해결해 준 하나의 태도에 고맙기도 하고, 귀찮음을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고 다소 미묘한 마음속 갈등이 생겼지만, 그냥 그런 속상한 상황을 그렇게 넘길 수 있는 태도를 가진 하나가 대견해서 그거려니 넘겼다.

자식을 키우는 일에 농사라는 표현이 이런 때 와닿는다. 하루하루의 작은 일들이 쌓여서 아이의 태도에 영향을 주니까. 물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서 농사라는 표현을 쓰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직접 어떻게 발현할지 선택할 수 없는 유전자라는 씨앗이 가장 큰 일을 결정한다는 점에서도 말이다. 콩심은 데 콩나지, 팥이 나지는 않을 게지 않겠는가. 

2020년 8월 24일

아이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주말에 친구 두명과 그들의 가족을 초대해서 오후 내내 놀고, 식사도 같이 하는 등 나름 큰 사회활동도 있었고, 여기저기 몇몇 놀이터를 돌아다니며 힘들게 놀아서 그랬는가, 하나가 오늘은 피곤했는가보다.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는 순간부터 평소보다는 기운이 덜 넘쳐보였고, 작은 일에도 크게 성질을 내는 것이 피곤한 탓인 것 같았다.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아빠가 집에 와있냐고 물어보길래, 아직 회사에 계신다고 했더니, 나보고 갑자기 사랑한다는 거다. 그 뒤를 이어, 아빠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덧붙이며. ”왜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 이야기 들으면 아빠가 슬퍼하실 거 같은데요?”라고 물어봐도 그냥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단다. 집에 올라오는 길에, ”집에 가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이 뭐지요?” 라는 질문에 입을 삐죽삐죽하며 ”손을 씻어야해요.”라고 답을 하더니, 그 루틴 마저도 다 못마땅한 듯,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서있기만 하고 손은 안씻는단다. 손 다 씻을 때까지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나는 빨래를 널러 베란다에 나가있는 도중, 손 씻는 소리가 들리더니 애가 거실로 들어오는 거다. 세면대 물 흐르는 소리는 계속 나는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언성을 높이면서 물을 잠그고 돌아오는데, 이 작은 반항꾼 얼굴엔 심통이 가득나 있다.

빨래를 계속 널고 있으니 나에게 말을 거는데, 이번엔 내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네가 태도가 영 엉망이라서 너랑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 자기는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다고 바르게 이야기하더라. 그래서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빨래 너는 것도 돕고,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와서 나와 놀자고 해서 힘껏 몸으로 열심히 놀아줬다. 이렇게 엄마랑 놀자고 하는 것도 몇년이나 갈까 싶어서. 좀 놀았다 싶었더니 그제사 아빠가 보고 싶다는 거다. 그 참에 왜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느냐 질문을 던지니, 아빠가 집에 없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고 서운했다는 거다. 아… 서운하면 미운거구나. 그걸 잊었구나. 평소에 아빠가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내가 데리고 오고 해서 아빠가 좀 늦게 오는 걸 당연히 받아들이는 줄 알았더니, 그게 서운하기도 하고 그래서 기분도 나쁠 수 있구나.

막상 아빠가 왔는데, 여전히 엄마랑 놀려는 아이를 보며, 그전엔 이런 아이의 나에 대한 집중과 큰 관심이 버겁기도 했던게 기억나면서, 힘들지만 즐기라는 주변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았다. 정말 이게 얼마나 소중한 관심인가. 그리고 이 시간이 얼마나 짧은 건가. 막상 이러다가도 내가 발레 간다고 집을 나서면 쿨하게 바이바이 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살짝 서운하려고도 하는 거다. 이 이중적이고 복잡한 기분

오늘은 내 예상대로 애가 피곤했었는지, 평소보다 삼십분 정도 이른 여덟시에 이미 골아떯어졌다고 했다. 잠시 들어가서 자는 모습을 바라보니,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세상 남부러울 게 없는 가장 큰 보물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애 이마를 쓰다듬었다. 한켠으로는  살짝 꺠어나 나에게 인사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 반, 다른 한켠으로는 푹 계속 잘 잤으면 하는 마음 반으로… 잘 자렴, 하나야.

