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어 발음은 독일어와 너무 다르다.

게르만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덴마크어이기에 많은 단어가 독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생김새도 독어와 비슷한 경우가 많아, 독어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들은 어떻게 발음해야할 지 잘 모르는 단어를 그냥 독어식으로 읽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독일인들은 덴마크어를 빠른 속도로 배우지만 자기네식 발음을 못버리는 경우가 많아 발음이 나쁜 나라 사람들로 낙인이 찍혀있다는 것이다.

덴마크어의 모음과 자음은 우리와 상이한 게 워낙 많아 우리네 한글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이를 독일어식 발음으로 치환해서 한국어로 표현할 경우는 원래 발음과 너무 달라진다. 덴마크에 여행객도 늘고 유학생 및 워킹홀리데이 방문자도 늘어나면서 블로그에 덴마크 지명과 브랜드명 등이 많이 소개되는데, 완전 잘못된 발음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아쉬운 점이 많다. 짧은 기간 지내는 사람들이라 덴마크어를 배우지 않고 그렇다고 현지인에게 해당 발음을 듣는게 아니라 여기서 비슷한 목적으로 온 사람들을 통해 구전에 구전으로 발음과 정보가 공유되기에 앞으로 오는 많은 사람들도 잘못된 정보를 안고 전파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Nørreport (뇌어폿 O – 뇌레포트 X), Nørrebro (뇌어브로 O – 뇌레브로 X), Torvehallerne (토(우)어핼러네 O – 토브할렌 X), Amelienborg (아멜리엔보어 O – 아멜리엔보그 X), Kongens Nytorv (콩엔스 뉘토우 O – 콩겐스 뉘토브 X), Carlsberg (칼스베어 O – 칼스베르 X), Tuborg (투보어 O – 투보그, 투보르 X), Helsingør (헬싱외어 O – 헬싱괴어 X), Skagen (스케인  O – 스카겐 X) 등이 있다. 네이버 블로그 이웃님의 추천으로 누락된 것과 하나 더 추가하면 Amager (아마 O – 아마게르, 아마거 X), Strøget (스트로이엘, 스트로이엣 O  – 스트뢰엘, 스트뢰엣, 스트뢰이에트 X) 등이 있다.

덴마크의 R은 한글의 첫자음 자리에 해당하는 발음이 될 때는 불어 R에 가까우나 더 목구멍에 가까운 데에서 나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받침자음 자리에 해당하는 발음이 될때는 ‘어’의 발음이 난다. 따라서 -borg, -berg는 보어, 베어 식으로 발음이 나고, -bro에서는 브로 식으로 발음이 난다.

V는 첫자음 자리에 오는 경우가 아니면 ‘우’의 발음으로 바뀐다.  Vogn은 웨건의 뜻을 가진 단어인데, 이는 보운으로 발음이 나지만, 코펜하겐의 덴마크어 원어인 København은 쾨벤하븐이 아니라 쾨벤하운으로 발음한다. Nytorv의 v도 우로 발음한다.

G도 첫자음으로 올 땐 g의 발음이 나지만 그 외의 자리에 올 경우 다른 모음의 발음을 변형시킨다거나 다른 자음을 변형시키는 역할을 하지 독립적으로 g의 발음을 내지 않는다. 따라서 Kongens는 콩겐스가 아니라 콩엔스로 발음이 난다.  Skagen도 스카겐이 아니라 스케인인 것, Helsingør가 헬싱괴어가 아니라 헬싱외어인 것, -borg, -berg에서 마지막 g가 발음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유럽 사람들이나 동유럽 사람들, 중동 사람들이 특히 이 g발음을 못버려 수업시간에 자주 지적되곤 한다. 내 관찰이 아니라 수업에서 해당 지역 사람들의 발음 특성에서 주로 거론되는 특징인데,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는 발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그냥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알고는 대부분 쉽게 고치는 것 같으니 말이다.

-ager로 끝나는 단어는 원래는 ‘-에이어’ 식으로 말음되다가 이제는 ‘-아’ 식으로 발음된다. Amager, tager 등 모두 아마, 타로 발음하면 된다.

Øj, øg는 많은 경우 ‘-오이’로 발음된다. 따라서 Strøget이 스트로이엘, 스트로이엣 식으로 발음되는데, -et는 원래는 엣으로 발음되다가 현대에 와서는 -ed식으로 발음되면서 엘로 많이 발음된다. 한국 엘과는 전혀 다른, 처음 시도하면 왠지 구토를 유발할 거 같은 발음인데, 얼핏 들으면 영어식 엘로 발음한 것처럼 들린다. 미국이나 영국 원어민 모두 공감하는 바이다. 24시까지 여는 Døgn netto도 같은 원리로 도인 네토라고 발음하면 된다.

‘발음이 뭐 중요해, 말만 통하면 되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덴마크에서는 이말이 안통한다. 정말 안통한다. 정확한 발음을 워낙에 강조하는 나라이고 거기에서 어긋나면 못알아듣는게 일반적이다. 이로 인해 처음 덴마크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자기 딴에는 엄청 비슷하게 발음한다고 말을 해도 상대가 못알아 들어 좌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좌절을 계속 극복하고 꾸준히 발음을 연습해야 대화의 문이 트이고, 문이 트여야 연습도 자꾸해서 늘게 된다.

위에 쓴 예시들은 한국인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푸느라 현지어 발음을 우리 한글로 풀어낸 것이기에 실제 발음을 들으면 또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발음을 한국어식, 다른 나라 사람일 경우 자기네 나라 발음으로 대입해서 공부하면 평생 외국인의 액센트를 달고 살 수밖에 없기에 절대 이렇게 공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덴마크에 대해서 쓴 많은 블로그 글에 완전 off한 발음들이 구전에 구전을 거듭하여 먼 한국까지 전파되는 게 안타까워 오지랖이 넓게도 이 글을 쓴다.

