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타임 워킹맘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기 힘들어 엄마에게 죄책감을 갖게 한다는 풀타임 워킹맘의 위치. 덴마크의 엄마들은 대부분 워킹맘이고, 대부분은 풀타임으로 일을 하지만 다들 일상을 각자의 힘으로 굴린다. 우리도 시부모님이 멀리 사셔서 애가 아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일년정도였다. 아직 코로나 전이었었고, 재택 개념이 일반 회사원에겐 적용되지 않던 때라 도움이 너무 아쉬웠다. 그나마 그기간 중 애가 두돌가까이 되기 까지는 내가 대학원생이었어서 그냥 내가 석사 논문 쓰는 것을 못하는 정도로 넘길 수 있어서 유연하게 할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두돌 지나고 나니 애가 그렇게 자주 아프지 않기도 하고, 중앙정부기관은 아이가 아프면 첫 이틀은 보육 휴가를 쓸 수 있어서 대충 넘긴 것 같다. 코로나 이후, 어디가 아프면 일하지 못할 정도엔 쉬고 (이건 원래 그랬고), 일할 정도긴 하지만 남에게 옮을만한 증상이 있으면 집에서 일하는게 보편화 되기도 했고, 상황에 따라 재택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풀타임 워킹 부모들의 일상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덴마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게 현실적으로 풀타임워킹맘의 일상을 쉽게해주는 것들엔 뭐가 있을까? (물론 이는 모두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사무직이고, 내가 어느정도 업무시간을 조율하는데 재량이 있는 유연근무재도가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


  • 유연한 근무시간

주당 37시간의 근무시간인데, 나는 중앙정부 공무원이라 30분의 점심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중에서 9시부터 2시 반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근무를 해야 하고, 이 시간을 포함해 나머지 근로시간은 알아서 다른 시간에 배분할 수 있다. 매일 근무시간을 온라인 근로시간기록부에 기재하는데, 프로젝트별로 얼마나 시간을 할애했는지 시간을 기록하면 된다. 이 기록에 따라 초과근무한 시간을 모아서 다른 날 적게 근로할 수도 있고, 많이 모으면 휴가로 쓸 수도 있다. 이를 Flex timer라고 하는데 알아서 조절해서 쓰면 되니 어떤 날은 7시간 일하고 어떤 날은 8시간 일할 수 있다. 우리는 직장이 지방이전하면서 코펜하겐 시내에서 통근버스를 운행하는데, 여기서 일하는 시간도 근로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고,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는 경우, 한시간은 집에서 일해도 된다. 막상 통근버스가 있어도 주로 자차로 출퇴근을 하다보니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러니 애를 픽업하고 나서 집에서 일을 더 해도 되고, 애를 데리고 어디 과외활동을 하러 가야하는 경우, 애를 기다리면서 일을 할 수도 있다. 발레학원 데려다주러 가면 거기서 일하는 부모들이 많다.

  • 한국밥상보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저녁식사

평일엔 외식을 잘 안한다. 외식 자체가 비싸기도 하고, 배달은 배달비까지 (한국보다 배달비가 많이 비싸다.) 추가되니 다들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다. 하지만 한국처럼 반찬을 가지가지 해먹을 필요 없이 간단히 메인 요리 하나, 샐러드, 밥이나 감자, 빵 같은 것으로 탄수화물 쪽을 채워주면 되는거라 애 픽업해서 같이 장 봐와서 요리해 밥 먹기가 그렇게 번거롭지 않다.

  • 이른 등교시간

학교 수업자체는 8시에 시작하지만 돌봄교실이 7시정도에 연다. 요즘 예산부족으로 곧 7시 15분으로 조정될 것이긴 한데 학교에 따라서는 6시 반에 등교시킬 수도 있다. 딱히 뭔가 활동이 있는 건 아니고, 아이가 종이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릴 수도, 책을 읽을 수도, 보드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어른들이 있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말이다. 우리 집은 내가 저녁 요리 담당이라 (남편은 설겆이 담당) 회사에 통상 7시 15분 정도에 도착하게 출근을 해서, 남편이 자기 출근하는 길에 7시 반쯤 등교를 시킨다. 그러면 내가 회사에서 3시 좀 넘어서 퇴근하면 4시 좀 전에 픽업할 수 있다. 학교는 시마다 다른데, 우리 시는 – 같은 예산 부족 이슈로 5월부터 15분씩 단축되겠지만 – 월-목까지는 5시, 금요일엔 4시에 문을 닫는다. 수업이 한시까지 진행되고 방과후엔 오전과 달리 조금 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도자기나 뭔가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밖에 나가 놀수도 있고, 아이들도 많으니 할 수 있는게 늘어난다.

  • 아이들의 독립성

어려서 아이들이 뭔가를 스스로 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 아이의 의지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걸 허용할 수 있는 부모의 여유가 있느냐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나도 내가 해주는 게 더 쉽고 빠르기에 애에게 기회를 주고 실패를 경험하고 여러번 시도해서 성공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나에게 꽤나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 나면 뒤로 가면 갈수록 아이도 부모도 수월해진다. 이미 두발자전거를 세돌 반이 되기 전에 마스터했는데, 그러기 위해선 수많은 넘어짐이 필요했고, 낮은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느라 아빠의 허리가 고생을 많이 해야했다.

