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 대한 두려움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진리와 지식 중 티끌만큼도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는 바를 삶의 매 순간에 지속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마치 모르는 것처럼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배움에 있어서 두려움을 느낀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원래 어려울 수 있고 따라서 배우는 것을 한번에 다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머리로는 알지만, 술술 읽히지 않는 책을 접할 땐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유독 크게 느끼고 그 부족하다는 감정을 느끼기 싫어 아예 읽는 것을 피하기조차 한다.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집중해 대여섯시간을 내리 읽어야 다음날 수업 준비가 될만큼 많은 읽을 거리가 주어지니 여유를 갖고 읽을 새가 없다. 수업시간이 주당 24시간의 수업과 덴마크어 수업 7시간을 제하고 나면 휴식을 취할 시간따위는 없다.

문제는 빨리 읽어내려가야 할 교과서나 논문이 술술 읽히지 않는다는데 있다. 물론 수업이 끝나고 나면 그 전날 가졌던 의문의 대부분이 해소가 됨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로운 읽을 거리를 마주함에 있어서는 두려움이 있다. 최대한 의문거리를 줄이도록 깊은 사고를 하며 읽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질문 거리를 빠르게 체크하면서 읽어나가야 한다. 많은 질문거리를 쌓아내고 나면, 과연 내가 이것들을 충분히 이해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더 많이 이해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 마음속에 휘몰아친다.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매일 피부로 느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된다. 그래서 미룰 수 있는 순간까지 최대한 읽는 행위를 미룬다. 주중엔 미룰 수 없으니 그렇다지만, 주말엔 일요일 오후가 되기까지 미루고 또 미룬다. 참 어리석다. 왜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살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이게 나인가 싶다. 배움이 즐겁기도 하지만, 과연 내가 이 교육이 끝난 후 내가 원하는 바를 할 수 있을 만큼 다 흡수해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아예 중도에 안하면, “안해서 그랬어. 하면 다 할 수 있는데.”라는 변명을 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유치한 생각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전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매일, 매순간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을 하기에 뒤로 미루기를 하는 것 같다. 회피의 순간을 지속적으로 찾는 나를 알기에 나 스스로를 설득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미룬다고 달라지지 않거나 혹은 더 악화된다는 것, 조금이라도 더 하고 가는 것이 좋다는 것 등을 스스로에게 자꾸 이야기해 준다던가, 아니면 주중에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이 50시간 이상 되니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읽을려는 노력이 실패해도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이 모든 생각의 저변에는 난 사실은 이만큼을 해내야 해, 하는 자만심이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생각을 하면서 또 인간성이 덜 된 나를 질책하게 되지만, 그보다는 이 부족한 모습의 내가 나 스스로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받아들여야 할 지도 모른다. 앞으로 조금은 더 나아진 내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아날로그적 그리움

나는 메신저가 싫다. 직접 사람을 만나서 대화할 수 없다면, 아직도 난 전화나 편지, 그게 안된다면 최소한 이메일이 좋다. 편지를 쓰는 일은 아주 드물어졌지만 그 아날로그적 경험이 주는 감성을 사랑한다. 연락이 뜸해졌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싶으면서도 하기 싫어지는 이유는 바로 변한 채널 때문이다. 게으름 또는 마음의 거리를 감추기 위한 변명일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나는 정말 메신저가 싫다.

어제는 날씨가 참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 15분의 시간을 생산적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 난 밖을 내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읽기도, 라디오를 듣기도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이다. 매일 관찰하면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것들이, 그 관찰을 한달, 두달, 한철, 두철 이렇게 꾸준히 관찰하다보면 변화하는 것이 조금씩 느껴진다.