 

덴마크 여행단상

  • 덴마크가 오랫동안 잘 살아온 선진국이라는 것을 느낀 것은 이번 여행을 통해 전국 구석구석 잘 닦인 포장도로를 보면서다.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은 잘 관리가 되어도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곳은 자원을 충분히 투입하기 어렵기에 속속들이 관리하기 어려운데, 개인의 집이 낡고 낙후된 지역은 있을지언정 그를 연결하는 인프라가 낙후된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 시골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교회는 정부 종교부에서 관리를 하는데, 교회와 그 묘지, 인근 도로며 주차장까지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던지.
  • 율란을 여행하며 덴마크가 풍력의 나라임을 명성 뿐 아니라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드넓은 평원과 농지엔 어김없이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었고 바람의 땅 답게 거센 바람이 그들을 쉬지 않고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 율란사람들이 무뚝뚝할 것이란 편견과 달리 시골인심이 더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나라나 비슷하구나.
  • 옌스가 18살이 될때까지 자랐던 집에 처음으로 가봤다. 구글 스트리트뷰로만 봤던 곳이었는데. 다음에 한국에 가면 내가 자라면서 살았던 동네들을 가보고 싶단다.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더 알고 싶다고.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한자리에 살고 계신 외할머니댁을 방문했을 때, 내 삶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고. 옌스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공터, 10학년까지 다녔던 학교, 시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치과, 옌스와 여동생이 크면서 방과 독립된 출입구를 따로 주기 위해 증축했던 부분의 흔적을 보는 일은 마치 과거를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난 어렸을 때 살 던 곳을 가면 상전벽해라는 표현이 딱 맞다고 느낄만큼 너무 많이 변해서 추억을 더듬기 어려운데, 그래도 다음엔 그 흔적들을 찾아 보여주고 싶다.
  • 덴마크 사람들은 속도를 꽤나 내는 편이다. 정속으로 맞추고 크루즈로 주행하려면 마지막 차선에서 조용히 달려야 한다. 대부분은 시속 10~20킬로미터 정도 초과한 속도로 달린다. 독일인에 비하면 덴마크인은 규제에 적응하는 방식이 평균적으로는 유연한 것 같다.
  • 에벨토프트에 가서는 유명한 정치인을 봤다. Radikal Venstre라고 중요 보수당 중 하나인 정당의 당수다. KBS 다큐에서 자기 애를 사무실에 데리고 온 모습이 잠시 비춰진 적이 있는데, 그 딸과 함께 1800년대 전함을 보러 왔더라. 매우 유명한 정치인임에도 아무도 아는 척 하지 않는게 역시나 인상깊었다. 매번 유명한 사람 보면 아는 척하는 사람은 나고, 옌스는 티내지 말라고 한다. 사생활은 존중해줘야 한다고.
  • 콜드하와이라고도 불리고 파도가 서핑하기에 좋아 사람들이 몰린다는 서해안가 Klitmøller라는 곳에 다녀왔다. 바람이 불고 날도 흐리고 비가 와 추웠는데, 샵들이 문을 닫는 시간 막판까지 서핑과 스탠딩 패들링 보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영어로 대화하고, 액센트가 여기 것이 아닌 점으로 보아 미루어 짐작하길 덴마크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겨울에도 서핑을 즐기는 지역이라 하니 지금 즐기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이상할 건 아니겠지만, 역시 내 눈엔 놀랍게 보였다.
  • 산업화된 어업이 발달된 어촌을 방문했는데, 정말 생선 냄새가 진하더라. 어부들은 그 냄새를 돈냄새라고 한다던데, 돈냄새 한번 진하게 맡고 왔다. 바다도 비린듯한 바다 특유의 짠내가 나던데, 역시 대양에 접한 바다에 가야 이런 냄새가 나는구나 싶었다. 우리네 삼면의 바다에서 나는 그 짠내가 코펜하겐에선 나지 않아 바다가 바다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대서양을 접하는 서해안은 우리네 바다와 닮아있었다.
  • 세계 2차대전 기간 중 덴마크는 독일에 점령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금방 항복을 했기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내 나라의 주권을 잃은 슬픔이야 어느나라고 다를 바 있겠나. 연합군이 덴마크 연안을 통해 침공을 해올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독일군은 서해안가에 무수히 많은 벙커를 지었다. 이는 서해안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는데, 콩크리트가 부식되며 무너지고 그 안에 날카로운 철근이 드러나는 등 애들에게 위해요소가 되고 있다고 한다. 경관을 해치는 것은 당연하고. 이를 철거하는 비용을 독일이 대야 한다는 등 논란이 계속 있다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바뀌려나? 전쟁의 기억을 위해 놔두는 것도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구조물을 해체한다고 기억도 해체되는 것이 아니며 아름다운 경관을 해하는 구조물은 없애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 한국음식이든 다른 아시아음식이든 빵이 아닌 메뉴를 오래 못먹으니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원래 빵만 먹고도 일주일 버티는 것은 일도 아니었는데, 입덧 덕에 버터나 유제품을 많이 못먹는 관계로 힘들었다. 마트에 뭐 사러 들어가면 나는 빵집 버터냄새로 인해 몇차례나 구토감을 느꼈다. 중간에 태국 식당을 하나 발견해서 볶음밥을 먹고나니 얼마나 살 것 같던지.
  • 다니다보면 건물들 관리상태에서 못사는 지역과 잘사는 지역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Udkantsdanmark (울캔츠덴마크) 는 조세수입보다 지출이 큰, 사실상 경제가 죽어있는, 잘 못사는 지역을 일컫는 단어다. 갈수록 경제가 큰 도시들로 집중되다보니 이런 지역들도 늘어나는데, 일할 의욕도 없고 나라가 주는 돈보다 더 벌 능력도 없는 사람들 중에 이런 지역으로 이주오는 사람들이 많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나라에서 주는 돈은 똑같은데 집세가 낮고, 사회복지를 수령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나라에서 강제하는데, 일자리가 없어 일을 하라고 등떠밀릴 일이 없는 지역이기에 이사를 온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지방세수가 부족해 해당 지방정부는 지역사업에 투자할 예산이 부족해지고 사람들도 집 관리를 잘 안하니 도시가 우중충해지고 좋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으려는 지역으로 변해가게 되어 악순환이라고. 조금만 가꿨으면 좋았을 도시들이 우중충하게 바뀌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 마지막 여정을 위해 선택한 (호텔이 다 예약이 차서) Bed & breakfast에선 기이한 집주인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만 65세가 되어 은퇴를 한 그는 피아니스트 와이프와 이혼을 하며 2백만 크로나를 주고 데려온 전처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깨에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유수의 콩쿠르도 나가며 바이올린을 연주했다는데, 그의 바이올린 선율에서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좀 뜬금없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음에도 그 집을 예약한 이유는 그 집 사진에 있는 그랜드피아노 때문이었는데,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었다.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유럽내 상업항공사의 파일럿을 했던 그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얼핏 들으면 허풍처럼 들릴 수 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던 그였지만, 이야기를 통해 느껴지는 그의 해박한 지식들과 마침 놀러온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야기가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에 또 그 곳에 갈 일이 있다면 그의 집으로 또 방문을 할 것 같다. 남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그랬을까? 쉽게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품어주는 느낌에 마치 남유럽사람을 만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 4박 5일의 짧은 일정동안 즐겁게 여행하다 돌아왔다. 중간중간 입덧 때문에 오후스는 거의 보지 못하고 라틴쿼터만 돌아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는데, 그래도 다른 지역들도 돌아보고, 옌스 친구와 내 친구, 옌스네 친척도 만나면서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란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한-덴마크 커플중 여자분인데, 한-덴마크 커플이기에 공유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던 점, 참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들이란 점에서 이번 여행을 또 다른면에서 알차게 해준 시간이었다.
  • 집으로 오는 길은 항상 길다. 600킬로가 넘는 거리를 주로 고속도로로 달리다보니 지루하기도 하고 해서 열심히 달려왔다. 옌스가 나보고 속도악마 (speed devil) 란다. 시작은 나도 여유롭게 달리고 싶었는데,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속도에 대한 감각도 흐려지고, 인내심도 서서히 바닥을 보이며 막 달렸다. 집에 오니 시체가 되어 침대에 널부러져있었는데, 역시 집이 최고인 것 같다. 물론 이런 여행을 해야 집이 최고라는 것을 느끼게 되곤 하지만.
  • 오후스에서 만난 친구와도 이야기한 바이지만, 이 나라가 진정한 의미에서 내 집이라고 느껴지려면 얼마나 살아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막상 한국에 돌아가면 또 이질적인 감정을 느끼게도 되긴 하지만, 그 곳에선 삶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고, 여기선 그렇지 않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우리가 커오면서 너무나 당연히 아는 사실과 관습이 사실은 얼마나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학습을 해온, 어렵게 체득해온 것인지를 인지하기엔 해외에서 살아보기 전까진 모른다. 아마 앞으로 30년을 살아도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있을 거다. 그래도 그땐 내 집이라고 정말 느껴질까?