2020년 8월 21일

화를 표현하는 방법

집에서 화난다고 문을 닫는 사람도 없고, 보육원에서도 같은 상황에서 문을 닫을 수 있는 여건도 아닌데, 화나면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건 어디에서 배웠을까? 기분이 상했을 때 혼자있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걸까? 그렇다고 아무도 방을 들여다보지 않을 때 방문 밖으로 나오는 걸 보면, 혼자 있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누가 보듬어달라고 대놓고 항의하는 걸까? 혹시나 후자일까봐 얼른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을 닫고 나가라고 냅다 큰소리를 치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그냥 복합적인 마음인 것 같다. 혼자 있고 싶으면서 또 누가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얽히고 섥힌. 거기에다가 요즘흔 한 술 더 떠서 화가 난 순간 저리로 가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우리도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타이밍에는 말 또는 행동을 똑바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여 엄포를 놓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행동하면 무시작전으로 일관을 한다. 그러면 제풀에 지쳐 방 밖으로 나온다. 화가 심하게 났거나, 자기가 꼭 하고 싶은 일을 우리가 못하게 한 경우에는, 나와서 소리를 또 지르거나 화를 내는 등 자기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행동을 한 번 더 하기도 하지만 – 그러면 같은 사이클을 반복한다 – 그 밖에는 아무일이 없던 척 하거나 안아달라고 와서 화해의 제스쳐를 보이기도 한다. 화해를 하러 우리에게 접근을 해오는 경우 알아서 굽히고 들어와 사과를 하기도 하지만, 그게 아닌 경우는 우리도 왜 잘못했는지를 설명해주고 사과를 요구하며, 사과를 해 오면 이를 받은 후 꼭 안아줘 화해를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준다. 그러면 언제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이, 또는 더 과장해서 좋은 일이 있었는 냥으로 신난 태도를 한다. 사랑스러운 녀석.

양치질이 너무나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자기가 거부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강제적인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꼭 양치질을 하고야 만다는 것을 알고, 또 그 경험이 유쾌한 것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 후에는 조금 수월해졌다. 강제집행(?)의 단계로 가기 직전에 항복을 하면서. 이럴 때 보면 많은 게 쉬워졌다. 그렇지만 육아 선배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해 준 것이, 애가 크면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고, 정신적으로는 더 힘들다는 것이었기에, 또 앞으로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와 긴장이 동시에 된다.

아이가 크니 일상이 또 바뀐다. – 플레이데이트

오늘은 하나 유치원 친구의 엄마가 하나를 함께 데리고 집에 가서 놀리고 저녁도 먹인다고 했다. 이제 대충 격주로 금요일마다 하는 행사가 되었는데, 그러면 남편과 나도 우리끼리 외식도 하고 오붓하게 산책도 할 수 있어서 흥이 넘친다. 언제 이렇게 컸는가 하는 생각에. 그리고 애를 데릴러 가서 아이 친구의 부모와 대화를 나누며 친교도 나누면서 인맥도 넓어지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애의 친한 친구 숫자가 늘어나면서 유치원 밖에서의 친교를 나누고 싶어하는 숫자도 늘어나니 좀 복잡하기도 하고, 애의 사회적 활동이 우리 가족활동에서 차지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피곤해지는 단점이 있다. 정말 요즘 너무 바쁘다. 일과 집안일, 내 사회활동과 부부, 가족간 사회활동, 아이의 친교활동 등으로 달력이 꽉꽉 차간다.

예전에는 내가 항상 우선이었는데, 애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내 일이 밀리기 시작한다. 그런 엄마들을 예전엔 존경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는데, 지금 내가 그렇게 바뀌어 있으니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이런게 자연스러운 일이구나 싶기도 하다. 뭔가 대단한 희생이 아니라, 애가 기뻐하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바뀌는 변화. 그래도 나를 잃지는 말아야지. 애는 15년만 있으면 독립해 나갈테니 그 때 나도 나만의 것을 갖고 있어야 그 빈 자리를 너무 큰 상실감 없이 채울 수 있을테니까.