마침 열차가 Nordhavn (북항) 역으로 들어서는데 하늘과 바다가 얼마나 아름답게 만나고 있던지. Nordhavn 지역은 재개발이 한창이라 전혀 그 자체가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은색으로 시작해서 수평선으로 갈 수록 검푸른 색으로 변하는 바다의 색깔과 핑크색으로 시작해서 노란색, 하늘색, 푸른색으로 변해가는 하늘, 하늘이 어두운 건 아니지만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길거리 등이 어우러져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의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어쩌면 내 완벽주의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느낌을 정말 온전히 전하고 싶은 마음때문에. 그냥 한 줄 메세지로 “이 순간을 너와 공유하고 싶었어.”라고 전해도 되는데, 그간 자주하지 못했던 연락에 미안한 마음이 커져서 그 마음의 크기만큼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 탓에 메세지는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내 글들이 대체로 일방적인 것처럼 나는 그 마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도 있었다. 교류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 생기는 응답에 나도 재응신을 해야 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나누고 싶음과 혼자있고 싶음이 교차하는 순간, 난 다시금 연락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곤 한다.

메신저의 그 즉흥성 또는 가벼움이 싫다.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관심을 약간만 할당하는 게 싫다. 난 온전히 전하고 온전히 받고 싶은데…

내가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은 항상 그녀에게 닿아있다고 했던 것을 그녀가 언제고 알아주면 좋겠다. 세상이 아직도 충분히 느려서 사람들이 이와 같이 느린 교류를 마음의 거리와 동선에 두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시간을 내서 편지를 써야지 한 것이 어느새 달을 넘기고 있다. 펜을 들어야지. 간혹 주고받았던 메세지 만으로는 전달되지 못한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적도의 땅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을 그녀가 춥지만 맑고 아름다운 오늘 더욱 그립다.

만난지 2년째

2년전 발렌타인데인 하루 전날, 옌스와 처음 만났다. 미리 사둔 하트모양 핑크색 화이트 초콜렛을 발렌타인데이 하루 전날 반으로 두동강내어 먹고 만난 것은 그 유혹 탓도 있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때문이기도 했다. 콩엔스 뉘토어 정류장 밖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추운 날씨를 피하려고 백화점으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추운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이중 문으로 되어 있는 구조인데, 나는 문과 문 사이에서 곧 올 것으로 예상되는 옌스를 기다리며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뒤에서 “혹시… 당신이 해인…?”이라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사진으로만 봤던 옌스가 눈에 들어왔다. 만나서 반갑다는 말과 함께 허그를 하는데, 같이 허그를 하면서 느낀 그 어색함이란… 아직 덴마크식 허그 인사에 익숙해있지 않았는데다가 초면에 허그를 예상하지 못한 탓에 너무나도 어색했다.

만난지 세번째에 키스를 하며 사귀기로 이야기를 나눴던 이유로 그 날을 우리의 기념일로 정했지만, 올해는 첫 만남을 기념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의 예약이 기념일에 다 차있었기에 이날로 바꾸기로 했지만, 더 큰 의미도 있다면서 말이다.

“그 날, 우리의 첫만남을 재현해볼까?”

그렇게 해서 이날, 우리는 첫만남의 어색함을 재현해보았다. 같이 역에 도착해서 나는 역 바깥으로 해서 백화점으로 들어가고, 옌스는 역안에서 백화점으로 연결되는 통로로 들어갔다. 혹시 엉뚱하게 기억해서 다른 문으로 갔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 첫 만남과 비슷한 초조함도 들었다.

“혹시… 당신이 해인…?”

“당신이 옌스…?”

만나서 반갑다는 말과 함께 한 포옹은 더이상 어색할 수 없었지만 그날의 기억을 새롭게 되살려주기엔 충분했다. 지난 2년간의 일들을 되새기며 많은 이야기를 하고 배가 터지도록 먹은 이날의 따스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덴마크 명절 단상

덴마크에 와서 보니 가족 모임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잦다. 그리고 모였다 하면 밖에서 외식하는 거 없이 대부분 집에서 모여 식사를 하고, 점심, 저녁까지 두끼는 기본이다. 모이는 장소는 자녀의 집에 처가, 시가 식구가 함께 모이는 경우부터 처가나 시가로 때에 따라 바꿔가며 방문한다. 딱히 정해져있는 건 없다. 음식도 나눠서 해가고 뒷정리도 다 같이 한다. 중요한 차이점은 남녀 모두 일을 한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남자가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최소한 우리 시댁은 그렇다.
 