덴마크에서 먹고 사는게 힘든 이유

덴마크에선 한국인으로서 간혹 먹고 사는게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1.

해산물이 귀하다. 흔히 구할 수 있는 생선은 대구와 가자미과의 납작한 흰살 생선의 필레. 새우 쭈꾸미같은 작은 오징어류와 관자 등의 냉동 해산물을 팔긴 하지만 조개류라고는 주로 냉동 홍합이 다다. 해산물 전문점은 좀 사는 동네에 가거나 토우어헬러너(Torvehallerne)라고 gourmet 식재료 파는 광장시장에 가야나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식자재는 얼마나 비싼지. 한국에선 그냥 아무 마트나 가도 사는 건데. ㅠㅠ

너무나 봉골레 스파게티가 먹고싶었다. 여기저기 파스타집 메뉴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샅샅이 뒤져 봉골레 스파게티를 찾아봐도 좀처럼 찾기가 어려워서 결국 만들어 먹기로 했다. 조개의 옵션은 큰 모시조개나 작은 바지락. 큰 모시조개를 선택하기로 했다. 1킬로그램에 180크로나! 한 35000원 하는 금액이다. 와인 작은병 하나로 50크로나, 플랫 파슬리가 집에 다 떨어져서 화분하나 25크로나 파스타면 20크로나 토마토 20크로나 대충 300크로나가 나왔다. 흐미. 5만원이 넘네. 물론 한번에 이 조개를 다 소화하고 싶진 않았지만 내일부터 4박 5일의 여정으로 휴가를 가기에 냉장고에 이를 둘 수는 없었다. 옌스는 조개 등 해산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고.

봉골레 스파게티는 재료가 좋고 비율만 잘 맞춰주면 실패하기가 어려운 스파게티라 맛은 있었지만, 집에서 해먹는 것 조차도 이렇게 비싸지면 자주 해먹기 힘들다. 여태껏 조개를 한번도 안사봐서 몰랐는데, 이렇게 비싸니 식당에서 안 팔수밖에. 파스타에 이렇게 비싸면 누가 파스타를 사먹나. – -;;

덴마크는 잡히는 해산물의 대부분을 해외로 수출한단다. 자국내에서 먹히는 해산물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2.

