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발레

발레가 너무 좋다. 정말 정말 좋아서 매주 발레 클래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다음주부터는 주 2회로 늘어나니 더 기대된다. 게다가 한번은 로열 발레단에서 개설하는 클래스라서 새롭게 설렌다. 마음에 드는 옷도 새로이 추가장만하고. 아. 이 좋은 걸 이리 늦게 찾게되다니. 그래도 이렇게나마 찾은 것도 감사하지. 러너스하이처럼 발레하고 온 날은 잠에 들기 참 어렵다. 발레가 만나게 해주는 인연들도 소중하고…

너 덴마크인이 아니었어?

작년에 논문을 발표했던 컨퍼런스에 이번엔 그냥 참가자 자격으로 왔다. 나중에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정책 패키지가 통과되면 수자원관리 분야 경제분석을 내가 담당하게 될 관계로 관련분야 전문가와도 네트워킹도 해야하니까. 환경경제학 하는 사람 풀이 크지 않아서 여기 일년이 한번만 와도 아는 사람들과 근황 업데이트 하기는 좋겠더라. 지난번보다 이번에 또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애를 낳고 직장을 구하니 새로운 사람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 네트워킹 하는게 부담스럽지 않다.

올해는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애 낳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뀐 계기를 이야기하며 내 생물학적 시계가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이 서른 중반 들면서 들었던 게 하나의 요소인 것 같다고 했더니 내 앞에 있던 사람이 화듦짝 놀랐다. 자기랑 같은 개월수의 애를 키우는 엄마이니 또래일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기함을 하던 모습에 나도 엄청 웃었다.

같은 사람이 오늘 자기는 호텔에서 자야 한다 했다. 오후스에서 와서 출산이후 처음 외박하는 건데 긴장된다고. 나도 외박은 한 적 없는데 돌 전에 덴마크어 학원 다시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애가 제법 울어서 집에 돌아오기 전 한시간을 내리 울었던 때가 종종 있었다 했다. 그러자 그녀가 또 한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덴마크어 학원을 왜 다녀오고 묻는거다. 외국인이니 다녔던 거라 답하자, 너 덴마크인이 아니야? 라고 묻는게 아닌가!!!! 덴마크어 배운 지 오년만에 네이티브로 와인을 받다니 살짝 감동했다. 물론 길게 이야기하면 다 알게되는 순간이 오겠지만 직장 다니면서 덴마크어가 진짜 많이 늘었다. 역시 실전이 최고의 연습은 모양이다. ㅠㅠ 감동의 기억을 기록해야지…

발레, 내 몸을 알아가는 여정

올해 늦봄부터 발레를 다시 시작했다. 자동차를 산 덕에 저녁준비를 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도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클래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신 중기 이후 휴식을 하면서 그 사이 너무나 그리웠는데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부터 시작한 발레이니 발레와 연을 맺은지도 만으로 7년이 되었구나. 휴식을 취했어도 운동을 할 때도 플리에와 탕듀 등 기초 동작을 트레이닝해왔으니 그 끈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정도 뿐이었다. 


거기에다가 중간에 오른쪽 고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물리치료도 받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 골반이 왼쪽으로 약간 돌아간 탓이었다. 그건 발레와 상관은 없이 오래된 자세의 문제였는데 잘못된 체형에 장기간의 발레와 덴마크 와서 장거리를 뛰곤 한 자전거 페달밟기가 얹어서 문제가 불거진 거였다. 


발레를 시작한 지 오래되면서 내 몸의 목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읽기 시작했다. 급성이 아닌 만성 부상은 뭔가 잘못된 자세에 부담이 오랜시간 얹어지면서 발생하는 바, 만성 부상이 생기면 뭔가 고칠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고칠 수 있다는 것도. 


