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내리는 민들레 홀씨

지금의 직장에 출근을 시작한지 거의 만 삼년이 되어간다. 이달 말이면 삼년. 잠깐 십개월 다른 길을 걸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지금 직장을 포함해 중앙정부에서 일한지 벌써 만 사년반이 넘었다.

2019년 초의 나는 지금의 모습과 참 많이 달랐다. 덴마크 중앙정부의 수평적인 듯 미묘하게 숨겨진 위계질서와 같은 문화와 맥락을 잘 읽기 힘들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직장내 행동양식은 이곳에선 당연하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행동양식은 나에게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랐고 타인의 입장에서 나를 찾았다. 나에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어학원을 졸업했고, 일상에서 영어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해서 법령을 읽고 문서와 보고서를 척척 쓸 수도 없었다. 정말 배울 게 많았고 위축되는 순간도 그래서 많았다.

다행히도 이제 나는 더이상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나를 찾지 않는다. 덴마크에서의 직장생활은 어학원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달까? 일을 하기는 하지만 언어도 실습하며 다니는 기분. 정말 이 직장이 나를 많이 키워줬구나 싶다. 월급 줘가며 말과 문화도 가르치고 일도 가르치고.

새로운 제도 도입이 되는 것과 관련해 그 근간이 되는 모델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관련 자료를 읽고 검토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이런건 술술 읽히는구나 싶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보고서를 써도 더이상 큰 난도질을 겪지 않기 시작했고, 어디서 뭔가 이야기를 하는게 긴장되지 않으며, 어떤 자리가 어떤 순서로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이 가고, 거기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눈치보지 않게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난 한국인이지만 이제는 덴마크 시민으로의 정체성도 커지고 있다. 덴마크인의 배우자이자 어머니로, 이 사회의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데에 참여하고 있다. 더이상 외국인으로서의 내가 어떤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더이상 객관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어렵게 덴마크 사회와 문화에 통합리 되었다. 아무래도 자격이 되는 타이밍에는 덴마크 국적을 취극한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진짜 내가 뿌리를 내리는 곳은 여기가 되었으니까.

정작 내 나라에서 뭔가 소속감을 못느껴 뿌리를 못내리고 바람에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가 덴마크에 와서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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