손님을 집에서 치르는 일이 잦은데, 서로 오고가며 그리 하다보니 조금씩 손님맞이가 익숙해지고 좋아진다. 뒤늦게 치우는 일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부부가 같이 정리하면서 그날의 저녁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일도 즐거움의 일부다.
 
불만은 한쪽이 일을 부담할 때 생긴다. 덴마크의 이런 남녀 평등이 찾아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의 참정권 확보가 불과 100년전이고, 1950년대를 전후로 해서야 여성의 경제참여 비중이 늘어나고 여성의 역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을 시점으로 한 변화가 지금의 사회 모습의 초석이 되었으니 꽤나 최근의 일이다.
 
우리가 덴마크에 비해 민주화나 근대에 들어선 발전의 시작이 늦기는 했으나, 그 시간의 격차가 아주 큰 것은 아니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양성간의 차별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전통의 이름으로 이러한 차별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도 한다. 
대가족간의 모임이 예전같지 않고 갈수록 핵가족 되어가는 현상이 아쉽다. 현대화가 교류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텐데. 우리 명절 문화가 변화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아주 많이 부족하다.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떼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남자들이 조금 돕는 정도가 아니라 획기적으로 모두가 함께 일하고 먹고 즐기는 기회가 될 때가 충분히 되었다. 불만이 사라지면 교류에서 찾을 수 있는 과실이 눈에 보인다.
집안일을 추가로 더 하더라도 이곳의 명절은 즐거운 날이 되었다. 서로 위해주는 가족들을 만나게 되고, 나 또한 그 일원이 된다는 것, 그리고 미래에 내 아이들에게도 더 큰 가족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피로 섞인 내 가족이 아니기에 그와 같을 수 없다하더라도 그건 당연하다. 내가 그들에게 가족과 똑같은 애정을 부어주기엔 우리가 아는 시간이 아직 짧고 아직 더 가까워질 거리가 많이 남았기에 말이다.
물리적인 거리와 언어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의 내 가족과 옌스가 내가 이곳에서 동화되는 만큼 가까워지지 못함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문제일 뿐, 양쪽의 문화를 모두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더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멀지 않은 시기에 나도 우리의 2세를 가질 수 있고, 그 2세에게 두개의 다른 문화와 가족속에서 자랄 수 있게 해주길 바래본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주말에는 항상 나와 커피데이트를 하고 싶어하는 당신. 그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몇 안되는 날, 내 빈자리가 느껴졌다고 이야기해주는 당신. 자주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를 만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고 말해주는 당신. 내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주는 당신. 어딜 가나 내 손을 꼬옥 잡고 다니는 당신. 손님이 오는 날이면 디저트를 만들어주는 당신. 나의 어린 감성을 채워주기 위해 유치한 행동을 해주는 당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음으로 상황을 보려고 최면을 걸 때면, 항상 좋은 일만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낙망하지 말라고 현실감을 일깨워주는 당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만히 안아주며 좋은 점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당신. 내가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마음안의 어려움을 눈치채 보듬어주는 당신. 나를 항상 지켜보고 있고 나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당신. 항상 겸손하고 변함이 없는 당신. 배움이 가장 재미있다며 그를 옆에서 바라보며 나도 자극받게 해주는 당신. 삶에 대한 올바르고 균형잡힌 태도를 갖고 있는 당신.

이제 당신을 만난지 몇일이면 2년이 되는구나. 내 삶은 당신을 만나서 정말 행복해. 그래서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자. 🙂

첫 학기를 무사히 잘 마치고

마지막 남은 과목의 성적도 확인했다. 12점. A를 받았다고 이렇게 기뻐한 적은 학부때에도 없었는데. 학점 인플레가 없는 곳이라 A의 의미가 달라서 그런 것인가? 그런 게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공부에 대한 절박함이 그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라 그런 것 같다.