왼다리로 섰을 때 턴아웃이 잘 안되어 자세가 풀리는 것이 왼다리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드는 자세에서 고관절에 자꾸만 부담이 되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두 문제는 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같이 생기는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오른쪽 골반을 잡아주는 근육이 약해서 그게 밀리니 아무리 왼쪽의 턴아웃을 잡으려 해도 자꾸만 풀리는 거였다. 오른쪽 다리로 서는 건 안정적인데 왼쪽 다리로 서는 건 이 이유로 불안정하고 자꾸만 흔들리고 옆으로 무너지고, 간신히 서게 되도 종아리와 발에 부담을 많이 줘야나 가능했는데, 오른쪽 골반을 안정시키는 데 같이 신경을 쓰니 자연히 왼쪽을 축으로 하는 동작이 안정되는 거다.
남이 몸을 보고 교정해주는 것만으로는 맞는 자세를 찾을 수 없다. 각자 해부학적인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보기에 맞아보이는 자세를 찾아주면서도 맞는 동작은 이런 느낌이어야 한다며 움직일 때 느낌을 시각화해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즉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들어맞는 동작의 공식이 아니라 원칙적 공식에 각자 자기의 몸에 맞게 오차 보정을 해야하는 거다. 


여러 선생님을 거쳐오며 선생님들이 설명해준 내용을 조합해보고 내 몸의 소리를 들어가다보니 그간 고생해오던 고관절 부상은 없어졌다. 어깨도 그렇고. 의외로 내 몸의 오른쪽 소속 관절들이 왼쪽보다 불안정한 것 같다. 이런 불안정성을 교정하면 할 수록 몸의 근육부피 차이도 줄어든다. 짝짝이 가슴도 거의 같아졌고.


다른 운동과 달리 발레는 이런 몸의 소리를 세세하게 듣게 만들어준다. 각자 좋아하게 되는 운동과 그 이유가 다르듯이 모두에게 같지는 않겠지만 이런 이유로 나는 발레를 사랑하고 아마 지금 클래스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이가 많이 들어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도 계속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Bernstorff Slotshave

겐토프트 한 복판에는 베언스토프성과 부속 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택에 살 때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자주 가던 공원인데 거기 사는 동안에는 그 반쪽만 가봤었다. 간혹 자전거를 타고 주변 동네 중 안가봤던 길을 지나가곤 하는데, 삼 주 전인가 살면서 안다니던 길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그냥 이끌리는대로 가봤더니 그 반대쪽 끝편에 이런 잘 정리된 정원이 있는게 아닌가!

공원에는 사과나무, 배나무와 자두나무가 가득하고 거기에서 열리는 과일은 마음대로 따먹어도 된다. 문화부에서 관리하는 과거 왕실소유 성인데 이곳 나무는 코펜하겐 대학교 자연과학부에서 관리한다고 한다. 5월부터 10월 여름에는 주말마다 이 정원 가운데에 있는 루이스 여왕의 찻집 (Dronning Louises Tehus)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 찻집이라 커피는 없는데 간단한 요기거리와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다. 괜찮은 찻집이었다. 같이 먹은 샌드위치도 굳. 막 빼어나게 맛있다 이런건 아닌데, 여기 산책 온 김에 쉬면서 먹는 걸로는 훌륭하다.

여름에 겐토프트에서 산책할 곳을 찾는다면 여기도 강추!

30개월의 하나

30개월의 하나가 어떤지 기록이 되어 있어야나 나중에 돌아볼 수 있을 거 같다. 일로 가정생활로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지만 짬을 내서 기록해본다. 

하나가 한국말과 덴마크어가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건 대충 18개월  들어설 때 즈음부터였다. 사물이나 개념에 엄마와 아빠가 다른 표현방식을 쓴다는 것을 알고 그 표현방식에 한국어와 덴마크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덴마크어 어휘와 문장 구성이 한국어에 비해 월등히 낫지만 내가 한국어로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덴마크어로 표현한 단어에 대해서 그건 한국어로 뭐냐고 물었을 때 한국어 어휘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묻든 대부분 덴마크어로 답하고 간혹 한국어로만 아는 단어 (예를 들어 맵다와 같이 보육원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나 덴마크어 문장에 섞어쓰는 게 일상이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듣기를 통해 이해하는 수동적 학습만으로는 부족하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어휘를 선택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능동적 학습이 필요한데, 그걸 강요하자니 한국어를 싫어하게 될 것 같고 쉽지가 않다. 그나마 요즘 한국어로 이게 뭐냐고 묻는 게 늘어나서 한국어 어휘를 넓히는 기회가 생기는게 다행이다. 덴마크어로 의사소통하는 부분만 따지면 미묘한 뉘앙스도 살려가며 대화하고 있어서 이맘때쯤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거였구나 놀라곤 한다. 단어 열거로 의사소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말다운 말을 긴 문장으로 하는 건지.