콩나물이 아주 귀하다. 한번 콩나물을 본 적이 있었다. 딱 한번. 그나마 얼마나 콩나물대가 약하던지. 친한 후배가 사다준 콩나물 기계로 키워보았으나, 이상하게 잘 안크더라. 아마 기후가 안맞아서 그러는 모양이다. 숙주랑 콩나물은 아주 달라서 대체가 되지 않는다. 한국에선 그렇게 싼 콩나물인데, 이 어찌나 귀하신 몸이더냐.

3.

낙지가 없다. 문어는 있고 오징어는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낙지는 없다. 왜 낙지는 없을까. 미더덕도 없다. 내 사랑 미더덕.

 

 

타국에서 새로운 친구 사귀기

한국에 살았으면 지금처럼 새로운 친구를 열심히 만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미 오랜 시간 쌓아온 친구들만으로 새로운 사람을 채워넣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에는, 그들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만 생각하면 동의하진 않는다. 그러나 거리와 시간이 멀어지는 만큼 공유하는 순간이 줄어들고 감정을 공유할 기회가 줄어들기에 내 상활속에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새로운 생활의 터전이 생긴만큼 사람도 새로 만들어가야 한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주재원이라는 위치에 나 스스로 얽매여있었다. 업무를 하는 과정에 내 상식과 업무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교민 한명과 부딪힐 일이 생기며, 주재원으로 있는 동안은 교민과는 거리를 두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도에 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여기도 별반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직장을 관두고 일반 교민이 되면서 그렇게 따로 거리를 둘 이유도 없어졌기에 입장도 바뀌었다. 대학원과 어학원을 통해 비한국인 친구들은 충분히 생겼는데 한국인 친구는 없었기에 교민 친구들도 생겼으면 했다.

마침 회사를 관두기 전 알게 된 한-덴 커플로 이주를 온 한명과 우연찮게 교류를 하며 친구가 되었고, 그게 연이 되어 친구 한명이 두명이 되었다. 또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이웃이 덴마크로 이주를 오며 또 친구가 되었고, 그렇게 알게 된 오후스의 지인과 어찌어찌해 또 얼굴을 보고 만나게 되었고 휴가 때는 내가 가서 만나기로 했다. 페북을 통해 알게 된 사람과도 친해지게 되었고, 대학원에 1년 차이로 인접 프로그램에서 공부하는 사람과도 알고 지내게 되었다.

한국을 떠야겠다고 결심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결혼 상대자가 여기 사람이라서 온 사람들과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기에 빨리 친해지고 공감할 일이 늘어난다. 또 꼭 그렇게 온 사람이 아니라도 이래저래 공감대가 형성되고 나면 쉽게 친해지게 되더라. 나이들면 친구 사귀기 어렵다더니,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아마 그전에 그렇게 느꼈던 것은 내가 굳이 친구를 더 사귈 필요도 없고 여유도 없어서 내 마음을 충분히 열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사람을 헐뜯거나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좋다. 만나서 가십을 나누는 것만큼 소모적이고 피곤한 일도 없는데, 그런 사람들과는 알게 되었다가도 거리를 두게 되서 멀어지니 지금 만나는 사람들은 그런게 없어서 좋다. 각자 자기가 관심있는게 뚜렷하고 자기 삶 잘 사는 사람들이라 만남이 편안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게 나도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자극이 되서 그렇다. 각자 자기만의 강점이 있고 그게 환히 빛나니, 굳이 내가 그걸 배우거나 가질 수는 없어도 다른 나의 장점을 더 갈고 닦고싶어진다고 해야할까?

작은 교민사회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들 알고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건 참 행운이다. 여름 휴가엔 좀 더 여유있게 교류하고 지낼 수 있겠지. 🙂

시험도 끝나고 여름방학이다!

시험이 다 끝났다. 대학원 시작한 이래로 뭔가를 꼭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첫 방학이다. 덴마크는 학교마다, 학부마다 학기 시스템이 차이를 보인다. KU의 SCIENCE Faculty는 1년을 4개의 블록으로 나누는 블록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데, 각 블록마다 2과목씩 듣고 시험을 본 후 한주의 방학을 갖는다. 혹시 재시험이 필요한 학생은 (최대 2번의 재시험 기회가 있다. Pass를 못했을 경우에 한해) 이 주간에 시험을 볼 수 있고, 다음 블록 수업은 미리 reading list를 제공하기에 학생들은 다음 블록 수업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방학이 방학이 아니다.

내 기우와는 달리 모두 12점을 받아, 이번 학기는 첫 시험을 7로 시작해 나머지는 모두 12로 마무리하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냈다. 평생에 해본 적 없는 과탑을! 옌스 왈 내가 시험을 보는 스킬이 탁월한 것 같다고, 자기는 이런 성적표 못봤다고 한다. (자기가 봤을 때 공부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는 것 같지 않았다는 뜻인 듯. 할만큼 했는데…) 솔직히 KOTRA에서 오랜기간 근무한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written exam이야 이런 경력이 개입할 여지가 부족하지만 oral exam은 그간 무수히 많았던 발표, 고객과의 미팅 등에서 쌓은 경험이 큰 도움을 준다. 특히 해외무역관 근무할 때, 갓 부임한 무역관에서도 엄청 전문가인 것처럼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도록 대화하는 훈련을 해온 것이 oral exam을 볼 때 설득력있게 전달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 것도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딱히 성적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잘하는 것만 잘하면 된다는 주의였는데) 여기와서 이러는 이유는 사실은 남의 땅에 살면서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깔려있다. 단지 이민왔다는 이유로, 현지어에 있어서 원어민 수준이 아니라는 이유로 2등시민같은 처우를 받고 싶지 않기에 그렇다. 누군가가 나를 무시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네들 마음안에 혹여나 나를 얕보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피해의식이 있는 모양이다. 교육을 통해 습득한 간접적 피해의식이겠지.

