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외국어 삶의 피곤한 순간

모국어도, 제1외국어도 아니라 성인이 되어 배운 제2외국어로 일해야 하는 외노자라면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언어에서 오는 피곤함이 있을 것이다. 덴마크어로 일한지 5년정도 되지만 지금도 갈 길이 멀다. 제2외국어로 일하는 외노자는 언제 어떻게 피곤함을 느끼는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모국어로는 그냥 들어도 귀에 쏙쏙 박혀서 거의 토씨까지 틀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제2외국어로 들으면 듣는 순간은 다 알아들었는 것 같은데 뭘 들었는지 기억이 안난다던가, 전체적인 맥락은 이해가 가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거나, 새로이 접하는 단어지만 그 상황에서는 알아들었는데, 그걸 다시 말하려면 새로운 단어가 기억이 안나서 돌아돌아 설명을 해야한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즉 일을 하는 맥락에서 컨텐츠와 관련된 뇌의 활동 외에 언어와 관련된 뇌의 활동이 동시에 활성화가 되어야 하는데서 오는 피곤함이 있다. 퍼포먼스도 컨텐츠만 갖고 뇌가 프로세싱을 해야할 때보다 떨어질 것이고. 어떤 자료를 읽고 숙지해야 하는 상황, 회의에서 듣고 토론해야 하는 상황 등에서 상황별로 다른 로드가 걸리고, 언어적 로드가 없는 사람에 비해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모국어로 대화를 할 때면 경험할 일이 없으나 제2외국어로 생활하면 경험할 만한 것으로 또하나는 어느 날은 듣기도 더 잘되고, 말도 잘 나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날은 재차 물어야 하거나 점심시간의 대화중 놓치는 게 많고 단어도 딱딱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다는 것이다. 모국어로 느낀 적이 없는 부분이다. 피로도가 원인일까? 뭔지 모르겠다. 그냥 내 덴마크어가 퇴보했나 싶은데, 또 막상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 모습이 느껴지기에 그건 아니고. 실력을 그래프로 그리자면 우상향으로 진보하는 트렌드를 보이지만 일정한 상승이 아니라 그 트렌드 안에서 세부적 그래프는 상승장과 하락장을 경험하는 모양이다.

여전히 토론은 상당한 집중을 요한다. 사실 우리말로도 토론은 집중을 요하는데, 제2외국어 두뇌까지 가동을 해야하니까. 그나마 발전된 것이라면 이제는 생각 안나는 단어는 영어로 생각이 난다는 데 있다. 따라서 혹여나 단어 하나에 딱 막혔을 때 얼어붙지 않게 된다. 과거엔 “영어로 말해도 돼”라는 말이 제일 부담스러웠던 것이, 하도 두뇌가 덴마크어를 돌리느라 풀가동이 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어 외에는, 또는 한국어 단어로도 기억이 안나고 그냥 백지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의 중구난방 정말 다양한 주제의 대화는 가장 난이도가 높다. 농기구, 건자재, 기계, 사냥, 펜싱, 승마, 집 레노베이션과 관련된 프로세스, 여행, 각 나라와 도시의 덴마크어식 지명, 요리, 문화, 역사, 철학, 각종 인물의 이름, 정치. 두서없이 늘어놓은 이상으로 정말 다양하고 예측불가하다. 그리고 테이블이 양쪽으로 나뉘어 대화가 두갈래로 진행되면… 이제 헛소리 안하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자체로 다행이다. 간혹은 주제가 바뀌고 바로 캐치업이 안되서 1분정도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파악을 해야할 때가 있다.

대화중 숙어 사용도 이해도를 떨어뜨리는데 기여한다. 어제 유난히 숙어가 많이 인용되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정말 추론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회의가 어땠냐는 물음에 완전 모자와 안경이었다는 것이었다. “모자와 안경?” 그게 뭔 뜻이야 하고 물어볼 수밖에. 엉망진창이었다는 뜻이었다.

간혹 딴소리를 하게 된다. 우리 뇌는 아주 놀랍게도 필터링을 잘한다. 대충 한두단어 안들린 것이 있다 했을 때, 그게 대세에 지장이 클 것인지 아닌지를 자체적으로 신속 판단해낸다. 그런데 이 자체신속판단이 항상 정확한가 하면 아니다. 따라서 간혹 그게 의미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단어인 경우 딴소리를 하게 된다는 것. 귀가 안좋은가 하면 한국말은 잘 들리는 거 보면 그것은 또 아니다. 귀를 탓하고 싶지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안되네.

여러모로 피곤하게 하는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길을 희미하게나 밝혀주는 희망의 빛줄기라 하면, 내가 회의에서 이야기를 할 때 긴장하지 않게 된 것, 타인의 얼굴 속에 스치는 “음?”하는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 피곤하지만 덴마크어 사용이 내게 열어준 새로운 기회와 이해의 폭을 생각하면 어찌 불평할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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