16개월인 친구네 애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은 되나 아직 발화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하나는 언제 말을 시작했나 봤더니 만 15개월 되었을 때에는 아니오에 해당하는 엄마, 아빠, Hvad er det? (이게 뭐예요?), 하나 (자기 이름), 거북, nej (아니오), hej (안녕), bye 정도 말하고 기타 동물 소리흉내 (멍멍, 미야오, 구구, 꼬꼬 등)을 낼 수 있었다. 만 17개월이 되었을 때는 ja (예)를 사용하면서부터 조금 더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수월해졌다. 두달 사이 어휘가 빠르게 늘어서 할 수 있는 단어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보육원 애들 이름을 다 기억하고 부정확한 발음이나마 애들 이름을 이야기해서 내가 다른 애들 이름 기억하는 것도 쉬워졌다.  보육원에서 또래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였는데, 이중언어 하는 애들 중에 발화가 늦은 애도 있지만 하나처럼 오히려 더 잘 하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더랬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아이가 맞는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살려줄 지 고민을해봐야겠다.

하나가 만 두살이 되자마자 발레를 시켰다. 어른과 함께 가서 하는 발레인데 하나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도움이 될 활동 중 하나로 나도 즐길만할 걸 찾다보니 발레가 되었다. 처음엔 그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발레 수업 내내 노래에 맞춰 뛰려는 애를 잡아 함께하는 활동에 포함시키는 게벅찼다. 단 30분에 불과한 시간인데 말이다. 같이 움직여야 하는 규율에 애를 너무 맞추려다보면 애가 기분이 상해서 발레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애를 마음대로 풀어놓으면 방해가 되니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애를 통제하고 활동에 동참시키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진땀을흘린 날이 많았다. 거기다가 발레 수업이 끝나는 시간 때 즈음이 하나가 피곤해하는 타이밍이어서 안아달라는 하나를 안고 나 혼자 춤을 추느라 힘든 경우도 흔했다.

애가 발레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바는 없지만, 발레가는 시간을 고대하고, 보육원에서 다리를 들고 까치발로 다니고 빙글빙글 돌고, 선생님들이 뭐하냐고 물어보면 발레한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하나를 Balletpige (발레소녀)라고 부를 정도기에 좋아하는구나 하고 추정할 뿐이다. 한달 반 정도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이번 주말부터 클래스가 시작되었는데, 가는 길에부터 그전에 배운 걸 기억하고 이야기하길래 신기했다. 이제 꽤나 장기 기억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지금은 2-3세 사이 유아반에서 배우고 있는데, 두살 반이되서 그런지, 이번엔 시키는 것도 제법 따라하고 애 쫓아다니느라 고생하는 거없이 30분을 잘 보내고 왔다. 내년에 3세 반에 올라갈 때면 혼자 들여보내도 걱정이 없겠다 확신이 들었다.

페달 없는 자전거는 발을 땅에 대는 시간이 얼마 안되게끔 쌩쌩 뒤로 밀기 시작해서 우리가 뛰어다녀야만 쫓아다닐 수 있게 능숙해졌다. 정글짐에 기어 올라가서 높은 곳의 미끄럼틀을 타고 씽씽 내려오는 것도 능숙해졌고 아빠가 잡아주는 손에 크게 기대지 않은채로 외줄타기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반동을 활용해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까지도. 