학부때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고등학교 때 있었던 외환위기와 그에 따른 IMF 구제금융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외환위기를 야기한 최전방에 있었던 종금업계에서 근무하셨기에 많은 일들이 불거지기 전 미리부터 불길함의 전조를 건너 들을 수 있었고, 왜 그런 일이 생긴 것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공부에는 별로 필요도 없었던 매일경제신문을 매일 읽었고, 경제기사 읽는법이라는 책도 사서 읽었다.

재미있긴 했는데, 막상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함에 있어서는 절박함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 가면 뭔가 삶도 더 많이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공부할 게 생각보다 많았고, 앞으로의 취직도 걱정해야 했기에 뭐하나 게을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해야되서 했고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에 대한 갈증 자체는 없었다.

학부초반때 경제학 공부가 재미있긴 했는데, 그 재미가 학년이 올라갈 수록 덜해졌다. 공부의 방향성 설정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남들 듣는 수업 찾아 듣다보니 왜 그 공부를 하는지 잘 모르는 채로 부유했다. 이것을 갖고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경영학 이중전공을 했고, 실생활에 보다 적용하기 쉬운 경영학에 보다 큰 관심을 쏟으며 공부하고, 졸업했다.

회사생활을 한지 12년만에 모든 것을 관두고 다시 공부의 삶으로 돌아왔는데,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회사다니는 중간에 한국에서 석사를 한번 했지만, 졸업시험과 경제학에세이라는 것으로 논문을 대체한 나는 뭔가 가라로 석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학부 생활을 다시 한번 한 것 같은 느낌. 회사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한 것이라 한학기 한학기 떼우기 바빴던 시기였다. 다만 그 때 차이가 있다면 그간 나를 괴롭혔던 경제수학과 통계학과 한층 가까워졌던 시기였다는 것과, 내가 모르는 것을 이해하고 그 모르는 것을 질문으로 푸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만은 않다는 걸 회사생활을 통해 배우기도 했고, 내가 모르면 남들도 모를 수 있지 라는 생각으로 질문할 수 있는 배짱도 생겼다. 그때의 그 경험이 이번 석사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유학경험이 없었고, 영어로 하는 세미나에 앉아있으면 장시간 앉아서 집중해 듣는다는게 피곤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수업을 영어로 하고, 읽고, 시험을 보는 것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꽤나 했다. 실제로 계량경제학은 그 컨셉 자체가 어려웠고, 내가 약했던 과목이었기에 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몇주가 지나면서 조금씩 수월해졌고, 자신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출문제를 입수해서 같이 모여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제한된 시간 자원속에 나는 혼자 개념 공부에 집중하기로 했다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C. 예상치 못했던 황망한 결과였기에 받고 우울해했다. 여기는 성적 분포표가 인터넷으로 공개되는데, 그게 평균 이상임에 놀랐으며, 그걸 알고도 C라는 글자에 우울해하는 나에게도 놀랐다. 옌스는 평균 이상을 받고 우울해하는 것은 자만이라고 이야기하기에 마음을 애써 추스르긴 했지만 말이다.

이미 지난번 블록때도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에 딱히 이번 블록이라고 더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두과목 모두 A를 받았다. 계량경제학에서 받은 C에 대한 설움에 보상이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다.

오래간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새로운 지식이 머리로 들어오는 과정이 놀랍게도 재미있다. 물론 딴짓을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날도 있지만, 내가 워낙에 한결같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간의 삶의 시간에서(고등학교 이후…) 지금이 가장 자발적이면서도 꾸준히 공부의 길을 걷고 있는 때라는 것을 자신한다.

학부를 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어린 학생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같이 자원경제학 시험을 준비하는 도중 자신들과 나는 공부의 동기부여가 다르다면서, 자기들은 그냥 계속 하던 것을 하는 거라 지겨울 때도 있다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첫학기는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그 과정도 즐겼고, 좋은 동기들도 얻었으며, 결과도 좋았다. 전체 석사과정 중 다음 학기에 가장 중요한 수업들이 진행된다. 1학기에 배운 내용을 갖고 실제 학계를 나가면 쓰게 될 내용들을 공부하게 되기에 가장 큰 도전이 될 과목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다 보니 삶에서 공부 또는 배움이라는 것에서 멀어지지 않는 길을 계속 걷게 되었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석사는 안할거라고, 경제학은 더이상 안할거라고 했던 내가 석사를 두번이나 하게 될 줄은, 또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박사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그래서 절대…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하는가 보다.