2020년 8월 19일

선반이 떨어지는 사고

특별한 아침이다. 간밤에 부엌에 있던 선반이 떨어지며 그 위에 올려두었던 냄비며 식자재들이 바닥에 다 내동그라졌다. 요즘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크게 놀라서 깬 뒤라 다시금 영 잠이 들지를 안았다. 와장창창. 댕그렁 쨍그렁. 요란한 소리에 크게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깼다. 요란한 소리와 비명 사이의 찰나에 스치고 지나간 상상에 마음을 여전히 조이고 있었다. 하나가 우리 모르는 사이에 부엌에 들어가서 뭔가를 만지다 도미노처럼 물건들이 떨어졌나? 하나를 덥쳤을까? 벌떡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달려가 불을 키고 나니, 울거나 다친 하나는 없었고, 그냥 물건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있었다. 열어논 창문에 바람이 들이닥쳤나? 이건 어디서 떨어진거지? 잠이 덜 깬 몽롱한 상태라 단박에 상황이 판단이 서지 않았는데, 남편이 ”저 위에 밀가루랑 설탕단지를 안올려놔서 정말 다행이야!”라며 웃는 것이다. 올려다보니 반쯤 떨어진 선반이 대롱대롱 벽에 매달려 있었다. 드릴로 뜷은 구멍에서 선반을 고정하는 나사가 빠지지 않도록 잡아줘야하는 플라스틱 조각들이 어떤 이유였던간에 밖으로 흘러나왔던거다. 아래쪽 나사는 아직 버티고 있고, 위쪽 나사는 다 빠져있어서 벽에서 우선 선반부터 빼냈다.

사실 짜증이 날 법 한 일이었는데, 하나가 안다쳤다는 사실, 남편이 무겁고 위험한 것 올려두지 말라해서 그런 것들은 다 내려돈 덕에 설탕 및 밀가루를 청소하느라 씨름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어이도 없기도 해서 너털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들어가서 다시금 잠을 청했는데, 통 잠을 잘 수 없었다. 간신히 잠이 다시 들 무렵, 하나가 악몽이라도 꾼 듯 다급히 나를 불렀다. 가보니 깨진 않았고, 무서운 꿈을 꾸다가 잠꼬대를 한 것 같았다. 땀에 흠뻑 젖은 아이를 쓰다듬으며, ”그냥 꿈이야, 진짜가 아니야.”란 말을 수 차례 반복한 후 발로 걷어차 침대 한켠에 뭉쳐진 이불을 끌어다가 아이의 몸에 덮어주었다.

이렇게 새벽을 요란하게 보낸 터라 아침이 그닥 상쾌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간신히 일으켰고, 난장판이 되어있는 부엌부터 정리해야했다. 아이의 도시락도 싸야 하는데… 빠듯하긴 해도 안될 일은 아니겠지 했는데, 거실에서 남편과 애가 씨름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뭐 하나 틀어지면 저리 가라고 외치며 짜증을 있는대로 부리는 거다. 애가 훌쩍 큰다는 원더윅스가 예전처럼 심한 형태로 오지는 않지만, 간간히 말을 덜 듣거나, 짜증을 쉽게 또 많이 부리는 시기는 여전히, 종종 찾아오곤 한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인 것 같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이런 때 예전같이 짜증이 안난다는 점이다. 그냥 그러려니 한달까? 그냥 원래 애들은 그런거다 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면서 많이 수월해졌다.

친구의 이혼

오늘은 내 마음 속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친구의 이혼 판결이 내려진 날이기도 하다. 이혼소송이라는 게 이렇게 질질 끄는 일인 지 몰랐는데, 새로운 출발을 하기 전 이렇게 진을 빼다니… 하는 마음이 반, 그래도 원하던 이혼 판결이 잘 나와줘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반이다. 이럴 때는 덴마크의 이혼절차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애가 없을 경우 온라인에 접속해 이혼 신고를 하면 바로 가능하고, 애가 있을 경우, 이혼에 대한 이견이 있을지라도 6개월의 숙려기간동안 혼인 파탄의 상황이 지속되면 그냥 이혼을 하게끔 해주는 절차가 깔끔하다. 그나마 6개월은 새로 생긴 조건이다. 이미 부부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싶으면 6개월도 길다 느껴진다.