어디 가서 크게 맞을 걱정은 하지 않는 게, 간간히 맞기는 하는 것 같지만 손바닥을 보이며 힘있게 팔을 뻗으면서 안된다고, 멈추라고 (Stop! Det må man ikke! Man må ikke slå!) 크게 외칠 줄 알아서 주변 어른의 시선을 쉽게 끌어낸다. 장난감이나 놀이터 시설 등에 대해서도 보육원에서 가르친 순서지키기, 적당히 놀고 양보하기 등을 이해하고 있어서 간혹 어른이 중재해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어졌다. 그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가르쳐서 그런지 빨리 배우더라. 하나가 다른 애를 때리는 경우는 상대가 먼저 때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본 적도 더 어렸을 때나 있었고, 보육원에 물어봐도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한다. 상대가 때린 경우에도 안된다 하고 크게 항의하는 거지 맞서 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어려서는 애가 워낙 활동적이고 힘이 좋아서 남들 때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이제는 그건 크게 걱정을 안하고 지낸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있던 일들을 이것저것 신나게 말해주는 편인데 궁금한 일 나중에 보육원가서 물어보면 되서 현황 파악이 쉽다. 친구 Feifei의 세살 생일에 케이크를 먹었는데, 자기는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었다며 시무룩하게 말하길래, 유당제한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그게 맞다고 이야기해주더라. 그리고 다른 애들이 자기들도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겠다고 해서 애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제 생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기 생일이 언젠지 자꾸 묻는다 최근 두어달사이에 애들 생일 잔치가 여럿 있었는데, 자기도 생일 주인공이 되고 싶었나보다. 하나 생일 땐 나도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텐데 쩝. 그날은 대충 휴가 내고 새벽부터 준비를 하던가 해야할 것 같다. 

요즘은 수줍음을 조금 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낯선 남자에게 수줍음을 탄다. 인도에서 낯선 남자가 마주지나가면 내 바지가랑이를 잡고 뒤에 숨는다던가, 유모차에서 얼굴을 돌린다던가 한다. 그리고 나에게 Jeg er lidt genert. (저 조금 수줍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자는 매우 좋아해서 낯선 할머니나 아줌마 할 것 없이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냥 Hej?!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외치며 인사한다. 이 시기에 흔히 있는 거라고 하더니 수줍음의 수자도 모를 것 같던 하나도 그러는구나 싶었다.

지난달에 친구가 와서 자고 가면서 자기도 남에 집에 가서 자고 싶기도 하고 그런가보다. 나는 걔네 집에서 언제 자냐고 간간히 묻는다. 우리 집에서 그 친구가 자던 날, 내가 책을 다 읽고 자라고 한 뒤 자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옆에서 자는 척 했다. 그러자 지들끼리 나를 사이에 둔 두 침대에서 서서 대화를 나눈다. 

하나: 네 엄마는 어디에 가셨니?” 

친구: “우리 엄마는 일하러 가셨어.” (집들이 파티 가느라 우리집에 애를 맡긴 거지만 애들은 일하러 간 걸로 오해했다.) 

하나: “너희 엄마는 휴가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그러면 Lagkagehuset (체인점 빵집)”에 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히히. 그거 나야. 내가 오늘 lagkagehuset에 다녀왔어” 

이날 하나는 우리와 그 빵집에 다녀왔는데, 이렇게 그걸로 농담까지 할 줄이야. 애들의 대화를 이렇게 들어볼 날이 없었는데 애들이 벌써 말장난도 치면서 노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미 가까이 잘 노는 친구가 생긴 것도 놀랐고. 

내가 선생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특정 친구와 놀기보다는 재미있는 걸 하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서서히 친한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툭하면 듣는 이름이 대충 열명 안으로 좁혀진 것만 봐도 그렇고. 

밤에는 옌스와 번갈아가며 책 읽어주고 재우는데, 간혹 주인공이 우는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도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티비에서 주인공이 울어도 같이 운다. 공감능력이 좋은 아이라고 보육원에서 들었는데 실제 우리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내가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인지라 그런 걸 볼 때 좋다 싶다.

아이가 태어나서 세살까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걸 보답하기 위해 부모가 그 나머지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은 적이 있다. 그 삼 년의 시간이 벌써 거의 다 흘렀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쁘고 사랑스러운 딸이겠지만 이 첫 삼 년의 시간은 참으로 기적같은 시간이라고 기억할 것 같다. 작은 핏덩이에서 이렇게 아이같은 아이로 성장한 기적.