한주간의 방학이 이제 거의 끝나간다. 다음주면 새학기가 또 시작이 되는구나. 긴장의 끈을 놓칠 새 없이 다시 달려야 한다는게 부담이 되긴 하지만, 설렘 또한 나를 반긴다. 다시 한번 잘 달려봐야지.

덴마크 잡설 1

  1. 바람이 정말 많이 분다. 거센 바람이 거의 항상 분다. 과거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매미가 초속 30m의 바람을 동반했는데, 여기선 초속 20m로 바람이 부는 날이 흔하다.
  2. 겨울이 길다. 멕시코만류(난류)의 영향으로 본격적 겨울은 12월부터 시작되서 4월까지 간다.
  3. 비가 많이 온다. 강수량 자체가 많은 것을 아니지만 추적추적 자주 온다. 특히 가을부터 봄까진 흐린 날이 대부분이라 파란 하늘을 보면 감사하게 된다.
  4. 기온으로는 추워봐야 영하 5~10도로 크게 춥지 않지만 거기에 거센 바람과 습한 공기가 결합하면 참 춥다.
  5. 겨울엔 낮이 정말 짧지만 반대로 여름엔 낮이 정말 길다. 흑주, 백야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그에 준한다. 겨울엔 해떠있는 시간이 5시간 정도에 불과하고, 해도 매우 낮게 떠서 하루 종일 해질녘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6. 여름은 짧지만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멕시코 만류가 여름의 기운을 실어다 주기까지 시간이 걸려 여름 또한 7월 정도로 늦게 시작되지만, 9월정도까지 지속되는 여름은 참 아름답다. 기후가 안좋은 해에는 여름이 실종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여름이 실종된다는 것은 여름에도 최고기온 15도 내외로 비가 추적추적내리는 음습한 날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 촛불을 많이 켠다. 1인당 초 사용량 기준 세계 1위다.
  8. Hygge를 좋아한다. 겨울이 길고, 음습하고, 밤이 길지만, 집에서 촛불을 켜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나 차, 와인을 마시면 어찌나 아늑한지. 그 분위기를 일컬어 “Hyggelig”하다고 한다.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을 표현하는 동사로 “At hygge sig”가 있다. 다른 나라 말로 번역이 정확히 안되는 단어다.
  9. 커피를 정말 많이 마신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 5위안에 든다. 그러나 대형 커피 체인은 장사가 별로 잘 안된다. 독립 커피점이 잘 되는 나라다. 물론 집에서도 많이 마시지만.
  10. 코펜하겐 사람들은 날씬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날씬하지만, 코펜하겐 사람들은 더 날씬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도시가 운동에 꽂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거리를 누비며 뛰는 사람도 많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철인을 보유한 것처럼 강인한 체력을 소유하는 것을 좋게 생각해서 그런 게 더 큰 것 같다. 날씬하고 건강한게 트렌디한 것이라. 지방으로 나가면 비만 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맥주와 소세시, 돼지를 즐겨먹는 식문화에서 날씬한 사람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11. 다른 코카시안에 비해 얼굴이 조금 더 밋밋하게 생겼다. 눈위 뼈가 도드라지지 않아 눈이 푹 파이지 않았으며, 코도 아주 높거나 크지 않고, 매부리코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하나하나의 얼굴 부위 특성을 따지면 아시아인의 얼굴같은 느낌이 있다. 물론 금발머리가 흔하고, 얼굴 색은 겨울엔 거의 창백하고, 여름엔 구릿빛이 되고(빨개지지 않고 잘 타는 편이라 다른 유럽인들이 부러워한다.)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아시아인같은 느낌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 왈 덴마크인은 잘생긴 편이란다. 처음엔 그닥 공감하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를 갔을 때 공감했다. 덴마크인들이 크다는데 크게 공감하지 않다가 한국 돌아가서 공감한 것과 마찬가지로.