아이들도 부모의 관계가 결혼상태가 유지되는 것도, 이혼한 것도 아닌 불확실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보다 훨씬 안정된 틀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게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건강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도 아이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대신 면접교섭을 하는 기간 중에 자신을 더 많이 내어주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흠뻑 적셔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길 바란다. 아이들 뿐 아니라 지금과 미래의 자신을 위해서.

하나도 요즘 부모의 이혼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부쩍 가지기 시작했다. 유치원 친구들 중 이혼한 부모의 집을 돌며 사는 삶의 형태에 인지를 하면서 생긴 일이다. 얼마전 유치원에서, 아이들 하나하나가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혼자 찾아서 유치원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다 대동하고 집으로 간 뒤, 집 대문 앞에서 독사진을 찍어 오는 투어를 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인쇄해 유치원 벽에 붙인 큰 동네 지도에 콜라주처럼 붙이는 미술 프로젝트를 했는데, 몇 명은 집이 둘이라는 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 같다. 그걸 여러 번 물어봤으니까. 게다가 마침 그 이혼한 가정 중 하나에 하나의 가까운 친구도 해당되었는데, 친구가 엄마와 아빠의 아파트를 돌아가며 살고, 다같이 만나서 식사도 하고, 여름 휴가 중 짧은 기간이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이혼이 뭔가 즐겁고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그냥 부모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혼을 하고 아이도 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걸 오히려 즐겁고 신나게 느낄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 혹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 부모의 이혼은 힘든 일일 수 있기에 그걸 마냥 즐겁고 신나는 일이라 인식하게 둘 수도 없어서 그걸 어떻게 중립적으로 설명하나 고민이 많이 된다. 이혼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것도 잘못된 일이고.

며칠 전에는 집에 와서 나에게 엄마랑 아빠는 이혼했다고 역할놀이를 하자는 거다. 그래서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면 같이 못사는 데 좋아?”라고 물어보니, ”엄마랑 엄마 집에서 며칠 같이 살고 또 아빠랑 아빠 집에서 며칠 같이 살면 되지.”라는 거다. 아. 이런 관점에서 신나는 일인 거구나 싶었다. ”이혼은 엄마나 아빠 중 한명이 상대방을, 또는 두명 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는 거야. 엄마랑 아빠는 계속 사랑해서 이혼 안할 거고.”라고 말해주긴 했는데 앞으로 한동안 이혼은 아이에게 중요한 토픽이 될 것 같다. 이혼이 나쁜 게 아니고, 필요할 땐 꼭 해야하는 것이지만, 이혼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일이기에 그걸 쉽게, 재미삼아 주제로 삼을 건 아니라는 걸 아이에게 잘 설명하는 게 나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40개월의 하나

키는 95센티미터 정도, 몸무게 15킬로그램. 나이 대비 매우 평균적인 아이이다. 머리크기는 잊었지만 이또한 평균. 먹는 것은 덴마크에서 한국 식생활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식탐이 없고 그렇다고 적게 먹는 것도 아니다. 신체적 성장의 면에 있어서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평균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성이 탁웚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고 자기를 소개하고 상대에 대해 질문한다. 이름을 외우는 것을 좋아하고 이름을 포함해 대화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대화에 적극 활용한다.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아 상대가 무시하고 갈 경우 다소 상심도 하고 주변 어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왜 상대가 자기를 무시했을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다행히도 그런 일을 훌훌 터는 걸 잘 한다. 주변의 친구와 어른에게 포옹 등 신체적 접촉을 통해 친밀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와 같이 노는 걸 좋아하지만 아쉬움이 없이 잘 놀기 때문인지 헤어짐은 우는 것 없이 흔쾌히 받아들인다.