아무튼 절반을 무사히 마무리했고, 좋은 학우들과 이런 다시 올 일 없는 좋은 1년을 보내서 행복했다. 오늘 저녁엔 그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절반의 여정을 자축하기로 했는데 기대가 된다.

입덧이 다행이 많이 완화되었다. 이러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는데, 2주 혹독하게 하더니 좀 좋아졌다. 우유, 요구르트, 마늘 이런 것 빼고 속을 좀 이래저래 틈틈히 채워주면 심각한 미식거림은 찾아오지 않고 있다. 덕분에 오늘 아침 옌스와 커피(난 녹차) 데이트를 할 수 있었고,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여름방학을 조금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시험과 입덧 후 폭탄 맞은 것 같은 집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고. 학기 시작하고 나면 대청소는 하기가 어려운 관계로 버릴 건 미리미리 버리고 정리해야 나중에 애가 태어나도 관련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방학엔 덴마크어도 다시 공부하고, summer course 시작전에 계량경제학도 다시 좀 보고, 책도 읽고, 집도 정리하고, 덴마크 땅도 좀 더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려한다. 오늘 아침 일어나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이제 한동안 시험도 없고 reading list도 없다!라고 신나서 소리를 지르니, 옌스왈 인생이 시험이야, 라면서 찬물을 끼얹는다. 후후. 당신은 참 엄하지만 공정해 (Du er hård, men retfærdig!, 독재자를 비꼬는 표현)라고 이야기해주니 참 좋아한다. 항상 현실에 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해주는 옌스. 우리 둘만의 마지막 자유로운 여름휴가 즐겁게 보내자!!!!

첫해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입덧으로 몸이 안좋다는 것도 분명 사실이지만 사실 지금은 막판 스퍼트를 낼 힘이 딸린다. 마지막 시험 과목은 literature list가 엄청 긴데, 수업에서 literature의 상당수는 몇개의 용어를 차용한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시험이 개인과제 30%, 그룹 프로젝트의 개인 발표 및 질의응답 30%, curriculum literature와 관련된 발표 및 질의응답 40%로 개인과제는 이미 낸 것이니 그렇다치고, 나머지 60%의 절반 이상이 이 literature관련 시험이다. 문제가 주어지고 나면 준비한 내용을 1분동안 훑어보는 형태의 partial open book 시험인데, 과목 평가때도 이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불평을 한 것처럼 나도 많은 불만을 갖고 있다.

동기가 없으면 정말 몸이 강하게 저항을 한다. 물론 이걸 읽고 배우면 도움은 되겠지만, 뭐랄까, 마음에 평가 방식이 좀 불합리하다라는 생각이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제대로 된 방학 없이 block사이 일주일씩의 휴식만으로 지난 1년을 끌고 왔으니 나도 지칠만큼 지쳤다.

늦깎이 공부를 하는 만큼 더 좋은 성과를 내야된다는 압박과 함께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뭔가 쳐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오기, 나이가 들어서 늘어난 이해력 등이 결합되서 그런지 다행히 지금까지는 첫 과목 빼고는 모두 12점을 받았다. 내 소논문 지도교수 왈, 내가 그간 몇년 가르쳐 본 중 가장 과정에 engage된 학생이라고, 모르는 거 절대 포기하지 않고 여러번 물어보고 이해해서 독립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소논문을 통해서 보인 만큼 이대로만 하면 석사논문까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아마 회사생활을 하면서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얼굴 철판깔고 물어보고 배운 것이 도움이 되는 모양이라.

이제 마지막 시험 하나 남은건데, 잘 볼 자신이 별로 없다. 그룹프로젝트에 너무 진을 뺀 모양이다. 그렇게 열심히 한 그룹프로젝트는 30% 밖에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 좀 억울하기도 하고…  결국 잘 못볼까봐 성적 잘 안나올까봐 두려워서 하는 핑계같기도 하고… 오늘 친구가 공유한 좋은 글귀에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은 두려움의 반대편에 서있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때, 내가 해야만 하는 것 또한 두려움의 반대편에 서있다는 생각이 들며 뜨끔했다. 이런 내 두려움을 들킨 것만 같아서.

모르겠다. 내일 하루 더 준비해서 금요일 아침 시험보고 끝나는건데,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잘하든 못하든 그걸로 내 석사 첫 일년이 끝나고 방학이다. 내 치졸한 두려움을 열어보이고 나면 좀 더 후련하게 집중할 수 있을까 블로그에 글을 쓰는건데, 제발 그리되기를 바라며 마무리한다.

임신하면 괜히 섭섭하다더니 이런건가?

입덧이 시작한지도 어느새 일주일 반 조금 더 지나간 것 같다. 그 사이에 2kg이 빠졌으니 입덧이 꽤나 심하긴 한 모양이다. 시험은 다가오는데 먹은게 별로 없고 그나마 먹고 토하니 앉아있을 기운이 별로 없어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침대나 소파에 누워 지내고 있다. 조금 걷고나면 속이 울렁거려서 운동이라고 할 법한 것을 하기에도 어렵고, 혈압도 60:100으로 낮아지니 기력도 떨어지고 아침 활동도 저하된다.