  12. 장을 동네 슈퍼마켓에서 자주 본다. 미국식 대형 슈퍼마켓에서 대량으로 사와 쟁여놓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렇게 사먹으면 신선한 것을 못먹는다는 생각에서 그렇다는데, 그것보다는 장을 자주 볼 수 있을 만큼 여유있게 퇴근을 하거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슈퍼가 충분히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13. 빈번한 외식문화는 한국처럼 발달해있지 않다. 한국에서처럼 매일 사먹으면 가산을 탕진하기 때문이라 그런 것도 있고, 집에 와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할 시간적 여력도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외식도 자주 안해 버릇하니, 예전 한국에 있을 때처럼 이게 먹고 싶다, 저게 먹고 싶다 이런 생각 자체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14. 전국민이 자전거를 탄다. 나이, 성별 따지지 않고 다 탄다. 그래서 보조 바퀴를 단 자전거를 볼 일이 없다. 눈비 가리지 않고 타는 그들을 보면 놀라울 지경이다. 추운 겨울엔 핸들바를 잡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타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15. 생산성이 높다. 일하는 시간이 짧은 대신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짧고, 업무강도가 높다. 점심시간은 최대 30분 정도 쓰고, 이 또한 그냥 자리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는 것으로 대신하는 사람들도 많다.
  16. 무상복지 패키지는 별로 없다. 국민 연금은 많이 내도 적게 내도 받는 액수엔 큰 차이가 없다. 의료의 대부분은 나라에서 지원하지만, 의약품은 개인 부담이 우리보다 크고, 치과진료, 물리치료 등은 개인 부담이 크다. 대학교육을 제외하고는 보육부터 의무교육기간까지 추가로 학교에 내야하는 돈이 꽤 크다. 한국 사립학교 수준이다. 그렇지만 살림이 어려운 가정에게는 나라에서 추가로 보조해준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소득재분배 측면에서 옳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17.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사회 계층의 차이가 있다. Hellerup, Rungsted, Chalottenlund 등지의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갖고 있으며, 못사는 집 애들과는 놀지 못하게 하는 부모들도 있다.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이런저런 경험담을 덴마크인을 통해 듣다보면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다 하는 생각이 든다.
  18. 세금을 많이 낸다. 최고 평균 세율이 55%이다. 따라서 한계세율을 기준으로 보면 60% 넘게 내는 사람들이 있다.
  19. 1인당 가처분 소득은 세후 기준으로는 한국보다 1.5~2배정도 된다. 그러나 물가가 2배 정도 되기에 검소하게 살 수 밖에 없다.
  20. 전반적으로 다 깔끔하게 하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명품을 든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품브랜드가 한국에서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하지 않다.
  21. 녹지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도시 슬럼화 현상을 먼저 관찰한 후 도시계획을 잘 수립해 중심부가 슬럼화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왔으며, 녹지계획이 그와 함께 잘 수립되어 있어 녹화된 도시로 성장했다.
  22. 종교세가 있다. 국교인 루터교가 하나의 정부 부처로 설립되어 있으며, 종교세 1%를 과세한다. 교회에서 탈퇴하면 안내도 된다.
  23. 젊은 사람들은 영어를 참 잘하지만,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많다. 시부모님이나 시누이가 간혹 원하는 영단어를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 괜히 미안해 한다. 영어를 잘 하셔서 오히려 감사할 일인데 말이다.
  24. 덴마크어의 발음 규칙은 복잡하다. 쓰인대로 읽지 않는다고 외국인들이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쓰인대로 읽지 않는게 아니라 알파벳의 결합에 따라 읽히는 규칙이 다른 언어에 비해 복잡한 것 뿐이다. 영어와 독어를 잘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배운다. 동사 변형이 다른 유럽어에 비해 간단한 편이다. 발음 때문에 사람들이 청해에서 어려움을 느껴 언어 자체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지, 언어 자체가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25. 애플 제품을 정말 많이 쓴다. 대학교에서 맥이 아닌 컴퓨터를 찾는게 더 어렵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애플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한다. 아마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해서 그런게 아닐까.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나는 건 많지만, 다음에 이어가기로 하고…

정신연령이 어려지는 것 같다.