놀이를 잘 만든다. 상상력이 풍부해서 이러저러한 놀이를 잘 만들고 친구들을 놀이에 끌어들이는 것을 잘 한다. 장난감이나 사물을 본연의 모습이나 기능과 달리 사용하는데서 창의적임을 느낄 수 있다. 잠에서 혼자놀 때는 인형에 역할을 부여해 혼자 대화를 주고받는 역할 놀이를 많이 한다. 상황에 따라 부여하는 이름이 세트로 나뉘어있고 그 세트가 매우 다양하다. 사자 가족일 땐 엄마사자, 아마사지, 아기사자 이름이 뭐뭐고 고양이 가족일 땐 그게 또 다르고 그냥 아기일 땐 뭐고. 너무 많아서 이제는 내가 다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다.

노래는 좋아하지만 음정은 좋은 것 같지 않고 미술을 좋아하나 그건 내가 잘 모르겠다. 그냥 특별할 것 없이 그 나이 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정도인 것 같다.

숫자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냥 일부터 이십까지 세는 것 정도가 일상적으로 쓰게 되는 전부이고 시간에 대한 관념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매일 아빠가 읽어주던 라임책 덕에 두돌때 알파벳은 이미 읽을 수 있었지만 글자를 일고 싶어하는 욕구를 드러낸다거나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책은 좋아하는 것 같은 게 간혹 문닫고 조용히 있을 때면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고 집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덴마크어는 또래 애들중에서 뛰어나다. 발달 정기검진에서도 언어나 신체조절능력이 많은 부분에서 평균보다 1년정도 빠른 것 같다고 나왔는데 실제 보육원에서 다른 아이들을 만날 때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어려서부터 발음도 좋았어서 타인과 의사소통이 어려서부터 쉬웠다. 아무래도 공갈젖꼭지를 물리지 않은 것도 발음이 일찌기 좋았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오래 문 애들의 경우 이가 완전히 물리지 않아 발음이 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덴마크어가 뛰어난 것에 비해 내 노력의 부족탓인지 한국어는 부진하다. 요즘 좀 한국어 사용을 내가 늘리면서부터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자기도 자기 한국어가 뛰어나지 않은 건 잘 알고 있고 내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따금 다른 아이들 이름 발음을 교정해주기도 하고 문법을 교정해주는 것도 있다. 덴마크어애는 부정의문문에 긍정으로 답할 때는 Yes에 해당하는 ja를 jo로 바꿔 답해야 한다. 간혹 내가 그냥 이에 ja라고 하거나 실수로 ja라고 해야할 경우에 jo라고 답하면 정정해준다. 그리고 엄마 덴마크어는 나쁘지 않아 라고 이야기해주는 걸 보면 내 덴마크어가 모국어가 아님을 자기가 느낀다는 거다. 요즘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갖고 와서 한국어로 읽어달라고 한다. 이해를 다는 못할 텐데 열심히 듣고 질문하는 거 보면 기특도 하다. 주도적 한국어발화는 많이 제한적이고 주로 내 요구에 의해 한국어를 말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다. 생활속 레퍼런스가 떨어지는 게 한국어 실력 향상에 걸림돌이 된다.

성별 구분에 일찌기 관심을 가졌다. 여자, 남자 이렇게. 누가 가르친 게 아닌데 소방관처럼 그 끝이 영어로 하면 man으로 끝나는 단어일 경우 성별에 따라 자기가 단어를 변형해 woman에 해당하는 단어로 대체해 쓴다. 어느날 플레이데이트에서 애가 그렇게 단어를 쓰니 상대방 아이가 하나가 말한 게 맞는건가 싶어하며 다소 혼란스러워했는데 그 엄마 왈, 그런 거 내가 가르친 거냐 한다. 그런거 아니고 자기가 그냥 그런다고 했는데, 그 아이를 보면 남자냐 여자냐를 그렇게 따지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누가 시킨 게 아닌데 원피스, 공주, 악세사리 이런 거 엄청 좋아한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니고, 애한테 일찌기 중성적인 옷을 많이 입혀온 나인데.