화요일과 금요일에 시험이 하나씩 있는데, 주말 들어 옌스가 보는 주요 모습이 누워있는 것이다보니 걱정이 되었는지, 때로 내가 늘어져있는 모습을 볼 때 나를 좀 푸쉬해달라고 부탁했던 것 때문인지, ‘그래도 시험공부는 조금이라도 해야지. 핸드폰 볼 힘이 있으면 뭐라도 읽을 수 있잖아.’라며 서너번 이야기를 했다. ‘나도 안다고…’라고 답을 하다가 한번 울컥할 일이 있었다. 평소 주말에 함께 하던 커피데이트를 내가 못하게 되니 – 커피는 생각만 해도 속이 쓰려 못마시겠다. – 혼자라도 가겠다고 하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그리고 힘든 거 아는데 공부는 조금이라도 해야한다고 하는 거다. 먹고 싶은게 생각나지도 않고 배는 그렇다고 안고픈 것도 아니고, 뭐라도 먹으라는 말은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데다가 공부 해야되는 거 아는데 알고도 못하는 내 마음은 아는지 하는 섭섭한 마음에 ‘이런 때 도움 청할 엄마도 없고 내가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음식은 이곳에서 쉬이 먹을 수도 없는 음식이라 제대로 먹을 수도 없는데, 내가 이미 공부해야하는 거 알고 있다고 했는데도 자꾸 말하면 너무 섭섭해’라고 쏘아붙였다. 그리고는 눈물이 찔끔 나오는데, 서럽기도 하고, 이런 걸로 눈물 흘리는 내가 좀 부끄럽기도 하고.

힘든거 모르는 거 아니라며, ‘예전에 네가 그런 상황엔 꼭 좀 푸쉬를 해달라고 하기도 했고, 시험인 거 뻔히 아는데 계속 누워있으니까 걱정되서 그랬어. 나도 네가 원하는대로 푹 쉬면 좋겠지. 시험만 끝나면 그렇게 할 수 있잖아. 조금이라도 앉아서 하고 다시 쉬더라도 그렇게 하라는 거였어. 서운하게 해서 미안해.’라고 말한다.

마늘을 먹을 수가 없어서 뭐든 한식은 참 만들어먹기 어려운데 사실 해물수제비가 먹고 싶었다. 칼칼하며 시원한. 거기에서 마늘만 뺀. 당연히 해물수제비를 제대로 해먹을 수는 없지만, 집에 멸치라도 있으니 그냥 멸치 감자 수제비라도 해먹어봐야겠다 싶어서 – 면이 손칼국수 면이 아니라 그런가, 칼국수는 이상하게 안 땡긴다. – 커피 마시러 가기전에 고추와 애호박이나 사달라고 해서 애써 끓였다. 마늘을 아주 안넣으니 도저히 맛이 하나도 안나서 아주 아주 조금 넣었는데, 그게 맛을 확 바꿔주더라. 반죽이 질어져서 별로 반죽도 안넣고 감자랑 애호박, 고추를 듬뿍 넣어 만들었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 해서 좀 먹었다. 먹고나서 그 조금의 마늘때문에 입에 남은 그 특유의 입맛때문에 남은 반나절을 고생했지만, 뭐라도 먹고나니 힘이 나서 앉을 수 있었다.

조금 울어서 그런가, 돌아오는 길에 크래커 등 내가 사다달라는 것을 정확히 찾아주기 위해 페이스타임까지 해가며 수박이니 뭐니 꼼꼼히 챙겨왔다. 아이고 착한 우리 남편. 그리고 애 낳으면 자기도 요리하고 이런 거 좀 더 배워야겠다고, 그래야 내가 요리할 수 없을 때거나 그런 타이밍에 애가 거르는 일 없이 요리할 수 있을거라면서. 이래저래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오히려 나보다 많이 생각하고 있구나 싶어서 훌륭하다 싶었다.

이렇게 또 한번의 다툼 아닌 다툼을 했다. 아마 임신하면 그렇게 다들 서럽다고 하던데, 이런 거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엄청 서러운 건 아니고, 평생 가져갈 기억도 아니지만 그래도 뭔지 약간 알 것 같다. 같이 원해서 생긴 아기인데 남편이 대리로 경험해줄 수 없는 힘든 일을 혼자 겪어야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 아닐런지.

궁금한게 하나 있다면 대부분은 입덧이 아침에 심하다던데, 난 점심 조금 전부터 저녁까지 입덧이 있는 거 같다. 아침엔 꽤나 쌩쌩한데. 지금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팀원들과 나누기로 했던 논문 요약본도 마무리하고 이렇게 블로그 글까지! 뭐지? 수박 사분의 일쪽과 크래커를 먹었음에도 배가 고프다. 속도 살짝씩 동하기 시작하고.

내 사랑 커피는 땡기지도 않으니 아쉬울 건 없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던 주말 커피 데이트는 그립다. ㅠㅠ

임신, 입덧, 덴마크 생활

요며칠 입덧이 심해서 하루에 1~200 그램씩 빠지는 것 같다. 최소한의 먹거리만을 먹고 버티고 있는데, 먹고 토하는 일이 잦아지니까 먹기도 살짝 겁나고 안먹자니 애한테도 좋지는 않을 거 같아서 최소한 먹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시험은 코앞으로 다가와있는데, 공부도 요며칠 하나도 안하고 놀고 있다. 다행인건 스트레스도 별로 받는게, ‘아, 임신해서 몸이 안좋아서 시험 못치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근거없는 생각 때문이랄까. 그나마 그간 성적을 잘 받아두어서 한두개 좀 못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도 없거니와 하나는 내가 쓴 페이퍼를 근거로 시험보는 것이라 이미 고생해서 낸 것에 대한 평가가 시험의 큰 몫을 좌우하기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다.