경제학, 생태학, 덴마크어. 요즘 하는 거라곤 딱 이 세가지. 그 밖의 시간에 하는 건 옌스와 보내는 주말과 저녁, 이따금씩 있는 극히 제한된 풀에서의 사회생활.

해당 분야에 대한 사고 이외엔 별로 하지 않으니 생각이 단순해진다.

옌스와 나는 둘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라, 아니 그래서 짝이 맞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간혹 치는 장난들이 남들이 보면 황당해할 어린애들의 것이다. 그래서 그 이전의 어떤 연애때와도 달리 내 안의 어린 나를 많이 보여주게 되고, 그의 그런 모습도 보면서 지내게 된다. 우리 둘다 하는 행동이 굳이 우리 나이에 걸맞는 행동만 하는게 아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젊어서 그런지 여러모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소비의 스케일도 그들의 것을 보며 나도 괜히 검약하게 된다든지, 그들의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에 놀라면서도 영감도 받게된다.

덕분에 정신연령이 어려지는 것 같다. 좋은 의미로.

방학 아닌 1주간의 방학을 보내며

시험이 끝나고 한주간 있는 방학. 딱히 쉬기도 어려운 건 방학이 시작하기 무섭게 주어지는 읽을 거리때문이다. 수업 진행 방향을 미세조정하기 위해 수강생들의 수학배경을 확인하기 위한 설문조사도 이때 이뤄진다.

혹여나 해당 학기 이전에 통과하지 못한 시험이 있는 학생들은 이 주간에 재시험을 칠 기회가 주어진다. 재수강이라는 개념은 없어서 해당학기에 쳐야 할 시험에 이전 학기에 통과하지 못한 시험까지 쳐야하니 부담이 더해진다. 수업을 들은지 한참 지나서 재시험을 쳐야 하니 그것도 고통일 것 같은데, 원하는 결과가 안나올 것 같은 수업의 경우 일부러 시험을 안치고 재시험을 노리는 학생들도 꽤나 되는 것 같다.

읽을거리들을 출력하느라 도서관이 나왔더니, 예상한대로 별로 사람이 없다. 낯이 익은 사람이 다른 누구와 대화하며 재시험 치는 것 때문에 너무 걱정된다고 하는 것 보니, 나와있는 사람 중 몇몇은 재시험을 보는 학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갖고있는 강박중 하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중요하지 않아 넘어가도 되는 부분에 사로잡혀 머리를 끙끙 싸매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급박한 프로젝트가 있는 경우 그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를 잘 하지 못하고 도망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많은 고생을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깊이 이해해야 하는지, 과거 다루고 넘어갔던 컨셉이 세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을 경우 얼마나 자세히 복습을 해야하는지 등등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한다. 적당히 넘어가는 포인트를 찾는 것은 아마도 평생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초반에 너무 열정을 투여할 경우 중간에 지쳐서 용두사미처럼 헤이해지기 좋기에 완급 조절은 필수다. 우리 단과대학처럼 제대로된 방학이 여름밖에 없는 경우는 더욱 그렇고, 주당 백페이지가 훌쩍 넘는 리딩이 주어지는 수업은 더욱 그렇다. 다 깊이있게 이해하고 넘어가려 해서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 적당히 선택을 해야한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는 이런 식의 학습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경험으로부터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런 문제가 없는데 – 간혹 받는 실력 향상에 대한 스트레스 빼고 – 일반 학습은 그게 잘 안된다.

