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부터였나. 바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애를 낳고 지금의 순간 그 사이 어딘가에 생긴 변화였다. 극이나 책을 보며 극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게 불편해졌다. 조금이라도 갈등이 고조되는 조짐이 보이는 장면을 보게되면 책을 덮었고 영화를 껐다. 그 감정이 내 안에서 너무 크게 울렸다. 뱃속에 나비가 있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확 와닿는 그런 느낌. 감정이 무뎌져서가 아니라 감정이 너무 일렁이는게 불편해서 그런 감정에 일부러 노출되는 걸 피하게 되었다.
한강작가의 책을 보다가 앞에서 멈추고 덮어버렸던 건 바로 그래서였다. 책을 읽는데 내 속에 뭔가 스멀스멀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나를 뻘로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다시금 이런 감정들을 적극적으로 마주해보고자 한다. 불편한 순간을 피하지 않기로. 책도 영화도 불편함 때문에 고개를 돌려버리지 않기로. 그런 외면이 내 감정에 철갑을 두르고 하는 것 같아서. 다시금 감정을 풍성하게 일깨워보고싶다. 평상심과 안정적 감정의 파도는 좋지만 나이가 들어간다고 그런 감정의 파도가 주는 풍성함 – 때로는 불편할지라도 – 을 완전히 놔버리고 싶지 않다.
오 우리가 어제 잠깐 나눈 이야기가 이쪽으로 흐르는구나! 생각해보니 나는 그런 큰 감정에 젖어들어갔다 나오는 것에 점점 겁을 내는 것도 같아. 예전엔 안그랬는데… 뭔가 감정의 fluctuation을 부정적으로 여기게 된 것도 같고,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는데 드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이미 피곤한…? 근데 네 글을 읽어보니 그렇게 점점 드라이하게 늙어가는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나도 너처럼 용기를 좀 내봐야하나 생각도 든다.
ㅇㅇ 맞아. 너랑 그 이야기를 나누고 그 다음날 휴가를 썼잖아. 시내에 나가는 길에 핸드폰 말고 책을 봐야지 하고 책장을 보다가, 몇달전 읽다가 만 책이 눈에 띈 거지. 불편한감정에 읽다만 책이. 아마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없었으면 오히려 지나쳤을텐데, 평소의 핸드폰이나 뜨개질을 젖혀두고 책을 고른 뭔가 다른 선택때문에 그 불편한 감정을 직면해보고자 하는 선택도 하게된 거 같아.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읽어내려가 방금 그 책을 마무리지었어. 다소 기이한 한강작가의 수사방식이 챕터를 거듭날수록 시적으로 느껴지고… 특별한 책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