운동기능이 뛰어나다. 체력 단련이 일상화된 게 우리집 발레바를 무슨 철봉처럼 메달리는데 쓴다. 매일. 팔다리, 코어가 모두 아주 단단하다. 봉을 타고 약간이나마 올라갈 정도니. 뛰어다니는 자세에 있어서도 어린 아이같은 어색함은 완전히 없어졌다.기어 올라가고 내려오고 높이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다. 자기가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아기용 그네 같은 경우는 하늘높이 밀어도 두려움이 없으니 말이다. 그건 아주 어려서부터 그네를 태운 탓인 것 같긴 하다. 옌스가 애를 이래저래 많이 훈련을 시키는 것도 있어서 발달이 빠른 것 같다. 요즘은 두발자전거와 외줄타기도 연습중이다.

기저귀는 코로나 재택근무를 계기로 떼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편할수가. 여기는 대충 세돌 근처에 자연스럽게 떼는데 서너번 실수하고 더이상은 실수하지 않고있다. 밤엔 그냥 기저귀를 채우는데 거의 마른 기저귀가 대부분이다. 마르지 않은 경우 아침에 깬 이후에 눟는 경우가 주인 것 같다

예전에 지도교수가 세돌 반 지나면 거의 다 키운 거라더니 진짜 거의 그런 것 같다. 밥도 예전보다 덜 흘리고 먹고, 원하는 건 다 의사표현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해 해결하니까.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지만 이쯤 수월해지니 내가 한 5년정도 젊었으면 힘들었던 기억 이쯤에선 다 잊고 하나 더 낳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나이에는 우리 둘 다 하나로 족하다. 조카가 남자 사촌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옌스가 꿈 깨라고 말해줬다. 하나면 족하지 아무렴.

38개월 하나

자기는 대놓고 한국어 잘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하나. 덴마크어만 아주 잘 하고 발음도 이 또래 애 같지 않게 또박또박 잘한다. 한국어와 덴마크어 간에 격차가 엄청 크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주어진 범위 안에서 노력하는 수밖에.

요즘은 역할놀이에 꽂혔다. 역할에 따라 이름이 바뀌고 나도 그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부여가 된다. 나는 잘 기억하는데, 옌스는 너무 역할이 다양해서 자긴 기억 못하겠다고 한다. 사람과 하는 역할놀이도 있지만 인형들에게 역할을 나눠준 뒤 혼자 다인역할을 하며 놀기도 한다.

프로즌과 라이온킹을 본 후 부모의 죽음이나 자녀의 독립 등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나가 태어나기 전에 옌스와 같이 간 곳에 하나와 처음으로 같이가다가 내가 길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더니 자기는 어디에 있었냐 묻는거다. 아직 너는 세상에 없었다 하니 자기를 혼자 어디에 두고 둘만 다녀왔는가 싶었는지 자기 두고 떠나면 안된다고 서럽게 울더라. 그러고 나서 덧붙이길 자기는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네로 비행기 타고 갈거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기를 잘 보살펴 주셔서 다시 행복해 질 거라고. 여기서 빵 터졌다.

사회성이 엄청 좋다. 동네에서 덕분에 아는 사람이 늘었다. 어찌나 인사성이 좋은지. 코로나 때문에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해야하는지라 목청 높여 대화를 시도한다. 간혹 그냥 무시하고 가는 어른들도 있는데, 그럴 땐 자기랑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서운해하기도 하고.

우리 집에 반절이 옷걸이로 사용되는 발레바가 있는데 나머지 반절은 하나의 철봉으로 사용된다 나는 옷걸이가 걸린 쪽을 발레바로 쓰고. 어찌나 힘이 좋은지. 매일 엄청 자주, 또 오래 매달린다. 복근이 덕분에 장난이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표정이 엄청 풍부하다. 또렷하고. 이녀석 나중에 뭘 할런지.

떼를 쓸 때는 또 엄청나다. 음… 시부모님도 하나 보시더니 보통이 아니라며 첫째 조카랑 비슷한 것 같다 하시는데… 평소에는 참 수월한 아이지만 한번 성깔을 부릴 땐 정말 대단하다. 흠…

모두가 자기 새끼 다 이뻐하듯이 우리 눈에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사랑스러운 하나. 계속 이렇게만 자라주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