어느덧 임신 7주. 시어머니와 함께 임신 후 처음으로 병원을 다녀왔다. 멀리 Bornholm에 살고 계시지만 내일 새벽같이 시누이와 첫손녀와 함께 셋이서 떠날 2박 3일의 짧은 런던여행을 위해 Holte에 잠깐 와계셨다. 그 전에 병원 갈 때 혼자 가기 그러면 언제고 이야기해달라고 하셨는데, 비행기로 오셔야 하는 시어머니 일부러 오시라 하기 뭣해서 그냥 혼자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혹시 말씀은 드려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드렸는데 잘 한 일이었다. 마침 와계시기도 했고 기뻐하시며 같이 가주신다 하셨다.

시어머니와 함께 간 것은 잘한 일이다. 남편 CPR번호도 기억이 안났는데, 시어머니가 기억하고 계셨고 (그런게 필요할 줄이야), 남편 가족 병력 등에 대해서도 문진을 했는데 그 또한 시어머니가 답변해주실 수 있었다. 쌍둥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우리 가족에는 그런 이력이 전혀 없다 했더니, 시어머니가 자기네에는 이력이 있다 하신다.

앞으로의 병원 일정은 12~13주 중 다운증후군 검사 1차, 25, 32주에 있을 초음파 검사 및 기타 아이에 대한 상세 검진이 거의 다 인것 같다. 나머지는 나의 출산을 담당할 산파와 만나서 할 일들이 있고, 출산 교육 등이 있는 모양인데, 그건 산파가 나에게 연락을 준다고 하니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다. 아, 의사가 덴마크의 모든 병원 기록이 다 전산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임신과 관련된 것만큼은 문자 그대로 Paperwork이 아직도 살아있다면서 노란 봉투에 관련 내 임신 정보를 기록해서 넣어주었다. 앞으로 모든 진료시 항상 지참하라며. 이 아날로그식이라니. 모든 정보가 다 전산으로 날아오다가 갑자기 이런 노란봉투를 받아드니 월급봉투라도 받은 듯한 느낌이다.

다음 병원 일정에도 시어머니가 가주신다고 하니 이번엔 그냥 마음의 부담 없이 부탁하련다. 같이 가주시면 기쁘겠다고 말씀드리니 Bornholm에서 날아오신다고. 아. 이 감사함. 이 먼 덴마크에 내 부모와 떨어져살며 한켠으로나마 기댈 시댁이라는 구석이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시누이가 시어머니께 엽산 꼭 챙겨먹으라고 알려주라 했다는데, 시누이도 뭔가 참견하는 듯하게 보일까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나보다. 🙂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보라는데 사실 뭘 물어봐야할지 잘 모르겠고, 책이나 각국 정부 보건당국에서 제공하는 홈페이지도 워낙 자세하게 정보를 담고 있으니 아무래도 먼저 연락하게는 잘 안된다. 참 좋은 시누이인데도 괜히 폐끼칠까봐 어려운 건 한국인이라 그런걸까?

병원을 나와 같이 커피한잔 (나는 초코우유 한잔)을 함께 하고 장을 본 뒤 각자 방향으로 향했다. 옌스랑 대화해도 쓰는 어휘가 한정되어 있는데, 병원에서 의사를 보거나 시어머니와 대화를 한다거나 할 땐 평소엔 잘 안쓰던 어휘도 쓰게 되서 좋다. 요즘 학원도 쉬다보니 듣기는 되도 뭔가 말은 퇴화하는 느낌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역시 집중력의 문제인 것 같다. 꼭 써야된다는 생각이 없으니 요즘 다시 덴마크어 비중이 줄어 반반 정도 쓰는 거 같다. 복잡한 건 대충 영어로 이야기하고 일상 대화만 덴마크어로 하는? 집에서도 다시금 덴마크어 비중을 늘려봐야할 것 같다. 곧 방학도 하니 더욱…

뭔가 약간 퇴보하나 하는 불안이 드는 와중 하나 위안이 되는 건, 대학원 덴마크 친구가 자기는 지방 방언도 좀 심하면 못알아 듣는데 내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겠다면서 나에게 억양이 별로 없다고 해준 것이다. 옌스가 너 발음 좋다 이렇게 이야기해줘도 뭔가 그냥 자기 아내니까 격려해주려 하는 이야기로 들리고 덜 객관적으로 들렸는데,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나의 덴마크어 미래가 전도유망하다는 착각을 더 하게 해줬다고나 할까? 흠흠.

시간이 지나면서 덴마크에 친구도 서서히 늘고, 이제 내 피를 나누는 가족도 곧 생기고 할테니 뭔가 정말 조금씩 뿌리를 내리는 기분이다. 아직도 나에게 내 나라는 한국이지만 이곳도 이제 내 나라가 될 것이니까.

입덧에 제대로 식사 못하는 아내를 위해 생일 아침상으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차려주는 남편도 있고, 병원간다고 멀리서 와주시는 시어머니도 있고, 다 감사하다. 인생의 많은 일들은 그간 걸어온 일과 우연이 만나 얽히면서 생기는 놀라운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을 떠나 일을 해보고 싶다 했던 아주 초등학교 3학년짜리의 꿈은 내 직장 선택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를 통해 이곳에 와있었고, 그간 잡다하게 해왔던 취미와 한국에선 드세다고 들어왔던 나의 적극적 성격은 옌스가 나에게 관심을 갖게한 동력이 되었다. 많은 연애 실패담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를 깨닫게 해주었고, 결혼생활은 어때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난 그는 나와 결혼과 인생관이 놀랍도록 흡사하게 닮아있었으며, 또한 다른 부분이 있어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있다. 우린 스스로의 자유를 갈망하면서 같이 함께 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갖고 있기에 서로 잘 이해해줄 수 있고 지지해줄 수 있다. 애가 생겨서 인생의 많은 변화가 생기고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잘 헤쳐갈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다. 일부러 상처를 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성격덕분에 문제를 차분히 잘 해결해나갈 수 있으니까.