화장실에 가서 큰 볼일 보고 뒤처리를 함에 있어서도 – 위생을 위해 내가 개입하고 싶어도 – 언젠가 이를 아이에게 완전히 넘기지 않으면 독립을 시킬 수가 없다. 학교에서 0학년 (유치원반) 시작하기 1년전에 만 5세 정도에 화장실 완전히 혼자가는 훈련을 시키는데, 한 3개월정도 자기가 하고 우리가 검사하는 식으로 하니, 독립의 의미가 없어지는 거 같아서 결국 완전히 손에서 놔야 했다. 엉덩이가 가려워지는 경험을 해야 자기도 더 잘 닦게 되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는 것도 다 알아서 한다. 옷을 혼자 찾아 입는 것은 이미 어린이집 다니면서 만 3세경부터 했고, 4세 경부터는 머리도 혼자 빗고, 5세부터는 자기 아침식사는 자기가 차려 먹는다. 뜨거운 밥과 국 이런것을 먹는 게 아니니까 가능하겠지만, 아침에는 그런것을 먹을 여유도 없다. 5시 40분에 일어나서 나도 내 준비해서 애 도시락까지 싸주고 6시 40분엔 문을 나서야 하고, 남편은 6시 반에 일어나서 자기 준비하고 내려와 일곱시 아침 식사할 때쯤이면 나는 이미 나가고 없으니까 애가 알아서 혼자해야하는 부분이 꽤 크다. 자기가 알아서 하니 뭐가 마음이 드네 안드네 할 일이 없다.

  • 완벽하지 않은 집안일

집안 청소는 일주일에 한번만 한다. 화장실 청소도. 그냥 정리만 하고 살다가 주말에 모든 집안일을 한번에 처리한다. 주방이야 항상 치우고 닦는 것이니 일주일 사이클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외엔 다 그렇게 한다. 주택에 사는 것이라 소소하게 집안 관리할 일들도 있기에 그 이상 집안일을 자주 하고 살 수가 없다. 집안일의 퀄리티를 특별히 올리려거나 그런 거에 힘을 쏟기 어렵기 떄문에 꼭 해야 하는 일을 딱 필요한 수준으로만 하고 산다. 엄마가 워낙 깨끗하게 사셔서 나도 집을 지저분하게 두고 살 수는 없는 사람이지만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것처럼 항상 깔끔하게 하고 살 수도 없고, 아이 방은 주말 한번 정리할 때 빼고는 엉망진창으로 어지러워져도 내버려둔다.

  • 명확한 규칙과 루틴

아이는 하루에 게임을 하던 텔레비전을 보던간에 30분의 스크린타임을 갖는다. 내가 대충 시간을 보고 있긴 하지만 자신이 타이머를 맞추고 한다. 평일에 친구네 집에 가서 놀 경우, 저녁식사를 위해 6시 전에는 집에 돌아온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가방부터 풀어 도시락과 체육복 등 정리할 것부터 정리해야 놀 수 있다. 7시 15분엔 올라가서 목욕을 하고, 욕실을 건조시킨 후 (석회 때문에 스퀴지로 물기를 제거하고 타월로 깔끔히 물기를 닦아내야 한다.) 잠옷 갈아입고 양치질 한다. 우리가 양치질은 한번 더 시킨 후 – 덴마크에서는 충치방지와 모토릭 발달과정상 수준을 고려해 만 10세까지는 부모가 양치질에 개입하라고 권고한다. – 여덟시 쯤 침대에 들어가 남편이나 내가 책을 읽어준 후 여덟시 반이면 잠을 잔다. 이 부분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 지킨다. 일찍 자는 것 같지만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기 때문에 8시 반에는 잠을 자야한다. 이 부분 때문에 가족이 다 같이 저녁에 어디가서 늦게까지 있다가 오고 이런건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 애가 10대가 되어야 취침시간이 좀 늦어지고 저녁시간 활용이 좀 더 다채로워지는 거 같다.

  • 신체활동 중심의 과외활동

아이는 주중에 발레와 체조를 다니고, 주말엔 한글학교를 간다. 한글학교는 거의 놀러가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느는 걸 보면 뭔가 배우긴 한다. 학교에서는 숙제도 내주지 않고 나도 딱히 공부를 시키지 않기에 아이는 그냥 노는게 일과다. 그림그리고 책 읽는 시간 빼면 친구랑도 혼자서도 잘 논다.


월화목토는 내 저녁시간, 수금일은 남편의 저녁시간이다. 스포츠를 하거나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저녁시간을 갖지 않는 날에 아이를 재우는 담당을 한다. 저녁화목토는 내 저녁시간, 수금일은 남편의 저녁시간이다. 스포츠를 하거나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저녁시간을 갖지 않는 날에 아이를 재우는 담당을 한다. 각자 스포츠를 하더라도 돌아오는 시간이 그렇게 늦지 않으니 우리끼리 시간은 그 남은 시간에 보내면 된다. 애가 하나만이라 가능한 것일 수 있는데, 주변에서도 워킹맘이라 힘들어하고 그런건 의사같은 특수 직종 빼고는 흔히 듣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비유연한 근로시간때문에 한국에서 적용가능한 방식은 아니겠지만, 사회가 좀 더 유연하게 바뀌면 워킹맘도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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