긴 학기가 끝나고 쉬어야 하는데, 별로 쉬지 못하고 새로운 학기에 다시 진입하게되니 아쉽다. 그래도 오개월만 버티면 두달의 방학이 기다리고 있고, 그보다 먼저 두달만 버티면 한국에 잠시 다녀오게 되니 시간이 잘 갈 것 같다. 물론 한국 방문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시험도 있겠지만…

일찍 깬 시험날 아침 이런저런 생각

오늘 드디어 이번 학기의 마지막 시험을 치른다.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생태학 시험을 그저께 성공리에 치르고 나니 자원경제학 시험은 좀 수월한 기분이다. 아침 9시부터 4시간 동안 머리를 굴려야 할 터라, 6시 반인 지금부터 괜히 뇌를 부리지 않으려 블로그에 들어왔다. 시험이라는 이유로 읽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자유로이 하지 못했기에 많이 아쉬웠는데.

한학기동안 쭉 진행되었던 생태학 수업은 15 ECTS, 한국 3학점이 6ECTS로 환산되니, 8학점 쯤 되는 수업이다. 그걸 중간고사 없이 기말에 한번도 마주한 적 없는 구술시험의 형태로 진행하게 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험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감이 없었고, 교수 4명과 외부감독관 1명으로 구성된 시험관이 어떤식으로 학생들을 추가로 시험할 지 몰랐기에 불안했다. 막상 시험 문제를 뽑아보니, 어려운 문제.

학기중 총 9개의 모듈을 공부했는데, Carbon, Nutrient, Water, Biodiversity 등 4개의 모듈 관련 그룹보고서를 제출하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 4개의 프로젝트에서 하나를 뽑기로 뽑고, 100개의 문제은행에서 그룹 보고서의 모듈과 다른 모듈의 질문을 하나 또 뽑기로 뽑은 다음, 별도의 룸에서 30분동안 준비한다. 그리고 나서는 프로젝트와 질문에 대해 각각 5분간 발표하고, 7~8분간 추가 질의응답을 하는 것을 통해 25분의 구술시험이 종료된다.

Carbon 모듈 프로젝트를 뽑고 질문을 뽑았는데, 아싸! Biodiversity 중에서 쉬운 질문이다 생각한 순간, “그 문제는 네 Carbon 프로젝트가 Biodiversity를 연관해 아우르는 프로젝트라 다시 뽑아야 해.”라는거다. 다시 뽑은건 Water… Hydrology와 Nutrient cycle을 연결해서 묻는 질문이었는데, 처음엔 질문도 잘 이해가 안가더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서 준비방으로 갔는데, 내가 원하는 정보가 출력하지 않는 논문에 있어서 인터넷을 하려하니, 내 컴퓨터 인터넷이 먹통… 패닉되려는 순간 마음을 다잡고 이건 치우고 다른 내용에 초점을 맞추자 싶어서 진정하고 준비했다.

프로젝트는 4개 모두 집에서 발표를 준비하고 내용도 꼼꼼히 다 읽어봤던 터라 자신있는 것부터 시작하는게 기선제압에 좋겠다 싶었는데, 전략이 유효했다. 문제에 대한 발표는 프로젝트보다 덜 매끄러웠지만, 질의응답에 나름 잘 대응했고.

시험이 다 끝나고 방 밖으로 나가 평결을 기다리는데 (구술은 즉각 성적을 알려준다.) 그 3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긴장이 되서 창가에 설치된 예술품을 보며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딴짓을 해가며 시간을 보냈다.

성적이 결정되면 성적과 함께 시험에 대한 평가, 약점, 강점 등을 설명해준다. 약간의 weakness는 있지만, 전체 수업 내용을 다 이해하고 복잡하게 연결된 생태 문제를 잘 풀어낼 수 있도록 모듈 간 지식 융합과 연결을 잘 할 수 있어서 12점을 준다고 했다. 이번 수업에 두명만 만점이었는데, 내가 그 중 하나가 되다니. ㅠㅠ

나보다 옌스가 더 기뻐해줘서 더 기뻤다. 가장 부담되었던 생태학이 잘 끝났으니, 이제 조금 있다가 학교가서 마지막 시험 잘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