정말 애를 가져도 좋겠다고 확신이 선 순간 이렇게 아이가 찾아와준 점 정말 고맙다. 앞으로 남은 기간 별 문제없이 건강하게 커주고 태어나주기만을 바랄뿐이다.

소논문 제출 완료

지난 6주간 나를 힘들게했던 소논문을 드디어 제출했다. 담당교수의 최종승인을 받고 제출했으니 이제 오럴 디펜스만 잘 하면 된다. 이 소논문은 7.5 ECTS에 불과한 작은 수업의 결과물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30ECTS의 논문이 어떤식으로 흘러갈 지에 대한 감을 잡아주는 좋은 경험의 산물이다.

한국에서 했던 석사가 약간 가라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정식 논문을 쓰는 대신에 경제학 에세이를 쓰고 졸업시험을 쳐서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 경제학 에세이는 내용이나 형식면에서는 차이가 없는데, 내 담당교수가 주심이 되어 그 주심의 승인만 받으면 되고, 논문으로 DB에 등록되지 않는다는데서 차이가 난다. 대신 이 차이를 졸업시험이라는 것으로 대체하는데, 시험을 선호하는 나에겐 이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물론 나와 같은 길을 택하지 않고 정식으로 논문을 쓰고 디펜스를 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주제를 늦게 잡아서 풀타임 직업이 있는 상태로 논문을 쓰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이곳에선 그런 옵션도 없거니와 이제는 풀타임 학생이니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한국에서 논문을 쓸 때 담당교수와의 관계는 지금과 매우 많이 달랐는데, 훨씬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때도 수업을 들어서 알고 있는 교수님이긴 했지만, 이곳에서처럼 상시적인 토론과 질문 등을 통해 교수가 학생들 면면을 잘 알고 있는 일이 드물었다. 이번 내 소논문 담당교수는 나를 잘 알고 있는 교수였고, 좋게 평가해주고 있는 교수였기에 더욱 많은 지원을 받은 것 같다.

이해가 안되면 혼자 주구장창 붙들고 있는 나였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초반에 중요 이론에 대해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어서 교수의 조언과 내가 생각한 방향의 차이를 어떻게 메워야하는지 엄청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미팅일정을 잡지 않은채로 시간이 흘러가니, 어떻게 되고 있냐고 메일로 확인을 하시는 거였다. 혼자 끙끙 앓다가, “그때 설명해주셨는데 여전히 이해가 잘 가지 않아 진척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정말 중요한 파트인데 내가 알고있는 바와 교수님이 말씀해주시는 게 달라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있다.”고 말씀드렸다.

황당해하실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하겠다면서 잘 설명을 해주셨고, 그게 해결되고 나니 나머지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그 문제를 의논할 당시 프로젝트 관리가 잘 안된다고 상의하니, 그 스트레스 주는 역할 자기가 해주겠다면서 토픽마다 데드라인을 정해주시는 거였다. 아… 이런거 정말 좋아하는데. 누가 데드라인 정해주는 것…

정말 그 덕에 마지막까지 소논문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내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다음 논문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감을 잡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그룹 보고서 말고 개인 프로젝트로 해서 교수의 수퍼비전을 받아가며 20페이지짜리 영문 보고서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래저래 성취감이 큰 수업이었다. 시험만 잘 보면 될텐데… 아 긴장된다.

SU 받기

올 1월부로 소급해서 월 100만원 조금 넘는 돈을 덴마크 정부로부터 받게되었다. 고등교육을 받는 덴마크인 또는 일정 조건에 부합하는 EU시민권자, 덴마크인과 결혼을 통해 덴마크시민권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은 SU를 받을 수 있다.

교육보조금(uddannelsesstøtte)라고 불리는 이 월급같은 돈은 인적자원이 중요한 개방형 소형경제 국가로서 고등교육을 받는 인력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돈이다. 이것 때문에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뭐라도 다른 일을 하면 이 이상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돈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 뿐이고, 실제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파트타임 직장을 갖는게 일반적이다.

나야 옌스 살던 곳에 숟가락 얹고 사는 상황이고 모아둔 돈이 있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쩌면 그래서 이 추가적인 백만원의 돈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래저래 좀 꼬인 문제로 행정절차를 제 때 밟지 못해 초반 4개월은 돈을 날리나 했는데, 그런 것 없이 다 챙겨주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 이야기하자마자 옌스는 그나마 내가 이돈을 받으니 조금 덜 속이 쓰리긴 하지만,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지 아느냐면서 나중에 세금 내봐야 그 마음 이해할거라 한다.

그 마음 이해도 가고, 앞으로는 더 이해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 사회가 이렇게 전반적인 행복수준이 유지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안정된 치안이 이런 시스템과 신뢰 아래서 생긴 것이라는 걸 생각할 땐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말 별것 없는 한국 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자소득(정말 달에 몇백원 할 것 같은…)을 세무신고때 해야하는 번거로움은 불평하고 싶지만 말이다. 아마 여기서 추가로 월에 몇 크로나 내야 할 것 같다. 이거 불평하니까, 옌스가 여기서 받는 정부지원을 생각하면 그거 불평하면 안된다고 한다. 께겡…

내 나라에서도 못받던 국가보조금을 여기서 받다니. 참 오래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